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나비 / 서현경

  <당선작>

  나비 / 서현경

  마지막 나비의 날개가 미세하게 떨렸다. 날갯짓보다는 경련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마른 종잇장처럼 내려앉는 나비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도 정우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나비들을 모아둔 통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몇 분을 더 기다렸다. 넓은 통의 바닥에 흩어진 나비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정우는 뚜껑을 열었다.

  책상 위에 깔린 습자지 위에 죽은 나비들을 조심스럽게 쏟아냈다. 간혹 날개에 붙은 가루들이 날리기도 했지만 정우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대부분이 모양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핀셋을 들고 나비들을 겹치지 않게 펼쳤다. 곧바로 나비를 분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수집한 나비는 배추흰나비, 긴은점표범나비, 참산뱀눈나비였다. 나비는 종류별로 나뉘었지만 그녀에게 이 작업은 종류가 기준이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날개의 무늬와 색깔에 집중되어 있었다. 분류가 끝나자 미리 준비해 둔 깨끗한 다른 핀셋을 양 손에 들었다. 핀셋의 끝은 모두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추흰나비 사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양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힘을 조절하며 나비의 날개를 떼어냈다. 떼어낸 날개는 또 다른 깨끗한 습자지 위에 올려두었다. 이 단계에서 배추흰나비의 날개는 또다시 두 가지 색상으로 분류되었다. 갈색 줄무늬가 있는 윗날개와 순수한 흰 색상을 띈 아랫날개가 각각 다른 습자지 위에 올려졌다.

  죽은 나비의 날개를 떼어내는 일은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마른 날개는 조금만 힘이 과해도 금방 바스라졌다. 그래서 되도록 나비가 죽은 후 곧바로 분리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나비의 숨이 끊어지는 시기가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분리가 끝나자 정우는 사체가 가득한 습자지 양 끝을 잡아 능숙한 솜씨로 우묵하게 휘었다. 사체들이 마른 소리를 내며 가운데로 몰리자 종이를 접었다. 제법 묵직한 사체들은 한 첩의 한약재처럼 네모지게 접힌 종이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뭉치를 쓰레기통으로 옮기는 손이 새삼스럽게 떨리기 시작했다. 손끝이 부쩍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종이 너머로 곤충의 형체가 만져지는 기분에 서두르면서도 그녀는 쓰레기통에 뭉치를 투하하는 일만은 신중을 가했다. 혹시나 여밈 부분이 풀어지면 또다시 징그러운 벌레들을 마주해야 할 터였다.

  사체를 처리한 후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우는 두툼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러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을 겹치는 법 없이 오직 단선으로만 그려낸 그림은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야자나무 열매를 향해 고개를 쭉 뻗은 기린 한 마리가 그림의 전부였다.

  이통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분류를 마친 날개로 시선을 옮겼을 때 정우는 귀가 저린 것을 느꼈다. 들고 있던 핀셋을 놓아두고 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저릿한 느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자 아예 손 전체로 귀를 감쌌다. 힘을 주어 귀를 주물렀다. 저릿한 느낌은 둔한 통증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귀를 주무를수록 손 안의 귀는 뜨거워졌다. 그녀는 귀를 주무르면서도 날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푸른 색 날개가 필요했다. 하지만 국내에 자생하는 나비 중 푸른 색 날개를 가진 종류는 많지 않았다.

  푸른색의 나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사이 통증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걸어갔다. 가끔 한 방향으로 자고 일어나면 이렇게 귀가 얼얼하게 아플 때가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귀를 주무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귀를 주무르던 손의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또다시 밀려드는 통증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분장을 지운 정우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무대 위에서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안달이던 아이들은 그녀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미술관 지하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정우는 일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몇 개씩 건너뛰며 급히 올라갔다. 미술관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큐레이터 두 명이 미술관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부러운 듯 바라보던 정우는 그녀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급히 돌아섰다. 아동용 연극을 시작한 지도 삼 년이 지났지만 나비나 원숭이, 나무 따위의 분장을 벗어버리면 그녀는 여전히 위축되었다. 때때로 무대 밖의 본래의 자신보다 우스꽝스러운 탈을 쓴 그것들이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쯤 끝나?”

  등 뒤로 낮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서 있는 이관장의 짧은 백발이 눈에 들어왔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대답하는 큐레이터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인 이관장이 돌아서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꾸벅 인사를 하는 시선을 스치듯 지나치며 이관장은 볼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했다.

