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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빈 터 / 안희정


  드넓은 빈터는 하나의 세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잡초만 무성하여 그냥 지나쳐 갈 곳이었다.  

  발굴이란 것은 존재를 잊은 땅이 스스로 자신의 근원을 알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동안 잠재워졌던 땅의 고유한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작은 터널 앞에는 고도리 석불 입상이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나무판에 써놓은 글씨가

  유적지라기보다 마을 슈퍼라도 표시해 둔 것 같았다.

  음산한 터널은 생각보다 길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 속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발굴된 석상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작업용 붓으로 유물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십이센티의 작은 석상이었다. 여인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고운 목선으로 어깨선이 잘 다듬어진 좋은 작품이었다. 저고리의 옷고름을 도드라지게 조각한 솜씨에서 섬세함이 엿보였다. 여인은 작고 투박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풍만한 치맛자락은 발목을 감쌌다. 장신구가 없는 것을 보니 석상은 당시 평범한 아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석상의 자세가 의심스러웠다. 의자의 받침대는 단판연화대였고 그 아래에 여인의 한 발만 보였다. 오른쪽 무릎을 사선으로 굽히고 발을 왼쪽 무릎에 걸쳤다. 그것은 미륵의 반가사유 자세와 비슷했다. 석상은 회백색을 띠었고 검은 점들이 군데군데 퍼져 있었다. 그것은 땅 속에서 보낸 오래된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여인의 손모양은 보살의 수인이었다. 왼손은 무릎에 살며시 내려놓았고 오른쪽 두 손가락은 뺨에 살짝 닿았다. 반가사유상이 확실했다. 이 석상은 미륵보살인 것일까? 여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 상은 어느 시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지금으로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어느 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발굴 현장인 절터에는 미륵신앙이 천년 넘도록 자리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여인상을 불상이라고 추측하기는 어려웠다. 여인은 일상 복식이었으며 시대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필요했다. 다만 절터에서 발굴되고 미륵보살의 자세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장갑을 벗어 석상을 만져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여인의 눈동자는 시선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체적인 윤곽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잠시 누군가가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에 사람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움켜쥐고 있던 석상을 점퍼 안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훔친 여인상은 절터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는 유물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석상으로서 가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인상을 소유하고 싶었던 충동은 나 자신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정오의 햇볕은 모든 계절을 지난 듯 권태롭게 내려쬐고 있었다. 훔친 이유를 괜한 햇볕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이유는 늘 그렇게 가장되었다. 서른여덟 해를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언제든 세계가 거짓으로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이라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 사는 나 자신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배경처럼 세상과 나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세월에 따라 보고 알게 되는 것이 늘어갈수록 그러한 생각도 희미해져갔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실과 오해 사이에서 나는 무뎌져갔다.

  동이 트기 전 잠에서 눈이 떠졌다. 뒤척거리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사소한 기억들만 봇물처럼 쏟아졌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집착하는 것은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일까? 생에 대한 불확실함이 들 때마다 발굴하는 일에 더욱 매달렸다. 문득 어제 작업을 미흡하게 끝낸 부분이 생각났다. 일어나서 현장에 조금 일찍 올라갔다. 날은 아직 어두웠다. 찬 공기로 오한이 서렸다. 닭의 울음소리가 청명하게 울린다.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깔렸다. 뒤돌아보자 컨테이너 숙소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섬뜩함은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고독과 닮아있다. 자욱한 안개로 둘러싸인 길을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무덤을 파헤친 것 같은 몇 개의 흙구덩이를 지나쳤다. 현장은 어둠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 땅에 아침빛이 내려쬐면 버려진 땅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천 사백여년의 과거를 깊숙이 묻어두고 빈터로 존재했다. 이곳은 6세기 때 사찰이 지어진 터였다. 나는 빈터에 서서 숨을 고르고 현장을 맹렬히 쳐다보았다.

