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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문을 뒤돌아보다 / 양관수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깨가 아프도록 손잡이를 잡아 흔들었다. 방문은 철석같았다. 밖에서 잠근 탓이었다. 문설주 바로 옆에 창이 있었다. 나는 창문 하나를 한쪽을 밀쳤다. 창이 열렸다. 나는 복도로 나가야 했다. 머뭇거리면 안 되었다. 머리를 열린 창으로 들이밀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세게 부딪혔다. 철망에 이마를 찧은 거다. 창문도 막혔다는 걸 깜박 잊었다. 나가야 하는데, 머리가 아픈 건 둘째 치고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손가락만 한 철근으로 짜인 철망에 입을 댔다. 누구 없냐고, 살려 달라고, 구해 달라고 악을 썼다. 비명은 철망을 벗어났다. 이내 꼬리만 보였다. 나는 철망 새로 손을 내밀었다. 멀어져가는 목소리라도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여음마저 나를 떼어버렸다. 예닐곱 개의 방들이 늘어 선 복도에서 나뒹굴다가 어두움이 되어버렸다. 방문들이 열리지 않은 복도는 어둑했고 그래서 한 장의 침울한 흑백사진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창틀을 움켜잡은 채 주저앉고 말았다.

  놈이 등 뒤로 다가섰다. 나는 창틀을 놓았다. 놈을 향해 쭈그려 돌아앉았다. 놈의 왼쪽 뺨이 뻘겋게 부어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볐다. 때린 거 미안하다고 돈 많이 줄 테니 방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놈에게 빌었다. 놈이 웃으며 나처럼 혼자 다니는 외국 여자가 좋다고 했다. 나중에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했다. 놈은 제 손가방에서 만화책 같은 걸 꺼내더니 내게 들이밀었다. 포르노 잡지는 아닌데 남녀 교합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나더러 그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나는 쭈그려 앉은 채 머리를 양어깨와 두 팔로 감쌌다. 눈을 질끈 감는데, 배낭 속 등산 칼이 떠올랐다. 놈이 그림 하나를 가리키며 이거, 아주 좋은 자세라고 말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했다. 몸을 더 낮추어 방바닥에서 두 번 굴렀다. 잽싸게 놈으로부터 빠져나왔고 침대 옆 탁자로 서너 번 기어갔다. 탁자에 놓인 배낭을 붙잡고 덧주머니의 지퍼를 열었다. 언뜻 칼을 보았다. 칼을 꺼내들어 날을 세우고 돌아섰다.

  나는 다가서면 죽이겠다고 소리쳤다. 놈은 태연하게 다가오더니 찔러보라는 듯 칼끝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찔러야 했다.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온몸이 떨렸다.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놈의 배를 향해 칼을 밀어 넣는데, 눈을 감아버렸다. 어깨가 아팠다. 칼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내 팔이 놈의 손에 잡힌 채 등 뒤로 꺾였다. 그렇듯 아프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숨을 못 쉬었고 목이 메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팔이 꺾인 채 침대에 엎어졌다. 놈의 손끝이 널름거리며 내 샅을 더듬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반바지가 벗겨졌는데 팬티는 어떻게 되었지. 하릴없이 엎드려 있는데 꺾였던 팔이 조금씩 풀리며 통증이 가라앉았다. 온몸의 힘들이 스러져 가고 있었다. 점점 거칠어져 가는 숨소리는 누구의 것이지. 소똥 내가 코를 찔렀다. 나는 속이 뒤집혔지만 잠을 자고 싶었다. 저승에서 깰지라도 푹 잠들기를 바랐다. 내 잠은 미로에 갇혀 내게로 오지 못했지.

  잠 때문에 늘 징징거렸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었지. 아침마다 그랬으니깐. 쫓기다시피 유치원에 가느라 용변 보러 갈 틈이 없었지. 유치원에서는 좁디좁은 수세식 화장실이 답답해서 눌러 참았고. 똥 누기를 참는 버릇이 늘어나기 시작한 때였어.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가 뒤보러 가는 시각이었지. 가방을 마루에 내동댕이치고 뒤꼍으로 달려갔어. 방만 한 풀밭인데, 거기다가 대소변을 보았고 그럴 때마다 한가롭게 딴청을 부렸지. 오줌줄기가 땅에 골 한 가닥을 만들다가 흙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거든. 그 골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들여다보았어. 골의 끝이 땅속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했지. 더러운 줄만 알았던 젖은 흙에는 분홍이거나 푸르스름한 빛을 품어내는 모래 알갱이들도 있었어. 오줌에 젖어 버둥거리는 벌레를 눈으로 좇아가다보면 쭈그리고 앉은 채 시간 가는 줄 몰랐지. 축축해진 어린 풀을 잡아 뜯기도 했어. 김이 나는 누런 덩어리를 바라보고는 버리는 것에서 왜 과자냄새가 나는지 궁금했지. 가족들로부터 ‘더러운 가시나’란 말도 많이 들었어.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뒤뜰은 시멘트로 덮여버렸지. 나더러 실내 화장실을 다니라는 거였어. 화장실에는 풀이나 벌레가 살지 않아 싫었지. 문이 닫혀 있으면 바깥 내음을 느낄 수 없었어. 화장실 문을 연 채 변기에 쭈그려 앉아 땅을 생각했지. 흙 위에서 멋지게 싸는 생각만 떠오르는 거야. 흙냄새 풀냄새를 떠올리며 대변이 나오려는 것을 일부러 막았지. 괄약근을 몸 안으로 몰아넣으며 꼭꼭 눌러 준거야. 미주알이 내려앉으려는 것 같았고 바늘로 쑤시는 듯 아파도 이를 악물고 견뎠어. 눌러앉았다보면 어느 틈엔가는 통증이 가시고 변의도 사라졌다. 그때서야 변기에서 일어나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을 나섰어. 뒤란으로는 안 갔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거든. 아무리 둘러보아도 흙은 없었어.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보도블록들만 보였어. 아랫배를 붙잡고 똥 싸기를 포기했어.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여러 날을 배겨 냈지. 처음에는 닷새를 넘기기도 버거웠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에만 보도블록에 쭈그려 앉아 뒤를 봤지. 사타구니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밑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바라보았어. 뱀이었지. 똬리를 틀긴 했는데 산고 때문인지 까맣게 그슬려 있었어.

