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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피쉬테라피 / 김경락

  내 몸은 부유하는 섬이 되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실내 풀엔 아직 어둠이 서려 있다. 희미한 빛 아래 참방이는 물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온다.

  아쿠아블루 빛 페인트가 칠해진 사각의 풀 가운데 머리를 담근 채 떠 있는 내 몸은 태평양 가운데서 발견된 막 부패가 시작된 선원의 주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표류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살아남는데 죽은 그는 참 운이 없는 남자다. 하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표류기도 쓸 수 있을 테니 표류기 또한 승자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그간 읽은 타인의 표류기를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로빈슨 크루소,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15소년 표류기, 그리고 파리 대왕, 파리 대왕이란 제목을 기억해 낼 때쯤 뭔가가 몸을 훑는 낌새를 느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여전히 물에 몸을 맡긴다. 몸은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숨을 쉴 때마다 코에서 빠져나온 산소가 공기 방울이 되어 수면에 흩어진다. 더 이상 호흡을 참을 수 없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물에 잠긴 얼굴을 허공으로 쳐든다. 컥-, 코와 입에 들어찬 물을 토해낸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춘 탓이다. 풀의 난간을 잡고 심호흡을 한다. 그제야 조금 진정된다. 풀장 아래로 흔들리는 물결이 사각의 타일 문양과 겹쳐 환영처럼 흔들린다. 수면 아래로 완전히 빠져든 하반신이 흐릿하게 비친다.

  그때였다. 또다시 물속에 있는 자그마한 물체가 내 몸을 더듬고 지나치는 느낌이 온몸을 파고든다. 물에 잠긴 내 주위로 뭔가가 몰려들었다. 물고기다.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 떼. 새까맣게 몰려든 그것은 온몸에 달라붙는다.

  가라루파.

  물고기의 이름은 가라루파다. 나는 이들의 아버지이자 먹이 제공자이다. 아버지라는 표현은 좀 멋쩍으니 사육사쯤으로 해두자.

  나는 매일 새벽 흔히 닥터피쉬라 불리는 물고기가 가득 담긴 풀 속으로 잠수한다. 물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밤새 평화로웠던 풀 속에 누군가가 잠입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가라루파들은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잘 놀라는 족속이라 움직임이 꽤 민첩하고 절도 있다. 바닥에는 푸른색의 커다란 타일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닥터피쉬 풀은 가로 세로 오 미터 남짓한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커다란 파도 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풀 속엔 오천여 마리의 가라루파가 산다. 매일 풀 속으로 잠수해 일분 남짓한 시간 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서서히 떠오를 때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춘 내 몸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한다. 밤새 굶주렸을 테니 내 몸의 각질은 좋은 먹이가 될 것이다. 물고기들이 달라붙어 몸을 뜯는다는 건 상상만 해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아침마다 굶주린 그들에게 몸을 맡기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상상처럼 그들이 내 몸을 뜯어 먹는 건 아니니까. 가라루파는 내 몸의 각질을 핥을 뿐이다. 그 일은 그들에겐 식사였고 내겐 치료이기도 했다. 치료, 그래 나는 지금 치료가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말이다.

  '피쉬테라피'라 적힌 천장의 문구가 수증기에 흔들린다. 온천 겸 수영장인 이 리조트는 일 년 내내 실내 온도를 27도로 유지해주는 난방장치가 가동되고 있다. 이제 곧 손님이 몰리는 계절이다. 그 전에 나는 좀 더 물고기와 친해져야만 할 것이다. 반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하며 느낀 건 그들이 생각보다 영리한 족속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감이 맞는다면 그들은 내 몸의 맛을 기억하는 것 같다. 매번 물에 들어갈 때면 그들의 눈을 훑어본다. 그럴 때면 그들이 입맛을 다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물고기를 이용한 치료요법이라는 피쉬테라피는 이 영세한 지방리조트의 운영위원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시설물 중 하나다. 지역민의 자본이 들어간 리조트가 거대기업의 자본을 이기는 건 무리겠지만 빠진 이사이로 바람 빠지듯 빠져나가는 손님의 절반이라도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번이나 팔린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직 이 리조트는 그나마 잘 버텨나가고 있다. 리조트에 돈을 투자한 지역유지들도 살아야 하니까. 하긴 살아야 하는 건 그들만이 아니다. 나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라루파들도 말이다.