  말랐지만 키가 큰 이관장은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목이 전체적으로 남자 같은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툭 불거진 광대뼈와 마르고 긴 얼굴형을 볼 때마다 정우는 바위가 떠올랐다. 자신의 이런 특징을 잘 아는지 이관장은 항상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패턴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이 스카프들이 자신의 입술에서 벗겨지는 날이 없는 빨간 립스틱과 함께 부족한 여성성을 채워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관장은 정우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건물 밖으로 걸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탄 이관장이 차를 출발시키자 그녀는 급히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삼십 분 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을 때, 주차장에 세워진 이관장의 차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무슨 냄새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이관장이 얼굴을 찌푸리고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관장의 말에 정우는 코를 몇 번 킁킁거려 보았다. 무슨 냄새가 나나요?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이관장은 창 쪽으로 걸어갔다. 단단히 걸려 있는 잠금장치에 손을 가져가려는 순간, 그녀가 급히 이관장을 저지했다.

  “안 돼요! 재료가 바람에 날리니까 그냥 두세요!”

  정우의 말에 이관장은 작은 목소리로 아차, 하고 중얼거리고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눈은 연방 냄새의 근원지를 파악하려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집안에는 마시다 만 물 한 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찾기를 포기한 듯 이관장은 손가락으로 코를 몇 번 문지르고는 작업대 앞에 다가섰다.

  “좋은데?”

  그 말에 정우의 시선 역시 작품으로 향했다. 기린의 몸통 일부를 나비의 날개로 채웠을 뿐 대부분이 아직 흰 여백으로 남겨져 있었다. 작품을 판단할 기본적인 단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관장의 칭찬이 공허하게 들렸다. 그래도 정우는 과장된 웃음을 지었다.

  “언제쯤 끝나?”

  정우는 이관장이 자신의 갤러리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이 질문 외에 다른 말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심한 척 내뱉는 이 언제쯤 끝나, 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는 항상 같았다. 그것은 상대를 향한 채근이었다. 정우가 이주 정도라고 대답하자 이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이라고는 선 하나도 그을 줄 모르는 이관장이 제법 이름이 알려진 미술관을 소유하게 된 것은 바로 돈 되는 작가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이나 마찬가지인 작가들과 계약을 한 후, 그녀는 적극적으로 해외 옥션에 그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해외에서 인지도를 얻은 작가들의 작품은 국내로 되돌아올 즈음엔 몸값이 몇 배가 뛰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연달아 성공적인 기획전을 마친 후,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정우가 이관장의 눈에 띈 것은 몇 달 전에 있었던 공연 팸플릿을 직접 제작하면서였다. 극단 사정이 넉넉지 못해 단원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아 해온 지 오래였다. 그녀 역시 무대미술을 배우기 위해 극단에 들어갔지만, 부족한 인원을 메우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모처럼 전공을 살릴 기회라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팸플릿 도안이 바로 갖가지 곤충의 날개를 이용한 것이었다.

  처음 정우를 불러 이관장이 물었던 질문 역시 언제쯤 끝나, 였다. 일주일간의 공연이 끝났을 때, 이관장은 다시 그녀를 불렀다. 팸플릿에서 사용했던 날개를 가지고 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다. 다음에 기획하고 있는 합동전시회에 내보낼 생각이라는 설명에 그녀는 단번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취미에도 없는 극단에 들어오면서 그녀는 그렇게 영영 그림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그 사실이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채색에서 한계를 느끼던 그녀였다. 완성한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적절한 컬러를 사용할 줄 모르는구나. 그녀를 가르치던 교수는 차라리 다른 분야를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비단 그림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옷차림을 볼 때마다 촌스럽다고 수군거렸다. 색채에 대한 그녀의 열등감은 결국 옷장을 전부 검은색으로 채워버렸다.

  팔릴 만한 걸로 준비해. 이관장이 정우에게 덧붙인 말은 그게 다였다.

  이관장은 미완성된 작품을 햇빛에 비춰보며 이리저리 각도를 움직였다. 그런 이관장의 표정을 살피던 정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지금의 작품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소재와 재료의 궁합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기린의 몸통은 긴은점표범나비의 날개가 맡고 있었다. 기왓장처럼 촘촘하게 포개진 날개는 빛이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어두운 감색부터 가벼운 황금색까지 다양한 색으로 변해갔다. 날개의 검은 반점들 역시 기린의 독특한 무늬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날개의 표면에 붙은 인편들은 고운 파우더를 발라놓은 것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는데, 미세한 입자들이 이루는 결이 마치 동물의 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손을 갖다 대면 기린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기대 이상의 효과에 정우 역시 애초에 한 마리만 그려 넣었던 초안을 수정해 이미 어린 기린 한 마리를 추가한 터였다.

  이번 작품이 성공하면 전속으로 계약하자. 순간 찌릿한 통증에 정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네, 라는 짧은 대답을 하며 그녀는 오른쪽 눈가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주말에 다시 올게. 작업대 위에 작품을 내려놓고 돌아서던 이관장의 시선이 휴지통에 잠시 멈췄지만, 별 반응 없이 정우의 집을 떠났다.