  그 지경인데 냄새라고 좋을 리 있나. 나는 코를 막았어. 과자 냄새가 아니었거든. 하수구에서 나는 것보다 더 고약했어. 그러다가 코를 막았던 손을 내렸지. 일부러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 악취를 외면하지 못 했어. 나중에는 보름 간격으로 뒤를 보다시피 했지. 변비는 점점 더 심했고 아랫배가 편치 않아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어. 끙끙거리다 보니 잠은 어디론가 가버렸어. 아니야. 잠도 몸속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나오지 못하고 있었어. 똥과 함께 미로에 갇힌 거야. 어릴 적에 말이지, 뒤란에 오줌으로 만든 골이 땅으로 스며든 후 어디로 갔나 궁금했었지. 그게 뱃속으로 들어와 마른 샘을 가진 미궁이 된 것 같아. 더부룩한 밑살에 짓눌린 잠 못 이룬 밤들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어. 음식이 무서웠어. 먹으면 먹은 만큼 더 싸게 되잖아. 안 죽을 만큼만 먹었지. 밖에 나갈 힘도 없었고, 거울 앞에 서보면 창백하고 빼빼마른 여자 아이였어. 큼직한 눈만 초롱초롱했지. 신경질적이고 우울해 보이는 눈이었어.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눈빛이 아니었어. 가족들조차도 말을 잘 안 걸었거든. 거울을 보고 눈웃음을 짓는 연습을 했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 그때부터는 대문 밖에 나가 싼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 어떻게 해, 참을 수밖에. 오랫동안 똥을 싸지 못해 배가 너무 아프면 변기에 앉았지. 괄약근에 힘을 줘서 애물단지를 몸 밖으로 밀어 냈어. 한참동안 힘을 써도 똥은 나오지 않았지. 항문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직장은 말랐던 게 틀림없어.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우물에 돌멩이를 던지 듯 큰창자에 힘을 한 개, 한 개 떨어뜨렸네. 빨려들어 간 돌멩이는 마른 샘에 떨어진 탓인지 울림이 없었어. 여음마저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에 묻히고만 거야. 몸이 지치고 두 손으로 뱃가죽을 쥐어짜야만 말라붙은 샘에서는 미세한 진동이 있었어. 아픈 것 같기도 한 가려움이었지. 그건 슬그머니 창자를 빠져나와 젖가슴으로 치고 오르며 숨통을 짓눌렀어. 호흡을 멈추고 찌꺼기처럼 남은 마지막 힘 하나를 미로에 던졌지. 비로소 나왔어, 까만 뱀이. 뱀에서는 머리카락 타는 까만 냄새가 났고, 그 때문에 갇혔던 잠도 까맣게 느껴졌어. 내가 느끼는 모든 게 다 까맸지. 난산을 겪은 밑에서는 까만 가려움이 멈추지 않았지. 눈시울도 따가워지던데. 눈물조차도 까맣게 느껴졌어.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처럼 고통스러워야 하는 까닭을 몰랐어. 저주를 받았다고 여길 뿐이었지. 저주를 받은 거야, 왜. 그 뒤부터는 배설한다기보다 까만 가려움을 끌어낼 궁리를 했어. 어떻게 해야 잘 끌어내지. 그런 게 어떤 거지. 늘 까만 뱀을 낳잖아. 그 뱀은 메마른 미로에서 얼마나 속을 태웠으면 껍질마저 까맣게 탔을까. 그래, 내가 받은 저주의 동반자는 뱀이야. 뱀은 한 여자와 더불어 아름다운 동산을 흩어버리지 않았는가. 한 쌍의 남녀가 동산에서 쫓겨났는지 풀려났는지 지금껏 헛갈려. 산이 미로인지 산 밖이 미로인지를 모르겠어. 내가 뒤집어 쓴 멍에는 그 탓인가. 맞아, 난 그녀의 후손이야. 뱀의 후예는, 히드라 같아. 동산의 뱀 이후로 히드라보다 더 큰 저주를 받은 뱀은 없을 거야. 히드라도 저주의 미궁에 빠진 거지. 그 놈이 생기만 되찾는다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고, 요동을 치며 높이 기어오르게 할 악귀로 마땅하지. 내게 필요한 물건이야. 내 몸에 머무는 뱀을 히드라라고 여기기 시작했지.

  그렇듯 시달리며 살다보니 틀에 박힌 직장은 다니기 힘들었어. 잡지사에 사진과 글을 엮어주고 원고료를 받아 빠듯하게 살았지. 잡지사와 계약을 맺은 뒤 방에 스캐너와 팩스를 설치했고 인터넷도 연결했어. 잡지사 말고는 딱히 메일을 주고받을 상대가 있는 건 아니었지. 그런데도 메일은 날아들었어. 첫 메일은 두 생식기가 합쳐진 곳을 확대해 놓은 사진이었지. 나뭇가지 같은 것이 축축하게 젖은 곳에 꽂혀 있었어. 그걸 보고 뭐든 살려면 물기가 있는 곳에 자리 잡아야 되나, 라고 여겼지. 나뭇가지가 제법 굵었는데 뱀 같았어. 뱀이었어, 검은색 뱀. 물뱀이 검잖아. 동영상도 받은편지함으로 찾아들었지. 물뱀의 몸통이 샅의 젖은 곳으로 쉬지 않고 드나드는 장면이었다. 그럴 때마다 받아들이는 몸은 덩달아 꿈틀거렸고 기뻐하기 보다는 고통스러워했어. 아니야, 고통스러워하기 보다는 기뻐했어. 나는 저게 까만 가려움일까, 라고 생각했지. 언제 벗을지 모르는 원죄라는 칼을 쓴 어머니. 그녀를 허물어뜨릴 싸울아비로 뱀을 고른 것이 이해가 되는 움직임이었어. 히드라가 동영상을 볼 때마다 더불어 팔딱거리려고 하는 것도 느꼈지.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싫증나지 않은 동영상은 받은편지함에 그대로 두었어. 마음에 든 것을 버리지 않은 탓에 보관 중인 숫자가 점점 늘어났거든. 동영상들은 받은편지함이 아름답고 영원한 동산이겠지. 동영상 탓이었을까. 몇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랐지. 내 글과 사진을 바라는 잡지사의 편집부 기자들이지. 모두들 나라면 죽어도 좋다고 다짐했어. 나는 늘 웃어 넘겼지. 내 속을 모르니까 거울을 보고 연습한 내 눈웃음에게 맹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들이 모두 뱀으로 느껴진 거야. 까만 물뱀으로.