  평일의 리조트는 한산하다. 추수가 끝난 인근 시골에서 놀러 온 관광객이나 느긋하게 평일의 여유를 즐기는 중년 여성이 대다수다. 검은 선글라스에 짙은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도시에서 온 여자들은 다소 낙후된 시설에 투덜대곤 했다. 그러면서도 카드 할인에 적립 포인트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는 걸 보면 조소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시골의 촌부든 도시의 중산층이든 알몸에 걸친 수영복만으론 신분을 구분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이곳에서 신분은 리조트 직원과 손님뿐이다. 나는 리조트 이름이 적힌 하얀 티셔츠와 수영복을 입고 가라루파가 들어 있는 풀을 관리한다. 은혜라는 이름의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말이다. 우리를 손님과 구분해 주는 건 티셔츠와 목에 건 호루라기다. 그것은 이른바 새마을운동시대의 완장과 같은 격이다. 실제로 단체로 온 손님들은 얌전하게 내 말을 잘 따랐다. 특히 일본에서 온 노인들은 잘 훈련된 아이 같아 보였다.

  오후가 되었지만 수현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침부터 건 전화가 수십 통쯤 될 것이다. 탁-,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은 수화기가 신경 쓰인다. 다행히 사무실엔 아무도 없다. 삼십 분 간격으로 센터를 드나들며 전화를 걸었지만, 발신음은 곧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본다. 네 시 삼십칠 분. 한 시간 후면 리조트가 문을 닫을 시간이다. 조금씩 마음이 불안해지는 시간이다.

  불안의 실체는 명확하다. 풀로 돌아가자 오늘도 다섯 마리의 가라루파가 죽었다고 은혜가 말했다. 낮 동안 가라루파가 받은 스트레스는 저녁때쯤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은 대부분 그날이 채 끝나기 전에 수면에 배를 드러내고 떠있게 된다. 나는 매번 그것이 궁금했다. 왜 그들은 자신이 살던 물을 떠나 수면으로 올라와 죽음을 맞이하는 걸까. 부레에 들어찬 공기 때문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령 그들은 인간처럼 지상에서 숨을 쉬며 걷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 그렇다면 인간이라면 오히려 물을 택할지도 모른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에라도.

  풀 안에 갇혀 사는 물고기의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루에 네 번씩 절반 이상 물을 갈아주지만 순환되지 않은 오염된 풀 속의 물고기가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관리센터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박소장은 요즘 들어 재정문제에 더욱 민감하다. 그는 매일 물고기가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경위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가라루파가 죽는 요인과 정황은 물론 그날의 이용고객과 수온, 수질상태에 관한 정확한 기록까지 낱낱이 기재해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것은 가능하면 비싼 물고기를 다시 사야 하는 재정상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말라는 의미였다. 죽은 가라루파는 은혜가 체로 건져 올려 관리센터로 가져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에게 건네받은 가라루파의 주검을 젖은 수건에 싸 집으로 가져간다. 센터는 가치가 사라진 가라루파의 주검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누나는 수술 부위가 아린지 가슴에 손을 얹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멍하게 바라본다. 누나의 초점이 향한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카락 대신 머리에 쓴 비니가 어색하다. 병실은 육인 실이지만 대부분 퇴원하거나 자리를 비워 한적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밥그릇을 들고 탕비실을 오갈 뿐 실내엔 누나와 나밖에 없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물망초에 시선을 꽂는다. 그저께 꽃집에 들러 사온 것이다. 허리가 잘린 물망초는 시들었는지 고개가 쳐졌다. 마음 쓰지 마. 꽃병에 시선을 꽂은 내게 누나가 말했다. 가늘고 잔잔한 목소리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보기 드문 미인까지는 아니었지만 오 년 전의 누나는 화려한 드레스에 꽃을 든 신부였다. 유채꽃이 막 피기 시작한 사월이었다. 천정의 샹들리에가 빛을 발했고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이 피아노 선율에 맞춰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잡고 있던 누나의 손을 매형에게 넘기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 나는 누나가 갓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물망초 같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호수에 핀 물망초처럼 초연한 모습이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사월을 떠올려본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사월이 왜 잔인하다고 하는지 나는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누나가 시집을 간 이듬해 아버지는 급사했다. 사월이었고 병명은 뇌졸중이었다. 그때까지 몰랐다. 아버지는 번번이 머리가 핑 도는 고통을 약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걸. 간간이 버텨오던 사업이 손조차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단 사실을 아버지는 끝까지 숨겼다. 얼마 후 누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바람이 있다면 엘리엇이 말한 사월의 잔인함에 아무런 이유가 없었으면 좋겠다.

  병실을 나선 후에도 소독약 냄새가 한 동안 코끝에 맴돌았다. 수현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갈 뿐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며칠 전 수현은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난 자신 없어. 돈에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삶. 널 만나면 내 인생이 빤해."

