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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은단풍 / 김남이

 

사원식당 앞 은단풍나무,

어린아이 징검다리 건너듯 갸웃갸웃

자그마한 풍선이 포르르 날며 구르는 듯

조심스레 입 밖으로 걸어 나오는

그 소리 은은하고 맑아서

나중에 ‘은단풍’이라는 딸을 낳고 싶었던


그 나무 밑에서 점심시간마다 우리는 비스킷을 먹었지

기계 소리도 작업반장도 없는 그 나무 밑에서 깔깔거리며

스무 살 부근을 와작와작 부셔 먹었지만

몇몇은 그 나무에 기대어 늙은이처럼 담배를 피워 물었지만


사원식당 앞 은단풍

깨끗한 아침 햇살과

강해지려고 자꾸 다짐하는 한낮의 태양과

한쪽 뺨이 그늘진 노을도 골고루 먹고

큰 키로 수천의 반짝이는 잎들 흔들 때

내가 믿는 신처럼 올려다보게 하던


은단풍 은단풍 은단풍

그렇게 주문을 외면


내 안에서도 나무 한 그루 뚫고 나와 삐죽 솟던

그 나무에 무엇인가 자꾸 매달고 싶던…….




  <당선소감>


   시를 따로 둔 내 삶 생각할 수 없어


  응모 작품을 부치고 우체국을 나올 때 몸도 마음도 텅 빈 듯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달콤한 빵을 샀다. 까칠한 혀로 빵을 우물거리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자고 내게 타일렀다. 그런데, 내 이름을 확인한 목소리가 당선 소식을 전했다. 나를 달래야 할 때 시를 찾았다. 때로 시가 평온한 나를 찾아올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필요할 때 찾아가 위로 받고 싶을 뿐 시에게 잡히고 싶지 않아 찾아오는 시를 경계하기도 했다. 그랬음에도 시와 나는 서로를 탐닉했다. 이젠 정말 시를 따로 두고 내 삶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엄마, 아버지, 저세상에서도 응원하고 기뻐하시겠지요. 묵묵히 바라봐 준 남편과 비싼 운동화 신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미안했는데, 내 애쓴 결과를 보여 줄 수 있어 기쁘고 고맙다. 시의 길로 안내해 준 해양 선배, 길의 초입에서 시 맛을 알게 해 준 서정윤·박윤배 선생님, 늘 채찍과 당근인 친구 기임이도 생각난다.

  푸른방송 문화센터와 정화섭 시인을 비롯한 ‘시 만나러 가는 사람들’ 문우들과 언어를 타고 즐기며 한굽이 넘어가고 깊어지는 문학의 묘미를 일깨워 주신 문무학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어쩌면 쓰레기를 위한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소침해지기도 하던 최근의 날들에 당당할 수 있게 큰 힘 주신 심사위원님께 열심히 쓰겠다고 약속드린다.



  ● 1969년 경북 상주 출생
 


 

  <심사평>


  해맑은 느낌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


  22명의 작품이 본심을 통과했다. 우리는 응모자의 이름을 가린 원고를 읽었다. 지난해에 비해 좋은 시들이 훨씬 많아 시를 읽는 일이 즐거웠다.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뜻이리라. 향상된 작품의 수준도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탄탄한 시가 여럿이었다.

  당선작 〈은단풍〉은 ‘은단풍’이라는 음성이 내장하고 있는 은은하고 맑은 느낌을 자신의 체험과 잘 배합하여 성공한 작품이다. 시인의 해맑은 세계관이 활달한 어조에 실려 더욱 매력적이다. 정작 알맹이로서의 삶은 들어내고 언어만 난무하는 시가 유행하는 때에 좋은 귀감이 되리라고 본다. 축하를 드린다.

  이밖에 우리의 주목을 끈 시로 〈하모니카 소리〉가 있었다. 당선작과 마찬가지로 발랄한 문체가 시에 생기를 더했다.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껴안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를 ‘만드는’ 기술이 진정성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면 안된다.

  또 하나 〈징검다리〉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도드라져 보이는 시다. 하지만 시적 깨달음은 남이 건너가지 못한 강을 건너가려는 고집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무의 문〉 〈끈〉 〈붉은발농게〉 〈마늘〉도 유심히 읽었음을 적어 둔다.

  시라는 양식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는 것을 당선자와 모든 응모자에게 말해 주고 싶다.

심사위원 : 이문재, 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