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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화단 / 김영경

튤립은 부러져 누워 있었다
할 말이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서둘러 머릴 내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심성 없이 마구 달린 운동화 때문이라고 했다
제 역할을 못 한 울타리 때문이라고도 했고

개미도 무당벌레도 지렁이도 할 말이 많았다
넘어진 튤립 옆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댔다
얘기 꽃이 피었다

화단이 환해졌다


  <당선소감>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동시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부엉이바위 아래 누워있을 때, 어두운 복도를 헤매고 다닐 때, 밝은 곳으로 가볍게 한 걸음만 가보자고 일으켜 세워 주던 동시가 이렇게 반짝이는 자리에 날 데려다 놓습니다.

  가만히 손을 내밉니다. 잡고 일어섭니다. 걷습니다. 노래합니다. 다시 달려봅니다. 물론, 앞으로도 휘청거리고 넘어지면서 낯설고 컴컴한 곳을 헤매겠지만 또, 동시가 잡아주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동시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세상의 모든 아이와 어른들이 동시의 따뜻하고 다정한 품을 만나서 함께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동시는 나에게 보물찾기입니다.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희미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들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안경을 갖겠다는 말입니다. 그 안경을 쓰면 뱁새의 걱정이 들리고 얼치기완두의 애씀이 보입니다. 넘어져 울고 있는 튤립도 보이고 호수로 가고 싶은 토토의 마음이 읽힙니다. 돌멩이 아래 개미네 집 숟가락 개수를 셀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안경의 도수는 일정하지 않아서 엉뚱하게 보이고 엉뚱하게 들리고 엉뚱하게 읽힙니다. 안주하지 않고 낮고 아름다운 것들의 세상을 열어주는 넓은 문이 되도록 똑디, 단디, 잘 보겠습니다. 더 무력하게 치열하게 가보겠으니 내가 찾은 작은 반짝이들을 아이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습니다.

  오래 동시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안 선생님. 한겨레아동문학작가교실 37기 선생님들. 김은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시를 함께 앓는 우리끼리 문학팀과 담쟁이 식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가 좀 잘 나가지?” 웃으며 전하는 당선 소식에

  “집을 잘 나가긴 하지”라고 대답하는, 기다려주는,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가족. 고맙습니다.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한국일보사에도 감사드립니다.

  더 무력하게 치열해지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1969년 출생. 
  ●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람 
  ● 경성대학교 식품공학과 졸업 
  ● 2019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 시 등단


  <심사평>

  "역동적 상상력, 어린이 세계 탐색 역량 돋보여

  예년보다 좀 더 많은 총 312분이 응모했다. 응모자 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응모작 5편이 고루 완성도를 갖춘 채 자신의 세계와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시도가 보여 반가웠다. 특정 경향을 따르지 않고 오늘날 동시의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려는 배경에는 동시 형식의 경계를 줄곧 넘어 온 최근 분위기가 자리할 것이다. 그럼에도 - 아니, 그리하여 - 가장 중요한 지점은 오늘날 ‘어린이’에 있다는 사실을 응모작을 보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떠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든 동시의 처음이자 마지막 잣대는 어린이 독자가 읽는 시라는 것이다.

  본심에 오른 10분의 작품 중 3분의 작품을 마지막까지 고심하며 논의했다.

  ‘고래 노래’ 외 4편은 상상력과 언어가 매우 유려하다. 대개 동시가 상상 세계의 기둥을 하나씩 진술하는데 그치는데 반해 응모작은 상상 세계의 집을 독자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하지만 상상의 소재나 씨앗이 여느 동시가 이야기해온 바여서 이와 구별되는 상상의 시작을 좀 더 발견해야 할 듯 보였다.
‘너는’ 외 4편은 어린이에게 깊은 시선이 닿아 있어 미더웠다. 자칫 평이하고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기 십상인 소위 ‘현실주의’ 동시의 난관을 유연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너는’ 마지막 연에서 전환되는 문체는 시적 형식의 의외성과 시적 대상과의 친밀성을 급격하고 신선하게 불러일으킨다. 활발히 논의되는 동물권을 동시에서 말한 점도 좋았지만 소재의 평범함이 못내 아쉬웠다.

  당선작 ‘화단’은 사실적인 전개와 탄력 있는 마무리를 자연스럽게 아우르며 여러 존재가 함께 슬픔을 위무하는 과정을 동시 장르에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마지막 두 연은 평범한 문장인데도 연과 연 사이에 성큼 열린 틈 사이로 슬픔을 딛고 반짝이는 밝은 빛이 깃든다. 당선작 외 작품에서도 단정한 문장과 역동적인 상상력으로 어린이의 세계를 탐색하고 담아내려는 시인의 역량이 돋보였다. 모두 함께 반기며 기뻐하는 마음을 대신 전하며, 앞으로도 화단을 비추어주시길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 송찬호,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