  그녀의 목소리는 절망스럽게 떨렸다. 수현은 한참동안 소리 질렀다. 사소한 것에 고함을 지르는 건 그녀의 소통 방법이었다. 그녀는 거대한 소리의 울림 속에서만 자신의 말이 세상 밖으로 내던져지고 있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의 이별 이유는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돈이 있어야 한다고, 돈에 허덕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영세한 지방리조트의 사육사인 내게 미래를 맡기는 건 그녀에겐 정말 미친 짓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매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그녀가 나를 떠나지 못한 건지 내가 그녀를 놓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녀의 속물성을 경멸하면서도 때때로 연민을 느꼈다. 삶의 방식에 답이 없듯 그녀는 단지 그런 사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내게 그녀는 온통 틈투성이인 가련한 아이였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뻥뻥 뚫린 것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다. 지난 오 년간 나는 그녀의 틈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가 놓쳐버린 틈 사이를 채우고 있는 나는 아직 그녀를 떠나보낼 용기가 없다.

  수현의 빌라는 이 작은 도시의 외곽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차를 돌려 수현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빌라 근처에서 다시 전화를 건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창문 사이로 잔잔한 빛이 새어 나온다. 두 눈 속에 그 빛을 담으며 그녀의 방을 바라본다. 그 안에 어른거리는 것이 그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풀 속에 몸을 담근 나는 가부좌를 튼 채 가만히 앉는다. 새벽의 실내리조트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려온다. 몸을 고정하자 가라루파들이 서서히 나를 뒤덮는다. 밤새 굶주린 그들의 입에 닿는 피부는 섬뜩할 정도로 찌릿찌릿하다. 그다음에 오는 건 간지러움이다. 솜털이 온몸을 훑고 가는 느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 나는 무아의 상태에서 서서히 육체의 탈피를 느낀다. 온몸의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그럼 느낌. 내 몸을 희생제물처럼 내맡기는 그 모든 일은 성결한 의식처럼 이루어졌다. 치유대상을 찾아 헤매는 오천의 성자 사이에서 나는 길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탁발승처럼 오롯이 눕는다.

  "간밤에 가라루파 열세 마리가 죽었어요."

  오전에 은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리조트의 재정 상태를 알고 있는 그녀는 지레 겁먹은 표정이다. 은혜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물고기가 죽은 것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눈치다. 하지만, 물고기가 죽은 이유는 그녀의 관리태만 때문이 아니다. 짓궂은 이들은 가라루파를 손가락으로 건드리거나 잡으려고 했다. 가라루파가 그렇게 굼뜬 물고기는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죽어나가는 건 예사였다. 정신없이 풀을 지키다 보면 종종 관리 대상이 물고기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센터에 가라루파가 열세 마리 죽었다고 보고 했다. 가라루파의 먹이로 쓸 열대어 사료와 여과제 등 각종 비품에 대한 지출서도 제출했다. 책임자인 박 소장은 영수증을 꼼꼼히 살폈다. 그는 운영위원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올해 둘째 아이를 대학에 보냈다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그로서는 그저 윗선의 결정에 따라 최대한 경비를 줄이는데 매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절약해도 오천 마리의 가라루파를 기르는 데는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 든다. 피쉬테라피란 이름의 이 이벤트 풀은 다른 풀과는 달리 삼십 분에 삼천 원을 받지만 그것으론 무리다. 무엇보다 그 자체가 비싼 어종인 탓이다. 피쉬테라피를 만들 때 운영위원회는 가라루파가 아닌 중국산 친친어를 쓰라고 통보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였다. 얼마 후 친친어가 치료 효과가 없다는 방송을 타자 운영위원회도 잠잠해졌다. 친친어는 죽은 세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살을 파고든다고 했다. 이를테면 육식어종이라는 것이다. 그쯤 되자 운영위원회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리조트는 조용하다. 저녁 여덟 시가 되자 관리센터마저 텅 비었다. 은혜를 비롯한 아르바이트생들은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박소장의 눈치를 보던 직원들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박소장도 퇴근했다. 모두가 빠져나간 센터에 혼자 남겨졌다. 조용히 일어나 관리실의 불을 끄고 문이 잠긴 걸 확인한다. 현관을 나서기 전 물품창고에서 열대어 사료와 여과기가 든 비품 상자를 꺼내온다. 발소리를 죽여도 복도를 울리는 구두 소리는 완전히 죽일 수 없다. 상자를 주차장으로 가져가 차 트렁크에 싣는다. 우연히도 그믐달이 뜬 밤이다. 어둠 속에서도 심장은 뛴다.

  "돈만 좀 있으면 이혼 경력이 있는 남자도 괜찮아. 적어도 돈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살지는 않을 테니까."

  언젠가 수현이 말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녀는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반문했다.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오히려 도발적인 표정이었다.

  "네게 대체 나는 뭐지?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너의 사고가 의심스러워."

  "간단해. 넌 너의 길을 가. 나는 내 길을 갈 테니."

  "또 돈이야?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거야? 넌 그렇게 짐승처럼 단순하니?"

  "나도 그렇게 쉽다고 말하진 않겠어. 하지만 이건 인생이 달린 문제야. 감정은 짧아. 인생은 그보다 길지."

