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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스태추마임 / 송영인

 

바닷물이 밀려 나간 자리에 갯벌이 드러난다. 섬 위로 유채 물감을 바른 것 같은 구름이 떠 있다. 태양에서 발산된 빛이 구름과 부딪쳐 여러 가지 색으로 퍼져간다. 그가 좋아했던 그림의 하늘과 비슷하다.

그가 죽고 난 후 부패를 막기 위해 페녹시에탄올을 그의 몸 전체에, 특히 구멍이 있는 곳에 들이부었다. 카드뮴과 코발트 성분으로 된 광택제를 이마의 주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덧칠했다.

바다 쪽에서 따뜻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새벽에 이곳에 도착해서 그에게 다가갔을 때 엷은 시취가 났다. 가지고 온 향수를 뿌린다. 콧구멍과 눈에서 진물이 흘러내린다. 두껍게 칠한 도료 덕분에 외형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시반이 생긴 부분을 알코올로 닦고 유성물감으로 다시 도포한다. 엷게 물을 뿌린다. 하지만 날씨가 더 풀리면 물도 더는 얼지 않을 것이고 여기에 그대로 둔다면 부패는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찰흙이나 고무로 만든 조형물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사고가 일어나고 일 년쯤 지난 후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로 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우리 가족의 사연을 보고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그는 신문기사에 전화번호가 적힌 동물병원 간판이 나와 있었다고 말했지만, 아내가 스크랩한 신문기사 어디에도 그런 사진은 없었다. 아마 동물병원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테고 내게 연락하기 전에 우리 집과 동물병원을 배회하며 나와 아내의 행동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는 당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서로 아픔을 공유하면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겠냐고, 자기를 한 번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전화해 말했다. 처음에는 그를 찾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러 번 통화하는 동안 그의 슬픔에 조금씩 공감이 갔고 나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하곤 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했다.

아내는 울다가 손등을 긁다가 가슴을 쳐대곤 했다.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만이라도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람이나 쐬러 오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스태추마임을 하고 있었다. 투버튼 슈트와 끝이 좁은 넥타이는 단정했고 얼굴부터 구두까지 온통 진갈색 도료로 칠한 상태였다. 슈트의 끝자락은 허리에서 조금 뜬 채로 빳빳했고 바지의 주름은 과장되게 결이 지어져 있었다.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치켜뜬 퀭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륙 쪽에서 어스름이 검은 가루처럼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건너편 민속주점을 가리켰다. 들어선 술집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동양화 한 점이 걸려있었다. 그림 왼쪽에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싸리로 만든 울타리가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얀 수염의 노인이 마루에 앉아서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는 그림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오 분 정도 지나자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이 열렸다.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라는 그림을 알고 있소?”

만난 이후 말을 하지 않아 잘못 찾아왔나 하고 긴장했는데 전화기 너머로 자주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빨간 등대 너머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노을을 바라보았을 때, 그 그림이 떠올랐다오. 여러 층의 구름이 여러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 멀리까지 손을 뻗어 잡을 수만 있다면 그대로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이 질감이 느껴지는 구름이었소. 세 그루의 나무들과는 다르게 왼쪽에서 두 번째 나무는 잎이 거의 다 떨어져 마치 말라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오. 내가 꼭 그림의 두 번째 나무같이 느껴졌다오. 풀썩 주저앉아 하늘만 쳐다보았지. 영원 같은 시간이었소.”

그는 소주를 한 잔 마시더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초점을 잃은 눈이 천장 너머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바다 멀리서 갯벌로 물이 밀려오고 있었소. 왠지 내 가슴 속에도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지. 순간, 미지의 것에는 절반의 가능성을 남겨둬야 한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올랐소. 그러다 하늘을 보았지. 태양에 눈이 부시더군. 사금파리가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소. 시내로 나가 무작정 거리를 돌아다녔지. 석고가루와 붓, 픽스 스프레이를 사서 이 거리로 돌아왔소. 그게 마임의 시작이었지.”

