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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버드워칭 / 오선호

 

매니저가 테이블 위 담뱃갑을 집어 들자 쌍둥이 형제도 각자의 주머니를 뒤진다. 호프집 천장 높이 매달린 50인치 텔레비전에서 야구중계가 나오고 있다. 7회말 동점 상황, 13루 찬스에서 3루 주자가 투수의 견제구에 걸린다. 의자를 뒤로 빼며 반쯤 일어선 어정쩡한 자세인 채로 세 사람의 눈이 방송 화면에 붙박인다. 매니저와 쌍둥이들은 응원하는 팀이 다르다. 잠시 주춤하던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진도 맥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눈으로만 쫓아간다.

미진이 입은 흰색 티셔츠 등에는 땀이 마른 얼룩이 흐릿하다. 얼룩 너머 짙은 색 속옷 끈 두 줄이 날개를 누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날개 안쪽에는 한 쌍의 폐가 있을 것이고 그 안으로 곧 연기가 가득 스밀 터이다. 잠들었을 때 숨 쉬는 걸 가만히 살펴보면 그녀의 호흡은 늘 얕았다. 작은 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연기를 상상한다. 양손으로 잡으면 한 줌이 조금 넘는 몸통 안에 차곡차곡 그 모든 장기가 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내 뱃속 어딘가가 아려온다. 미진이 밖으로 나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유리문 너머로 향한 시선을 바로 거두지 못한다.

테이블에는 신입, 여자애, 그리고 내가 남아 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음악 하신다고 하던데.”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건다.

잊고 있었다. ‘음악 하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네 번이나 연주 도중에 멈추었던 바람에 그나마 공들여 준비했던 끝 곡은 시작도 못했던 마지막 공연과 그 무대 위에 같이 있었던 에일리언즈 멤버들이 떠오른다. 에일리언즈는 서울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백인 세 명이 만든 아마추어 밴드다. 직업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나는 그 밴드에 나중에 들어갔다. 음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싫어서 시작한 건데 돌이켜보니 그 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실제로 그만두게 된 셈이 되었다. 초면인 여자애에게 자세한 사정을 다 말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요.”

소맥 한 잔에 취한 신입은 테이블에 엎드리더니 바로 잠든 지 오래고, 여자애는 눈을 반짝이며 나와 내가 한다는 음악에 대해서 질문을 이어 나간다. 대답을 하다 보니 나는 트웰브 트웰브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트웰브 트웰브? 어감 좋다. 근데 그게 뭐예요? 십이 십이?”

지난 6년 동안 트웰브 트웰브를 알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은 가끔 있었으나, 예의상 그렇게 말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 이 여자애는 모른다고 하면서도 관심을 보이며 되묻는다.

천이백십이예요.”

나는 정정한다. 허공에 1212를 적어 보일 때도 있지만 지금은 말로만 한다.

트웰브 트웰브는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들었던 밴드예요.”

내가 만든 밴드였지만 지금 그 안에 나는 없다. 나는 돈이 없었고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없었고 학교를 계속 다닐 수도 없었다. 내가 밴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반년인가 지났을 때, 트웰브 트웰브는 LA에서 온 프로듀서의 눈에 띄었고 곧 데뷔 싱글을 냈다. 떠나던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단절인지 깨닫지 못했었다. 나는 멜로디를 잠깐 흥얼거린다. 트웰브 트웰브의 최고 히트 넘버이자 게임 ‘GTA 상페드로술라에 삽입된 곡인 프리즈(Freeze)’의 후렴 부분이다. 여자애가 테이블 위로 상체를 숙이며 다가온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노래는 금방 끝난다.

노래를 잘하는 것 같진 않은데요?”

전 키보드 쳤어요. 작곡도 좀 했고.”

그런데 지금은 왜 신발 팔아요?”

지겨우면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번번이 이 이야기가 나오고 만다.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테이블 끝의 신입처럼 여기서 엎드려 자거나, 이 자리를 빠져나가 집에서 혼자 잠드는 대신, 나는 지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말은 말인데, 설명은 못 된다. 일단 내가 알아야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는데,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더듬더듬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 말도 안 하거나 짧은 대답으로 끝내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상대방은 호의를 보이며 질문을 한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은 행동을 나에게 하는 사람은 많다. 번화가의 대형 매장에서 일하다 보면 너무나 그렇다. 그래서 나는 냉대가 어떤 건지 좀 안다. 나는 여자애에게 차갑지 않으려고 애쓴다. 열대야다. 차가워야 맞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지금은 회식 후에 어설프게 이어진 술자리이고 여자애는 매장 매니저가 얼마 전 새로 사귄 여자 친구다.

