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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켄타우로스의 시대 / 천재강

  비포장 길로 들어서자마자 트럭이 흔들렸다. 덜컹거린 후에는 어김없이 자갈이 튀어 올라 트럭의 밑바닥을 세게 때렸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담배를 피웠다. 열린 창으로 후터분한 바람과 먼지가 들어왔다. 전방 오십 미터 야영장. 누런 상자로 된 팻말이 비포장 길 오른쪽 풀숲에 서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장 난 에어컨은 방학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에서 오전부터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야영장은 마을과 강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마을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오솔길로는 차가 다닐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야영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길을 따라 돌아가야 했다. 마을에서 강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내려가면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나왔다. 오른쪽 길은 강을 따라 아랫마을과 다른 면(面)으로 이어졌고, 왼쪽 길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댐과 휴게소로 이어졌다. 차를 타고 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야영장 앞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차들은 야영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담배꽁초를 밖으로 던졌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풀숲이 끝나는 곳에 흙을 쌓아 만든 야영장에는 곧게 자란 미루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미루나무 그늘과 고운 모래 바닥으로 인해 여름마다 많은 사람이 야영장을 찾았다. 마을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오솔길과 야영장의 경계에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야영객들은 그곳에서 먹을 것과 필요한 것들을 사는 것으로 자릿세를 대신했다. 야영장은 사방으로 트여 있어서 어디로든 드나들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가게를 지나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이장과 할아버지들이 가게 마루에 앉아 무심히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트럭을 왼쪽으로 돌려 강가로 내려갔다. 비탈길 옆으로 익사사고 다발지역 현수막 하나가 더위에 지친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노란 머리의 남자들이 장난을 치며 비탈길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아버지는 클랙슨을 시끄럽게 울렸다.

  “쪼그만 것들이 겁대가리 없이……”

  아버지는 노란 머리의 남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였지만 남자들은 고등학생 형들 또래로 보였다. 남자들을 뒤따르던 단발머리의 여자들이 깔깔거렸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단발머리들의 속옷이 드러났다. 강가는 자갈밭으로 길게 이어져 트럭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잡음이 심한 라디오를 껐다.

  아버지는 잠시 트럭을 세웠다. 뒤따라온 먼지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다. 고개를 돌리거나 손을 저어 먼지를 피하려고 했지만, 먼지는 더욱 몸을 부풀려 그들을 집어삼켰다. 아버지는 트럭을 후진시켜 최대한 강으로 바짝 붙였다.

  “빠져 죽기 좋은 날씨야.”

  트럭으로 다가선 경찰이 말했다. 시동을 끄고 내리는 아버지를 따라 나도 문을 열고 트럭에서 내렸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 속으로 햇볕이 파고들어 정수리가 뜨끈했다. 기다리고 있던 잠수부 두 명이 트럭의 적재함에서 고무보트를 내리기 시작했다. 잠수부들은 검은 잠수복의 지퍼를 배꼽까지 내린 채 웃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뒤로 곧게 젖혀진 잠수복의 두 팔이 허리 아래에서 흔들거렸다.

  “낚싯대만 들고 사라졌다는데, 한참 떠내려갔겠지?”

  경찰은 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도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봤다.

  “인상착의는요?”

  “그게 문제야. 말을 안 해.”

  아버지가 경찰을 바라봤다.

  “왜요?”

  “내가 아나.”

  자갈밭을 걸어온 낚시꾼들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피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라며 떠내려간 사람의 생김새에 대해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데 연락한 건 아니죠?”

  “아무렴. 소장이 그놈들한테 연락하려는 걸 간신히 말렸네.”

  “잘하셨어요. 시체야 찾으면 되죠.”

  “자네만 믿네. 수고해.”

  경찰은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눈가의 주름이 쪼글쪼글해졌고, 벗겨진 이마는 햇빛에 반짝거렸다. 잠수부들이 고무보트에 공기통을 실었다. 그들이 엔진을 장착하는 사이 아버지는 트럭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경찰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잡것들 오기 전에 해치워야지.”

  아버지가 트럭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수복의 지퍼를 배꼽까지 내린 채 시커먼 웃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뒤로 젖혀진 검은 잠수복의 두 팔이 아버지의 다리 뒤로 늘어졌다. 아버지와 잠수부들이 고무보트를 밀면서 강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손잡이를 붙잡고 날렵하게 몸을 솟구쳐 고무보트에 승선했다. 잠수부들도 몸을 솟구쳤다. 물에 젖은 잠수복이 반지르르했다. 잠수부 한 명이 손잡이를 잡고 버둥거리다 고무보트에서 미끄러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물에 빠진 잠수부는 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고 간신히 고무보트에 승선했다. 엔진도 말썽을 부렸다. 시동을 거는 족족 꺼져버려서 아버지가 엔진을 후려쳤다. 푸륵, 푸르륵, 거리던 엔진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잠수복에 손을 넣고 지퍼를 올렸다. 고무보트는 흰 물결을 일으키며 강 아래로 힘차게 내려갔다.

