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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앨리스 증후군 / 이소정

  서른일곱 편의 동시를 읽고 잠들기 위한 밤. 앨리스는 착해져야지, 라고 생각한다. 매일 밤, 밤마다, 그녀는 착한 아이가 되는 꿈을 꾼다.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알면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이 방 창문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뒤틀린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창문을 쳐다본다. 남편은 단열을 위해 창문마다 에어캡을 붙이자고 했다. 아이들 방은 외풍이 너무 심해서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소용이 없었다. 기온이 떨어지자 아침마다 아이들은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그녀는 망설였다.

  “붙여야겠지?”

  “우린 지난 겨울을 겪었잖아.”

  남편의 말에 앨리스는 지난 겨울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마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을 떠올리는 듯 그녀는 머뭇거렸다.

  ‘좋은 일도 있었잖아.’

  앨리스는 산천에 가서 얼음을 깨고 아이들과 빙어 낚시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하얗게 피어오르던 아이들의 입김과 잘 익은 복숭아 껍질처럼 솜털까지도 빨갛게 일어나던 뺨을. 그 뺨에 얼마나 뽀뽀를 해주고 싶었던 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작은 캠핑의자에서 갑자기 일어나려다 플라스틱 낚싯대를 건드렸고, 입질을 기다리던 아이와 남편은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앨리스는 그들의 바람대로 다시 작은 캠핑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뭔가가 식어버렸는데 앨리스는 그것이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오후의 시간들을 몽땅 종이컵 바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온기를 짜내려는데 썼지만 소용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남편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앨리스는 마치 그 시선을 밟고 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빙판을 걸었다. 혼자 빙판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앨리스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파란색 천막이 있었고 천막 가운데 드럼통에서 굵은 나무 둥치가 타고 있었다. 덜 마른 나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칠성사이다 로고가 그려진 플라스틱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들 귀 아니면 코, 그도 아니면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몸이 너무 추워서요, 라며 소주 한 병을 시켰고 그것을 선 채로 마셨다. 금방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몸이 떨렸다.

  “그래, 우린 지난 겨울을 이 집에서 보냈어.”

  앨리스는 당신이 제대로 알아보고 집을 구했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라는 말을 숨겼다. 남편의 대기발령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추가 수당이 줄고 성과급도 사라졌다. 그들은 조금 더 싼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차익의 전세 보증금은 야금야금 생활비로 나갔다. 새시는 이미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였고 수돗물을 틀면 한동안 붉은 녹물이 나왔다. 앨리스는 변비가 있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변기가 막히지나 않을지 걱정했다. 무엇보다 앨리스에게 이 집은 너무너무 추웠다. 사방에 유령 같은 바람이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아이들 병원비를 생각해봐.”

  “그래, 우리는 또 겨울을 나야 해. 그래야만 해.”

  앨리스의 남편은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앨리스는 참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녀에 관해서라면 그는 늘 미루어 짐작해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뜻과 맞을 때도 아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 둘을 함께 낳아 기르는 동안 그녀에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술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이 살아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했다. 대기발령 중에도 그는 꼬박꼬박 출근을 했고 내일 퇴근길에는 에어캡을 사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덧붙이는 것처럼 말했다.

  “내일 모임에 늦지 마.”

  앨리스의 남편은 시계를 봤다. 마치 모임 시간이 얼만 남지 않았다는 듯, 조급하게. 그 모습은 앨리스에게 눈알이 빨갛고 털이 하얀 토끼를 떠올리게 했다.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 큰일 났네! 이러다 늦겠는 걸, 이라고 외치며 뛰어가는 그를 뒤쫓아 보지만 번번이 그녀 앞에는 작은 토끼굴만 남았다. 앨리스가 대답을 않자 남편은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고 조급한 표정을 지었다.