  현관문을 닫고 작업대로 돌아오던 정우는 휴지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네모지게 접힌 종이뭉치들이 휴지통 반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코를 킁킁대 보았지만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허리를 펼 때였다. 위쪽에 놓인 종이뭉치 중 하나가 약하게 흔들렸다. 기겁을 하고 휴지통에서 물러난 후에도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휴지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공연이 끝난 후 정우는 곧바로 차를 몰고 공원으로 향했다. 아동극을 하며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타 공연에 비해 시간대가 이르다는 점이었다. 분장을 지우자마자 병원에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온 그녀는 못마땅하게 노려보던 대표를 떠올리고 코웃음을 쳤다. 한 명이 아쉬울 판에 그렇다고 쉽게 그녀를 해고하지도 못할 치였다. 앞으로 일 주일이 고비였다. 당장이야 일을 그만둘 수는 없겠지만, 첫 작품이 잘 풀려서 미술관과 전속계약만 하게 된다면 당장 내 발로 그만두고 나오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도시에서 나비를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간혹 가다 아파트 단지 안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았지만, 대부분 크기가 작은 기생나비였다.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정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비들은 해가 지면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옮겨가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정우가 빠른 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공원 내 산책로의 좁게 난 길목이었다. 이곳은 그녀가 찾아낸 접도로, 근방에서 가장 많은 나비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산책길을 즐기는 나비들은 이리 저리 멋대로 날아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이 코스를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는지 근래 들어 이 길목을 이용하는 나비의 수가 많이 줄었다. 끈기 있게 길목을 지키고 앉아있었지만 채집통에 담긴 나비는 열 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우연히 길목을 지나치는 암놈 두어 마리가 섞여 있어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암놈의 날개는 수놈에 비해 크기만 크고 선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정우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처서가 지났음에도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마침 그녀가 지키고 있던 접도를 기생나비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갔다. 팔랑거리는 날갯짓을 바라보던 정우는 갑자기 밀려드는 분노에 채집망을 휘둘렀다. 채집망이 일으킨 바람에 기생나비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때 반대편에서 또 다른 기생나비가 날아왔다. 채집을 위해 돌아다니는 동안 가장 자주 마주치는 나비였다. 작고 볼품없는 흰 날개를 가진 기생나비는 정우에게는 그야말로 쓸모없는 존재였다. 가끔씩 겁도 없이 그녀의 몸에 올라앉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날파리를 연상시켜 거칠게 털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우는 농장을 찾았다. 남자가 그녀를 반겼다. 필요한 나비 종류를 알려주자 남자는 사육실로 안내했다. 거대한 수족관처럼 생긴 사육실 안을 살피며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종은 별로 많지가 않네요. 남자의 말대로 사육실 안에는 나비가 별로 없었다. 며칠 전 영화 촬영을 위해 농장에 있는 나비들을 거의 쓸어가다시피 했다는 설명에 그녀는 애써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이제 곧 번식기인데 직접 길러 보시는 건 어때요?”

  나비가 담긴 통을 건네며 남자가 다시 말을 붙였다. 처음 농장을 방문했을 때 대충 둘러댄 대답으로 남자는 두고두고 정우를 나비 애호가로 기억하고 있을 모양이었다.

  “요즘엔 거의 알이나 애벌레 상태를 많이 찾기 때문에 성충은 별로 없어요.”

  통을 살펴보니 일곱 마리 정도의 참산뱀눈나비가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밑그림을 수정해야 할 듯했다. 성충은 여러 종류 길러 보셨으니까 다음에는 알이나 애벌레로 분양 받아 가보세요. 채집통을 내밀며 남자가 다시 한번 권했다. 정우가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남자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날개가 선명한 종류를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알고 보면 몸통이나 얼굴 생김이 귀여운 종류도 있어요. 다음에 들르시면 제가 몇 가지 종류 추천해 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리 더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흘 정도 후에 다시 들러 달라던 남자가 돌아서는 정우에게 몇 마디 덧붙였다.

  “처음엔 날개에 혹해서 나비 수집을 시작한 사람들도 결국엔 다른 종에 눈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하긴, 어차피 날개의 무늬야 눈속임에 불과한 거니까요.”