진하게 바른 분장 때문인지, 그의 입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손님들이 많아짐에 따라 소란스러워졌고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에 파묻혔다. 나는 혼자 술을 따라 연거푸 마셨다.

눈을 떴을 때, 페인트 냄새가 났다. 작은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와서 얼굴에 박혔다. 창문 맞은편에 입구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그 끝에 쇠문이 있는 거로 보아 지하인 것 같았다. 바닥에는 페인트 자국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말라 있었다.

부축해서 오느라 힘들었다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여기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어. 모텔 같은 데 데리고 갔으면 쫓겨나고 말았을 거요.”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난 나가봐야 하니 더 쉬다 나오시오. 가져갈 것도 없으니 문은 그냥 닫아만 놓고 나오면 되오.”

그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숙취로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남의 집에 혼자 누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어나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누워있는 소파 표면에 여러 가지 색깔의 크고 작은 점들이 질서 없이 떨어져 있었다. 소파와 마주 본 벽에는 금이 간 대형 거울이 달려 있었다. 뒷모습을 분장하는데 사용하는 것인 듯했다. 거울 앞 탁자에는 동그란 작은 거울과 유성물감 튜브와 안료, 도료, 붓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갔다. 그는 어제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조형 공원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둘러 떠나야 한다. 만약 내가 체포된다면 어떤 죄목을 갖다 붙일까. 몸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보존했으니 사체손괴죄는 아닐 것이다. 사체은닉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조형공원에 전시했으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사체오욕죄? 나는 그의 뜻에 따른 것뿐이니까 그것도 아니다. 어떤 죄를 나에게 부과한다고 해도 나는 그를 지킬 수밖에 없다. 그의 몸을 덧칠하면 할수록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그의 마지막 작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게다가 그의 넋이 내게 들러붙었는지 과거에 그가 한 말을 자꾸 되뇌었다. 분명한 것은 그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옮긴단 말인가. 바다가 있는 남쪽, 동상들이 있는 조형 공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적이 없는 곳이어야 했다. 앞으로 날씨가 점점 따뜻해질 것이고 아무런 장치 없이 전시한다면 썩어갈 것이 틀림없다. 박제로 만들 자신도 없다. 냉동고에 넣고 겨울에 다시 꺼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가 냉동고에 갇혀있는 동안 그의 딸이 돌아온다면, 그는 죽어서도 나를 원망할 것이다. 작업을 끝내고 일어나자 몸이 휘청대고 눈앞이 깜깜하다.

식욕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를 옮기려면 뭐라도 조금 먹어둬야 할 것 같다. 어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를 지켜볼 수 있게 맞은편 식당 이 층으로 올라간다.

화가 양반들은 그러꼬롬 일주일에 함씩 색칠을 한당가. 난 함 해볼모 내비 두는지 알았당께.”

올라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식당 주인이 말한다. 매번 두 시간 정도를 작업했으니 보지 않았을 리 없지만, 막상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더 조급해진다. 밥을 한술 뜨자 가슴이 답답하다. 명치끝에 걸린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창문 밖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창문 너머로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순찰차 한 대가 다가와서 그 앞에 멈춘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 한 명이 그를 살펴보더니 순찰차 안에 있는 사복 차림의 경찰을 부른다. 사복이 뭐라고 지시하자 제복이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사복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식당 주인이 그쪽으로 가더니 내가 있는 이 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도망쳐야 하는 걸까. 내가 저들을 제지한다고 그를 지킬 수 있을까. 안주머니에 있는 그의 유서를 만지작거리다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간다.

이건 제 작품이란 말입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건 부검을 해보면 알 일이고 서로 함께 갑시다.”

사복이 내게 수갑을 채운다. 식당 주인이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배로 밀고 분홍 바가지에 담긴 소금을 뿌린다. 허공에 흩뿌려진 가루들이 햇빛에 부딪혀 반짝거린다.

오늘 장사는 다 해번네. 해필이면 우리 식당 앞에다 시체를 갖다 놓았는가.”

