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소풍 / 함지연
<당선작>
소풍 / 함지연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는 언제나 미옥이다.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깬 그녀는 머리맡의 시계를 잡아당겨 알람버튼을 누른다. 7시 45분.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15분이나 남았다. 오늘은 휴일이라 일어날 시간을 늦췄지만, 대개 미옥의 기상시간은 6시 무렵이다. 물론 알람을 맞춘 시간은 6시 20분이지만 알람소리에 잠을 깬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부산스런 꿈을 꾸다 눈을 번쩍 뜨면 알람이 울리기 바로 직전이다. 꿈을 많이 꾸는 편인 그녀가 하나의 꿈속을 다녀오든 그곳에서 길을 잃어 열 개의 꿈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든 항상 그랬다. 꿈은 그녀를 눈 뜨게 한다.
꿈속에서 미옥은 청어를 새까맣게 태워버리거나 누군가와 언쟁을 벌인다.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낮은 책상 앞에 오금이 저리도록 앉아있기도 했으며 때로는 아득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아찔한 높이에 매달린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가 고장난 엘리베이터와 함께 그대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엘리베이터의 바닥은 투명한 유리였고 추락 후엔 영락없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손바닥에 유리조각들이 촘촘히 박힌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자마자 손을 주물러야 했다.
그중에서도 미옥이 지속적으로 꾸는 꿈의 유형은 이런 식이다. 뭔가를 바싹 태워버리는 것. 어떤 일엔가 속수무책으로 너무 늦어버리는 것. 모르는 여자와 모르는 남자와 모르는 아이들과 대면하는 것. 모르는 여자는 자기가 그녀의 시어머니라고 박박 우겼고, 모르는 남자는 너는 네 아비도 몰라보느냐 힐난했고, 모르는 아이는 엄마라고 부르며 다짜고짜 등에 찰싹 들러붙어 업어달라고 칭얼거렸다. 그러면 미옥은 모르는 얼굴을 한 딸을 등에 업고 하염없이 걷는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들은 실컷 자고 일어난 뒤 소풍을 갈 것이다. 결혼한 후 그건 그들의 사소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행사이다. 결혼 초 도시락을 싸서 밖으로 나가 밥을 먹자는 미옥의 제안에 주호는 기꺼이 따랐다. 지금도 기꺼운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여전히 미옥과 소풍을 간다.
가족과 소풍을 가는 건 미옥의 오랜 소망이었다. 풀밭에 앉아 먹고 마시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미옥은 봄가을로 가는 학교 소풍 이외에는 가본 일이 없다. 동대문시장에서 단추장사를 했던 미옥의 부모는 가족끼리 소풍이나 여행 가는 것을 번거롭고 귀찮아했다. 워낙에 밤낮이 바뀐 일이기도 했고 모처럼 쉬는 날이면 밀린 잠을 자기 바빴다. 장사를 접은 뒤엔 새로 시작한 일이 틀어지며 부모의 사이도 함께 틀어졌고 소풍을 갈 여유가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종종 계곡이나 바다에서 피서를 하고 가까운 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미옥과 주호 둘 다 가깝게 어울리는 친구가 없다. 또한 남에게 심지어 일가친척들에게조차 곁을 주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성향이 비슷했기에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거나 규칙이 깨진 일은 없다. 심하게 다툰 다음날도 미옥은 일어나서 김밥을 말았고 주호는 군말 없이 공원으로 가서 그녀가 펼쳐놓은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미옥이 아이들과 엎드려 색종이를 오리거나 색칠놀이를 하거나 하는 옆에서 그는 새우처럼 등을 오그리고 낮잠을 오래 잤다.
네 식구가 둘러앉은 돗자리 안에 있을 때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어서라도 화를 속으로 삼키고 싸움을 멈췄다. 그곳은 마치 성역과도 같아서 그 네모난 자리 안에서 그들은 무조건 행복하고 평화로워야 한다.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폭탄 테러나 전쟁이 일어나 수천 명이 피를 흘려도 미옥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다만 네모난 돗자리 안에서 제 식구의 작은 행복과 평화만 지켜내면 되는 것이다.
