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영혼의 음각(陰刻) / 윤덕남

 

차디찬 육체를 알코올로 닦을 때마다 나는 기억 속의 얼굴과 목과 가슴과 손, 기억 속의 귀와 다리와 발가락을 닦는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서늘해지는 알코올의 성질과 더불어 기억은 성에꽃처럼 점점 퍼져나간다. 유리창에 꽉 찬 성에꽃처럼 더 이상 번질 기억이 없을 때 나는 비로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싸늘하게 식어버린 육체를 닦았다. 침묵으로 시작하여 침묵으로 끝나는 단순명료한 일 같지만 망자의 몸은 산처럼 봉우리가 있고 깊은 골짜기가 있으며 무언의 메아리가 내 기억의 창에 달라붙어 얼음꽃이 된다.

()은 유리창에 낀 그 차디찬 성에를 닦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차디찬 죽음의 꽃을 사라지게 한 뒤에야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투명한 유리 같은 주검이 된다.

내가 본 주검 중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주검은 본 적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주검 때문에 나는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없었다. 아무리 독한 술을 마시고 기억 속에서 떨쳐 버리려고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지독한 성에꽃이 핀 유리창이라고 하여도 깨어지지 않는 것과 같았다. 나는 성에꽃으로 뒤덮인 주검을 닦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1980518, 나는 광주에 있었다. 초상집에서 염을 하는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상을 당한 집은 광주 변두리라 아스팔트보다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었고 집들도 단층들로 이층집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 경치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도시에서 몰려온 개발에 휩쓸릴 곳이었다. 아버지와 상주는 친분이 있었다.

정오부터 시작된 염은 오후 3시쯤이 되어서야 끝났다. 아버지가 염을 할 때는 침묵만이 흐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망자의 육체를 알코올을 적신 솜으로 닦을 때마다 내가 들었던 소리는 조각칼로 조각하는 듯한 소리였다.

군에 있을 때 나는 중대 행정반에서 근무를 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훈련 때마다 상황판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중대장은 상황판을 만들면서 지휘봉도 함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중대장은 곧 전역을 앞두고 있었기에 특별한 기념품이 필요했다.

상황판 제작은 3일 만에 끝났지만 지휘봉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지휘봉 손잡이에 중대장의 한자 성명과 대대 마크인 호랑이 형상이 들어갔다. 나는 단단한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부터 조각칼을 사용했다. 조각칼이 나무를 깎아내는 소리는 참으로 묘했다. 마치 인간이라는 벌레가 나무를 갉아내는 소리 같았다. 사포질을 하고 니스를 바를 때까지 나는 기다란 봉의 곳곳을 깎고 갉아냈다. 사각사각, 사과를 먹는 소리 같으면서도 습습, 모래를 파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버지가 염을 할 때마다 나는 소리는 조각하는 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망자의 시신을 다 닦은 후 하얀 한지로 감쌀 때나 버석거리는 수의를 입힐 때 나는 소리도 있었지만 시신을 닦아내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조각칼로 조각하는 소리를 빼닮았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나에게 직접 해 보라고 했는데 그때 내가 만든 소리는 아버지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으로 그저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은 마치 유리창에 낀 성에꽃을 닦아내는 것과 같았다.

아버지는 늦은 오후부터 상주가 따라 주는 술을 마셨다. 상주와 아버지는 친구는 아니었다. 아버지와 상주의 여동생은 함께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염사(殮師)라는 사실 때문에 혼인이 성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상주는 아버지에게 평생 갚아야 할 빚을 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상주는 친모가 사망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아버지라고 했다. 상주의 여동생은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상주와 아버지는 술로 만난 사이였기에 술로 회포를 풀었다. 상주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상주가 따라 주는 술을 아버지가 전부 마시는 모양새였다.

나는 상주와 아버지가 이상하게 보였다. 여동생과 혼인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왜 저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상주는 아버지에게 큰 은혜를 진 것처럼 행했다.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술에 취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상가에서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밤이 되었지만 문상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처럼 문상객이 적은 곳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만 간간이 찾아와 곡하는 상주와 절을 하고 망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리를 뜰 기색이 없었다. 음식보다는 술을 마셔댔다. 내 짐작대로 아버지는 술을 이겨내지 못했다. 상주는 건넌방에 아버지를 눕혔다. 횡설수설하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방에 들어가 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듯한 새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었다.