  강가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양쪽으로 여섯 개씩, 강을 가로질러 세워져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그 위로 강을 지나, 마을의 큰길에서 갈라진 왼쪽 길 위로 지나갔다.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휴게소가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사람이 강을 찾기 시작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댐과 소수력발전소(小水力發電所)도 건설되었다. 댐이라고 하기에는 작았고, 둑이라고 하기에는 컸다. 전기가 귀했을 때라 고속도로와 휴게소에서 쓰고 남은 전기를 마을에 공급해 준다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이 나서서 작업을 도왔다. 젊었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댐은 콘크리트로 터를 높여 긴 고무를 설치한 게 전부였다. 공사가 끝난 후 사람들은 댐을 가리켜 ‘라바(rubber)댐’이라고 불렀다. 긴 고무는 내 키보다 작은 일 미터 육십 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항상 팽창돼 있었으며 강물을 막고 있었다. 그 옆으로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다녔다. 큰비가 오거나 장마가 질 때는 고무 위로 물이 넘쳤고, 발전소는 사이렌을 울리며 방송을 했다. 고무가 견디지 못할 정도의 물이 넘칠 땐 공기를 빼기도 했다. 고무의 양 끝이 서서히 내려앉으면 수평을 이루며 흐르던 흙탕물도 양 끝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발전소와 댐이 건설되고 난 후부터 익사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공사에 필요한 모래와 흙을 강에서 퍼 올린 것이 문제였다. 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어디서 얼마나 모래와 흙을 퍼냈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는 눈만 깜빡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가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될수록 오전에 사람이 죽은 곳에서 오후에도 죽었고 이튿날도 어김없었다. 그들은 익사사고가 빈번한 지점에서 죽거나 그곳과 가까운 지점에서 허우적거리다 구조되었다. 물귀신을 달래야 한다며 마을에서 굿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익사사고가 난 뒤에야 사람들은 자리를 피했고, 이제 막 강에 도착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찰이 무엇을 묻든 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잠잠했다. 몇 사람이 앞을 가리는 바람에 나는 그들을 피해 조금 더 앞으로 나왔다. 여자의 얼굴에서 눈물과 침이 끈적끈적하게 늘어졌다.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는 무릎까지 말려 올라갔고 흙물이 들어 얼룩덜룩했다.

  “이렇게 협조를 안 해서야.”

  경찰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겨드랑이가 흠뻑 젖어 있었다. 부하 직원이 있었지만 익사사고와 관련된 일은 모두 경찰이 맡아서 했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나선 이후로 경찰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 나타났다.

  경찰은 햇빛에 빛나는 은색 돗자리로 걸어가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양산을 치우고, 핸드백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한번 돗자리를 둘러보고, 꽃이 달린 챙이 넓은 모자를 들추었다. 그 모자를 보자 중학교 친구들의 책받침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 가수가 생각났다. 경찰은 바닥에서 검은 지갑을 들고 무전기에 대고 뭐라 말했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알 수 없는 번호와 말들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다시 여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친구 맞아요?”

  경찰이 말한 순간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여자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왜요?”

  “아니 뭐……”

  “뭐요. 남자친구 하면 안 돼요?”

  여자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경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수건으로 땀만 닦았다. 구급차와 검은 승용차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왔다.

  고무보트는 한 시간 만에 나타났다. 물살을 가르며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고무보트를 보자마자 여자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놀란 사람들이 쫓아가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깊은 강물 속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여자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며 끌려나왔다. 푸른색 원피스가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가 여자의 희고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나는 여자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입이 바짝 마르고 침이 넘어갔다. 더위 탓이라고 생각했다. 잠수부들은 강 한가운데 고무보트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시체는 꼭 흰 천으로 덮었는데, 그게 협상하는 데 유리하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구급대원들이 여자를 데리고 구급차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검은 승용차를 보며 웅성거렸다. 승용차 안으로 들어간 경찰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기사가 승용차 옆에 서 있었다. 땀을 닦을 때 말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문을 열고 나온 구급대원이 강으로 걸어갔다. 잠수부들은 잠수복의 지퍼를 배꼽까지 내리고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남자예요?”

  구급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잠수부 한 명이 팔을 들어 동그랗게 만들었다.

  “몇 살이에요?”

  “한 오십 대 정도.”

