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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알사탕 / 박옥순

 

차 안 공기가 무겁습니다. 엄마는 두 시간째 말이 없습니다. 묵묵히 운전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훌쩍훌쩍 울음을 삼킵니다. 옆자리에 앉은 민정이가 잠들지 않았다면 두 시간 동안 차 안 풍경은 달라진 게 없을 겁니다. 엄마의 의자 옆에 하나 둘 쌓여가는 젖은 휴지가 아니었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해서 일찌감치 잠을 청하던 나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도 못 챙겼는데 이상하게 멀미도 나지 않습니다. 나는 뒷자리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봅니다. 자동차의 속도에 발맞추듯 창밖 풍경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금세 어지러움이 일었지만 오래지 않아 조금씩 괜찮아집니다. 어떤 일에 익숙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요. 아주 잠깐, 앞으론 멀미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짝이는 가을햇살이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어루만집니다. 바람이 황금빛 들판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오후를 건너갑니다. 문득 바람을 느끼고 싶어 조심스레 창문을 내립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햇살도 한 줌 들어옵니다. 두 손을 벌려 햇살을 받아봅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햇살을 움켜쥐어 봅니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따사로움이 느껴집니다. 잡히지 않는 햇살 너머로 햇살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아빠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은 아빠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지방 도시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빠가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제발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아빠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영안실 입구에서부터 엄마는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멍하니 입구만 바라보던 엄마가 결심한 듯 힘겹게 문을 엽니다. 나도 동생 민정이 손을 잡고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섭니다.

"여보!"

엄마가 목 메인 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맞이한 건 아빠가 아니라,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아빠였습니다.

엄마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봇물처럼 쏟아냅니다. 엄마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놀란 건지 여섯 살 민정이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얼마나 울었을까요, 엄마가 울음 끝을 우는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입니다. 언제 왔는지 외할머니가 가만히 다가와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습니다.

"그래. 울고 싶은 만큼 실컷 맘껏 울어. 누구나 자기 슬픔만큼 우는 거란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들 슬픔에 잠겨 있는데 나만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눈물샘이 말라버린 듯 두 눈은 뻑뻑하기만 합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이 꿈인 것만 같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머릿속이 어지럽기만 합니다. 금방이라도 아빠가 "우리 수정이 많이 놀랐지?" 하며 국화꽃 사이를 비집고 걸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하릴없이 그 많은 국화꽃들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빠, 어디 계신 거예요? 숨바꼭질 그만하고 얼른 나오세요.'

"쟤가 이 집 큰딸 아닌가?"

"맞어. 서울로 시집 간 미숙이 딸."

"그런데 어쩜 계집애가 저렇게 모질어."

"그러게 말여. 어제부터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던데. 쯧쯧쯧 철이 없는 건지, 모자라는 건지."

"아무리 철이 없기로 열 살이나 먹어서 그만한 슬픔도 모를까.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보것네."

이틀째가 되자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나에게 들릴까봐 자기들끼리 모여 소곤소곤하더니, 얼마쯤 지나자 일부러 들으라는 듯 제법 큰소리로 나무라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서였습니다. 할 일이 없던 나는 민정이를 데리고 병원 화단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갑자기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끕니다.

"민정아, 잠깐 외할머니한테 가 있을래? 엄마가 언니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응. 엄마. 근데 얼마나 오래 걸려?"

"금방이면 돼."

"알았어."

민정이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영안실로 들어갑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언니, 이따가 네잎 클로버 꼭 찾아줘야 해." 하고 외칩니다.

엄마는 나를 느티나무 아래 벤치로 데려갑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자꾸 머뭇머뭇하며 말을 못 합니다.

"수정아, 엄마가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수정이는 아빠가 돌아가신 게 슬프지 않니?"

"…… 슬퍼요."

"그런데……."

"왜 울지 않는 거냐고 묻고 싶으신 거죠?"

당황한 듯 엄마는 말이 없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정말 슬퍼요.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질 않아요. 엄마, 슬프면 꼭 울어야 하는 건가요?"

"응?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만 네가 어디 아픈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내색은 안 했지만 엄마는 내가 어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난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이 남들과 다를 뿐이라고 말이지요. 처음엔 나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울지 않는 내가 정말 못된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아빠가 돌아가실까봐 많이 두려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차를 타고 병원에 닿기까지 조금씩 덮쳐오는 불안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지방 도시에 있는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만날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보던 아빠가 직장을 얻어 기뻤지만 그렇다고 온 식구가 지방 도시로 내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도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요. 그 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두세 번 서울에서 혹은 지방 도시에서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괴로움도 시작됐습니다. 차를 타면,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멀리 가면 꼭 멀미를 했으니까요.

"아빠" 하고 달려가면 아빠는 언제나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정이 오늘은 멀미 안 했어?" 하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까슬까슬한 볼로 내 볼을 부비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면 "우리 수정이 잘 가. 엄마 말씀 잘 듣고. 다음 주엔 아빠가 올라갈게. 알았지?" 하며 내 손에 큼지막한 사탕 두 개를 쥐어 주곤 했습니다. 너무 커서 내 손에는 꼭 두 개만 잡히던 그 사탕. 아빠의 따스한 온기가 스며 있는 사탕 두 개는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멀미를 잊게 하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입 안에 넣으면 기분 좋게 자두향이 번지던 엷은 보랏빛 알사탕. 그 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 자두맛 알사탕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삼 일 만에 아빠는 고향 뒷산에 묻혔습니다. 햇볕 잘 들고 바람 서늘한 그 언덕이 앞으로 아빠가 살아갈 집입니다. 네모난 아파트 지붕 밑에서 살던 아빠가 이제 박처럼 둥근 지붕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빠의 집 뒤 우거진 숲속에선 산새들이 지저귀고, 집 앞에는 가을 들판이 흐뭇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장례식을 도와주던 어른들은 "묫자리가 참 좋아." "명당이야 명당." 이런 말들을 주고받습니다. 그 말의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빠의 새 집은 퍽 근사해 보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집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바로 앞에는 계단식 밭들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낮은 구릉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릉 너머에는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산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 위로는 하얀 구름들이 양떼처럼 몰려다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구불구불 기어가는 냇물도 아스라이 보입니다.