  언제쯤이었더라. 마감 하루 전 날인가 원고를 잡지사로 넘긴 뒤였지. 다음 호에 실을 기삿거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고 싶었어. 가이드북을 뒤적거렸으나 마땅한 곳을 얼른 못 찾았지. 책 읽는 것이 지루해질 즈음 눈에 띄는 곳이 있었어. 수천 년 전에 세워진 도시국가야. 그 유적지를 끼고 흐르는 강이 온누리에서 으뜸이라고, 고대의 시가지가 골목으로 된 미로여서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는 글이었어. 난 미로에 관심이 많잖아. 서슴없이 짐을 꾸렸어. 커다란 비행기를 열 시간 남짓 탔나. 내려서는 기차로 옮겼고. 그리고 가이드북에서 일러준 역이 나타났지. 역 앞은 사람들 릭샤들 짐마차들 자동차들이 뒤엉켜 걷기조차 힘들었지. 공기도 숨이 막힐 듯 후덥지근했어. 역 광장을 벗어나 번화가 쪽으로 빠져나갔어. 빈 사이클릭샤 하나가 열대지방의 햇살을 견디며 내 쪽으로 오고 있었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끌었지. 30분쯤 달렸을까. 아저씨가 골목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 왔다고 했지. 조붓한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아득한 옛날의 저잣거리였어.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나쁜 놈들에게 잡혀가기도 한다고 가이드북에서 읽었지. 두렵기도 해서 수첩을 꺼내들고 골목길 초입에서부터 지도를 그렸어. 길이 갈라지는 목에서는 기억할 것들을 표시했고.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었어. 점포 안에는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문을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지. 그들은 진갈색 피부였고 굵고 짙은 눈썹 밑에 흰자위가 넘칠 것 같은 커다란 눈을 가졌어. 모두 샌들을 신었는데 발들이 흙탕물에서 꺼낸 것처럼 지저분했지, 한결같았어.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이 묵는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했어. 책에 쓰인 대로라면 보일 자리였지. 두리번거리며 찾았더니 먼발치에 내가 찾는 것과 비슷한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보였어. 붉은 벽돌로 쌓은 5층 건물이었지. 헐었지만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어. 머물게 된 방은 3층이었지. 철망을 씌운 창문이 두 개였어. 작은 창은 복도로 큰 창은 대중없는 건물들이 보이는 밖으로 나 있었지.

  눈을 붙어야 했으나 눈이 안 붙었어. 내 눈은 밤새 또렷했지. 견디다 못해 카메라를 손에 들었어. 렌즈를 통해 창밖의 어두움을 들여다보았지. 철망 코가 커서 카메라를 들이대기 좋았어. 바깥에서 선선한 기운이 밀려들었고. 어느덧 갓밝이에 이르게 되었지. 동녘에서는 어두움이 떠오르는 햇덩이를 붙잡고 실랑이를 할 때였어. 창밖에서 구슬픈 가락 한줄기가 다가왔지. 꿈속인 듯 희미하게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고 창밑까지 다가왔어. 나는 철망에 머리가 찧지 않도록 고개를 내밀었지. 들것을 메고 지나가는 사내들이었어. 들것에는 하얀 천으로 말아 싼 주검이 실렸는데 가슴에 빨강 노랑 파란 꽃들이 놓여 흔들거렸지. 상여가 창밑을 지나 멀어지자 상엿소리도 잦아들었어. 스러져가는 운율의 꼬리가 온몸을 소름으로 휘감게 했지. 등골도 오싹했어. 그런데 희미하게 곡이 다시 들렸어. 가랑비처럼 시작하더니, 점점 몰려오더니, 작달비 오는 소리처럼 커지더라구. 또 가늘어지고 또다시 굵어지기를 멈추지 않았어. 빗소리처럼 땅에 고인 상엿소리는 낮은 곳으로 흐르며 줄지어 밀려드는 시신들을 미로 끝으로 몰아갔지. 주검들은 끊이질 않았지. 때마침 미로에 들어서는 입구 반대쪽에서, 그러니까 강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라구. 강가 화장터에서 피어오르는 게 맞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서는데 화장하는 장면을 촬영하지 말라는 가이드북 글귀가 떠올랐어. 사진을 찍다가 유족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다는 경고였지. 불태울 때 사진 찍힌 송장의 넋은 천국으로 가지 못한 채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그쪽 사람들은 믿는다는 거야. 상여들이 줄을 이어가고 있었지. 나는 누운 자들 행렬에 초점을 맞췄어. 운구하는 자들의 심각하지 않은 낯빛에 셔터를 터뜨렸지. 그런데, 길게 늘어선 줄 속에 서 있는 내가 보였어. 남이 아닌 나, 말이야. 나는 운구를 하기도 하고 들것에 누워 있기도 했어. 나는 가느다란 줄기에 휩쓸리고만 한 개의 물방울이었어. 골목의 끝은 조붓한 골들을 받아들여 풍요로워지는 강이니까. 나는 굵다란 물기둥에 휩쓸리려고 떠돌아다닌 거지.

  강가에 다다르자 화장터였어. 암벽 끝에 자리 잡고 있었지. 벼랑의 높이가 사람 키 두세 배 정도 될까. 낭떠러지 밑에서는 강물이 불타는 사체를 향해 입맛을 다셨어. 화장장 앞 빈터는 교실 크기만 했지. 뻣뻣한 몸을 껴안은 들것들이 줄지어 있었어.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줄 서는 것이 일인가 봐. 화구는 다섯 개였지. 머리꼭지나 발치를 강으로 두게 돼 있었어. 장작더미를 쌓아 침대를 만들고 뻣뻣한 몸뚱이를 그 위에 올려놓았지. 특별한 불쏘시개를 썼을까. 불길이 잘 타오른다고 느꼈지. 이삼십 보쯤 떨어져 바라보는 내 눈으로도 불꽃이 달려들었어. 매캐한 공기가 콧속을 지나 몸속을 온통 휘감았지. 냄새를 맡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어. 그 냄새는 내가 낳은 뱀이 풍기는 것과 비슷했거든. 속이 울렁거리기보다는 차분해 졌어. 구경꾼들 얼굴이 궁금했지. 여행자들은 불꽃을 바라보며 심각해 하고 있었어.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았어.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넋을 풀어 놓은 이도 있었어. 유족들보다 더 침울했지. 왜 그랬을까. 유족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았거나 서 있었지. 작은 소리로 말하며 가볍게 웃는 이들이 많았어. 어째서 그랬을까.

