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제신춘문예 소설 우수상 당선작] 치킨전쟁 / 최재민
<당선작>
사라지는 것들 / 배길남
이제 막 해가 떠올랐다. 오늘도 대한읍 노가네 본점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노가네가 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당 5천원에 판매한다고 붙여둔 광고전단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조기축구를 끝내고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내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 한마디씩 던졌다.
“저거 말이여. 대통치킨, 저거 5천원이라고 하던 디. 저거 하나 사겠다고 이른 댓바람부터 줄서있는 거보면 참 놀라워.”
“맞구먼. 하여튼 대한읍 사람들 참말 대단들혀. 닭 한 마리 사겠다고 저리들 공을 들이니.”
“그나저나 노가네가 저렇게 닭을 싸게 팔면 우리 대한읍 닭장사들은 다 어찌 되는 겨. 다 망하는 거 아닌 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노가네가 온 마을에 다 있는 것도 아니고, 배달도 안 해준다고 하던데. 뭐 며칠 반짝하다 말겠지.”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구만유. 만약에 말이유. 싸다면 무조건 달려드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다 노가네서 닭을 사먹어버리면 지금 대한읍에서 닭집 하는 사람들은 다 새 되는 거요. 다 망할지도 모르쥬.”
“일리는 있는디. 고런 거 땀시 망하기까지야 하것는가.”
“쓸데없는 참견 말고 가던 길 가자고.”
목도리에 귀마개, 털벙거지까지 쓰고 나선 박가는 노가네 본점 앞을 벌써 몇 시간째 사수하고 있다. 대충 앞에 있는 줄을 헤아려 봐도 다행히 박은 안정권이다. 못해도 상위 20%안에는 들것 같다. 아침밥도 못 먹고 한 시간을 달리다시피 걸어온 박이다. 싼 치킨을 구할 수 있는 삼백명안에 들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박의 늙은 몸을 전사로 만들어줬다. 먼 길을 걸어야 했고, 눈비에 찬바람까지 섞여 불어대는 모진 날씨와 맞서 몇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러고서야 한 마리 프라이드 치킨을 포장해갈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사실 혼자 먹자고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허기진 참새들처럼 종일 배고프다 입을 쩍쩍 벌리는 손주들을 생각해 나선 길이다. 치킨 집에서 배달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아들은 이제껏 집에 튀김 닭 한 마리 가져온 적이 없다. 사장인 친구한테 괜히 손 벌릴 수 없다는 별시덥지않은 자존심을 세우는 탓이다. 꼴랑 백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벌어오면서도 늘 유세를 부리는 아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구녕을 내주고 싶지만 얹혀사는 처지를 생각하며 가까스로 참는 박이다.
그렇다고 아들이 영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못 가르쳐서 배운 게 없고, 못 먹여서 피골이 앙상한 채로 어른이 된 아들이다. 그래도 가장이라고 꼬박꼬박 생활비를 대는 아들이다. 가난한 살림을 못 견디고 며느리가 어린 손주들만 놔둔 채 사라진 그날에도 눈물을 머금고 치킨 집 배달을 나갔던 아들이다. 그나저나 박은 오늘따라 노가네가 고맙고 반갑기만 하다. 사실 노가네는 대한읍에서는 알아주는 장사치다. 유독 면과 리가 많은 대한읍에 무려 80여개의 점포를 두고 장사를 하고 있는 노가네다. 명실상부한 대형유통업체인 노가네는 고등어에서 속옷까지 안파는게 없는 그야말로 만물상에 가까웠다. 그런 노가네가 느닷없이 직접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한읍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닥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긍정적 입장이었다. 박이 바로 그런 입장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노가네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영세 상인들의 골목장사까지 빼앗을 속셈이라는 강한 비난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노가네의 입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박은 사실 그런 노가네가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자, 여러분이 기다렸던 개장시간입니다.”
오전 10시, 드디어 육중한 철제셔터가 올라가고 노가네 본점의 문이 열렸다. 그사이 사람들의 줄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필사적이었다. 흡사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처럼 얼굴에는 닭을 꼭 사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배여 있었다. 박의 얼굴에도 닭을 얻기까지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기운이 가득했다. 언뜻 보면 계백의 오천결사대와 같은 분위기였다. 좀 더 정확이 이야기하면 삼백 치킨결사대라고 이야기해야겠지만 말이다. 같은 시간 대한읍 80여개의 노가네 점포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오기를 잘했네. 저 줄 늘어선 것 좀 보소.”
