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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냄새 / 최백순

  국은 끓을수록 악취를 더했다. 솥에서 머리를 꺼내 버리자고 누군가 말했다. 냄새나는 동물의 입을 대충 헹구어 솥에 넣었다는 것이 찜찜했다

  한여름 아침 9시경에 파묻었다는 개를 뜨거운 흙 속에서 캐낸 것이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개는 손으로 파내도 될 정도로 얕게 묻혀있었고 해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파낸 개는 어른의 상체만큼이나 컸다. 입은 벌어져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그 속에 흙이 그득했다. 거꾸로 세운 채 흔들어 입 속의 흙을 쏟아 냈다. 개는 죽어서도 뜨거웠다. 개는 물에 던져졌고 개가 떨어진 곳에서부터 흙물이 잠시 동안 빠르게 떠내려갔다. 물속에서 죽은 개를 흔들었다. 개털 사이에 끼었던 흙들이 거의 떨어져나갔다. 물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털 수 있을 만큼 흙을 털었다. 건져 낸 개의 감은 눈이 자는 듯 평온해 보였다. 벌어진 입 속의 혀와 혀가 놀던 공간이 허연빛을 띠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만큼 개울가는 조용했다. 그곳엔 햇빛을 가려줄 만한 것이 없었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둑 사이를 흐르는 물길은 구불텅했고 작은 모래톱들이 가소롭게 흩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섬처럼 떠 있는 풀밭으론 가끔 새가 날아와 앉았고 날아온 쪽으로 다시 날아가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다. 마을 편으로 난 둑의 끝나는 지점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고 나뭇잎을 너무 높이 달아서 그 나무가 만든 그늘은 쓸모없게도 논이나 뜨거운 돌밭에 드리우기 일쑤였다.

  돌과 모래가 열기를 뿜어대는 시간, 하루살이 떼가 흙바람처럼 덤비는 시간. 지경은 물에 반사된 햇빛을 피하며 나머지 한 손을 물에 담갔다. 지경의 굵은 팔뚝이 물속에서 죽은 개를 흔들고 있었다. 축 처진 개를 뒤집거나 옮겨야 할 때 도와주지 않고 물러서는 친구들을 향해 지경은 가끔씩 지독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친구들은 그저 찡그린 얼굴로 맑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개를 헹굴 동안 씻어놓은 널따란 돌 위에 젖은 개를 올렸다. 횟감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지경의 농담에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오늘 우리는 물개를 잡은 거야.' 지경이 녹슨 경첩을 펴듯 고통스럽게 허리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물기가 어느 정도 제거되면 개털을 불로 태워 긁어낸 다음, 배를 가르고 그 속에 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버릴 것이다.

  커다란 돌을 주워다 무릎 높이로 쌓고 개털을 그을릴 제단을 만들었다. 가운데를 비우고 불길이 잘 통하도록 했다. 개를 제단 위에 눕히자 힘없이 늘어진 개가 땅에 닿으려 했다. 지경이 받침돌을 주워오라고 소리쳤다. 지경의 친구들은 느리고 엉성하게 흩어졌고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돌을 들고 돌아왔다. 지경이 돌을 하나씩 탁탁 쳐서 땅에 떨어뜨리며 심사했다. 지경이 멀리까지 가서 크고 뾰족한 돌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와 제단의 가운데 심었다.

  지경은 마른 짚단에 불을 붙여 개털을 빗질하듯 쓸었다. 개털 타는 내가 코 속을 확 찌르고 들어왔다. 개털은 금세 까맣게 타들어 갔다. 겨드랑이 부위까지 들춰내며 털이란 털은 모조리 태웠다. 막대기로 개털을 쓸고 두드리며 타지 않은 털을 일으켜 세웠다. 그곳에 다시 불을 갖다 댔다. 검고 매끄럽게 털이 제거될 무렵 군데군데 살이 갈라터지기 시작했다. 털 벗은 개는 왜소했다. 배 부위가 점점 팽팽해졌다. 잔뜩 부풀어 오른 배를 지경이 막대기로 서너 군데 찌르고 탁탁 때렸다. 막대기 끝에서 검은 숯 먼지가 낮게 피어올랐다. 고소하고 씁쓰레한 냄새가 풍겼다. 지경이 희미하게 웃으며 얼굴의 땀을 훔쳐 흙바닥에 뿌렸다.

  불을 뺐다. 검게 탄 앞발을 모아서 한 손에 쥐고 나머지 손으로 꼬리께를 받쳐 든 지경이 일어섰다. 뜨거움을 느낀 지경이 물가로 뛰었다. 개의 턱이 뻣뻣하고 힘겹게 흔들렸다. 네다리가 하늘을 보게 하고 지경이 내려놓았던 칼을 잡았다. 목에서 한 뼘 반 아래에 칼을 꽂았고 생식기 쪽으로 그으며 내려왔다. 걸리는 게 있으면 칼을 조금 들거나 기울여 그곳을 통과했다. 칼이 같은 길을 여러번 오갔다. 지경이 칼을 놓았다. 갈라진 틈으로 손을 넣어 배를 열려던 지경의 손이 덴 듯이 튕겨져 나왔다. 개의 뱃속이 끓고 있었다. 지경은 곧은 나무토막 두 개를 벌어진 개의 몸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노 젓듯이 비틀어 배를 열었다.

  지경이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지경의 등 뒤를 에워쌌던 친구들이 흩어졌다.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개울가를 뒤덮었다. 친구들이 다시 땅에 묻자고 했다. 그러나 지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을린 개의 배를 마저 열었다. 막 죽은 것도 배를 찢으면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누구 하나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지경의 칼이 거칠게 움직였다.