미옥은 모르는 여자 둘과 소란스러운 스타벅스에 마주 앉아 흰 면 보자기에 십자수를 놓는 꿈을 꾸었다. 탁자 가득 색색의 실과 도안이 그려진 종이와 천으로 어질러져 있다. 한 여자는 노란 주전자를, 또 다른 여자는 빨간 채송화를 미옥은 파란 나비를 수놓았다. 그들은 서로를 부드럽게 바라본다거나 편하게 웃거나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그 자리가 불편했고 고개를 숙이고 집중해서 작은 나비를 수놓느라 목이 뻣뻣하고 눈도 침침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계속 비비며 이 꿈에서 깨어나면 안경을 새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날개는 계속 비대칭이었다. 실을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여전했다. 파란 색실로 날개를 채워 넣다 멈추고 들여다보면 오른쪽 날개가 더 크거나 왼쪽 날개가 비뚤어진 모양이었다. 저게 나비야, 잠자리야? 아니, 벌이잖아. 여자 둘은 저희들끼리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는 꿈속에서도 그녀를 얼어붙게 했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옥은 자꾸만 초조해지고 허둥댔다. 앞에 앉은 여자 둘이 미옥이 수놓은 비뚤어진 나비를 흘낏 본 것도 같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 바늘은 자꾸만 수를 놓을 자리를 잃었다. 쩔쩔매며 펼쳐진 오른쪽 날개를 완성한 다음, 왼쪽 날개는 미처 채우지 못하고 계속 엉뚱한 데 바늘을 꽂다가 미옥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알람을 껐고 신음하듯 바늘이 어디 있지 바늘이 어디 있지 하고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이불을 더듬었다. 잃어버린 바늘은 그녀나 주호의 발바닥을 뚫은 뒤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심장에 가서 박힐 것이다. 미옥의 심장이 찌르는 듯 따끔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차갑고 섬뜩한 금속이 그녀의 몸 안을 다 긁고 지나다니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그러다가 이내 바늘을 놓친 것은 꿈속에서였음을 깨달았다. 서먹한 여자들과 한참 자수를 하다 잠에서 깬 그녀는 피곤하고 울적하다. 눈알도 아프고 욱신거렸다. 미옥은 편두통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시계를 다시 보았다. 그녀가 일어나려고 맞춰놓은 8시다.
등을 돌리고 누운 주호는 여전히 낮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소풍 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녀는 주호의 잠을 깨우지 않게 이불을 살살 들춰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속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느라 일어나자마자 심란했던 마음을 애써 추스른다.
첫 딸인 연아가 돌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주 아팠는데, 밤에 자다가 번쩍 눈이 떠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 옆에 누워 있던 연아를 보면 속에 있는 걸 게워내려고 가슴에서는 꿀렁거리는 소리가 나고 벌린 입 안에 토사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면 미옥은 아이를 일으켜 옆에 있는 이불이든 수건이든 급하면 자신의 손바닥이라도 받쳐 게워낸 것을 받아냈다.
또 다른 어떤 밤, 벌떡 일어나서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이마가 뜨거웠다. 서랍을 쏟아 찾아낸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껴보면 40도 가깝게 열이 오른 상태였다. 접힌 부분은 불덩어리인데, 손과 발끝은 죽은 듯 파르스름했다. 오한으로 떠는 아이를 벗기고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아이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닦아내며 그녀는 밤을 꼬박 샜다.
미옥은 그런 순간에 눈을 뜨는 자신이 놀라웠다. 만약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면 어찌했을까. 게운 것이 제 콧구멍으로 도로 들어가 기도를 막거나 고열에 정신을 잃고 어린 것 혼자 앓다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미옥이 어릴 때다. 새벽에 그녀는 잠이 깼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고 깨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또 고요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뜬 미옥은 창가에 비친 나뭇잎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방 바로 앞에는 모과나무가 있었고, 달빛이 차가운 밤이면 창문에 나뭇잎 그림이 그려지곤 했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잎사귀가 약간 옆으로 쓸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아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와 모과나무 잎사귀뿐인 것 같은 적막한 시간. 무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던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감은 눈두덩 앞에 모과나무 잎사귀 그림자가 자꾸만 흔들렸다.
그때 마루에 있는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다섯 번 울렸을 때 어머니가 뛰쳐나와 전화를 받았다. 불 켜진 마루로 나온 미옥에게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지금 막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말기 암 투병 중이었다. 병원에 있는 건 더는 무의미한 일이었고 순천 집으로 돌아가 죽을 날을 기다리던 때였다. 오래 누워 앓던 할머니가 미옥의 꿈속으로 다니러 왔고 마당을 싸리비로 싹싹 쓸었다. 썩는 냄새를 풍기며 누웠던 할머니가 일어난 것이 신기해서 할머니의 하는 양을 툇마루에 누워 오래 구경했다. 멀찍이서 규칙적으로 들리다 어느 결엔가 귓불에 닿는 할머니의 비질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었다.