이름이 수정이라고 했던가, 수경이라고 했던가?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어 다 드러난 팔이 특이할 정도로 희고 굵다. 터질 것 같이 부담스럽다. 나는 새를 생각하고 만다. 저 팔처럼 하얗고 푸둥푸둥한 새라면…… 역시 집오리 정도일까? 집오리보다 더 통통하고 뭉툭한 새는 뭐가 있더라? 목 짧은 뇌조 중에 하얀 새도 있는데……. 텔레비전 많이 보는 이들이 사람을 볼 때 닮은 연예인을 떠올리듯이 새를 많이 보는 나는 사람을 볼 때 닮은 새를 떠올리곤 한다. 매니저는 해오라기, 쌍둥이들은 큰까마귀, 신입은 귀깃이 갈색인 직박구리를 닮았다. 뇌조는 눈이 검다. 새의 검은 눈동자는 사람의 그것보다 어딘가 더 먹먹한 검정이다. 여자애의 눈동자는 컬러렌즈에 가려져 있다. 이야기는 슬슬 마무리되어간다.

아쉽지 않아요? 다시 돌아갈 순 없었어요?”

다 지난 일이라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 나갔던 일행들이 자리로 돌아온다. 쌍둥이 두 명이 동시에 의자를 빼낸다. 부주의한 동작으로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다. 그 소리에 엎드려 있던 신입이 움찔거린다.

들어오니까 살 것 같네. 밖에 왜 이렇게 더워?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더워?”

매니저가 땀 젖은 티셔츠를 손으로 잡아 흔든다. 덥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그는 여자애 옆에 앉자마자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여자애는 매니저를 살짝 밀어낸 다음 제 앞의 술잔을 비운다.

여자애의 다른 쪽 옆자리에 미진이 앉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진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 만다.

?”

나는 미진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까먹었어.”

그녀는 자주 그런다. 미진의 눈동자는 깊은 검정이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문조를 떠올렸다. 문조 일반을 떠올렸다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문조를 닮은 사람이 아주 많다. 미진은 다르다. 나는 미진을 보자마자 특정한 문조, 어릴 적 내가 가졌던 바로 그 문조를 생생하게 기억해버렸다. 이름도 정해주기 전에 사라진 그 문조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러본 새였다.

김기정이 내일부터 휴가랬지? 3일짜리 휴가 처음 받는 거지? 소감이 어때?”

매니저는 선물을 주는 사람처럼 뿌듯해 보인다. 뭔가 생색을 내고 싶은 눈치다. 하루에 열두 시간 일하고 한 달에 일곱 번 쉬는 직장에서 3일 휴가는 큰 선물이 맞다.

나는 열두 살 때 엄마를 따라 캐나다 매니토바주 브랜던으로 이민을 갔다. 밀밭도 호수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한다면 하루 온종일 새를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보통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가끔은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멜로디를 붙잡아 집을 짓기도 하고 단어들을 엮어서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고도 시간은 한참 더 남아 있었다. 멍하게 가만히 숨죽이고 앉아 있는 그 시간이 그때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밀밭처럼 호수처럼 그러나 끝은 있었다.

휴가 가니까 좋죠. 아주 좋죠.”

그래, 어디 놀러 가나?”

.”

어디?”

매니저는 자세한 대답을 원한다.

인천에 들렀다가 강화도까지 가요.”

? 거기 뭐가 있나? 누가 살아?”

얼굴이 까만…… 스푼빌이요…….”

스푼빌의 스푼 같은 부리만 떠오를 뿐 한국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미진이 나를 본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다가 이내 그만두고 빈 잔에 맥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것을 단숨에 비운다. 나는 미진이 마시는 술잔을 센다. 정확한 체중은 물어도 대답을 안 해 주지만, 그녀는 등에 업거나 안아 들 때마다 늘 예상보다 가벼워서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작은 몸에 술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니까, 지켜보게 된다.

숟가락 할 때 그 스푼 맞죠?”

여자애가 제 휴대폰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이며 맑고 높은 목소리로 끼어든다.

저어새네요. 저어새.”

저어새가 뭐야? 새야?”

잠든 신입을 간질이면서 키득대던 쌍둥이들이 갑자기 이쪽 화제에 관심을 보인다.

? 새를 보러 인천 가는 데 3일을 쓴다는 거야?”

매니저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내게 확인한다.

휴가가 3일이나 되는데 겨우 인천이야?”

쌍둥이 동생(어쩌면 형)이 말한다.

나 같으면 그럴 바에 차라리 집에 있겠다. 여행비 안 쓰고 보태서 벨에어 한정판이나 사고 말지.”

쌍둥이 형(어쩌면 동생)도 말한다.