  앨리스는 지난 몇 번의 단주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건 번번이 남편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정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모임 시간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고 그녀는 변명처럼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이제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날 오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앨리스는 7시 알람과 함께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도시락김을 뜯어 밥을 먹였다. 식탁에서 큰 애가 왜 자기는 밥을 먹기 전에 이를 닦아야 하냐고 투정을 부렸다. 어차피 밥을 먹을 건데 왜 이를 닦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작은 아이도 앵무새처럼 따라 말했다. 앨리스는 짜증이 났다. 고마운 줄 모르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둘을 동시에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일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이, 앨리스는 버거웠다. 얼굴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다시 이를 닦이기 위해 목욕탕에 들어가면 한 단계가 더 추가되는 것 같았다. 앨리스에게 그 한 단계가 중요했다. 목욕탕에서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난을 치고 일거리를 만들고 싸웠다. 앨리스의 남편은 이런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양치를 언제 시키는지가 왜 그녀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앨리스는 남편에게 정확한 시간에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지 않으면 조급하고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앨리스가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두근거린다고 했다. 남편은 앨리스가 게으르고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남편에게 자기가 결코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 세상에 좋은 엄마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력하는 엄마면 충분하다고 타이르듯 말했다. 앨리스는 화가 났다. 하지만 앨리스는 조만간 아이들에게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온순하고 인내심이 많은 남편은 앨리스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갉아먹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수고로 누군가 혜택을 보는 일은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둘은 말할 수 있는 부분과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며 행동하는 사람들같이 굴었다.

  그날은 정말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앨리스는 기억한다. 노란 어린이집 차가 정확한 시간에 골목을 돌아 연립주택 앞에 섰다. 그녀는 멀어져가는 어린이집 차창의 뽀로로와 에디를 향해 오래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진하게 커피를 한잔 타서 마셨다. 선 채로 부엌 쪽창을 바라보며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부엌 창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흐렸고 감나무의 잎이 삼분의 일이나 사분의 일쯤 검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앨리스는 그것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잎의 가장 자리에 대고 누군가 라이터를 켜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앨리스는 오래 전 남편을 따라 참석한 대규모 집회가 떠올랐다. 곳곳에 깃발이 펄럭거렸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입구에서 화려한 구호가 적힌 전단지를 은색 발포지와 함께 나눠줬다. 은박발포지는 한사람의 엉덩이만 간신히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앨리스는 그걸 깔고 앉았다. 생각보다 작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앞으로도 쭉 그만큼인 것만 같았다. 밤이 깊도록 구호와 노래와 발언은 끊이지 않았고 앨리스는 너무 춥고 졸렸다. 그때 사회자가 많이 추우시죠? 라고 말했다. 앨리스는 마치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이라는 듯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연단을 바라봤다. 이렇게 차가운 겨울밤에 우리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꽁꽁 언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 보다 더 차가운 곳에서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있을 노동을, 하찮을 대로 하찮아진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가슴 속에 남아 있는 한 줌의 온기라도 기꺼이 나누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앨리스는 그들이 말하는 노동이 결코 자신에게 닿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거칠고 메마르고 갈라진 노동이 그녀의 집에는 없다고 앨리스의 남편은, 어쩌면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했다. 여전히 노동의 강도만이 그들에게 중요해 보였다. 토끼굴 속에서는 하루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시간이 문제였지만 앨리스의 남편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앨리스에게 인상깊은 장면은 이런 것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고 누군가 연단을 뛰어올라 사회자에게 털장갑을 건넸지만 사회자가 받지 않았던 것. 그 시간 이후로 앨리스의 눈에는 사회자의 손만 보였다. 집회의 마지막은 영상과 노래로 마무리 됐다. 사회자는 라이터를 꺼내라고 했다.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은 라이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남편의 얼굴은 시종일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앨리스는 라이터의 깜박이는 불들이 남편과 자신에게 닿을까봐 두려웠다. 그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삶의 가장 자리를 조금씩 타 들어올까 봐 불안했다. 사람들은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바람은 그 좁은 틈새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정오가 되자 앨리스는 참을 수 없었다. 2시의 여성문화센터 단주모임은 너무 까마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더욱 진하게 커피를 탔다. 오후 1시가 넘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와인병을 딴다. 시작은 늘 우아하게 딱 한잔만이다. 대형마트에서 행사상품으로 나온 와인은 시원하게 먹을 때가 많다. 안주는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다. 데우지 않고 식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건져 먹는다. 앨리스에게 그런 것들이 첫 끼니일 때가 많다. 어느새 앨리스는 한 병을 비운다. 그리고 시계를 본다. 시계는 1시 40분을 넘어가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간다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앨리스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남편의 얼굴이 잠깐 떠오른다. 지각하는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늦었어, 늦었어, 라고 말하는 토끼굴의 토끼가 남편의 얼굴이 되어 그녀에게 뛰어드는 상상을 한다. 앨리스는 웃음이 났다. 취하면 앨리스는 그녀의 몸이 무한대로 커지는 것 같다. 평소의 그녀는 자신이 작고 어두운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앨리스는 어느새 또 한 병을 비운다. 그리고 시계를 본다. 아이들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남았다. 마음이 조급해 진다. 앨리스는 급하게 냉장고의 소주병을 꺼내 든다. 잔도 없이.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앨리스는 딱 한 잔만 더 한 뒤 설거지를 하고, 아이가 올 시간에 맞춰 집을 정리하고, 노란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그날 아이들을 어떻게 데려 왔는지 앨리스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파. 집에 뭐 먹을 거 없어요?”

