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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벽 하나 / 신윤화

  “삐리리, 삐리리.”

  옆집 할아버지 휴대전화 소리다. 나는 수틀을 내려놓고 귀를 바싹 벽에 댔다.

  할아버지는 삼일째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역시나 휴대전화는 혼자 울리다 끊겼다.

  할아버지 방과 내 방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밤에는 할아버지 코 고는 소리도 다 들린다. 그런데 삼일 전부터 할아버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벽에 콩콩콩 노크를 했다. 하지만 콩콩콩 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초인종 눌러도 대답도 없고 대체 어디 가신 거지?”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엄마가 벌컥 문을 열었다. 

“숙제했어?”

  엄마는 책상 위에 놓인 수틀을 힐끗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엄마 마트 다녀올 동안 숙제 다 해.”

  할 수 없이 수틀을 침대에 던져 놓았다. 내 취미는 수놓기다. 내 방 커튼의 자전거, 이불의 로봇, 베개의 자동차 무늬들은 다 내 작품이다.

  부모님은 6학년 남자애가 바느질을 한다며 질색을 한다. 하지만 나는 밋밋한 천에 알록달록 무늬가 채워지는 뿌듯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숙제 공책을 펴니 답답했다. 서랍에서 사탕을 꺼냈다. 박하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옆집 할아버지가 준 거다. 할아버지는 사탕을 주면서 말했다.

“요놈은 답답할 때 속을 뻥 뚫어준다니까.”

  할아버지는 자주 화단에 계셨다. 3년 전, 이사를 와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곳도 화단이었다. 알록달록 화분이 얼추 40개가 넘어 보였다.

“다 할아버지 거예요?”

  내가 묻자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할아버지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럼.”

  나는 그다지 화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식물 키우기 숙제 때문에 장미 모양 다육이를 샀다. 하지만 다육이는 한 달도 안 돼 회색빛으로 썩어버렸다. 나는 화단에 화분을 털어서 다육이를 버렸다. 예뻐서 샀는데 알고 보니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다음에는 국화를 사 왔다. 물만 매일 주면 잘 자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내가 화단에 버린 화분을 건넸다.

“내 살려봤다.”

  놀랍게도 썩어버린 다육이 입에서 장미 모양의 싹이 돋아나 있었다.

“우와, 신기해요.”

“요 녀석은 섬세해. 물도 그냥 주면 안 된다. 만져서 말곰말곰 하면 주는 거야.”

“말곰말곰요?”

  할아버지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할아버지도 같이 웃으셨다.

  나는 다육이와 국화를 할아버지 화분들 옆에 나란히 놓고 키웠다. 말곰말곰한 게 다육이에서 물기가 살짝 빠져나간 상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화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화분들 중 제일 큰 건 상추와 고추가 심어진 화분이다. 그리고 제일 작은 건 다육이들이다. 

  할아버지는 비가 오면 어떤 화분은 주차장 쪽에 들여놓고 어떤 건 그대로 뒀다. 또 어떤 화분은 뺐다가 금세 들여놓아야 하는 화분도 있었다. 그중 꽃을 평생 한 번 피울까 말까 하는 선인장을 보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예쁘지도 않고 키우기 힘든 걸 왜 키우세요?”

“쉿, 듣는다. 사는 법이 다를 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내가 수를 놓는 것도 나름 최선을 다하는 걸까? 수놓기는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지만 부모님은 싫어하는 것, 친구들이 여자 같다고 놀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찬 바람이 불자 3층짜리 빌라 계단 모서리마다 화분들을 들여놓았다. 덕분에 빌라 사람들은 겨울에도 꽃과 화초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식물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을 들킨 날,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이 녀석들은 내 동무들이란다.”

“복지관에 가면 할아버지 친구들 많은데.”

“허허, 내가 낯을 많이 가려서.”

  나는 수줍게 웃던 할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박하사탕을 혀로 굴렸다.

  또 방문이 열리는 바람에 작아진 사탕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아빠다.

“엄마랑 다녀올 테니까 그때까지 숙제 끝내.”

  내가 목을 잡고 캑캑대자 아빠가 혀를 찼다.

  아빠는 ‘사내자식이’ 하면서 문을 닫았다. 할아버지는 사내자식이 바느질도 잘한다며 칭찬했는데.

  할아버지는 가지치기하다가 찢어진 남방을 계속 입고 다니셨다. 그 옷이 제일 편해 상관없다고 하셨다. 

  찢어진 자리에 딱 어울릴 만한 그림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옷 내가 고쳐 드릴게요.”

“네가?”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흔쾌히 옷을 내주셨다.

  나는 알록달록 꽃들을 수놓았다. 옷에 수놓기는 한밤중에 완성이 됐다. 다음 날 드리면 됐지만 얼른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는 할아버지 기침소리를 듣고 벽을 두드렸다.