식당 주인이 바가지를 내게 던진다. 제복이 여자를 가로막는다. 여자가 악다구니를 쓴다. 제복이 강제로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는다.

내 작품은 건드리지 마시오.”

고함을 치며 발버둥 쳤지만, 경찰 둘의 힘에는 역부족이다.

아내가 집기를 던질 때면 그를 찾아갔다. 달리 갈 곳도 없었거니와 바다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졌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는 주위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했다. 언젠가 그가 나를 작업실로 데리고 가서 스태추마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지 않고 서 있어본 적이 있소? 다섯 시간을 달리는 것보다 다섯 시간을 움직이지 않는 게 더 힘들지. 정수리부터 힘을 빼야 하오. 그리고 머리카락, 이마를 지나 마지막으로 발가락까지.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해서 힘을 빼다 보면 움직이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된다오. 사람들이 나를 사물로 인식할 때까지 그렇게 힘을 빼고 있다오. 그렇게 해야 오래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는 틈날 때마다 분장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도료의 배합과 색을 고정하는 스프레이 사용법, 광택제에 관해 설명하고 직접 해보라고 했다. ‘자넨 정말 소질이 있군.’, ‘이젠 마무리 작업은 맡겨도 되겠소. 나보다 나은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다 계획된 행동과 칭찬이었다. 그래도 그땐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내 처지를 조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딸이 네 살이 되던 해에 집을 나간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그는 공공기관이나 사설재단이 의뢰한 포스터를 그리거나 개인 교습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딸은 그가 길에서 잠들었다가 경찰 등에 업혀 들어오고 나서부터 잔소리를 해댔다.

아빠, 나도 내후년이면 고삼이란 말이야. 좀 일찍 일찍 들어와. 아빠가 안 들어오면 불안해서 공부가 안된단 말이야. 저번처럼 길바닥에서 잠들까 봐.”

그는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 핑계를 다 댄다고 말했지만, 그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동료 화가가 Y섬에서 벽화 그리는 공동 작업을 제안했을 때 딸이 마음에 걸렸다. 마을 전체를 그리는 것이어서 일 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동료가 말했다. 포스터 그리는 것에 신물이 나던 시기였다. 지자체에서 나오는 보수도 괜찮았다. 그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다고 딸에게 말했다.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시간 날 때마다 올라올게.”

아니, 당연히 같이 가야지. 아빠, 혼자 매일 술만 마시려고? 아빨 어떻게 믿어?”

학교 가려면 배를 타고 P시까지 나가야 하는걸. 그 섬에는 고등학교가 없대.”

배 타는 시간에도 공부하면 돼. 여기서도 학교 다니려면 버스 타고 삼십 분인데 뭐. 예술가 아빠를 둔 딸이 그 정도 고생은 해줘야지.”

그는 그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사고가 있던 날 딸이 그에게 전화했다.

아빠, 배 탔어. 저녁에 뭐 먹을까? 청양고추 썰어 넣은 콩나물국 해줄 거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술 마시지 말고 오늘은 나보다 일찍 들어가 있어. 기다려, 꼭 기다리고 있어.”

밀물이 밀려올 때면 눈을 더 크게 떠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떠돌다 시신이 돌아오길 바랐다. 벌써 형체가 없어졌을 게 분명했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인지도 몰랐다.

콜럼버스의 배가 바다에 나타났을 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배는 보지 못했다오. 배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술사가 배를 먼저 보았고 주술사가 그것을 알려주었을 때에야 다른 인디언들도 배를 볼 수 있었소. 시야가 허용하는 한, 뼈 한 조각이라도 돌아온다면 나는 한눈에 딸을 알아볼 자신이 있어. 온 정신과 세포들이 모두 거기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한 보상인양 그는 내게 많은 말들을 내뱉었다.

