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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자정의 달방 / 이도경

 

인물
  여자, 30대 초반
  남자, 20대 후반
  주인, 50대 중반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모텔 방 안

무대
  낡은 모텔 방 안. 왼 쪽에는 화장실 문이 있고 오른 쪽에는 침대가 있다. 가운데 놓여진 작은 테이블. 위에는 온갖 음식들이 담긴 일회용 접시들이 늘어져 있다. 뒤편으로는 창문이 있고 러브호텔, 대실 2만원 등 네온사인 간판들이 보인다.

  어두운 무대 밝아지면,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자의 뒤를 따라 남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먼저 펼쳐놓는다. 남자는 방 안을 둘러본다. 서랍과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침대에 앉아보기도 한다.

여자 들어와요.

남자, 신발을 벗는다.

여자 좀 좁죠.

남자 (남자는 꽤 웃고 있다.) 모텔 사는 사람 처음 봐요.

여자 그게 나쁜가요?

(사이)

남자 아니요. (둘러보며) 좋네요.

  여자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둔다. 그러나 의자는 하나뿐이다. 하는 수 없이 침대 앞으로 테이블을 민다. 자신은 침대에 앉고, 남자에게 의자에 앉으라며 가리킨다.

여자 앉아요.

남자 침대에 같이 앉는 건 안돼요?

여자 (무시하고) 생각해보면 고시원보다는 훨씬 나아요. 생각보다 달방 저렴하고.

  남자는 여자가 가리킨 자리에 앉는다. 여자보다 남자가 앉은 의자 높이가 훨씬 높다.

남자 근데, 의자가… 좀 높네요.

  남자, 자리와 여자를 번갈아 본다. 여자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꺼낸다.

여자 (한숨을 내쉰다) 젓가락이….

남자 여기서 산다면서 젓가락도 없어요?

여자 최대한 짐 줄이느라고요. 나무젓가락 쓰는데.

  여자, 서랍과 가방 여기저기를 뒤져보면서 일회용 젓가락을 찾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남자 나가서 하나 얻어올까요?

여자 아까 봤잖아요. 밖에 편의점 없는 거. 죄다 술집이라서.

(사이)

여자 왜 하필 젓가락을 안 가져와서는.

남자 일 층 가서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여자 안돼요!

남자 그 정도는 있지 않나? 안 되면 일회용 칫솔 같은 거 네 개 구해다가,

남자, 젓가락질 하는 시늉을 한다.

여자 사이가 안 좋아요.

남자 그냥 나갔다가 올게요.

여자 그러지 말고, 그럼

남자 근처 술집에서 얻어올게요. 아니면 빌려보든가.

  남자, 외투를 다시 입고 나가려는데 여자가 붙잡는다.

여자 그냥 먹어요.

남자 어떻게?

여자 손으로.

남자 손으로?

여자 우리 아까 몰래 담느라고 국물 있는 음식들도 아니고.

남자 그렇긴 한데.

여자 굳이 나가서 좋을 것도 없고.

  여자, 테이블 앞에 앉아 먹는 시늉을 먼저 보인다. 하나를 집어먹더니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다시 앉는다. 남자도 곧 따라 앉는다. 둘은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꼭 먹어야 한다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처럼 음식에만 집중한다.

남자 물 있어요?

여자 아까 음료수 한 병 챙겨 올 걸.

남자 아, 그렇네. 음료수 따로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거던데.

여자 역시 호텔 뷔페가 좋아요.

남자 근데 왜 이런 거만 담았어요?

여자 직원한테 들킬까봐. 저도 초밥 스테이크 이런 거 싸 오고 싶었죠.

남자 그래도 김밥은 좀 심했다.

여자 직원한테 들킬까봐. 요즘은 뷔페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

남자는 손으로 김밥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살피고는 다시 입에 넣는다.

여자 고기는 식으면 하얗게 굳어요. 기름이.

남자 아까 랍스터도 맛있었는데.

여자 그건 비닐에 넣다가 찢어져요.

남자 튀김 같은 것도 있지 않았나?

여자 비닐에 넣어도 가방 안에서 기름이 묻어나잖아요.

  남자는 테이블 위 음식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남자 다 뭉개졌네.

여자 어쩔 수 없죠.

남자 회 같은 걸 챙기는 거였는데.