방바닥은 차츰 따뜻해졌고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시간 속으로 흘러갔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처럼 취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답답한 심정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몇 사람만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부엌에서는 부뚜막에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아낙네들이 보였다.

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자 첨벙하는 소리가 거무스름한 우물 속에서 올라왔다. 두레박을 끌어올리자 모처럼 시원한 우물물을 마실 수 있었다. 두레박에 남은 물을 세숫대야에 부어 세수를 했다. 상가의 풍경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였다. 대문에 달린 조등이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여인 두 명이 나를 지켜보면서 서로 수화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자매처럼 보이는 두 여인은 쌍둥이 같았다. 나를 바라보면서 수화를 하는 모습은 진지했다. 한 여인은 조금 과장된 손놀림으로 수화를 했고 다른 여인은 수화보다는 나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두 여인을 바라보다가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자정쯤 되었을까. 천장에 달린 백열전구가 잠시 깜박거리는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방문을 열었더니 수화하던 두 여인 중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서른은 넘은 듯 보이는 여자는 곱상한 얼굴이었고 흰 상복은 잘 어울렸다.

여자는 상주인 아버지께서 뵙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찾는 줄 알았지만 상주는 나를 찾고 있었다. 마당에는 남자 두 명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5월이라서 그런지 밤공기는 조금 서늘했다.

상주는 시신이 안치된 방에 있지 않았다. 두건을 쓴 상주는 여자들이 생활하던 방에 앉아 있었다. 상주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한 여자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두 여인 중에서 한 사람이 분명했지만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똑같았다. 여자는 다소곳이 문가에 앉았다.

스무 해 동안 이날을 기다려왔네.”

아버지는 상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농아(聾啞)인 어머니와 결혼식을 했다. 그런데 농아였던 어머니는 한 달도 지내지 못하고 상주에게 돌아왔다. 농아인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고 아이가 태어나자 상주는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보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꼭 말해주고 싶었네.”

상주는 내 옆에 앉아있는 여자가 나의 어머니라고 했다. 흰 상복을 입은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자네 아버지에게 꼭 자네와 함께 오라고 했네.”

상주는 술을 따라 주었고 나는 아버지처럼 술잔을 비우고 비웠다. 상주는 아무런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불 꺼진 방을 바라보다 나는 노랗게 물든 조등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는 몇 대의 버스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첫차가 출발하는 시각은 오전 6시였다. 나는 기다란 의자에 앉아있다 드러누웠다.

눈을 감자 모든 것들이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억이라는 것이 술에 물들면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자정이 넘은 새벽까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늙은 자의 손가락들을 닦던 알코올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멀어졌다. 흰 상복을 입은 두 여인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떠올랐다. 나의 몸은 의자로부터 어느 정도 떠오른 상태였다.

몽롱한 술기운은 아니었다. 취하고 싶은데 취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술이라도 마셔야 모든 것들이 잊힐 것 같았다. 스무 해라는 시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술밖에 없었다. 희미한 전등 하나만이 켜 있는 버스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새벽공기는 서늘했다. 벌레소리도 유난히 잘 들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를 쫓아다니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염사는 홀로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의 시신과 인연을 맺은 손으로 남에게 술을 따라줄 수는 없었다. 염사는 조용히 왔다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도 함께 술을 마실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 크지 않은 대합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승차표를 파는 곳과 매점이 한곳에 있었고 승객들이 앉는 의자는 서너 개가 전부였다. 버스들이 주차한 곳과 가까운 곳에 놓여 있는 긴 의자들은 나무로 만들어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담뱃불로 지져 검게 변한 곳도 있었다.

나는 선잠을 잤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어느 순간 깨어났다. 관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정신은 맑았다.

스무 해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내가 물어볼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라는 이름조차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머니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 술을 마셨고 나는 빈집에서 홀로 흑백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었다. 아버지는 욕하거나 때리지는 않았다. 다만 어머니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기피했다.