그가 동물병원에 찾아온 것은 석 달 전이었다. 그날 새벽 나는 동네 주차장에 세워진 덤프트럭 바퀴에 낀 몰티즈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개는 진흙을 뒤집어쓴 채 낑낑거렸다. 내일 아침 트럭이 움직이면 몰티즈는 머리가 으깨어져 죽을 것이다. 운 좋게 트럭을 피한다 하더라도 병이 깊어져 죽을 게 뻔했다. 올가미를 들고 다가갔다.

아들은 수학여행을 가서 십 층 콘도에서 뛰어내렸다. 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검시관이 말했을 때 아내는 믿을 수 없다면서 하얀 천을 들췄다. 오른쪽 머리가 함몰되고 왼쪽은 부서져 있었다. 뇌수가 흘러내려 따로 유리병에 담아뒀다고 검시관은 말했다. 턱 주위의 살들이 떨어져 나가 허연 뼈와 이가 드러났고 살이 남아있는 부분은 검게 탈색되어 있었다. 통통하고 여드름이 많던 아들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닐 거야, 아니라고! 아내는 고함을 치면서 바닥으로 무너졌다. 나는 흉측하게 변해버린 아들의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었다.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다 죽여 버리겠어. 그 말만 입속에서 맴돌았다. 아들을 화장하고 나서 며칠 뒤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개를 보았다. 피를 얼마 흘리지 않은 거로 보아 즉사한 것 같았다.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이후 잠이 들면 부서지고 함몰된 아들의 얼굴과 두개골이 깨져 축 늘어져 죽어있던 개의 모습이 번갈아 나타났다.

동물병원에 몰티즈를 데리고 와서 덕지덕지 붙은 진흙과 껌 같은 것들을 떼어냈다. 오래된 오물들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샴푸에 열중하느라 그가 병원에 들어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분장을 지운 모습이 낯설었다.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유성물감 때문에 햇빛을 받지 않아서인지 표백제에 담갔다 꺼내놓은 것처럼 얼굴이 하얗다. 화학약품의 부작용으로 군데군데 검버섯과 종기가 나 있었다. 이른 새벽에 불쑥 찾아온 것이 께름칙했다. 내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그는 천천히 병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뭔가 단서를 찾으려는 형사처럼 구석구석을 살폈다. 주변 정리도 할 겸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동안 이 동네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를 관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암이라더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몰티즈에 시선을 두고 말을 이었다.

정상적인 세포가 나빠지고 나빠지다가 어느 순간 암세포로 바뀌는 지점이 있지 않겠소. 그 임계점에 닿기까지 여러 가지 징후가 있었을 거요. 황달이 낀다든가,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안 풀린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 그 사고도 어쩌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소. 느닷없이 닥친 게 아니라 수많은 원인과 징후가 있었을 거라는. 저번에 말했던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 말이오. 네 그루의 나무는 같은 종류라오. 어쩌면 같은 날 심어졌는지도 모르지. 유독 왼쪽에서 두 번째, 그 나무만 잎이 거의 떨어졌다오. 이유야 모르지. 잎을 빨리 지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 있었겠지. 확실한 것은 언젠가 나머지 세 그루의 나무들도 잎이 모두 진다는 사실이오. 토양과 물이 오염되면 더 빨리 그렇게 되겠지. 조만간 부탁 하나 할 거요. 부디 들어주시오.”

무슨 부탁입니까?”

말기라더군요. 간암 말기.”

