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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기운찬도서관 / 곽지현

  운찬이는 전학 와서 처음 만난 짝꿍이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교문을 함께 나선 우리는 한동안 서먹하게 걸었다.

  새빛 아파트 앞을 지날 때였다. 정문 앞에서 운찬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같이 들어가 볼래?”

“여기 살아?”

“아니, 우리 집은 저쪽이야.”

  운찬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큰길 건너편에는 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높은 언덕을 빽빽하게 메운 집들은 또 타고 오를 언덕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같이 가자. 비밀작전에 너도 끼워줄게.”

“무슨 비밀작전?”

“비밀작전이니까 당연히 비밀이지. 같이 가면 알려 줄게!”

“그럼, 내일도 돼? 나 내일은 학원 안 가.”

“그래, 좋았어! 내일은 금가람 아파트야.”

  나를 궁금하게 하려고 운찬이가 일부러 비밀이니 작전이니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학원 가는 길 내내 궁금증이 더해갔다.

  다음날 나는 가방을 멘 채 우리 집 앞을 지나 운찬이를 따라갔다. 나를 데리고 금가람 아파트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운찬이는 곧장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잔뜩 쌓여있는 종이 더미를 신나게 뒤지기 시작했다.

‘왜 쓰레기장을 뒤져?’

  나는 차마 운찬이에게 속 시원하게 묻지 못했다. 괜히 갓 사귄 친구와 사이가 틀어질까 봐 겁이 났다고나 할까. 내가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운찬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이리 들어와, 이게 바로 비밀작전이란 말이야.”

  운찬이는 3년째 헌책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운찬이는 학교 주변의 아파트 단지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 날짜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나도 물론 재활용품 수거장에서 멀쩡한 책 한두 권을 주워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운찬이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헌 종이 더미를 열심히 파헤쳤다.

“나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게 내 꿈이야.”

“너만의 도서관?”

“책을 그냥 막 바닥에 늘어놓는 거야. 그 한 가운데에 누워서 한없이 책만 읽다가 잠이 오면 자고, 깨어나면 다시 책 읽고 하는 거지.”

“책장에 꽂아놓는 게 아니고?”

“기운찬 도서관에는 말이야, 책들이 다 누워 있어. 책장에 빈틈없이 꽂혀있는 건 너무 답답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으면 책들도 숨을 쉬는 거야. 헌책은 냄새가 다 달라. 그래도 한결같이 구수하지! 너도 오늘 한번 맡아볼래?”

  우리는 찾아낸 책들을 품에 안고 운찬이의 집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큰길을 건너자마자 골목 어귀부터 현수막 여러 개가 너울너울 걸려 있었다.

‘경축!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저게 다 뭐야?”

“동네를 통째로 새로 짓는 거래.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이사 갔어.”

“그럼 너도 이사가?”

“아빠가 우리는 안 간다던데.”

  큰길을 건너자 집들 사이로 미로 같은 골목길이 꼬불꼬불 이어졌다.

“너 그거 알아? 헌책에는 손을 베이지 않아. 책장도 더 잘 넘어간다. 손에 길이 들어서 그래.”

  앞서가던 운찬이는 모퉁이 하나를 더 돌아 멈춰 섰다.

“자, 다 왔어! 여기야.”

  우리는 쓰레기장 앞에 서 있었다. 운찬이가 활짝 웃으며 쓰레기장 안쪽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아빠!”

  그러자 일하던 아저씨 한 분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저씨는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자루들을 옮기고 있었다. 마당에는 못쓰게 된 전자제품과 가구도 쌓여있고, 플라스틱과 헌종이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쓰레기장 바로 옆에 붙은 운찬이네 집은 담장도 대문도 없었다. 현관 앞에는 평상 하나가 골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상에 깔린 누런 비닐 장판은 초록색 테이프로 누덕누덕 때워져 있었다.

  운찬이와 나는 평상 한가운데에다 우리가 안고 온 책들을 우르르 쏟아놓고 앉았다.

“네 덕분에 오늘 완전 대박이다. 내일도 같이 갈 수 있어?”

“아니, 내일은 나 학원 가야 해.”