“난리네요, 난리. 그나저나 어디서 오셨어요.”
“민국리에서 왔어.”
“그쪽에서 오시면 버스타도 이십분은 걸리지요.”
“나 같은 노인네야 남는 게 시간이지. 걸어서 왔어요. 찬찬히 구경도 할 겸.”
“대단하시네. 나도 뭐 한 삼십분 걸어서 왔어요. 우리 애들이 치킨을 좋아하거든요. 근데 요즘 동네치킨은 너무 비싸니까 맘 놓고 사줄 수가 있어야지요.”
“나도 그래. 우리 손주들 이번 기회에 부담 없이 치킨이나 먹이자 해서 온 거지 뭐.”
“그런데 저게 뭐래요. 하이고, 방송국 카메라네. 이런 것도 다 찍어가는가봐요?”
박은 카메라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확 꺾어 돌렸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나가면 안 될 심각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혹시라도 아들놈이 TV로 박의 얼굴을 확인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하는 염려에서였다. 사실 노가네 대통치킨소식을 듣고 어제부터 나서려고 했던 박을 막아선 것도 아들이었다. 노가네 치킨이 잘 팔리면 자기네 배달치킨 사정이 어려워진다고 아들은 노발대발했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사장가게를 자기가게로 착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박또박 경우 따져가며 알아듣게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박가는 아들의 질책에 그냥 물러서는 척 했다. 물론 세상사 노련한 박의 역사에 포기란 없다. 기어코 치킨을 사들고 가고자 이른 아침부터 노가네를 찾은 박이었으나 카메라에 ‘아들아, 나 치킨 사러 왔다’ 라고 광고할 생각까진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에 넙죽넙죽 얼굴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박의 고개돌림에 주목하는 카메라는 없어보였다. 사실 노가네의 치킨판매 소식은 언론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화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가네의 프라이드 치킨 판매는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해치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진입이라는 시선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시기에 ‘착한 가격’ 을 내세운 치킨등장이 반갑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박과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체 여론은 노가네를 향한 비판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영세상인 다 죽이는 대통치킨 팔지마라.”
“서민경제 박살내는 노가네는 사죄하라.”
대통치킨을 찾아 노가네 점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는 어느새 노가네 점포 앞에 포진한 영세상인들을 담고 있었다. 닭을 사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섰던 이들만큼이나 필사적인 표정에다 비장함까지 더해진 얼굴들이었다. 한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워 얌전한 새색시처럼 두 손으로 곱게 치킨 통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빠져나오던 박은 그만 시위대의 무리 속에서 노랗게 물들인 꽁지머리를 보고 말았다. 이제껏 박의 인생사에 직접 개입한 노란색 꽁지머리는 딱 두 명이다.
하나는 지난번 동네경로당 초청공연에 출연해 바닥을 휙휙 도는 이상한 춤을 추던 나이 칠십의 꽁지머리 김이고, 하나는 치킨 집 배달원으로 살아가는 아들이다. 꽁지머리 김은 월미도에서 춤을 추다가 허리를 심하게 삐끗하는 바람에 지금 대한병원 603호 병실에 누워있는 처지다. 그렇다면 저 노란 꽁지머리의 주인공은 바로 아들이다. 다행히 아들은 박을 보지 못했다. 박은 커다란 치킨 통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성급히 노가네앞을 빠져나왔다. 곁눈질로 지켜본 아들은 어금니를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 허공을 향해 힘차게 팔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튀어도 너무 튀었다. 남들은 다 입을 열고 구호를 외치는데 박가의 아들만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성질이 나면 언제나 어금니를 꽉 깨무는 게 아들의 버릇이다. 하여튼 어디를 가나 튀는 아들이다. 노란색 꽁지머리, 꽉다문 입술에 험상궂은 얼굴, 그런데 하필 아들이 왜 이 시간에 노가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지 박은 기가 막혔다. 역시 아들은 자기가 치킨 집 사장인줄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늘 치킨 집 하나 차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더니 결국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것이라고 박은 생각했다. 박의 아들은 여전히 철지난 청잠바를 입고 있다. 박은 솜털이지만 그래도 꽤 두툼한 겨울 잠바를 입고 있다. 지난달에 날씨 추워진다며 아들이 박에게 사준 거다. 아들한테 잠바라도 벗어주고 싶은데 박은 그럴 수가 없다. 박의 가슴에는 커다란 치킨 통이 들려있다. 박은 괜히 눈시울이 아른하다. 먼지에 섞여 부는 빌어먹을 바람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며 박은 치킨 통을 가슴에 안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바람은 계속 박가의 눈을 괴롭혔다.