그가 돌아가고 난 뒤 몰티즈를 죽였다. 작고 마른 놈이라 정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개가 편안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나면 아들의 깨진 머리와 개의 부서진 안면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작업이 끝났지만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아빠, 나 수학여행 가기 싫어.’ 아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쩌렁대고 울렸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 아들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은 평생 기억에 남는 법이란다.’ 내가 점잖게 말했을 때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들이 죽고 나서 아내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그때 한 방에 있었던 아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마치 아들을 따돌리고 괴롭혔던 놈들이 유죄 판결이라도 받으면 아들이 살아올 것처럼. 자료조사를 하느라 며칠 밤을 새워도 아내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났다. 우리가 선임했던 변호사는 청소년 사건의 경우 목격자들이 적극적으로 진술을 해주지 않아 유죄판결을 받기가 쉽지가 않다고, 아들의 성기를 담뱃불로 지지고 십 층 테라스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주범에게 삼 년의 실형을 받게 한 것은 드문 성과라고 했다. 판결이 난 뒤 아내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잠을 좀처럼 이루지 못했고 잠이 든다 해도 비명을 지르며 금방 깨곤 했다. 아들을 부르는 소리, 누군가에게 비난을 퍼붓는 소리, ‘심장에 시멘트를 발라놓은 것 같아.’ ‘점점 굳어가 심장을 옥죄고 있어.’ 아내는 그런 소리를 늘어놓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밑에서 피가 흘렀다. 뜯어 먹을 손톱이 남아 있지 않자 예리하게 깎은 연필로 손등을 후벼 팠다. 연필심에는 독이 있잖아. 그 독이 심장까지 도달했으면 좋겠어. 답답해, 답답해. 아내가 발코니 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십오 층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함몰된 얼굴, 흘러내리는 뇌수, 부러진 팔다리가 눈앞에 그려졌다. 그럴 때마다 아내 앞에 놓인 그 많은 시간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부탁이 있다는 말에 작업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얼굴의 살은 늘어져 있었고 광대뼈의 윤곽이 도드라져 기괴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는 죽어서도 딸을 기다릴 수 있게 자기를 박제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딸아이가 말했단 말이오. 기다려, 기다리라고. 나중에 딸아이가 돌아왔을 때, 내가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소.”

그는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으며 간청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개를 죽이는 건 괜찮고 나를 죽이는 건 왜 안 되오?”

역시 그는 처음부터 이런 부탁을 하려고 나에게 연락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죽입니까. 전 개들을 안락사시킨 것뿐입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개들만 죽였단 말입니다. 몸뚱이라도 온전히 보존해서 묻어주려고.”

내가 그렇지 않소. 병들고 고통받는.”

저는 수의사입니다. 수의사는 동물들의 고통을 줄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나도 알아봤소. 수의사라도 유기견을 그렇게 죽이는 건 불법이라는 거.”

신고라도 하시려고요. 하시려면 하세요.”

그는 미쳤다. 어쩌면 나도 미쳤는지도 모른다. 개들을 죽이고 편안하게 잘 보냈다고 자족하는 것이 정상은 아닐 것이다. 한순간에 일상이 깨어져 버린 사람들은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도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손을 뿌리치고 작업실 문을 열었을 때 그가 나를 세차게 끌어당겼다.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뿌리쳤다.

며칠 뒤, 문자메시지가 왔다. 자기를 죽여 달라는 부탁은 안 할 테니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는 내용이었다. 차를 몰아 그의 작업실로 갔다. 그는 자세를 고정하기 위해 목 받침과 팔걸이를 판자로 덧붙인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죽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목의 동맥에 손을 얹었다.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맥박이 뛰지 않았다. 그는 얼굴의 주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게 분장을 하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힘을 주어서인지 얇은 살갗에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힘을 빼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을 주었을 것이다.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무릎 위에는 유서가 담긴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박제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기술했고 유서를 보여주면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자기 몸에 마지막으로 광택제를 바르면서 비로소 딸이 말한 예술가가 된 것 같다고, 나에게 자기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배를 가를 수가 없었다. 그의 피는 굳어가고 있었고 수술 장비가 있는 동물병원은 너무 멀었다. 만약 모든 도구들이 준비되었다면 나는 그를 박제로 만들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작업실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 임시적인 방부처리를 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지금 내 앞에는 무한대의 시간이 고여 있다. 인간이 자기를 죽이는 이유는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창살 너머의 아내는 나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손등을 긁는다. 딱지가 앉기도 전에 피가 나도록 또 긁어대는 모습이 보기 싫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내의 반복된 행동에 지쳐갈 무렵, 일을 마치고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내는 홀린 것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베란다 쪽으로 달려갔다.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뛰어내리려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내를 부둥켜안고 끌어내렸다. 왜 그랬을까. 저렇게 사느니 죽어버리지, 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내가 나를 돌아보았을 때 그 눈빛은 이미 산자의 것이 아니었다. 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깊은 우물을 보는 것처럼 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에게는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다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가장 부러웠던 게 뭔지 아시오? 시신을 찾고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었소. 바다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한참 지난 뒤, 나도 지쳐가고 있었지요. 기다리는 게 얼마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소. ()이 없어진 백()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었소. 잠깐잠깐 잠든 사이 딸아이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소. 무의식에서는 혼까지 불러들이고 있었던 셈이지. 내가 죽기 전까지 이런 생각들이 반복될 것임이 틀림없소.’ 그의 몸을 덧칠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가 했던 말들이 유령처럼 떠돈다.

