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투 / 차유오
<당선작>
침투 / 차유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당선소감>
"세상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 찾아다닐 것"
시를 쓸 때 떠오르는 대로 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미를 담아 읽어준다. 시를 읽어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쓸 것이다. ● 1997년 경기 남양주 출생 <심사평> "내면 탐색 능력 뛰어나 앞으로 큰 작품 쓰리라 기대"
본심에 오른 18명의 응모작은 고르고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눈에 띄는 한 편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 ‘자백’은 높은 완성도와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침투’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신인다운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침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 문정희, 김기택
문정희 선생님, 김기택 선생님, 박형준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 제 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남진우 교수님, 천수호 교수님, 김경후 교수님, 신수정 교수님, 편혜영 교수님, 김유진 교수님, 김효진 교수님,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박상수 교수님, 교수님의 다정함을 잊지 못할 거예요. 지연아, 지원아, 종희야, 서로를 알고 있는 우리가 좋아. 애리야, 놀 때마다 즐거운 네가 좋아. 유나야, 이상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네가 좋아. 지수야, 해임아, 싫은 사람을 같이 욕해주는 너희가 좋아. 희진아, 까칠해도 착한 네가 좋아. 희주야, 엽사를 보내주는 네가 좋아. 소랑아, 볼 때마다 웃긴 네가 좋아. 효정아, 나를 이뻐해주는 네가 좋아. 현정아, 나를 이해해주는 네가 좋아. 영후야, 놀려도 웃을 수 있는 네가 좋아. 세영아, 인영아, 혜지야, 하늘아, 강한 너희가 좋아. 태연아, 학회장을 같이한 네가 좋아. 원경아, 똑 부러지는 네가 좋아. 수연이 형, 형 같은 형이 있어서 좋아. 찬연아, 시작이라고 말해준 네가 좋아. 작앤비 친구들아, 종일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너희가 좋아. 둥이야, 귀여운 네가 좋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건 마음 같다. 가끔은 잊을 때가 있지만,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 세상에는 숨겨져 있어 아름다운 게 있다. 나는 그것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재학 중
‘자백’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 혼자인데도 제 안에서 나오려는 원시적이고 무의식적인 발화를 억누르고 스스로 제 말을 검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실한 발화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의식이 강렬하다. 삶을 화석화시키는 일상적 발화와 형태도 체계도 없는 무의식적인 발화 사이에 끼어 있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에 긴장감을 끌어올린 점도 음미할 만하다. 그러나 관념을 작위적으로 드러낸 은유가 단점으로 지적됐다.
당선작 ‘침투’는 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자의 내면과 물속이라는 공간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이 시는 빈약한 숨통에 존재의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물속의 상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몸으로 ‘침투’하는 물의 압력과 숨 막힘,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이라도 잡아야 하는 치명적인 막막함을 냉정하게 관찰하는데, 그 시선에서 일상적 자아와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친숙한 물 밖의 세계와 다른 시공간인 물속은 화자를 저항할 수 없는 숨 막힘으로 압박하는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동시에 울어도 들키지 않고 슬픔조차 무화되는 완전한 고독이 있는 매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익사할 것 같은 공포와 숨을 버려서 완전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가 교차하는 심리의 이중성이 시에 독특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물 밖에서 밀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물속으로 가려고 하면서도 벗어나려는 심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은밀하게 엿보게 한다. 물속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는 탁월한 능력은 앞으로 더 큰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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