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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주보는 집 / 신영은

 

등장인물
남자 ---- 히키코모리
여자 ---- 취업준비생
엄마
여동생
센터 직원
때 = 현재

#1

<어둠 속에서 타자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어렴풋이 조명이 들어온다. 한 남자가 보인다. 컴퓨터를 하고 있다. 잠시 그런 그의 모습이 보인다.>

남자=(컴퓨터를 보며) 내가 보는 사이트에는 나보다 휠씬 오래 방에 틀어박힌 사람들이 많이 있다. 10년, 15년. 아직 5년도 채 되지 않은 나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들은 다들 다른 사람을 두려워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듣기 싫었고 모습도 보기 싫었다. 이 사이트를 보고 있으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더 많은 글들을 읽다 보면 무서워진다. 그런데도 글들을 자꾸 보는 건 나에게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주는 거다.

<이때 여자의 알람이 울린다. 어렴풋이 여자의 방이 드러난다.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둔 마주보는 두 집에 그들의 방이 있다.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 여자 알람을 끈다.>

남자=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여자의 알람이 다시 울린다. 힘겹게 일어난다. 아래 남자의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자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책상 위 거울로 얼굴을 확인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핸드폰과 가방을 챙긴다.>

남자=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냄새마저 싫어하게 된다고 한다. 사진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도 두려워지는 거다. 그래서 애니메이션만 볼 수 있고 잡지도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이 나오는 페이지는 가족에게 부탁해서 미리 잘라낸 다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지경에 다다르면 끝이다. 그래서 며칠 전 창문을 막아둔 종이에 구멍을 냈다. 아주 작은 구멍. 사람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사람이 무서워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트에서도 그랬다. 다시 밖을 나가려면 작은 것부터 해나가면 된다고. 자꾸 실패하겠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나 역시도 아직은 실패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많다.

<어느덧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남자는 이내 마음이 동했는지 일어나서 창문 구멍으로 간다. 잠깐 내다보지만 금방 눈을 뗀다. 심장이 쿵쾅댄다. 그래도 아무도 없음에 숨을 고르고 다시 용기를 내서 밖을 본다. 아까보다 괜찮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여자가 집에서 나온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눈을 뗀다. 여자는 기지개를 펴고 길을 나선다. 남자가 다시 봤을 때는 이미 여자는 없다. 구멍에서 눈을 뗀 남자는 책상 위 달력을 확인한다.>

남자=방에 숨은 지 4년 5개월 17일째.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을 봤다.

<이때 남자의 방 노크 소리. 남자의 얼굴이 사나워진다.>

엄마=자니?

남자=…….

엄마=엄마 오늘 지방 가야 해서 일찍 나가.

남자=어쩌라고!!!

엄마=…. 제육볶음이랑 미역국 끓여놨어. 냉장고에 있으니까 챙겨 먹으라고. 아빠도 오늘 일찍 나가신다니까 일찍 챙겨 먹어둬.

남자=쪽지로 하라고 했잖아. 말 시키지 말라고!!!(사납게 바닥에서 집히는 물건을 문에 던진다)

엄마=알았어. 요새는 왜 안 내려와. 아빠 안 계실 때도.

남자=…….

엄마=얼굴 본 게 언제야…. 응?

남자=…….

엄마=다녀올게… 밥 먹어.

<남자 한 번 더 물건을 던진다. 씩씩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얼굴까지 이불을 덮는다.>

#2

<남자는 자고 있고 여자는 집에 들어가는 길이다.>

여자=월요일부터 금요일 5시에 일어나서 6시부터 11시까지 사무실 청소. 시급 1만원에 시작해서 지금은 1만400원이 됐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랑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직장인들을 봐야 하는 괴로움만 뺀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이런 아침 알바는 돈도 벌면서 하루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귀하다. 점심은 먹지 않는다. 1시부터 듣는 학원 수업 때 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2끼를 먹기에는 생활비가 부족하다. 자판기 커피 2잔이면 당도 안 떨어지고 버틸 만하다. 6시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와 저녁을 먹고 8시부터 12시까지 인터넷 강의를 듣고, 끝없이 검색을 하고, 자소서를 쓰고, 이력서를 쓰고 보낸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지난 5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해낸 게 없지만….