  그 틈을 누비고 다니는 한 놈이 눈에 띄었지. 얼굴이나 몸놀림에 불량기가 배어 있었고. 왼쪽 어깨에는 긴 끈이 걸쳐 있었어. 그 끈에는 낡은 가방이 달려 있었고. 가방은 쥐색이었어, 교과서만 했고. 두 손으로는 바둑판만 한 널빤지를 들었는데. 기름때가 진하게 배인 판자때기였어. 운두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지. 그 안에는 간단한 요깃거리가 담겨 있었어. 놈은 여행자들을 집적거리며 돌아 다녔지. 내 앞으로 다가섰어. 아침거리라고 하며 판자때기를 쑥 내밀었지. 주먹만 한 삼각뿔 모양들이 담겨져 있었어. 기름에 살짝 튀긴 만두였지. 나는 놈을 피해 자리를 몇 걸음 옮겠어. 놈은 따라왔지. 날 쫓아다녔어. 내 앞에 서서는 연달아 고개를 까불거리며 손에 든 것을 사먹으라는 거였어. 난, 힘이 달리잖아. 놈에게 시달리다보니 팔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더라구. 놈이 귀찮아졌어. 생각해 보니까 놈을 피해 다녀야 할 이유도 없었어.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몸을 돌렸지. 화구를 바라보며 놈을 무시하기로 했어. 놈은 또다시 내 앞을 막아서더니, 그러더니, 사진을 찍고 싶냐고 물었어. 난,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던 것 같아. 놈이 판때기에 든 음식을 모모라고 했어. 속은 커리 향이 살짝 나는데, 닭고기를 빻아 커리 가루와 양파를 넣고 버무린 거였어. 찰지고 매콤하고 고소했지. 두 개나 먹었어. 한 개밖에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사진 때문에 한 개를 더 먹었다고 해야 맞아. 사진을 찍고 싶었지. 다 먹어 가는데 화구에서 나는 연기들이 점점 힘을 잃고 사그라져가고 있었지. 유골을 골라낼 거라고 놈이 말했어. 곧 불이 꺼진다고, 빨리 사진을 찍으라며 등을 내게 돌렸어. 나는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경고를 떠올리며 머뭇거렸지. 널찍한 등판이 거북하기도 했어. 놈이 셔터, 셔터 하며 졸랐어. 더 이상 미루기가 난처했지. 못 이기는 체 놈 오른쪽 어깨에 카메라를 든 내 왼손을 걸쳤어. 줌을 당기자 누르스름한 연기가 바로 앞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파인더에 잡히더라고. 접안 창에 들어 온 화구들을 연속 다섯 컷이나 찍었지. 놈의 등짝이 든든했어.

  놈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까불었어. 돈을 달라는 모양새여서 지폐를 줬지. 화장터에서 타들어가는 주검을 찍었다는 게 포만감으로 다가왔거든. 만족스러웠어. 잡지사 남자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지. 그때였어. 맨 왼쪽 화구로 불가촉천민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갔어. 시체를 다루는 일은 그들 몫이라고 책에 나와 있었어. 그 둘이 접한 화구는 다른 화구들과 달랐지. 이미 연기가 피어나지 않고 있었어. 그 둘은 각자 화구의 머리와 발치로 다가갔지. 시커먼 물체를 화구에서 들어내어 들것에 실었고 나중에는 들것을 맞들었어. 궁금하기도 해서 저게 뭐냐고 놈에게 슬며시 물어보았지. 타다 남은 송장이라고 했어. 유족들이 장작 값을 적게 주면 저렇게 태우다 만다고 놈은 대답했지. 난 외면했어. 끔찍했고. 구역질이 나려고 속이 울렁거렸어. 장작 값이라는 말이 울렁증을 북돋았지. 장작 값이라니, 낮선 단어였지. 떡값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 귀가 아플 정도인데. 화부들은 낭떠러지 끝에 서더니 타다 남은 시신을 강으로 던져버렸어. 들것은 버리지 않더라고. 타다만 몸뚱이는 강물 위에서 두세 번 들쑥날쑥하더니 가라앉았어. 출렁거리는 강물이 덜 스러진 몸뚱이를 먹고 사는 악귀의 혓바닥처럼 느껴졌지.



  속이 또 울렁거렸어. 숨을 크게 들이키며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았지. 하품이 늘어지게 나오더라. 뜬눈으로 밤을 샜잖아. 피로가 몰려들었지.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었어. 화장터를 뒤로 하고 조붓한 길로 들어섰지. 여장을 푼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지. 천정의 선풍기는 터덕거리며 시원찮은 바람을 만들어 냈어. 언제 움직일 것인지, 어디로 떠나가야 하는지, 여행 얽이를 짜야 하는데 힘이 나지 않았어.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어. 찾아 올 이가 없는데, 일어나 창문을 열었지. 뜻밖에도 사진을 찍도록 해 준 놈이었어. 놈은 대뜸 문부터 열라고 했지. 아까 촬영한 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며 화장터의 유족들이 나를 찾는다고 했어. 누군가 고자질 했다는 거야. 놈이 뜬금없이 찾아 왔다는 게 이상했어. 창을 통해 복도를 살폈지. 놈 혼자였어.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게 해 주었고, 못 찍는다는 사진을 찍게 해 준 놈이잖아. 미더웠던 놈의 등판이 떠오르더라고. 나는 마음을 놓고 싶었어. 그래서 문을 열었지. 놈은 들어서자마자 말했어. 여기는 누나네 나라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유족들이 곧 밀려오니까 다른 숙소로 빨리 옮겨야 한다고. 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따를 수 없었지. 하지만 불타는 주검 앞에서 시시덕거리던 유족들의 모습이 떠올랐지. 겁이 덜컥 났어. 내가 안절부절못하자 놈은 말했지. 자신은 열여덟 살이라며 시집 간 누나가 세 명이나 되는데, 내가 25살 먹은 둘째 누나 같다고 했어. 나하고 같은 나이잖아. 그때 내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아. 놈이 또 채근 거렸어. 놈은 울먹이며 더 머뭇거리면 큰일 난다고 했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어. 눈시울이 붉어지며 애원하는 놈의 태도에 마음이 쏠리고 있었지. 놈은 그걸 눈치 챘나 봐. 내 짐을 알아서 챙겼지.