나는 6월 초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어릴 때 놀다 크게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슴을 갈랐던 수술자국이 물고기 가시처럼 새겨졌다. 아버지도 군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사고로 가슴을 갈랐다. 그리고 군인병원에서 죽은 병사의 시신을 보았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발자국소리에 나는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약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 손으로 나무의자를 잡아보았더니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어둠은 옅어진 것이 분명했다. 실루엣 같은 집들이 보이고 밥 짓는 연기가 검게 물든 굴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아버지였다. 그리고 아버지 뒤를 따라오는 한 여자가 있었다. 아버지와 여자는 손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후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내가 아버지의 가방을 잡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뒤에 있는 여자의 가방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가방을 낚아챘다. 여자는 상복을 입고 있던 두 여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상복이 아닌 봄옷차림이었다. 굽이 있는 구두도 신고 있었다. 가방은 제법 묵직했다.

아버지는 내가 누웠던 의자 옆에 가방을 놓아둔 후 의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자는 아버지가 앉은 의자 옆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여자에게 앉으라고 하자 여자가 앉았다. 아버지는 일회용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누구도 말을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침묵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옅은 어둠에 물든 얼굴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얼굴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합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밝혔다. 첫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두 명의 여학생과 보따리를 머리에 인 세 명의 아줌마들 그리고 회사 마크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남자와 버스 운전사로 보이는 남자. 모두들 광주 시내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세 명의 표를 끊었다. 버스 운전사로 보이는 남자는 표 파는 남자에게서 음료수를 샀다. 버스 운전사가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하나둘 버스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중간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아버지가 앉은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여학생들도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 운전사는 라디오를 틀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남자가수의 음악이었다.

버스는 천천히 정류장을 벗어나 마을 진입로까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달리다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이차선 도로인 아스팔트길에 들어선 버스는 속도를 높였다. 차창으로 바라본 풍경은 평온하게 다가오는 푸르른 산과 논밭이었다. 다른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여자에게 시선을 보내다 차창 밖으로 돌렸다. 아버지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여자의 머리는 몹시 검었고 귀걸이는 보일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왜소한 몸집은 아니었다. 두 여학생은 다가오는 석가탄신일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방에는 알코올과 솜을 비롯해 망자의 몸을 감싸는 한지 그리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수건들, , 손톱 깎기, 면도기가 들어 있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모든 것들을 사용한 후 상가에서 준비한 수의를 망자에게 입히고 망자의 관절을 바르게 편 후 단단히 묶어 관에 눕히는 것이 아버지와 나의 일이었다.

여자가 가져온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여자의 가방에는 여자가 살아갈 날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망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역겨워하는 나에게 한지를 둘둘 말아 주었다.

광주 시내로 들어선 버스는 아침을 맞이하는 회색 건물들을 보았다.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행인들은 가로수 사이에서 드러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그러나 광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차선 도로와 목적지인 고속버스터미널에 가까워지자 이상한 모습의 행인들이 거리에 있었다. 일종의 군인들 같았는데 등에는 총을 둘러메고 머리에는 방탄모를 쓰고 손에는 곤봉을 들고 있었다. 군인들은 어딘가로 신속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우리는 가까운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여수까지 내려가는 고속버스는 오전 9시에 있었다. 아버지와 여자는 콩나물국밥을 시켰고 나는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아버지가 국밥집 아줌마에게 웬 군인들이냐고 묻자 제법 뚱뚱한 아줌마는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다면서 대학교 쪽으로 몰려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데모 진압을 하는 군인들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것은 모르겠다며 말문을 닫았다.

오전 7시 뉴스를 국밥집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자막과 함께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방의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린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국회를 폐쇄하고 국보위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나는 전방에서나 볼 수 있는 군인들이 거리를 행보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군인들도 보통 군인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여자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썼다. 그러자 아버지는 여자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썼다. 수화를 모르는 아버지가 여자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손바닥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우리는 뜨거운 국밥을 호호 불어가며 천천히 먹었다. 나는 국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에게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군인들이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일어나면서 한편으로는 전방이 아닌 광주까지 군인들이 내려와 있는 것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여자가 국밥을 떠먹는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아버지와 나는 여자 앞에서도 왕성한 식욕을 감추지 않았다. 간밤 내내 서늘한 새벽 공기로 뱃살을 지지던 몸이라 뜨거운 해장국은 고양이 앞의 생선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남은 공기밥을 나의 국밥에 밀어 넣었다. 나는 미안하면서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은빛 스테인리스 컵에 시원한 물을 담아 아버지와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무언의 고마움을 전했다. 아버지는 밥 한 공기를 더 주문하여 나와 나누어 먹었다. 머리가 희고 꼽슬꼽슬한 아줌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을 더 주었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곱고 차분한 인상에 나 자신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국밥을 떠먹으면서 왜 여자는 아버지를 따라 왔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자 순식간에 식욕이 사라졌다.