  개를 물에 던져 넣고 뱃속 것을 모두 긁어냈다. 뱃속에 고요하게 감겨있던 내장들이 검붉은 핏물과 함께 쏟아져 나와 느슨하게 풀렸다. 간과 허파 따위의 시뻘건 덩어리는 통째로 따 버렸다. 단번에 떨어지지 않는 기관들은 뭉개고 으깨진 상태로 흘러갔다. 갈라진 배를 통해 등뼈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이자 지경은 참았던 숨을 뱉고 허리를 폈다. 떠내려가다 헝겊처럼 걸려있는 내장과 부속품이 멀찌감치 보였다. 지경이 턱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치우라고 했다. 지경의 친구들은 누가 할 것인지 소리 없이 서로 미루다가 결국 모두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번에도 지경이 그리로 걸어갔다. 물속에 손을 넣어 내장을 한 타래 건져 올려 물 밖으로 던졌다. 굵고 푸른빛이 도는 파리들이 소리 내어 날기 시작했다. 지경이 고기를 손질하는 동안에 친구들이 요리에 필요한 솥과 양념, 그릇 따위를 가지러 갔다.

  집집마다 파리채 떨어지는 소리와 끈적이는 등가죽을 방바닥에 굴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마을의 여름은 고요했다. 오전 10시, 지경은 잔뜩 심심해진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슬프게도 따로 출근할 곳이 없는 그가 별 수 없이 `출근'하는 곳이 바로 학교 운동장이었다. 회색의 조립식 담장을 따라서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짙고 깊은 그늘을 만들며 서있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시멘트로 찍어낸 벤치가 담벼락 쪽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지경의 출근이 일렀는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지경은 슬리퍼를 신은 채 벤치로 올라가 담장 너머로 큰 길을 내다보았다. 오는 녀석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턱을 빼고 길이 굽어지는 먼 데까지 살폈다.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지경은 팔을 담장 위에 얹고 가슴을 비스듬히 기댔다. 학교 앞 가게 아주머니가 오렌지색 바가지에 물을 담아 뿌렸다. 길 위에서 마른 먼지가 연거푸 떠올랐다. 지경은 슬그머니 담장 아래로 머리를 숨겼다. 외상값이 얼마쯤 될까 헤아려 보았다. 소주와 호치키스로 땜질한 문어다리, 그리고 라면. 지경은 공허하게 웃었다. 지경은 담장 위로 다시 머리를 올렸다. 쭈쭈바를 손에 쥔 아이가 가게에서 나와 가게와 나란히 붙어있는 이발소 쪽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이발소를 지나 왼쪽으로 난 작은 샛길로 접어들려 할 때 통통한 사내가 이발소 문에 드리운 발을 걷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의사들이 걸치는 흰 가운을 입은 그의 손에는 초록색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이발사는 술병을 든 채 허리를 낮춰 아이를 우우 몰았다. 아이가 재미있어 하며 소리를 크게 지르고 도망갔다. 허리를 펴고 되돌아 나오는 이발사의 둥글고 번질번질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빈 소주병에 남은 몇 방울의 술을 마른 땅에 떨어내고 가게 쪽으로 걸어가 자루에 넣었다. 그리고 차가 오는지 살피더니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 이발사도 이 동네 사람이 다 됐는지 빈 운동장을 무심히 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학교는 고요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이발사는 배를 맘껏 내밀고 입을 통해 숨을 쉬었다. 이발사의 콧노래가 막 시작될 무렵, 지경이 가래를 잔뜩 그러모으는 소리를 냈다. 이발사는 멈칫했다. 나무 뒤 벤치에서 지경이 일어서며 발로 침을 비벼 문댔다. 이발사는 지체 없이 돌아 나왔다. 가급적 태연한 체하며 천천히 걸으려고 애썼으나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서두르는 꼴이 되었다. 이발사가 교문을 나서자마자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울렸다. 뒷덜미가 섬뜩해진 이발사는 뛰기 시작했고 재미가 붙은 지경이 담벼락에 연방 무릎을 먹였다.

  통통한 이발사가 우리 마을에 나타난 것은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인근 촌 주민의 머리 스타일을 한결같은 모양으로 바꿔놓았던 먼저 이발사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해 여름, 가을이면 장가든다던 큰아들이 이발소 창문을 주먹으로 모조리 박살내버린 것이다. 아버지가 이발사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던 아들이 며느리가 첫 인사 오기 전에 문을 닫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못 들은 척했다. 아버지는 오히려 내가 뭘로 널 가르쳤는데 하며 화를 냈다. 아들은 유리 조각에 손목과 팔뚝 여러 곳을 벴다. 피가 쉬지 않고 철철 흐르는데도 날뛰기를 멈추지 않고 온몸을 날려 이발소 거울로 돌진하려고 했다. 출혈은 더 심해졌고 호흡이 가쁜 상태가 되어 응급차에 실렸다. 그는 응급차에서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살아났다. 이발소는 결국 문을 닫았고 깨진 유리창은 비닐로 된 비료포대를 오려 임시로 막았다. 그 사이 큰아들은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한복 차림으로 큰절을 했다. 방 한구석에 며느리가 두고 간 이바지 음식이 보자기를 쓴 그대로 가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마을의 이발사가 바뀌었다.