  “살아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구급대원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느새 밖으로 나온 경찰이 차 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사가 완벽하게 차 안을 가리고 있었다. 경찰은 기사에게도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고무보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사히 협상을 마쳤다는 신호였다. 경찰은 잠수부들이 이만큼 돈을 요구했는데, 자기가 나서서 요만큼만 받으라고 했으니 어서 돈을 줘버리고 시신을 찾으라고 말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의 장점이었다. 고무보트에 앉아 있던 잠수부들이 모두 일어섰다. 고무보트가 흔들리는 바람에 흰 천에 덮인 시체가 움직였다. 사람들이 강으로 바짝 다가섰다. 들것을 가지고 오는 구급대원들과 얘기를 마친 경찰은 구급차를 향해 걸어갔다.

  고무보트가 강가에 다다랐을 즘,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왔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무보트의 방향을 돌려 강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의기양양하게 서 있던 잠수부들이 벌렁 자빠졌다.

  강가에 있던 사람들이 구급차 주위로 몰려갔다. 나도 경찰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남자를 끌어안고 있었다. 팬티만 입은 남자는 오른손에 낚싯대를 왼손에 꿰미를 들고 있었다. 은색 스테인리스로 된 꿰미에는 쏘가리와 꺽지들이 아래턱을 꿰뚫린 채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엉거주춤 서서 꿰미를 든 왼손으로 여자의 등을 다독였다. 그 바람에 물고기들이 흐늘쩍거렸다.

  “그래서 많이 놀랐구나. 미안해요.”

  “얼마나 끔찍했다고요. 꿈은 아니죠?”

  여자는 수염이 듬성듬성한 남자의 턱을 꼬집었다.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팬티 위로 늘어진 뱃살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때문인지 남자는 예상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였다. 나는 남자친구가 확실하냐고 거듭 물었던 경찰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물에 젖은 남자의 헐렁한 팬티가 힘없이 흔들렸다. 사람들 틈에서 나온 기사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십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남자는 여자를 안은 채 기사에게 말했다. 멀리서 잠수부가 뛰어오고 있었다.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람이? 어디.”

  남자는 다리를 구부려 낚싯대와 꿰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자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여자는 남자를 꼭 끌어안았다. 잠수부는 난처한 표정으로 경찰의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경찰이 이를 꽉 문 채 조용히 말했다.

  “이상하네. 그럼 우리가 건진 건 누구지?”

  “뭐? 장난해.”

  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경찰을 향했다. 경찰은 애써 웃으며 땀을 닦았다.

  “그놈들한테 일을 맡겨야 정신 차리겠어?”

  “죄송합니다.”

  “병신 같은 것들.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는데…… 귀찮게 하지 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당장.”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수부는 강 아래로 뛰어갔다. 뒤로 젖혀진 잠수복의 두 팔이 다리처럼 움직여 마치 짐승이 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시체는 죽은 곳에서 얼마만큼 떠내려갔다가 잠수부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시체들의 신발이나 반지, 목걸이, 시계들이었다. 잠수부들은 협상을 위해 시체를 바위틈에 숨기거나 돌로 눌러놓기도 했다. 아버지가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몸값을 더 받아내려고 강 한가운데서 슬쩍 시체를 띄우는 잠수부들도 많았다. 잠수부들은 그것을 쇼라고 불렀다. 쇼를 해서 많은 몸값을 뜯어낸 날은 파출소에서 회식을 했다. 하루에 여러 번 쇼가 벌어지면,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중학교에 입학해 첫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파출소에서 회식을 하고 들어온 아버지는 많이 취해 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책을 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쾅,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수학 문제를 푸는 척했다. 인사도 안 하냐.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문제를 푸는 척했다. 공부, 공부도 중요하지. 근데 중요한 건, 바로 비즈니스라고 하더구나. 경찰이 말이다. 엄마가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나는 비즈니스의 철자를 생각했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내일부터 너도 같이 가자. 비즈니스가 뭐 따로 있겠냐. 아버지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숙제해야 돼요. 나는 책에 밑줄을 그으며 말했다. A에도 속하고 B에도 속하는 원소 전체의 집합을 A와 B의 교집합이라고 하며 기호로…… 아버지가 내 어깨를 짚었다. 수학보다 어려운 게 거기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잠수부가 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잠수부는 되지 마라. 아버지는 딸꾹질을 하느라 몸을 들썩였다. 경찰은 더더욱 되지 말고, 알았지.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시동이 걸린 트럭의 문을 열고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는 아직 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수학보다 어려운 게 있다면서요. 그 잡것들 오기 전에 어서 출발하자고, 나는 아버지한테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별장을 짓고 여름마다 찾아오는 젊은 남자들을 가리켜 아버지는 잡것들이라 했다. 여름을 다 보내고 갈 때도 있었고, 며칠만 지내다 갈 때도 있었다. 그들은 지프차 뒤에 오각형으로 만든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그 위에다 고무보트를 싣고 다녔다. 은색의 트레일러는 멋있었지만 자갈밭을 다니기에는 불편해 보였다. 고무보트는 바닥에 V자 모양의 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잠수부들이 갖고 있는 고무보트보다 빨라 보였다. 그들은 별장 앞에다 불을 피우고 며칠씩 놀았고, 수상스키도 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그러다 가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도 했는데, 파출소장의 추천으로 표창장까지 받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모두 끝장이라고 경찰이 잠수부들에게 말했다. 그 자리에 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나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섭게 꾸짖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시체까지 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놀다가, 우연히 시체를 건졌다고 말했다. 놀다가, 우연히 시체를 건져도 아랫마을 잠수부들보다 더 많은 시체를 건져냈다. 나이가 많은 아랫마을 잠수부들을 깔보는 짓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보다 못한 잠수부들이 그들에게 주의를 줬다. 다음 날 아랫마을 잠수부들이 시체를 숨겨 놓고 가족들과 몸값을 협상하는 사이 그들은 몰래 시체를 건져준 것도 모자라 몸값도 받지 않았다. 파출소가 발칵 뒤집어진 건 당연했다. 가족들을 진정시키고 사건을 무마시키느라 소장은 경찰에게 징계를 내렸고 관련된 잠수부들은 삼 개월 동안 시체를 건질 수 없게 만들었다. 여름 동안 시체를 건지지 못한 잠수부들은 겨우내 쌀과 돈을 빌리기 위해 마을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다.

