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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침투 / 차유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당선소감>

   "세상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 찾아다닐 것"



  시를 쓸 때 떠오르는 대로 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미를 담아 읽어준다. 시를 읽어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쓸 것이다.

  문정희 선생님, 김기택 선생님, 박형준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 제 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남진우 교수님, 천수호 교수님, 김경후 교수님, 신수정 교수님, 편혜영 교수님, 김유진 교수님, 김효진 교수님,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박상수 교수님, 교수님의 다정함을 잊지 못할 거예요. 지연아, 지원아, 종희야, 서로를 알고 있는 우리가 좋아. 애리야, 놀 때마다 즐거운 네가 좋아. 유나야, 이상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네가 좋아. 지수야, 해임아, 싫은 사람을 같이 욕해주는 너희가 좋아. 희진아, 까칠해도 착한 네가 좋아. 희주야, 엽사를 보내주는 네가 좋아. 소랑아, 볼 때마다 웃긴 네가 좋아. 효정아, 나를 이뻐해주는 네가 좋아. 현정아, 나를 이해해주는 네가 좋아. 영후야, 놀려도 웃을 수 있는 네가 좋아. 세영아, 인영아, 혜지야, 하늘아, 강한 너희가 좋아. 태연아, 학회장을 같이한 네가 좋아. 원경아, 똑 부러지는 네가 좋아. 수연이 형, 형 같은 형이 있어서 좋아. 찬연아, 시작이라고 말해준 네가 좋아. 작앤비 친구들아, 종일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너희가 좋아. 둥이야, 귀여운 네가 좋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건 마음 같다. 가끔은 잊을 때가 있지만,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 세상에는 숨겨져 있어 아름다운 게 있다. 나는 그것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 1997년 경기 남양주 출생
  ●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재학 중


  <심사평>

  "내면 탐색 능력 뛰어나 앞으로 큰 작품 쓰리라 기대

  본심에 오른 18명의 응모작은 고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눈에 띄는 한 편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자백’은 높은 완성도와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침투’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신인다운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침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자백’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 혼자인데도 제 안에서 나오려는 원시적이고 무의식적인 발화를 억누르고 스스로 제 말을 검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실한 발화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의식이 강렬하다. 삶을 화석화시키는 일상적 발화와 형태도 체계도 없는 무의식적인 발화 사이에 끼어 있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에 긴장감을 끌어올린 점도 음미할 만하다. 그러나 관념을 작위적으로 드러낸 은유가 단점으로 지적됐다.

  당선작 ‘침투’는 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자의 내면과 물속이라는 공간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이 시는 빈약한 숨통에 존재의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물속의 상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몸으로 ‘침투’하는 물의 압력과 숨 막힘,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이라도 잡아야 하는 치명적인 막막함을 냉정하게 관찰하는데, 그 시선에서 일상적 자아와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친숙한 물 밖의 세계와 다른 시공간인 물속은 화자를 저항할 수 없는 숨 막힘으로 압박하는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동시에 울어도 들키지 않고 슬픔조차 무화되는 완전한 고독이 있는 매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익사할 것 같은 공포와 숨을 버려서 완전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가 교차하는 심리의 이중성이 시에 독특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물 밖에서 밀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물속으로 가려고 하면서도 벗어나려는 심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은밀하게 엿보게 한다. 물속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는 탁월한 능력은 앞으로 더 큰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심사위원 : 문정희, 김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