  새로운 이발사의 등장으로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마흔 중반의 나이였고 아래로 열 살, 위로는 스무 살의 연령대와 스스럼없이 말을 텄다. 금복주 맹꽁이 스님 같은 외모 때문인지 동네 아줌마들도 경계를 풀고 싱거운 장난말을 주고받았다. 이발소가 단순히 털만 깎고 가는 곳이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더구나 가끔씩 제공되는 소주와 이름 모를 고기 조각은 단골들의 충성도를 한층 높였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가 모든 머리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가끔 환기구가 막힌 요릿집에 앉아 머리를 깎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엄마께 고통을 호소하던 몇 명의 학생 머리는 아랫마을 이발소로 옮겼다. 어떤 녀석은 아예 버스에 머리를 싣고 시내 미용실로 나갔다.

  이발소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이 거울로 된 벽이고 오른쪽은 조그만 창문이 여남은 개 이어져 있어 기차를 타고 가며 밖을 내다볼 때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울 앞에는 커다란 이발용 의자 두 개가 코끼리처럼 앉아 있었다. 의자 중간에는 빠징코 손잡이 모양의 레버가 있었고 그것을 조작하면 손님의 콧구멍을 수직으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코털을 다듬거나 목젖에 난 털을 거품과 함께 쓸어낼 때 이발사는 레버를 내려 손님을 눕혔다. 다른 하나의 의자에는 가끔씩 염색약을 바른 손님이 앉아 졸고 있곤 했다. 창문 아래는 장판을 덧씌운 긴 의자였다. 이발소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그 위에 앉으면 애, 어른 차별 없이 차례차례 깎여 나갔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오른쪽 저편에 수도꼭지와 시멘트로 빚어 만든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자주색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주방과 침실을 겸한 공간이었다. 그 장막 속으로 들어간 것들은 어김없이 술안주와 연기가 되어 나왔다. 그야말로 마을의 주방이었다.

  겨울비가 내리는 11월 초순. 낮인데도 날이 어두웠다. 어깨를 움츠린 어른들이 하나 둘 이발소로 뛰어들었다. 밭에 나갈 뾰족할 이유가 없는 시기였다.

  장 씨(氏)는 엊저녁에 집토끼가 난데없이 죽기에 털을 벗겨 왔노라고 했다. 술안주로 일부러 잡았다고 하기에 쑥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손 씨(氏)는 돼지 내장을 깨끗이 손질해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포장지를 하나씩 들춰서 무엇이 들었는지 살펴 본 이발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커튼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누릿하고 매캐한 연기가 오르고 고기타는 냄새가 이발소에 가득 찼다. 이발사가 소주를 꺼내서 한 잔씩 돌렸다. 날씨가 뭐 이러냐며 날씨 때문에 술을 먹는 사람들 모임이 됐다가, 정치가 뭐 그러냐며 정치 때문에 술을 먹는 사람들 모임이 됐다. 머리를 깎으러 왔다가 포장마차 분위기에 휩쓸린 윤 씨(氏)는 얻어먹기 염치없다며 술을 샀다. 그가 준비해온 이발료를 오로지 술값으로 탕진하고 부스스한 머리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때 지경이 이발소에 들어섰다. 지경의 입장과 동시에 아저씨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반겼다. 지경은 그들이 보이는 호들갑스런 관심에 미간을 찌푸렸다. `술을 어지간히 처먹었구나.'싶었다. 지경은 소문대로라고 생각했다. 이발소인지 왕소금구이집인지 몽롱해졌다.

  “앉아, 섰지 말고.”

  어느새 이발사는 지경의 옷깃을 안으로 접어 넣으며 말했다.

  문을 다시 나서기에 너무 늦었다고 지경은 판단했다. 지경은 손에 쥐었던 겉옷을 긴 의자 위로 던졌다. 지경은 귀가 잘릴까봐 두려웠다. 이발사가 얼마만큼 취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경은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앉았다. 이발사는 잘린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경의 목에 수건을 묶었다. 너무 세게 조여 왔다. 지경은 얼른 목을 넓게 펴서 방어했다. 당장 일어나야 될 것 같았으나 이미 흰 보자기가 목을 감았고 이발사의 빗이 앞머리를 가지런히 쓸며 내려왔다. 이발사는 선반에 놓인 바리캉 기계를 집었다.

  “윗털만 깎을까?”

  이발사의 멋없는 농담에 아저씨들이 켁켁거리며 죽겠다고 웃어댔다. 이발사의 붉고 퉁퉁한 얼굴도 거울 속에서 음탕하게 웃고 있었다. 죽은 물고기처럼 눈알이 탁했다. 이발사는 바리캉 기계를 절걱절걱, 허공에 두고 연습하더니 지경의 목덜미에 바짝 대 올리기 시작했다.

  “형님들 좀 참아요.”

  술친구들이 무료한 나머지 혹시 가버리지나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대화의 끈을 매어두자는 계산으로 이발사가 말했다. 바리캉은 얼마 못 가 지경의 머리를 뜯기 시작했다. 지경이 어깨 밖으로 머리를 빼며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이발사는 바리캉 기계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가까이 대고 살폈다. 지경은 치미는 화를 누르고 눈을 감았다. 이발사는 바리캉이 끊긴 곳부터 다시 깎기 시작했다. 지경은 곧 뜯길 것을 예감하는지, 이를 꽉 물고 사고에 대비했다. 바리캉 소리가 나는 쪽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괜찮아?”



  이발사는 바리캉 잡았던 손등으로 지경이 아파하는 부위를 문질렀다. 이발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술기운을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지경이 눈물이 괸 눈으로 거울을 보았다. 아직 많은 고난이 남아있었다.

  “뭐하는 거야, 정말!” 지경이 눈을 부라렸다.