  남자의 말에 정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농장을 찾을 때마다 남자가 읊어대는 나비에 대한 지식 따위는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농장을 나와 차에 올라타자마자 입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사용한 분양이라는 표현이 갑자기 떠올라서였다. 기껏해야 두 달 정도 살 나비를 파는 주제에 분양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남자를 생각하며 그녀의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 그녀는 채집통을 들어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귀여운 얼굴이라고? 순간 채집통의 좁은 틈 사이를 가느다란 다리로 붙들고 있는 나비들과 눈이 마주쳤다. 몸 전체와 머리까지도 털로 덮인 나비들은 꽤나 몸집이 크고 통통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고 있는 나비들을 보고 있자니, 이들이 오직 달콤한 식물의 유액을 빨아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돌적으로 사냥에 나서 획득한 먹이를 우적거리며 씹어 삼킬 것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나비에게 날개는 이동을 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아주 중요한 일부임에 틀림없었다. 화려한 날개의 색상 덕분에 누구도 그 아래 감춰진 흉측한 몸뚱이는 기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눈앞에서 나비가 날개를 퍼덕거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채집통을 옆자리로 던졌다.

  배추흰나비 날개의 담백한 흰 색상이 기린의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윗날개의 가장자리는 일부가 짙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열매의 그늘을 표현한 것 같아 정우는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세 종류의 나비 중 가장 색상이 처지는 종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더 고급스러운 소재에 이용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배추흰나비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라 구하기도 쉬웠다. 농장 주인이 알려준 근교 작은 밭에서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는데 서른 마리가 넘는 배추흰나비를 채집해 돌아왔다. 밭주인은 배추흰나비를 잡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농사짓는 사람들은 해충 취급하는 놈들이라며 열을 올렸다.

  주인의 말을 떠올리던 정우는 문득, 그것이 배추흰나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종이었다면 해충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날개 조각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자리를 잡던 그녀는 조용히 혀를 찼다. 그래도 제법 쓸 만한 날개를 가진 배추흰나비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또 다른 나비의 날개를 잡아 뜯은 후 정우는 몸뚱이를 작업대 한쪽 구석으로 툭 던졌다. 이미 스무 마리가량의 사체들이 날개가 뜯긴 채 뒹굴고 있었다. 다른 종에 비해 작고 가느다란 몸뚱이였지만, 사체가 주는 섬뜩함은 몇 배는 더 강렬했다. 피부색이며 털, 더듬이, 심지어 눈알까지도 흰색 일색인 사체는 부검을 기다리는 시체들을 연상시켰다. 나비 사체 위를 휴지 한 장으로 대충 덮어버리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면 나비 날개들만 구하고 싶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눈을 달고 작업대 여기저기를 뒹굴고 있는 나비의 몸뚱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조그만 날개 조각 하나를 얻기 위해 참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날개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정우는 마치 날개가 나비의 몸에 기생하는 전혀 다른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나비의 몸을 숙주 삼아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는 지독하고 아름다운 버섯처럼. 실제로 날개를 분리하는 과정이 버섯을 채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날개를 잃은 남은 몸뚱이들은 텅 빈 껍데기처럼 미세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남은 나비의 날개를 떼어낸 후, 그녀는 몸통이 모여 있는 종이를 잡아 들어올렸다. 묵직한 무게감이 새삼스러웠다. 쓸모없이 버려진 존재를 채우는 무언가가 여전히 이 무게만큼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깨끗한 핀셋을 골라 든 정우는 배추흰나비 날개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빛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미묘한 색의 변화에 새삼 감탄하던 그때, 갑자기 농장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눈속임, 남자가 사용했던 이 단어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급히 작업대 구석에 놓인 두꺼운 도록을 끌어당겼다. 작업에 사용할 나비 종류를 선택하기 위해 구입한 책에는 수천 가지의 나비 종류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목차로부터 몇 페이지 넘어가지 않았을 때 나비에 대한 설명이 들어찬 지면이 나타났다. 급히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나비의 날개가 만들어낸 색채는 대부분의 자연적인 존재들과는 전혀 달랐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개에는 색소가 없었다. 그들은 오직 구조적인 배열을 통해 색상을 조합하고 표현해냈다. 이 때문에 구조가 무너지면 색채는 사라졌다. 그녀를 사로잡았던 날개의 화려한 빛깔은 결국 물리학이 만들어내는 눈속임이었다.