<잠시>

여자=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여자, 집으로 들어간다. 모자를 벗고 씻으러 들어간다. 잠시 후, 남자가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씻고 나온 여자는 삼각 김밥을 들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편다. 삼각 김밥을 먹으며 열심히 강의를 듣는다. 남자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간다. 잠시 후 제육볶음과 밥, 그리고 생수 한 통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컴퓨터 앞으로 가 밥을 먹으며 컴퓨터를 한다. 강의가 끝난 여자는 기지개를 편다. 책상 앞 창문을 연다. 바람이 불자 여자 창문 앞에 걸려 있던 ‘풍경'이 작은 소리를 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리에 풍경 소리가 퍼진다. 여자는 가만히 풍경을 본다.

컴퓨터를 하던 남자도 이 소리를 듣는다. 남자는 궁금하다. 망설이다가 창문에 낸 구멍을 한 번 본다. 힘겹다. 밖을 본다. 여자의 창문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본다. 그는 이내 눈을 떼지만, 다시금 보고 싶다. 다시 밖을 내다보지만 곧 다시 눈을 뗀다. ‘풍경' 소리 여전히 들려오고 깊은 밤을 가득 채운다.>

#3

<여자는 이제 ‘지선'이다. 지선은 매우 자신감 넘치고, 명랑한 인물이다. 지선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남자는 과거 대학을 다닐 때다.>

지선=선배님!

남자=네?

지선=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사회와 성생활' 교양 같이 듣고 있는데…

남자=네…. 우리 같은 과예요?

지선=아니요. 저 신문방송학과요.

남자=아….

지선=오늘 수업 휴강인 거 문자 받으셨어요?

남자=네… 받았어요.

지선=저 2학년이에요. 그냥 편하게 말하셔도 돼요.

남자=아…. 아…. 네….

지선=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콩쥐네' 가서 돈까스 안 드실래요?

남자=네?

지선=돈까스 싫어해요?

남자=아….

지선=돈까스 싫어하는 남자 없던데?

남자=…. 안 싫어해요.

지선=그럼 가요. 점심 먹어야 되잖아요. 같이 먹어요.

<지선 먼저 길을 나선다.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간다. 잠시 후, 남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장미꽃을 하나 들고 등장한다.>

남자=(쉼 호흡을 하며) 지선아, 오늘은 내가 정말 할 말이 있는데…. ‘지선아, 나 널…' 아냐. 다시 다시. ‘너 누구 좋아하는 사람 있니?' 하~ 할 수 있을까?

<이때 지선이 통화하며 등장한다. 남자는 당황해 몸을 숨긴다.>

지선=내가 남자랑 있는 거 봤다고? 아, 진짜 웃겨. 그거 질투지?/ 아니, 그 교수님 타인하고 친해지면서 그 과정을 상세히 분석해서 리포트 제출하는 거. 그걸로 중간고사 대체한대./ 야, 복학생만큼 접근하기 쉬운 존재가 어딨냐? 며칠 보니까 혼자 다니더라고, 완전 딱이지. / 맞아. 한 번도 거절을 안 하더라. 좀 미안해. 뭐 이상한 착각 하는 거 아니겠지? (웃음) 아 몰라 몰라. 창희 선배가 미리 하라고. 그 과제 발표 나면 여기저기서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걸어서 성공할 확률이 확 떨어진대. 그래서 난 그 수업 듣자마자 복학생 하나 물었지. 나 성적 잘 나와야 돼./ 안 돼, 이따 창희 선배가 데리러 온대. 몰라- 암튼 끊어. 나 그 복학생 만나야 돼. 오늘 웬일로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 하더라고. 응. 으- 제발. 알았어. 이따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지선은 남자를 기다린다. 통화를 들은 남자는 조용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다시 현재, 남자의 방.>