  이발사는 긴장했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손 씨가 어른께 무슨 말버릇이 그 따위냐며 지경을 꾸짖었다. 지경이 이를 악물며 눈을 감았다. 어린놈에게 반말을 듣다니 이발사는 분했다.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했다. 뒤집어 쓴 흰 보자기 아래서 지경이 주먹을 부르르 떨어댔기 때문이다.

  이발사는 가쁜 숨을 지경의 귓바퀴로 굴려 넣었다. 술 냄새, 불 냄새, 고기 냄새, 마늘 냄새가 뒤섞여 들어갔다. 헛기침 세 번에 한 번은 지경의 관자놀이에 맞았다. 그때마다 지경은 머리를 기울여 이발사의 숨소리를 피했다. 이발사는 집요하다고 할 만큼 식식대며 지경의 주위를 돌았다. 많은 상처를 남기고 바리캉 과정이 끝났다. 가위질 공정은 쉽지 않겠는가. 거울 속으로 모두들 안도의 시선을 교환했다. 졸음을 참고 앉았던 장 씨가 가야겠다면서 일어섰다. 이발사가 가위질을 멈추고 서둘러 출입문을 막아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 씨가 몸을 일으키며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고,'했다. 이발사는 전방위 압박에 가위와 빗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냉장고 여닫는 소리 후에 주방 쪽 거울부터 흰 연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지경은 거울에 비치는 신비한 풍경 속에 도인처럼 앉아 있었다. 지경은 기다렸다. 술에 미친 이발사 놈도 머리를 맡긴 나 자신도 한심하다는 생각에 지경의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다. 검게 탄 고기가 초록의 플라스틱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술잔이 한 순배 돌았다. 이발사가 먹어보라며 살점 하나를 집어 지경의 입과 코 사이의 가까운 허공에 띄웠다. 지경은 얼굴을 옆으로 돌려 냄새를 피했고 고기도 방향을 틀어 이발사의 입으로 들어갔다.

  “네가 고생이다.”

  장 씨가 고기를 씹으며 지경을 보고 말했다.

  이발사가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돌아와 가위를 잡았다. 이번엔 지경의 귓속으로 고기 씹는 소리가 들어갔다. 고기 한 점 먹고 와서 가위질, 한 잔 따르고 와서 가위질. 이발소에 들어선 지 50분이 넘었다. 지경은 분했던 마음이 어이없음으로 변해갔다. 이발사는 생각나면 잠깐씩 와서 가위소리를 들려주고 갔다. 지경이 마저 깎고 먹으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이발사는 대꾸가 없었다. 입안에 고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지경은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떴다. 거울 속으로 이발사의 둥그런 등짝이 보였다.

  “바쁘면 두고 가. 깎아놓을게.”

  이발소에서 흔히 쓰는 오래된 농담이었지만 이번에도 두 아저씨는 음식을 뿜어내며 웃음 터뜨렸다. 지경이 솟구치듯 일어섰다. 그리고 목에 감았던 흰 가운을 뜯어냈다. 가운의 겹친 부분을 물고 있던 빨래집게가 날아올랐다. 먼저 소리로, 이어서 거울을 통해 이발사는 위기를 확인했다. 그는 상체를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숨겼다. 그러나 지경의 주먹이 어퍼컷으로 파고들었다.

  지경은 논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마주 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깎다 만 머리를 하고 한길을 따라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30분 정도 빈 논을 걸었다. 지경이 아랫마을의 이발소에 들어섰을 때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도착과 함께 우스운 꼴을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명이나 순서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는 뜯다 만 못자리 같은 머리를 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참담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왜, 무슨 이유로 그 모양이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지경의 순서가 앞으로 당겨졌다. 모두 동정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이발사의 가위소리를 들었다. 시계소리 같았다. 향기로운 냄새와 따스하게 덥혀진 공기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생각했던 이발소였다.

  이 사건 이후 지경은 동네에서 상종 못할 놈으로 분류되었다. 이발사는 눈두덩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는데도 경찰을 부르기는커녕 붓기 빼는 약도 제 주머니에서 꺼내 샀다. 10년 연속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명예를 허물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장님의 설득을 수용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발사는 `사람 됐다.'는 소리를 싫도록 들었다. 이렇게 둘의 평판은 서로 대척점에 있었다. 이발사는 나이 터울이 스무 살이나 아래인 놈에게 그 꼴을 당한 것이 분하기도 했지만 나이고 뭐고 상관없이 주먹을 날리는 지경의 성깔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지경은 이발사를 벌레 보듯 했다.

  지경이 두 개비째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아랫마을 태덕이가 더위를 먹어서 벌개진 얼굴을 하고 그늘로 들어왔다. 몇 시간 동안 그늘 덕을 못 본 게 틀림없었다. 그의 손에는 깨끗하게 씻긴 삽이 들려 있었다. 그는 윗도리를 벗어던지려 했지만 땀에 젖은 셔츠는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았다. 낑낑대다가 결국은 옷에서 실밥이 뜯기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빠져나왔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잔뜩 구겨진 은하수 담배를 꺼냈다. 누에같이 구불구불해진 담배를 펴서 물었다. 그는 지경의 후배였다. 더운 날씨에다 욕을 해대던 그가 연거푸 두 개비의 담배를 빨아대더니 기어코 진정의 기미를 보였다. 지켜보던 지경이 다 큰 게 옷도 못 벗는다고 놀렸다. 지경은 시멘트 벤치에 누워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가는 광선을 입으로 끊어 먹는 시늉을 했다. 태덕이 삽날을 세워 맨 땅을 하릴없이 긁었다. 삽을 스르렁거리며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했다. 어디 가서 쥐약을 먹고 댓돌 아래 늘어져서 할딱대는 것을 아침에 발견한 것이다. 토하라고 비눗물을 타 먹여도 듣지 않고 죽어버린 것이다. 태덕이 개의 크기를 말했다. 여럿이 먹어도 될 만큼 큰데 어쩔 수 없이 묻게 되어 아깝다는 뜻으로 지경은 이해했다.

