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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사라지는 것들 / 배길남

 

"부산 동보서적 이어 문우당서점도 폐업 두 곳 서점의 죽음은 내 맘을 뒤흔들어 놓았다"


평론가인 친구가 미술관의 계약직 일을 제의해 왔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잘나가던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둔 지도 6개월이 지나있었다. 미술관의 일이란 데 호기심도 생겼고 딱히 글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던 터라 나는 순순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광안대교를 건너오는 첫 출근길의 인상은 빳빳한 새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해운대 신도시 쪽의 공사 중인 빌딩에서 반사된 햇빛이 가끔씩 눈을 할퀴곤 했다. 미술관의 일은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을 돕는 것이었는데 내 이름과 코디네이터라는 그럴듯한 직함이 적힌 명찰이 할당되었다.


미술관 학예 사무실의 컴퓨터가 부족하단 이유로 나의 자리는 미술관 지하 1층의 미술정보센터라는 자료열람실의 사서석으로 정해졌고 그곳은 관람이 중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학교 교실 4개를 합친 것보다 큰 정보센터는 먼지 쌓인 책의 종이가 삭아가는 냄새와 약간의 잉크 냄새가 깊게 배어있었고 지하 특유의 냉기가 은은히 돌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은 세계의 미술 관련 잡지 등이 진열되고 좀 더 들어오면 큰 창의 블라인드 사이사이 벽면에 관련 화가들의 흑백사진이 중후하게 걸려있었다. 왼쪽 편은 일반 도서관과 비슷한데 미술자료와 이론서, 문학, 사회서적 등이 두서없이 꽂혀있었고 자료의 반 이상은 라면박스 안에서 테이프로 꽁꽁 묶여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해에 죽었다는 '임호(林湖)'라는 화가의 유작 기록과 글들을 정리하고 타이핑하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한글 타이핑으로 알고 있었지만 기고문 위주의 자료는 50~60년대의 신문 기사 원본으로 절반 이상이 한자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옥편과 워드 프로그램의 한자 부수와 힘든 씨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보다 더 큰 애로사항은 오래 지난 종이 인쇄 특유의 바래진 글자와 구겨지거나 찢겨진 기사내용이었다. 정체모를 희미한 한자를 눈이 침침해지도록 쳐다보거나 없어진 기사 내용을 문맥에 맞춰 넣다보면, 내가 암호해독가로 일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곤 했다.


그 중 첫 시련은 1949년의 팸플릿 도록에 있었던 '伽倻山 庵子'라는 한자 인쇄였는데, 내 추리력을 모두 쏟아 붓게 한 다부진 녀석이었다.

일단 원본 자료자체가 용량을 줄인 JPG파일로 제공되어서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山'과 '子'밖에 없었고, 도록의 다른 그림 제목들과는 내용상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희미한 인쇄 상태지만 '伽'를 확대하자 '' 부수를 제외한 '加'를 읽어낼 수 있었다.

'가'라는 음가를 획득한 나는 '가○산'을 타이핑하고 몇 번이고 읽다 '가야산'을 떠올렸다. 작가가 부산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이용해 인터넷에 경남의 모든 산을 검색하자 가야산은 지리산 다음으로 쉽게 검색되었다. 가야산(伽倻山)의 '伽'와 '倻' 두 글자를 사진에 나와 있는 희미한 글자에 대조하자 80% 이상의 싱크로율을 보였다. 팸플릿 도록의 산은 '가야산'이었다.


그 뒤의 '○子'가 또 문제였는데 '산에 있는 자(子)자로 끝나는 말은?' 하며 수수께끼 노래를 50번 쯤 불러야 했고, 그제야 가야산(伽倻山)의 가(伽)자가 '절 가'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힌트를 얻어 알아낸 것이 산 속의 절 '암자(庵子)'. 드디어 다섯 글자는 '가야산 암자(伽倻山 庵子)'로 해독되었다.