  차는 이 십 여분을 달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사료도매상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차를 대고 경적을 울리자 수조를 청소하던 오사장이 나와 트렁크를 열고 상자를 안으로 옮겼다. 물건을 모두 옮기자 그는 운전석 차창에 팔꿈치를 갖다 대고 말했다.

  "돈은 조용할 때 계좌로 부칠게. 박소장은 잘 있지?"

  그는 박소장을 들먹였다. 우리가 한배를 탔음에 대한 암시다. 나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하고 차에 시동을 건다. 무게가 줄었지만 차의 움직임은 더디게만 느껴진다. 백미러로 오사장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다. 퉤-, 뱉은 침은 멀리 날아가 아스팔트를 적신다.

  누나는 식판에 담긴 밥을 응시하다 간이탁자 아래로 밀어 넣었다. 바짝 마른 입술은 하얗게 바랬다. 누나는 나뭇잎을 모두 떨어버린 채 마지막 겨울을 버텨가는 나뭇가지 같다. 나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누나를 바라보는 게 갈수록 힘이 든다.

  "그 애는 어떻게 되었니."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며 정리되지 않은 단어사이를 헤집었다.

  "또 헤어지자고 해. 항상 그렇지. 자기 열등감에서 못 벗어나는."

  조소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잘 생각해. 사람의 마음이란 거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어쩌면 그 애가 호소하는 건 다른 것인지도 몰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이 호소하는 것이란 말이 머릿속을 배회하다 흩어졌다. 간호사가 들어와 누나의 맥박을 재자 대화는 거기서 중단됐다. 링거주사를 놓던 앳돼 보이는 간호사는 누나의 팔에서 혈관을 찾을 수 없다며 당황 했다. 잠시 후 그녀가 불러온 나이든 간호사가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으려 했고 나는 복도로 나왔다. 흡연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매형이 보였지만 그냥 지나쳤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음식이 담긴 쇼핑백을 든 낯익은 여자와 마주쳐 얼떨결에 목례를 했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누나의 시누이라 들은 것 같다. 병실을 나와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가 앉았다. 소주 한 병과 열빙어 구이를 시켰다.

  "시사모 말이죠? 그런 건 없어요."

  고무장갑을 끼고 횟감을 만지던 남자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바닥에는 몇 개의 생수통이 있을 뿐 수도시설은 없었다. 머뭇거리다 자리를 털고 나왔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잘 가라고 했다.

  수현은 시사모구이를 좋아했다. 우리가 즐겨 찾던 술집은 시사모 구이를 팔았다. 멸치처럼 생겼지만 그보다 조금 더 큰 열빙어라고도 불리는 시사모는 씹는 느낌이 독특했다. 배 가득 알을 품고 있어 알과 살을 따로 발라먹거나 채로 씹어 먹었다. 배가 통통하게 부푼 시사모구이는 오이와 흡사한 냄새가 났다. 발길이 닿은 곳은 시사모를 파는 술집이었다. 빈 잔에 소주를 따라 세잔을 들이 켰을 때 시사모가 나왔다. 꼬챙이에 꽂혀 나온 열빙어의 배는 여느 때완 달리 홀쭉했다. 이유 없이 심기가 불편했다. 오늘은 술을 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다.

  "난 열빙어가 좋아. 뱃속에 가득 품은 알을 씹는 감촉은 때론 황홀하기까지 하다니깐."

  시사모를 꿴 꼬챙이를 집어 들며 수현이 말했다. 시사모 구이는 꼬리와 배지느러미가 까맣게 탄 채 작은 접시에 담겨 있었다.

  "내가 본 열빙어들은 언제나 알을 품고 있었어. 적어도 자기 알들을 함부로 버리지는 않았어. 난 매번 알을 꼼꼼히 씹어. 한 알 한 알 모든 알을 혀끝으로 음미하듯 말이야."

  수현은 정말로 하나하나 헤아리듯 입안에 넣은 열빙어 알을 아주 오랫동안 음미했다. 그녀의 혀가 알을 보듬듯 움직여 나갔다. 갓을 씌운 오렌지 백열등 아래 그녀와 나 그리고 몇 마리의 열빙어만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취해 있었다.

  "나는 그 여자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결국 자식을 버린 거잖아."

  수현의 어머니는 그녀가 중학생 때 쫓기듯 집을 나갔다. 보증을 잘못 섰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사춘기 내내 집으로 찾아와 닦달하는 빚쟁이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게 두렵고 싫었다고 했다.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즈음 그녀의 어머니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다. 뜸하던 연락조차 완전히 끊긴 것이다. 수현 또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그제야 찾아온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녀가 보는 세상은 이미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려 기둥조차 세울 수 없었다.

  "돈은 모든 걸 살 수 있지. 사랑도 우정도, 그리고 목숨까지. 난 그걸 채워줄 남자와의 결혼이 필요해. 하지만 넌 아니야."