난 벨에어 예쁜 줄 모르겠더라. 에어 조던 중에서 그렇게 안 예쁜 것도 별로 없어.”

, 네가 뭘 알아?”

쌍둥이들은 둘 다 운동화를 수집한다. 내 눈에는 그들이 행복해 보인다. 매일 신발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신발을 파는 신발 수집가들. 게다가 둘이다. 한번은 나 자신이 쌍둥이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깨고 나서 뭔가 아쉬웠던 이런저런 꿈들 중 하나였다.

새를 보는 건 도대체 왜 보는 거냐?”

매니저가 골똘한 얼굴로 묻는다.

그냥 보는 거예요.”

새를 어떻게 본다는 건지 모르겠다? 새가 사람 앞으로 다가올 리도 없고. 하늘을 제 맘대로 날아다니는 거를 땅에 붙어 있는 사람이 어쩔 수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서도 꽤 보여요. 그렇지만 사실, 어쩔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내가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새가 날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냥.”

기다린다?”

.”

계속 기다린다?”

.”

계속 기다리다가 보이면 본다?”

.”

그러니까 그건……낚시 비슷한 거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낚시를 하면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지. 새를 보면 뭐하는데? 사진 찍어? 사진?”

쌍둥이 중 한 명이 묻고 다른 한 명이 대답한다.

사진 찍겠지, 그럼 안 찍겠냐?”

사진 안 찍는다. 찍으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지만 곧 찍지 않게 되었다. 새가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아무리 오래 내 앞에 있다 해도 그래 봐야 잠깐이다. 기다리는 시간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주 잠깐인 것이다. 그 짧고 소중한 시간 동안 카메라로 눈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처음 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열세 살 무렵이었고 그때 나에게는 카메라가 없었다. 한동안은 새를 그림으로 그렸다. 아무리 공들여 그려도 내가 본 새와 종이에 그려진 새는 같은 새가 아니었다. 그림은 점점 간략해졌다. 새의 특징만 표시해놓은 메모처럼 되어갔다. 나중에는 시간, 날짜, 장소, 그리고 몇 개의 단어와 다섯 개씩 묶는 빗금 표시만 기록해두었고 최근에는 그나마도 거의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새를 보는 데에, 오래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새를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데에, 기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낚시는 말이지, 지루하게 앉아서 기다리다가도 일단 이게 걸리면 응? 엄청, ? 짜릿하단 말이지. 새를 보는 것도 그런가?”

짜릿하지 않다. 기다렸다가 새가 보이면 새를 볼 뿐이다. 물고기를 손에 넣듯 새를 잡는 것이 아니다. 새는, 살아 있는 새는 너무나 새인데, 새가 아닌 나는 새를 보면서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눈앞의 새에게 빠져든다. 새를 보는 건 인생을 보내는 수만 가지 방식 중에서 그래도 괜찮은 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식 중에서는 최선이다. 아마도, 확실히, 그렇다. 다른 방식을 고른다 해도 돌아보면 결국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새를 보는 일만큼 무해하면서 무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 어렵다. 이 세상에서 그러기도 어렵다.

새가 보이면 좋아요. 좋은데 그렇게까지 막 좋은지는……. 어떨 때는 되게 좋고 다른 때는 의외로 그저 그럴 때도 있고. 잘 모르겠어요.”

그럼 막 좋은 건 뭐예요? 뭐가 막 좋아요?”

하얗고 둥글둥글한 여자애가 나에게 묻는다. 매니저는 나를 보고 있는 여자애의 눈을 본다. 여자애의 길지 않은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큰 소리로 맥주를 더 주문한다. 여자애의 목소리는 매니저의 소리에 묻힌다. 나는 다 알아듣는다. 알아들었지만 대답은 하지 못한다. 오늘 처음 본 이 여자애에게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더는 없다.

처음 새를 보러 다니게 된 건 새를 잃어버린 일 때문이었다. 열세 번째 생일 선물로 나는 개를 원했는데 새를 받았다. 개보다는 키우기에 부담이 적은 애완동물을 고민했던 엄마의 결정이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그 새가 문조라고 알려주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새를 본 기억이 없었다. 문조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는 거였다. 개가 아니어서 실망한 나는 새를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갑자기 새가 울었다. 그 문조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숨을 죽이고 새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알 수 없어서 계속 보았다. 문조의 눈은 검었다. 나를 보아도 나를 보는지 모를 검정이었다. 그 문조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보이기는 할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무서워졌다. 새장 문을 열고 새를 잡았다. 들어서도 모르고 보아서도 모르니 만지게 되었다. 손안에서 필사적으로 푸드덕거리던 그 새는, 조그맣고 따뜻했다. 부드러운 깃털 밑으로 얇은 피부와 가느다란 뼈가 느껴졌다.