  “거기가 어딘데?”

  지경은 후배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후배는 가볍게 눈알을 떨었다.

  “형, 잊어라.그냥.”

  태덕은 담배를 낚아서 부리나케 학교 문을 빠져나갔다. 태덕이 햇빛 속으로 걸어 나간 지 10분이 안되어 지경의 친구들이 그늘 속으로 출근했다. 지경이 ‘아까운 개’ 얘기를 했다. 모두 신음에 가까운 탄식을 뱉었고 후배를 설득하기 위해 특사가 파견되었다. 후배가 평소 가장 무서워하는 놈이 특사가 되었는데 후배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았다. 놈은 ‘줄 수 있을 때, 네 것이 다 네 것이 아닌 게 이 세상 이치, 우리의 것도 된다’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말을 섞어가며 설득했다. 협박에 가까운 협상은 후배의 집 앞에서 결렬되었다. 태덕의 아버지가 마중 나와 수고한 아들의 어깨를 감아 집으로 들인 것이다.

  지경이 군에서 제대한 지 벌써 이 년이 넘었다. 그동안 여러 번 큰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찾았다. 반월공단의 금속도금 공장에선 잘못된 도금칠을 빼내는 파트에서 질산을 희석한 물을 다뤘다. 코 속이 헐었고 팔뚝엔 엷은 화상이 끊이질 않았다. 의정부 흥선터널 인근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선 단열재를 벽에 붙이는 시공법을 배웠다. 석고보드에 스티로폼을 접착하는 과정에서 그는 본드에 취했다.숨은 먹줄을 찾아 후후 입 바람을 쏘며 톱을 놀리면 석고먼지가 뭉게뭉게 떠올랐다. 먼지는 습기를 찾아 침전하므로 콧속과 목구멍 땀구멍을 메웠다. 그는 아침마다 수제 쏘시지 같이 부어오른 손가락으로는 연장을 쥐며 고향의 좁은 계곡에 살던 터무니없이 과장된 기형의 가재 손을 떠올렸다.

  지경은 마침내 일당도 웬만큼 되면서 자신의 배포와도 맞아떨어지는 분야를 발견했다. 보일러 시공이었다.파이프를 길이에 맞게 절단해서 나사산을 파고 밸브에 착착 끼워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밸브 이음새에서 한 방울의 물도 떨이지지 않을 때 그는 거만스레 큰 걸음으로 이 방 저 방을 몇 바퀴씩 돌았다. 주인이 보는 앞에서 보일러를 점화하고 따뜻한 기운이 배관을 타고 한 바퀴 돌아 나올 때 그는 행복에 겨워 벌어지는 입을 손등으로 가렸다. 언제나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농사일보다 백 배 나았다. 그는 자신이 미래를 대강이나마 그릴 수 있었고 현재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흥분했다. 그러나 그에겐 불행하게도 늙으신 부모님과 철없는 형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크고 젖은 눈으로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늙은 아비에겐 버거운 농사일이겠지만 분명히 넓지 않은 땅이었다. 지경은 두 눈 꾹 감고 집을 뛰쳐나갔다. 형이 알아서 하겠지. 바라건대 점차 잊히는 핏줄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서 오히려 가족에 대한 애정만 키웠다.

  마침내 그는 인생이 맘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자신을 실컷 타고 달리다 풀었던 말뚝에 도로 매어두는 것 같은 느낌을 지경은 지울 수 없었다.

  지경의 동네 친구들 역시 앞날이 뿌옇기는 마찬가지였다. 큰 매형이 대구에서 큰 석유가게를 하는데 거기 가서 붙어살까 고민하는 친구,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데 법이 생각보다 많다며 괜히 덤볐다는 친구, 비록 조그만 회사지만 면접시험까지 합격했는데 발령이 2년째 미뤄지고 있는 친구 등등. 비슷한 처지여지 서로 헐뜯지 못했다. 누구 하나 똑바르고 당당하게 사회로 나간 놈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끼리의 경쟁의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간 아랫마을 동창 놈이 추석 명절을 쇠러 왔다. 녀석이 몰고 온 차는 엷은 살구색 ‘다이너스티’였다. 어마어마한 차 값이 그들을 주눅 들게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드라이브시켜주는 동안 그들은 저마다 하루바삐 고향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너스티 친구가 좋은 자리가 나면 부르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서울로 올라간 후 그들은 전화기를 텔레비전처럼 시청했다. 그놈은 치밀했다.한 명씩 몰래 서울로 불러올렸다. 서울 방문을 마친 친구의 집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장판이 하나씩 깔렸고 이어서 집안싸움이 났다. 친구들 모두가 한 명씩 그놈에게 당했지만 서로 모르고 있었다. 그놈은 다단계 사기꾼이었고 마을은 풍비박산 났다. 이웃끼리, 친구들끼리 피차 쑥스러워하는 사이가 한동안 지속되었지만 서로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다분히 측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직장을 구해 마을을 빠져나가려던 그들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한숨과 무료함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시간의 8할을 점유하고 있었다. 먼지가 구석을 찾아 저절로 쌓이듯, 그들은 낮에는 빈 학교운동장, 밤으로는 둑길에 모여들었다. 마을에서 논두렁으로 질러가면 삼사 분 거리인 둑길은 손수레 하나 지나면 딱 맞을 폭에 양 옆으로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탓으로 밤낮의 통행량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경사진 뚝 아래로는 여름 내내 낮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 회원들의 참여율이 좋았고 무엇보다 맘껏 떠들어댈 수 있어 그만이었다.