여자 그럼 오는 길에 초장을 사 와야 하잖아요.

남자 그거 얼마 한다고.

  여자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는 것보다 음식이 더 중요하다. 여자는 음식을 손으로 집어 삼킨다. 천천히 맛보는 게 아니라 급히 먹고서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남자는 냉장고에서 물을 찾아 건네보지만 생수병이라고는 없다. 종이컵에 수돗물을 담아 갖다 준다.

남자 아까 너무 많이 먹긴 했지.

여자 한 번에 먹어둬야 해요. 나 같은 사람들은.

남자 음식 여기 놔두고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여자 (잔기침) 나중에 먹을 것 같지도 않고 다 버려야 하는데 아깝잖아요.

남자 그게 아까워서 뷔페는 어떻게 갔는지 몰라.

(사이)

여자 내 돈이었으면 안 갔어요.

남자 응?

여자 얻었다고요.

남자 어디서?

여자 라디오 경품으로.

남자 그걸 나한테 판 거라고?

여자 반 값에 팔았잖아요.

남자 아니, 1인분이라고 해도 그렇지.

여자 난 분명 중고나라에 2인 식사권으로 올렸고, 그쪽은 1인분만 사겠다고….

남자 그럼 당신은 돈도 벌고 밥도 먹고?

  여자는 남자가 아까 떠다 준 수돗물을 마신다.

여자 한 사람당 십만 원짜리인데 두 명에 오만 원으로 올렸잖아요.

남자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식사 동행을 구하면 몰라.

여자 그쪽이 1인용 식사권만 필요하다고 하니까.

남자 누가 봐도 내가 좀 억울하지 않나?

여자 1인분 버리는 것보다 내가 먹는 게 낫잖아요.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관중 앞으로 다가간다. 한 바퀴 돌며 자신의 옷차림을 매만진다. 머리를 쓸기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말한다.

남자 그럼 여자인 거 미리 말해주기라도 하지.

여자 그게 왜요?

남자 아니, 2만 5000원쯤이야 데이트 비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고,

여자 데이트?

남자 남녀 둘이 만나면 데이트지.

  남자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던 자신의 자리, 의자를 들고 여자 옆으로 옮겨 앉는다. 여자는 남자의 반대편으로 상체를 약간 뺀다.

남자 먼저 밥도 먹고 여기까지 오자던 건 당신이지 않았나.

여자 단순히 식사권은 2인용이었고.

남자 그럼 다른 친구라도 같이 가면 되는 걸 나한테 먼저, 같이 가자고.

(사이)

여자 뭘 좀 착각하신 것 같네요.

남자 세상 어느 남자가 이걸 데이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여자 저는 단순히.

남자 당신도 생각해봐요. 호텔 뷔페에서 마음껏 배불리 먹었지. 그 후엔.

(사이)

남자 모텔까지 데려와 놓고!

여자 그런 거 아니에요.

남자 그럼 뭔데?

여자 아까워서.

남자 정말 그게 다라고?

(사이)

여자 혼자 밥을 못 먹어요. 단 한 숟갈도.

남자 그럼 어떻게 혼자 사나, 말이 안 되는데.

여자 당신이 필요했어요. 나가서도 같이 먹어 줄 사람이….

남자 배부르지도 않나?

여자 벌써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남자 차라리 친구나 가족이나, 누구라도.

여자 없어요.

남자 아무도?

여자 아무도.

(사이)

여자 (객석을 바라보며) 우리 두 번은 안 볼 사이잖아요. 그냥, 한 번에 먹을 뿐이에요, 며칠 치를. 음식은 항상 나눠야 한 대요.

남자 안 볼 사이인데 난 당신이 어디 사는지를 아네요.

여자 난 당장 내일 이사 갈 수 있거든요.

  남자, 엉덩이에 의자를 붙인 채 다시 여자의 반대쪽으로 가 앉는다.

여자 정말 배가 고플 땐 편의점에서 라면… 그마저도 편의점 안에서 누가 라면 먹고 있기를 기다렸다가 옆에 서서… 혼자로 안 보이게

남자 대체 왜?

여자 불쌍하잖아요.

  여자는 일회용 접시 위에 있는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는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빤히 바라본다.

여자 밥 한 끼 같이 먹을 사람 없는 내 자신이.