'아빠, 새 집이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으면, 아빠가 금방이라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래. 수정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고 좋구나.' 하고 말씀하실 듯합니다.

장례식을 치르는 삼 일 동안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첫날은 한없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둘째 날은 고즈넉하게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또다시 높아졌다가 가라앉았습니다. 나무 관이 땅 속에 묻힐 때는 한껏 높아지더니, 둥그런 봉분이 만들어질 때는 토독 토독 우산에 내려앉는 마지막 빗방울처럼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 개인 뒤의 하늘처럼 맑습니다. 이젠 아무도 울지 않습니다. 삼 일 내내 눈이 퉁퉁 부어 있던 엄마의 얼굴에도 아주 가끔씩 엷은 미소가 지나갑니다.

슬픈 중에도 저렇듯 웃을 수 있다는 게 무척 낯설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장례식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어쩌면 아빠는 돌아가신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서 우리 가슴에 들어오려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빠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듬성듬성 입힌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아빠의 첫 친구입니다.

"수정아, 이제 아빠한테 인사드리고 그만 내려가자."

엄마가 나와 민정이를 아빠 무덤 앞에 나란히 서게 합니다.

"아빠,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세요."

민정이가 먼저 아빠에게 인사를 합니다.

"수정아, 너도 인사해야지."

엄마가 물끄러미 서 있는 나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나는 대답은 미룬 채 주머니에 손을 넣습니다.

'어디 있더라?'

아, 이제 손끝에 만져집니다. 동그란 알사탕 두 개. 아빠가 내 손에 쥐어주곤 하던 바로 그 자두맛 알사탕입니다. 나는 조심스레 알사탕 두 개를 아빠의 무덤 앞에 내려놓습니다.

"아빠, 하늘나라 가실 때 가져가세요. 혹시 가시다가 멀미나면 이 사탕을 조금씩 녹여 드세요."

엄마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묘지까지 따라 왔던 어른들도 조용히 눈가를 훔칩니다.

창밖으로 가을 들판이 달립니다. 들녘은 오던 날과 달라진 게 없는데 내 마음속엔 서울에서 내려올 땐 없었던 무언가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이 피곤했는지 민정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종종 눈을 비비며 운전을 합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가끔씩 엄마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귀에 멀미약을 붙인 것도 아닌데 거짓말처럼 멀미가 나지 않습니다. 전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머리를 어지럽게 하던 길가의 나무들도 오늘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우리 곁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만 빼고. '아빠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가 드린 알사탕은 드시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창문을 살짝 내립니다. 혹시 바람은 알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바람과 함께 투명한 햇살이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그 눈부신 햇살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가 있습니다.

"아빠, 안녕."

창밖을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며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집니다. 오늘따라 노을이 더욱 붉습니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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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높은 완성도…인물의 개성 면에서 새로움 도드라져"


엄청난 양의 투고작들을 읽어나가며 응모자들의 창작에 대한 이 뜨거운 열정의 근원은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그에 대해 뚜렷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보여준 진지한 창작 태도와 작품을 완성해내는 집중력에는 깊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경향으로는 학업 스트레스, 따돌림, 결손 가정, 할머니나 할아버지, 다문화 등 몇몇 소재에 집중되었고 일인칭 시점의 서술이 아주 많았다. 일인칭 시점은 인물에 밀착할 수 있어 생동감을 주지만, 치기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날것으로 드러나거나 서술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해서 실패한 작품 또한 적지 않았다.

일차로 두 심사위원은 경향이 다른 작품들을 두루 포함하여 18편을 고른 뒤 다시 9편으로 압축하였다. '그냥, 그리고 너도 그냥'은 유머와 생활의 활력이 담긴 점이 돋보였고, '차돌멩이와 아기 샛별'은 요즘에는 오히려 보기 드문 고전적인 동화를 잘 빚어낸 점이 눈길을 끌었다. '계주 선수'는 탄탄한 구성으로 아이의 경쟁 심리를 실감나게 드러냈으며, '꿈속의 섬 일로일로'는 다문화 가족과 최근의 구제역 파동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역량을 보였다. '안녕, 마녀'는 아이의 콤플렉스 극복기를 경쾌한 필치로 들려준 유쾌한 작품이었고, '마지막 주의 사항'은 성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심리적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가는 과정을 무리없이 그려낸 점에서 저력을 보여주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세 작품은 문장력과 표현력, 전체적인 짜임새 면에서 좀 더 앞서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손님'은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와 엄마의 갈등을 탄탄한 구성으로 펼쳐 보였고, '쓸모 없는 아이'는 열등감에 젖은 아이가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과정을 일상의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묘사하였다. '알사탕'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직면한 아이가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슬픔을 표출하는 방식이 잔잔하면서도 절절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세 작품이 모두 완성도가 높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으나 인물의 개성 면에서 새로움이 도드라진 '알사탕'을 당선작으로 올리기로 합의하였다. 역량 있는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한번 반짝한 신인으로 그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길이 남을 걸작을 쓰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이상교, 김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