  수현은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건 모든 걸 갖춘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결혼 따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왜 나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걸까. 누나의 말대로 수현이 호소하는 건 다른 것인 걸까. 나는 그녀의 말과 행동 중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취할 것 같지 않은 날이지만 술은 몸 안으로 들어가자 내 몸을 모조리 장악했다. 나는 술집을 나와 수현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 그녀의 방은 형광등이 꺼져 있다. 깜깜한 방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이다 어깨를 늘어트린 채 골목을 걸어 내려온다. 그때였다. 앞을 걸어오던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본다. 당황스러운 얼굴의 수현이었다.

  어김없이 새벽이 왔다. 나는 한 걸음씩 풀 속으로 들어간다. 또다시 표류의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이 세상을 표류하고 산다. 세상이란 수면에 뜬 채 그 안에 갇힌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본다.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 등장하는 그들처럼 말이다. 세상이 완전히 눈뜨기 전 나는 가라루파를 먹여야 한다. 나를 먹임으로 나는 치유 받는다. 내게 치유란 별것 아니다. 그들에게 매일 공급되는 먹이와 나를 맞바꾸는 것이다. 웃기겠지만 그 행위는 나를 치유해 줄 것이다.

  풀에 반쯤 누워 눈을 감는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 자세를 고정하자 멀어졌던 가라루파들이 달라붙는다. 그들의 입이 닿는 신체 부위의 감촉. 각질을 갉아먹는 그 느낌은 조금 간지럽고 때론 따끔하기도 하고, 가끔은 정말 아프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내 몸이 던져진 곳이 피라니아가 가득한 아마존 강의 한 가운데라면.

  사육 중인 피라니아가 먹이를 뜯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닭이었다. 목이 잘리고 털이 뽑힌 하얀 생닭. 피라니아가 담긴 커다란 수조는 그 어떤 생명조차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아마존을 재현한 거대한 나무뿌리 사이로 몇 마리의 피라니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관람객은 유리 수조 사이로 닭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수조 안엔 그 무엇도 움직이지 않았고 잔물결도 없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긴장할 때의 습관이었다. 첨벙-, 약간의 피를 머금은 닭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피라니아들은 방향을 틀어 닭을 향해 달려들더니 이내 강한 턱으로 물어뜯었다. 그야말로 아귀다툼처럼 피라니아는 서로 할퀴고 밀치며 핏기가 가시지 않은 먹이를 탐냈다. 머릿속에 매일 아버지를 찾아와 멱살을 쥐던 이들이 떠올랐다. 돈을 갚으라고 소리 지르던 이들은 아버지를 밀쳐 넘어뜨렸고 엄마는 우는 나를 붙들고 이를 악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누나가 현관을 들어서다 말고 발길을 돌렸다. 누나는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젊은 여자가 자리를 뜰 때쯤 눈앞의 수조에는 너덜너덜해진 닭의 잔해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장내는 조용했다.



  가라루파에게 내 몸을 던질 때면 그 일이 겹쳐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피라니아에게 살을 물어뜯게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공존의 한 행위일 뿐이다. 내겐 치유가 필요하다. 무너져 가는 마음까지 치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상관없다. 썩어 문드러진 속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면 겉이라도 치유하는 것이 옳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도 삶의 방법 중 하나다.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입금자가 '제일수족관'으로 표시된 메시지를 급히 지웠다. 꽤 큰돈이지만 반품 원가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돈이다. 어떤 이유든 돈이었고 그것은 지금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해! 웃기니? 넌 날 돈 돈 하는 골빈 년쯤으로 생각하겠지. 어차피 돈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거면서."

  그녀는 불안한 걸까. 되풀이될지도 모를 지독한 가난이 그녀를 몸서리치게 하는 걸까. 어젯밤, 수현의 얼굴은 수척했다. 그녀는 취해 있었다. 회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일 밤 취했다. 취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그녀의 현실은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부축하려는 내 손을 뿌리치며 수연은 명확하게 말했다. 너의 가난이 싫다고, 추하고 역겹다고. 나는 그것이 왜 역겨운 일인지, 왜 추한 일인지 묻지 않았다. 나는 수현을 차 안으로 데려왔고 한참 동안 그녀가 내뱉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그녀가 정작 감당하기 힘든 건 자신처럼 상처투성이인 나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 안에서 그녀는 내 안에서 서로가 감당하지 못할 상처 자국을 본다. 우리에겐 먼저 치유가 필요하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그렇게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낸 그녀는 지쳤는지 입 안 가득 술 냄새를 머금은 채 시트에 기대 잠들었다.

  "열대어 사료 상자 개수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 이것밖에 안 되었나?"

  박소장이 말했다. 때 묻은 청색 작업복을 입은 그는 비품이 적힌 차트를 일일이 대조하며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 아침부터 그는 물품을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닥터피쉬 풀에 먹이로 주고 상자는 버렸겠죠, 뭐.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씩은 주문하는 거니깐 필요하면 더 주문하죠, 뭐."