  그들은 주로 아랫마을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구역을 넘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버지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나 고무보트를 띄웠고, 주위에서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들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들이 파출소는 자주 드나들었어도 할아버지들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트럭에 올랐다. 의자가 달아올라 오금이 닿을 때마다 움찔했다. 트럭의 적재함에 고무보트를 올려놓은 잠수부들은 머쓱하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웠다. 잠수부들은 쫓겨나는 사람들처럼 서둘러 차를 타고 돌아갔다. 아버지는 담뱃재가 길게 매달린 꽁초를 밖으로 던지고 잠수복의 지퍼를 내렸다. 가슴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배꼽 아래로 죽 미끄러졌다. 배꼽 주위에 난 터럭은 물에 젖어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가 잠수복에서 팔을 빼낼 때 의자와 핸들 주위로 물방울이 튀었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들은 자국도 남기지 못하고 금세 말라버렸다. 수상스키를 탄 잡것들이 강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야영장에 들렀다. 이장과 할아버지들이 마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시방에서 봉투 좀 꺼내라.”



  나는 의자 앞에 있는 서랍을 열고 봉투를 꺼내주었다. 봉투에서 지폐를 몇 장 꺼내 입에 물고 아버지는 트럭에서 내렸다. 이장과 할아버지들은 아버지가 작업을 하는 동안 가게 마루에 앉아 구경을 하거나 술을 마셨다. 작업이 끝나고 몸값을 받으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경찰에게 떼어 주었고 그다음 가게로 향했다. 아랫마을에 있는 잠수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모든 잠수부가 그럴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새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아버지가 트럭에 타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아버지는 가게에서 가져온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고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가 켜지면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야영장을 빠져나와 달리는 동안 아버지는 천천히 트럭을 몰았다.

  “어떻게 됐어요?”

  공중에 새카맣게 모여 있던 날파리들이 피하지도 않고 트럭 유리창에 부딪쳤다.

  “뭘 어떻게 돼. 오늘은 이러이러해서 이것밖에 없다고 했지.”

  “아니요. 그 시체요.”

  마을로 올라가는 큰길에 차들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앞을 향해 손을 흔들고 트럭을 왼쪽으로 돌렸다. 트럭은 거의 구십 도로 몸을 틀어 전봇대를 지나 큰길로 들어섰다. 서 있는 차들을 향해 뿌연 먼지가 날아갔다. 아버지가 기어를 바꿔 넣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트럭은 비탈길을 올라갔다. 비탈길에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세 채의 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서 있었다.

  “궁금하냐?”

  세 채의 집들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우리 집으로 아버지는 트럭을 몰았다.

  “자꾸 맘에 걸린다.”

  “뭐가?”