부엌으로 나온 미옥은 밥솥에 쌀부터 안쳤다.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만들 거라 불린 쌀을 조금 넉넉하게 넣는다. 어제 저녁 미리 다듬어놓은 시금치를 데치기 위해 물도 끓이기 시작했다. 번거롭기는 해도 집에서 만든 김밥이 맛이 좋아서 미옥은 가족들에게 사먹자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녀가 몇 시간쯤 수고를 하면 그들은 모두 입맛에 맞고 질 좋은 재료로 만든 신선한 밥을 먹을 수 있다. 일요일 아침이면 미옥은 혼자 주방에서 찌고 볶고 버무려서 4인분의 도시락을 쌌다. 식성이 제각각인 가족들의 입맛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가끔은 유부초밥이나 주먹밥이나 불고기를 볶아 쌈밥을 싸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김밥을 준비한다. 소풍에 김밥이 빠지면 허전하니까. 어린 시절, 봄가을로 가는 학교 소풍 때도 어머니는 김밥은 싸주었으니까. 부엌 옆에 있는 그녀의 방에서 이른 새벽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와 참기름 냄새에 잠이 깨곤 했으니까.
번거롭게 뭐 하러 집에서 만드느냐며 분식집에서 김밥을 한 줄 사서 싸 보내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미옥은 연아와 수아의 어린이집 도시락도 무조건 직접 만들었다. 일요일이면 가족 모두 소풍을 가는 것이 그녀의 규칙이었듯 가족들이 먹는 밥은 직접 만드는 것 또한 그녀 스스로가 정한 규칙이다. 아이들이 닭튀김을 먹고 싶어 하면 차라리 생닭을 사다 직접 토막 내고 뼈를 발라 튀겨주었다.
미옥은 냉장고와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앞을 빠르게 오가며 김밥재료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그러다 미처 챙기지 못한 소풍 준비물이 떠오르면 그것을 찾아 서랍과 베란다를 뒤지고 다닌다. 미옥은 채 썬 당근을 볶다말고 냉장고 앞으로 달려간다. 어젯밤 끓여서 얼린 보리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금 꺼내놓지 않으면,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 여전히 얼어있어서 낭패를 볼 수 있다.
한번은 현관을 나서기 전에야 냉동실에 넣어둔 물이 생각났고, 너무 단단하게 얼어 소풍에서 물을 충분히 마실 수가 없었다. 주호는 그냥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먹으면 된다며 시무룩한 그녀를 달랬지만, 미옥의 기분은 내내 좋지 않았다. 그날 소풍은 그녀에게 완벽하지 않았다. 날씨도 완벽했고 도시락도 완벽했으며 아이 둘은 모두 콧물을 흘리지도 배앓이도 하지 않고 활발했지만 물 때문에 그날의 소풍은 망쳤다고 미옥은 기억한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끓여서 식힌 안전한 물을 마시게 하고 싶다. 이 또한 그녀가 스스로 정한 약속이다. 어느 날 전염병에 걸린 돼지들을 산 채로 땅에 파묻는 것을 뉴스에서 본 이후 그녀는 마트에서 생수를 살 수 없었다. 그녀가 자주 사먹던 생수의 수원지 근처였다. 그 이후 생수병만 보면 욕지기가 절로 났다. 지금까지 마신 물이 모두 돼지핏물만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다 게워내고 싶은 지경이었다.
식탁 위에 길게 자르고 다듬은 김밥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졌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한 김 식힌 다음 참기름과 소금을 넣고 밑간을 했다. 9시가 좀 지난 시간, 바쁘게 종종거리며 준비를 하던 미옥은 잠깐 한숨을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이제 둘둘 말아서 차곡차곡 담기만 하면 된다. 완벽해. 그녀는 혼잣말을 하며 긴 숨을 내뱉는다. 그러는 사이 지난 꿈으로 인한 울적함과 피곤은 한결 나아졌다. 그녀의 꿈 건너편에서 수를 놓던 여자들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그때 작은방에서 나온 수아가 반쯤 감은 눈을 비비며 미옥 옆을 지나친다.
왜 벌써 일어났어, 좀 더 자도 되는데.
오줌 마려.
수아가 욕실 문을 열고 오줌 누는 소리를 들으며 미옥은 펼친 김 위에 밥알을 꾹꾹 눌러 폈다. 제 방으로 도로 들어가는 수아가 지나가며 길게 썬 햄을 하나 집어 들고 우물거렸다.
나는 치즈김밥 먹을 거야.
그럼, 당연하지. 수아 김밥엔 치즈, 언니 김밥엔 참치.
아빠는 그냥김밥.
수아는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며 햄 하나를 더 집었다.
나 더 잘래.
수아가 들어가고 미옥은 김밥을 만든다. 치즈를 넣은 김밥 두 줄, 참치를 넣은 김밥 두 줄, 그리고 남편과 제 몫의 김밥 세 줄. 넉넉한 도시락 통에 김밥이 가득 채워졌다. 언 물을 도시락 통 옆에 세워 넣었다. 주호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와 자두와 토마토도 썰어 통 안에 담았다.
도시락을 다 싼 미옥은 싱크대 맨 아래 서랍에서 화장품이 든 작은 플라스틱 상자와 손거울을 꺼냈다. 식탁 앞에 앉아 버석거리고 생기 없는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두드리고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다.