  "이거 한 달 분 예산은 누가 짠 거야?"

  "그런 게 따로 있나요 뭐. 박군이 알아서 하겠죠."

  최실장이 대꾸했다. 말끝마다 뭐, 뭐를 붙이는 그의 느린 말투가 오늘은 거슬리지 않는다. 박소장이 눈치 챈 걸까. 한 달에 두 번 열 상자씩 주문하는 열대어 사료에 대한 특별한 관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부족하면 더 주문했고 남으면 주문량을 줄였다. 어떻게든 가라루파를 먹이면 되는 일이었다. 매일 먹이는 양은 일정했다. 상자 대여섯 개가 비어도 한 달을 버티면 문제없었다. 가라루파들은 아침마다 내 몸의 각질을 뜯어 먹고 연명했다. 그들은 나를 먹고 나는 그들이 먹어야 할 것을 먹고산다. 그들의 먹이를 빼돌리고 그들의 살을 먹고 그들에 의해 내 피부의 죽은 껍질이 떨어져 나간다. 그들은 매일 몇 마리씩 죽어 나갔고 나는 죽은 가라루파를 거둬 장사 지낸다. 나의 장사 법은 화장이다. 어젯밤에도 열다섯 마리의 가라루파를 불태워 없앴다. 가라루파에게 사후세계가 있는지, 아니 영혼조차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주검이 함부로 짓이겨지지 않고 깨끗이 사라지길 바란다.

  "이봐, 박군아. 내일부터 매일 지급되는 사료와 남은 사료에 대해 보고서 작성해. 위에서 하달된 거야.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건데 워낙 여기가 주먹구구식이라. 양식은 네가 대충 만들어봐!"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일어나 실내 리조트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 나갔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네가 뭐라 해도 우리의 미래는 변하지는 않아. 난 언제 다시 돌아설지 몰라."

  수현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현의 그런 말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녀는 다시 떠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수현을 왜 놓지 못하는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무의미한 집착인지도 모른다. 그 집착은 우리를 파먹고 있다.

  "다른 부위로 전이되면 보통 4기로 구분해요. 이 환자는 좀 애매하다고 하시더군요. 폐로 전이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어요."

  당직간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누나가 입원한 암 병동의 환자들은 모두 암을 앓고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암 환자를 대하는 건 지극히 사소한 일상처럼 보인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는 건 흡사 아마존 강에 담긴 몸이 피라니아에게 모조리 뜯기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

  "극한의 고통은 고통에 대한 불감증으로 돌아오는지도 몰라."

  창밖을 바라보던 누나가 말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누나는 말을 이었다.

  "몸에서 떼어 낸 암세포를 봤어."

  전보다 더욱 나직한, 톤의 변화가 없는 목소리였다.

  "피딱지가 붙은 벌건 살덩이가 비커에 담겨 있었어. 흉측한 물체였지만 놀라지 않았어."

  누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나는 뭐라고도 하지 못했다. 누나는 매일 조금씩 고통으로부터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광대뼈가 불거져 나왔고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에 다크서클이 생겨났다. 누나의 몸은 매일 조금씩 줄어들었고 하루하루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누나는 승자의 기록을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3, 4기 유방암 환자가 살 확률은 10% 정도라더군. 수술해도 다른 곳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고."

  매형은 무릎에 팔을 괴고 담배를 태웠다. 매형은 부쩍 담배가 늘었다. 타들어 가는 담배처럼 누나는 마지막 생명을 태우는 듯했다. 수조 속의 피라니아처럼 암세포는 매일 누나를 갉아먹었다.

  새벽의 실내 풀은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나는 그 고요함 사이로 한 걸음씩 풀 안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흡사 바가지에 담긴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소금쟁이처럼 사뿐한 걸음이다. 가라루파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

  풀 한가운데 자리 잡고 눈을 감는다. 이윽고 물고기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간 보듯 주변을 맴돌다 입술로 피부를 건드려 본다. 그러다 별다른 낌새가 없으면 본격적으로 몸에 달라붙는다. 이상한 일이다. 오늘은 몸에 닿는 가라루파의 입술 느낌이 평소와 다르다. 오늘따라 가라루파의 입술이 닿은 부분이 아프다…몹시도.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눈을 떴을 때, 나는 온통 붉은 액체로 가득한 풀을 봤다. 피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풀 안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걱대며 뭔가를 뜯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팔과 다리, 몸통 모든 곳에 그들이 달라붙었다. 가라루파는 내 몸을 갉아먹는다. 피라니아처럼. 그것은 정말 돌출된 강한 턱을 치켜들고 내게 돌진하는 육식어종이었다.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네 시를 가리켰다. 사방은 어두웠고 알람시계는 아직 울리지 않았다. 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욕실 유리에 비친 내 몸에 검붉은 반점이 보인다. 가라루파의 입술이 훑고 간 자리다. 그들은 정말 내 몸을 갉아먹는 걸까. 그런 걸까. 오랫동안 몸을 뜯게 한 탓에 내 몸은 불필요한 각질이 모조리 제거된 것처럼 얇고 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치료가 아닌 훼손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이 일을 그만둘 때가 된 걸까. 뭔가 낌새를 차린 박소장의 눈빛이 눈에 어른거린다.