  나는 신문을 보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버지는 잠을 잤다. 물속에서 하는 작업이라 많이 먹고, 틈틈이 자두지 않으면 버티지 못했다. 몸 생각해서 그만두라는 엄마의 말을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뭐긴. 그 잡것들이지.”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한자가 많은 기사들은 보지도 않고 넘겼다. 마을 할아버지의 아들이 읍에서 지부장을 한다고 해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신문을 신청했다. 우체부가 가져온 신문은 그대로 쌓이기만 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그것을 재활용하기에 바빴다. 좀을 막기 위해 옷장에 몇 겹씩 깔거나 구두와 운동화에 넣었고, 야채를 싸서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면 더 싱싱하게 유지된다고 엄마는 말했다. 내가 신문을 보기 시작한 건 방학숙제를 위해서였다. 사설(社說)을 스크랩하고 한자의 음과 뜻을 찾아 적은 후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쓰는 게 방학숙제였다. 나는 사설을 스크랩하는 동안 ‘그림은 말한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한자도 적었고, 무엇보다 담뱃갑만 한 크기의 그림이 컬러로 인쇄되어 있어 맘에 들었다. 한 달 동안 특집으로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을 조명한다는 글씨가 굵게 쓰여 있었다.

  “신경 쓰지 마.”

  나는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이미 건진 시체를 도로 갖다 놓는 건 두 번 죽이는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좋은 일도 할 겸 분교(分校) 근처에다 시체를 두고 왔다. 오늘 중으로 신고가 될 거라고 아버지는 누우며 말했다. 분교는 여기서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했고, 사람들이 뜸한 곳이기도 했다. 문제는 아버지가 시체를 두고 올라올 때 잡것들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하필 거기서 마주칠 게 뭐야.”

엄마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로 올라가 야영장으로 내려가는 시간과 큰길을 따라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큰길로 내려갔다. 마당을 나서자 강이 보였다. 어둠이 스민 강물이 흘러왔고, 흘러갔다. 세상은 강이 흐를수록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방안은 어둑어둑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는 동안 등에서 땀이 흘러 옷이 눅눅했다.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아버지는? 나는 물을 들이켰다. 머리가 띵했다. 이장이 데려갔는데…… 너무 늦으시네. 엄마가 말했다. 술 마시고 있겠지 뭐. 나는 냉장고에 물을 집어넣었다. 그래서 걱정이야. 너라도 있으면…… 엄마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야영장 한가운데 있는 미루나무에 전등이 삐뚤어지게 매달려 있었다. 흐린 전등불 아래 야영객들이 고기를 구웠다. 전등 주위에서 가끔 매미들이 울기도 했다. 구석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는 야영객들도 있었다. 나는 옷이 걸려 있는 텐트 줄을 피해 가며 가게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고운 모래 속으로 운동화가 빠졌다. 나는 운동화를 벗어 모래를 털어냈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날파리들과 나방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바닥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운동화를 신었을 때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남자의 말소리도 들렸다. 말소리는 너무 작아서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작은 텐트 하나만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 마. 간지럽단 말이야.”

  나는 근처 미루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텐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뺐다.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보긴 누가 봐. 우리 둘뿐인데.”

  느닷없이 텐트 한쪽이 불룩해지며 여자의 웃음소리가 났다. 텐트 줄에 걸린 옷들이 흔들렸다. 갑자기 텐트는 조용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미루나무에 붙은 굼벵이의 머리를 가르고 매미가 수직으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초록과 흰색이 섞인 매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힘겹게 꼬리를 뽑아낸 매미는 굼벵이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짧았던 날개도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여자의 가벼운 신음소리가 짧게 흘러나왔다. 나는 정신이 아찔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눈을 피해 슬슬 옆으로 도망가던 매미가 다리를 몇 번 꼼지락거리더니 미루나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미루나무 밑에서 나타난 매미도 그 뒤를 따랐고, 그 옆에 있는 미루나무에서도, 근처의 다른 미루나무에서도 우화(羽化)한 매미들이 나타났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가늘게 흔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득한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는 매미들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장과 할아버지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취한 할아버지들은 마루에 앉은 채로 꾸벅거렸다.

  “우리가 서둘러서 다행히 뺏기지 않았는데, 그놈들도 만만치 않아요. 어찌나 교묘하게 숨겼는지 한참을 찾았다니까요.”

  이장의 말을 들으며 할아버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장과 할아버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서성거렸다.

  “우리가 시체를 찾아서 경찰한테 넘기니까 그놈들 표정이 아, 볼 만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아랫마을 잠수부들은 이제 힘들겠어요.”