  여자, 사레가 들린 듯 자기 가슴을 두드린다.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한다. 여자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따라가 화장실 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잠겨있다. 문을 열려고 하는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 잠깐 열어봐요.

여자 안돼요.

남자 등이라도 두드려줄게요.

여자 싫어요.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앉아 휴대폰으로 노래를 튼다. 화려한 클래식 음악 소리가 깔린다. 곧 소리가 멎고 여자는 입을 닦으며 나온다. 여자는 다시 자리에 앉지만 침묵.

남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여자 한 번에 먹어둬야 해요.

남자 배 안 불러요?

여자 배불러 본 적 없어요.

남자 아까도?

여자 뭘 먹어도 항상 배가 고파서.

(사이)

  여자는 또다시 음식을 집어먹는다. 구역질을 한다. 그러면서도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면서까지 음식을 삼킨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따라 자신도 음식을 먹는다.

남자 (입안에 음식물이 담겨 발음이 부정확하게) 애채 어가 으아애어?

여자 (여자 역시 음식을 먹으며 대답한다) 어아?

남자 (다 삼킨 후) 대체 뭐가 어때서?

(사이)

남자 사람들은 관심도 없어요. 누가 혼자 살고 누가 뭘 먹고 누가 뭘 어떻게 하는지 자기 상관할 바 아니라서.

여자 언젠가부터. 혼자 무언가를 먹으면….

남자 혼자 먹으면 더 맛있지.

여자 혼자 먹으면… 삼키지를 못해요.

  남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다시 여자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여자는 가만히 있는다. 남자는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남자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누가 뭘 혼자 먹든 먹고 토하길 반복하든.

여자 혼자 밥 먹는다고 음료수 서비스 받는 것도 싫었고.

남자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여자 혼자 밥 먹을 만큼 식탐 있어 보일 거고.

남자 사람들은 당신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뭘 하든.

(관객석을 가리키며) 저 멀리서 사람들이 우리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여자 지켜보고 있는지 누가 알아요? 항상 옆에 있다고들 하잖아요.

  남자, 주위를 둘러보며 팔을 내젓는다. 두려운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남자 누가…? 옆에 뭐가 있나? (남자는 자신의 두 팔을 문지르며 허공을 둘러본다)

여자 옆에 항상 있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가.

남자 엄마?

여자 엄마 유언 같은 거였어요.

(사이)

여자 반찬가게를 했었어요. 밥 잘 챙겨 먹는 걸로는 일등이었는데 우리 집. 근데 엄마가 다음 날 팔 음식 다 만들어 두고 밤 늦게 퇴근하다가. 차에 치인 거예요. 반찬은 다 따뜻하게 들어가있는데. 우리 엄마만 차가워졌어요. 뺑소니였는데, 너무 늦게 발견돼서.

남자 범인은 잡았고?

여자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당당하게도 장례식에 온 거예요. 그쪽 부모들이. 처음에는 몰랐어요. 부모인지도. 그냥 엄마의 건너건너 아는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더 웃기는 건 그때 밥까지 먹고 갔거든요.

남자 왜 엄마 음식이었어요? 아깝지 않나.

여자 엄마가 꼭 모두한테 대접하고 싶어했거든요. 근데 저는 그때… 토할 것 같았어요. 다들 나만 불쌍하게 보고, 이제 혼자 밥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살아야 한다고….

여자는 남자의 품 안에 고개를 묻고 흐느껴 운다. 그러나 울다가 속이 메이는 듯 헛구역질을 한다.

여자 토할 것 같아요.

(사이)

여자 혼자라서 힘도 아는 것도 없으니까, 사람들은 다들 불쌍하게만 보고.

남자 누구는 돈도 없어 혼자 모텔 사는데….

여자 여기 사는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자 그럼?

여자 항상 옆집 사람이 바뀌잖아요. 내가 혼자 사는 걸 아무도 몰라요.

  남자는 객석을 바라본다. 여자, 일어나 종이컵을 든다. 물을 뜨러 화장실로 향하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여자는 놀라 뒷걸음질 친다.

남자 누구예요?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남자를 방 어딘가에 숨겨보려고 하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다. 남자는 문 뒤편에 숨어있고 여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마찰음이 들리고 등장하는 모텔 주인.