  앨리스는 술에 취해 너무 많은 음식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배달음식을 시킬 때가 많다. 어지러운 개수대 앞에서 여러 가지 배달 박스 앞에서 그녀는 번뜩, 정신이 든다. 너무 많아. 그녀는 빈 병을 센다. 남편이 오기 전에 분리수거장에 가야한다. 단주모임에 가지 못한 핑계도 만들어야 했다. 바쁘다, 바빠, 라고 마음이 터무니없이 커져버린 앨리스를 다시 좁고 어두운 굴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앨리스가 완전히 뻗어 버린 날은 아이들이 그녀를 흔들어 깨운다. 너무 세지 않게,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을 정도로만 흔든다. 앨리스가 신경질적으로 깨어나면 아이들은 배고픔 보다 더 혹독한 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네 살, 일곱 살 아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술에 취한 그녀는 이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었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괴물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아직까지 괴물이나 악당을 무서워한다. 그들에게는 이유가 없다. 나쁜 짓을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이들은 늘 두렵다. 이유 없이 세상을 파괴하고, 도시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이상한 곳으로 데려간다.

  “엄마 너무 배가 고파. 배달 시켜도 돼요?”

  큰 아이의 말에 눈도 뜨지 않고 그녀는 응, 지갑은 신발장 위에 있어, 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깊은, 그러나 알 수 없는 잠의 언저리를 떠돈다. 일어나야지. 이건 자는 게 아니야. 그냥 끝도 없이 가라앉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나마 그녀가 대답이라도 해주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그녀가 일어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슬퍼진다. 형아, 엄마 죽었어? 막내 아이가 묻는다. 형은 응, 이라고 말하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 슬픔은 뱃속 가득한 허기가 밀어내는 슬픔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식은 피자 박스나 치킨 박스를 뒤진다. 수돗물을 틀어 마신다. 양이 차지 않자 막내가 다시 앨리스를 흔든다. 엄마, 죽어지지마! 죽어지지마! 그렇게 흔들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큰 아이는 안다.

  에어캡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의 남편은 평소보다 깨끗한 집에 만족했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그의 품에 달려 들었다. 작고 말랑말랑한 몸들이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하루라는 것을 그녀가 이제는 알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녀는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로 그를 맞는다. 이제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단주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문자를 받았다.   술에 취하면 앨리스는 한동안 횡설수설한다. 그때만큼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른다. 아이들의 뺨에 뽀뽀를 퍼붓는다. 에어캡의 공기방울을 톡, 톡 터트리듯 아이들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아이들은 뽀뽀 괴물이다! 소리치며 달아난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서 풍기는 술냄새가 싫지 않다. 적당한 취기는 그녀를 좀 더 자유롭게 한다. 소녀 같이 수줍어하기도 하고 그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지고 너그러워 진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 관대하게 군다는 걸 그는 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경계가 없다. 애드벌룬처럼 부풀어 둥둥 날아다니는 그녀가 점점 더 먼 곳으로 달아나는 것 같다.