  여름밤 술자리는 그들의 오그라드는 생활에 한 방울의 스테로이드를 주입하는 것과 같았다. 비록 술김이지만 가슴이 펴지고 소리가 커지는 시간대인 것이다. 동네 어른들도 그들의 영역과 시간을 존중했고 때로는 협찬의 표시로 더위 먹어 죽은 닭이나 담근 술을 보내왔다. 형편이 좋은 날은 낮에 잡은 물고기를 끓이거나 고기를 사다 구웠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날만 있지는 않았다. 며칠 나가서 일해 번 돈을 돌아가며 털어 먹고 있는 형국이었다. 고추장에 오이, 고추를 찍어 먹는 안주가 제일 빈번했다.

  대개 친구의 친구 얘기로 대화는 시작되어 정치, 국제, 스포츠 소식이 뒤죽박죽 뒤따랐다. 이어서 윗마을 아랫마을 사건사고 브리핑을 거쳐 하나하나 진상을 파헤치느라 목소리를 높였다. 이야기는 멀리멀리 맴돌다가 우리 마을이 예로부터 지지리도 복이 없었던 이유 따위의 해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부하느라 옥신각신 시간을 허비했다. 고증이 불충분한 주장과 엉터리 풍수학 따위의 잡스런 지식까지 늘어놓으며 그들은 취하기를 기다렸다. 일부러 먼 곳을 돌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쯤에는 이미 혀가 꼬부라진 상태였다. 꿈과 용기는 술이 약한 놈에게 가장 먼저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덜 취하려고 애쓰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밤마다 술병을 들고 둑으로 나왔다.

  협상이 깨졌지만 그들은 난폭해지거나 후배에게 해코지를 작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곧바로 어제와 다르지 않게 무료한 상태로 돌아와 다음 일을 계획했다. 그들은 학교 뒤로 가 흐르는 냇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그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더위를 식히는데 애고 어른이고 무슨 상관이냐고 말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시간에 냇물에 앉아 있을 나이는 지났다는 것을. 작은 피라미들이 볼펜심같은 눈을 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낮게 흐르는 물에 눕거나 엎드려서 물소리에 말을 섞어가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물처럼 빨리 흘러주지 않았다. 산으로 한 바퀴 돌며 복숭아나 자두로 배를 채우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반대표도 아니고 ‘귀찮다’가 다수였다. 이것으로 이후 일정은 파행을 예고했다.

  손과 발이 불어터지기 시작해서야 그들은 물놀이를 접고 집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출출해진 배를 쓸며 후배의 변심을 성토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었다.

  해는 서쪽으로 감질나게 이동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지루한 방법을 동원해서 긴 여름 시간을 죽여 보려하지만 무엇을 하든 그 끝에는 언제나 시간이 한 뭉텅이씩 남아 있었다. 이 세상에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없는 듯했다. 남아도는 시간이 그걸 증명하지 않는가. 그들은 ‘잠이나 자야겠다.’는 결심을 자주 했다.

  지는 해가 마루를 달구고 있었다. 지경은 잠의 밑바닥에 혼곤히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돌아누웠는지 한쪽 귀와 머리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어찌 보면 늙은이 같고 다르게 보면 아이 같기도 했다.

  태덕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태덕은 지경을 데리고 개울 건너의 돌 많기로 유명한 깨밭으로 갔다. 골라낸 돌들이 밭 가상이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태덕이 일러준 곳으로 지경이 걸어갔다. 지경이 발을 두 번 디뎠다. 얕은 곳에서 죽은 개가 흙과 함께 물컹거렸다. 지경이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여름의 긴 낮 시간이 가고 어둠이 왔다. 대용량 부탄 버너의 파란 불빛이 솥의 밑동을 감싸고 있었다. 솥 주변의 얼굴들도 그 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번질거렸다. 지경이 허리를 뒤로 젖히고 팔을 뻗어 솥뚜껑을 열었다. 머리를 건져낸 솥 안이 아까보다 정결해 보였다. 물이 굵고 거세게 끓고 있었다.

  지경이 나무 꼬챙이로 고기를 찔렀다. 힘주지 않아도 깊게 들어갔다. 지경이 먹자고 외쳤다. 지경의 친구들은 아무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경이 뒷다리를 건져 도마에 올렸다. 그리고 약간의 껍질을 도려내 입에 넣었다. 모두들 지경의 입과 눈에 시선이 쏠렸다. 지경은 천천히 고기를 씹었다. 씹기를 멈추고 입속의 냄새를 코로 내보냈다. 어떤 악취도 검출되지 않은 듯, 지경은 조금 더 깊숙이 칼을 넣어 안 쪽 살을 베어 냈다. 부위를 달리 해서 세 번 더 맛을 보았다. 아래턱이 신중하게 움직였고 목으로 넘기기 직전에는 쩍쩍 소리가 컸다. 지경이 고기를 집어 태덕에게 권했다. 태덕이 싫다며 물러났다. 옆에 앉은 친구도 지경이 권할까 봐 미리 일어섰다. 지경이 도마를 친구들 쪽으로 옮기며 강한 어조로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한참동안 도마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비켜 앉았다. 지경의 손만이 도마의 고기를 집어와 쓸쓸히 소금을 찍었다. 빈 술병이 하나 더 생산되었지만 도마의 고기는 그대로였다. 냄새나는 국물 때문일 것이라고 지경은 생각은 했으나 이처럼 차가운 반응은 기대 밖이었다. 지경은 솥뚜껑을 열어 뒤집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모두 건져 올렸다. 눈치 빠른 친구가 다시 끓일 거냐고 물었다. 지경은 넓적한 돌을 주워 뜨겁게 달궈진 솥발을 받쳐 들고 풀숲으로 가 국물을 쏟았다. 지경이 장을 찾았다. 친구들이 미안한 맘으로 지경을 돕고 나섰다. 남은 재료로 국물을 다시 만들고 익은 고기도 씻어 넣기로 했다.