성우의 꿈이 뭐였는지 알아?”

아내가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면서 묻는다.

의사나 수의사였잖아.”

그건 나나 당신의 꿈이었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했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

성우가 좋아했던 게 뭔지 알아?”

강아지를 특히 좋아했지.”

강아지를 키울 걸 그랬어. 털 알레르기쯤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때 친구 집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아들은 강아지를 샴푸로 씻기고 드라이기로 말리고는 자기 방에서 우유를 먹이며 우리 몰래 이틀 동안이나 키웠다. 아내의 털 알레르기 때문에 강아지를 돌려주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떼쓰지 않고 친구에게 돌려주었다.

버릇은? 성우의 버릇은?”

질문이 이어질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등을 긁는 거였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어.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거니까.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학교생활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는데.””

잠에서 깨어나기 싫어 이불을 말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간지럼을 태우고 볼에다 수염을 비비며 뽀뽀를 하면 질겁해서 일어나던 그 모습.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아내는 그런 장면들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회상하고 회상했을 것이다.

성우의 책상 서랍을 열면 날카롭게 깎아놓은 연필들이 두 움큼이 넘어. 동물 캐릭터들을 그려놓은 연습장이 세 권. 동물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병원에 와서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 앞에 쪼그려 앉아 아들은 어떤 상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죽이지 마.”

당신도 죽지 마.”

그가 분장하던 순서대로 내 옷과 얼굴, 몸에 빠짐없이 도료를 입힌다. 바람에 잘 말려 픽스 스프레이로 색깔이 변질되지 않게 고정한다. 마지막으로 광택제를 바른다. 그가 앉아 있던 곳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정수리부터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정신을 집중해서 힘을 뺀다. 밀물이 들어온다. 파도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딸을 찾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기자들이 웅성거림에 잡념이 끼어든다. 그는 냉동고에 어떤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을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치장에서 이틀을 보낸 후 풀려났다. 재판이 끝나면 다시 갇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동안이라도 그를 대신해 딸을 기다리고 싶었다. 기자들이 집에 찾아오고 이곳까지 따라왔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임을 하고 있으면 짓궂은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가 있소.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지.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릴 때도 있었고. 그럴 때면 사람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곤 했어. 저번에도 말했듯이 예술가란 주술사 같은 거요. 배를 맨 처음 발견해야만 하는. 사건의 징후 같은 것을 처음 발견해야 하는 거란 말이오. 딸은 나를 예술가라 말했지만 나는 그런 호칭을 들을 자격이 없었소. 그런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어. 딸이 죽어가기 직전에도 콩나물국 타령이나 했을 만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소. 돌멩이를 맞으면 그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그들도 언젠가 일상을 송두리째 뺏기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내 마지막 작품은 그런 징후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소. 언젠가 딸을 만나면 그래도 아빠는 예술가였다는 말을 할 수 있게. 그의 백()은 차가운 냉동고 속에 있지만 그의 혼()은 아직 이 바닷가에 머무는 듯하다. 백일몽을 꾸듯이 그가 내 눈앞에 자주 나타난다. 그는 시대의 징후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건 닥쳐봐야만 알 수 있다. 나 또한 신문에서 본 수많은 사건을 그렇게 지나쳐 왔으니까. 언제 왔는지 아내가 내 옆에 앉는다. 함께 바다를 바라본다.