“인터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항의집회를 벌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방송 나가는 거지요. 노가네는 그야말로 우리 대한읍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큰손입니다. 재벌이지요. 그런 노가네가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 살림을 거덜 내는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요. 5천원에 치킨을 판다고 하면 우리는 다 망하는 겁니다. 그거는 총만 안 쐈지 살인이에요. 치킨장사 안돼서 문 닫으면 우리 가족 생계는 누가 책임져 줍니까. 돈 없는 사람은 장사도 하지 말라 이겁니까. 상도덕이란 게 있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언제까지 항의집회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통치킨인지 뭔지 판매중지할 때까지 해봐야지요. 우리를 호락호락하게 보면 큰코 다칩니다. 우리는 목숨이 달렸다 이거요. 다행히 많은 대한읍민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니까 힘이 납니다.”
그 시간 대한읍의 면장단회의에서도 생중계로 나가는 뉴스화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면장단회의에 참석한 면장들은 노가네의 대통치킨에 대한 여론동향을 일찌감치 끝낸 상태였다.
“저거 말이여. 그냥 넘어가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우리 대한읍이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는 마당에 무조건 노가네가 잘못했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모양새가 좀 우습지 않아요.”
“그렇지. 오천 원짜리 닭 한 마리 먹겠다고 문도 열기 전부터 찬바람 속에서 몇 시간씩 줄서는 거 이것도 민심이여. 그거 괜히 섣불리 건들었다가 오히려 똥 되는 겨.”
“아니지, 그건 아니지. 동반성장이 요즘 화두 아니여. 안 그래도 읍장님이 올해 들어 강조한 것이 공정과 상생이란 말이여. 지금 노가네가 하고 있는 짓거리가 그거 정면으로다가 위배하는 행위라니까.”
“그렇지요. 공정과 상생으로 본다면야 노가네의 프라이드 치킨판매는 어울리지가 않지. 아무렴.”
“더군다나 이런 때 가만히 있으면 다음 선거 때 우리가 서민경제 말아먹었다는 비난받는다니까. 그러니까 일단 노가네를 나무라는 액션을 한번 줘야 돼. 다행히 여론도 노가네가 잘못 했다는 쪽이드만.”
“자, 그러면 일단 우리 의견은 그렇게 모으는 것으로 하시고. 이제 누가 이거를 어떻게 전달할 거냐가 이게 문제라 말이오.”
“공문이나 담화문 이런 거는 조금 격이 무거우니까, 그 요새 그게 뭐시더냐. 트위터인가 뭔가 하는 거 있다드만. 그런 걸 쓰자고. 우리 중에 누가 그런 거 잘하지. 얼른 손들어봐.”
“그거야 젋은 정무면 면장 말고 누가 있겠어요. 안 그려.”
“아, 예. 제가 트위터에 올리겠습니다. 그냥 노가네 치킨판매는 중지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으로 올리면 되겠지요.”
“아니지. 그렇게 하면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말이야. 그렇지, 미끼상품이다, 뭐 이런 걸 넣어서 만들어야지. 가만 보자. 옳거니. 이러면 되겠구나. 잘 받아 적어봐. 일단은 노가네가 튀김 닭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오천 원으로 판매하는 것은 손해 보면서 손님들을 끌려는 미끼상품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손님을 끄는 것은 근근이 살아가는 영세업자들의 얼굴을 울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생각 좀 다시 해봐라. 이렇게 쓰라고.”
“다 좋은데 노가네가 진짜 손해보고 파는 게 맞습니까?”
“그거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에서 준 자료에 나와 있더라고. 맞을 거구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따가 우리도 튀김 닭이나 먹읍시다. 어쨌든 그놈의 닭이 화제의 주인공 아니요. 석유파동, 광우병파동, 별 파동 다 겪더니 이제는 치킨까지 파동이구만.”