  부탄 버너가 푸른 불을 다시 세웠다. 지경은 미뤘던 술잔을 큰 잔에 모아 마셨다. 오이와 고추가 소주의 쓴맛을 지우며 목구멍 따라 내려갔다. 밤 10시가 막 넘었고 술잔이 천천히 돌았다. 일찍 취한 친구가 멀리도 안가고 바로 돌아서서 둑 아래로 오줌을 갈기며 지껄였다.

  “이젠 개 송장까지 먹는구나.”

  그 친구는 비틀대며 마을을 향해 걸었다. 잠시 후 발을 헛디뎌 논두렁의 흙을 허무는 소리가 들렸다. 태덕이 따라가 부축했다.

  지경이 솥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친구 하나를 불러 냄새를 맡게 했다. 고개를 갸우뚱 했다. 다른 친구가 왔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가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도 지경이 맨 먼저 씹었다. 맛이 괜찮은지 도마 위의 고기를 빠르게 썰어 나갔다. 고개를 끄덕였던 친구가 고기를 집었다. 지경과 다른 친구들이 그에게 눈을 모았다. 소금을 찍어 먹으려던 그가 손을 내렸다. 지경이 답답하다며 자신의 입에 큰 고기를 넣었다. 하나 지경의 입은 더 이상 올바른 표본이 되지 못했다. 친구들이 도마 위의 고기를 넋 놓고 보고 있을 때 술에 곤죽이 돼 집으로 갔다고 생각했던 아까 그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형님 모셔왔다.”

  고주망태가 된 친구가 헤벌쭉거리며 말했다.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입과 눈도 다 풀어져 있는 녀석 뒤로 그와 버금가는 취기를 보이며 배불뚝이 이발사가 따라 왔다. 태덕이 두 주정뱅이를 번갈아 가며 똑바로 잡아 세우고 있었다.

  한 친구가 돌을 주워다 이발사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지경은 솥과 가까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경과 마주보게 된 이발사는 눈을 껌벅거리며 앞에 앉은 지경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지경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지경이 일어나 솥 옆에 섰다. 지경의 친구들은 이발사에게 먼저 술을 올리겠다고 난리였다. 아저씨가 형님이 됐다. 이발사가 첫 잔을 들이켰다. 도마 위의 고기를 집으려던 이발사의 손을 누군가 덥석 쥐었다.

  “형님, 이게 그거야.개새끼 죽은 거.”

  혀 꼬부라진 친구가 말했다.

  “형님이 맛보시고, 버리라면 버릴게요.”

  지경의 눈치를 살피며 한 친구가 말했다.

  “잘 논다.”

  지경이 손에 들었던 나무 꼬챙이를 어둠 쪽으로 있는 힘껏 내던졌다.

  이발사는 고기를 집어 코에 대고 킁킁댔다. 그리고 오랫동안 씹었다. 모두들 그의 입을 보았다. 그가 고기를 삼켰다. 먹어도 되느냐고 동시에 물었다. 이발사는 대답을 늦추었고 정적이 맴돌았다. 순간 지경이 이발사 쪽으로 튀어 나왔다. 겁에 질린 이발사가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며 피했다. 친구들이 지경을 제지했다. 지경은 옆차기, 뒤차기로 먼지를 피웠다. 씩씩대는 지경을 두 명의 친구가 덮쳐눌렀다. 술로 엉망이 된 친구가 지경과 이발사의 중간쯤에서 비틀거리며 명령조로 다그쳤다.

  “너, 지경이 이제부터 가만있어. 형님, 먹을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지경은 게거품을 물고 으르렁댔다. 친구들이 결사적으로 지경의 몸을 붙들고 늘어졌다.

  “버려!”

  이발사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작게 말했다.

  지경은 가만히 앉아 술을 마셨다. 한 명의 친구가 그를 감시했다. 흥은 가라앉았고 술에 취한 친구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다. 친구들이 솥을 들고 뚝 아래로 내려갔다. 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성긴 돌무덤 하나가 어둠속에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해거름부터의 수고가 모두 헛것이 되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경은 오이를 꺾어 먹으며 어두운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지경이 앉은 곳을 멀리 돌아 이발사를 배웅했다.

  지경은 점심이 가까워서야 눈을 떴다. 갈증이 그를 깨웠다. 굵은 비가 창틀에 부서져 방안으로 튀었다. 머리가 지끈했다. 그는 바짝 말라붙은 입술을 뜯어 벌렸다. 이틈과 잇몸에 숨었던 지독한 냄새가 코를 덮쳤다. 그는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벗어놓은 옷을 뒤져 담배를 꺼냈다. 옷에서 쉬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는 연기를 삼켰다. 구역질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눈알이 빨개진 그는 심호흡과 함께 이마의 땀을 씻었다. 창문이 열려 있었지만 공기는 흐르지 않고 멈춰 있었다.