거울 안에 새치가 하얗게 올라온 여자가 있다. 마흔이 지나며 미옥의 머리는 빠르게 새치가 생기고 있다. 자신의 흰머리는 개의치 않는다. 굳이 염색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의 지적에 마음이 편한 건 결코 아니다. 아휴, 머리가 그게 뭐야, 할머니같이. 염색 좀 해. 이렇게 타박한 여자가 있었다. 미옥이 자주 가던 생선가게 여자였는데, 다시는 그 집에서 생선을 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여자의 말이 퍼뜩 떠오르면 분노에 파르르 떨며 가게에 불이나 나서 홀랑 태워먹으라고 욕을 한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흐트러진 김밥 꽁지를 입에 털어 넣으며 시계를 보니 10시다. 어서 가족들을 깨워야 한다.
연아와 수아는 여전히 자고 있다. 내년이면 연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지금은 둘이 함께 방을 쓰지만 이제 따로 써야한다. 창고로 쓰고 있는 빈방을 새로 꾸며서 연아 공부방을 할 예정이다. 미옥은 연아의 침대에 걸터앉아, 침대 두 개, 작은 책상과 책꽂이로 꽉 찬 방안을 둘러본다. 이따 돌아오는 길에 가구점에 들러 새로 살 책상을 함께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옥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연아의 따뜻한 등을 끌어안는다. 수아의 이불 속으로도 들어가서 말캉한 볼에 입술을 가만히 대어본다. 아이의 입술에 기름이 살짝 묻어있고 숨결에 구운 햄 냄새가 난다. 미옥은 손가락으로 입을 닦으며 다시 한 번 일어나라고 속삭인다. 방에서 나오기 전,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잠이 깼는지를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안방에 들어가 주호의 어깨를 흔든다. 일어나. 준비 다 됐어.
그들은 일요일이면 언제나 소풍을 간다. 차를 타고 멀리 가는 일도 드물게 있지만, 주호는 가방을 들고 돗자리를 둘러매고 걸어서 간다. 갑자기 비를 만나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장우산 두 개도 꼭 챙겨간다. 볕이 쨍쨍하고 비 올 확률이 전혀 없는 날씨에도 우산을 들고 간다. 마른 바람이 부는 날, 느닷없이 비구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미옥은 주호와 연아, 수아와 우산 두 개를 나눠 쓰고 가만히 기다리면 어느덧 비는 그쳤다.
연아와 수아가 어렸을 땐 유모차를 끌고 갔고 이제는 저희들 먹을 과자나 색연필이 든 가벼운 가방 정도는 등에 매고 그들은 소풍을 간다. 저희들끼리 재잘거리며 앞서 걷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옥은 가슴이 벅찼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들던 아이들이 커서 저만치 앞서갈 때마다 그녀는 전율한다.
아이들이 자다가 죽지는 않을까 길 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애면글면하던 시절도 있었다. 돌연사한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녀는 그 같은 불행이 자신에게도 닥치지나 않을까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면 자다가도 아이 옆으로 기어가 코에 얼굴을 디밀고 숨을 쉬나 확인했다. 옷을 헤집어 가슴에 귀를 대고 팔딱팔딱 뛰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분명히 느낀 후에야 불행이 제 집을 비껴 옆집으로 찾아간 것을 고마워했다.
지금껏 살면서 그녀에게 아주 커다란 불행이 닥친 일은 없다. 굳이 들자면 청소년기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정도일까. 사실 그 일도 지나고 나니 그다지 불행은 아니다. 그건 부모 간의 문제였으며 잠깐 창피했고 불편이 있었을 뿐,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미옥은 죽지 않았다.
연이어 두 아이를 뱃속에서 잃은 그것이 불행인가? 간절했던 임신이었는데 두 번 다 10주를 못 채우고 계류 유산됐다. 그렇지만 마침내 예쁜 두 딸을 얻었고 잘 자라고 있으니 그것도 불행은 아니다. 이유 없이 숨이 멎거나 느닷없이 사라지는 아이도 있는 세상이었으니까. 가슴을 졸이던 시간들은 그녀의 등 뒤로 잘도 흘러갔으니까. 그녀에게 불행한 일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행복한 거 아닌가. 주호야, 나는 연아랑 수아가 너무 사랑스러워. 너도 그렇지? 미옥은 우산과 돗자리와 김밥이 든 부직포가방을 들고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주호에게 언제나 똑같이 묻는다. 미옥은 그에게서 그들의 다행한 삶을 확인받고 싶다. 그가 자신의 말에 그렇다고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그 또한 안녕하다고 대답해주기를 원한다.