  내가 손톱 끝으로 평상 모서리를 긁적이자 낡은 장판이 힘없이 부스러졌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운찬이를 따라 나도 덩달아 일어났다.

“따라와 봐, 내가 보여줄게.”

  운찬이네 집과 옆집 담장 사이에는 키 작은 검은 색 철문이 있었다. 운찬이가 자물쇠 번호를 누르자 ‘철컥’하고 열렸다.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하실 입구는 어두웠다.

  운찬이는 계단을 서슴없이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나는 양쪽 벽을 짚고 발끝으로 계단을 하나씩 딛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 끝에서 운찬이가 또 하나의 문을 열었다.

“그냥 열어놓고 들어와. 공기가 좀 통해야 해.”

  안쪽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는 책을 키 높이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 탑이 두 개나 있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운찬이가 말한 책 냄새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이걸 다 너 혼자 모은 거야?”

“아직 다 완성한 건 아니야. 벽에다가 책 속 장면들을 그릴 거야. 벽화처럼 말이야.”

“그래도 돼?”

“그럼! 기운찬 도서관이니까 기운찬 마음대로 꾸미는 거지!”

  운찬이는 바닥에 앉아 책 하나를 집었다.

“너도 하나 골라봐. 맘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도 돼.”

“넌 책이 그렇게 좋아?”

“답답할 때 여기서 책을 읽고 있으면 금방 괜찮아지거든. 엄마랑 있었을 때처럼.”

  천장 가까이에 난 작은 창으로 해가 들고 있었다. 햇살이 내려앉은 바닥에 얇은 담요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커다랗고 푸른 고래 한 마리가 하얀 바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운찬이는 담요를 크게 한번 펄럭이더니 두 개의 책 탑 사이를 천막처럼 연결해 덮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

“나처럼 이렇게 앉아서 저기 좀 봐봐.”

  운찬이가 비켜난 자리에 내가 들어가 앉았다. 구수한 책 냄새가 더 진하게 났다. 운찬이가 가리킨 맞은편 벽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저 높은 곳에 별 하나, 그리고 선 두 개로 그린 너른 들판이었다.

“이 그림 나도 본 적 있는데…. 어디서 봤더라?”

“저 별, 저기로 어린 왕자가 돌아갔잖아. 길들여 놓고는 훌쩍 가버렸지. 저 장면에서 나 엄청 울었어.”

“아! 그래, 생각나!”

“너도 그려볼래?”

“내가? 난 그림 잘 못 그려.”

“야, 미술 시험 보냐?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어딨어.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거지!

  좋아하는 장면 있어?”

  이제껏 독서록 숙제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그중에 떠오르는 장면 하나 없는 것이 참 이상하고 답답했다.

“모르겠어. 별로 없어.”

“그럼 이제 나랑 여기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하면 되겠네!”

  운찬이는 뒷벽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여기는 네가 맡아. 어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가슴속에서 푸른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듯이 마음이 마구 일렁였다. 그 후로 나는 학원 안 가는 날이면 운찬이랑 재활용품 수거장에 들렀다.

  그날도 운찬이는 기어코 찾아낸 헌책을 쥐고 나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야, 이거 완전히 노다지야. 너 노다지라는 말 알아?”

  멀리서 낄낄낄 웃음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뒤를 돌아보자 덩치 큰 애들 댓 명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애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내 주변에 늘어서더니 우리가 찾아놓은 책들을 발로 툭툭 찼다.

“우리 학교에 책거지 있는 거 알아?”

“맨날 더럽게 쓰레기 뒤지는 애? 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러긴. 아빠한테 배웠으니까 그러지. 걔 아빠가 쓰레기 장사잖아.”

“야, 조용히 해, 쟤가 다 듣잖아. 엄마 없는 불쌍한 애야.”

  애들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욕을 주고받았다.

  운찬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야, 너 전학생이지? 넌 아무리 친구가 없어도 그렇지, 어쩌다가 책거지랑 다니냐?”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운찬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 명이 운찬이의 등 뒤로 가더니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넌 왜 등에 쓰레기를 묻히고 다니냐? 어젯밤에 쓰레기장에서 잤냐?”