다섯 글자 타이핑에 쏟아 부은 시간이 30분이나 되었다. 그림을 보지도 못했지만 벌써 수십 번은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엉뚱한 데다 에너지를 쏟곤 하는 내 버릇도 있었지만 빈 칸으로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30분의 결과물을 바라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곧 있지 않아 '가야산 암자'는 코웃음 칠만한 수많은 적들이 몰려와서 난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은 익숙해졌고 한자를 다루는 시간도 빨라졌지만 욕심을 내면 낼수록 정리할 자료는 도리어 더욱 늘어났다. 수박 겉핥기로 옛날 글의 한자나 번역해 파일만 만들어 내는 건 너무나 수동적인 소비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 옛날의 글이지만 현재의 문제들을 상기시켜 볼 수 있는 의미를 나름대로 찾기도 했다. 내가 주로 정리하던 '임호'의 글 하나를 소개하자면, '부산 화단(畵壇)에 동양화가(東洋畵家)가 희유(稀有)한 탓인지 매년(每年)처럼 중앙화단(中央畵壇)이나 타지방(他地方)의 노대가(老大家)라는 화가(畵家)들이 집시의 상인(商人)처럼 상례(常例)적으로 부산이라는 시장(市場)에 전을 벌린다. 더욱이 이러한 전람회(展覽會)일수록 모모기관(某某機關)과 모모신문사(某某新聞社)의 후수(後授)이 특서대필(特書大筆)로 되어있다. 말할 나위 없이 선전(宣傳)과 매각(賣却)의 후원(後援)이다' 라는 글이 있었다. 정리를 마친 후, 타자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읽다 나도 모르게 "서울이니 부산이니…, 지금이나 똑같구만" 하고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왠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부산이라는 시장에 전을 벌린다'라는 표현이 재밌었다. 다른 단어에는 필요치 않을 정도로 한자를 섞어 썼는데도 불구하고 '전을 벌린다'고 할 때는 한글 그대로 쓴 것이었다. 분명 '펼 전(展)'이 아닌 '가게 전(廛)'의 의미로 쓴 것이 분명했다. 지방에 내려와 뒷줄이나 대어 그림을 팔아먹는 인간들을 언급하다 울화통이 터졌을 거고, 쌍욕은 쓰지 못해 지적할 부분을 언어유희로 꾹 눌러놓았으리라 싶었다.


어쨌든 나는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모든 걸 평가하고 찾아내다가는 약속된 기간 안에 모든 자료가 정리될 수 없었다. 하지만 묻혀있었던 기록과 기사의 내용들이 나의 도움으로 전시장에서 새롭게 재조명될 것이었다. 지나간 무언가를 다시 살려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유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노동이 실제 현실에서는 일급 4만 원 안팎의 가치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이 씁쓸하기도 했다.


나와 일을 함께 하는 큐레이터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나와는 이야기가 통하는 타입이었다. 그녀는 내가 착실히 정리한 자료를 보고 만족해했고, 우리가 해야 할 전시기획 과정에 대해 비교적 동지의식을 가지고 친절히 설명해 주곤 했다. 물론 지하 정보센터에 주로 있어서 서로 부딪힐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을 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큐레이터와 식사를 하다 '한자 필기인식기' 프로그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마우스로 비슷하게만 그리면 알아서 한자를 찾아준다는 빛과 소금 같은 정보였다. 큐레이터는 여태 그걸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그 많은 자료를 정리했냐며 감탄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뒤로 나의 자료정리는 2배 가까이 속도가 빨라졌다. 이젠 시간이 남아돌 지경이었다. 다만 부수로 찾았던 한자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시간보다 마우스로 찾은 한자가 잊혀지는 시간이 10배 이상 빨라진다는 게 단점이었다. 한자 자격시험을 칠 것도 아니라 옥편은 어느새 구석자리로 밀려나 버렸다.


