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남구만신인문학상 당선작] 송용탁

category 좋은 글/시 2021. 1.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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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 결 외 6편



  결


빈 도시락 통이 다리를 퉁퉁 칠 때면 무릎 근처에서 달그락 물결이 일었다. 학교 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은 흐르고 나는 고인다. 이름 모를 꽃들이 내 이야기를 엿듣곤 했다.


결이란 말은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마음


늘 골목 끝에 서 있던 엄마가 없다. 세상의 숨결이 겉잎을 버리는 시간. 혼자라는 속잎이 있다. 시시한 놀이가 거친 숨결을 달랜다. 견뎌야 하는 목록이 늘어날수록 숨은 여러 결로 쌓였고 숨을 내쉬기 힘든 무게가 있었다.


소실된 곳에 가면 세상은

나를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다

떠난 마음들이 사는 도래지가 있다고,


노을의 손을 잡고 뛰었다. 엄마의 살에서도 물결이 인다. 살의 결이 말을 걸어 올 때 길은 생이 아닌 다른 힘으로 걷게 된다. 엄마와 살이 닿으면 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알았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응결된 마음이 눈물처럼 흘렀다. 세상의 길이 붉게 일렁거렸다.


빈 도시락 통이 달그락달그락 계속 흘러갔다.




  양장의 자세



과묵한 표지로 걷고 있었다

계절은 돌보지 않았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구 한구석 풍화가 일어났다

바람만 이를 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가을의 슬픈 버릇이었다


자전은 지구가 나를 읽는 방식

한동안 정독이었던 적도 있었다

견고한 발음으로 낮과 밤이 지나갔다

나를 닮은 표정들이 모였다

마른 책상 위에 쌓여가고 있었다

외롭지 않다고 묵독을 해야 했다


- 초토의 흙은 검거나 붉거나

  난독의 영역일 거라

  남의 꼬리털을 비명처럼 세우고

  나의 이름을 적는다

  경건한 필체가 나를 치장해 주기도 할 거라

  잠시 우주도 심심해지는 순간

  해는 점점 짧아져서

  내 키도 줄어드는 가을이라고

  끄덕끄덕 낯선 글자들이 방문을 했다


발췌의 기술로 상심한 속지를 더듬어 본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허기진 페이지로 흘러갔다

나는 오늘도 부호로 끝난 몸짓이었다


흔들리는 자전의 공식들

산책을 떠난 나의 낱장들


결국 가을이었다


 


  아무도 진화하지 않았다



나무속 아궁이에 불을 놓는다


굳은살로 굳은살을 씻던 손의 끝


눈이 모인다

물이 고인다


싹이 나던 자리에 물을 붓는다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나무의 씨앗들이 흘러내렸다

소매가 찰랑거리면 저녁도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아궁이는 무섭게 웅크리고 있었다

뜨거운 밥이 저녁을 데워주고 있었다

몇 술 뜨지도 못하고 누워야 했다


그의 이름을 발음하던 혀를 접는다

이름은 그을음보다 멀리 있었다


단단하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이다

매운 옹이에 불이 붙는다


불은 늘 그리운 방향으로 돈다

타버린 나무속에 산의 높이가 숨는다


춤사위가 끝나고

단단한 멈춤이 왔다


잠시 조용하기로 했다




  당신의 분절성


 

사라진 것들을 깁기 위해 하류로 간다. 당신은 상류의 서식지만으로도 충분했다. 꽃은 피우는 것보다 떨어뜨리는 일에 집중한다. 중독은 표백의 또 다른 자세. 당신의 결백을 건사하는 일이 무겁다. 그래서 나는 자꾸 하류로 간다.


남은 꽃들 아래에 가서 하늘을 본다

당신의 등은 군데군데 푸르다

가끔 지나가는 벌들이 눈물이다

바람도 없이 어깨가 흔들린다

뱀처럼 내민 작은 잎이 내 얼굴의 얼룩을 핥는다

큰 죄가 빳빳해졌다

나는 휘어진 뱀이 된다

당신을 휘감는 단단한 뱀


내 몸의 넘치는 부분이 탄로 났다. 만약을 위해 다시 하류를 훑는다. 어떤 눈은 볼 수 없어 무심했고 어떤 입은 여울에서 맴돌았다. 이미 헐린 혀,


이끼가 자란다

슬픔은 녹색이다


혀도 없이 당신은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했다. 이름은 나를 가리키려 하고 우리는 책임질 시간을 배운다. 다리가 하류에 녹는다. 당신은 잎을 피우다 다시 떨어뜨리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다시 하류를 생각한다. 전력을 다해 나를 녹일


 


  완벽한 생산자



수척해진 피복은 눈의 자락을 허용하지 않았다. 도착할 곳이 있는 사람의 어깨엔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동행하던 활엽이 속삭인다. 이름이 적힌 화분은 전신주의 긴한 높이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선의 끝에 비행의 굉음이 뒤따른다. 활엽 또한 도착할 곳이 있었다. 현대는 제 이름 하나로 추위를 견디기 쉽지 않다. 소비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겨울이 끝난 사람에게 활엽은 사치일 뿐이다.


화분이 놓일 영안실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속 바쁜 어깨 대신 흰 배가 둥실 떠오르면 둥근 생을 요약하는 목도가 있다. 한 자세로 마지막을 지킨 피곤한 의자들도 다리를 펴는 시간. 검은 동자를 먹어 치우기 전에 흰 얼룩을 붙잡는다. 먹다 남은 싱싱한 생각은 도마 위에서 토막 나고, 아무렇게나 검은 봉지에 담겨 또 도착할 곳을 찾을 것이다. 활엽이 고개를 돌리면 나는 홍적기의 고사리처럼 외롭다 속삭인다. 애인의 예쁜 배꼽에 정액이 또르르 구른다. 시야가 몇 번 접힌다. 팽륭은 무너진 행인의 자세에서 온다.