주인 아가씨.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여자 갑자기 무슨 일로….

여자 아….

주인 다 좋은데, 이건 아니지.

여자 쓰레기 잘 버릴게요. 환기도 잘하고요.

  주인은 여자의 어깨를 옆으로 밀고는 방 안으로 들어온다. 여자는 황급히 테이블을 가려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주인 (문 뒤를 가리키며) 두 명 맞지?

  문 뒤에 숨어 서 있던 남자가 벽에 기대 주저앉는다. 조용히 문이 닫히며 소리가 난다.

주인 혼자 산다고 해서 장기투숙 더 싸게 받았는데!

여자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주인 아까 내가 옆방 대실 끝나고 정리하면서 다 들었는데 뭘.

여자 대체 뭘요?

주인 데이트 어쩌고 얘기하는 거!

(사이)

  여자는 조용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를 붙잡아 일으켜 세운다.

여자 그쪽이 말 좀 해 봐요.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인 거.

주인 처음 봤는데 모텔에… 같이…?

남자 (두 손을 내저으며)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여자 그냥 밥만 먹으러 온 거예요.

  주인은 두 남녀를 번갈아보더니 팔짱을 낀다.

주인 다들 손만 잡고 들어오자고 해 놓고 할 거 다 하는 데가 여긴데 뭘 아니래?

여자, 남자 (서로 멀리 떨어지며) 진짜 아니에요.

주인 그래. 아니어도 알 바 아니지. 근데 아가씨는 규칙을 어겼어.

여자 모텔에 규칙이 어딨어요?

주인 여긴 내 모텔이야.

남자 잘 치워놓고 갈 거예요. 제가 나가면서 쓰레기 다 버릴 거고요.

주인 먹는 거 말고. 여기서 삼겹살 구워먹는 애들도 있었어.

여자 그럼 규칙이 대체 뭔데요…?

주인 인원 추가 금액 안 받는 모텔이 어딨어?

여자는 당황해 남자를 돌아본다. 남자는 주인을 바라보고, 주인은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잠깐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은 건데요?

주인 (팔짱을 끼며) 들어와서 앉아만 있다가 가도 방을 빌리는 건 똑같지!

여자 (주인의 팔에 매달리며)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 사이 남자는 조용히 방에서 나가려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주인, 여자의 노려봄에 다시 문을 닫는다.

주인 월세에서 30분의 1만 더 받아야겠어.

여자 그럼 얼마를 더…?

주인 2만 5000원만 더 받을게 아가씨.

여자 30분의 1에다가, 2만 5000원까지 더하면 그냥 하루치 숙박인데….

남자 사장님, 그럼 반이라도, 저 자정 넘어서 들어왔어요.

주인 자정 넘으면 대실도 안 돼. 무조건 숙박이야.

(사이)

여자 우리 반반씩 내기로 해요 그럼.

남자 나요?

여자 네. 그쪽이 있어서 더 내는 거잖아요.

남자 아니, 당신이 사는 데인데 내가 왜?

여자 그쪽이 있으니까 내가 걸린 거죠.

남자 애초에 모텔이 아니라 다른 데서 살면 이런 일도 없었지.

여자 좋단다고 따라 온 그쪽이 할 말도 아니죠.

  주인, 짝다리를 짚고 다리를 떨다가 여자 뒤편으로 보이는 음식들을 흘겨본다. 여자는 두 팔로 가리려 애쓰다가 자신의 지갑을 연다. 2만 5000원을 주인에게 건넨다. 주인은 돈을 확인하고, 냄새가 난다는 듯 두 손을 휘젓는다.

여자 음식도 안 먹을게요. 먹은 건 한 번이에요.

주인 아가씨. 먹고 싶으면 먹어요. 사람이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 거지. 너무 야박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자 다 배부르자고 이러는 거잖아요.

주인 그래요들. 총각은 내일까지 있겠다고 하면 두 배 되는 건 알지?

주인, 문 밖으로 퇴장한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남자는 고개를 쭉 내밀고는 중얼거린다.

남자 저렇게 배불리 살면 손가락질이나 당하지, 인정머리 없는 인간!

그때 주인 다시 들어와 인사한다. 남자는 놀라 자리에 주저앉는다.