<계속>
[경제신춘문예 우수상]치킨전쟁<2>
대한읍은 이제 어디를 가나 ‘닭’이야기로 술렁거렸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닭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된 것 같았다. 대한읍 사람들이 치킨에 매달렸던 때는 대부분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오죽하면 치킨 집 사장들의 소원이‘매일같이 TV에서 축구경기를 생중계 해주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축구경기가 없는데도 죄다 닭 이야기를 꺼낸다.
닭이 울면 온 마을이 깨어나던 옛날에도 이렇게까지 닭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끌고간 적은 없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강렬한 메시지가 유효했던 암흑의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닭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닭’은 바야흐로 대한읍의 중심에 서고 말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처럼 노가네덕에 싸고 양좋은 치킨을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환호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주들을 보면서 박의 확신은 더 강해졌다. 어렵게 사 온 프라이드 치킨과 마주한 손주들은 흡사 아귀 같았다. 손주들은 야무진 손길과 먹성 좋은 목구멍으로 한 마리 닭을 그야말로 ‘후다닥’ 해치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놀라웠다. 손주들의 먹성에 정면대항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닭은 튀김옷이 곱게 발라진 몸둥아리를 여전히 상당부분 남겨놓고 있었다. 오히려 큼직한 두조각을 남기고 먼저 나가 떨어진 쪽은 손주들이었다. 노가네 대통치킨의 완벽한 승리였다.
“더 먹지 그래.”
“할아버지, 배불러. 우와, 이 닭 진짜 양 많다.”
“근께 더 먹어.”
“이따 저녁때 먹어야지. 할아버지, 우리가 남긴 거 드시면 안돼요.”
“알았어, 이놈들아.”
손주들이 남긴 닭 뼈를 바라보던 박가의 콧날이 시큰해온다. 작은 살점 하나 남기지 않은 완전무결한 닭 뼈 그 자체였다. 이날 이때까지 닭 한마디 양껏 먹지 못하고 살아온 아이들이었다. 가난이 원수고, 능력 없는 것이 죄라면 죄였다. 박은 결심했다. 내일 다시 이른 새벽 닭을 구해 길을 나서야겠다고. 지금으로선 노가네로 가는 길만이 손주들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박은 생각했다. 그러나 대한읍에는 박과 같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TV는 연일 노가네의 횡포를 집중조명하는 뉴스로 시끄러웠고, 대한읍네의 노가네 80여개 점포 앞에는 연일 치킨판매를 중단하라는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노가네가 장사일선에 깃발을 꽂은 이래 최고의 파동이었다.
“생각보다 여론이 좋지 않은데요.”
“뭐가 문제라는 건지 참나. 사전기획을 통해 가격 낮춰서 소비자들에게 싸게 팔겠다는데 그게 죽을 짓인가?”
“아무래도 영세한 치킨업계들이 우리 때문에 전부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 같아요. 그런 주장이 상당수 읍민들의 공감도 이끌어내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여론이 돌다보면 우리 이미지만 안 좋아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뭐 배달을 하나, 전화주문을 받나, 거기다가 콜라나 치킨무도 다 따로 팔잖아. 하루 한 점포당 파는 것도 삼백 마리밖에 안되고 말이야. 이래가지고 어디 장사하겠어. 우리가 우리식대로 장사하겠다는데 왜들 난리를 치는 거야. 장사라는 게 흥하는 사람이 있으면 망하는 사람도 생기는 거지. 그게 시장의 원리 아니야.”
속이 탄 노가네 사장이 물을 마시는 사이 한 장의 메모지가 책상에 올라왔다. 정무면 면장이 올린 트위터 전문이었다. 노가네 사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젠장. 틀렸군. 내일부터 대통치킨 판매중지 하자고.”
“예. 갑자기 왜?”
“알 것 없어. 이런 빌어먹을. 언제는 우리 같은 큰 업체들이 소비자 물가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하더니만. 그래서 기껏 가격 낮춰서 소비자물가에 기여했더니. 뭐야. 노가네의 손해 보는 장사로 영세상인들이 울상이라고. 대체 어떤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이거야말로 우리더러 접으라는 경고 아니야.”
“그렇다면 위에서?”
“알 것 없다니까. 일단 내일부터 대통치킨 판매중지 하도록 해. 본의 아니게 우리의 치킨판매가 주변 치킨가게들의 존립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알리고.”