노을도 가쁜 숨을 톺았다.


 


  흘레



혼자 먹지 마세요

각자 입구를 열고 식사합시다


매끈한 접시 위 쏟아지는 흰색

식기는 바깥에서 안쪽 순으로 사용합니다

악수부터 속살까지, 과정은 비슷하죠

접시 테두리를 모두 닫아도 될까요


손에 쥔 금속성이 반짝 부끄럽습니다

그림을 그리듯 얼굴을 붉힙니다


속옷 안의 일은 아무도 몰라요

나는 우아하게 숨 쉬는 방법을 압니다

금속의 가랑이를 벌립니다

식사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죠


혀는 입보다 먼저 마중 나갈 거예요

후패한 숲의 입구에 줄을 서는데

겨울 내내 키운 자작도 다 세우지 못했는데

식사는 시작됐다는 뜻이죠


요리의 맨몸을 만질 때마다

장면이 바뀌고 화폭이 줄어듭니다


천장 위 거울의 맨몸도 먹는 일의 하나라서

입안 가득,

입구의 최댓값을 감상합니다


나이프와 포크를 교차해야죠

다음 음식을 주세요

모든 몸이 달콤합니다


다리를 꼬고 있는 건 접시를 치우지 말란 뜻입니다


다행히 양말은 신은 채로,

예의 같은 게 있으니까요

날개를 터는 붓이 있습니다


붓의 깊은 뿌리가 먼 곳의 혀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섯 개의 입을 가진 주사위를 꿈꾸죠


때론 접시의 입구를 열고

접시가 돌아가는 상상을 해요


무례하다 말할까요

모던하다 부를까요


맛있게 먹는 데도 순서가 필요하대요


- 흩어진 흰색을 치우다 식탁을 지웠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건 개라고 부를까

  허기를 채워도 네 발은 어렵다

  목을 감싼 수건이 무릎으로 떨어질 때

  그리다 만 그림을 생각했다

  접시와 난 비밀이 생겼다


쥔 손을 펴면

나는

이미 젖은 그림이죠


다리를 일자로 만듭니다

식사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바가모요*


 

심장을 놓고 가는 사람의 장소에는 삽 한 자루의 높이만 있다


노동의 뼈대로 세워 올린 당신의 계단 위에 흰 꽃을 놓는다. 친애하는 건축물 앞에서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울음을 먹고 산 자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말랑말랑한 살들이 안긴다. 저녁의 위로는 짧다. 한 삽 한 삽 게워낸 당신의 연한 마음. 종일 모래에 섞고도 남았나요. 당신의 앉은 자리에 버무리다 만 선사의 가루가 떨어진다. 저 단단한 건축의 살에서도 당신 살냄새가 날까. 어쩌면 처음부터 화석이었던 당신. 고단한 모래가 씹힌다. 근사한 노래 같다.


나는 당신의 언어를 상속받지 않을래


연단 위 확성기를 든 자의 목소리는 차라리 먼 나라의 아리랑. 옥상 위에 올라가 꽃비를 맞는다. 고복은 하늘이 내린 자의 관습이라는데 당신과 나는 족보가 없다. 울음이 반올림되면 고장 난 심장도 구호를 외칠,


나는 팔을 조금 내려도 될까요


당신의 장소에 꽂힌 삽 한 자루. 유실물은 노래다. 이마가 두 번, 놓아둔 심장에 닿는다. 술잔이 넘친다. 여전히


나의 혁명은 어설프다


*바가모요(Bagamoyo): 탄자니아의 프와니에 있는 도시. ‘심장을 두고 간다’라는 뜻.




  ● 1977년 부산 출생. 
  ● 국립창원대학교 국어교육전공 석사. 
  ● 문학동인 Volume 동인.



  <심사평>


  -

제3회 남구만신인문학상 본심에는 열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분량도 만만치 않았지만, 수준도 높아서 읽고 상대평가를 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시가 소재에 억눌리고’, 흔하고 익숙한 시어를 감추지 못하거나 억지로 가져온 언어를 짜 맞추는 등의 약점을 보였다.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이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따라서 최종 결정을 위한 논의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개성을 보이는 작품을 추려보니 다음 네 분의 작품이 남았다.


김용창, 「에프터 코로나」 외 7편

박은순, 「나비의 길」 외 7편

송용탁, 「아무도 진화하지 않았다」 외 6편

최형만, 「손의 서술」 외 6편


「에프터 코로나」 외 7편은 ‘서사’라 부를 만한 것들을 뒤에 감추며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는 장점과 비교해 진술의 논리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나비의 길」 외 7편은 “나는/ 몸 안에 은밀한 방문을 모두 열고/ 어둑한 복도 끝으로 가고 있다”(「나비의 길」)로 진정성이 느껴짐에도 나비와 나, 환자, 꽃 등과의 관계가 선명한 형상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얻었다.

「아무도 진화하지 않았다」 외 6편과 「손의 서술」 외 6편은 비교적 시어의 흐름에서 무리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도 진화하지 않았다」 쪽이 익숙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흠이, 「손의 진화」 쪽은 시어를 생경하게 가져온다는 흠이 지적되었다.

두 분의 작품 전체를 다시 한 편 한 편 살펴 송용탁의 「결」을 되풀이 읽게 되었다. ‘빈 도시락 통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로부터 ‘혼자라는 속잎’에 깃든 ‘어머니의 결’을 찾아내는 회상의 경로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을을 지나는 삶의 시간을 책으로 만들거나 읽는 일로 이미지화한 「양장의 자세」도 되읽기를 요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김윤배(시인), 이경철(시인, 문학평론가), 박덕규(시인,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