주인 아, 아가씨 화장실에서 토하는 건 괜찮은데, 위층에서 냄새 올라온다고 전화 왔어. 이따가 락스 좀 부어 둬.

  주인, 다시 퇴장한다. 남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한다. 어느새 침대에 앉아있다.

남자 놀라서 체하겠다.

여자 아까 2만 5000원이었으니까, 그냥 만 원만 줘요.

남자 만 원?

여자 원래는 만 2500원인데 만 원만 받을게요.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니, 먼저 같이 더 먹자고 한 건 당신 아닌가?

여자 그쪽만 아니었어도 난 문제 없이 여기서 잘 살아요.

남자 아까 낸 돈도 처음부터 내가 준 거였는데?

여자 준 게 아니라 나한테 산 거죠 정확히 말하면.

남자 겨우 만 원 가지고 구차하게 이래요?

여자, 지끈거린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여자 그 만 원 없어서 우리가 이러고 사는 거 아닌가요?

남자 우리라뇨. 저는 달방 살지는 않아요.

여자 솔직히 말할게요.

남자 뭘?

(사이)

여자 솔직히. 뷔페에서 남은 음식 싸가는 사람 우리 말고 본 적 있어요?

  여자와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다가 객석을 바라본다.

여자 (객석을 향해) 있어요? 당신도 아까 싸갔잖아요. 당신은 집에서 먹을 거라면서….

남자 남들은 우리한테 관심도 없다니까.

여자 정말 모를 것 같아요? 우리가 몰래 음식 담는 걸.

남자 알아도 모른척 하는 게 사람이죠. 정말 모를 수도 있고.

여자 아니요. 사실,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할 거예요.

남자 무슨?

여자 아, 이거 집에 싸가고 싶다 하는 걸. 어쩌면 다들 우리가 몰래 음식 싸 오는 용기가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그래봤자 사실 관심도 없겠지만.

  여자,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남자 배 안불러요?

여자 뷔페는 배 부르자고 가는 곳인데, 왜…?

남자 아직도?

여자 왜 계속 배가 고프죠?

남자 생각보다 고프게 살아요 다들. 다만 남이 뭐가 고픈지 관심이 없는 거지.

  여자,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먹는다. 남자는 옆에서 그런 여자의 행동을 제지한다.

여자 토할 것 같아요. 근데 계속 배가 고파서….

  남자,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남자 나도 고픈 게 있어요. 여자랑 데이트나, 손 잡아 보는 거나, 스킨십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죽을 때는 누가 꼭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여자 죽을 때… 누군가 같이 있어준다는 건, 축복인 것 같긴 해요. 근데 저는… 그쪽 여기 데려온 거,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남자 알아요. 그냥 밥만 먹자는 거. 손만 잡고 뭘 하자 이런 것도 아닌 거.

여자 한 번도?

남자 한 번도. 솔직히 기대는 좀 했어요.

여자 미안해요. 아니 미안할 건 아니지만….

남자 마저 먹어요. 그리고 아까 만 원, 그건 제가 줄게요.

여자 됐어요.

  남자, 자신의 외투를 향해 일어난다.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돈을 꺼낸다. 전부 천 원짜리다.

남자 이게 다예요.

  남자, 여자에게 돈을 건네보지만 여자는 받지 않는다.

여자 이거 다 해도 만 원 안 될 텐데.

남자 그나마 이뿐이라.

여자 뷔페 식사권 팔았던 거, 그걸로 냈어요.

남자 받아요.

여자 이것밖에 없는데 왜 꼭 뷔페를 갔어요?

남자 언젠가라도 여자 만나면, 좋은 데서 밥 먹을 테니까 연습하려고.

  여자, 남자가 건넨 돈을 받는다. 가만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여자 토할 것 같아요.

남자 그만큼 먹었으니….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남자는 따라가 문 앞에 서 있는다. 곧 여자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이번엔 음악을 트는 대신 적나라한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문을 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등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 (음성만) 괜찮아요?

여자 (음성만) 익숙해요.

  구토 소리가 멎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둘. 여자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살짝 매만지고 있다. 여자는 습관적으로 테이블 위 음식을 하나 집어먹고는 침대에 눕는다.

여자 (작게 중얼거리며) 습관이에요. 먹는 것도.

남자 모르는 사람 데려다 놓고 밥 먹는 것도?