  저녁상을 치우고 앨리스의 남편은 에어캡을 펼친다. 창문 크기에 맞춰 자른다. 앨리스는 에어캡을 톡톡 터트린다. 남편은 그녀의 그런 행동이 몹시 거슬린다. 굳이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도 돼요?”

  “그럼. 같이 하자.”

  “어떻게 해요?”

  “물이 접착제야. 이렇게 한쪽 면에 물을 바르고 창문에 딱 맞게 붙이면 바람이 못 쳐들어오지.”

  우와! 아이들은 별 것 아닌 일들에도 흥분했고 즐거워했다. 앨리스는 여전히 뽁뽁 소리를 내며 에어캡을 터트렸다. 아이들이 물을 바르면 그녀의 남편은 창문에 맞춰 에어캡을 붙였다. 잘못 잘라 모자란 공간은 또 거기에 맞춰 발랐다. 모서리를 잘 맞추면 감쪽같았다. 물을 뿌리는데 싫증이 난 아이들은 장난감을 들고 뛰어다녔다. 노래를 불렀다. 앨리스는 술기운이 가시면서 점점 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모든 창문에 에어캡을 붙이며 남편이 뭘 막으려는 지 알 수 없었다.

  ‘그 작은 방울들이 도대체…….’

  위태롭게 의자 위에 올라가 있는 남편의 등을 보며 앨리스는 그에게 조금은 덜 추운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단주모임에 가야했다. 앨리스에게 그것은 언제나 생각뿐이다.

  “헬로, 헬로, 카봇, 카봇, 우리들의 친구! 로봇자동차 카봇! 힘든 일이 생길 때면, 헬로. 언제든지 불러줘요. 헬로, 헬로.”

  늘 술이 깨고 나면 앨리스는 참담한 기분이 든다. 술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입 안에서, 온 몸 구석구석에서, 알코올은 완전히 휘발되지 못하고 남았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온전히 엄마 냄새가 아닐까, 앨리스는 걱정한다. 아이들은 그녀의 뽀얀 젖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에미는 에민가 보다, 라고 산후조리를 해주러 온 친정 엄마가 말했다. 그녀의 엄마는 몰랐다. 수유 기간 동안 앨리스는 식품저장고처럼 살았다. 언제든 문만 열면 먹을 것을 꺼내줘야 하는 냉장고처럼 늘 가슴이 서늘했고 답답했다.

  앨리스는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여보, 나 가슴이 너무 추워. 그녀의 남편은 돌아 누운 채로 추워? 어떻게? 라고 말했다. 그냥 모든 게 다 빠져나가버린 것 같아. 모유수유를 끊었을 때, 그녀는 가슴이 더욱 시린 것 같았다. 텅 빈 냉장고를 이제 뭘로 채워야할지 몰랐다. 그녀의 남편은 돌아누워 그녀의 늘어진 티셔츠 안으로 차갑고 딱딱한 손을 밀어 넣었다. 수유로 늘어진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물기가 너무 많거나, 적은 밀가루 반죽처럼 탄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주물렀다.

  앨리스는 그와의 신혼여행을 떠올렸다. 보라카이는 화이트 비치가 아름다운 섬이었다. 이제는 홈쇼핑 여행상품으로 지겹도록 소개되는 곳이지만 그때는 그나마 덜 알려진 파라다이스쯤으로 여겨졌다. 지구의 숨은 보석처럼 둘만의 장소를 찾아낸 듯 스물과 서른의 경계에서 앨리스는 흥분해서 말했다. 보라카이에서는 일몰 시간에 맞춰 모든 술집들이 해피아워를 외쳤다. 달콤한 칵테일이 반값에 제공됐고 그런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알코올의 휘발성에 적당한 흥을 더해주기에 완벽했다. 앨리스는 길고 긴 화이트 비치와 분홍빛 일몰이 길고 지루했던 지난 날들과의 일별 같았다. 해피아워! 앨리스와 그녀의 남편은 그 말을 나누어 가지며 몇 잔째인지 모를 칵테일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남편의 부드러운 손길에 그녀는 잠시 행복에 젖었다. 여전히 보라카이 바닷가에 누워있다고 생각했다. 하이비스커스 꽃무늬가 가득 피어있는 원피스, 부드러운 모래가 그대로 들어오는 조리를 신고 원주민 여자가 자신의 몸에 오일을 골고루 바르고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앨리스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동시에 앨리스는 그 시간으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고 느꼈다. 너무 멀어서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자 눈물이 났다.