, 생각났어. 기정 씨, 9월 첫 주에 비번 나랑 바꿔주면 안 돼?”

미진이 묻는다.

왜 또?”

그냥. 중요한 약속.”



그녀는 나에게 귀찮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녀를 거절하지 않는다. 그녀는 동료들 앞에서 뭔가 중요한 약속 따위가 있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바람이 아직 맵던 지난 초봄, 점심을 같이 먹고 성당 앞 벤치에 단둘이 나란히 앉았을 때, 미진이 자신의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있으며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알 수 없게 된 사건들을 그녀는 시간 순서대로 연결했다. 술 없이 맨정신으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해준 것은, 지금까지는, 그때 한 번뿐이었다. 미진의 음성이 평소와 달리 차분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급하게 일어서던 우리의 머리 위로 높이, 노란 날개를 펼친 새가 날아갔다. 처음 보는 그 새를 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미진은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이 영월에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미진이 비번을 바꿔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한참 멀리 가야 하는 곳에 있는 요양원을 떠올리곤 한다.

알았어. 그렇게 해.”

야구 중계를 보던 쌍둥이들이 동시에 내 쪽으로 눈을 돌린다. 왼쪽에 앉은 쌍둥이가 끼어든다.

김기정, 만날 왜 그래? 우미진한테 뭐 호구 잡혔어?”

그러자 오른쪽에 앉은 쌍둥이가 동조한다.

안 그래도 돼. 얘한테는 안 그래도 돼.”

두 형제는 나를 가운데 두고 눈빛을 주고받는다.

나는 미진이 보이지 않을 때 미진을 생각하고 미진이 보일 때 미진을 본다. 주의 깊게 살펴본다. 매장 사람들 대부분은 미진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은근히 무시한다. 가끔은 드러내놓고 무시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미진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그녀를 빨리 알아내고 판단해버리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만 안 보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사람들은 미진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흉본다. 술을 많이 마시니까 술 마시고 하는 잘못도 많을 거라고 믿는 것 같다. 미진은 그냥 미진, 너무나 미진인데, 미진이 아닌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렇게 욕을 먹고 몸까지 상해가면서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미진이 나는 궁금하다. 미진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게 되려면 뭐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미진은 매장 안에서 리듬을 타며 날아다닌다. 매대로 창고로 카운터로 날아다니다가 손님 발밑에 쪼그려 앉는다. 노래하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달게 재잘거린다. 처음 본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내가 미진에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기분? 아까 기정 씨가 캐러멜 줘서 좋은가? 맞아. 그런 것 같아.

그녀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다시 미진에게 캐러멜 한 개를 내밀었더니,

나 치아 약해서 이런 거 못 먹는 거 몰라?

라고 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쌍둥이나 매니저나 매장의 다른 직원들이라면 손쉽게 미진의 변덕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에 닿지 않는 새에 관해 오래 생각을 하는 나는 미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를 변덕스럽고 이상한 애라고 함부로 볼 수가 없어진다. 캐러멜에 관해서만도 그랬다. 내가 캐러멜을 줘서 기분이 좋다는 것, 치아가 약해서 캐러멜을 못 먹는 것, 둘 다 진실이라면, 그렇다면 나로서는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일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이 먹을 수도 없는 건데도 단지 내가 아주 작은 뭔가를 건넸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 되는 것 아닌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는 믿고 싶어서 그런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

작년 겨울, 만취한 미진과 둘만 남은 적이 있다. 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미진은 축 늘어져 대답을 못했다. 그 계절 가장 추운 며칠 중 하루였다. 차비가 없었다. 그녀를 업고 내 방까지 걸어갔다. 미진은 가벼웠다. 두꺼운 외투 안에 따뜻하고 말랑한 살과 가느다란 뼈가 있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는 바닥에서 잤다. 바닥이 차고 딱딱했는데도 그날, 나는 평소와 달리 푹 잘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명 어스름에 미진이 나를 깨웠다. 일어나 앉았더니 그녀가 다가와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키스를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옷을 벗고 침대에 함께 누웠다. 그녀가 너무 작고 보드라워서 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진의 몸에서 내려와 이불을 끌어올려 덮었다. 작은 몸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이불 속은 온기로 꽉 찼다. 등 뒤에서 그녀가 나를 안았다.

잊어버려, 잊어버려.

