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고래 해체사 / 박위훈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死因)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당선소감>

   "절망의 시간 잊게 해 준 ‘詩밭 경작’"



  졸작 몇 편 신춘문예 원고로 보내놓고 십여 일, 조바심에 안달이 난 걸음이 문수산을 향했다. 영하의 기온과 가쁜 숨이 산 중턱을 오를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일시에 가라앉히는 당선소식이 발보다 먼저 정상을 밟았다.

  모두가 직립의 삶을 꿈꿀 때 가끔 횡보의 날들을 꿈꾼 적 있다. 혼탁한 정치판만큼이나 시답잖던 내 짧은 사유의 공간에라도 무한 갇히고 싶었던 날들, 그 날들이 시와의 동거였지 싶다.

  부지불식간 찾아온 뇌경색, 후유증이 남긴 편마비 그 숭한 짐승과의 양보 없는 드잡이에 지쳐갈 무렵 마치 구원의 손길인 양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을 잊게 해준 또 다른 짐승이 詩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형체도 없고 끝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짐승과의 싸움 그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강을 건너는 것이기도 했고 무저갱에 갇힌 순한 짐승의 두려운 울음 같은 거였다.

  시의 문외한인 내게 문을 활짝 열어준 ‘김포문예대학’ 그 너른 품에서 수삼년 시구와 부대끼던 날들이 언제인지 싶다. 햇병아리들 몇 모여 시의 숲을 해찰대던 ‘달시’의 김부회 시인과 동인들, 무녀리를 자처 시의 끈을 놓지 말자며 서로 경계하며 이끌어주던 ‘반딧불이’ 동아리 샘들, 당근과 채찍으로 詩라는 과육을 맛깔나고 단단하게 단근질시켜준 문성해 시인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詩밭으로 한 발 더 들어서는 것이 끝없는 미로를 걷는 것이며 기약 없는 약속임을 알기에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평생 詩밭을 경작할 것이지만 시를 놓는 것이 여반장(如反掌) 같다는 것도 잘 알기에 나를 더 경계할 것입니다. 이 영광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겸허함을 마음 네 모서리에 친친 두르고 자만이라는 짐승을 가두어 두겠습니다. 사람답게 사람 같은 꼭, 그런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시와 사랑을 품고…

  ● 1964년 출생
  ● 김포문예대학 13-15기 수료
  ● 반딧불이 동인


  <심사평>

  "사고의 전개·대상 응시하는 태도 자연스러워

  심사를 하면서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거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에 올려두기가 어려웠다. 또한 한 편의 시를 잘 빚어낸다고 해도 거듭해서 흡사한 사유를 풀어놓거나 작품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어휘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다섯 분의 작품을 가려낸 후 다시 숙고했다. ‘블랙의 도시’는 신선한 실험정신이 돋보였으나 그 외 두 편의 작품과의 미학적 편차가 컸다. ‘벽’ 등의 시는 삶의 협곡을 더듬으며 긴장감 있게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투고작들이 전체적으로 고른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세 분의 작품을 두고 고민했다. 문나원의 ‘괜찮은 날’ 외 2편은 개인을 둘러싼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진솔하면서도 과도한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는 점이 신선했다. 작품을 끌고 가는 방향성, 언어배열이 고르고 안정적이었으나 삶의 깊숙한 곳에 시선을 밀어 넣어 숨겨진 비의나 은폐된 문제들을 끄집어내려는 힘이 부족했다. “유리창들은 늘 쏟아지기 위해 거기 있다” “순간은 그러나 얼마나 성공적인 실패를 부르는가” 등의 문장들은 개성적인 아포리즘과 구별된다. 어떤 사유의 지점에서 단정 지으며 머무르기보다는 남달리 치열하게 밀고나가기를 기대한다.

  황세아의 ‘징그러운 사과’ 외 4편은 일상화된 생각을 뒤집는 사고의 전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직설적 발설에 비해 비유를 통한 서사의 진행이 자의적인 구성에 갇혀 있었다. 시인의 상상력과 잠재력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것은 정제되지 못한 생경한 이미지의 구조가 아니라 핍진하며 익숙한 현실에서 그것을 다르게 인식해 마지막 문장까지 책임지는 태도라 할 것이다. 시의 표면적 새로움에 휘둘리지 말고 천착해나갈 때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숙고 끝에 당선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박위훈의 ‘고래 해체사’ 외 2편이다. 사고의 전개와 대상을 응시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고 타자와의 접촉에 있어 대범한 기질이 돋보였다. 한 고래의 주검을 통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는 감정은 귀하다. 버틀러는 ‘애도’는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 슬픔이 내가 되게 하는 거라고 했다. 이 세계에서 떠밀려지는 존재들과 접촉하며 상처받고 통제할 수 없이 슬퍼하는 자가 시인이 아닐까? 당선작이 기성의 시들처럼 다소 숙련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점이 아쉬웠으나 패배감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높이 보았다.

심사위원 : 배한봉, 김이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