  이장이 잔을 들었다. 나는 가게 옆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흐릿한 전등이 켜져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바닥 한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겨진 휴지와 신문지가 널려 있었다. 파리들이 윙윙거렸다. 냄새와 열기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화장실 문을 닫고 창고로 걸어갔다. 창고에는 트럭이 세워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야영장을 빠져나왔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깜깜했다. 발을 잘못 디디면 자갈에 죽 미끄러졌다.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프차를 지나자 멀리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불빛은 잠시 반짝이다가 금세 꺼져버렸다. 아주 희미하게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뒷걸음질로 물러나 지프차 뒤에 숨었다.

  “같이 드라이브나 좀 하자. 심심한데.”

  “잘못했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조금씩 그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담뱃불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셋, 자갈밭에 엎드려 있는 사람이 둘, 그 옆에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너희들은 그만 꺼져.”

  자갈밭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이 서 있다가 담뱃불이 날아오자 모두들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담뱃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들은 별장에 사는 젊은 남자들이었다. 지프차를 봤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여자들이 그들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알았어. 일단 타.”

  그들이 지프차 문을 열고 여자들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늘 밤 회춘하는 거 아냐.”

  지프차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최대한 지프차 뒤로 몸을 숨기려다 자갈을 밟고 미끄러졌다. 다행히 그들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낮에 본 단발머리들이 유리창으로 몰려들었다. 여기서 가게까지는 너무 멀었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그들에게 잡힐 게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게 누구야.”

  “누군데?”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악어 아들이잖아. 잘 봐.”

  그들이 내 턱을 잡아 끌어당겼다. 옆에서 라이터를 켰다.

  “이 새끼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열 받았는데.”

  그들은 내 머리를 꽉 쥐고 흔들었다. 얼마나 세게 흔들었는지 몸이 휘청거렸다. 퍽, 소리와 함께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가 아프고 숨이 막혔다.

  “우리가 숨겨 놓은 걸 홀라당 가져가?”

  “가만있을 수 없잖아. 당했으면 신고를 해야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 툭, 찌르며 그들이 말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앞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새끼 봐라. 우리가 우습냐?”

  그들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머리가 띵했고, 잠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감히 우리를 건드려. 우린 프로야 새꺄. 라이프가드라고.”

  “네 아버지는 이제 끝났어. 우리가 찍은 사진만으로도 고생 좀 할 거야.”

  나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들은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그들의 손과 발이 겨우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야영장이 환하게 불이 켜졌다. 단발머리가 문을 열고 뛰쳐나와 야영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프차 안에 있는 단발머리들도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단발머리들을 안으로 밀치고 그들이 지프차에 막 타려는 순간,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이제 막 잠수를 시작한 것처럼 힘차게 팔다리를 저으며 달려온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지프차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술에 취한 야영객들은 트럭이 다가가도 비키지 않았다. 미루나무에 오줌을 누고 있는 사람, 모닥불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로 날파리들과 나방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날아다녔다.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 갔었어요?”

  “화장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고개를 돌리자 허리가 아팠다.

  “화장실에요? 없었는데.”

  “말도 마라. 똥 누러 갔다가 토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요?”

  “왜 자꾸 묻냐.”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강에다 싸고 왔지. 낮엔 시체를 건지고 밤엔 똥을 누고. 강은 참 좋은 곳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아버지가 지프차의 문을 잡았다. 지프차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이 단발머리들이 그들의 팔을 깨물고 탈출했다. 야영장에서 뛰어 내려온 사람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일어나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도망가는 지프차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맞지는 않았다.

  “괜찮냐?”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노래가 끝난 라디오에서 기상특보를 알렸다.

― 제12호 태풍 글래디스가 19일 현재 일본 남동쪽 해상에서 시속 12㎞의 속도로 서진하고 있습니다. 태풍은 수요일 밤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둥 번개와 함께 집중호우가 예상되며 초속 23m의 강한 바람과 300㎜ 이상의 비가 쏟아지는 곳도 있겠습니다. 기상청은 내일 오전부터 해안 지방에 폭풍과……

  기상특보가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아무리 초대형 태풍이 온다고 겁을 줘도 소용없을 것만 같았다. 

