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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손톱 안 남자 / 송해영

 

매니큐어 칠을 한 손톱 안엔

내 손톱을 장악한 한 남자가 살고 있다.

자꾸 자기 말 좀 들어보라며 나를 불러들인다.

무시를 할수록 자꾸 성가시게 군다.

귓가에 쟁쟁하게 맴도는 그 말은

달콤한 사탕을 물려주는 유혹과 같다.

더욱 들여다보라고 보채는 남자,

이 남자가 주는 카타르시스라니!

칠을 벗길수록 더욱 강해지는 스릴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어 나를 정도껏 조종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한다.

바르라는 속삭임이 귓바퀴를 타고 들려오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고 한참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이것으로 나는 어디에서나 돋보일 것을 예상한다.

그냥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일주일은 잠잠할 테지.

손톱 속 남자는 변덕이 심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내가 원하는 것, 어느새 이 유혹에 빠져 있다.

손톱 안에 살고 있는 남자,

칠을 지우면 죽어버리는 가혹한 운명의 남자,

내 손톱 안엔 한 남자가 징그럽게 살고 있다.




  <당선소감>


   "온몸으로 '시' 꽃 피울 것"


  어렸을 적 잘하는 것이라고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세월이 지나면 잘하는 것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워야했다.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쓴 시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를 쓰는 것은 이미 운명이 되어있었다.

  시는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실수를 했더라도 나무라지도 않았고 조금 늦게 오면 기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시는 멀리 달아나 버리기도 해서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

  낙선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내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겐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시인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성실하게 시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주면 시는 내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를 기특하게 생각하던 때에 당선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스승 이은봉 교수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문학이라는 고행을 함께 하는 광주대 문창과 교수님들, 선후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미소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J, 언제나 내편 난희, '행'이라고 불러주는 모든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미흡한 저에게 큰 문을 열어주신 고재종 심사위원님과 전남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에 눈물로 축하해주신 우리 김복순 여사님과 딸이 어려운 길을 가려할 때마다 아낌없이 돌다리를 놓아주신 아버지 송승종 씨, 언제나 누나를 지지해주는 대웅이, 대우.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더욱 뜨겁게, 온 몸으로 시라는 꽃을 피워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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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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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본심에 올라온 23명의 시들의 경향은 전반적으로 사회역사적 상상력의 퇴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의 약화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이를 대체한 얄팍한 생태주의, 깊은 사유에 도달하지 못한 채 감상주의에 머무른 많은 내면의 시, 그리고 판타지들을 보면서 괴로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주명숙의 '즐거운 제국', 강혜원의 '카나리아',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 라는 시편들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주명숙의 시에서는 주방을 '즐거운 제국'으로 보고 거기서 '장기집권'을 누리는 주부 입장에서 "잘 버무려진 식단은 제국을 견인해 나갈 크레인이니까요"라고 말하는 그 발성법이 발랄하여 오래 눈길이 갔다. 강혜원의 시는 새장에 갇힌 아이새와 엄마새의 논전을 통해 아이새의 위험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이에 대응하는 엄마새의 안일한 통찰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세대간의 갈등과 소통을 말하고자 한 상상력이 빛나는 시였다.

  송해영의 <손톱 안 남자>엔 반전이 있다. 일찍이 서정주의 시 이래 여자의 '손톱'은 성적코드였다. 이 손톱에 "받아들이기 힘든 컬러를 자꾸 재촉"하는 남자의 요구에 부응한 메니큐어칠 행위는 남자의 변덕스런 욕망에 노예가 되어가는 여자의 안쓰러운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반전은 남자가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진술로, 이는 우리 마음속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갈등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마음은 남자의 '조종'을 거부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은 어느새 나도 그를 조종하고 싶은 성적욕망 말이다.

  위 시들 중에 한 편을 골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예심자를 불러 상의했으나 결국 나의 결정은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둔 송해영이었다. 송해영은 다른 시편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서 믿음이 갔지만 표현의 평이함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이를 보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걸로 믿어 당선으로 민다.

 

심사위원 : 광주ㆍ전남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