두 번 말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거듭 생각해봐도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새의 말을 모른다. 나의 문조는 너무 작고 연약했다. 꼭 끌어안고 싶었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손에 쥐면 더 세게 잡고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억지로 부리에 입을 맞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새를 꿀꺽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새의 말을 모르는 나는 미진이 하는 말도 잘 모르겠다. 그녀를 먼저 출근하게 하고 내가 나중에 집을 나섰다. 무슨 뜻이었냐고 물어볼지, 그냥 잊어버릴지, 근무하는 열두 시간 동안 틈틈이 고민했다. 퇴근길에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는 미진을 불러 세웠다. 나는 비번 날짜를 맞춰서 같이 놀러 가자고 말했다.

기정 씨랑 나랑 같이 가자는 거야?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 어디를? ?

미진은 곧 날아가버릴 것처럼 나를 경계했다. 살갗이 얇게 덮인 그녀의 뼈는 가늘디가늘었다. 손에 힘이 잘못 들어가면 작고 여린 것이 다친다. 새를 감싸고 있는 손에 얼마만큼 힘을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 안 되는지, 나는 그런 것을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안 해야 한다. 불안하면 만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후로도 비슷한 일들이 더 있었다. 미진은 술에 취했고 자고 나서 나에게 잊어버리라고 반복해 말했다. 새벽이 밝으면 포르르 떠났다. 직장에서 그녀는 나를 아무 일 없던 때와 똑같이 대했다. 나는 태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 그녀가 내게 하는 그대로 하게 되었다.

비번 순서를 누구 마음대로 바꾸나? 우미진 씨 자꾸 이러십니다?”

매니저가 미진에게 말한다.

전에 한 번 보니까 바꾸는 게 아니라 아예 김기정 비번을 가로채더만?”

이 직장은 분위기가 그다지 권위적이지 않다. 드나들기가 어렵지 않은 일자리일수록 말도 안 되는 군기가 있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희한할 정도이다. 먼저 들어온 텃세가 거의 없고 동료들끼리 사적으로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다. 명동 2호점에 오기 전에 세 군데 다른 매장에서도 일했었는데 다 비슷했다. 이 매니저도 평소에는 친구같이 직원들을 대한다. 그러나 회사 분위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상급자 행세를 즐기고 싶어 할 때가 종종 있다. 그에게는 여자 친구를 회식 자리에 불러내는 버릇도 있다. 여자 친구도 직원들도 별로 원하지 않는 일인 게 분명한데도.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미진이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나 정도 되니까 봐주는 거야. 다른 데서 그런 식으론 어림없다고. 내가 일일이 짚고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몰랐나 본데, 내가 다 보고 있었거든. 내 위치에 있으면 다 보이거든…….”

매니저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내용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매니저와 미진 사이에 앉아 있는 여자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까부터 스마트폰만 잡고 있다. 간간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다시 보니 여자애는 집오리나 하얀 뇌조보다 알비노 올빼미를 더 닮았다. 여자애의 눈은 꽤 큰 편인데도 얼마나 직경이 큰 컬러렌즈를 꼈는지 흰자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올빼미는 머리를 180도에서 270도까지 어느 방향으로나 돌릴 수 있다. 눈동자를 움직일 수 없는 대신 고개를 마음대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올빼미는 전후좌우 360도 시야를 확보한다.

찾아보니까 트웰브 트웰브가 멤버 중 한 사람이 살았던 집 주소에서 따온 이름이네요? 맞아요?”

여자애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묻는다. 여자애가 입을 열자 매니저는 입을 다문다. 미진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잔을 들어 입에 댄다. 이제 그만 마시면 좋겠다. 나는 그녀의 주량을 안다.

맞아요?”

여자애가 대답을 원한다.

, 맞아요.”

나는 대답한다.

누구네 집 주소였어요?”

여자애가 또 묻는다.

저희 집이요.”

아아, 그러시구나.”

여자애가 팔로 제 몸을 안아서 큰 가슴이 더 커 보이게 만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통통한 알비노 올빼미는 누가 봐도 귀여운 새다.

근데 있잖아요, 밴드는 그만두셨어도 작곡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저작권 수입이나 그런 것도 있겠어요? 미국이면 단위부터 어마어마한 거 아니에요? 찾아보니까 유명한 게임에 들어간 곡도 있나 본대요.”

얼굴이 조금 굳은 매니저가 한 손으로 맥주잔을 들면서 다른 쪽 팔을 올려 여자애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여자애는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여자애가 말하는 동안 미진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만다. 여자애의 말이 끝나자 미진이 입을 연다.

기정 씨, 알고 보면 무슨 펜트하우스 같은 데 살고, 그런 거 아니야? 펜트하우스 안에 막 돈다발이 쌓여 있고, 그런 거 아니야?