  “아!”

  앨리스가 짧은 비명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너무 세게 문질렀기 때문이었다. 이제 탄력도 꿈도 없는 그녀의 가슴을. 이미 터져 버린 에어캡 같은 그녀의 가슴을.

  그 일은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처음으로 단주모임에 참석한 날이었고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앨리스는 이런 식이면 곧, 술을 끊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상담사와 여러 명의 참석자가 둥그렇게 둘러 앉아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처럼 처음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생각보다 걱정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드디어 만났네요. 우리!”

  모임이 시작되기 전 상담사는 남편분과 여러 번 통화를 했다며 반가운 체를 했다. 심리치료 상담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은 어떤 개입보다 진행과 안내 위주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얘기는 비밀에 붙여진다고 했다. 실제로 모임에서 그녀의 역할은 별로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식상한 말을 하지 않아 좋았다. 첫 모임에서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앨리스라고 불러달라는 소개만 간단히 하고 끝냈다. 그것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식은땀이 나고 목이 말랐다. 다행히 사람들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그녀에 대한 배려였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사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서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앨리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편안해 보였다.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꼭 듣기를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앨리스보다 어려보이는 여자는 자신을 고고한 냥이라고 했다. 자기는 평범한 가정주부고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경력이 단절됐다고 말했다. 앨리스는 단절과 단주, 단속 이라는 말들을 차례로 떠올렸다. 왠지 그 단어들이 같은 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녀는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스타벅스 텀블러에 술을 담아 마셨다고 했다. 텀블러는 시애틀 출장 중 스타벅스 1호점에서 남편이 사다 준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 장난감과 함께 술병이 나뒹구는 것을 남편은 참지 못한다고 말하고는 슬쩍 웃었다. 그건 순전히 그녀의 중학교 때 선생님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녀의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알코올중독자였다. 수업 시간에 늘 보온병을 들고 왔다. 수업을 시작할 때는 멀쩡하던 그의 목소리가 수업이 끝날 때쯤엔 베베 꼬였다. 그는 결국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고 고고한 냥이는 아쉬운 듯 말했다. 아쉬움에 덧붙여 전교조 탄압이 심하던 시기였다고 말했고, 그래서였는지 그녀는 그와의 수업 시간 내내 시를 외웠다고 말했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시가 있는데, 라고 말하며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시를 읽는 것이 알코올중독자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날이 가고 봄, 여름이 가고 저녁이면 미친 듯이 떨리는 미루나무 잎새들’ 로 시작하는 시를 외웠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앨리스는 그녀의 무엇이 박수 받을 만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이야기를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중년 여자였다. 흰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섞여 정수리에서 이마, 귓바퀴 까지 웨이브를 타고 흘러내렸는데 퍽이나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키티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가던 날 너무 많이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를 더 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그런 일들은, 이를 테면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 일은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또 그들을 대학까지 시킬 것이고, 그들이 원한다면 유학이나, 배낭여행을 지원해 줄 수도 있으며, 그들의 결혼에 적지 않은 돈을 보탤 것이고, 그 이후에도 생일이나 그들에게 일어나는 승진, 첫 아이의 돌잔치 같은 일들을 꼬박꼬박 챙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늘 바라지만, 그들이 아플 때,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 지치고 힘들 때, 할 수만 있다면 옆에 있어 줄 거라고 했다. 그런 노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고 말했다. 결코 그녀의 시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그녀의 뱃속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키티는 말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가고 난 지금 그녀는 조용히 혼자 딱, 한잔만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축배를 들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시간들을 남모르게 큭큭거리며 보내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현관문 앞에서 아이들을 향해 오래 손을 흔들고 있는 남편은 이제 그녀와는 상관없다고도 했다. 남편이 그녀에게 어떤 잔소리도 늘여 놓지 못할 것을 그녀는 알고 그와 그녀 사이엔 이미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 축배의 한 잔이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될지는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이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할 뿐이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접이식 철제 의자가 잠시 휘청했지만 그녀는 우아한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자세를 바로 잡았다.