남자=(컴퓨터를 하고 있다) 아마 뭐 그딴 일 때문에 방 안에 틀어박혔냐고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도 시작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 직장 상사가 나만 놓고 팀원들과 회식을 갔다거나, 가족이 내 생일만 깜박했다거나 그런 일들을 당한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넘기려고 한다. 그런데 점차 그게 한 명이 아니라 다수가 되면 어쩌나, 아니 이미 다수가 그러고 있는 걸 나만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서워진다. 나랑 마주하고 있는 저 사람이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게 견딜 수 없게 무서워지면, 방에서 나가기 힘들어지고, 그렇게 이 사이트만 보고 있게 되는 거다. 이제 와서 특별히 그 여자애를 원망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왜 더 많은 사람들처럼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지 못했는가를 원망하는 거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원망하는 건 좋지 않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토닥여줘야 치유되고 방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토닥이고 안아준다.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이때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의 전화 벨 소리.>

여자=여보세요- 집. 왜- 뭐?!!! 어, 어디를? 얼마나? 그래서 지금 병원이야? 아니, 그걸 공장에서 왜 혼자 해?… 수술? 수술비는 얼마나 나온대? 하… 아빠가 무슨 돈이 있어. 고모한테 또 어떻게 돈을 빌려. 말도 꺼내지 마!… 하고 있어요. 적당히? 아니, 내가 고르긴 뭘 골라! 요즘 취직하는 게… 아. 그만해요. 알았어. 알바랑 학원 있는데 거길 어떻게 가… 수술 잘 받고. 응… 암튼 돈 보내고 연락할게. (끊는다)

<남자는 여자의 통화를 듣게 됐다. 여자는 핸드폰으로 은행 잔고를 확인한다. 한숨. 잠시 후, 전화를 건다.>

여자=밤늦게 죄송해요. 네 / 저 혹시 알바 한 타임 더 할 수 있을까요? 야간요? / 아… 12시에 끝나요? / 아… 거기 회사 위치가 어딘데요? / 아… 30분만 일찍 끝나면 막차 탈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렇게는 어렵죠? / 네… 아니, 상황이 좀 급해서요. 그건 아니고….

<여자의 통화는 계속 되고, 가만히 자기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남자도 다시 컴퓨터를 한다.>

#4

<알람 소리. 남자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창문에 난 구멍을 본다.>

남자=앞집 사람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정확하게 15분 뒤 항상 같은 모자를 쓰고 어딘가로 간다. 직장을 가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이렇게 일찍부터 어딜 갈까? 나는 앞집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잠이 든다. 나는 앞집 사람의 창문에 달린 소리 나는 물건이 ‘풍경'이라는 걸 알아냈다. ‘풍경' 왠지 입에서 바람 소리가 나는 거 같다.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앞집 사람은 저녁 7시에 돌아온다. 더 늦는 법이 없다. 집에 들어가서도 줄곧 책상에서 뭔가를 하다 12시 잠자리에 든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밖에서 뭘 하는 걸까? 취직 준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주변에서는 다들 취직 이야기뿐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지만. 취직 준비라면, 과연 어떤 준비를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잠시) 이상하다? 5시가 넘었는데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남자는 시간을 확인하며 창 밖을 자꾸만 본다. 잠시 후,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온다. 평소와 다르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남자=어!

<남자, 자기 목소리에 놀란다. 여자, 발끝부터 천천히 자기를 둘러보며 컨디션을 확인한다. 한 걸음 내딛기 전에 기도를 한다.>

여자=하나님 아버지, 제발 제발 제가 떨지 않고, 준비한 답변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심사위원이 저를 좋게 봐주시게 그의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저 제발 이번에는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계약직이라도 좋습니다. 정말 너무 일하고 싶어요. 정말 너무 엄청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제발요. 아멘.

<여자, 걸어간다. 남자, 그 모습을 본다. 창에서 눈을 떼고도 왠지 긴장되고 설레는 거 같다. 다시 컴퓨터를 하려던 남자는 새삼 지저분한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5

<여자가 골목에 나타나면 갑자기 남자가 뛰어나와 여자에게 꽃가루를 날리고 우렁찬 박수 소리와 환호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관객들을 향해 우아하게 손을 흔든다. 여자와 남자의 말투와 행동은 과장됐다.>

여자=감사합니다. 다들 너무 감사해요. 제가 드디어, 5년간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취업'이라는 햇살을 한껏 맞이했습니다.