“그러면 일괄 구매된 나머지 닭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남은 닭들은 요즘 그 뭐야 불우이웃, 그렇지 어려운 이웃들 돕는데 쓴다고 아주 대대적으로 알리고. 아, 그리고 우리가 판 닭가격은 결코 손해 본 가격이 아니라 합리적인 시스템을 적용한 저마진 전략에서 나온 가격이었다는 거 꼭 넣어두고.”
마침내 대한읍 곳곳에 노가네의 치킨 판매중단 소식이 퍼져나갔다. 내일 아침 노가네 대통치킨을 다시 사야겠다던 결심을 굳히고 있던 박에게도 소식은 전해졌다. 이 모든 게 노가네 점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놈들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박은 얄미운 동네치킨집으로 달려가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그런 정신없는 녀석들과 한편이 되어 놀아난 아들을 불러다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박의 심정과는 달리 노가네의 결정에 환호하는 이들도 많았다. 당장 대한읍 80여개의 노가네 점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이들이 자신의 치킨 집으로 돌아가 다시 닭을 튀기기 시작했다.‘대한읍 닭사려 조합’은 노가네의 결정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언론역시 노가네의 치킨판매중단소식을 비중 있게 알렸다. 정무면 면장의 트위터에는 영세업자들이 보내준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가 수도 없이 달렸다. 모든 갈등은 봉합된 듯 싶었다. 대한읍은 다시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았고, 골목의 치킨 집에서 퍼져나간 닭튀김 냄새가 대한읍 곳곳을 채웠다. 그러나 이상했다. 치킨집의 배달주문 전화가 울리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수상한 분위기는 노가네를 굴복시켰다는 승리감에 휩싸여 있던 닭집 사장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수상한 분위기의 정체는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닭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닭은 갔습니다.
저렴한 가격을 깨치고 프랜차이즈 숲을 향하여
난 비싼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값싸고 양 많은 치킨이 되겠다던 옛 맹세는
차디찬 오리발이 되어 업자들의 협박에 날아갔습니다.
천 원짜리 다섯 장의 추억은
나의 주문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닭다리에 배부르고,
꽃다운 님의 가슴살에 배 채웠습니다.
주문도 사람의 일이라 먹을 때에 다시는 못 시킬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마음은 비싼 치킨 값에 속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주문번호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문할 때에 다시 못 시킬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시키지 못할 때에 다시 주문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닭은 갔지마는 나는 닭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싼 가격을 꺾어버린 프랜차이즈의 노래는
대통치킨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른바 닭의 침묵으로 명명된 시였다. 노가네의 치킨판매 중단소식이 전해진 후 사람들은 앞 다퉈 인터넷에 노가네 대통치킨의 판매중단을 애달파하는 패러디작품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화, 드라마, 노래, 시, 심지어 만화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도 다양했다. 대한읍 사람들의 감정이 처음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반증이었다. 사실 박처럼 노가네의 프라이드 치킨출시를 반가워 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대한읍 사람들은 분명 치킨덤핑에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것은 생존권적 시각에서 노가네에 항의했던 영세 상인들의 처지에 십분 공감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여론은 확연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은 싼 값에 양질의 제품을 살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프라이드 치킨을 다시 부활시킬 것을 노가네에 촉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대통치킨의 영정을 만들어 애도를 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또한 그동안 스스로를 영세업자로 부르며 심정적 동조를 끌어내던 치킨업자들을 폭리를 취하는 악덕업자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동네치킨을 비롯한 기존 치킨업계에 대한 불매운동도 서서히 조직화되어갔다. 박가 역시 노인정의 노인들을 규합해 ‘모모신문 사절’ 이라고 붙여둔 경고문을 떼어낸 자리에 ‘배달치킨 사절’ 이라는 경고문을 새로 써놓았다. 아주 강렬한 빨간색의 흘림체였다.
박과 마음을 같이 하는 이들은 늘어만 갔다. 노가네 치킨의 판매중지를 이끌어낸 배후로 알려진 정무면 면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져만 갔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연일 ‘치킨파동’의 책임을 놓고 날선 논란이 벌어졌다. 전문가들만 치킨토론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당장 박도 손주들을 방청객으로 둔 채 아들과 시시비리를 가리는 집안토론을 벌였다. 아들은 당연히 노가네를 비난했고, 박은 폭리를 취하는 치킨 집들을 있는 힘껏 성토했다. 박가네 집안토론은 그러나 결판을 내지 못했다. 제 분을 참지 못한 아들이 성급히 퇴장해버렸기 때문이다. 문을 박차고 나가던 아들의 노란색 꽁지머리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노가네 치킨을 떠올린 것은 박가 뿐만은 아니었다. 방청객으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던지 괜히 아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혀를 훔치며 입맛을 다셨다.