  마지막에 그들은 모두 함께 박수를 치고 동시에 앨리스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앨리스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이상했는데 그건 알코올에 대한 의존도를 어느 정도 극복한 사람들의 여유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앨리스는 엄마를 떠올렸다. 친정 엄마는 늘 싱크대 앞에서 누가 볼 새라 얼른 한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야, 물이 참 달다야, 라고 말했다. 어린 앨리스는 물이 달다, 는 말에 실제로 주전자의 물을 마셔보기도 했다. 물은 그냥 물맛이었다. 물맛이 달다, 는 말을 앨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앨리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싱크대 앞에 서서 급하게 물 한잔을 마셨다. 아이들이 뭐냐고 묻는다. 그녀는 웃으며 응, 단물, 이라고 말한다.

  앨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시계를 자주 확인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 마치 고장난 것처럼 느껴졌다.

  “힘든 일이 생길 때면 헬로. 언제든지 불러줘요. 헬로.”

  카봇을 부르던 아이들도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작은 아이가 엄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라고 말했지만 앨리스는 그래? 엄마도 그래, 라고 말했을 뿐이다. 앨리스에게는 견디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달력을 보고 시계를 봤다. 번갈아 보며 매일 매일이 늘어진 시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남편의 귀가 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앨리스는 오늘 따라 더 자주 현관을 내다본다. 위태롭게 쌓아놓은 분리수거 그물망이 쓰러지며 현관의 인공센서가 켜지고 불이 들어온다. 깜깜한 거실에 앉아 앨리스는 그 모습이 꼭 생일 케잌의 촛불 같다. 그녀는 생일 축하해, 라고 말한다.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했다. 앨리스에게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앨리스는 정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앨리스는 술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고 허공을 향해 여러 번 손사래를 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현관의 인공 센서등이 너무 빨리 꺼져 아쉽다고 생각한다. 아직 소원도 빌지 못했는데. 이 순간 남편이 들어오고 다시 반짝 불이 켜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날 사회자는 왜 장갑을 받지 않았을까? 얼어 터진 손을 그러지고 왜 그토록 뜨겁게 온기에 대해 말했을까? 온기가 아닌 한순간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불길처럼 불안해, 나는. 그런 고백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 어쩌면 당신이 믿는 온기를 온전히 믿고 싶다는 애원에 가까운 그런 것들, 그런 말들…….

  앨리스의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녀는 서둘러 소원을 빈다. 아무렇게나 지쳐 잠든 아이들에게로 간다. 이 세상에서 내게 딱 하나만 가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너희들이야, 앞으로도 쭉 너희만 있으면 돼, 라고 말한다. 잠결에 아이는 몸을 뒤척인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술이 취하면 그녀는 자주 했다.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의심이 도사린다. 그 의심을 지우기라도 하듯 너희만 있으면 돼, 라고 앨리스는 주문을 외듯 말한다.

  불쑥, 바람이 그녀를 친다. 창문마다 단열을 위해 남편이 붙인 에어캡이 올록볼록하다. 앨리스는 그것이 볼록 거울 같다. 낡고 가난한,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자잘한 공기층들이 창문 밖을 넘어서지 못하고 경계에 몰려 있는 것 같다. 자신과 아이들을 비추는 그 거울들이 두렵다. 거울은 영원히 계속되는 겨울 같아서, 지금도 세상에는 자신과 아이들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존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차가운 바람을 막고 서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앨리스는 몹시 두려워졌다. 앨리스는 기어이 냉장고를 열고 술병을 찾는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딱 오늘만, 이라고 조급증을 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고 작은 아이가 나온다. 앨리스는 이미 취한 상태다.