그를 부검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잠을 자지 못했다. 먹지도 못했다. 잠깐 졸면 분장한 얼굴이 나타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열세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댔다. 살이 모두 썩어 뼈만 남은 아들의 해골이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말했다. 아내와 약속한 이후 더는 개를 죽일 수도 없었고 그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움직이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그의 딸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잠을 자는 것과 먹는 행위란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에선 몸이 잠과 음식을 거부하는 것일까.

검은 모자와 법복을 입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 재판정 뒤에 있는 방청객까지 평면적으로 보인다. 그가 좋아한 그림을 찾아 본 적이 있다. 황혼녘의 배경은 대부분이 붉은빛이었고 파란빛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그는 죽어가는 나무 옆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죽어가는 나무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더 튼튼해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스크린에 그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 화면이 바뀌자 분장을 지운 얼굴이 나타난다. 아들의 부패한 얼굴과 겹쳐진다. 장기들이 액체가 담긴 병 속에 담겨 있다. 검사가 부검결과를 증거로 채택해달라고 재판장에게 말한다.

나는 그의 부탁을 온전히 들어주어야 했다. 유서대로 피를 뽑고 고무관에 페녹시에탄올을 넣고, 눈을 파내 플라스틱 눈깔을 박아 넣고, 내장을 꺼내 형태를 유지시키기 위해 석고와 방부제를 섞어 짓이겨 넣어야 했다. 피부에 한 땀 한 땀 바늘을 박아 넣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그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네는 아들의 장례라도 치를 수 있었지 않았소. 나는 이렇게라도 딸을 기다려야 한다오. 스멀스멀 구더기가 목구멍으로 기어 다니는 것 같이 목구멍이 가렵다. 당신은 오십 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모든 것이 확정되어 버린 나와 아내는 뭘 기다려야 한단 말입니까.

검사가 레이저 포인트를 스크린에서 거두더니 다가온다.

펜토바르비탈이란 약품 아시죠? 동물을 안락사시킬 때 사용하는 약품 맞죠? 다량으로 구입하고 소비한 적이 있는데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죠? 이 약품을 사용하려면 법적으로 동물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기록이 없어요. 어디에 사용했죠?”

검사가 빨간 레이저 포인트 불빛을 스크린에 있는 약품 통에 비추며 말한다.

아빠, 빨간 불이야.’ 아들의 환영이다. 아들과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이 정돈 건너도 돼. 차 한 대 안 오잖아.’ 내 말에 아들은 낯선 사람을 보듯 쳐다본다. 아들은 조그마한 규칙이라도 지켜야만 하는 아이였다. 그런 태도가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그놈들에게 칼이라도 들고 찔렀어야 했다.

피고인 질문에 대답하세요.”

검사의 말투가 거슬린다. 내게 명령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검사님은 신호위반 같은 거 하지 않으십니까?”

검사는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판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피고인 재판과 관계없는 소리 하지 말고 검사의 질문에 집중하세요. 피고, 재판에 집중하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로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재판장이 말한다.

판사님은 법을, 규칙을 잘 지키나요? 저는 개들을 죽였습니다. 열세 마리나 죽였어요. 판사님은 신호위반을 몇 번이나 했나요?”