시간이 남아 돌자 지하 정보센터에서의 긴장감과 사명감은 점차 사라져갔다. 점심 식사 후의 식곤증에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았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낡은 신문 사진 대신 게임이나 웹툰, 비키니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정보센터에 타 부서의 직원이 아예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것도 아니라 나는 정말 4만 원어치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던 하루,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미술정보센터 안에서 할 수 있는 발칙한 짓들을 상상해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으면서도 별 피해가 발생되지 않는 못되고 나쁜 짓은 의외로 많았고, 그중의 몇 개는 다시 떠올려 봐도 제법 발칙해서 혼자 키득거릴 정도였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구석자리에서 섹스하기였다. 종이가 삭아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책장 사이에서, 사진에 걸려있는 흑백의 작고화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섹스를 한다는 건 왠지 가슴 떨리는 일이라 여겨졌다. 오래된 것들이 줄 수 있는 기쁨이 이런 쪽으로도 발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내 솔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두 번째는 정보센터의 자료 빼돌리기였다. 이곳은 쓸데없는 자료와 쓸모 있는 자료가 많다면 너무 많았고 적다면 너무 적었다. 아직 라면박스에서 나오지도 못한 자료가 수두룩했고, 뜬금없이 소설책이 미술자료 사이에 꽂혀있기도 했다. 거기에다 자료라고 하기에는 송구스러울 정도의(차라리 사료로서 전시되는 게 마땅한) 책이나 팸플릿 등이 비닐 파일에 들어가 연도별로 거칠게 정리되어 있었다. 솔직히 시간과 돈만 주어진다면 저런 자료들을 내 힘으로 멋지게 정리해 놓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일어나 책장을 살펴본 후 정말 실례할 거라면 미술관 도장이 찍히지 않은 70년대나 80년대에 출판된 소설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먼지에 쌓여 묻혀가는 것도 아까운데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 정보센터에서 푸대접 받는 게 안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세 번째는 보기 좋게 진열된 세계의 미술 디자인 잡지들의 배열을 내 맘대로 바꾸어 놓고는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하기였는데, 어쩌면 영원히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쳐왔다. 갑자기 무서운 감이 들며 아까는 에로틱해 보이던 저쪽의 구석자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날도 흐려서 컴컴한 게 지하의 커다란 공간에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불현듯 술 생각이 났다. 이러지 말고 이 공간과 화해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사진에 걸려있는 작고 화가 분들에게 소주 한 잔씩 올리자는 게 네 번째가 되었다. 물론 그 핑계로 내가 취할 때까지 마셔보는 거였다. 자료를 찾다 보니 조사한 화가 몇 사람만 해도 가히 전설의 경지에 오를 만큼 음주를 즐겼던 모양이었다. 특히 내가 조사하고 타이핑하던 화가 임호는 소주를 휘발유라 부르며 음복했다고 하는데, 가시던 전날에도 야외 스케치에서 과음해 갑자기 찾아온 고혈압으로 세상을 떴다고 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쳐 15번째로 발칙해지기 직전 나는 잠시 주춤거리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20번째를 채우리라 했었는데 아무래도 목표를 포기해야 할 듯 했다. 상상이란 행위는 현실이 개입하면 금방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바로 15번째가 그랬다.


'책 찾는 게 몇 개 있어서 그러는데, 여기 큰 서점이 어디 있냐?'는 친구의 문자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난 14번째 발칙함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오후 5시 즈음의 출출한 시간에 정보센터에서 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여먹을까, 삼겹살을 구워먹을까, 하는 선택이었는데 침이 정말 흥건히 고여 왔다. 난 사래 걸릴 걱정까지 하며 침을 삼키고는 '서면에 동보서적, L백화점 쪽 영광도서, 남포동 쪽이면 문우당 서점'이라는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답을 보냈다. 그리고 15번째 상상에 돌입하려다 "여기가 뭐냐? 서울간 지 얼마나 됐다고…. 쯧쯧!" 하고 친구에 대해 잠시 투덜거렸다. 다시 상상에 집중하려는데 '지금 동보서적 앞인데 간판 내려져 있구만'이란 문자가 왔다. "지금 5신데 무슨 헛소리야…." 내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친구의 문자가 연달아 날아왔다. '동보 망했다 지금까지 이용해주신 고객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붙어있다' 난 잠시 충격을 받았다.


"동보서적이 망했다?"


난 혼자 이렇게 뇌까려놓고서는 모든 행동과 생각을 정지시켰다. 정지 시켰다기보다 일정량의 충격을 받아 정지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잠깐 충격을 완화시킨 나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검색어는 말 그대로 '동보서적'이었다. 그러자 엉뚱하게 문우당 서점이 튀어나왔다.


'부산 동보서적 이어 남포동 문우당 서점도 이달 말 폐업'


'문우당 55년 역사 이제 뒤안길로…'


"문우당 서점도?"