“콩콩콩.”

  그리고 입을 벽에 대고 크게 말했다.

“할아버지 옷 다 고쳤어요.”

“콩콩콩.”

  할아버지가 벽을 두드렸다.

“그래, 지금 나가마.”

  그걸 시작으로 할아버지와 나는 벽 사이로 안부를 묻곤 했다.

  잠자기 전 인사는 매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 계신 걸까?’

  나는 벽을 노크했다.

“콩콩콩.”

“…….”

  오늘따라 빌라 전체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이대로는 수놓기도 숙제도 할 수 없었다.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띵동, 띵동, 띵동.”

  계속 벨을 눌렀지만 기척이 없었다. 

  나는 화단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 화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꽃과 화초들 중 몇 개가 시들한 모습으로 있었다. 매일 물을 먹어야 하는 꽃들이다.

  할아버지는 딱 하루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며 앞에 빼놓은 화분에만 물을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를 한 바구니 가지고 왔다.

  할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혹시 납치? 아니다. 할아버지는 너무 말라서 일을 시킬 수가 없을 거다. 길에서 쓰러지셨나? 그럼 경찰이나 할아버지 아들이 왔을 텐데. 집에서 쓰러지신 거 아닐까? 

‘혼자 사는 노인 몇 달 만에 발견.’

  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 제목이 눈앞을 스쳤다.

  나는 다시 할아버지 집 현관 앞으로 뛰어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났다. 나는 한참 동안 도어록을 노려봤다. 비밀번호는 1, 2, 3, 4다. 할아버지는 종종 간식거리를 사 오면 벽 사이로 나를 불렀다. 열고 오라고 비밀번호도 알려주셨다.

  요즘, 할아버지 집을 찾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1년 전까지는 아들이 종종 손자를 데리고 왔지만. 

  할아버지 아들은 할아버지가 해준 집도 날리고 가게도 날렸다. 이것도 할아버지랑 할아버지 아들이 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려 알게 된 사실이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온 그날은 할아버지 손자의 생일이었다. 집을 팔자는 아들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할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들에게 운전 일 계속하며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다. 할아버지 아들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이 씨, 코딱지만 한 이런 집.”



  코딱지라니 코딱지도 없으면서. 짜증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 타고 동네나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빌라 출입구 앞에서 할아버지 손자를 만났다. 할아버지 손자는 어깨를 웅크리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 앉아 있었다. 나보다 세 살 어리다고 했으니 할아버지 손자는 열 살이다. 

“안녕!”

  나는 할아버지 손자 어깨를 살짝 쳤다. 할아버지 손자가 벌떡 일어났다. 놀랐는지 커다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미안. 자전거 타려고. 너도 타볼래?”

  할아버지 손자는 벽으로 비켜섰다. 머쓱해진 나는 주차장 구석으로 가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싫으면 말라지.

“나 자전거 못 타는데.”

  뜻밖의 대답에 돌아봤다. 

“아직 자전거도 못 타?”

“배운 적이 없어.”

  할아버지 손자의 풀 죽은 모습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촌동생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뱉었다.

“가르쳐 줄까?”

  할아버지 손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이었을까? 할아버지 손자 얼굴에 미소가 아주 잠깐 스쳤다. 할아버지 손자는 작고 말라서 잡아주기 편했다.

  주말이어서 주차장에는 차가 두 대밖에 없었다. 자전거 연습하기에 딱이었다.

“넘어지려고 하면 넘어지는 쪽으로 바퀴를 돌려.”

  내가 손을 떼면 할아버지 손자는 겁을 먹고 두세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페달을 멈추지 말고 계속 돌려야지.”

  이삼십 분이 그렇게 흐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자전거를 배우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어른처럼 이야기했다.

“자전거는 다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좀 무서운데.”

  할아버지 손자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겁쟁이구나!”

  할아버지 손자는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이 수놓는 나를 보고 여자라고 놀렸던 기억이 퍼뜩 났다.

“괜찮아. 나한테 좋은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할아버지 손자는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 물건을 가지러 후다닥 2층까지 뛰어올라 갔다. 도어록 뚜껑을 올리는데 앞집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내 다시는 안 올 테니까 화분들 끼고 잘 사세요!”

  할아버지 아들은 나를 힐끗 보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할아버지 아들은 얼굴도 눈도 빨갰다. 술 냄새가 계단에 퍼졌다. 곧이어 할아버지가 계단을 쫓아 내려갔다. 손에는 RC카 박스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 선물로 뭐가 좋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RC카라고 대답을 했다. 

  계단에 난 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딴 거 필요 없어요!”