갑자기 재판장이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경찰관이 내 몸을 묶는다. 편안하다. ‘손을 포대기에 싸야 한다니까. 팔을 흔들다가 깜짝 놀라 깰 수 있으니까. 자긴 아빠로서의 기본이 안 돼 있어.’ 아내가 눈을 흘긴다. 방청석에 앉은 생기라곤 하나 없는 지금 아내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 현기증이 난다. 피 냄새가 난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정수리에서 발가락까지. 마치 나무가 된듯하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한 프레임 속에 들어간다. 정지의 순간, 한 폭의 풍경화다. 그림 속, 사람들은 잎이 떨어진 검은 나무가 된다. 그들의 뿌리는 서로 얽혀 있다. <>




  <당선소감>


   "내게 문학은 슬프고 외로울 때 찾는 외투 같은 것"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기형도 시인의 조치원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의 사내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항상 되뇌었다. ‘올해가, 진짜, 마지막이야.’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라고 시 중 화자가 묻는 것처럼 나도 내 자신에게 묻곤 했다. ‘나의 마지막 도전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그렇게 계절이 오가고 해가 바뀌고 이제 문청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가 되어 버렸다.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시인의 말처럼 내게 문학이란 외투 같은 것이었다. 슬프고 외롭고 절망에 빠질 때면 허겁지겁 입을 수밖에 없는.

퇴근길에 버스를 탔다. 창 너머 텅 빈 들판을 바라보는데 슬펐다. 기쁜 소식이 분명한데 정체 모를 눈물이 났다. 버스에서 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늦은 만큼 재게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설픈 작품이지만 실빛 같은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실망하지 않게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어머니와 각시, 며칠 후면 영국으로 유학 가는 큰딸, 졸업을 앞둔 작은딸. 마음이 힘들었을 때 항상 옆에 있어줘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문학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한신대 문창대학원 임철우 선생님, 최수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조현 작가님, 일환, 영기, , 그리고 라이팅클럽 나머지 멤버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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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사람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좋지만 익숙한 주제 아쉬워"


202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8편이었다. 올해의 응모작들은 우선 문학에서 국경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시대적이거나 세대적인 특징을 넘어서, 외국이거나 상상의 공간인 다른 세계와 사랑하고 투쟁하는 것이 바야흐로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한편 소재는 뿌리 없는 환상이거나 상상조차 제한된 현실이거나 중간이 없이 극과 극이었다. 주제 또한 모호하거나 아예 없는, ‘?’라고 묻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다.

개기일식 파토스’ ‘환불’ ‘미정그리고 스태추마임을 집중해 살폈다. ‘개기일식 파토스99년 만의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스프링필드로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다. 소재는 신선했지만 낯선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는 해석하는 힘과 구성이 미흡했다. 하필이면 한국인이 미확인비행물체의 본산 로스웰에서 특별한 일을 겪는 이유가 모호하거나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환불은 유학생 부부의 생활고와 소외를 이웃의 개러지 세일(Garage sale)에서 충동 구매한 탁자를 통해 그리고 있는데, ‘탁자의 상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맥없이 끝나는 게 무척 아쉬웠다. ‘미정은 콜 센터 직원 미정을 주인공으로 하여 불안정한 노동과 삶을 그리고 있는데, 구성이 느슨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신춘문예가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스태추마임을 앞에 두고 두 심사위원은 한참 고민했다. 신춘문예는 새봄에 새싹 같은 작품을 원한다. 그런데 스태추마임은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가 진지한 반면 소재와 주제에서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게 느껴진다. 배를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난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고,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수의사의 아들이 당하는 학교 폭력은 바로 어제 뉴스에서 본 듯하다. 하지만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절대 모른다!”는 말씀에 의지하여, 기술보다는 열정과 진정성을 믿고 스태추마임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작가의 숨결은 훈련만으로 쉽게 습득되는 요소가 아니다.

소설은 인생에 대한 패배의 기록이다. 패배를 얼마나 새롭게 드러내는가에 소설의 성패가 있다. 그러하기에 패배한대도 아주 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기록이 한순간이라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문장, 쓸데없는 장면을 지워내고 견고한 문장으로 출발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이유가 그 무엇이든 간에 견고한 언어와 문법만이 이 세상의 무수한 현실과 존재의 행방을 깊은 겨울 속에서 기다리는 신춘의 설렘처럼 새롭게 밝힐 수 있음을 응모자들은 잊지 말기를 간곡히 바란다. 분투한 모두의 건투를 빈다.

 

심사위원 : 문형렬, 김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