  애들은 과장된 몸짓으로 투덕거리며 깔깔댔다. 운찬이가 눈을 부릅뜨고서 천천히 돌아섰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아 나는 가슴이 조여왔다.

  운찬이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원순환센터야.”

“센터고 뭐고 그딴 건 필요 없고요, 너네는 왜 이사 안 가는데?”

“너희 아빠 보고 제발 그 쓰레기장 좀 치우라 그래. 사람들 코 막고 다니는 것도 안 보이냐? 여름 되니까 냄새가 여기까지 나잖아!”

“울 엄마가 그러더라. 거기 영화관 생긴다고 했는데, 쟤네 아빠가 안 비켜서 공사도 못 하고 있대.”

“완전 짜증 나는 쓰레기 집안이야.”

  붉어진 눈가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솟을 것 같던 운찬이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쓰레기는 너희들이야!”

“뭐? 참나! 어이가 없네. 이 더러운 책거지가 지금 누구보고 쓰레기래!”

“쓸 거, 못 쓸 거, 구분도 못 하는 너희가 쓰레기라고!”

  그중 제일 키 큰 애가 운찬이의 가슴을 두 손으로 팍 밀쳤다. 싸움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는 말려보려고 무작정 달려들어 봤지만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바람에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가까스로 다시 일어나 보니 운찬이가 키 큰 애를 바닥에 눕혀놓고 그 위에 앉아 얼굴에 주먹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운찬이를 떼어내려고 운찬이의 옆구리를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경비아저씨를 보고 내가 악을 썼다.

“그만해! 경비아저씨 온다!”

  다음 날 운찬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은 학원에 가는 날이었지만 내 발길은 저절로 운찬이네로 향했다.

  나는 운찬이네 현관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준 운찬이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서 날 보고 씩 웃었다. 운찬이는 휑한 밥상에 아빠랑 마주 앉으며 물었다.

“너 오늘 학원 가는 날 아니야? 나 때문에 지금 너, 학원 빼먹은 거야? 이거 완전 감동인데!”

  밥그릇을 대충 비운 운찬이가 바깥으로 나가자며 손짓했다. 운찬이랑 나는 평상에 벌렁 누웠다. 우리는 한낮의 새파란 하늘을 나란히 올려다보았다.

“나 곧 전학 가.”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학교에서 전학 가래? 걔들이 먼저 시비 걸었는데 왜 네가 전학을 가?”

“그게 아니라, 아빠가 일터를 옮긴대.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책은 딱 한 상자만 가져가래. 집이 좁아서 더는 안 된대.”

  울상을 짓는 운찬이의 얼굴을 난 그날 처음 보았다. 나도 가슴팍 가운데가 쑤셔왔다.

“다시 모을 거야. 두고 봐.”

  운찬이는 그달 말에 정말로 전학을 갔다.

  나는 그 후로 몇 번 더 크레파스를 챙겨 기운찬 도서관을 찾아갔다. 운찬이가 나에게 내준 벽에 푸른색으로 커다랗게 고래 한 마리를 그렸다.

  기운찬 도서관에 처음 왔던 날, 내 가슴속에 깊은 물결을 일으켜주었던 푸른 고래였다. 고래가 힘차게 수면 위로 솟아올라 첨벙 하고 큰 파도를 일으킬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회색 시멘트벽처럼 내 가슴 속에 가로막혀 있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짙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다음 찾아갔을 때 자원순환센터와 운찬이네 집은 빙 둘러 공사장 울타리가 처져 있었다. 속상할 것도 없었다. 기운찬 도서관은 어디선가 또다시 생겨날 테니까.

  전학 가던 날 운찬이는 수첩에 내 주소를 꼭꼭 눌러 적어갔다.

“내가 다시 기운찬 도서관을 완성하는 날 편지할게. 꼭 놀러 와. 알았지?”

  나는 아직도 혼자서 가끔 분리수거장을 기웃거린다. 운찬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벌써 열댓 권이나 챙겨 두고서 나는 운찬이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운찬이랑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함께 책을 나르던 시간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흐르고 있다.

‘운찬이에게 기운찬 도서관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새빛 아파트 앞을 지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은 기분 좋게 두근거린다.