난 다시 충격을 완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번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런 경우에 딱 맞는 사자성어가 설상가상일 것이다. 속담으로는 엎친 데 덮친 격 정도가 적당하겠지…. 이런 잡생각이 끼어들 때 쯤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친구의 문자에 너무나도 박력 있게 대답했던 세 서점 중, 두 곳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어릴 적 친한 친구가 갑자기 전학을 갈 때, 친구를 군대 연병장에 남겨놓고 돌아설 때, 즐겨보던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마칠 때,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략 그런 느낌들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게도 뭔가 더 깊은 곳을 푹 찔린 듯 충격과 허전함이 진하게 감돌았다. 이런 곳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공간이 생각과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른 것도 아닌 오래된 서점 두 곳의 죽음은 묘하게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약속 장소를 동보서적으로 잡아 기다리던 시간에 책을 봤던 기억, 여행 지도를 구하려 문우당까지 찾아가던 일들 따위가 낡은 앨범의 사진을 뒤지듯 지나갔다. 그런 젖은 감정 사이로 억지로 접어두었던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이 펼쳐져 밀려왔다. 비, 웃음소리, 술잔, 키스, 여행, 여름, 책, 이별…,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 난 많은 기억 중 갑작스레 떠오른 전화번호에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기억에서 지워진 줄 알았던 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할 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런 망설임 속에서 지하 정보센터가 어두워져갔다. 모니터에선 기사 밑 인터넷 서점의 광고가 하염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가끔씩 있잖아, 책을 읽고 있는데 눈으로는 지나가면서 무슨 말인지 입력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미안해, 입력이란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런데 더 재밌는 건 그렇게 지나가는 문장들 속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문장, 하여간 그런 문장이 있다는 거지. '아!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하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독서를 하더라도, 아까 말한 그 '눈에 확 들어온 문장'만큼은 다시 안 읽어도 된다는 거지. 확연하게 머릿속에 박혀있으니까 말야. 왜 그럴까? 그 문장이 나의 입맛에 딱 들어맞게 매력적이어서일까? 아니면 알지 못할 본능적 이유로 내 오감을 자극해서 일까?"


그녀가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난 옆자리의 젊은 남자 세 명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아!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부분에서 '아!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를 했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적당한 대답을 했다.


"반대로 다른 문장이 기분을 다운시킬 만치 지루하고 편향적이어서 쉬운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오게 된 건 아닐까?"


다행히 그녀는 내가 딴 곳에 신경을 쓴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 말을 이해 못했네. 이건 '확 들어온다'의 문제가 아니라 '왜 확연히 머릿속에 박히는가?' 에 대한 얘기야.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은 이미 일반적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는 전제가 함의되어 있는 얘기라구."


그녀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맥주잔을 비우고는 더 따라달라며 잔을 내밀었다. 동공이 살짝 풀려 술에 많이 취한 것 같지만 그녀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술을 잘 마시는 여자였다. 그리고 눈치가 빨랐다.


"네가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한 얘기와 조금이라도 상관없다면…, 죽었어!"


그녀는 '죽었어! '부분에서 맥주잔을 테이블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옆자리의 남자들이 쳐다보았다. 주변의 시선에 난처하기도 하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안하기도 했다.


"뭐 별다른 거 아냐. 그리고 네 얘기 랑도 상관있는 거 같아."


"좋아, 내 얘기랑 상관있다는 거지? 그 생각이 알고 싶어졌어. 나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다는 거지?"


자신을 서슴없이 미녀라 칭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넌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럼 내가 뚱뚱 호박덩이 아줌마라면 네가 내 앞에 앉아있기라도 하겠니? 아, 됐고! 빨리 말 안 해?"


그녀는 정말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정리가 되지 않은 이야기야.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잊혀진 걸 다시 복원하는 거잖아? 잊혀져가는 것과 중앙과 동떨어져 도외시 됐던 지역의 문화를 되살린다는 건, 보람 있는 일이라 여겨졌어. 사실 그 전엔 뭘 해도 했던 걸 다시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력했는데, 어쩐지 힘이 나며 뭔가 사명감마저 들더란 말이지. 그런데 요 며칠간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생각들이 굉장히 하찮고 미약하게 느껴졌어. 거대 자본의 흐름, 경제 논리, 치열한 경쟁…, 이런 말들이 불도저처럼 밀려와 나까지 깔아뭉개는 것 같았어."


"기특한 생각이긴 한데, 재미는 없네."


"재미? 그럼 조용히 들어. 우리 옆에 애들 있지?"


"젊은 총각들이네, 내 앞에 있는 늙은 총각하곤 차원이 다른데?"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저쪽이 하는 얘기는 '귀에 확' 들어올 거야. 네 얘기를 듣기 싫었던 건 절대 아냐."


그녀는 대체 뭔데 하는 눈짓을 보내며 옆 테이블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쪽의 얘기는 같은 주제에 따른 두 번째 에피소드가 한창이었다.