  정우의 시선이 천천히 작품으로 옮아갔다. 날개조각들은 형광등 아래에서도 신비로운 빛을 발화하고 있었다. 나비의 날개는 그녀에게는 일종의 위안과도 같았다. 살아오면서 줄곧 색채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살아온 그녀에게 나비의 날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모든 것들이 눈속임이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지통을 들어 올린 그녀는 작업대 위에 내용물을 쏟아냈다. 통을 가득 채우고 있던 종이뭉치들이 떨어지며 역겨운 냄새가 훅 밀려올라왔다. 종이뭉치들이 벌어지고 이미 부패가 시작된 벌레의 형체가 드러났다. 휴지통을 집어던지고는 종이뭉치를 펼쳐 한 손 가득 몸뚱이를 움켜잡았다. 뜨끈하고 끈적거리는 진물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한 마리의 사체까지 모두 찾아내 짓이긴 후에야 정우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에 잔뜩 달라붙은 진물들을 바라보는 순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체의 흔적들은 뒤섞인 털과 함께 거무죽죽한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어디에도 이것이 한때는 생명체였다는 흔적은 없었다. 작품으로 눈을 돌린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야 비로소 나비의 몸뚱이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나비는 고대의 생물이었다. 처음 발생한 후부터 지금까지 나비가 그 존재를 이어온 시간은 일억 오천 만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 긴 시간동안 나비가 유전적으로 진화한 것은 오직 날개의 형태와 무늬뿐이었다. 나비는 더 빠르게 날지도 못했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도구를 얻지도 못했다. 몸통이 이렇게 대과거의 원시적인 상태에 갇혀있는 동안, 오직 날개만이 무수한 돌연변이를 거듭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비의 이름과 습성, 특징을 결정짓는 전부가 되었다. 날개는 나비의 존재 바로 그 자체였다. 날개에 색소가 있든 없든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날개는 그저 빛을 가진 재료에 불과했다.

=  주인공 역을 맡고 있던 선배가 쓰러진 것이 오늘 새벽이었다. 단원들은 모두 공연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나 선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배가 사용하던 의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오직 의상을 입을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우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다.

  거울 앞에 앉은 정우는 펜슬을 들어 아이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거운 동물 탈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기뻤다. 하지만 호들갑스럽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의 행동은 조금 우스웠다. 어차피 그래봤자 시시한 아동극 주인공 자리였다. 게다가 탈을 벗게 되면 자신의 맨얼굴이 관객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생각에 정우는 자꾸 화장을 덧입혔다.

=  양쪽 눈의 분장이 끝나자 정우는 꼼꼼하게 살폈다. 분장이 너무 과했는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원래 분장을 한 얼굴이 이렇던가?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얼굴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보았다. 그때, 그녀는 축 늘어진 입꼬리를 발견했다. 평소에도 약간은 시무룩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입꼬리를 올리던 그녀는 더럭 겁이 났다. 입술의 반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더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았다. 하지만 흘러내린 오른쪽 입술은 미동도 없었다. 입술뿐이 아니었다. 둥글게 휘어진 눈썹과 가느다랗게 웃음을 짓는 눈까지, 마치 그녀의 얼굴은 반으로 잘라놓은 듯 웃는 얼굴과 무표정한 얼굴로 나뉘었다. 급히 손으로 입술을 밀어 올려 보았다. 하지만 둔한 느낌만 있을 뿐, 입술은 손을 떼는 순간 도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안 올라가? 분장실 문이 열리고 토끼 탈을 뒤집어 쓴 승혜가 들어왔다. 승혜야, 자신의 두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정우는 돌아서는 승혜를 불렀다. 하지만 입 밖으로 길게 늘어진 승혜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혀가 두 배는 부풀어 오른 듯 입안을 꽉 채웠다.

  벨 마비네요. 진단명을 말해준 후 의사는 혹시 근래에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뇨, 없었는데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던 정우는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기억에 다시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오른쪽 귀가 심하게 저렸어요. 이를 닦는 데 힘이 들었고요. 벨 마비가 맞습니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종종 걸리는데, 이주 정도 약 드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앞으로 삼사일 정도 증세가 더 심해질 거예요. 간혹 마비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두고 봅시다.

  짜증나네. 진단을 전해들은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내뱉었다. 당분간은 무대에만 신경 쓸게요. 어눌한 정우의 말에 대표가 성마르게 손짓을 하며 말을 끊었다.

  “지금 무대가 문제야? 가뜩이나 사람도 없어 죽겠는데,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냐?”

  대표의 뒤쪽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이자 정우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표정이야 탈이라도 덮어쓰면 되겠지만, 그 발음은 어쩔 건데? 대표의 심정이야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자신은 이 극단에 무대미술을 위해 들어온 인력이었다. 그간 부족한 배우 역할을 맡아온 것도 엄밀히 말하면 극단 사정을 위해 그녀가 두 가지 역할을 군소리 없이 떠맡았던 것이 아닌가.

  “그만둬. 다른 사람 찾아볼 테니까.”