  오전 내내 망설이다 오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제 그만 할래요. 이런 거 적성에 안 맞아요."

  하아-하고 어이없다는 투의 한숨 쉬는 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다.

  "야, 이 새끼야.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게."

  그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화를 내던 그는 잠시 후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누그러든 목소리로 이 일에 대해 무조건 입을 다물라고 다짐시켰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빼돌린 이 리조트의 비품들은 생각 외로 많을지도 모른다. 그와 연결된 사람이 나뿐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연다. 냉동실엔 얼어붙은 가라루파가 검은 비닐에 뭉쳐져 있다. 그것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엉겨 붙은 가라루파의 주검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다. 죽은 가라루파는 더 이상 치유의 물고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주검일 뿐이다. 한참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내일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녀는 왜 라고 반문했고 나는 그냥이라고 했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 혼란이 단지 그녀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스스로 빠져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수현은 알겠다고 했다. 한동안 나는 생각했다. 사슬을 끊는 건 그녀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떠다니는 남자의 주검을 떠올린다. 그가 다시 살아나 표류기를 쓰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는 호흡은 완전히 멎은 걸까. 수면에 올라와 배를 깔고 누운 물고기처럼.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 혼자 살겠다는 거야, 뭐야?"

  스쳐지나 가던 최실장이 물었다. 리조트내의 푸드코트를 지나칠 때였다. 평소완 달리 '뭐'를 붙이지 않은 빠르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새끼, 눈치 없긴. 아무튼 소장이 눈치 챈 것 같아 다들 조심하고 있으니깐 너도 입조심해!"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리조트의 비품을 빼돌린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아주 작은 부분인지도 모른다.

  자정쯤 은혜가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아침마다 내가 가라루파가 득실대는 풀에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박소장이 추궁하듯 물었다고 했다.

  "다 알고 있다고 했어요. 이미 다 알아봤다고."

  "뭘 알아봤다는 거야?"

  "모르겠어요, 저도."

  "그래서 뭐라고 했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죠?"

  다 안다니, 무슨 말일까. 열대어 사료와 비품을 빼돌린 걸 말하는 걸까.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다 알아보다니. 오사장이 모든 걸 말했다는 걸까. 설마, 그렇다면 오사장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다. 아니면 내게 모든 걸 덮어 쉬우려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박소장은 멋모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유도심문 했을 것이다. 박소장은 알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고 했고, 나는 알고 있는 걸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은혜는 아마 자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울 것이다.

  은혜에게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 있어 달라고 했다. 한참 머뭇거리던 은혜는 결국 알겠다고 했다.

  좁은 주방은 구운 물고기에서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했다. 수현은 내가 건넨 꼬챙이에 꿴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시사모를 좋아한다. 나는 물고기를 꼬챙이에 꿴 채 구웠다. 그래야만 시사모구이에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다. 수현은 받아 든 물고기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내가 먼저 한입 베어 물었다. 그제야 수현도 물고기를 입에 넣는다.

  "어때?"

  베어 문 그것을 혀 사이에 굴리며 물었다.

  "그냥, 그래. 근데 크기가 좀 작네."

  "먹을 만해?"

  "몰라 모르겠어. 뭐야, 이건? 시사모 맞아?"

  "가라루파."

  그때 나는 랩에 쌓인 또 하나의 가라루파를 꼬챙이에 꿰려 하고 있었다. 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라루파가 몸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치료해 줄 거야. 우린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잖아."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말했다. 경악한 표정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던 수현은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음식물을 게워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그것을 삼켰다. 오천 마리의 가라루파는 나를 갉아먹어 연명하고 나는 가라루파에게 나를 먹이고 그들이 먹을 것으로 나를 치유한다. 우리는 공존관계다. 수현과 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나를 갉아먹고 나는 그녀를 갉아먹는다. 우리는 결국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를 파먹고 산다. 그것은 수현과 나만이 아니었다. 오사장도, 최실장도, 매일 무언가 기생할 대상을 찾아 헤맨다. 순간 누나의 가슴에서 도려낸 암 덩어리를 떠올려본다. 암은 누나를 가차없이 파먹었다. 누나에게도 가라루파들이 필요했을까. 누나는 파먹을 대상을 찾지 못해 죽어가는 걸까.