  정오가 되자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러 숙소로 내려갔다. 나는 잠시 장갑을 벗고 바닥에 걸터앉았다. 미세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바람은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대지의 숨결처럼 바람만 불 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들은 산산이 부서져 땅속 깊은 곳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는 여러 삶들이 묻혀있다. 인간과 자연의 역사가 숨겨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발굴할 계획이다. 세상은 비어있는 터전과 같기에 발굴은 생을 복원시키는 일이었다. 파헤쳐진 구멍에 손을 넣어 오래된 흙을 만져보았다. 둔탁한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돌조각이 가을빛에 눈부시게 드러났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가리켰다. 나 또한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루이를 떠올렸다. 그녀는 여전히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생각하며.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모든 일은 잘 되어가고 나도 잘 지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여전히 유물들 속에 파묻혀 살겠죠. 나는 가을을 느끼며 지냅니다. 서둘러 겨울도 상상하고 있어요. 이토록 눈을 기다리는 일은 실로 오랜만입니다.

  부탁이 있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앞으로 세 통의 편지가 더 보내질 거예요. 당신은 깨어진 파편에서 본래의 형태를 잘 추측했죠. 나는 당신에게 그렇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되길 바랄게요. 이제는 당신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더불어 빕니다.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며.

  늦가을 루이로부터.

  숙소로 돌아왔을 때 루이에게서 편지 한 통이 전해져 왔다. 정오의 기운은 예언처럼 그녀를 떠올리게 한 것일까? 일 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제멋대로 날 추측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혐오한다. 이곳은 평화로운 곳이다. 인근엔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가을이라는 계절은 일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를 제공해주었다. 우린 이번에야 말로 시대의 이야기가 담긴 유물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정말이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서 나를 발견하라고? 빌어먹을. 나는 충분히 자신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녀는 헛된 몽상에 빠진 것이다. 나에 대한 고민이란 깊게 할수록 나 자신을 고립되게 만들 뿐이다. 고대인부터 시작된 도구의 발달은 인간을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바로 땅 속에 잠재워진 유물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발견은 이런 눈앞에 보일 수 있는 근거로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후에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서 적절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가슴 품 안에 있는 여인상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제기랄. 모든 것을 루이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현장 사람들의 행동을 살폈다. 그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경직된 몸을 끌고 장터 외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이른 저녁 시간으로 손님은 없었다. 백반을 주문하고 나서 탁자 위에 있는 티슈로 주변을 닦았다. 다시 티슈를 뽑아 두 번 접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갈색 나뭇결무늬통에서 수저를 꺼내 그 위에 올려놓았다. 루이는 나를 결벽증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안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석상을 꺼냈다. 턱을 괸 채 조용히 바라보았다. 돌의 윤곽이 뚜렷해질수록 그리웠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다.

  현관에 걸려있던 풍경은 맑은 소리로 울렸다. 문을 밀고 식당으로 들어온 사내는 두툼한 산악용 점퍼에 허름한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벙거지를 쓴 사내가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눈빛을 피해 다시 석상을 살펴보았다.

  “거, 신기한 상이구려.”

  사내는 나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괜한 조바심에 말을 삼갔다. 사내는 다시 중얼거렸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여인은 말이 없고, 입술만 굳건히 다물었네. 그이는 좋은 작품이 아니구려. 돌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인게지.”

  저런 돌팔이가 있나. 분명 사내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곁눈질로 본 세상을 아는 척하는 작자일 것이다. 은근슬쩍 쳐다보는 사내의 눈초리로 불쾌함이 들었다.

  “그이는 조각한 사람의 생각만 가득 차 있군. 돌도 자신의 기운을 담고 있을텐데.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알고 있는 것만 새긴 형국이야.”

  말을 마친 사내는 안타깝다는 듯이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음식이 나오자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찌개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나는 한참 전에 나온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여인상만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계산을 한 뒤 식당을 빠져 나왔다. 사내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차를 끌고 장터에서 빠져나왔다. 보조석에는 우편물들이 놓여 있었다. 팔을 뻗어 서너 개를 집었다. 자동차보험비와 전화요금 등 각종 지로용지였다. 받는 이에는 나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맨 밑에 보낸 이름이 없는 흰 봉투가 있었다. 근처에 있는 가게 앞에 차를 잠시 세웠다. 가게에서 담배를 산 뒤 앞에 놓인 마루에 걸터앉았다. 손에 들린 흰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는 봉투의 하단 깊숙한 부분에 접혀져 있어 잘 나오질 않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봉투를 흔들었다. 종이에서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풍겼다. 편지는 뜻밖에도 오래 전 내가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

  루이씨에게.