  배낭을 들고 설치는 놈을 따라 숙소를 나섰어. 골목길은 상가와 여행자들로 북적거렸어. 놈이 저잣거리에서 으슥한 샛길로 방향을 틀었지. 가게나 오가는 사람이 뜸한 길이었어. 더 따라가다 보니 쓰레기와 구정물과 소똥이 질퍽했지.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어. 나는, 내가 무심코 따라간다는 걸 느꼈지. 아차! 하며 걸음을 멈췄어. 놈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왼쪽 팔목을 세차게 붙잡았어. 놈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힘이 부쳤지. 도움을 청하려고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 놈이 힘껏 잡아끄는 바람에 팔목이나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지. 나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소똥이 널브러진 길바닥에서 뒹굴었어. ‘Help me! help me! Somebody help me!’ 라고 연달아 소리쳤지. 놈은 싫다고 몸부림치는 나를 어깨에 들쳐 멨어. 나는 거꾸로 매달려 버둥거리기만 했지. 얼마가지 않아 출입문이 헐어 있고 곰팡이 냄새가 짙게 나는 건물 앞에 이르렀어. 놈은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섰고 복도를 따라 걸었어. 닫친 방문들이 예닐곱 개 보이는 통로였어. 방문 틀 바로 옆에는 창문이 하나 씩 붙어 있었고.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지. 한낮인데도 실내는 어두웠어. 놈은 나를 어께에 둘러맨 채 복도 끝에 있는 문 앞까지 갔어. 복도 끝은 동영상에서 보았던 사타구니하고 비슷했지. 거웃이 깔린 듯한 어둑발 한가운데 문이 하나 있었던 거야. 습지에 파묻힌 문처럼 보였는데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어. 놈은 그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어.

  놈은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쳤지. 배낭은 침대 옆 탁자 위로 던졌어. 난 놀라고 아파서 움직이지 못 했지. 어떻게든 밖으로 뛰쳐나가려는데 방문이 저절로 닫혔어. 문밖에서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났지. 기가 막혔어. 방안을 두리번거렸지. 창을 찾았어. 방문 바로 옆에 복도로 터진 창만 보였지. 건물 밖으로 난 창은 보이지 않았어.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침대 위에 쭈그려 앉고 말았지. 울지도 못하며 벌벌 떨기만 했어. 놈은 목욕수건에 물을 적셔왔어. 내 몸에 묻은 소똥을 닦아내며 말했어. 넌 비밀사창가로 팔려갈 거야, 거긴 사막이라 절대로 못 빠져 나와. 이건 또 웬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떨려 죽겠는데. 그 순간에 내가 기절하지 않았던 걸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해. 난, 그 와중에서도 앞으로 내게 다가올 뭔가를 느끼고 있었어. 내게 어떤 일이 또 벌어진다는 거였으니까. 내게 더 나쁜 경우가 닥친다고. 내게 그럴 수 있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야. 하긴, 난 좋았던 적이 별로 없으니깐. 돌이키지 못할 최악의 사고가 터질 것만 같았지. 그러면서도 ‘설마하니 그렇게까지야 되겠어.’ 라는 막연하나마 믿음이 가는 구석도 있었어.

  놈은 수건질을 마치고 나서 히죽히죽 웃었지. 그러더니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내 허벅지를 땟국에 절은 손으로 만졌어. 하얀 피부라고 중얼거리다가 옷자락 밑으로 손을 쑥 넣어 샅을 더듬었지. 나는 벌떡 일어나 오른손으로 놈의 뺨을 후려쳤어. 손바닥이 얼얼했지. 놈도 주춤거리며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섰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방문으로 다가갔지. 그리고는…….

  놈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 발을 어루만지며 희고 예쁘다는 말을 잇달아 해댔다. 발은 얼마든지 만져보라고 놔둘 일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슬러야 했다. 마음을 다잡았다. 방을 빠져 나가려면 놈을 속여야 했다. 나는 놈을 마주보며 잘 다듬어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네가 좋아졌다고 말도 했다. 놈도 나를 마주보며 히죽거렸다. 내가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다시 말했다. 놈은 때 낀 이를 드러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답답하니 바깥바람 쐬러 강가에 가자고 말을 덧붙였다.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카메라, 여권, 비행기표, 현금, 카드 등이 들어 있는 배낭을 놈에게 던졌다. 놈이 덥석 끌어안았으나 머뭇거렸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놈의 한 손을 잡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 젖가슴에 살며시 얹었다. 젖꼭지로 손바닥을 자극하며 아내가 되겠다고 애교까지 섞어 말했다. 젖을 더듬는 손에 땀이 슬그머니 배어드는 게 통할 듯 싶었다. 놈이 손을 떼고 일어서더니 구석에 던져진 내 옷을 집어 들었다. 놈은 그림책을 구겨지지 않도록 제 손가방에 넣고는 쇠붙이를 하나 꺼냈다. 무엇일까, 나는 긴장했다. 두께가 가는 쇠막대였고 구리 같았다. 놈이 왼손 엄지와 검지로 쇠막대를 잡고 창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철망 밖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철망코로 빠져나간 팔을 방문 쪽으로 굽히는 것 같았다. 자물쇠가 따지고 방문이 열렸다. 놈은 손가방에 열쇠를 도로 넣은 다음 내 배낭에 통째로 쑤셔 박았다. 놈이 배낭을 둘러매고 앞 서 복도로 나갔다. 나는 놈을 뒤따랐다. 길에 나서기만하면 짐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뛰어가 경찰을 찾아갈 참이었다.