호프집 천장에 매달린 대형 모니터 안에서 타자가 홈런을 쳤다. 공이 관중석까지 날아가는 장면이 여러 각도로 반복된다. 홈런볼은 낙하한 다음에도 한동안 공중에 머무는 셈이다. 공이 날아가는 동안 나는, 내가 정말 돈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너무나 당연하기에 따로 생각해본 적 없는 소망을 선명하게 의식한다. 바로 지난주 목요일에도 미진은 내 방에서 자고 갔다.

쌍둥이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술값은 이제부터 김기정이 다 내라. 달러로 돈 버는 부자였어? ? 그런데 왜 신발 팔고 있어? ? ?”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들의 법석은 가라앉지 않는다.

진짜야?”

매니저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아닙니다.”

나는 정색하고 대답한다.

트웰브 트웰브가 이제 와서 김기정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애초에 김기정이 빠지고 나니까 데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림이 딱, 그렇잖아요, 그림이.”

미진이 부연한다.

관객이 드문 곳에 떨어진 홈런볼이 바닥을 구른다. 팔을 길게 뻗었지만 공을 잡지 못한 아이가 아쉽다는 듯 찡그리는 표정이 화면에 잡힌다. 아무리 팔이 길었어도 어림없는 위치였는데 아이는 그걸 아깝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이의 울상을 보면서 나는 텅 빈 새장을 떠올린다. 어린 나는 빈 새장을 안고 문조를 찾아 동네를 헤맸다. 땅에 붙어 있는 나는 아무리 먼 데까지 돌아다녀도 하늘 위로 날아가버린 새를 찾을 수 없었다. 문조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위로 들고 주택가, 공원, 숲속, 물가를 떠돌 수 있을 뿐이었다. 문조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빈 새장을 껴안듯 어깨를 움츠린다.

어쨌든 내일은 휴가를 간다. 남동유수지에 가서 저어새가 보이기를 기다릴 것이다. 저어새는 한반도에서 여름에만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남쪽, 예를 들면 타이완 같은 남쪽으로 멀리 떠난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도 있지만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인천 대신 비슷한 기후의 더 살기 좋은 다른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올해는 저어새가 왔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어떨지 모른다. 내년에 나는 다시 저어새를 볼 수 있을까? 아니, 내일 당장 찾아갔을 때 내가 그 새들을 볼 수 있을까? 얼굴이 까만 저어새는 숟가락같이 넓적한 부리도 검은데, 다리도 검고 깃털은 하얀데, 튼튼한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다니면서 부리를 휘저어 먹이를 찾아 먹는데, 그런데 그걸 나는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잘 아시나 봐요?”

여자애가 미진에게 묻는다.

그럼요. 잘 알죠, 트웰브 트웰브. 내 친구거든요.”

미진이 대답한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6년 동안, 트웰브 트웰브를 알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미진이 유일했다.

친구라고? 웃기시네!”

쌍둥이 중 한 명이 언성을 높이며 미진에게 무안을 준다.

말이 되냐? 너 영어 하냐?”

다른 한 명이 합세한다.

생글생글 웃는 미진의 얼굴 어딘가에서 풀 죽은 기색이 배어 나온다.

친구 맞아. 페이스북 친구.”

페북 친구래.”

쌍둥이들이 까마귀답게 꺽꺽거리며 큰 소리로 웃는다. 여자애도 조용히 따라 웃는다.

나는 자리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빨갛다. 알코올을 흡수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한두 잔만 마셔도 그렇게 된다. 오늘은 꽤 많이 마셨다. 칸 안으로 들어가 입안에 손가락을 넣고 구토를 시도한다. 술을 마시면 나는 취하는 대신 머리가 아프다. 토해버리고 나면 괜찮아진다. 토를 하면 늘 그렇듯 눈물이 새어 나온다. 우웩, 우웨에엑. 소리를 크게 낸다. 소리 내어 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꼴이다. 속을 다 비우고 나서도 한참 동안 더 그러고 있다. 내친김에 좀 더 울어볼까? 이미 얼굴은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이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

문 앞에서 몇몇이 담배를 피우며 더운 날씨를 불평하고 있다. “밤인데도 뜨거워서 미치겠다. 빨리 들어가자.”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위니펙에서 친구들과 지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위니펙에서는 그때도 술집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안에서 신나게 놀다가 담배 한 번 피우려면 스웨터를 다시 입고 파카를 걸치고 모자와 장갑까지 다 쓰고 낀 다음 나가야 했다. 영하 40도는 예사였다. 얼음 실은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드는 걸 느끼면서 잔뜩 웅크린 채 겨우 담배 한 대 피우고 나면 들어와 입었던 순서대로 다시 벗어야 했다. 술 마시고 머리 아픈 상황에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담배를 끊고 한국에 왔더니 여기서는 술집 안에서 흡연이 자유로웠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일에도 불쑥불쑥 억울해지곤 하던 때였다. 나는 열두 살 때 이민을 갔다가 스물네 살에 돌아왔다. 인생 전체가 다 뒤죽박죽 꼬여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힘들게 끊었던 담배를 군대에 있을 때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했는데 곧 서울에서도 모든 실내가 금연구역이 되었다. 제대 후 혼자 살다 보니 건강이 나빠져서 아주 어릴 적 앓았던 천식이 재발했다. 나는 다시 어렵게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담배뿐 아니라 다른 일들도 거의 다 비슷했다. 음악도 그랬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명동에서 밤에 나는 새는 없다.