  안녕하세요.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오늘 야외 현장에 다녀왔어요. 얼굴도 좀 탔죠. 산에 다녀왔더니 힘드네요. 그래도 현장은 늘 좋아요. 과거를 담은 곳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들떠요. 지금은 보잘 것 없이 잡초로 무성한 빈터로 있지만 예전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겠죠.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며 그들의 삶도 있었겠죠. 고도리 석불입상은 여전히 의문이에요. 좀처럼 자료가 수집되지 않아요. 같은 상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떨어져서 세워진 건 무슨 이유일까요? 두 상이 몇 백 년 동안 마주본 채 말이에요.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이 오면 다시 가요. 그 마을 분들은 알지도 모르겠네요. 늦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져요. 잘 지내요. 또 편지 쓰겠습니다.

  1999. 8. 2.

  새벽녘, 예로부터.

  편지지를 천천히 다시 접어 봉투에 넣고 보조석에 던졌다. 내가 또는 그녀가 보낸 편지이다.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은 내가 살고 있는 빈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나라는 건 정말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한적한 도로에 차들이 가끔씩 지나가며 불빛을 길게 쏘았다. 무신경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녀의 편지를 안 보면 그만일 거라고 자신에게 수없이 말했지만, 이미 나는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보니 초승달이 떠 있었다. 차에서 내렸다. 새까만 밤 광활한 추억 속에서 나는 서성거렸다.

  인간의 눈에 비친 달의 모습은 늘 변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하늘에는 늘 낮고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찬 달이 보였다. 거리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도서관에서 나올 때도 달은 매번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삶도 그랬다. 허전한 일상은 반복되어 흘러갔다. 제대 한 후 일 년 동안 일을 했다. 그 돈으로 복학한 대학생활이었다. 사람들에게도 수업에도 적응하지 못할 때였다. 빈곤은 목 아래에서 허덕였다. 허기는 쓸쓸함과 동반된다. 나는 배가 고픈 건지 외로운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늘 그런 식이었다. 거기다 결벽증적인 습관은 점점 심해져갔다. 마치 피어오르는 젊음의 욕망들을 씻겨낸다는 듯이 밤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해진 옷가지들을 빨곤 했다. 극도로 치닫기 전 새로운 공간을 알게된 건 다행이었다. 그곳은 야외 수업으로 나간 발굴 현장이었다.

  드넓은 빈터는 하나의 세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잡초만 무성하여 그냥 지나쳐 갈 곳이었다. 발굴이란 것은 존재를 잊은 땅이 스스로 자신의 근원을 알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동안 잠재워졌던 땅의 고유한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그 때는 이 일에 내 삶을 바쳐도 아쉬움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나 자신도 본래의 존재로서 발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도 버려진 땅은 아니었다. 대지들은 자신을 드러낼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 땅이라도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했고 기억이 머물렀다. 빈터처럼 정적으로 무뎌졌던 내 삶도 믿을 만한 것이 되어갈 것이다.

  휴일마다 배낭을 메고 교외로 나갔다. 작은 도심을 빠져나가면 인근에 유적지들이 제법 있었다. 좁은 논둑을 따라 길을 걸었다. 둥글게 말린 볏짚은 비닐에 덮여 논밭에 흩어져 있었다. 시골의 겨울은 한적했고 조용했다. 인적도 드물었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소리만 논밭을 메웠다.



