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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소금이 온다 / 신혜영

할아버지 병원에 있으니
소금밭이 고요하다
끌어올린 바닷물이 없으니
말릴 바닷물이 없다
할아버지가 밀던 대파*는
창고 앞에 기대어
할아버지 땀 내를 풍기는데
물 삼키던 햇볕은
애먼 땅만 쩍쩍 가른다
새싹 같고 볍씨 같고
눈꽃 같던 소금꽃들
할아버지 땀이 등판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얀 살 찌우던 소금꽃들
푸른 바다는 멀리서
꽃 피울 준비하며 애태우고 있을까
할아버지 소금이 없으니
세상엔 소금이 좀 부족해졌을까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곤
주문을 넣는다
할아버지가 온다
소금이 온다


*대파 :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


  <당선소감>

   "흠집 난 세상도 귀하게 보겠습니다"



  얼마 전, 흠집이 조금씩 있는 사과 한 상자를 선물 받았습니다. 상자 안 안내문에 '태풍을 이겨낸 사과'라 쓰여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런 흠이 있는 사과를 주문해 먹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전 '흠집 사과 보내주세요'라고 농가에 주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 안내문을 읽고 보니 흠집 사과라 할 때보다 손에 든 사과가 더 귀하게 보였습니다.

  시가 오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귀하게 보고 들으면 더 귀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시가 좋았습니다. 아직은 좋아하는 것만큼 동시의 세계를 잘 모릅니다. 귀하게 온 것들을 온전히 표현 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더 많이 닮아가고 싶습니다. 작은 것에 즐거워할 줄 알고 어엿한 현재의 주인공으로 사는 아이들의 세계를 말입니다. 닮아가다 보면,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것 같은 이 세상이 꼭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제 글을 통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부족한 저에게 큰 상을 주신 조선일보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동시의 문 앞에 선 저에게 큰 위로이자 용기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늘 힘이 되어주는 글벗들, 친구들, 가족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더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더 따뜻하게 다가가겠습니다.

  ● 1966년 출생.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성신여대 교육대학원 졸업


  <심사평>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염전에 빗대 여운 줘

  전반적으로 다양한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시적 기량도 향상되어 반가웠다. 그러나 발상이 유치한 작품들이 눈에 띄고 산문처럼 너무 길고 장황한 시들이 있어 아쉬웠다. 아이들 삶에 밀착하여 그들의 애환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형상화하거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자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여 참신한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를 당부한다.

  문봄의 '와글와글 자음교실'은 한글 자음에서 교실의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여 흥미롭게 형상화했으나 특별한 내용도 없이 기발한 재치로만 끝난 점이 아쉬웠다. 강정용의 '고래가 간다'는 반지하 방을 고래 배 속으로 설정한 상상이 눈길을 끌었으나 너무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것이 흠이었다. 김영주의 '위층 아래층 없이'는 서로 배려하는 이웃 간의 정을 평이한 생활어로 훈훈한 정경으로 그렸으나 너무 정형화된 발상과 표현이었다. 염연화의 '발자국'은 언어 구사나 표현에서 오랜 수련이 느껴지는 능숙하고 세련된 기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버거운 주제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신혜영의 '소금이 온다'는 평생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다 아픈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간결하고 정제된 표현  과 참신한 비유로 그려냈다. 소금기 밴 땀내 나는 할아버지의 삶을 염전의 구체적인 사물과 섬세한 묘사를 통해 인상적으로 형상화한 점도 돋보였다. 할아버지가 빨리 나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간절하면서도 여운 있는 울림으로 마무리한 결말 부분도 좋았다. 할아버지처럼 우리 사회의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가 시 속에 녹아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