<여자는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훌쩍거리고, 남자는 멋지게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넨다.>

여자=(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쉽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남자=어떤 점이 가장 힘겨우셨나요?

여자=외톨인 거?

남자=외톨이요?

여자=네. 친구들은 취직하고 결혼하는데… 저 혼자 남아 알바와 이력서 쓰기로 버텨내던 날들이었습니다.

남자=그래도 친구는 만날 수 있잖아요? 친구는 그런 걸 다 뛰어넘는 존재 아닌가요?

여자=저도 그런 줄 알았죠. 참 순진했죠.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지면 할 이야기가 없거든요. 그러면 불편해지죠. 친구도 할 이야기가 있어야하고 비슷하게 지갑을 열 수 있어야 하거든요.

남자=그래도 가족들이 있잖아요?

여자=‘일은? 취업은? 올해는 하는 거지?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해야 하지 않겠니?' 이런 질문밖에 할 게 없으면 가족도 불편해져요. 그런 거 잘 모르시는구나?

남자=데헷~ 네. 저는 잘.
 
여자=나도 내가 불안하고 걱정되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한마디 씩 더 붙이면 진짜 버티기 힘들 거든요. 안 그래도 겨우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든 버티려고 나 혼자 있던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어요.
 
남자=이제 그만 우세요. 보세요. 저 취업의 햇살을.
 
여자=(눈부신 듯 눈을 찌푸린다) 그러게요. 정말 감격스러운 날이네요.

남자=자,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요?

여자=(자신의 목을 만지며) 제 목에 사원증을 걸고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복도를 걷고 싶어요.

남자=자, 가고 싶은 만큼 걸어가세요. 아, 저희한테 마지막 인사는 잊지 마시고요.

여자=(우아하게 모두를 바라보며) 오로지 혼자 버티던 시간을 지나 이제 저는 직장인의 길로 나아갑니다. (다시 한 번 손을 흔들며) 다들 정말 감사해요. 맘껏 또각 구두를 신고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다시 여자에게 꽃가루를 날려주고 퇴장한다. 혼자 남은 여자. 술에 취한 여자는 맥주를 들고 신나게 비틀거리며 집으로 간다. 남자는 방에서 그런 여자를 보고 있다. 이내 여자의 창문이 열리고, 맥주를 마신다. 손으로 ‘풍경’을 건드려 소리를 내본다. 여자는 핸드폰을 꺼낸다.>

여자=아빠, 자지? / 나 취직했어. 월요일부터 출근하래. 그동안 걱정 많았지? / 아빠. 병원비랑 생활비 너무 걱정마요. 이제 내가 월급도 받을거고 직장인이니까 대출도 될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치료 잘 받아요. / 병원도 못가보고 미안해 / 앞으로 내가 잘 할게요. 잘 자요. 걱정없이 푹.

<여자는 유독 맛있게 맥주를 마신다. 그런 여자는 보고 남자 방에 있던 생수를 들고 여자를 향해 건배를 한다.>

남자=…. 축…. 축하.

<남자도 맛있게 생수를 마신다. 잠시 후, 노크소리. 남자 문을 향해 던질 뭔가를 집어든다.>

여동생=오빠?

남자=왜!!

여동생=기억해? 우리 중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있던 ‘곰돌이 빵집’. 오빠 그 집 크림빵 좋아하잖아? 오늘 일 있어서 그쪽 갔다가 사왔는데… 잠깐 내려올래?

남자=…

여동생=아빠 늦는다는데. 응?

남자=…

여동생=싫으면 그냥 올려다 줄게….

<잠시. 남자, 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고 나간다.>

#6

<이 장면에서 남자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을 따라서 등장하는 여자.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있다. 걸을 때 마다 들리는 또각 소리.>  

직장인=윤소정 씨죠?

여자=네! 윤소정입니다!

직장인=아… 진짜 난처하네.

여자=?

직장인=윤소정 씨, 너무 미안해요. 우리 직원이 실수를 해서 합격 연락을 잘 못 드렸어요.

여자=네? 그게 무슨….

직장인=동명이인이 있었는데 그 직원이 생년월일을 확인 안하고 그냥 이름만 보고 연락을 한 거 같아요. 아니, 연락을 했지.