  대표의 말에 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기 못하면 필요 없어. 우리도 군식구 데리고 있을 여유가 없고. 대표의 말에 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대표 앞에서 요란스럽게 짐을 챙겨들고 뛰쳐나온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미술관 입구에 서있는 이관장의 흰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참산뱀눈나비는 부드러운 암갈색과 어두운 고동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색상의 날개를 가진 나비들과 달리, 수수한 날개를 가진 나비들은 유난히 시맥이 도드라졌다. 인간으로 치면 힘줄에 해당하는 이 시맥은 나뭇잎처럼 날개 전체에 뻗어 있었다. 영양분이 이동하는 통로이자 날개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특히 참산뱀눈나비의 날개는 시맥이 짙은 색으로 두드러져 나무줄기를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우는 농장에 들렀다. 남자가 챙겨주는 통 안을 들여다보는데 남자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를 했다. 속에 든 나비는 그녀가 주문한 양의 반도 되지 않아 보였다. 순간 밀려드는 불안감과 짜증에 입을 열었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혀로 남자에게 화를 내는 건 오히려 더 우스울 것 같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관장과 약속한 날이 바로 내일이었다. 오프닝 준비가 있기 전에 일찍 미술관에 도착해야 하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미리 분리해 놓은 날개들을 스케치 위로 배열하는 정우의 손이 떨렸다. 윗날개와 아랫날개를 한 줄씩 번갈아 줄 세우며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혀와 얼굴 반을 굳게 만든 마비가 손까지 내려왔는지 손놀림이 자꾸만 느려졌다. 준비해둔 마지막 날개 조각을 위치에 올려놓았을 때, 이미 시간은 새벽에 접어들고 있었다.

  정우는 작품의 빈 공간을 눈으로 가늠해 보았다. 배열을 조금 더 느슨하게 한다고 해도 그림을 채우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통으로 손을 뻗었다. 나비가 죽기만 맥 놓고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정우는 두려운 시선으로 통 속의 나비를 바라보았다. 작품에 사용된 세 종류의 나비 중 가장 짙은 털을 가진 나비였다. 주로 숲에서 서식하는 종류라 그런지 다른 나비들에 비해 날갯짓도 훨씬 힘차고 거칠게 느껴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핀셋을 집어든 그녀는 옆으로 밀어 개방할 수 있는 채집통의 문을 아주 살짝 밀었다. 핀셋 주둥이를 그 틈으로 밀어 넣어 나비의 날개로 움직였다. 이후로 한동안 그녀는 살아있는 나비를 한 마리 한 마리 핀셋으로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비들은 넓지도 않은 통 속을 이리저리 잘도 피해 날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약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녀에게 좋은 면도 있었다. 얇은 핀셋으로 한 마리의 나비를 잡기 위해 고생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날개를 분리하는 일에는 가차 없어졌다. 벌벌 떨며 날개를 분리하던 처음과 달리, 나중에는 쾌감마저 느끼며 날개를 떼어내곤 했다.

  산 채로 나비의 날개를 뜯는 일은 죽은 나비로 작업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날개를 양 옆으로 잡아당기며 정우는 살아있는 생명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에 놀랐다. 아니, 그보다는 나비의 몸통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 더욱 놀라웠다. 숨이 붙어있는 몸통은 날개를 질기게 붙들었다. 종잇장보다 얇은 날개가 분리되기 직전 발휘하는 본능은 생각보다 강했다. 게다가 쉼 없이 버둥거리는 긴 다리와 더듬이도 작업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녀는 이들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 영 불편했다. 둘둘 말려있는 대롱을 길게 뻗으며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는 나비들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손을 멈칫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더욱 이를 악물고 날개를 잡아 뜯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날개를 떼어내는 정우의 손길이 점점 더 빨라졌다. 몸통은 나비를 순장했던 투명한 통 속에 던져 넣었다. 날개가 제거된 나비는 가느다란 다리로 제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비의 날개를 떼어낸 후에야 그녀는 어째서 나비가 곤충과로 분류되는지 절감했다. 날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나비는 영락없는 다지류의 벌레였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우는 문득 자신이 저 통 속의 나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날개를 잃어버린 후, 여전히 목숨이 붙은 채로 버려진 나비는 마비가 온 후 극단에서 쫓겨난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또 다른 날개가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날개마저 모조리 빼앗긴 나비들이 통 속을 채우는 동안, 정우는 새로 얻은 날개로 그림을 채워갔다.