  “엄마, 나 몸이, 몸이 이상해.”

  아이는 그대로 쓰러진다. 앨리스는 놀란다. 아이에게 달려간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가 식탁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아이의 눈이 하얗게 뒤집어 진다. 산천의 빙어 낚시에서 아이는 하얗게 입김을 불어 그녀의 언 손을 녹여주었다. 그 작은 온기가 떠올라 앨리스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앨리스는 아이의 뺨을 때린다. 아이가 축 늘어지자 그녀는 겁이 난다. 큰 아이를 부른다. 깨운다. 앨리스는 지각이야, 지각이라고 말하며 뛰어가는 토끼의 뒤를 쫓는다. 아이를 업고 뛴다. 차에 시동을 걸 때까지. 응급실을 코앞에 두고 음주 단속에 걸릴 때까지. 앨리스는 그녀가 만취상태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이의 손에는 카봇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더 지켜준다는 듯이 열경기가 지나고 나서도 그것을 놓지 않았다. 앨리스의 남편은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앨리스는 오래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듯. 수액을 맞고 늘어진 아이는 자꾸 앨리스에게 달라붙어 보챈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의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는다. 술에 취해 걸음조차 잘 걷지 못하는 앨리스를, 저녁으로 아이가 뭘 먹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앨리스를, 음주측정을 거부한 앨리스를, 응급실 복도에 놓인 정수기에 입을 데고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응급실의 모든 사람들이 본다.

  축, 축 늘어진 아이만, 한 밤에 달디 단 잠에서 깨어난 또 다른 아이만 앨리스에게 달라붙는다. 투명한 수액이 방울방울 아이의 몸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쳐다보며 앨리스는 물이 접착제가 될 수 있구나, 중얼거린다. 말랑말랑하고 동글동글한 세계가 그녀에게 달라붙어 그 차가운 시선들을 막아주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저런 것도 에미라고! 쯧!”

  손등이 다 타버려 재처럼 검게 변한 옆 침대의 노인이 혀를 찬다. 앨리스는 다시 시계를 본다.

  새벽 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집을 치운다. 중간중간 아이의 열을 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빈 병과 과자 봉지와 부스러기들. 아이들이 흘린 오래된 콜라 자국을 닦는다. 한기를 느낀 앨리스는 베란다 창문을 닫는다. 닫기 전에 빨래가 다 말랐는지 만져본다. 빨래는 내일 아침이면 다 마를 것이다. 그녀는 종종 건조대에서 바로 걷은 옷들을 아이들에게 입혔다. 옷을 개고 서랍에 넣어도 아이들 옷은 어느새 뒤죽박죽이 됐다. 일상의 자잘한 사고들이 끝도 없이 그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지켜지지 않는 일상의 습관들에 대해서 남편이나 아이들이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인다고 생각했다. 뚜껑을 닫지 않아 세면대에 흰 혀를 빼고 있는 치약들이 그랬다. 다 쓴 휴지심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입은 옷과 안 입은 옷의 구분은 그녀밖에 못하는 일 같았다. 신은 양말을 세탁기 안에 넣는 일이 한결같이 깜빡해야하는 일인지 앨리스는 남편에게 묻고 싶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이들이 깰까봐, 그녀는 살얼음판을 걷듯 집안을 걸어 다닌다. 일상의 자잘한 습관들은 그녀에게만 들러붙었다.



  이제 앨리스는 아이들이 잠든 방을 닦는다. 침대 바닥의 먼지도 모조리 닦아낸다. 방을 닦다 침대 밖으로 비쭉이 나온 아이들의 발바닥이 새까만 것을 발견하고는 앨리스는 깜짝 놀란다. 그녀는 누가 볼 새라 물티슈를 뽑아 아이들의 발과 얼굴을 닦는다. 마치 모든 것이 다 그것 때문이라는 듯. 잠귀가 밝은 큰 아이가 눈을 뜨지 않고 짜증을 낸다.