  21일 저녁, 태풍 글래디스는 우리나라를 관통하고 있었다. 부산과 경남, 그리고 강원도 일부 지역에 500㎜가 넘는 큰비가 내렸다는 뉴스를 보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다. 나는 라이터를 켜고 초를 찾았다. 거센 비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려 금방이라도 이처럼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번개와 천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서랍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엄마는 이미 닫혀 있는 창문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어제 아침에 아버지 동료들이 찾아왔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해도 그들은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아침을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남해 먼바다부터 태풍의 가장자리에 들 것이라는 뉴스를 보다가 엄마는 근심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방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었다. 어디 가냐고, 엄마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그 잡것들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엄마가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밤이 깊을수록 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아, 소수력발전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강물이 범람하고 있사오니 강가에 계신 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여 주시고, 인근 주민들도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나는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큰길에 나와 있었다. 차를 타고 내려온 아저씨가 헤드라이트를 켜자 시커멓게 불어난 강물이 큰길을 삼키며 올라오고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집 마당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강물이 집을 둘러싸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집 마당으로도 강물이 밀려들었다. 아저씨들은 첫 번째 집을 포기하고 두 번째 집으로 들어가 짐을 날라주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강물이 우리 집 마당까지 밀려들었다. 나는 밖에 서 있는 아저씨들에게 박스와 보자기를 내주었다. 아저씨들은 최대한 많은 짐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도 짐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입에 물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번개가 번쩍거렸다. 천둥소리가 얼마나 큰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와 엄마에게 우비를 입혔다. 강물이 무릎 높이까지 불어 출렁거렸다. 강물은 금방금방 불어났다. 아저씨들은 서둘러 마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아직 옮기지 못한 짐들을 방에 두고 문을 닫았다. 엄마와 나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강물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번개가 번쩍거릴 때마다 파충류처럼 미끈거리는 강물의 몸통이 드러났다. 강물은 집과 집 사이를 꿈틀거리며 지나갔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고 어, 어, 소리만 냈다. 강물이 트럭의 뒷바퀴를 물고 흔들었다. 육중한 트럭이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적재함에 있던 고무보트가 강물에 떠내려갔다. 우리는 우비를 입고 있었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강물이 빠지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두꺼운 스티로폼을 배처럼 타고 다녔다. 그들이 바가지로 노를 젓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집과 마당에는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나무와 풀들은 물론 깨진 호박, 왼쪽 구두, 죽은 동물들도 떠내려왔다. 심지어 가발까지. 아저씨들은 그것을 모아 태우는 데에만 며칠이 걸린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태우는 동안 비상방역반이 마을을 소독하기 시작했다. 군수와 함께 나타난 군청 직원들은 구호물자를 나눠 주며 피해조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빈집은 보상이 되었지만, 과일이나 농기계가 있던 창고는 보상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군청 직원들은 듣지 않았다. 엄연히 집과 창고는 다른 것이라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할머니들이 눈물로 호소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옥상에서 짐을 내렸다. 마당에 비닐을 깔고 젖은 짐을 풀어 놓았다. 얼룩덜룩해진 책과 구겨진 옷들을 활짝 폈을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우체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오토바이 바퀴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가 우체부에게서 신문을 받는 동안 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큰길로 내려갔다.

  나는 신문을 한쪽에 던져 놓고 짐을 마저 풀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짐을 싸고, 날랐다는 게 신기했다. 비닐이 모자라 던져 놓았던 신문을 펼쳤다. 온통 태풍 소식이었다. 태풍 글래디스는 우리나라 기상관측 사상 하루 강우량 최고치를 기록했고, 구십이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나는 ‘재난(災難)을 당한 이웃을 돕자’라는 사설과 ‘그림은 말한다’라는 기사를 옆으로 빼놓았다. 이번 주에는 ‘팔라스와 켄타우로스’라는 그림이 실려 있었다. 지혜의 여신 팔라스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켄타우로스가 난감한 표정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이성이 본능을 제어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기사는 마무리되었다.

  트럭은 얼마 떠내려가지 못하고 큰길에 있는 전봇대에 걸려 있었다. 전봇대는 거의 땅으로 기울었고, 트럭은 여기저기 찌그러졌다. 아버지는 어긋나 있는 트럭의 문을 잡아당겼다. 창문에 걸려 있던 무성한 풀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아버지가 가져온 빗자루를 들고 트럭에 낀 진흙을 털어냈다. 먼지가 몰씬 일어났다. 진흙을 털어내며 제일 먼저 고무보트가 떠내려갔다고 나는 말했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다리가 저려 잠시 일어났다. 햇볕은 따가웠고, 바람은 제법 선선했다. 멀리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렀다. 야영장 쪽이었다. 나는 빗자루를 놓고 야영장 쪽으로 걸어갔다. 진흙이 말라붙은 길가의 풀들이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물에 휩쓸려 헝클어진 풀숲에 서 있었다.

  “봐라.”

  허리를 숙여 아버지는 뭔가를 들어올렸다. 그것은 긁히고 찌그러진 채 온통 진흙이 묻어 있었다.

  태풍은 그렇게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간 후, 군청에서는 마을의 모든 길을 다시 포장하기 시작했다. 굽은 길은 최대한 똑바로 폈고, 좁은 길은 넓혔다.