노란색 프라이드 치킨의 유혹은 그렇게 강렬했던 것이다. 그래도 박가네 집안토론은 깽판수준으로까지는 흐르진 않았다. 엄연히 장유유서가 시퍼렇게는 아니지만 겉모습으로나마 살아있는 가풍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한읍의 곳곳은 사실상 깽판이 돼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다 동네치킨집 사장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 신세를 지는 읍민들이 늘어만 갔다. 닭의 원가논쟁을 벌이다 그만 주먹이 오고 간 것이다. 타임지를 비롯하여 외국의 저명한 신문들까지 대한읍의‘치킨파동’ 소식을 1면에 싣고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유사이래 최고의 ‘치킨환란’이 대한읍에서 벌어진 것이다. 곳곳이 논쟁 장이었고, 곳곳이 싸움터였다.
“아니, 이거 보세요. 기존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치킨 한 마리를 1만4천~6천원에 판매하는데, 양도 적고 너무 비싼 게 사실 아닙니까. 솔직히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거죠. 왜 노가네에서는 5천원에 팔 수 있는 닭을 세배 이상 뻥튀겨 파냐 이겁니다. 이거야말로 우리 서민들 등쳐먹는 담합의 결과가 아니고 뭡니까?”
“아니 노가네가 원가를 왜곡해서 나온 가격하고 우리 가격을 비교하면 어떻게 합니까. 마치 치킨업계가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말하시는데 정말 우리들은 억울합니다.”
“왜 사람들이 노가네 치킨에 열광하는지 아십니까? 기존 치킨은 너무 비싸서 사먹기 힘드니까 그런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깽판 쳐서 노가네 대통치킨 못 팔게 한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당신네들 파는 닭가격이라도 좀 낮췄어야죠. 당신들만 그렇데 보호받고 우리는 닭 사먹다가 집안 말아먹으라는 말이에요. 양심이 있어야지. 꼭 그렇게 폭리를 취해야 합니까?”
“우리같은 치킨 파는 사람들요. 대다수가 치킨 가게를 창업할 때 전 재산인 1억 원 정도를 투자합니다. 밤낮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고요. 인건비 아낀다고 대부분 부부가 똘똘 뭉쳐 일하고 있고요. 그래가지고 한 달에 200만~300만 원 정도 벌어 가는데 이것이 폭리라면 정말 우리는 피눈물 납니다.”
싼 치킨을 더 이상 못 먹게 돼서 억울하다는 사람들과 폭리를 취한 적도 없는데 악덕장사꾼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사람들, 그렇게 각각 억울한 심정을 가진 이들의 싸움은 도무지 끝이 없어 보였다. 그 와중에 경제논리의 날선 공방들도 이어졌다. 그 덕에 대한읍에서 벌어진 치킨사태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경제이론과 사회이론이 부딪치는 자존심 대결의 장이 되고 말았다.
“대기업이 오직 경제적 논리만 내세우면서 골목상권을 죽여서는 안 되죠. 사실 노가네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영세상인들의 목을 조인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행히 노가네 대통치킨의 판매중지 결정이 내려지긴 했지만요.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 참 슬픕니다. “
“무조건 그런 대결구도로 볼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소비자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무조건 대형 유통업체의 행위를 넘어가면 결국에는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이 말살된다 이겁니다.”
“그렇게만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진보할 수 있습니까? 경쟁에서 밀리는 영세 사업자들을 과보호하게 되면 새로운 혁신으로 소비자 이익을 꾀하는 대형업체들이 발전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대한읍은 경쟁의 꽁무니에 서게 될 거라고요. 혁신을 부정하면 발전은 있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자들을 보호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가면서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마찰이 있을 때는 당연히 노가네 같은 큰손들이 먼저 양보를 해야지요.”