  작은 터널 앞에는 고도리 석불 입상이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나무판에 써놓은 글씨가 유적지라기보다 마을 슈퍼라도 표시해 둔 것 같았다. 음산한 터널은 생각보다 길었다. 물이 고인 자리에 과자봉지가 버려져 있어 더욱 의심스러웠다. 어두웠던 터널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시골풍경은 환한 대낮으로 다른 세상처럼 눈부셨다. 황량한 논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사이로 키가 큰 석상이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고도리 석불 입상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두 시간을 넘게 걸어와 다리가 아팠다. 천천히 걸어가서 불상 앞에 섰다. 숨을 돌리고 불상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그때 슬며시 부처의 미소가 다가왔다. 온화하게 웃음 짓고 있는 부처의 웃음은 따뜻했다. 오길 잘했구나.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배낭을 벗어놓고 불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네모진 얼굴과 사각의 관이 독특하면서 단조로워 시골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도포를 입은 모습을 서너 줄로 새기고 두 손은 포개졌다. 몸짓은 최대한 절제함을 갖추었다. 사 미터가 넘는 입상을 올려다보며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가까운 곳에 벤치가 보였다. 배낭을 들고 그곳으로 걸어가 앉았다. 바로 앞에 냇가가 있었다. 바람이 차갑고 하늘도 어두워져갔다. 혼자 있는 이곳에 덜컥 눈이나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보였다. 비닐하우스와 조그만 컨테이너도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 건너편에 멀찍이 석상 한 구가 더 보였다. 모양새가 눈앞에 있는 불상과 닮아 있었다. 같은 것인가? 그제야 안내서를 읽어 보았다. 남녀불상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두 상의 떨어진 거리는 이백 미터였다. 그 사이에는 냇물이 얼려져 있었다. 그들의 관계에는 마치 얼어버린 냇물처럼 깊은 골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옷깃을 여몄다. 사진을 찍는 동안 벗어두었던 장갑을 외투 주머니에게 꺼냈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다리가 따끔했다. 종아리에 작은 돌멩이를 맞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너편 불상에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파카를 입고 회색 털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그 여자는 바닥에 있는 돌을 주웠다. 내가 벤치에서 일어나자 키가 작은 여자는 주운 돌을 던지려다 땅에 떨어뜨렸다. 배낭을 둘러메고 그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뭐하는 거예요?”

  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다섯 마리의 개가 짖으며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여자가 먼지 묻은 손을 탁탁 털고는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미안한 듯 입을 가리고 계속 웃었다. 졸던 개들은 깜짝 놀란 모양이었던지 계속 짖어댔다. 얼마 후 별 다른 반응이 없자 스르르 다시 비닐하우스로 발걸음을 돌리거나 그 자리에 꼬리를 내리고 앉았다.

  “미안해요.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그랬어요.”

  목소리가 앳되었다. 여자는 누구일까? 나는 부처의 그리움과 염원이 담긴 반대편 입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입상이 못내 안타까웠다. 인간이라면 평생 손을 잡을 수도, 온기를 느낄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거리였다. 사람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그랬는지 석불은 모든 걸 초월한 듯 맹렬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석불 입상 주변을 돌았다.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입상을 찍었다. 잠시 이쪽을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마치 눈을 마주친 것 같아서 짐짓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터벅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시선을 입상에 두는 척하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점점 그녀와 나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녀는 얼어버린 냇물 앞에 서서 몸을 숙이곤 소리쳤다.

  “저기요.”

  나는 턱을 어루만졌다. 혹시 나를 부르는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느리게 냇가로 걸어갔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개들은 조금 수그러든 것 같았지만 여전히 얕게나마 짖어댔다.

  “죄송한데, 이쪽으로 오셔서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거기로 어떻게 가는데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허름한 다리가 있었다. 갈대밭에 바람이 천천히 불어왔다.