"P마트 옆 주차장 들어가는 길에 과일 파는 할아버지 봤어? 왜 옛날 보림극장 자리 있잖아."


"나도 봤어. 과일 진열을 너무 퍼지게 해가지고 차 지날 때마다 굴러 떨어지고…. 큭큭."


"과일 떨어지면 욕도 하고 그러는데, 보고 있으면 웃겨 죽겠다니까? 그런데 더 웃긴 건 거기서 과일이 팔리겠냐는 거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싸게 판다는 P마트 옆에서 햇빛에 시커멓게 타가지고 앉아있는데…, 말이 되냐?"


그 때 한 명이 꽤나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고 있냐고? 우리 할머니 생각나게. 병신같이 뭐하는 거냔 말이야."


"야, 그래도 나이 많은 양반들 나가 있는 게 사람구경도 하고 혼자 적적하진 않을 거 아냐?"


"그래, 맞아. 그 나이쯤 되면 일부러 일해서 시간도 보내고 치매도 막고 그러는 거야. 돈이 문제가 아니고."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더니 담배를 꺼내 들었다.


"앞에는 무슨 얘기였어?"


"마트 피자이야기."


"훗, 동네에서 피자 파는 사람들 또 바보 됐겠네."


"응."


"전부들 골고루 하는구나. 일자리 떨어진 것도 분해 죽겠는데…. 만약에 서점 얘기까지 나오면 머리통을 쥐어박고 오겠어."


그녀는 그리고 다시 맥주잔을 비웠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동공이 더 풀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니, 그만 두게 되었다. 직장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녀가 일한 곳은 동보서적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8년간 일했었다. 그리고 그 8년 중 어느 1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보낸 적이 있었다.


"저, 있잖아…."


"있긴 개뿔. 나 여기 싫어. 답답해. 우리 자주 가던 중앙동 그 술집에 가자."


난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걸 외면했다.


우린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타기 위해 예전 태화백화점 건물이 있는 거리로 걸어갔다. 사업주가 몇 번이고 바뀐 그 커다란 건물은 왠지 속이 텅 빈 느낌을 주었다. 서면의 밤거리는 전단지와 음악과 사람들로 한데 뭉쳐져 있었다. 이제 이곳의 밤은 유흥밖에 남지 않은 소돔이 되어가고 있었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그녀가 몸을 움츠렸다.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안본 지 벌써 1년이 다 돼가는 거 알아?"


몇 걸음 걷다 그녀는 손을 슬며시 빼며 말했다.


"담배 떨어졌어. 사올게."


난 걸음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올게, 잠시 기다려."


편의점에 들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곁에 있던 뭔가가 사라지면


이전의 외로움은 더욱더 큰 그리움이 되고…"


우리가 알게 되었던 것은 3년 전이었다. 그때 난 희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와 함께 동거하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셋은 친하게 되어 곧잘 어울렸다. 함께 여행을 갔고 함께 토론을 했으며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장마철, 셋이 술을 마시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진실게임을 할 정도로 엉뚱하기도 했다.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관계였다. 희는 헤어진 남자를 잊지 못했고 나는 희를 마음에 두었으며 그녀는 나를 좋아했고 그녀와 희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런 사실을 우린 숨기지 않았다. 도리어 이 네 가지의 관계가 충돌하며 일어나는 감정의 깊이와 사건들을 마치 프로야구의 순위 매기듯 체크하곤 했다. 그녀는 희와 관계된 여러 정보를 알려주며 나의 연애 전선을 독려하기도 했고, 난 감사한다며 희를 빼놓고 둘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희가 우리 곁에 앉아 있었고 둘의 밀담을 모두 알고 있다며 깔깔거리곤 했다. 우린 그렇게 1년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가 자주 찾던 술집은 근대역사관 근처의 대청로 옆 골목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아까와는 정반대의 을씨년스러운 거리가 펼쳐졌다. 부산의 얼굴과도 같았던 이 일대는 이미 도태되어 있었다. 술집은 간판이 바뀌어 있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자 인테리어는 예전 그대로였다. 마주 앉아 소주와 안주를 시켰다.


"우리가 항상 앉던 자리다. 훗!"


"주인이 바뀌었나봐."


"그래도 테이블은 똑같네. 어디 보자…, 어, 여기 봐. 우리 이름 그대로 있다. 와, 신기하지 않아?"