기정 씨, 눈 빨갛다.”

미진이 다가와 있다.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그녀가 언제부터 나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미진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반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만날 없어.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그녀의 입에 물린 담배에 나는 불을 붙여준다.

담배 안 피우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게 라이터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나는 손바닥 위에 라이터를 똑바로 올려놓고 미진이 잘 볼 수 있도록 내민다. 지난달, 만취한 미진이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내 방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조류도감을 미진이 제 가방에 넣으려는 것을 내가 말렸다. 돌려줄게, 돌려줄게, 담보를 맡기면 되잖아, 하면서 미진은 이 라이터를 내게 줬다. 헌 라이터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그것이 그냥 라이터가 아니라고 했다.

내 심장이야. 잘 갖고 있어야 돼.

잡으면 한 줌인 몸통 안에 어떤 모양의 심장이 어떤 온도로 뛰고 있는지 수없이 상상해 보았었지만 라이터가 그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랬다. 이 낡은 지포 라이터에는 긁힌 자국이 무수하다.

뭐야? 이걸 왜 기정 씨가 갖고 있어?”

미진의 검은 눈동자는 꼭 새의 그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새를 쫓아다녔다. 새를 보려면 숨죽이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줬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조류도감 얘기를 한다. 조금만 인기척을 내도 새는 날아가버린다. 내가 새를 해치지 않고 싶어 한다는 걸, 해치기는커녕, 누구보다도 새가 온전하길 바란다는 걸 새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다. 새는 내 마음을 모른다. 제가 모르는 게 뭔지조차 모를 것이다. 미진은 나를 노려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나를 본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동안 말이 없다가 꽁초를 비벼 끄며 다시 입을 연다.

내일 휴가는 누구랑 같이 가는데?”

혼자 가지.”

정말?”

미진아,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모르니?”

…… 알아야 돼?”

문조가 날아간 건 내가 새장을 열어놨기 때문이었다. 그건 문조의 잘못이 아니다. 새장을 아예 열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문조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문조는 잘못이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는 좀 더 오래 즐거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즐겁지는 않았을 거고, 그 또한 문조의 잘못은 아닐 거였다.

오래전에 한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문조와 나는 화음을 맞춰 노래하고 같이 산책하고 빵을 나눠 먹었다. 새장 없이도 그렇게 했다. 내가 기뻐하자 문조가 내 머리 주위를 빠르게 뱅뱅 돌아서 들뜬 기분을 더 날아갈 것같이 띄워주었다. 내가 슬퍼하니 문조는 가만히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흘린 눈물을 깃털 부드러운 날개로 닦아 주었다.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그 꿈이 말도 안 되게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이, 그것이, 문조의 잘못은 아니었다. 문조는 그냥 문조였고, 너무 문조였다.

네가 알아야 되는 건 아니지. 그럴 필요는 없어.”

미진의 마음이 편하도록 나는 이 말을 최대한 담담하게 하려고 애쓰는데, 곧바로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는다. 미진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나를 보던 눈동자가 더 깊이 검어지면서 나를 보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진다. 미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본다. 새는 보통 양쪽 눈의 시야가 겹치지 않아 넓은 범위를 한꺼번에 볼 수 있지만 정작 제 부리는 보지 못한다. 미진이 고개를 돌린 채 내게 다시 말을 건다.

기정 씨는 어떤 사람이야?”

목적이 뚜렷하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당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가 보이면 새를 보고 새가 보이지 않을 때는 새를 생각하는 일에 목적이 따로 없어서인지, 나는 어떤 일에서도 목적을 찾는 것에 서툴게 된 것 같다. 미진의 질문에 적당한 답을 모르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답을 하기로 한다.

미진아, 나는 새를 보는 사람이야.”

미진이 내 손에서 라이터를 빼앗아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그녀의 심장은 그녀에게 돌아갔다. 나는 내일 인천 남동유수지에 가서 저어새를 보려고 한다. 볼 수도 있지만 못 볼 수도 있다.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내가 찾아간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내일의 계획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휴가를 맞는 설렘을 느끼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툭 친다. 매니저다.