  우리는 우중충한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섰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고 또 돌아가는데 길이 엉뚱했다. 저잣거리는 보이지 않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난 돌계단을 내려갔다. 잡풀들이 무성한 곳에 다다랐다. 붙들려 올 때와는 달리 풀을 뜯는 소들이 여럿 보였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맥을 놓아버렸다. 놈을 따라 걷다보니 언덕바지가 나타나고 강이 보였다. 강물을 향해 비탈을 내려가는데 자갈밭이었다. 불규칙한 자갈들이 내 몸의 균형을 흩뜨렸다. 놈은 잘 걸었다. 나는 도망 갈 틈을 찾지 못해 답답했다. 굵은 모래밭이 나왔다. 발등까지 빠지기도 해서 자갈밭보다 걷기가 더 힘들었다. 곳곳에 물이 말라붙은 자국이 뚜렷했다. 밟히는 모래는 젖어 있었고 흙 내음 물 내음이 달려들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다가섰지만 마음은 착잡했다. 물가로 다가가던 놈이 돌아섰다. 나를 보더니 씩 웃고는 바지춤을 풀었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바지를 내린 놈은 엉덩이를 깐 뒤 쭈그려 앉았고 똥을 쌌다. 오줌발은 땅을 가르며 강물로 뛰어 들었다. 그보다 더 시원하게 쌀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도망칠 곳을 살폈다. 모래밭이거나 자갈밭인 강변은 끝이 없었다. 냅다 뛰려고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발 옮겼다. 힘차게 내딛은 첫발이 모래에 파묻히며 신발이 벗겨지려고 했다. 나는 놈의 눈치를 얼른 살폈다. 이마에 진땀이 배어들었다. 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놈은 모래에다가, 강물을 앞에 두고 뒤를 보았다. 모래밭에는 작은 들풀이 많았다. 벌레도 기어 다닐 거였다. 놈이 시원하게 똥을 싸는데 과자냄새가 났다. 내가 어릴 적에 맡았던 냄새였다. 나도 배가 뒤틀리며 변의가 솟구쳤다. 다리가 떨렸으나 애써 몸의 중심을 잡았다. 아랫배에서 몰아치는 아픔이 오히려 상쾌했다. 놈 옆으로 다가가 허리춤을 풀었다. 반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놈과 나란히 쭈그려 앉았다. 이게 웬일인가. 나는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응어리가 맺혀 답답하던 아랫배에서 똥, 오줌이 저절로 나왔다. 흙내 물 내가 몸에 들어가 배설물들을 힘껏 밀어내는 모양이었다. 오줌이 골을 만들며 흘러가다가 강물에 휩쓸리는 것을 보자 어릴 적 뒤란에서의 배설이 생각났다. 어릴 때 오줌으로 흙에 만들었던 골이 어디로 갔나 했는데, 내게 스며들었다가 강을 만나 되돌아 나온 것이다. 막혔던 둑이 터진 듯 힘차게 쏟아내는 내 배설물을 보고 놈이 놀랐다. 나는 비밀스러운 어릴 적 잘못을 놈에게 들킨 것 같았다. 강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머금는데 수심이 깊어 보이는 쪽에서 커다란 쓰레기 덩어리가 들쑥날쑥 거리며 떠내려 오고 있었다. 놈이 버려진 덜 탄 송장이라고 했다. 장작 값에 한이 맺힌 몸뚱이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뒷골이 주삣 서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내가 싼 똥 위에 주저 않을 뻔 했다. 나는 재빨리 밑을 닦고 일어섰다. 놈도 따라 했다.

  강물이 밀려오더니 똥을 조금씩 쓸어갔다. 악귀의 혓바닥이 내 몸속에 자리 잡은 히드라를 씻어가고 미로를 통째로 뽑아갈 것처럼 널름거렸다. 강으로 휩쓸려 들어간 것들은 물길을 통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몸속에 있는 미로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처지처럼, 한 치의 속도 모르는 강이었다. 나는 강 속에 길이라는 것이 있다는 낌새만 보여도 강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타다 남은 송장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그것 앞에는 어떤 미로가 기다리고 있을까. 화장터가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에게 화장터가 어느 곳에 있냐고 물었다. 놈이 강 위쪽을 가리키며 20분 정도 걸어간다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길이라고 했다. 놈이 물기가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라붙은 땅 한 켠을 깨끗이 치우고 배낭 속 손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냈다. 들풀을 손바닥으로 도닥거리더니 그 위에 책을 놓았고 강을 향해 바른 자세로 섰다. 놈 앞에는 책이 놓여 있고 책에서 스무 걸음정도 앞에는 똥이 있고 또 대여섯 걸음 앞에는 강물이 흘렀다. 놈은 그것들을 향해 오체투지를 연거푸 해 댔다. 물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과자냄새가 은근히 실려 왔다.

