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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팔거천 연가 / 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 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 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 하겠지요.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당선소감>


   나의 바다를 지켜 온 시(詩)


  마흔 넘어 시작한 늦깎이 대학생이었습니다. 달빛아래 환한 목련꽃 교정의 야간대학. 대구에서 서울까지, 대구에서 조치원까지 KTX 보다 빠르게 달렸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 늘 짧고 무심하기만 하였습니다.

  일출보다 뜨거운 시를 향한 열정이, 문무왕릉처럼 나의 바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물결 철썩일 때마다, 빈 모래사장에 갈매기 발자국 콕콕 찍히듯 시는 내 속에 새겨졌습니다. 황룡사지 빈 터 오층 석탑 속에 차곡차곡 쟁여 두었습니다. 풍경소리 홀로 해풍에 울렸습니다. 해송의 큰 그늘 아래 살포시 내려앉은 해국처럼, 때로는 해송의 따끔함에 찔리기도 하면서, 바다의 빛깔 시의 빛깔만 그려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난 일곱 해의 시간들이 마침내 신춘이라는 꽃을 피워냈습니다. 그 꽃 아직은 작고 여린 땡땡 몽우리에 불과합니다. 칼바람 살얼음 속에서 살며시 꽃 피우는 홍매화의 마음으로 첫 봄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묵히 뒷바라지 해 준 나의 얼룩남자와 세 아이들, 사랑하는 친구(해정, 우정, 윤이)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났습니다. 20년 나의 직장, 나의 고객, 신창재 회장님 사랑합니다.

  5년째 지도해 주신 조정권 선생님, 대학원의 거목이신 김명인 선생님, 경희사이버대학의 이문재 선생님, 대구 이기철 손진은 선생님, 별빛처럼 선명한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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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삶의 연륜 묻어나는 감수성에 호감


  이름이 가려진 채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0명의 작품 126편을 읽고 나서 ‘치즈의 눈물’ ‘벌침’ ‘거울 속의 나’ ‘팔거천 연가’ 네 작품을 가려내었다. ‘치즈의 눈물’은 말을 다루는 솜씨가 있고 잘 읽히나, 툭 차고 일어나 비상할 시점을 놓치고 시가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벌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톡 쏘는 시’ 한 편이 마치 죽음을 무릅쓰고 쏜 ‘벌침’과 같다는 생각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치열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으나 함께 제출된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걸 받쳐줄만한 뒷심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거울 속의 나’는 시상이 명징하고 통일성이 있어 깔끔하게 읽힌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너무도 흔한 주제라서 신인다운 신선함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팔거천 연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삶의 무게나 연륜이 느껴지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안정감이 있고 감수성도 예민하여 호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제출된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이웃에 대한 따듯한 마음의 질량도 듬직했다. 숙고 끝에 <팔거천 연가>를 당선작으로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 드린다. 정진이 있기 바란다.

 

심사위원 : 정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