그녀가 가리킨 테이블 가장자리에는 그녀와 나의 이름이 희와 함께 적혀있었다. 그녀는 과장되게 웃었고 난 잠시 멈칫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오늘 갑작스레 날 보자 한 이유가 뭐야?"


"동보는 못 갔고 문우당이라도 가볼까 하는데 같이 갈 사람을 생각하다 네가 떠올랐어."


"흥, 떠올라 버린 거겠지."


"전화번호가 그대로더라구."


난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던 걸 숨기고 말했다.


"나 원래 가지고 있는 걸 잘 바꾸지 않잖아. 새로 뭔가 생겼다고 불편하지도 않은데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난 번호가 바뀌었는데…. 안 받을까봐 걱정했어. 왜 요즘 스팸번호도 많잖아."


"몰라, 실직 축하전화가 워낙에 많이 와서…."


그녀는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난 그대로 널 기다렸는데 넌 왜 그렇지 않았니?'라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녀를 안본 지 1년이 넘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지친 기색이 간간히 보여 서점의 마지막을 지켰던 피로가 남아 있으리라 넘겨짚을 따름이었다. 우린 말없이 소주를 마셨다. 안주가 식어갈수록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쌓여만 갔다. 테이블에 새겨진 이름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왜 이 술집으로 왔을까, 그냥 다른 곳에 갔다면 희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난 이 곳으로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희가 떠난 후, 둘만 남은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매일 만났다. 내가 서점으로 가기도 했고 내가 다니던 학원 앞으로 그녀가 오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 희에게서 연락이 왔냐고 물을 때만 고개를 저었다. 우린 영화를 같이 보았고 밥을 같이 먹었고 술을 같이 마셨고 같은 책을 돌려 보았다. 우리 사귈래? 난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희가 있던 집에서 희와 살던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모든 게 좋았다. 다만 희가 없을 뿐이었다. 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존재하지 않아도 우리 둘의 곁에는 항상 희가 있었다. 우린 말은 안 해도 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서로를 더욱 세게 껴안았지만 결국 외로움은 점점 커질 뿐이었다.


"나…, 아까 네가 뭘 말하려 했는지 알고 있어."


드디어 그녀가 입을 뗐지만 난 가만 있었다.


"나 사실…, 희가 어디에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녀는 소주잔을 만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눈을 다시 보았지만 내리깔고 있는 시선에 눈동자를 볼 수 없었다.


"내가 거짓말 못하는 걸 알잖아. 내가 숨기는 걸 알면서도 넌 항상 모른척했어."


난 대답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잔인한 새끼."


그녀는 내가 피고 있던 담배를 뺏어 물었다.


"피던 담배 뺏는 건 여전하네."


그녀는 웃었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 갔다.


"그렇게 하나하나 아는 척 하지 마란 말야. 아무 것도 모르면서…."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집의 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제야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희가 그렇게 떠났어도 우린 희를 탓하지 않았어. 도리어 그리워하기만 했지. 외로웠는지도 몰라. 희가 그랬어. 지금 아무리 외롭다고 느껴도 시간이 지나 곁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면 더더욱 외로워질 거라고. 그래서 이전의 외로움은 그리움이 될 거라고."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계속 말을 이으며 소주잔을 비웠다.


"희는 나쁜 애야. 결국 우릴 외롭게 했으니까."


그녀는 많은 술을 마셨고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난 차츰 그녀의 말을 그만두게 하고 싶어졌다.


"모두 떠나려고만 해. 그렇게 떠나고 떠나면 이곳은 차츰 더 외로워지겠지."


"그만 마셔."


술병을 기울이는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는 손을 뿌리쳤다. 난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했다.


"그 외로움 때문에 나와 사귀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헤어졌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녀는 아까처럼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날 바라보는 눈이 가끔씩 깜빡였다. 눈이 감겼다 떠지면서 검은 눈동자는 내게 집중되다 이내 흔들리곤 했다. 그때마다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어색해졌다. 그녀는 손을 빼며 조용히 대답했다.


"둘 다…."


그녀는 내가 떠난 이유에 대해서 에둘러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둘 다 희를 잊지 못했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우리의 뫼비우스의 띠는 희가 사라진 다음 일방적 직선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희를 좋아했던 건 맞아. 하지만 희가 떠난 후 너와 함께 지냈어. 넌 날 받아들여줬고 난 널 사랑했었어. 내가 널 떠난 건…, 그건 말야…."


내가 말을 잇지 못해도 그녀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나 취했어. 우리 그만 나가."