대학교 삼 년 후배이기도 한 남편을 부를 때 미옥은 이름을 부른다. 가끔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해서 언짢은 기분일 땐 야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무람없이 이름을 불러대는 그녀를 시부모는 마땅찮아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일 년에 한두 차례 보는 정도로 왕래가 없다. 시부모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음부터 미옥을 싫어했다. 연상이라고 키가 작다고 옥니라서 고집이 셀 거라고 결손가정에서 자라 얼굴에 그늘이 있다고 자꾸만 반대하는 이유를 댔다. 그러는 시부모가 싫기는 미옥도 마찬가지여서 걸어서 십 분 거리인 본가엔 가지 않는다. 간혹 길을 가다 시어머니와 비슷한 짧은 파마머리만 봐도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는 주호가 평일 저녁 혼자 다녀오거나 아이들을 한 번씩 데리고 가는 정도이다.
주호야, 나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더는 바라는 것이 없을 정도야. 너도 그렇지?
뭐라는 대꾸도 없이 주호는 그녀 옆에서 그저 걷는다. 그는 키가 크다. 그녀는 키가 작다. 연애할 때, 주호는 자주 미옥의 정수리에 자신의 턱을 괴고 뒤에서 목을 끌어안곤 했다. 뾰족한 턱으로 그녀의 머리를 콕콕 찧을 때마다 미옥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녀를 더 웃게 하려고 그는 자꾸만 머리를 찧으며 장난쳤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미옥은 지금도 정수리가 간질간질했고 귓가에 자신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그의 키는 결혼 후에도 3cm쯤 더 컸고, 그녀는 5cm나 줄었다. 미옥은 갸웃하다가 아마도 두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출산을 겪으며 뼈가 쪼그라들었나보다 했다. 미옥은 주호를 올려다본다. 커다란 돗자리에 가려 옆에서 걷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난다. 게다가 걸을 때마다 돗자리가 미옥을 자꾸 툭툭 건드려서 신경이 쓰인다.
주호야, 돗자리 저쪽으로 들어. 자꾸 내 머리에 부딪히잖아. 그리고 네가 보이지 않아.
주호는 순순히 미옥의 말대로 반대쪽 어깨로 돗자리를 바꿔 맨다.
이제야 네 얼굴이 잘 보이네.
그는 여전히 말은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주호는 결혼 후에 키는 크고 말은 줄었다. 키가 점점 줄어드는 미옥은 자꾸만 말이 많아졌다. 미옥은 사는 게 별거냐, 날씨 좋은 오늘 같은 날,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것이 행복 아니겠냐고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저 애들이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고 건강하고 똑똑하게 커가는 걸 함께 보는 게 행복 아니겠냐고도 말을 한다.
무난한 순간들이 지난 후, 모든 불행들을 잘도 비껴간 후, 연아와 수아가 결혼을 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과 다 같이 소풍을 가는 상상을 하면 미옥은 괜히 즐거워진다. 그러면 아주 크고 넓은 돗자리를 사야할 것이다. 더 많은 김밥을 말고 닭을 튀겨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미옥은 아주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때도 그녀는 알람을 6시에 맞추면 늦어도 5시 59분엔 눈을 번쩍 뜰 것이다.
들의 집에서 아이들에게 맞춰 느린 걸음으로 30분쯤 가면 큰 강이 있다. 신혼집을 구하러 다닐 때 그녀는 강과 공원과 호수가 가까운 이곳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본가가 한 동네라는 것이 걸렸지만, 그래도 집에서 걸어가면 커다란 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우선 좋았다. 넓게 트인 강가에는 제법 키가 큰 나무들도 있고 풀밭도 있어 소풍 장소로는 그만이다.
그들은 돗자리를 깔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적당히 그늘이 있고 적당히 바람이 불고 적당히 따스한 햇살이 무릎을 간질이는 곳. 흐르는 강물을 마냥 바라볼 수 있는 곳. 튀어나온 돌 때문에 누웠을 때 등이 배기지 않는 곳.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하게 흙과 풀이 적당히 있는 곳. 사람들에게서 적당히 먼 곳. 찾았다. 오늘도 미옥이 먼저 딱 맞는 자리를 찾는다.
주호야, 우리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먹자.
미옥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만든 도시락을 자랑스럽게 펼친다. 반쯤 녹은 얼음덩어리가 안에서 굴러다니는 보리차와 함께 그들은 김밥을 먹기 시작한다.
수아야, 참치 든 김밥 하나 먹어보지 않을래?
미옥은 입이 짧은 수아에게 참치 김밥을 하나 내밀었다. 그렇지만 수아는 참치 맛없어 라고 말하고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수아는 바보래요. 참치도 못 먹는 바보래요.
연아가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자 수아는 울상이 되었다.
언니 미워.
연아야, 동생 놀리면 못 써.