  수현은 징그러운 짐승을 본 사람처럼 나를 피해 외투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녹기 시작한 가라루파의 주검들이 지상으로 배를 깐 채 눈알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는 꼬챙이에 꿴 까맣게 타다만 가라루파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누나의 몸은 하루하루 식어 늘어졌다. 영양분이 빠져나간 몸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해골을 떠올리게 했다. 머리에 쓴 비니 아래로 두개골에 붙은 움푹 파인 눈이 나를 바라봤다.

  "몰랐는데 간밤에 새댁이 혼자 울고 있지 뭐야. 내색은 안하지만 많이 아플 거야."

  병실을 나설 때 옆자리의 간호인 아주머니가 따라와 말했다. 그 눈에 흘러내릴 눈물이 아직 남아 있었던 걸까. 누나는 하루가 다르게 작아졌고 매형의 얼굴은 더욱 검게 변했다.

  "곧 퇴원할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걸 누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듬성듬성 환자가 빠져나간 육인 실은 여전히 한적하기만 하다. 그곳은 처음부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그저 거쳐 가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수현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번엔 그녀를 붙잡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인지도 모른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이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끊을 수 없는 그녀와의 끈을 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병원에서 돌아와 냉장고에서 가라루파의 주검을 꺼낸다. 그릴이 달궈질 때쯤 마트에서 사온 꼬챙이에 물고기를 끼워 그릴에 얹는다. 자작자작 물고기 굽히는 소리가 들린다. 물고기에서 나온 연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충분히 구워진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익혀야 한다.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가라루파를 그대로 둔 채 창문을 닫는다. 물고기 타는 연기가 짙게 배어 나온다. 작동 중인 환풍기를 끄고 집안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근다. 물고기는 새까맣게 타 먹을 수 없을 만큼 검게 변했다. 나는 비닐에 쌓인 물고기를 전부 그릴에 올린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타들어 갈 때까지 짙은 연기로 자욱한 주방에서 물고기 굽는 일을 반복한다. (끝)  


<당선소감>

   "잘하라는 질책으로 상 받겠습니다"

  새집으로 이사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인터넷 쇼핑몰에서 2980원 짜리 수면안대를 주문했다. 오 층 건물의 최상층은 내가 살던 어떤 곳보다 일찍 날이 밝아왔다. 모로 누운 나는 새벽의 미명에도 잠에서 깨 뒤척이곤 했다.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안대를 껴도 마찬가지였다. 안대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빛에도 몸은 금세 반응했다.

  요즘 나는 조금씩 밝은 데서 자는 법을 익히고 있다. 체질은 늘 변하는 법이다. 어릴 적엔 보기만 해도 기겁하던 음식을 어른이 된 지금은 즐겨 먹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문학적 체질도 유연해질 거라 믿는다. 나는 너무 내 안에 갇혀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불과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겠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수상 소감을 쓰다 말고 창문을 연다. 용산의 칼바람이 말 그대로 살을 엔다. 봄이 오면 노트북을 들고 집 앞 효창공원에 가볼 생각이다. 그때는 백범 선생님과 3의사의 묘소에 헌화하고 싶다. 지난 사 년간 나는 그곳에 묻힌 분들의 삶에서 내 삶의 목적을 찾곤 했다. 아직 용산을 떠나지 못한 건 이곳에 효창공원이 있기 때문이리라.

  잘하라는 질책으로 감사히 상을 받겠습니다. 잘해서가 아니라 좀 잘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과 소설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최규익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던 문우들과 기쁨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늘 하던 대로 꾸준히 쓰겠습니다.


  ● 1980년 대구 출생
  ●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심사평>

  "섬세한 심리 묘사 문학적 효과 더해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스타일로 그려낸 응모작들을 읽었다. 수준 이하라고 내던질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었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작품도 찾기 힘들었다. 글쓰기에 대한 접근은 쉬워진 대신 문학에 대한 진지함이나 열정은 사라진 세태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심사가 어려웠다.

  두 명의 심사위원은 백여 편에 이르는 소설들을 나눠 읽고 당선작이 될만한 소설을 두 편 정도씩 골라 논의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세 편이다.

  '거위 숲'은 이야기 전개가 무난하고 플롯이 안정되어 있는 등 소설이 요구하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소설이다. 그 점이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문장이나 사건, 인물들의 심리 등이 대체로 평범하고 특색이 없이 무난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노인들의 취업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안녕하세요, 주유하겠습니다'는 속도감 있는 문장과 현장감 있는 사건 전개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획득하고 있는 그와 같은 현장감과 직접성이 메타포나 알레고리, 상징과 같은 문학적 표현들에 대한 아쉬움을 상기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비해 '피쉬테라피'는 밀도 있는 문장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문학적 효과를 획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갉아 먹고 먹히는 것이 관계이며 삶이라는 생각을 절제된 이야기 속에 잘 담아냈다.

  우리 두 사람은 '피쉬테라피'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쉽게 합의했다.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문순태, 이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