  어제의 일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는 괴로운 듯 양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흙 아래서 출렁이던 개의 무덤, 발바닥부터 시작된 물렁한 느낌이 무릎을 거쳐 허리를 타고 올라가는 감각을 지경은 더듬어보았다. 갈라진 뱃속에서 뿜어졌던 경험하지 못한 악취와 뜨거움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이발사와 돌무덤을, 폭음을 기억했다. 늘 반복되는 여행, 그는 누군가의 여행을 대신 다녀온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토하고 또 토했다. 꿀물을 토했고 수박화채를 토했고 먹어보려고 시도했던 모든 음식물을 토했다. 엄지손가락 끝마디를 바늘로 땄지만 소용없었다. 오후 세시가 넘도록 위(胃)는 주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멀미약 먹어봐.직방으로 낫는다.”

  생사를 확인하려던 친구의 전화였다.

  지경은 흙탕으로 변한 길을 절벅거리며 약국으로 향했다. 그는 이발소를 지나기 전부터 걸음을 빨리했다. 그는 이발소 앞에서 우산으로 얼굴을 가렸다.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잔칫날도 그런 잔칫날이 없었다. 득시글하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간혹 국그릇을 든 어른이 보였다. ‘이발소에서 국밥까지 말다니,’ 지경은 헛웃음을 끝에 무언가를 부정하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약국의 처마 밑에서 그는 턱으로 우산대를 감아 잡고 꼬마 병에 든 멀미약의 뚜껑을 비틀어 땄다. 그는 소화제를 같이 먹었다. 뱃속으로 시원한 바람을 쏟아 부은 느낌이었다.

  그는 집으로 향했다. 지경은 태덕의 집 앞을 지나며 분주했던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때때로 자신을 미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지경은 모르지 않았다. 지경의 마음은 문이 뜯기고 텅 비어버린 폐가의 창고처럼 황량했다. 지경은 무심결에 한숨을 뱉었다. 지경은 널빤지 몇 개로 대충 이어붙인 허름한 개집을 보았다. 빗물이 밑동부터 젖어 올라오고 있었다. 적막했다.개 줄이 팽팽해지며 개집 벽을 탕탕 치던 소리, 도톰한 앞발에 턱을 괴고 비가 듣는 빈 그릇을 감상하던 개 한 마리가 저곳에 존재했었다는 기억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지친 여행객처럼 부드러운 눈빛으로 먼 곳을 보듯 개집을 보았다. 멀미약을 먹어서인가 정말 긴 여행길에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경은 느닷없이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함마저 깃드는 것을 느꼈다. 거북하기만 했던 속에서 시장기가 훑고 올라왔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발소를 막 지나자 지경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냄새.

  그는 돌아서 걸었다. 그는 뛰어서 단숨에 둑에 올랐다. 그는 개울을 내려다보았다. 누런 물이 허리를 크게 돌리고 있었다. 그는 경사진 둑을 내려갔다. 그가 짐작했던 곳에 돌무덤이 있었다. 이미 무덤의 반이 물에 잠겨있었다. 지경은 발바닥으로 돌무덤을 밀었다. 딱딱한 것끼리 닿는 소리가 났다. 그는 큰 돌 하나를 들어냈다.

  지경은 직감했다.‘여행이 또 시작되었다.’는 것을.



   <당선소감>

   "20년간 샅바를 맸다, 첫 경기서 황소를 탔다"

  나는 조용히 샅바를 맸다.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동안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모래판에서 나는 안다리걸기 배지기 덧걸이 따위를 연마했다.

  누군가 나의 땀을 비웃을까 봐 늘 작디작은 기합소리를 소곤거리듯이 질러대곤 했다. 편협하고 깊이 없는 기술이 몸에 배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세상엔, 그리고 세상을 뜬 선수 중엔 위대한 이가 많았다. 나는 그들의 개인기를 따라했고 같이 뛰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이렇게 커다란 황소를 탔다.

  넷북을 사준 아이들 엄마가 고맙다. 나는 구석을 찾아다니며 이 기계를 두드렸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는 고치고 버리는 과정이 더 길었다.맞춤법부터 띄어쓰기까지 만만한 게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한 편이 이번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준 한수산 최수철 선생님께, 나에게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어준 강원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당선 소식을 전해 듣고 별안간 부지런한 사람으로 변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마흔이 넘었기 때문이다.

  ● 최백순 (44)  
  ● 강원사대부고, 한국방송대 국문과 졸업  
  ● KT 원주네트워크서비스센터 무선팀 근무


  <심사평>

  "읽는 이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는 힘 보여줘

  최종심에 올라온 8편의 작품들 중에 우리는 ‘냄새’, ‘번짐’, ‘지나’, ‘밀탕개미길’, ‘하스타’에 주목했다.

  각기 소재가 다양했고, 수준도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이야기의 진행도 안정감을 지니고 있었고, 문장 하나하나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5 편의 작품 모두가 무엇보다도 소재의 발굴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선택한 소재를 가지고 오래 숙고하여 그 속에서 이야기가 우러나오도록 하는 데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번짐’은 문장력이 뛰어나고 글쓴이의 감성과 사유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중심 소재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고, 사건들 사이의 연결에서 우연성이 드러나며, 그로 인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거기에 비해 ‘냄새’는 일단 문장이 튼튼하고 적확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단어 구사를 통해 읽는 이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는 힘을 보여 주었다. 소설의 구성 또한 ‘냄새’를 중심으로 하여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함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기운이 계속하여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 한수산, 최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