“언제까지 양보만 해야 합니까? 우리 대한읍은 엄연히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곳이에요. 시장경제하에서는 큰 업자든 영세업자든 누구나 자신이 파는 상품의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한 권리를 가지는 거 아닙니까. 사실 대량 구매를 통한 가격 경쟁력은 노가네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가장 큰 힘입니다. 유통업체가 불법적인 경로가 아닌 비용절감의 노력을 통하여 실현한 낮은 소비자 가격을 비난하는 일은 그야말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죠.”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그런 가격 경쟁력이 대한읍네의 치킨가게를 깡그리 문 닫게 할 정도라면 그건 결코 옳은 일이 아니지요. 그런 게 바로 약탈적 가격 아닙니까? 그러니 마땅히 규제해야지요. 없는 서민들의 생존권을 짓밟으면서까지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의 치킨을 제공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계속 생존권, 생존권 하시는데, 나는 좀 입장이 다릅니다. 사실 노가네가 파는 것처럼 싼 치킨이 새로 생겨서 가장 덕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바로 서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저소득층들일 겁니다. 솔직히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에서 음식물 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지요. 돈 있는 사람들이야 솔직히 5천원에 치킨 판다고 3~4시간씩 줄서는 일을 하겠습니까? 귀찮아서라도 배달시켜 먹겠지요. 결국 돈 없는 서민들이 사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판매중지로 당장 서민들은 싼값에 부담 없이 프라이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겁니다. 만약 단지 싸게 판다고 문제를 삼는다면 우리 대한읍은 당장 시장경제 그만둬야죠. 사회주의 깃발 찾아서 꽂아야죠.”
“비약이 너무 심하시네요. 그러면 저도 좀 비약해 보겠습니다. 만약에요. 노가네의 대통치킨을 다시 부활시키면요. 얼마안가 대한읍네 치킨 집들 다 문 닫게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가격경쟁력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자영업자가 쓰러지고 나면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쓰러지겠습니까? 바로 치킨을 배달하는 분들이 쓰러집니다. 백만 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한 달을 가족과 함께 버티는 그런 분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살던 그분들이 희망을 잃는 겁니다.”
“그거는 비약이 아니라 완전히 소설이죠. 상상의 세계를 여기서 펼치고 계십니까?”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죠. 이미 현실은 공포소설이나 다름없습니다. 재벌이 동네 골목 상권까지 잠식해 들어와도 속수무책인 사회가 어디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그것은 우리 대한 읍을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야만사회로 돌려놓는 일이에요.” <계속>
[경제신춘문예 우수상]치킨전쟁<3>
혼전에 혼전을 더해가는 대한읍의 치킨사태에 이제까지 손 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대한읍장이 드디어 한마디를 던졌다. 그 한마디는 대한읍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읍장이 대한읍 긴급회의에서 꺼냈다는 그 한마디는 바로 ‘나도 2주에 한번 정도는 치킨을 먹는데 좀 비싸더라.’였다. 간결했지만 너무도 강력한 메시지였다.
정무면 면장의 발언 후 그동안 읍장의 마음이 자신들 쪽에 서 있다고 굳게 믿었던 영세치킨업자와 치킨전문점들의 심장에는 불안의 화살이 꽂힌 듯 두려움이 찾아왔다. 여론은 여론대로 다시 휘청거렸고, 마침내 그동안의 치킨 값은 폭리를 바탕으로 취해진 가격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노가네는 어느새 대한읍의 서민들을 배려하는 책임있는 업체로, 진정한 소비자시대를 연 개혁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읍장의 발언을 두고 대한읍 민주서민협의회 대표가 비장한 목소리로‘치킨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대한읍네 치킨상인들의 자녀를 생각해보라’ 면서 질타를 던지는 등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한번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이 다시 평형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여론은 이미 치킨업자들을 대한읍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박가에게도 어느새 동네치킨점들은 죄다 적처럼 여겨졌다. 그런데도 아들은 배달치킨점의 편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박은 진검승부를 통해 잘못된 아들의 생각을 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너는 착각을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민이 뭐냐? 돈이 없으니 서민 아니냐 말이다. 그렇다면 서민경제를 위해서라도 싸고 좋은 것을 내놓는 업체가 많아야 한다 이말이다. 닭만 해도 그렇다. 노가네 대통치킨이 얼마나 싸고 좋냐? 그 좋은 치킨을 못 팔게 만든 동네치킨집들이 뭘 잘한 게 있냐?”
“아버지. 그건 싸게 파는 게 아니고 우리들 배달치킨집을 다 망하게 하는 거라니까요. 지들 배만 불리는 거라고요.”
“아이고 답답해. 네가 치킨집 사장이라도 된 줄 아냐? 너는 배달원이여. 치킨 비싸게 팔아 돈을 벌어도 네 월급이 올라가드냐. 안 올라간다 이말이여. 정작 배는 그놈들만 부르는 겨.”