  그 모든 일을 끝내고도 앨리스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옷걸이에서 떨어진 남편의 점퍼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앨리스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외투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와 담배를 꺼낸다. 앨리스는 라이터를 켠다, 끈다. 앨리스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빤다. 그리고 바닥에 대고 아무렇게나 담배를 끈다.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끈다. 바닥에 차례로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생긴다. 앨리스는 죽을 것 같이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눈이 감긴다.

  어느 순간,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가 빠져나가 이불 위로 떨어진다. 천천히 타들어간다. 앨리스는 따뜻해, 라고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따뜻해 질거야, 누구에게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반쯤 뜬 눈으로 앨리스는 이불의 가장자리가 타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앨리스는 자욱한 연기가 퍼지는 허공을 바라보며 딱히 어디라고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아치는 자신의 마음을 두려워한다. 째깍, 째깍 서둘러 시계를 보던 토끼가 앨리스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눈이 빨갛고 털이 하얀 토끼를 향해 앨리스는 작고 창백한 손을 힘겹게 뻗어 본다.

  ‘늦었어, 늦었어…… 이미 늦었어. 토끼야!’

  방 안으로 끝도 없이 찬바람이 스며든다. 창문에는 앨리스가 터트려버린 에어캡의 한쪽 면이 납작하게 붙어있다. -끝-


  <당선소감>

   "경계에서, 잠시 따뜻할 수 있는 소설 쓰고파"

  오영수 문학관에서의 첫 수업을 잊을 수 없다. 창밖으로 굴참나무가 서서히 잠기던 그 순간 나는 어떤 경계에 서 있었다. 실업과 취업, 꿈과 현실, 늙음과 젊음 그 어디쯤에서 사는 것과 사는 척에 대해 오래 뒤척였다. 지금도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선과 악, 빛과 물질 같은 것들은 조금 생각하고 삼각김밥과 돼지국밥, 이디야와 투썸, 타이레놀과 종합병원, 독립서점과 알라딘 중고매장을 더 많이 고민한다.

  지하철 2호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 노을이 지면 핸드폰만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다 같이 그것을 바라본다고 한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경계에서, 낮과 밤의 경계에서 한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잠시 따뜻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여전히 세상의 작고 커다란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겠다.

  엄창석 선생님이 내 선생님인 게 얼마나 기쁨인지. 그 기쁨을 당신께 오래 돌려 드리고 싶다. 이 순간을 만들어준 난계소설반 식구들, 영하, 송아, 다 당신들 덕분이다. 넘치는 응원과 이상한 비난을 아끼지 않았던 인호옹, 사랑한다. 여민, 여준, 여림, 세상에서 딱 하나만 가지라고 한다면 나는 너희들이다. 이근수 아빠, 김필연 엄마, 지금까지 나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하셨어요.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오래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1978년생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우리 사회 위태로운 징후 예리하게 포착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샘이 깊은 요양원’ ‘사자사냥’ ‘투게더’ ‘빛 터지는 밤’ ‘고백’ ‘사리’ ‘서쪽하늘’ ‘울트라맨이야’ ‘앨리스 증후군’ 모두 아홉 편이었다. 이 중에서 이야기구조가 탄탄하면서 안정감 있게 주제에 도달하는 네 편을 남겼다.

  ‘사리’는 부자간의 갈등을 다루는데 과거와 현재의 기계적 교차와 소재의 해석이 평범했다. ‘서쪽하늘’은 요양병원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노인문제에 경력단절까지 다루지만 일지형식의 순차적 진행이 소설적 긴장감을 방해하고 있다.

  ‘울트라맨이야’는 청년세계를 그린 응모작들 중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작품이다. 자살에까지 내몰린 공시생의 의식을 현란하고도 치밀하게 펼치는데 그 속에 재현되는 여러 잔상들의 실감도 만만찮다. 하지만 환영과 파편화된 의식으로 현실을 제대로 진단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앨리스 증후군’은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젊은 주부와 그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주인공에게 양육과 가사는 노동의 강도만 따지는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가난은 찬 바람처럼 문틈으로 스며든다.

심사위원 : 김성종, 조갑상, 정영선, 김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