  그때 나는 루이를 땅 속에서 발굴한 것 같았다. 흙이 털어지지 않은 유물처럼 그녀에게서 오랜 시간이 느껴졌다. 그것도 난잡하고 못생긴 얼굴을 가진 채였다. 누군가 루이를 사랑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다음 날 숙소로 루이에게서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운 예에게

  산을 오른다는 것은 때론 춤을 추는 행위와 비슷하죠. 높이 오를수록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그래요. 가을산은 세상의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잔잔히 깔린 은행잎의 길.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아직 갈매빛 잎 몇 개를 달고 있는 느티나무가 보여요. 잎이 모두 떨어진 잔가지들도 있죠. 붉은색의 모든 표현들은 단풍나무들의 잎사귀에서 물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림처럼 새겨진 감나무는 인간과 새들이 모두 좋아하는 것이죠. 나는 떨어진 단감을 주워 한 입 베어 먹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형언할 수 없는 울긋불긋함의 미가 가슴을 벅차게 했죠. 자연의 산물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것은 산기슭으로 들어갔을 때 더욱 알 수 있죠. 밖에서 멀리 내다보는 가을산은 온통 빨갛게 질려 보이기만 했으니까요.

  산에서 내려와 한 시간 동안 기다린 다음이었어요. 나는 길을 잘 모르기에 운전기사의 바로 뒤 칸에 앉았어요. 마을이 가까워올 때 차창 너머로 어떤 노인이 논둑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운전기사는 차를 멈췄어요. 노인은 마침내 버스의 문을 두드리고 천천히 올라탔어요. 할아버지! 젠장. 시간 맞춰갖고 정류장에 계시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꺼? 나는 저런 싹수없는 사람이 다 있나하고 생각했어요.

=  그리고 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군요. 그래, 어떻게 됐나? 택시 다 안 올라하드나? … 아는 피 멈췄고? 됐다 마, 내가 금방 차 끌고 올라 갈 기다. 종자야… 울지 말고. 버스는 다시 시골길을 오랫동안 달렸죠. 안내방송은 라디오처럼 낯선 마을 이름들을 하나 둘 설명하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당신도 그리 나쁜 사람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기억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일상에서 오는 이해들을 다시 망각하겠죠. 난 당신을 떠올리며 또 미워할지 몰라요. 한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는 오해는 얼마나 우스운 건가요. 나는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제대로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당신조차 말이에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 루이로부터.

  식당에 들어가 구석에 앉았다. 나무로 만든 오래된 탁자였다. 나는 막걸리 한 되와 식사를 시켰다. 술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 중 하나였다. 루이가 보고 싶었다. 사발에 천천히 따라서 한 번에 들이켰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려고 두 눈을 부릅떴다. 점퍼 안주머니에서 비닐로 말은 석상을 꺼냈다. 나는 천천히 비닐을 벗겼다. 그릇들과 주전자를 구석으로 밀어놓고 수첩을 꺼냈다. 석상도 가슴 가까이에 세워두었다. 석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종이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간 걸까? 여인을 그리는 선이 억눌린 마음에 각인되듯이 굵고 깊게 이어졌다. 다시 연필을 잡았다. 성심을 다하여 여인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그려나갔다. 미세한 눈매는 낮고 긴 산맥처럼, 아래는 움푹 파인 강가처럼 선을 둥글게 그렸다. 그 안에 원형의 달을 채웠다. 그것은 여인의 눈동자였다. 문제는 그 눈동자일 것이다. 며칠 전 식당에서 마주친 사내가 말했듯 눈동자에는 생동감이 없었다. 석상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조각한 사람의 염원만 보일 뿐이었다.

  풍경이 흔들리며 사내가 들어왔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그는 벌써 만취한 상태였다. 밖은 비가 많이 내렸는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신을 제멋대로 벗고는 여닫이문을 손으로 꽉 잡으며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거친 손은 컸고 굳은살이 배어 있었다. 마주보고 있던 나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홍조 띤 얼굴로 나를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거, 젊은 양반. 그 석상에서 아직도 집착을 못 버렸나 보군.”

  사내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석상이 문제가 아니야. 고통으로 저 바닥까지 짓누르고 있는 건 허상으로 만들어낸 나라고 생각하는 놈 때문이지.”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했다.

   “자네, 아사녀와 아사달의 이야기 알지. 서로 그리워만 하다가는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나? 바로 절망이지. 끝도 없는 오해 속으로 빠져든다네.”