  <당선소감>

   "마음 속 선한 물결 일으키는 작가될 터"

  저는 꿈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무얼 하더라도 딱 혼나지 않을 만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어른으로 자라나 무덤덤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꿈이 뭐야?”

  친구가 뜬금없이 던진 그 한마디는 제 가슴 속에 작은 씨앗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제가 그 씨앗을 잘 보듬어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은,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그 친구의 한마디 덕분이었습니다.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저도 동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제 동화를 선생님과 문우들이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동화를 쓰다 보면 제 안의, 여전히 어린아이인, 또 다른 나를 마주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숨기고 억눌렀던 저의 아이스러움을 이제는 동화의 세상에 마음껏 터놓을 수 있어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한계를 느끼고 상심할 때마다 진실한 격려로 저를 일깨워 주시는 김경옥 선생님께 크나큰 감사를 드립니다. 서로 동화 창작의 열기를 북돋우고 함께 고민하는 사막여우 글벗들에게 감사합니다. 저의 첫 독자로서 신랄한 비평을 선사하는 준헌이와 소정이, 끝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남편 우근씨, 도전을 권해주신 엄마와 아빠, 그리고 글 쓰는 며느리에게 ‘엄지척’을 해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지은 이야기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면 참 좋겠다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선한 물결을 일으키는, 친구 같은 동화를 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 -


  <심사평>

  "난독시대…아이들에 책의 매력 선사

  요즘 초등학교에선 한 학기 한 책 읽기를 한다. 동화책 한 권이 낱낱이 읽히고, 분석돼 그것을 기반으로 활동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어린 학생들이 내놓는 것이라고 우습게 여길 만한 것은 없다. 기발한 상상력과 구성력이 어른 못지않은 경우도 많다. 기성 작가라고 해서 방심할 수 없을 정도다. 정신이 번쩍 나고 위기감을 느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마당에 시대에 뒤떨어진 소재나 발상으로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신춘문예 심사가 유독 힘들었는데 바로 그 문제 때문이었다.

  지금의 아이들 수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안일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는 거다. 동화는 소설이나 시와는 분명 다르다. 1차 독자가 어린이다. 동화를 쓸 때마다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자각하고 깊이 고민하면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올해 무등일보는 당선작이 아니라 ‘가작’을 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수상한 엘리베이터’ ‘우리들의 욕 파티’ ‘이웃냄새’ ‘기운찬 도서관’ 네 작품이다.

  먼저 ‘수상한 엘리베이터’(최길옥)는 느닷없이 나타난 엘리베이터라는 소재가 나름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소재를 너무 많은 이야기로 펼치려다 중구난방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쉬웠다. ‘우리들의 욕파티’(김소은)는 아이들이 어른들 몰래 욕을 하는 모임을 만들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설정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욕 문제를 교훈적으로 해결하느라 ‘미친 여자’를 등장시키는데, 그 미친 여자를 주인공의 엄마로 설정하면서 균형이 무너져버렸다. ‘이웃냄새’(신명진)는 전체적인 구성이나 문장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부모 아이’를 그려내는 방식은 좀 더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이거야말로 낡은 동화의 전형처럼 보였다.

  마지막, 가작으로 선정한 ‘기운찬 도서관’(곽지현)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에게 책의 매력을 주인공과 친구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어른이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작품들과는 달리 아이들이 주도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선작이 아닌 가작으로 선정한 것은 이야기에 담긴 감성이 작가인 어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된 중고책의 냄새, 손을 타서 닳은 종이책을 근사하게 표현하는 아이라니? 인생 2 회차 사는 어린이가 아닌 이상에야 유튜브 시대의 어린이 감성은 아니라고 본다.

  심사평을 마무리 지으면서 부탁 말씀드리고 싶다. 아무리 신춘문예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최소한 공모전에 대한 예의와 형식은 갖췄으면 좋겠다. 특히 이면지에 작품을 대충 출력해서 보낸 거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또한 컴퓨터나 스마트 폰에서 보이는 웹소설 형식으로 동화 문단을 나누고 글을 쓰는 건 잘못됐다. 동화와 웹소설은 장르가 다르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면 동화의 문장과 형식을 먼저 익히는 것이 기본자세이다.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건필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 임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