 “불효막심한 놈. 손주 생일날 선물도 못 주게 하는 게냐?”

  할아버지 목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나는 계단 창문을 내려다봤다.

  할아버지 손자는 아빠 손에 끌려갔다. 그러다 할아버지 손자가 내가 서 있는 창을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손자의 눈이 묻는 것 같았다.

‘형, 어떻게 해?’

  이윽고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다닥 집으로 들어갔다. 알은체를 하면 할아버지가 더 슬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자전거는 주차장 기둥에 세워져 있었다. 혼잣말을 했다.

“다음에 오면 꼭 배우자.”

  그때가 작년 9월이고 지금이 10월이니까 할아버지 손자를 만난 지 일 년이 넘게 흘렀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도 식물들을 돌봤다. 하지만 점점 화단에서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할아버지는 물을 먹지 못해 시드는 화초 같았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줘도 애써 웃는 것 같았고 벽을 두드리면 ‘할아버지 쉰다’ ‘할아버지 잔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할아버지 집 현관 도어록 뚜껑을 올렸다.

‘1, 2, 3, 4.’ 

  띠리릭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천천히 손잡이를 당겼다.

  집 안은 평소처럼 깨끗하고 조용했다. 신발장 위, 초록빛 화분 은은한 풀 향기가 났다. 박하 향이다. 향을 마시듯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용기도 생겼다.

“할아버지 계세요?”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할아버지가 주로 생활하시는 방문을 열었다.

  이부자리에 할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이 쿵 소리를 냈다.

“단우야!”

  할아버지가 나에게 손짓했다. 그러다 할아버지 손이 툭 떨어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눈과 양 볼은 움푹 파였고 얼굴은 새까맣다. 엉켜 있는 하얀 머리카락은 떡져 있었다.

“저, 저 정….”

  정신 차리시라고 하고 싶은데 가위에 눌렸을 때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할아버지 코에 갖다 댔다. 약하지만 숨결이 느껴졌다. 119 버튼을 눌렀다. 119가 올 동안 나는 구급대원 말대로 할아버지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손이 덜덜덜 떨려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할아버지의 몸은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바싹 말라 있었고 고린내가 났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119 아저씨들이 왔다. 아저씨들은 몇 가지 기계로 할아버지 상태를 확인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탈수 증상이야.”

  나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아저씨가 물었다.

“어른들은 아무도 안 계시고?”

“네.”

  아저씨들은 할아버지를 들것에 뉘었다. 야윌 대로 야윈 할아버지는 가뿐하게 들렸다. 아저씨가 말했다.

“걱정 마라. 연락하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려는데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

“삐리리, 삐리리.”

  할아버지가 누워 있던 이부자리 옆, 충전기가 연결된 휴대전화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검색했다. 방금 울린 전화를 포함해 최근 걸려온 번호는 다 스팸 같았다. 

  나는 주소록에 들어가 저장된 번호를 다 확인했다. 그러다 ‘우리 손자 단우’를 찾았다. 자전거를 가르쳐줬던 그 아이가 맞길 간절히 빌었다. 한참 동안 신호가 갔지만 단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휴대전화로 단우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다. 잠시 후, 남자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너희 할아버지 옆집에 사는 형, 작년에 나랑 자전거 연습했잖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 어떻게?”

“지, 지금 너희 할아버지 병원에 실려 가셨어.”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괴, 괜찮아?”

“탈수 증상이래.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드신 것 같아.”

“…….”

“방금 전, 할아버지 전화로 연락한 건 왜 안 받았어?”

  나는 따지듯 물었다.

“무서워서.”

“뭐가?”

“내가 아빠 배신하고 할아버지한테 가면 아빠는 죽는대.”

  단우는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한참 동안 단우 울음소리만 들었다. 요즘 아빠랑 고시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거실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방이 세 개 있다. 하나는 할아버지가 생활하는 방, 하나는 동화책과 레고가 있는 방, 하나는 아들 대학 졸업사진이 걸려 있는 방.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걸까? 그냥 같이 살면 안 되는 걸까?

  그 후로 많은 일이 생겼다. 경찰이 우리 집에 왔다가 갔다. 엄마는 겁도 없이 앞집에 혼자 들어갔다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게 놀랍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단우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RC카 상자를 꼭 안고. 단우는 눈이 붕어처럼 부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병세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결국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멍하니 단우 얼굴만 봤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단우는 아빠랑 할아버지 짐을 정리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단으로 내려갔다. 화단 앞에는 트럭이 서 있었다.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할아버지 아들과 아저씨들이 짐을 싣는 걸 지켜봤다. 

  할아버지 아들은 1년 전처럼 얼굴도 눈도 빨갰지만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단우가 울먹였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내 탓이야. 내가 좀 더 일찍 가봤더라면. 하루라도 먼저 갔으면.”