  두 개의 조명이 그림을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었다. 총 서른 한 명의 작가가 참가하는 전시회는 미술관의 세 개 층을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정우의 작품은 이층 전시관에 걸렸다. 그림을 받아들었을 때 이관장의 얼굴에 번지는 감탄에 그녀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프닝 직전에 나타난 그녀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던 이관장이었다. 작업은 밤을 꼬박 새우고도 정오를 넘겨서 끝이 났다. 작품에 고정액도 뿌리지 못한 채 그대로 들고 달려왔다. 통 속에서 꿈틀거리던 나비들을 잠시 떠올리던 그녀는 머리를 털며 오프닝 행사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간단한 오프닝이 끝나고, 전시회를 구경하는 관람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정우는 자리를 조금 이동했다. 옆에 전시된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척했지만, 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며 보일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어머, 기린이네! 여대생 두 명이 팔짱을 끼고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조명 덕분에 기린의 황금빛 신비로운 몸이 살아났다. 뭐로 만든 거지? 예쁘다! 학생들의 얼굴이 거의 작품에 닿을 듯 숙여지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두 학생은 거의 동시에 그림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그 중 한 학생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급히 손짓을 해댔다. 다른 작품 앞에 서 있던 몇 명의 무리가 달려왔다.

  “뭔데?”

  작품을 본 학생들의 입에서 연달아 탄성이 흘러나왔다. 뭐야? 동물 털인가? 진짜 기린 같다! 호들갑스럽게 말을 내뱉던 무리 중 하나가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을 손짓해 부른 학생이 그 손을 저지했다. 이거, 나비 날개야. 무리들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뭐? 라고 반문하자 학생은 다시 덧붙였다. 전부 다 나비 날개야. 팔짱까지 끼고 이야기하는 어투에 정우는 발끈했다. 그 어조에 담긴 작품에 대한 질책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작품 앞에 우글거리고 서있는 무리는 다른 이들의 관심까지 끌어들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비 날개라는 단어가 끝없이 맴돌았고, 한 번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자 그림 앞에는 어느새 한 무리가 둥글게 둘러서게 되었다.

  그때 이관장이 이층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이관장의 뒤로는 비슷한 연배의 남녀 세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든 모습은 당연히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관장은 평소 보기 드문 깍듯한 태도로 세 사람을 돌아보고 뭐라고 설명을 하고는 그들을 정우의 작품 앞으로 안내했다. 정우와 눈이 마주친 이관장은 슬쩍 웃어 보이며 그녀를 지나쳐 갔다.

  이관장의 여유로운 웃음은 작품 앞에 멈춰 서고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때 일행 중 한 여자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무 끔찍하네요!”

  여자의 이 말을 신호로 사람들이 저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소란 속에서 여자가 이관장에게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역시나 당황한 얼굴로 서 있던 이관장은 화풀이라도 하는 듯 망설임 없이 멀찍이 서있는 정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림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원망하듯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집안을 굴러다니고 있을 나비의 사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연민을 느낄 존재들은 아니었다. 나비의 모든 실체는 날개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때 여자가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림 앞을 떠나는 여자의 얼굴은 불쾌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를 당황한 이관장이 급히 따라갔다. 이관장의 행동에 정우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서있는 무리들 사이를 걸어 들어간 정우는 그림 앞에 섰다. 벅찬 기분에 괜히 그림 앞을 서성거리기만 했을 뿐 완성된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그녀도 처음이었다. 그림을 가득 채운 수백 개의 날개 조각들과 마주한 순간, 그녀가 본 것은 황금빛 털을 가진 기린도, 싱싱한 야자나무도 아니었다. 마치 환영처럼 그림 위로 나비의 사체들이 떠올라 정우는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깜빡여도 사체들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정우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눈앞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개가 아니었다. 촘촘히 겹쳐진 날개 사이로 그녀 자신이 그렇듯, 그들은 아마도 이 날개를 달고 마음껏 움직였을 수많은 나비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정우는 벽에서 그림을 떼어냈다. 그림을 손에 들고 몸을 돌리자,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흩어졌다. 그들의 얼굴에 가득 드러난 혐오감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조용히 미술관을 걸어 나왔다. 들고 있는 그림이 너무 무거웠다. 문득 사체들이 모인 종이를 들었을 때의 묵직함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정우는 액자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집을 나서기 전 들뜬 기분으로 고정했던 핀을 열고 액자 안에서 그림을 꺼내들었다. 그림을 들어 올린 그녀는 햇빛에 이리저리 각도를 움직여가며 그림을 감상했다. 다양한 빛깔로 변하는 기린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날개를 쓸어보았다. 작업 내내 따뜻하고 부드럽게 뛸 것 같았던 기린의 몸통은 건조하고 차가웠다. 날개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정우는 그 싸늘함에 숨을 몰아쉬었다. 손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기린은 사라져 버렸다. 화려한 비늘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저분한 회색 가루를 뒤집어쓴 날개들만 남아 있었다.

  손에 힘이 빠지면서 정우는 그림을 놓쳤다. 그림은 맥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손에 붙은 분진을 쓱 허벅지에 문질러 닦고 그녀는 작업대 앞에 털썩 앉았다. 그때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움직임이 있었다.