  야영장을 사들인 군청은 부러지고 넘어진 미루나무들은 물론 멀쩡한 미루나무까지 모두 뽑아버리고 플라타너스를 심었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만든 다음에는 잔디를 깔았다. 잔디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약을 뿌렸는지 매미가 모두 사라졌다. 야영장과 길의 경계를 따라 철조망까지 쳐지자 마을 사람들과 할아버지들도 더 이상 드나들 수 없게 되었다. 군청에서는 찢어진 야영장의 현수막을 떼고, 캠핑장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강에는 위험 지역을 알리는 여러 개의 현수막이 걸렸고, 경고 표지판도 세워졌다. 익사사고가 잦은 곳에는 수상안전요원들이 파견을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캠핑장에서 머무를 것이며, 이제 자격증이 없는 잠수부들은 함부로 강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를 했다. 부서진 별장도 새로 지었다. 수상안전요원들을 책임지는 관리자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군청에다가 소개한 건 파출소장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잠수부들은 군청에 진정서를 넣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나이가 많은 아랫마을 잠수부들은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오전에는 잠만 잤고, 오후에는 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동료들이 찾아와 수상안전요원들이 오기 전까지만 작업을 같이 하자고 말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를 빼고 잠수부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수상안전요원들이 캠핑장에 나타났다. 그래도 잠수부들은 작업을 그만두지 않았다. 수상안전요원들이 자갈밭에 천막을 치고 인명구조를 하고 있었다. 잠수부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줄어드는 시체 때문에 우리가 굶어 죽게 생겼다고 아버지를 찾아와 술을 마신 다음 날, 잠수부들은 경찰에 잡혀갔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아버지는 풀숲에서 주웠던 것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찌그러지고 녹슨 엔진이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밤이 깊도록 녹을 벗겨내고 또 닦아냈다. 〈끝〉

  

<당선소감>

   "뽑아줘 감사… 부끄럽지 않게 쓰고 또 쓸 것"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수도는 얼어 있었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13도였다는 뉴스를 들으며 부엌에서 물을 끓였다.

  하얗게 얼었던 창문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수도관에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물을 끓였다. 한참을 그러다가 빈 주전자를 들고 서 있었다. 소설은 어쩌면 꽝꽝 언 수도관을 녹이는 일이다.

  옥탑방에 살아야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옥탑방에서 2년을 살고, 며칠 전 조용히 이사를 했다.

  당선 통보를 받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보름 정도 계약 기간이 남았으니 나도 선배도 미안해할 것 없이 슬쩍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내 눈치만 보다 말을 삼킨 적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가족들, 친구들, 선배들과 후배들, 은둔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교학처 그리고 작가는 언제나 나이를 먹지 않는 짐승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는 박범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계절이 지난 능금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을 함께 전한다. 부끄럽지 않게 쓰고 또 써야겠다. 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나에게 휴식은 없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세계일보사에 감사드린다.


  ● 1980년 충북 옥천 출생

  ● 단국대 국문과 졸업

  ● 명지대 문예창작 대학원 재학중

  

  <심사평>

  "실감나는 상황·절제된 문장의 힘 돋보여

  군계일학, 쾌재를 부를 그런 작품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본심에 오른 9편 중 ‘무서운 사람들’(김다정), ‘두 노인’(신정숙), ‘레디메이드 인생’(차미숙), ‘켄타우로스의 시대’(천재강) 등 네 작품은 각기 독특한 서사 구조로 어느 것을 당선 자리에 놓아도 무난한 수준이라 그 우열 가리기에 고심이 컸다.

  ‘무서운 사람들’은 납치한 사람이 죽자 그 시신 처리를 의논하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세 인간의 세상에 대한 증오와 그 적대감을 분출하는 방식의 섬뜩함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가진 자에 대한 적의가 도식적이고 시신 유기 모의의 대책없는 그 엽기성에서 점수를 잃었다. ‘두 노인’은 한 여자와 부부의 인연을 가졌던 두 노인이 그 여자의 자식인 ‘남자’의 집에 함께 거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사근사근, 사유 깊은 톤으로 서술된, 매우 따뜻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소재가 너무 낯익다는 그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레디메이드 인생’은 자동 기계화한 미래 사회에서의 인간 감성 상실의 문제를 차 주행시험 얘기와 속도감 있게 균형을 맞춘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뻔한 작의를 소설미학으로 형상화할 참신한 방법 찾기의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는 아쉬움.

  ‘켄타우로스의 시대’는 모든 것이 비즈니스화한 야영장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시니컬하게 묘파한 작품이다. 성장소설의 한 패턴을 가진 이 작품 역시 구성이 다소 허술하다는 등 몇 군데 흠을 보이긴 했지만 당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상황 그려내기의 실감,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소설 문장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심사위원 : 김윤식, 전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