미옥은 울먹이며 무릎에 파고든 수아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토라지고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곧 풀어져서 김밥 한 줄을 먹고 돗자리에서 가까운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미옥은 아이들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다가 멀어질 때마다 연아야, 수아야 소리쳐 불렀다. 뛰다가 자다가 놀다가 지치면 그때 남은 김밥은 마저 다 먹을 것이다.
연아는 오늘밤 일기장에 `우리 가족은 함께 강으로 소풍을 갔어요. 엄마가 싸준 맛있는 김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나와 동생은 공놀이를 하고 낮잠도 잤어요.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요.' 이렇게 연필로 또박또박 쓸 것이다. 다음 일요일에도 소풍을 갈 거라고 쓸 것이다. 그러면 미옥은 마지막 문장을 지우개로 지워주고 `함께'라는 단어가 빠졌으니 다시 고쳐 쓰라고 상냥하게 가르쳐줄 것이다. 처음 한글을 가르칠 때, `ㅁ'과 `ㅂ'을 구분 못하고 `ㄹ' 쓰는 순서를 헷갈려하는 연아를 윽박지르고 학습지를 쫙쫙 다 찢어버리고 필통 속의 연필을 모조리 부러뜨려버린 일이 간혹 있었지만 미옥은 이제 그러지 않는다. 연아는 이제 한글을 아주 잘 읽고 잘 쓴다.
주호는 김밥 한 줄을 다 먹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왜 맛이 없어?
미옥이 그에게 물었다. 주호는 고개를 젓는다.
뭐야, 내가 애써서 만든 건데 고작 그걸 먹고 남겨? 어서 다 먹어.
주호는 말없이 차가운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다 먹으라니까.
그러나 보리차를 다 마신 그는 젖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자리에 드러눕는다. 하긴 입이 까끌까끌할 것이다.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셔.
미옥이 그어놓은 이 네모난 선 안에서 누구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어제 주호는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돌아왔다. 미옥은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발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현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마침내 첫 계단을 딛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 새벽 2시쯤이었을 거다. 부축하려는 미옥을 뿌리치며 그는 지겹다고 했던가, 아니면 징그럽다고 했던가. 발음이 분명치 않은 말을 몇 마디 내뱉은 주호는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말은 쌀쌀맞게 내뱉었지만, 미옥은 계란국이라도 만들어서 뜨끈하게 보온병에 담아올 걸 하고 후회한다. 그랬다면 김밥 두 줄쯤이야 너끈하게 먹었을 텐데.
미옥은 하늘을 보며 돗자리에 반듯하게 눕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들어온다. 따뜻하고 밝고 반짝이는 것. 그건 마치 행복의 모양 같다. 그러다 눈이 부셔서 눈을 감으면 잠이 들고 꿈을 꾼다. 짧은 낮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곁엔 언제나 연아와 수아가 있고 주호는 반쯤 몸을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이 먹먹하게 시간이 흐른다. 자신이 만든 밥을 배부르게 먹고 하늘 아래 누워있는 가족들을 미옥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를 더 원했지만, 그녀의 골반과 자궁 상태로 더 이상의 임신은 위험하다고 의사는 경고했다.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더라면 그만큼 더 채워지고 더 행복했을 텐데 미옥은 그 빈자리가 아쉽다.
그들의 누운 몸 위에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의 조각들이 어룽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져가는 전철소리와 배드민턴을 치며 웃는 여자와 웃는 남자와 웃는 어린 아이들의 소리를 몽롱한 채로 듣는다. 여자의 웃음이 너무 새되고 높아 마치 비명 소리 같다. 우는 듯 웃는 여자라니 참으로 이상하다고 미옥은 생각한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거슬리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루함이 미옥은 좋다. 앞으로도 자신의 날들은 이렇게 지겹고 무료하게 흘러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잠든 주호의 어깨를 슬쩍 건드린다. 그가 눈을 뜨고 왜? 하는 표정을 짓는다. 잠을 많이 못 잔 얼굴이다. 눈동자엔 가늘게 실핏줄이 터졌다.
있지, 주호야.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 더는 바라는 것이 없어. 나는 너하고 연아, 수아만 있으면 돼. 그걸로 충분해. 너도 그렇지?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9월이지만 그늘은 서늘하다. 주호는 추운지 왼손으로 오른쪽 팔을 쓸었다. 아이들 몫의 작은 담요 두 장만 챙겨 와서 그에게 덮어줄 것이 마땅찮다.
다음 주엔 담요를 한 장 더 챙겨와야겠어. 그렇지?
주호는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미옥은 그의 등 너머 잔물결이 일렁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날이 점점 추워지겠지? 그러면 아무래도 강으로 소풍 오기는 어려울 거야. 그렇지?
미옥은 강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다. 어느 날엔가 이 말을 하고 싶어 현관 앞에 앉아 주호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잊어버렸던 말.