"몇 번이고 널 다시 찾아가려 했었어. 진짜야."


난 또 거짓말을 했다. 그녀를 달래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건지, 단순한 욕망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술집을 나와 걸었다. 남포동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반대방향으로만 걷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그만 가볼게."


"택시 타는 데까지 데려다 줄게."


"됐어. 그냥 갈게."


그녀는 손을 흔들고 뒤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녀는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었다. 따라가려 했지만 무언가가 막고 있는 듯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밀어내듯 걸어가던 그녀는 부산우체국 주변의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덩그러니 혼자만 남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에 발을 떼자 허공을 걷는 듯 다리가 휘청거렸다. 싸늘한 바람이 밀려와 나를 할퀴고 지나갔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했다. 걸음을 옮겨 골목 입구에 이르렀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발걸음이 빨라져갔다. 어두운 골목을 통과하니 희미한 가로등의 40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살피자 계단의 중간쯤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였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바보야,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슬픈 눈동자가 크게 보여 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안고 키스를 했다. 그녀는 잠시 거부했지만 곧 있지 않아 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체온과 숨결이 느껴졌다. 내가 입술을 뗐을 때도 그녀는 계속 울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숙인 채 날 바라보지 않던 그녀가 말했다.


"왜…, 왜 하필 지금 찾아온 거니?"


그날 중앙동의 어느 모텔에서 나는 그녀와 잤다. 그녀는 따뜻했고 편안했다. 잠을 자다 잠시 깨었을 때 그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냉정할 정도로 그녀를 찾지 않았지만 사실 그녀를 그리워했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그녀는 항상 내 곁에 있어줄 거라 생각했다. 난 그렇게 다시 잠이 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없었다. 허전한 마음이 들어 주위를 살피자 쪽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며칠 여행을 다녀 올 거야. 사흘 뒤 문우당 서점에서 만나. 오후 2시.'


난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꺼져 있었다. 무심코 쪽지를 버리려다 잘 접어 지갑 속에 넣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씻고 미술관으로 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문서작업이 끝나고 나는 정보센터와 작별을 했다. 상상은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지만 나와 정보센터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아 약간 섭섭하기도 했다. 미술관의 남은 일은 전시할 그림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 외엔 우체국 심부름이나 초대장 봉투를 접는 등의 시시껄렁한 잡무가 대부분이었다. 미술관의 업무도 서서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몇 번이고 통화했지만 그녀의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있었다. 큐레이터에게 말해 휴무를 얻었기에 집에서 여유 있게 나와 남포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조금 서두른 탓에 오후 1시 30분쯤 남포동에 도착했다. 남포동은 오랜만이었다. 극장가엔 여전히 'PIFF'란 글자가 도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국제영화제는 남포동의 것이 아닌 해운대의 것이었다. '영화의 도시 부산'이란 슬로건이 '영화제 말고 볼 것 없는 부산'이란 말 아니냐는 한 친구의 독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산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다 절대 'Dynamic'하진 않다고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는 길을 건너 자갈치 쪽으로 걸어가 문우당 서점으로 향했다. 동보서적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미안함을 문우당 서점에서나마 풀 수 있는 게 그녀 덕분이라 여겨졌다. 입구에 서 있었지만 오후 2시가 되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려다 꺼져있었던 걸 상기하고는 서점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서점에 들어가자 매장 안은 한산했다. 폐업을 며칠 앞두었지만 매스컴에서 떠들었고, 책을 20% 이상 할인해서 북적일 거라 예상했는데 정반대였다. 다만 이 서점을 상징하던 큰 액자의 지도들을 내리느라 한쪽이 분주할 따름이었다.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주위의 직원이나 몇몇 손님들도 멍하니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여직원이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디서인가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다. 울고 있던 여직원은 플래시가 터진 쪽을 노려보다 나가버렸다. 언론사의 기자가 사진을 찍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태까지 관심도 주지 않다가 정작 문을 닫는다고 하니 취재를 왔을 것이다. 내리고 있는 액자와 여직원의 눈물, 그만치 좋은 취재사진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정작 이 곳에서 일하고 생활했던 사람들의 감정은 어떤 것일지….