여자는 꽃이나 책을 좋아할 것 같았고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아버지와 나와는 모든 것이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그런데 왜 여자는 아버지를 따라 왔을까?

식사를 다 마친 우리는 버스터미널 대합실로 향했다. 버스를 타려고 모인 승객들은 분주해 보였다. 막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타는 승객도 있었다. 매표원 아가씨는 뚝뚝 끊어지는 분필처럼 목적지, 출발시간 그리고 요금을 뚝뚝 내뱉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돌아와 보니 여자가 뜨거운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커피자판기에서 뽑아낸 커피는 뜨겁고 달짝지근했다. 아버지는 뜨거운 커피를 살살 달래며 마셨다.

오전 8시 반쯤 되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합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들어왔고 곧바로 곤봉을 든 군인들이 들어왔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쫓던 자들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 손에 든 곤봉을 휘둘렀다. 검게 물든 곤봉은 쫓던 자들을 무자비하면서도 무참히 내리쳤다.

방탄모를 쓰고 등에 총을 둘러 맨 군인들은 차창으로 보았던 군인들이었다. 쓰러진 자들에게 곤봉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옆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그만 때리세요, 왜 그러세요, 하는 말을 내뱉었지만 군인들의 손에 쥔 곤봉은 쉬지 않았다.

누군가 이게 뭐하는 겁니까, 하고 내뱉자 군인은 그 사람에게도 곤봉을 내리쳤다. 곤봉을 맞은 자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자 대합실 안이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합실 안으로 한 무리의 다른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는데 총부리에는 대검이 착검되어 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겁에 질린 메뚜기들처럼 이곳저곳으로 날뛰었다. 군인들은 이미 명령에 완전히 감염된 자들처럼 신속하면서도 단호하게 행동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토록 쉽게 오는 것인지 몰랐다.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대검에 찔린 사람들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분명한 이유도 알 수 없었고 군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합실 바닥을 삽시간에 피로 물들였다. 군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과 명령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은 맞아 쓰러졌고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매표소 유리창을 깨트리고 버스를 출발하지 못하게 막아선 후 버스에 탄 승객들을 전부 내리게 했다. 그리고 몇몇은 주민등록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참히 곤봉으로 내리친 후 끌고 갔다.

군인들은 신속하게 젊은이들을 포승줄로 묶어 어디론가 끌고 갔으며 대합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자의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대합실 바닥에는 죽은 자가 쓸고 지나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버지와 나는 무참히 내리치는 곤봉에 대합실 바닥에 엎드러졌다. 나의 시선은 평평한 바닥을 따라 이어졌고 여자가 한 군인을 붙잡고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저항과 더불어 본능적인 분노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군인은 개머리판으로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고 총부리에 달린 대검으로 정확히 여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극도로 상승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뇌까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자의 손이 내 손을 잡으려고 꿈틀거리는 순간에도 나는 끝없이 떨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내 오른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내 오른손 바닥에 여자는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글자를 썼다.

ㅇ ㅏ ㄷ ㅡ ㄹ…….’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여자의 손가락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내 손바닥에 쓴 그 자음과 모음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나는 굳어버린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차디찬 대합실 바닥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여자의 작은 손을 꽉 붙잡았다. 나는 여자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머리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여자는 대합실 바닥에 엎드려져 있었고 여자의 옆구리에는 붉은 피가 흥건하게 번져 있었다.

대합실 바닥에 쓰러진 자들은 스무 명 정도였으며 오십여 명의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대합실 입구를 지나 거리에 박힌 보드블록을 밟으며 시민들은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군인들은 발걸음이 느리거나 주춤거리는 자들에게는 거침없이 곤봉을 휘둘렀다. 안경이 깨어지고 눈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청년도 있었다. 어깨에 짊어졌던 가방이나 배낭에서 쏟아져 나온 사소한 물건들이 길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도로로 뛰어들어 건너편 인도로 도망치는 젊은이의 머리를 무참히 곤봉으로 내리치는 군인도 보였다. 길바닥에 엎드려진 사람들이 몸 이곳저곳을 수색당하는 모습도 있었다. 길바닥에 엎드려진 자들의 눈은 마치 허상을 바라보다 시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바지가 벗겨진 자의 허벅지에서는 대검에 찔린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자의 가방 속에서

갓난아이가 입는 배냇저고리를 발견했다.