앗, 너에게 하려던 말 지금 생각났다. 있지, 주호야. 글램핑 어떨까? 텐트 안에 난로도 있대. 따뜻해서 좋을 거 같아, 그렇지? 거기선 고기도 구워먹을 수 있고 감자도 구워먹을 수 있대. 재미있을 거야, 그렇지?
텔레비전에서 글램핑에 대한 기사를 보며 미옥은 눈이 와도 소풍을 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마땅한 몇 군데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포스트잇에 적었다. 주호가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이제 겨울에도 소풍을 갈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 현관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마침내 집밖으로 나가 계단 앞을 서성였지만 그날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냉장고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은 어느 순간 떨어져 나갔고 할 말도 잊어버렸다.
주호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하긴 어제 늦게 들어와서 군말 없이 소풍을 따라와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기껏 만든 김밥을 절반 넘게 남겼어도 그녀가 묻는 말에 뭐라 대꾸조차 없어도 주호를 용서하기로 한다. 어쨌든 그는 푹 자고 일어난 후엔 남은 김밥을 싹 먹어치울 것이다.
연아와 수아의 낮잠이 깊고 길었다. 어떤 꿈을 꾸고 있기에 이리 평화로운 얼굴일까. 아마도 모르는 여자를 따라 걷는 꿈은 아닌 모양이다. 아마도 버튼이 망가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솟구치는 꿈은 아닌 모양이다. 굳게 감긴 연아의 속눈썹을 살살 건드리자 얼굴을 찌푸리며 끙 소리를 낸다. 미옥은 담요를 덮은 몸을 손으로 쓸며 더 자 더 자 라고 속삭인다. 절대 모르는 사람의 손은 잡지 말거라. 엄마, 아빠와 함께 소풍을 가는 행복한 꿈을 꾸어라. 그녀는 수아의 옆에 누워 등을 토닥거리며 하늘을 본다.
나는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것이 참 좋더라.
나뭇잎 사이로 내리꽂히는 빛을 헤아리다가 그녀 역시 다시 잠이 든다. 배가 부르니 자꾸만 잠이 온다. 간절히 움켜쥐고 싶은 무료하고 따분하고 지루한 순간들이 지나간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른다. 눈을 떠보니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조각들이 여전했고 왔다가 멀어져가는 전철 소리도 여전했고, 날카롭게 웃는 여자와 남자와 어린 아이들의 소리도 여전했다. 그러니 미옥이 잠을 잔 건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다. 그 잠깐 동안 미옥은 또 꿈을 꾸었고, 재빠르게 지금으로 돌아와 눈을 번쩍 뜬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지금. 와글거리는 소리도 물비린내도 바람을 따라 차르르 밀려갔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뭇잎들도 그대로인 지금. 여전히 수아 등에 손을 얹은 채 눈을 떴을 때 강물을 바라보며 앉은 주호의 옆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낯설고 삭막한 얼굴이다. 어쩐지 꿈속에서 보았던 모르는 남자와 비슷하다고 미옥은 생각한다. 그녀는 누워서 정물처럼 앉은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들을 보면서는 그래도 웃어주던 그였지만 지금은 표정이 전혀 없다.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건지, 서글픈 건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저 얼굴의 옆선에 설레던 순간도 있었는데. 아침이면 수염이 자라 까끌거리는 턱을 깨물고 핥던 때도 있었는데. 한 침대를 썼을 뿐 그들은 오래 전부터 손을 잡지도 입을 맞추지도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며 누나, 라고 귓가에 속삭여주지 않는다. 이제 주호는 미옥에게 다정하지 않다. 이제 그녀는 그의 등을 보며 잠이 든다.
그의 마음이 멀어졌고 그래서 그녀는 손목을 그었고 피 칠을 한 채 욕실에 널브러져 기어이 그의 발목을 잡던 그건 꿈이었나. 야, 야, 야. 어느 날 주호에게 그악스럽게 소리를 질러대다 깨어나면 꿈일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잠든 그의 가슴 위로 올라타서 목을 졸라대며 야, 야, 야 악을 쓰던 때도 있었는데. 그건 꿈속의 꿈이었나.
설레고 흥분되던 순간들은 아쉬움이 전혀 없다. 하도 악을 써서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던 순간들보다 지금 이렇게 일요일마다 소풍을 다니는 이 지루한 날들이 미옥은 더 좋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으니까. 소풍을 못 가면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어쨌든 돗자리를 들고 우산을 들고 강으로 나오니까. 그녀가 만든 김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니까. 오늘도 그랬고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그랬으니까. 다음 주 일요일이면 담요 한 장을 더 챙겨서 오늘과 똑같은 소풍을 하러 또다시 강가로 나올 거니까. 이제 그들은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소풍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행복한 거 아닌가.