  사내는 내 앞에 앉았다. 구석에 밀어둔 술잔을 자기 앞에 놓고는 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랐다.

  “아사녀의 얼굴에 반가사유자세라. 재미있군. 미륵은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고 하지만 저 석상을 만든 사람은 여인을 통해 무엇을 구원하고 싶었던게지?”

  사내는 잔을 한숨에 들이켰다. 가방에서 신문지로 말은 물건을 꺼냈다. 꼬깃꼬깃하고 해진 신문지는 안에 감싸여 있는 물건이 무엇이든 간에 그 자체만으로 초라해 보였다. 사내는 거친 손으로 신문지를 풀어헤쳤다. 그 안에는 남자의 모습이 새겨진 석상이 있었다. 사내는 그 상을 여인상 옆에 세워두었다. 그 둘의 상은 비슷한 크기였다. 원래 그 둘이 하나의 작품인 듯 잘 어울리기까지 했다. 내가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사내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자네가 갖고 있는 여인 입상은 아마도 이 남자가 만들었을 거야.”

  나는 사내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처음으로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대낮부터 술이 단단히 취하셨습니까?”

  사내는 심각하게 묻고 있는 나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이내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웃었다.

  “만약에 이 남자 입상이 아사달 같은 석공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잘 살펴보게. 이 남자의 손에는 연장이 들려있어. 이 둘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사내는 여인상을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움이 너무 컸던 게지. 자신을 잃을 정도로. 그래서 오해는 깊었을 것이고.”

  다시 주전자를 들어 사발 가득 부었다. 그것을 한 번에 또 들이키고는 그림을 보며 말을 건넸다.

  “그건 그렇고. 자네도 참 고리타분하네. 이미 한 번 조각된 걸 그려 무엇하나? 그림 솜씨도 영 형편없는데. 새로운 걸 그려봐. 새로운 자신의 이야기를 말일세.”

  나는 사내 앞에 놓인 잔을 가져온 다음 주전자에 있는 술을 마저 부었다. 아까 마신 술과 함께 취기가 올라왔다.

  “이봐, 과거를 너무 괴롭히지 말게. 밖에 눈이 오는구려.”

  사내는 자신의 상을 다시 신문지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일어나서 가방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가 나가자마자 기운이 빠졌다. 한동안 멍하니 나는 그림을 보았다. 그려진 건 여인의 상인지,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가 남긴 말들이 점점 떠올랐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은 말이다. 언제부터 그리움을 알게 되었을까? 인간은 누군가가 왜 그리운 것일까? 그리움이란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예에게

  첫눈이 온다는 소식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기다리다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어제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을 다녀왔어요. 석불 입상 사이에 있던 냇가에는 바로 건너갈 수 있는 새 다리가 생겼더군요.

  언제나 당신을 바라볼 때면 굳어버린 감정도 설렘으로 가득 했었는데. 그래서 당신과 인연이 되지 않은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이제 내 마음은 당신이 어느 날 젊은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무렵, 꺼내 볼 수 있도록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둘게요. 예, 나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시작할 거예요.

  한 번은 당신이 내게 이렇게 말했었죠. 인간이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짓말이라고요. 그런데 이해라니요?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된 것뿐이에요. 당신이 살아있고 숨을 쉬고 존재하고 있다는 걸 나라는 사람이 알게 되었다는 것 말이에요.