배냇저고리 한쪽에는 아들이라고

까만 실로 수놓은 글자가 보였다.

내 머릿속에서는 어머니라는 글자로 읽혀졌다.

갑자기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의 손에는 곤봉보다 긴 막대기와 빗자루를 비롯해 위협의 도구와 무기로 변한 것들을 들고 있었다. 수백 명의 시민들은 군인들을 때려죽일 것처럼 보였다.

십여 명의 군인들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곤봉과 대검으로는 진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듯 연행해 가던 사람들을 놓아두고 도망쳤다. 군인들은 군인들이 집결해 있는 곳을 찾아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버지는 피가 뒤엉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기 있으라고 말한 뒤 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자의 손가락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버스터미널 대합실에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시키려고 몰려든 시민들이 있었다. 숨이 끊어지지 않고 미세하게 살아있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었다. 내 손바닥에 글자를 썼던 여자의 손도 완전히 피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나는 여자를 등에 업고 시민들을 따라 대합실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리쳤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외쳤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챈 듯 나를 바라보며 걸어왔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그리고 울먹거렸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병원이었다. 병원은 4층짜리에 불과했지만 부상자와 시민들로 가득했다. 의사는 부부였다. 부부의 두 손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부는 죽어가는 태아를 살리기 위해 고분고투 하는 것처럼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간호사들은 두 명뿐이었지만 시민들 중에서 젊은 처녀들이 간호사를 열심히 도왔다.

출산을 주로 하던 공간이 수술실로 쓰였고 산모들이 갓난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던 공간이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시신들은 서늘한 지하실 공간에 가지런히 놓이게 되었는데 주로 약품과 침구류 들이 쌓여 있던 창고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차디찬 지하실 바닥에 눕혀진 시신들은 병원침대 시트에 온몸이 덮여졌다. 아버지와 나는 다른 시신들 사이에 여자를 눕혀 놓았다. 이마와 가까운 머리카락은 피로 뒤엉켜 있었고 원피스에 피어 있는 꽃들은 대부분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귀에 차고 있던 한쪽 귀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자의 맨발부터 머리까지 시트로 덮었다. 시신들은 대부분 대검에 찔린 자들로 시트는 곳곳이 피로 물들었다.

아버지, 염을 해 드립시다. 얼굴도 닦아드리고 손과 발도 닦아드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병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골목을 달려 도로로 나갔다. 도로는 텅 빈 도로나 다름없었다. 나는 버스터미널로 힘껏 달렸다. 머리에 개머리판을 맞은 것처럼 고통의 충격이 일어났고 옆구리는 대검에 찔린 것처럼 고통의 깊이가 느껴졌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내쉬면서 달리고 달렸다. 눈을 감은 여자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버스터미널 입구를 통해 대합실로 들어가 보니 참혹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피 냄새는 더욱더 독해졌다. 나는 아버지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여자의 가방이 보였다. 나는 두 손에 아버지와 여자의 가방을 들고 달렸다.

도로로 나오자 도로 한쪽에서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수십 명의 시민들이 보드블록을 깨트린 조각을 던지면서 후퇴하고 있었다. 최루탄 연기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그 뿌연 연기 속에서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곤봉을 들고 아귀들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아버지는 귀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일주일 정도 귀가 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죽은 것 같았다. 아버지의 귀가 열렸던 순간은 아버지가 죽은 병사의 창백한 몸을 보았을 때였다.

군인병원은 수많은 반원통형 막사와 다름없었고 종종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두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이동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너무 급한 용무가 있었다. 한 반원통형 막사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다른 곳보다 춥고 음산했다. 한 수술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시신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두렵거나 떨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얀 천을 들추어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감이 아버지를 이끌었다. 하얀 천을 천천히 들추어 보았을 때 그곳에는 아버지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나신이 있었다. 너무도 창백하고 아름다운 나신이었다. 시신은 죽은 것 같지 않았다고 잠을 자는 것 같았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여자도 죽은 것 같지 않았다. 잠이 든 것 같았다. 머리카락에 뒤엉킨 피를 닦아내자 솜은 빨갛게 물들었다. 아버지는 여자의 몸에서 원피스를 벗겨 한지로 덮었다. 여자의 나신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내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자의 나신이었다.