  놈이 절을 마치고나서는 자신을 지켜주는 책 속의 여신이 고맙고 내가 사랑스럽다고 했다. 나는 놈의 턱밑으로 다가갔다. 잘 정제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를 사막에 팔 거냐고 속삭였다. 놈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가 되려는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다. 유족들이 나를 찾는다는 건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절을 할 때, 나를 여신처럼 섬기겠다고 맹세도 했단다. 나는 놈의 눈을 마주보았다. 또 속는 것이 아닐까 하고 풀었던 긴장을 다시 조였다. 하지만 나를 여신처럼 대하겠다는 말이 솔깃했다. 내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만큼, 나를 작은 죽음으로 몰아넣는 만큼, 놈의 내세에 쓰일 덕도 많이 쌓인다고 책에 나와 있단다. 놈의 태도가 진솔해 보였다. 나를 신으로 떠받드는 남자라면 그 또한 신이겠다. 여성들의 바람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고나니 목이 메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놈이 풀에 놓인 책을 손에 들고 나에게 펴 보였다. 독특한 그림 하나가 눈에 뜨였다. 머리가 서로 상대의 발쪽에 있었다. 포르노 사진이나 동영상에서도 보지 못했던 체위였다. 놈은 그 체위가 사원의 탑마다 새겨져 있다고, 아주 좋은 자세라고 자랑삼아 떠들었다. 나는 저렇게도 할 수 있는지 신기해하고 있는데 물바람이 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그 바람 때문일까, 소똥 내가 물신 풍겨났다. 나는 목욕을 하고 싶었다. 놈과 함께 할까. 나를 놈에게 맡기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나를 돌이켜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나를 완전하게 비워보지 못했다. 내가 없는 내 몸. 죽음 같은 한순간. 놈은 짧은 죽음을 위해 불꽃이 되어 내게 파고들 것이다. 내 몸이, 밑이 달아오르고 말라붙은 샘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내 몸속 어둡기만 하던 미로에도 빛이 찾아들 때가 있겠지. 내 몸 안 뜨거운 앙금이 가슴을 쥐어박고 목으로 치솟았다. 내가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놈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소똥 냄새는 놈에게서 났다. 내가 앞서며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이층으로 올라서자 복도 끝이 보였다. 어둠에 묻혀서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방문을 내가 밀쳤고 방으로 들어갔다. 놈이 배낭을 풀지도 않은 채 탁자에 던졌다. 내가 함께 씻자고 하자 놈이 되레 머뭇거렸다. 나는 놈을 욕실로 밀어 넣고 함께 샤워를 했다. 진갈색 피부와 하얀 피부가 조화롭게 느껴졌다. 놈은 욕실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 발에 연달아 입을 맞췄다. 나를 두 팔로 안은 채 욕실을 나섰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놈은 나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내 미로 속 마른 샘을 더듬어 찾아갔다. 나는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틀어막았다. 까맣게 가려워질 곳을 먼저 찾아 달라고, 숨이 막히도록 까맣게 가려워야한다고 속삭였다. 놈이 내 손을 치우지 않고 입김을 몰아 손등을 넘어 손가락을 탔다. 놈은 미로를 알고 있나보다. 끝도 아나보다. 메마른 바닥에서 소용돌이가 일 때까지 나의 샘을 배회했다. 여신에게 했던 것처럼 샘 앞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나는 여신이었다. 아름다운 동산의 주인이었다. 비로소 동산이 미로라는 걸 느꼈다. 마른 샘에 물이 고이고 히드라가 서서히 꿈틀거렸다. 미로에서 까만 가려움이 샘솟으며 온몸을 휘감으려 했다. 내게서도 히드라를 위한 주술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왔다. 죽은 듯이 눌려있던 히드라가 눈을 번뜩이며 원죄의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바위에 눌렸지만 결코 죽지 않는 히드라의 하나 남은 머리가 혀를 널름거리며 자맥질 했다. 나는 스스로 동산에서 벗어난 여자였다. 나는 뱀의 사악한 몸짓을 원했다. 무참하게 할퀴고 싶었다. 저주의 원형아 어서 날 잡아먹어라. 나는 작은 죽음을 위한 주문을 애원하듯 입가에 흘렸다. 거기야, 거기. 딱히 알 수 없지만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다급하게 속삭이는 데 놈은 말귀도 밝았다. 서둘지 않고 샘물에 자신을 담그기 시작했다. 나는 사지가 오그라들려고 했다. 이럴 때도 오금이 저리는구나. 나는 사타구니의 손을 거두어 떨리는 몸을 어쩌지 못 해 놈을 꼭 껴안았다. 놈은 따뜻했다. 놈에게서 까맣지 않은 잠이 느껴졌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잠이 내게 스며들었다. 잠의 너울이 덜 탄 송장을 삼킨 강물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창밖 햇살은 매서웠다. 놈은 발가벗은 채 자고 있었다. 간밤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게서 미로가 사라진 것인가. 난생 처음으로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아 두 팔을 추켜세우며 ‘나는 살아났다.’ 고 괴성을 질렀다. 놈이 잠결에 고개를 들어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다시 누웠다. 누군가 다급한 듯 방문을 거침이 없이 두드렸다. 나는 놈을 흔들어 깨웠다. 바깥에서 열쇠 끄르는 소리가 들렸다. 놈이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입으며 밖을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놈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고 떠들어댔다. 패거리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걸로 보아 서넛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뭐라고 두런대다가 한꺼번에 큰 소리로 웃었다. 또 쑥덕이다가 발을 구르며 까무러지듯 웃어젖히기도 했다. 놈을 믿어도 될까. 조금씩 걱정이 되살아났다. 패거리들이 나를 팔자고 끝까지 우긴다면 놈도 못 이기는 체 할 것 아닌가. 놈이 방으로 들어왔다. 두세 명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복도가 조용해지자 돌아가는 꼴이 나에게 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머리가 아파오고 등골에 진땀이 흘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 있긴 한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아야 할 텐데. 나는 놈에게 다가가, 놈의 팔을 젖가슴에 끌어안으며 잘 다듬어진 웃음을 다시 지어 보였다. 놈이 나와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으며 말했다. 패거리들과 함께 사막에서 온 포주를 만나러 저잣거리로 가야 한다고 했다. 놈은 포주에게 나와 잔 것을 말해야 했다. 포주가 많이 웃으면 내 몸값도 덩달아 올라간다. 놈과 패거리들이 돈을 나눠가질 때 포주는 이 방에 들어온다. 포주는 나를 겁탈하려 한다. 반항하면 순순히 따를 때까지 두들겨 팬다고 했다. 나는 더 듣지 않았고 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난 너의 아내다. 너는 여신께 절하며 맹세하지 않았느냐. 나는 달아나지 않고 네 옆에 꼭 붙어 살 터이니 날 지켜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놈이 두 손으로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패거리들이 우리가 결혼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자신을 배신자로 몰아세워 죽일 거라고, 포주는 그러고도 남을 악당이라고 했다.

  누군가 복도를 걸어오더니 방 앞에 멈춰 섰다. 놈이 내려가지 않자 데리러 온 거였다. 놈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꿇어앉은 나에게 ‘미안하다.’ 고 했다. 나로서는 뾰쪽한 수가 없었다. 놈이 방문으로 걸어갔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놈의 뒷모습을 보았다. 방문이 닫혔다. 바깥 문고리에서 들리는 건조하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머릿속을 짓이겼다. 복도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어떻게든 방을 빠져 나가야 했다. 방문의 재질은 나무였다. 나는 등산 칼로 방문의 일부를 도려내기로 마음먹었다. 탁자에 놓인 배낭을 집었다. 덧주머니를 여는데 놈의 낡은 손가방이 머리를 스쳤다. 배낭의 큰 주둥이를 열자 쥐색 손가방이 보였다. 지퍼를 여니 그림책이 있고 열쇠가 눈에 들어왔다. 열쇠는 가운데 손가락만큼 길었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손잡이가 넉넉하게 잡혔다. 열쇠를 쥔 손에 땀이 고여 들었다. 나는 입안이 바삭 말랐다. 배낭을 둘러매고 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밖은 고요했다. 나는 소리를 죽여 가며 창문을 열었다. 철망 틈으로 복도를 내다보았다. 암울한 흑백사진이 보일 뿐이었다. 놈이 하던 대로 열쇠를 붙잡고 철망 코에 손을 집어넣어 팔을 방문 쪽으로 굽혔다. 자물통이 손가락에 닿았다. 열쇠를 떨어뜨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중지와 약지로 엄지와 검지를 떠받치고 소지로 열쇠구멍을 찾았다. 구멍으로 쇠막대가 들어가고 자물쇠가 끌러졌다.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뛰어 나가려다가 오히려 차분하게 걸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이었다. 나는 멈춰 섰다. 뒤돌아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드리워진 그늘 속에 굳게 닫혔던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플래시를 끈 다음 노출을 높였다. 그리고 사타구니 같은 복도 끝과 열린 문을 찍었다. 나는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다시 걸었다. 고양이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현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놈과 걸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뛰다시피 걸어가는데 갈림길이었다. 놈은 저잣거리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강으로 가야 했다. 돌계단으로 내려서면서부터 뛰었다. 강이 보일 때까지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자갈밭을 어떻게 건넜는지 모르겠다. 오미를 지나고 물가에 다다랐다. 우리가 싼 똥의 흔적이 희미했다. 모래밭에서는 놈이 화장터라고 일러준 쪽으로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한참을 가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헐떡거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저만치 화장터가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걸음을 늦추고 숨을 고르며 걸었다. 유족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서성거렸다. 화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속에 누워 있는 몸들은 불꽃을 마다하지 않았다. 불길은 빈껍데기에게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해 주고 있었다. 연기는 불꽃의 흐름에 따라 꼭두각시놀음을 했다. 연기는 얼굴이고 불꽃은 시간이었다. 화구에서는 살았을 적에 시간이 끄는 대로 따랐을 주검의 울고 웃는 얼굴이 되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화장터를 벗어나야 했다. 묵었던 숙소의 반대쪽 길로 걸었다. 머지않은 곳에 사이클릭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맨 앞의 것을 탔고 기차역으로 가자고 했다. 요금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돈을 꺼내려고 배낭을 열었다. 손을 넣었더니 뭉툭한 게 먼저 닿았다. 카메라였다. 나는 좋아할 잡지사 남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진짜 웃음을 보여줄 자신이 생겼다. 불꽃에 휘둘리는 미소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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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쓴다