여자 어지러워요.

남자 좀 자요 차라리. 난 갈 테니까.

여자 이제야 좀 배가 부르는 것 같아요.

  남자, 조용히 여자의 등을 두드려준다.

여자 차 끊겼을 텐데. 집이 어디라고 했죠?

남자 의정부. 첫차 두 시간 남았어요.

여자 자고 가요. 잠만.

남자 됐어요. 그쪽 자면 갈 거예요. 여자랑 모텔은 처음 와 보네, 그래도.

여자 우리 이제 안 볼 사이인데.

남자 알아요.

여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여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인다.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넣는다.

남자 화장실 가서 토해요.

여자 체한 것 같아, 숨이….

  남자, 여자의 등을 두드리지만 소용이 없다. 여자는 계속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여자 헉, 숨이 헉.

  남자, 여자의 허리를 두 팔로 붙잡고 꽉 끌어안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남자 지금도?

  여자는 남자의 손을 제지하고 바닥에 넘어진다.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토하려해 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고통에 찬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모텔 옆 방에서 시끄럽다는 듯 벽을 두드리기도 한다. 남자는 기어이 여자를 들기까지 하고 여자는 구토한다.

남자 괜찮아요?

  여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말없이 울기 시작한다.

남자 치우면 돼요. 죽을뻔 했다고요 방금!

  계속 들려오는 여자 울음소리. 자신의 어깨와 등을 두드리는 남자의 손을 붙잡는 여자.

  막.


 

 

  <당선소감>

 

   채워지지 않은 고픔의 이야기 쓰고 싶어

  문득 끼니를 해결하던 중, 먹을수록 공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감정은 혼자 무언가를 할 때 다가오고는 합니다. 그렇게 바로 연필을 들었습니다.

  육체적 포만감이 충족됨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고픔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제게는 이 고픔이 정신적 허기이자 외로움이었습니다.

  상처 받지 않으려 사람에게 겁을 먹었고, 현실이 두려워 글쓰기를 미뤘었습니다. 그런 제게 언제나 손을 건네 일으켜 준 건 늘 사람들이었고, 결국 삶은 ‘그럼에도’와 ‘같이’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 문학은 우리가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상기시키고는 합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만을 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프지 않은 길을 선택하려 합니다. 여전히 많이 남은 배움에 겁먹지 않도록 손을 건네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김남석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겠다는 오기 하나만을 가지고 있던 저를 참 다정히도 키워 주신 문예창작과 전성희 교수님을 비롯해 이경교 한혜경 이병일 교수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제 편에서 묵묵히 믿어 주던 많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도 기쁜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에게 꼭 따뜻한 밥 한 끼 사겠습니다. 몸 가까워져도 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 식사나 같이 합시다.

● 1997년 인천 출생
●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전공심화과정 재학 중


 

  <심사평>

 

  

  ‘닫힌 공간’의 여운과 울음 강하게 남아

  올해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분은 매우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작년 50여 편 수준이었던 응모작 수가 이번에는 100편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가는 그 자체로 기쁘고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작품 수의 증가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무관하지 않고, 깊어 가는 외로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냥 편하지 않은 기분인 것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응모 작품이 내보이는 두드러진 특징은 ‘갇힌 공간’이었다. 희곡과 시나리오는 장르 특성상 공간적 배경을 명시해야 하지만, 이번 응모작들처럼 노골적으로 감옥, 요양원, 골방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를 흔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비해서도 그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는데, 무엇보다 그러한 공간에 갇힌 인물들이 꿈꾸는 세계의 모습이 침울한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외로워하고 있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깊게 따지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당선작 역시 모텔을 혼자만의 공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달방’으로 명명된 공간에는 혼자 살고 혼자 먹고 거의 외출하지 않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여인은 한 남자를 동반했는데, 상스럽지 않고 가볍지 않은 이 동반이 우리 마음속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저릿하게 일러주고 있다. 현실의 의미와 규칙을 함부로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이면을 보려 했던 극작술은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만들었다. ‘우리 동네 마지막 만화방의 마지막 일주일’이나 ‘여름 맞선’도 수상에 육박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정의 달방’에서의 여운과 울음이 더욱 강하게 남았기에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이 수상이 어둠 같은 방에서 더 환한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전해 본다.

심사위원 : 김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