  나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단우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니야, 할아버지가 형 보고 고맙다고 전해 달랬어. 할아버지는 형이 용감하다고 했어. 나도 형처럼 용감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했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리고 단우에게 어릴 때 쓰던 자전거 보호대를 내밀었다.

“이거 하면 자전거 하나도 안 무서워.” 

  보호대를 받은 단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보호대 끈마다 단우 이름을 알록달록 수놓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화분이 많아 다 가져가기 힘들면 놓고 가도 좋다고 했다. 엄마가 돌봐준다고. 하지만 할아버지 아들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습니다.”

  아저씨가 가고 난 후, 엄마가 말했다.

“그 성격에 화분을 어떻게 키워. 말려 죽일까 봐 걱정이다. 걱정.”

  엄마 말에 맞장구를 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귓가에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당선소감>

   "시시한 글은?… 맞다! 동심을 잃은 글"

  글자를 읽기 전부터 책과 놀았다. 그림 보고 마음대로 읽고, 바꿔서 읽고 그림도 베껴 그리며 온전히 그 세계로 빠져들었다. 공부하면서는 코피 한번 흘리지 않았으면서 책을 보다가는 꼬박 밤을 새우는 바람에 쌍코피가 났다. 유치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동화책과 다시 가까워졌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은 수십 번을 반복해 읽었다. 글자를 모르는 경우에도 말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책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런 동화를 쓰고 싶다. 작가는 할머니가 돼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나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용감하게 시작은 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치면 손을 놓고 구경을 했다. 그러다 다시 시작하고 주저앉았다가 일어났다. 굼벵이 같은 모습에도 ‘동화세상’ 선생님들은 나를 끊임없이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드디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게 됐다.

  우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족한 작품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소식을 전하니 내 일처럼 좋아해주시고 축하해주셨던 ‘동화세상’ 선생님들과 지인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그분들의 웃음에 기쁨이 배가됐다.

  특히 김병규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에게 배웠으니 시시한 글은 쓰지 말라던 당부. 고민했다. 시시한 글은 어떤 걸 말씀하신 걸까?

  상업적인 글? 재미없는 글?…… 맞다! 동심을 잃은 글.

  유치원 교사라는 타성에 젖어 나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니? 문학성 다듬는다고 나는 잊고 있었지? 동심은 나에게 섭섭함이 많아 보였다.

  ‘미안.’

  내 사과에 동심은 속도 없이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 1978년 서울 출생 
  ● 명지전문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심사평>

  "이 시대 아픈 아이와 어른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쌓여 있는 응모작들을 다 읽고 떠오른 질문이다. 작가는 렌즈와 같아 남다른 색과 배율을 가져야 서로 다른 상을 맺을 텐데 이번 응모작들은 바람직하지 않게 유사한 작품이 많았다. 반복되는 소재에 비슷한 등장인물이 예상되는 갈등 끝에 교훈적인 결말을 맺는 이야기들. 담론의 크기가 작품성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고통과 소통 부재에 대해 더 크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품이 아쉬웠다.

  본심에 올릴 작품은 다행히 찾을 수 있었다. ‘괴상한 불청객’은 못되게 구는 슬기에게 경찰과 망태할아버지와 호랑이 등, 놀라운 존재들이 찾아오는 과정이 재미있었지만 놀란 슬기가 착해지는 결말이 너무 쉬워서 이야기가 힘을 잃었다.

  ‘여우잡기놀이’에서는 아이들이 놀이로 친구에게 여우탈을 씌워 괴롭히는데 탈을 다른 아이에게 넘길수록 점점 괴롭힘이 심해진다. 나중에는 탈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으며 뗄 수 없는 상징이 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부분과 군중심리를 잘 표현하다가 마지막에 진짜 여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무게가 분산됐다.

  ‘할아버지의 마트료시카’는 인생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판타지 동화였다. 손녀에게 유품으로 남긴 마트료시카 속에서 등장하는 할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만나며 유진이는 할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마법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가 깊어진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될 것이다.

  당선작 ‘벽 하나’에서 수놓기를 좋아하는 남자애, 사람보다 화분을 좋아하는 빌라 옆집 할아버지는 가족에게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롭다가 서로 벽을 두드려 대화하는 사이가 된다. 며칠째 대답이 없어 방으로 찾아간 남자애는 죽음 직전의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너무 늦었다. 가난과 고정관념과 외로움과 다툼과 죽음이 차례대로 등장하는데 ‘콩, 콩’ 벽을 두드려 소통하는 소리만으로도 희망과 온기를 전달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 시대의 아픈 아이들과 어른들을 향한 위로이자 심사 초반의 우려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 김서정, 김남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