“아버지. 내 월급 누가 줍니까. 배운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놈이 그래도 친구연줄로 치킨 집 배달이라도 하니까 먹고 사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치킨 집 망하면 내 일자리도 끊기는 거라고요. 유식한 말로다가 그런 게 도미노라는 거예요. 하나가 무너지면 그 뒤에 있는 게 또 무너진다 이거에요.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어찌 살라고요.”
“네가 그래서 몇 백을 받냐? 고작 백만 원 벌어오면서 뭘 그렇게 걱정이여. 그리고 노가네에서 아무리 닭을 팔아봐라. 치킨집들이 망하나. 그게 다 가격 안 내리려는 수작이라는 말이여. 그리고 지들이 비싸게 팔다가 망하면 지네들 탓이지. 어디 남 탓이야.”
“아이고, 아버지. 내가 속터져요. 아버지, 만약에요. 동네치킨 집 다 망하고 나면 그때도 노가네가 5천원에 닭을 팔까요? 아마 그때쯤 노가네는 다시 가격을 올릴게 뻔해요. 굳이 싸게 팔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테니까요. 결국 동네치킨집이 망하면 나중에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요.”
“너는 어떻게 매사에 그렇게 부정적이냐. 긍정적으로 좀 살아봐. 생각을 구부리지 말고 쫙 펴서 보란 말이다.”
“아이고, 속터져.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박은 오늘도 아들과의 진검승부를 끝내지 못한 채 울분을 감추며 사라지는 노란 꽁지머리의 흔들림만 보아야 했다. 아들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문득 자신이 틀리고 아들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박가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믿게 되었다. 사실 대한읍 곳곳에서는 읍장의 발언이후 여러 가지 조치들이 등장했다. 일단 대한읍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기존치킨집들에 대한 가격담합의혹 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또한 대한읍 시민단체협의회에서는 ‘치킨가격 정상화’와 관련한 공청회를 거쳐 나온 이른바‘치킨 공정가격’을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에 제시했다. 제시된 공정가격은 1만원이었다. 그러나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은 협의회가 제시한 공정가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1만원의 가격으로는 자영업자와 영세업자들의 영업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완강한 대립이 더해가던 그즈음 대한읍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현장직권조사결과 치킨 점들의 담합여부가 사실로 파악됐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담합 기간은 무려 4년 6개월로 추정됐다.
주요 치킨업계의 전체매출을 고려하면 과징금 규모만 해도 최대 수십억에 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부의 언론들은 대한읍의 모든 치킨업자들을‘악덕사기업자’로 몰고 갔다. 대한읍의 치킨 점사장들은 모두 좌불안석이 되고 말았다. 모이면 울음바다였고, 흩어지면 피눈물이었다.‘닭집개혁정의연대’ 라는 거창한 이름의 식파라치들은 치킨집의 허점을 닥치는 대로 촬영해 언론에 제보했다. 재활용닭, 상한 치킨무, 유효일자가 지난 제공콜라 등 배달치킨과 관련된 모든 치부가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치킨업자들을 향한 읍민들의 분노는 그렇게 곳곳에서 불어오는 부채질에 의해 타올라 갔다.
결국 그때까지 버티던‘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시민단체협의회에서 제시한 공정가격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노가네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가격파괴치킨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고만 것이다. 그 성명은 또한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이 마지막으로 낸 성명이 되고 말았다. 성명을 내는 것과 동시에 조합이 해산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당장 노가네는 프라이드 치킨을 다시 튀기기 시작했다. 대한읍 80여개 곳곳의 점포문앞에는 ‘대통치킨’ 의 부활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하루 판매닭을 3백 마리로 제한하겠다는 문구는 슬그머니 사라져 있었다.
이날을 시민들은 다시 대통치킨이 살아난 날이라 하여 ‘부활절’ 이라 불렀고, 닭의 주권을 회복한 날이라 하여 ‘닭복절’ 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박가는 흡사 독립군이 되어 나라라도 다시 되찾은 것 같은 기쁨에 휩싸였다. 노가네로 달려가 다시 살아난 ‘대통치킨’을 사와 손주들과 나눠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들은 그날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에게 주려고 박이 남겨둔 굵직한 닭다리는 커다란 대통치킨의 포장지속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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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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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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