  루이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어제 오후 숙소로 루이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현장으로 올라갔다. 호숫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쏟아지는 빛으로 이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스름한 안개를 걷은 푸른 하늘은 삶을 배신하려는 나에게 자신의 열림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나는 절망한 채로 고르지 못한 땅 위에 누웠다. 개미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저들끼리 나에 대해 속삭였다. 인간들이란 기억을 배신하는 동물들이지. 그리고 배반한 추억들로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고 망각된 자야. 나는 그러한 상상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서 삽으로 흙을 퍼올렸다. 흙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정신없이 흙을 퍼내는 일에만 열중했다. 바다의 심연처럼 그곳은 깊숙한 곳으로 갈수록 더 어두웠다. 이 땅은 오래 전 잠재워진 곳이다. 흙구덩이의 저 먼 어둠에는 과거의 시간들이 살아있을 것이다. 지금 루이를 처음 본 그 날을 떠올린다. 석상을 조각한 누군가는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점퍼 안주머니에 있는 여인상을 조심스럽게 흙구덩이에 넣었다. 석상이 누군가에게 다시 발굴되기를 빌어본다. 인간은 타인의 시간을 통해서 살고 있었다. 내가 바라본 그 땅은 언제나 빈터로서 존재했다. 무엇을 해도 허전했던 나의 삶도 이유 없는 불안들도 모두 내 것이었으며 영원히 내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비어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경주로 갈 것이다. 백제에 살던 아사달이 탑을 짓기 위해 떠났던 것처럼 영원한 타인이자 나인 당신을 찾기 위해 떠날 것이다.


<당선소감>

   "삶을 사랑하기에 글이 소통구이다"

  두 발을 땅에 딛고 가만히 이 현실을 바라봅니다. 문득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이라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묵묵히 시간을 걷고 잊으며 추억하며 아물어가며 살아갑니다. 너와 내가 이 고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기에 서로 부대끼며 바라보며 정을 주며 살아갑니다. 삶과 사람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 저는 글을 소통구로 삼았습니다. 빚진 삶이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며 좋은 글 쓸 것을 다짐합니다. 나를 치유하며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세상을 더 잘 보겠습니다.

  ‘나’를 가진 이들은 모두 외롭습니다. 앞으로 ‘나’를 버릴 수 있도록 세상을 더불어 넓게 보겠습니다. 깊은 사랑과 배려를 주신 어머니, 아버지, 오빠, 첫 독자가 되길 바라며 내 손을 마주잡은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랜 시간동안 함께해오며 습작생들의 지친 기다림을 즐겁게 문학으로 나눈 문우들, 사랑하는 벗과 지켜봐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물지 못한 글을 더 단단해지라고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불교신문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부처의 나라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을 당신들에게 빚진 삶을 글쓰기로 충실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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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향기와 감수성을 갖춘 명품

  서사의 무늬와 결과 색깔이 은은하면서도 아름답고 곱다.

  심사하기 전날 보림사에서 비로자나불을 친견하고 왔다. 소설을 나는 감히 비로자나불(法身佛)과 견주어 생각한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비가시적인 진리의 빛을 가시적으로 형상화 시켜 놓은 부처님이다. 소설가는 뿌리를 우주에 뻗어, 흩어져 있는 비가시적인 빛을 빨아들여 아름다운 진리를 형상화한다. 소설이 창조적인 예술작품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심사에 임했다.

  <불교신문>에서 모집한 소설들이어서인지, 절과 스님과 윤회와 깨달음과 수행과 관계된 작품들이 많았다. 일차적으로 ‘배설’ ‘당신의 자리’ ‘늪처럼 자라나다’ ‘모크샤’ ‘흙새, 날아오르다’ ‘능엄경을 듣는 저녁’ ‘빈터’ 등 7 편을 본선에 올려놓고 정독을 했다.

  ‘당신의 자리’는 소설 기본문법을 덜 익힌 작품으로 문장의 밀도가 떨어진다. ‘배설’은 문장의 밀도가 짙지만, 의식이 과잉되어 있고, 위악적이고 치기가 있다. ‘늪처럼 자라나다’는 작위적이고 결말이 갑작스럽다. ‘모크샤’는 이야기의 결이 곱지 못하다. ‘능엄경을 듣는 저녁’는 허무를 잘 승화시켰는데, 신선감이 부족하다. ‘흙새, 날아오르다’는 화자가 죽은 자인데, 아름다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결말이 눈물겹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당선작으로선 중량감이 부족하다. ‘빈터’는 지적인 감수성이 뛰어나다. 서사의 무늬와 결과 색깔이 은은하면서도 아름답고 곱다. 문장의 밀도도 있고, 거기에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빈터’가 닭들 가운데 봉으로 느껴져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하고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 한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