야구, 졌다.”

그가 응원하는 팀이 진 모양이다. 안에서는 쌍둥이들이 환호하고 있을 것이다. 신이 나서 떠들 것이고 떠들다가 결국 운동화 얘기를 할 것이고 서로 다투다가 화해할 것이다. 신입을 깨워서 장난을 걸 것이다. 여자애는 계속 매니저의 여자 친구로서 이런 자리에 따라올 수도 있지만 다시는 안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진은 또 얼마나 더 취할까.

새 보는 거, 그거 할 만하냐?”

매니저가 묻는다. 놀리는 말투는 아니다.

.”

그거 하려면 뭐, 누구한테 뭘 좀 배워야 하나? 장비 같은 것도 사야 돼? 망원경? 아까 망원경 쓴다고 했나?”

그에게 나는 버드워칭 입문서로 유명한 몇 권의 책, 인터넷 사이트, 국내 동호회, 녹화 기능이 있는 디지털 쌍안경, 쌍안경 홀더, 가이드북, 지도, 버드워칭할 때 신는 부츠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그는 감탄하며 흥미를 보인다.

갖춰야 할 게 많구나. 너는 뭐부터 시작했어? 일단 동호회에 가입하는 게 나은가?”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

동호회 가입도 해본 적 없고 디지털 쌍안경 같은 것도 하나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고 있는데?”

그냥 봐요, 새를.” <




  <당선소감>


   "기쁜 일로 마신 코냑 한 모금, 들숨에 달큰한 향이…"

기쁜 일이 생기면 이걸 마시자, 라고 정해두었던 코냑 한 병을 기억해냈다. 몇 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찬장 안 어두운 데 있던 병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적당한 잔을 고르고 술을 따르는 동안 내내 속이 어수선하기만 했다.

한 모금 마셨다. 강렬하게 향기로웠다. 알고 있던 맛을 넘어서는 실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호박색 투명한 액체를 들여다보았다. 이 순간의 감각 외에 다른 것들은 뒤로 다 물러났다. 내가 왜 지금 이것을 마시고 있는지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곧 지나갔고 나는 방금 전 받았던 전화 통화의 내용을 곱씹는 상태로 되돌아갔다. 막연히 짐작했던 기쁨은 팔짝팔짝 뛰고 싶고 웃음이 절로 나는 그런 상태에 가까웠는데.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은 평상시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진폭 큰 감정이었다. 좋은 술의 향이 퍼져 들숨이 달큰했다. 항상 숨을 쉬지만 향기에 새삼 호흡을 의식하게 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날 때면 내가 문장을 이해하거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매번 짜릿하게 기뻤다.

이만교 선생님, 글쓰기 공작소에서 선생님께 배우지 못했더라면 아직도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만 내고 있었을 거예요. 제 글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김원우 선생님, 구효서 선생님께 가장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76년 서울 출생.

  ● 연세대 철학과 졸업.


 

  <심사평>


  "미래세대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 신선한 눈으로 능청맞게 담아"


본심에서 주목했던 작품들은 주로 청년실업을 다룬 작품이었다. 실은 그런 소재가 압도적일 만큼 많았다. 딱히 실업은 아니더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은 아르바이트, 인턴, 기타 한시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어쩌다 취업한 직장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소설은 실업과 관련된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저항과 투쟁의 결기가 사라지고 체념 같기도 하고 달관 같기도 한 태도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진 자의 오만과 못 가진 자의 불만이 정작은 동일한 욕망의 다른 표출이라는 새로운 인식 때문인지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에 관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과 언어를 확보하려 든다. ‘목인의 나무에서 마치 바틀비인 듯한 엉뚱한 인물이 등장하여, 나무에 보이는 그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사주와 대립하는 상황을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문제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올리버처럼의 올리버도 미래가 불확실한 다른 청년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지만 특유의 올리버스러움, 공연한 포즈로 현실을 멋쩍게 혹은 의연하게 마주하는데, 이런 그의 모습이 우습기는커녕, 보다 더 깊은 영역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불만과 분노를 자기 욕망의 응시와 관리를 통해 해소하거나 넘어서 보려는 의지가 버드워칭에서는 좀 더 극대화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미래세대의 속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싶어 무서워진다.

다만 소설 창작의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목인의 나무에서는 신목인그 인간의 대비가 어색하고, ‘올리버처럼의 경우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부 사례를 통해 올리버라는 극 중 인물이 선명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에 비해 버드워칭은 화자의 발화가 얼핏 싱겁고 아리송한 듯해도 가만 보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할 법한 신선한 월드워칭의 눈을 능청맞고 선선하게 제공한다

 

심사위원 : 김원우, 구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