그녀는 1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까의 여직원이 내 곁을 지나갔다. 플래시가 터지던 장면을 되새기다 문득 그 상황에 그녀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나와 그 사진기자는 뭐가 다를까? 그녀도 8년이 넘게 근무하던 서점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때 그녀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이해하는 척만 했지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2년 전 희가 떠났고 1년 전 내가 떠났고 이번엔 그녀의 직장이 떠났다. 그녀는 항상 제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다려 주었다. 찾아오지 않는 떠나간 것들을.


그제야 그녀가 왜 문우당 서점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녀가 중얼거리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두 떠나려고만 해. 그렇게 떠나고 떠나면 이곳은 차츰 더 외로워지겠지."


순간 가슴이 휑해졌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에게 서둘러 전화를 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몇 번이고 다시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불현 듯 그녀가 떠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당연히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 잊고 있다가도 언제든 찾으면 그 자리에 있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진다면….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난 수십 번도 더 확인했던 전화결번 메시지를 다시 듣고 서점에서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희가 그랬어. 지금 아무리 외롭다고 느껴도 시간이 지나 곁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면 더더욱 외로워질 거라고. 그래서 이전의 외로움은 그리움이 될 거라고."


한 달이 지나갔지만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종종 그녀가 남겼던 쪽지를 꺼내보곤 했다. 쪽지를 버리려고 했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문우당 서점은 예정대로 사라졌고 그녀도 사라져 버렸다. 사흘 뒤에 만나자는 약속은 이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난 외로운 사람이 아닌 그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젠 내가 기다려야 할 차례였다. 그녀의 여행이 얼마쯤 늦어질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쪽지를 보고 있노라면 글씨가 희미하게 흐려질 때가 있었다.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당선소감>

 

하나의 관문 통과… 꿈 향한 길 아직도 험난


사라지는 지역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작가의 꿈이 만나 오늘의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 옛날 '용의 구슬'이라는 고전에 이르기를 '대마왕을 물리치니 베지타가 나왔고 또 물리치니 후리자가 나왔으며 다시 물리치니 마인부우가 나오더라'고 했다. 이제 겨우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꿈을 향한 길은 나태, 가난, 외로움, 그리고 편견이란 강적들로 더욱 험난할 것이다. 몽테크리스토 형님의 말이 생각난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어머니, 아버지, 동생, 매제, 유현이 모두 사랑합니다. 친척 어른들 감사합니다. 순대까페 사장인 쓴소리 성용, 단소리 정임, 자신감을 준 희철, 충고 아끼지 않는 만석, 뭘 해도 내 편 종해와 승욱, 서울의 태식, 재혁, 정식형님, 쌍둥이 아빠 박사장, 스터디 지형, 현경, 내 다리 전문가 승준, 고추친구 재홍, 송현, 민규, 동창 남규, 율필, 권혁, 병근, 홍미, 블로그 친구 찬도리, 바비, 멜론, 고마운 유주, 친구의 친구 재현, 매제 친구 병찬, 학원 동료들과 꼴통들, 사촌 태경, 자생, 태호, 의형제 세진팀장과 병수, 이외에도 이름 없다고 삐질 사람들…. 당신들이 없었다면 나의 조그만 성과는 생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심사위원님들과 소식 듣고 기뻐해주신 조갑상·박훈하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1974년 부산 출생

●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지역 유명서점의 몰락 사회문제로 확장 성공


170여 편의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논의된 것은 'BIN'(임연화), '환견'(김광섭), '사라지는 것들'(배길남) 세 편이었다.


'BIN'은 아내의 실종으로 인한 화자의 이상심리적 현상을 그린 작품이다. 반쪽만 보이는 병든 눈, 겉돌기만 하는 인간관계, 채워지지 않는 아내의 빈방, 마침내 자신마저 실종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 병리 현상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이 시대의 보편적 현상이나 의미를 길어 올리는 데는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환견'은 사상자를 낸 화재 현장에 세워진 개척 교회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을 다룬 작품. 개와 인간의 광기와 폭력적 사건들이 각각 점으로만 찍혀 있을 뿐 선도 면도 갖추지 못해 서사는 물론 어떤 의미망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성행하는 디지털문화와 반대로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인쇄문화의 서글픈 현실을, 특히 부산의 전통 있는 유명 서점의 몰락을 중심축으로 눈에 잡힐 듯 사실적으로 그려 한 지역의 문제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문제작이다. 탄탄한 문장 또한 오랜 수련을 거친 것으로 믿어져,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쉽게 합의를 보았다. 작가의 대성을 빈다.


심사 김윤식, 유익서, 함정임, 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