그동안 우두커니 앉아있던 주호가 부스스 일어난다. 그는 일어나며 미옥과 아이들이 누워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미옥은 그가 화장실을 가려나보다 생각한다. 그들이 돗자리를 깐 장소는 편의점과 전철역과 놀이터와 화장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따금 자전거를 탄 사람들만 빠르게 스쳐가는 곳이다. 돗자리에 누워있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던지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곳이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배드민턴공 따위는 날아오지 않는 곳이다.
주호는 화장실 쪽이 아닌 강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녀는 누워서 돌아보지 않는 그를 본다. 비탈진 계단을 내려가면 상류까지 쭉 이어진 산책길이 있고 바위들이 있다. 그는 거침없이 바위로 내려간다. 더 아래쪽 바위를 딛는다. 그리고 바위에 앉아 오른발 하나를 강물 속에 넣는다. 그리고 나머지 발도 그렇게 한다. 묵은 물때가 낀 바위는 미끄덩거려서 잠깐 그의 몸이 휘청거린다. 그녀는 누워서 흔들리는 그를 본다. 물속에 섰을 땐 그의 가슴께까지 물이 온다. 그가 젖는다. 그녀는 누워서 젖는 그를 본다. 강물은 깊고 빠르게 흘렀고 며칠 동안 내린 비로 흙탕물이다. 탁한 물에서 첨벙 소리가 들린다. 두 걸음쯤 나아갔을까. 미옥의 눈앞에서 그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많은 날 미옥이 바라보며 잠들었던 등이 잠긴다. 한때 그녀가 헝클어뜨리며 장난치던 까맣고 숱 많은 머리카락이 잠긴다. 그녀는 그를 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허망하게 펼쳐진 풍경 속에서 무언가 하늘을 날고 무언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한다. 그리고 무언가 둥둥 떠서 하류로 흐른다.
여자의 날선 웃음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배드민턴을 다 치고 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주위는 물속처럼 먹먹하다. 얼핏 강 맞은편에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주호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다. 키가 아주 큰 남자 같기도 하다가 돌연 아주 작은 여자처럼 보인다. 미옥은 지금 자신이 여전히 꿈의 저쪽에 있는지 이쪽에 있는지 아득하다. 어쩌면 나른하고 기이한 꿈을 여전히 꾸는 중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하나, 둘, 셋. 눈을 부릅뜨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세기 시작한다. 보이는 무언가 몇 개인지 숫자를 세어보는 건 꿈속으로 어서 달아나거나 또는 꿈밖으로 서둘러 뛰쳐나오고 싶을 때 하는 그녀의 버릇이다. 넷, 다섯, 여섯, 일곱. 자꾸만 눈앞에서 생겼다가 사라져가는 어지러운 빛의 조각들 또는 행복의 모양들을 집요하게 헤아려보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아마 서른아홉 번쯤 세다가 잠이 들었을 거라고 나중에 미옥은 떠올린다.
<당선소감>
"주신 채찍 기꺼이 받아 어떤 이야기 쓸까 고민하는 사람 될 것"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가다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 방으로 되돌아와 조금 울었습니다. 내 이야기가 조금 멀리 여행을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큰 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온 몸에 가시가 돋은 채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때, 글쓰기는 나의 숨구멍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 속에서 나는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속이 후련해지는 거예요. 혼자였으면 그 길을 한참 돌아갔을 거예요. 어쩌면 그 길 가운데 멈춰 여전히 주저앉아 있었겠죠. 울고 있는 내게 소설을 쓰라고 등 떠밀어준 당신들 고마워요. 그 말이 나에게는 울지 말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격려해준 임승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함께 글쓰기 하는 문학 친구들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오정희 선생님, 이외수 선생님과 강원일보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 채찍 기꺼이 받아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심사평>
"밀도 높은 문장·절제된 감정표현 돋보여 … 치열한 문학수업 증표"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은 `고시원 토스트' `장미아파트' `마더피스' `여름의 일' `돼지들' `망월로 보내는 편지' `소풍' 등 총 7편이었다. 각기 세태를 반영하는 듯 암울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고시원 풍경, 규격화된 의식의 틀에 갇힌 여성의 내면 등 다채로운 소재와 주제의식으로 읽는 일이 즐거웠다. 그중 최종적으로 논의된 것은 `고시원 토스트'와 `소풍' 두편이었다. `소풍' 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중산층 여성의 점점 고조돼 가는 불안이 절망으로, 조용한 광기로,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찬찬히 서술하면서 성찰과 물음이 없는, 이미지에 갇힌 삶의 공소함을 현실과 환상, 꿈을 적절히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보여준다. 그 절망과 비극의 일상성을 서술하는 밀도높은 문장과 절제된 감정표현도 치열한 문학수업을 거친 증표라는 신뢰를 주기에 `소풍'을 당선작으로 기꺼이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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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 오정희,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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