  작업대 위에 놓인 통 안에서 나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우는 얼굴을 통 가까이 가져갔다. 날개를 떼어낸 후 방치해둔 나비들이었다. 어차피 날 수가 없으니 굳이 뚜껑을 닫을 필요가 없어 그냥 두었었는데, 덕분에 아직 숨이 붙어있는 놈들이 몇 마리 있었다.

  날개가 제거된 나비들은 천천히 비틀거리며 움직였다. 그들은 이미 숨이 끊어진 동족의 몸을 밟고 모여들고 있었다. 스푼처럼 둥글려진 더듬이 끝으로 연방 서로를 더듬으며 나비들은 서로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마치 장님처럼 느리게, 그리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날개가 뜯기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비들은 그렇게 서로를 더듬고 스쳐지나가고, 또다시 마주서서 더듬기를 반복했다. 그 중 한 쌍의 나비가 신중하게 몸을 돌리더니 서로의 뒤꽁무니를 가까이 갖다 댔다.

  나비의 기이한 행동을 한동안 바라보던 정우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나비들의 짝짓기였다. 날개를 잃은 나비들은 태고 적부터 심어진 본능에 따라 서로의 짝을 찾아 움직였다. 이윽고 통 안의 살아있는 나비들 중 한 쌍의 나비가 더 제 짝을 찾아 몸을 맞붙였다. 그리고 짝짓기는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이어졌다. ＜ 끝 ＞

<당선소감>

   "절실하게 시작했던 글쓰기… 절박해지긴 싫어 "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녔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열심히 쓰면 언젠가 나도 소설을 쓰게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표를 찍은 글은 한 편도 나오지 않고 오른쪽 옆구리만 결리기 시작했다. 허리 병이었다. 무거운 걸 한쪽 어깨로만 들고 다녔기 때문이란다. 양 어깨로 가방을 메고 다니라는 처방을 받았다. 양쪽 어깨를 사용할 즈음 봄이 왔다. 허리 병이 가시자 소설에 대한 열망이 밀려들었다. 이때만 해도 신춘문예는 유일한 해열제처럼 여겨졌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난 후, 보름 남짓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날’의 전화를 받고 난 후, 고작 일곱 정류장의 거리를 이동하며 지하철에서 세 번 내렸다 다시 탔다. 절실하게 바라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절박해지기는 싫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한눈 팔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바라는 것을 하고 있어서, 그 길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되어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방 문을 잠그는 방법을 알았다. 고집스럽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변함없이 믿고 기다려주신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유일하게 나와 같은 유전자 조합을 가진 현정언니, 고마워. 음악처럼 위로가 되어준 동연언니, 허리 병 초기증상인 영은, 사랑한다. 나의 이십대 전부인 네마들, 안녕. 당선의 기쁨을 함께 해준 소행성 문우들과 미숙한 제자에게 항상 용기를 주시는 박상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부족한 글을 마지막까지 붙잡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채워나가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 1982년 서울 출생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졸업

  ●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

  

  <심사평>

  "섬세한 감수성·은유… 작가의 잠재력 기대돼" 

  문화일보 올해 응모소설은 양과 질(質)에서 풍성했다.

  최종심에 올라온 소설들도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오래전 데뷔할 때 응모하던 그 마음으로 정성껏 읽었다. 어쨌든 뽑아야 하는 것은 마음 아프게도 단 한편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작품은 ‘내 애인은 태평양처럼 누워 있다’(나혜준), ‘두 개의 슬픔’(진성혁), ‘소금’(박세연), ‘요리사의 아내’(윤선영), ‘파쿠르’(김나래), ‘나비’(서현경)였다.

  ‘내 애인은 태평양처럼 누워 있다’는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 합쳐지는 끝이 참 좋았으나 병실 안 사람들의 캐릭터가 산만하지 않은지에 대해 토론했고, ‘두 개의 슬픔’은 유려한 문장이 돋보였지만 쌍둥이 자매의 슬픔이 모호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소금’은 부녀의 슬픔을 잘 그렸으나 과연 소금을 먹여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며, ‘요리사의 아내’ 역시 밀도 있는 문체로 상실의 슬픔을 그리고 있는데 정작 남편과의 관계는 섬세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파쿠르’와 ‘나비’에서 토론이 길어졌다. ‘파쿠르’는 두 남자의 상처가 과연 도둑질까지 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찬가지로 ‘나비’도 화자의 내면진술이 조금 빈약하지 않은가, 나비는 날개를 뜯어내도 살아남아 짝짓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토론 시간이 길어졌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모든 예술의 본원적 토대라 할 섬세한 감수성과 은유에 대한 잠재적 역량을 선택했다. ‘나비’는 그런 점에서 숙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재기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작가의 잠재력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박범신, 송우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