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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저녁의 집 / 유수진

 

아침이라면 모를까

저녁들에겐 다 집이 있다

주황빛 어둠이 모여드는 창문들

수줍음이 많거나 아직 야생인 어둠들은

별이나 달에게로 간다


불빛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다 저녁의 집들이다


한 켤레의 염치가 짝짝이로 돌아왔다

수저 소리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돌아왔다

국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설거지를 끝낸 손가락들이

소파 한 끝에 앉아

어린 송아지의 배꼽, 그 언저리를 생각한다


먼지처럼 버석거리는 빛의 내부

어둠과 빛이 한 켤레로 분주하다

저녁의 집에는 온갖 귀가들이 있고

그 끝을 잡고 다시 풀어내는 신발들이 있다


적어도 창문은 하루에 두 번 깜박이니까 예비별의 자격이 있다


깜박이는 것들에겐 누군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매번 돌아오는 관계가 실행하는 수상한 반경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있고

스위치를 딸깍, 올리면 집이 된다


별은 광년을 달리고 매일 셀 수 없는 점멸을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도

어수룩한 빛들은

얕은 수면 위로 귀가한다





  <당선소감>


   "-"


수변길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불빛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어룽어룽 빛들이 물결 따라 흔들렸습니다. 징검다리로 올라서니 수변길에서 보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빛들은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제 몸을 다해 점멸하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빛들이 자리를 옮깁니다. 이쪽과 저쪽을 다니며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빛들을 오래 봤습니다.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전등을 환하게 켜둔 방을 헤아렸습니다. 아파트엔 불 켜진 방이 많았습니다. 저기 어디 내 방에도 불이 켜졌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밤 기온이 영하라는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았습니다. 불이 환한 창문들 사이로 듬성듬성 아직 빛이 귀가하지 않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변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글을 왜 쓰냐고, 시를 왜 쓰냐고. 그럴 때마다 막막하고 난감합니다. 왜 쓰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쪽엔 흰 종이를 펼쳐 둔 채 다른 쪽에 한글파일 화면을 열어 두었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귀가를 기다리는 창문들에 관심을 두겠습니다. 수면 위에서 점멸하는 별의 끝을 잡고 풀어가겠습니다. 여정의 길목마다에서 스위치를 찾겠습니다. 스위치를 딸깍, 올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어수룩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고향, 엄마 보고 싶어요. 아버지, 당신의 등을 존경합니다.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대전 출생
  ●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 졸업


 

  <심사평>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열한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인적 사항이 없이 응모 번호만 응모작 맨 앞에 적혀서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코로나19로 만나지는 못하고 각자 좋은 작품을 뽑기 위해 숙독을 하고 다시 각각 세 분의 작품으로 압축했다.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 「흙냄새 향수」 외 4편, 「저녁의 집」 외 3편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세 분의 작품들은 모두 소위 신춘문예 풍조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시의 위의와 진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먼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의 작품은 대담한 언어 구사와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언어를 부리는 기교가 겉으로 너무 드러나면 소통과 감동에서 약간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오타였다 하더라도 “맡겨”를 “맞겨”로 쓴 실수는 마지막 퇴고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았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흙냄새 향수」 외 4편에서는 시적 진술과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힘이 좋았다. 그러나 일상을 읽는 독법이 평이함으로써 참신한 감각, 즉 신선미가 떨어진 듯하여 아쉬웠다. 「저녁의 집」 외 3편은 요즘처럼 세상이 코로나19로 어수선할 때 너무나 소중해진 당연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가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른 응모작들도 고른 수준을 견지함으로써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기에 심사위원들은 「저녁의 집」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서로 일치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 허형만, 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