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새장 / 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당선소감>


   생일날 찾아온 가슴뛰는 당선


  먼 곳의 숲을 쓸고 온 바람이 나무의 귓전에서 쉬고 있습니다. 식물들의 언어란 저렇듯 손가락을 귀에 후비듯 만들어지는지 나무줄기 끝 빈 고막이 키득거림으로 가득 차는 것을 봅니다. 물고기의

  씨앗을 품은 구름이었을까요?

  낮달을 돌아 우회하는 구름이었을까요?

  언덕에 사다리를 걸쳐 놓고 몸을 접는 호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시는 왜 굳이 나에게 찾아와 단추가 되려 했는지 의문이 드는 날들이었습니다. 불안한 꿈은 늘 잠을 앞질러 가곤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가끔 옥타비오 파스의 단추를 읽었습니다. 그때 시는 제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뒤집힌 풍뎅이를 집어 바로 놓듯, 그동안 알고 지내던 시를 뒤집어 놓고 싶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가 그리 바쁘냐는 핀잔도 간혹 있었습니다. 등으로 날아다니는 것들, 그러나 그 등 때문에 버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는 마음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참 고맙고 고마운 늦은 발견입니다.

  “생일 축하해.”

  생일 날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심사를 보신 백무산 선생님과 안도현 선생님의 축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쓴 알약 같은 긴 시간들이 흰 눈발로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듯 당분간은 아프지 않은 시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선생님들 앞에 큰절 올립니다. 그리고 내 심장과 같은 남편과 두 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을 다 말할 수 없지만 시의 첫 걸음마를 가르쳐주신 박제천 선생님. 우문(愚問)을 들고 가면 늘 현답(賢答)으로 지도해 주신 박해람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경운서당 학우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1959년 전북 장수 출생
  ● 부산여자대학 수료
 


 

  <심사평>


  살아있는 생각과 언어의 결


  응모작들이 기성 시단의 어떤 흐름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 너무 커서 완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들이 적지 않았고, 유행하는 소재를 검증 없이 끌어다 쓰는 안이한 시도 여럿 있었다. 감동을 생산하려는 의지보다 시를 잘 만들려는 욕망이 비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리얼리티에 대한 배려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신성희씨의 ‘신발들이 날아간다’는 가장 읽을 만한 시였다. ‘벌판에 버려진 신발이 하나 있다/그 외발을 벌판의 창문이라고 혼자서 불러보았다’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란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다만 지나치게 궤도를 이탈한 몇몇 불안한 표현에 꼬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아깝다. 머지않아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강정애씨는 시적 대상을 객관화하면서도 충분히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시인이다. 당선작 ‘새장’은 생각과 언어의 결이 살아 있는 시다. 자칫하면 상투성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은 소재를 붙잡고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무엇보다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대상을 자기 안으로 바짝 잡아당겨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앞으로 서정의 지평을 크게 넓히는 시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 백무산, 안도현, 유성호, 손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