아버지는 여자의 얼굴과 목 그리고 어깨를 알코올을 묻힌 솜으로 닦았다. 그리고 손과 손목과 가슴과 배, 다리와 발을 닦았다. 아버지가 여자의 몸을 닦을 때 나 자신도 아버지의 손길을 따라 여자의 몸을 닦고 있었다.

아버지가 시신을 조심스럽게 닦을 때마다 조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나신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몹시 슬펐다. 솜들은 빨간 꽃들처럼 하나둘 쌓였다. 종이로 여자의 온몸을 감싸자 여자는 너무도 작아졌다. 아버지는 하얀 시트로 온몸을 다시금 감싸고 시트를 찢어 온몸을 묶었다. 아버지와 나는 다른 시신들도 여자처럼 그렇게 했다. 종이가 부족한 시신은 시트로 온몸을 덮고 묶었다. 지하실은 알코올 냄새로 가득 찼다.

모든 일들을 끝냈을 때 시계는 새벽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치고 피곤하여 부상자들 사이에 끼어 잠이 들었다. 나는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을 때에야 여자의 가방이 생각났다. 나는 여자의 가방을 쉽게 열 수 없었다. 그것은 여자의 시신에 덮여 있는 엷은 종이를 들추어내는 것과 같았다. 나는 한참동안 여자의 가방을 바라보았다. 내 눈은 피곤하고 내 손은 몹시 지쳐 있었다. 부상자들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누구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여자의 가방 속에서 갓난아이가 입는 배냇저고리를 발견했다. 배냇저고리 한쪽에는 아들이라고 까만 실로 수놓은 글자가 보였다. 나는 그 까만 글자들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아들이라는 글자가 어머니라는 글자로 읽혀졌다. <>




  <당선소감>


   "죽음 속 아름다움 좇아 영혼에 닿는 소설 쓸 것"

죽음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죽은 자를 입관하는 그 엄숙한 시간에 주검을 둘러싼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너무도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어느 날 홀연히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깊은 고독감에 빠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미결된 역사라고 본다. 그 아름다워야 할 5월마다 찾아오는 그 슬픈 역사는 어쩌면 인간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들이 있다. 매주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면서 보게 되는 그 작은 무덤들의 묘비에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들이 간결한 문체로 새겨져 있다.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 외국인들의 주검을 염하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염을 하면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을까? 차디찬 주검에서 피어오르는 그리 향기롭지 않은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손에 닿은 것은 보이지 않는 영혼이었을 것이다.

부족한 소설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혼에 닿는 소설을 써나갈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나의 전부이고 나의 남은 삶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1969년 충남 장항 출생.

  ●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고통받은 영혼에 바치는 진혼곡… 깊은 울림 느껴"


이토록 책이 안 팔리고 읽지도 않는 세태이지만 글쓰기라는 근원적인 행위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해마다 넘치는 신춘문예응모를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올해에는 13편의 단편들이 예심을 거쳐 올라왔다.

그중 뇌과학과 관련된 단편 나는 나다브레이노이드’ 2편은 자기정체성을 묻기에 문학적 소재로서 충분했지만 작품으로서의 아우라가 부족했다. ‘해동은 아버지에 의해 냉동고에 갇혀 벌을 섰던 정육점집 아이의 절규, 그 트라우마가 곳곳에 묻혀있지만 서술이 넘쳐 흐름을 방해했다.

언니의 그림자로서 존재감 없이 살아온 상처의 청춘에 대한 관찰기 진주는 여운이 길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보이는 걸 보고 읽히는 걸 읽는 많은 작품들에 회의를 느껴온내러이터 우연은 그녀의 노트에서 어딘가 텅 비었다고 해야 하지만 그대신 뭔가 보이지 않은 것들이 그안에 채워져 있는글을 읽고 완성을 격려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 담긴 단편 진주는 나무랄 데 없는 일품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을 영혼의 음각으로 결정한 것은 이 작품이 고통받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 강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