  등산을 자주했다. 아예, 산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들었다.

  무등산을 오르내린 횟수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증심사 앞에 차를 세워두고 새인봉을 향해 등산을 시작했다. 중머리재 장불재를 거쳐서 입석대 서석대를 올랐다. 규봉사에 들렀고 꼬막재를 넘었다. 원효사를 지나 바람재에서 내리막길을 타다보면 차가 있는 증심사 앞이다. 예닐곱 시간 쯤 걸리는 이 코스를 즐겨 다녔다.

  장불재에서 북쪽을 향해 섰을 때 보았던 단풍은 잊히지 않는다. 상고대로 뒤덮인 입석대 서석대는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품격을 지녔다. 서석대에서 내려다본 광주 저잣거리는 소식 끊긴 누군가가 있기에 바라볼수록 눈물겹다. 규봉사 일주문 오른편으로는 위아래로 길쭉하게 찢어진 암벽이 있다. 갈라진 틈새 꼭대기에는 송아지만한 동그란 바위가 하나 박혀 있다. 내가 걷어찼더니 광주 쪽으로 날아간 덩치 큰 응어리다. 낭패로 얼룩진 소설 원고 A4 뭉치다.

  소설 속을 산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드나든다. 아예, 소설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게 맞다.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쓴다. 내게는 그렇게 연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고 나머지는 끊겼다. 내가 끊은 게 아니다. 가족 눈치에 어렵사리 다니던 등산마저도 건강을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만 남았다. 이제 가족은 나를 흘겨보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소설에게 기대하는 게 있어서다. 그 외 다른 대부분은 내게 눈칫밥을 먹인다. 아니다, 제 노릇 못한다는 내 콤플렉스다. 그걸로 다져진 덩어리를 걷어찼는데 무등이 끌어안았다.

  허공에 떠도는 부족한 글을 낚아 채 무등에 접붙여 주신 채희윤 교수님 감사합니다. 순천대 문창과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소설가 안광, 박청호 교수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께 자주 찾아뵙지 못한 점 사죄드리며 감사말씀도 함께 올립니다.

  무등아 너도 포근하구나.


  ● 목포 출생

  ● 순천대 문창과 졸업

  ● 순천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 중

  

  <심사평>

  "세필화 같은 문장이 소설의 미덕

  일단 소설은 언어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조금 심사숙고해야 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지만 이것의 개념과 의미를 낱낱이 살펴보려고 하면, 언어예술작품으로서의 소설이라는 뜻은 만만하게 해석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일상적인 소통과는 다른 층위를 소설은 지녀야 한다. 그렇다고 소설에서 언어에만 집중할 때에도 역시 소설은 예술이 되지 않는다. 예술적 행위로서의 소설은 언어가 만들어 내는 구조물이 되어야 한다. 이 둘 사이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올해 응모작은 대부분은 소설이 언어예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무등일보 신춘응모작들이 보편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한다. 특히 일차로 걸러진 20여편의 작품들에서는 더욱 그랬다. 대부분 문창과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로 일군의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냥 아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잘 알고 가능하면 그것이 작품을 형상화하는 데에 활용되어질 때에야 우리는 예술적 행위로서 문학작품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저래 한 번 거르고 남은 작품들은 아래와 같다. 물론 '파리지옥', '코리안드림'과 같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최종심에 올릴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미안하다.

  '새벽의 색을'(이승호)은 재밌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재미를 넘어서려는 작가의식이 약하다. 이야기 내부에서 작동되는 의미 층위에 대해 좀 더 노력해야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주는 작품이다.

  '낯선 하루'는 환상적 변모가 가져오는 일상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적 이야기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텍스트 내부에서 전적으로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결점이었다.

  '붉은 신호등'은 신프롤레타리아계층으로 등장한 88만원 세대들의 삶의 세태들을 카파라치 직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재에 비해서 소설 내부에서의 유기성이 부족하고, 이야기의 진부성으로 말미암아 주제의식이 많이 퇴색되고 있다는 결점을 지닌다.

  다음 두 작품은 선자로 하여금 망설이게 했다. '편지'와 '문을 뒤돌아 보다'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내게는 어려웠다.

  '편지'는 매우 명석한 머리로 만들어낸 소설이다. 당위성이 없는 당위성이 가져야할 것으로의 '사물성'에 대한 조금 부족한 소설적 설득이 문제가 되었다. 조금 더 사유를 확대하거나 심화시킬 수만 있다면 이 소설은 썩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을 뒤돌아 보다'는 치밀한(?) 심리 묘사, 그러나 조금은 진부함이 이 소설의 결점이다. 그러나 부조리한 상황설정의 개연성(필연성은 아니고)획득, 유년과 현재를 묶는 계기성으로서의 사물(특히 배설행위)의 활용이나, 꼼꼼하게 그려놓은 세필화(細筆畵) 같은 문장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그러나 작가가 문장에 지나치게 빠질 때, 소설은 또 하나의 빈틈을 갖게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 채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