여자=…

직장인=5월생이죠?

여자=…네

직장인=우리가 뽑은 사람은 12월생 윤소정 씨거든요. 동명이인이 있는 경우가 우리도 처음이여 가지고 거기까지 신경 쓰지를 못했어요. 아, 진짜 미안해요.

여자=네….

직장인=우리 회사 규모도 작고, 보다시피 쪼끔한 회사잖아요. 그러니까 이해 좀 해줘요. 더 좋은 데 취직할 거예요. 그냥 액땜했다 쳐요. 알았죠?

여자=(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직장인=응응. 좋다. 너무 기운 빠지지 말고 또 힘차게! 오케이? 그럼 조심해서 가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서 건내며) 오늘 오느라 수고했어요. 약소하게 교통비 정도 넣었어요.

여자=아, 아닙니다.

직장인=에에- 우리도 이래야 맘 편하니까. 응? (여자 손에 쥐어주고) 그럼 조심히 가요. 파이팅.

<직장인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혼자 남은 여자. 손에 남은 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7

<골목에 서있는 여자. 여전히 손에 들린 봉투를 본다. 주저앉는다.>

여자=막막하다.

<여자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운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남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흥분 한 듯, 울고 있는 듯. 잠시 후, 노크소리. 남자의 흐느낌 멈춘다.>

엄마=병원에 갔어. 일단 아빠가 같이 갔어.

남자=…

엄마=너무 걱정마. 구급대원도 찢어져서 피가 났으니 오히려 괜찮은 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했어.

남자=…

엄마=듣고 있지?

남자=…

엄마=너도 많이 놀랐지?

<남자, 덮고 있던 이불을 내린다.>

엄마=엄마는 잘 모르지만...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해. 사람 마음이라는게 쌓이기만 하다보면…. 너무 걱정마.

<엄마,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엄마=지윤이 괜찮을 거야.

<남자, 문으로 다가간다.>

남자=엄마.

엄마=어…. 어?

남자=그러려고… 그랬던 거… 아니야. 지윤이가 걱정해서 그런 말 한 것도 알아. 근데 모르겠어. 그냥 그 순간 내 속에서 뭔가 확하고 터지는 거 같았어. 그래서… 그래서 내가…. 지윤이를 밀친거야. 지윤이를 미워하거나, 지윤이한테 화가 나서가 아니라….

엄마=응.

남자=…나한테 화가 나서 그랬어…

엄마=…응…

남자=지금까지도 나한테 화가 나서 그랬나봐. 이렇게 밖에도 못 나가고… 미안해, 엄마

엄마=응?!

남자=미안해…. 엄마한테도, 지윤이한테도, 아빠한테도….

엄마=…

남자=…

엄마=지석아. 엄마랑 지윤이랑 아빠는 괜찮아.

남자=…

엄마=…그냥 우린…. 너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남자=…아빠한테 전화오면 지윤이 어떤지 꼭 알려줘.

엄마=응. 알았어.

<남자는 꼼짝 않고 문 앞에 있다. 남자의 손에 아직 여동생을 밀쳤던 감각이 남아있는 듯, 그는 자신의 양 손을 본다. 조명이 어두워진다. 다시 조명이 들어왔을 때, 남자는 이불에만 누워있다. 여자는 이불에만 누워있다. 잠시 후, 조명이 다시 어두워지고, 다시 들어오고,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되지만 그들은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고, 노크 소리가 들린다.>

여동생=오빠.

<남자가 이불에서 나온다.>

#8

남자=앞집 여자가 집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얼마나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도 며칠을 내다보지 않았으니. 지윤이가 퇴원을 했지만 얼굴을 보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로는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어제 신문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하루 종일 신문을 읽었다. (컴퓨터로 신문을 읽는다. 잠시) ‘청년 고독사’ 나는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젊은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쓸쓸하게 죽는 거라고 한다. 사이트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많이 일어났을 법한 일인데…. 하긴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사이트에 글을 쓸 수 없으니 내가 읽어보지 못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남자는 창문으로 가 구멍을 내다본다. 여전히 앞집 여자의 창문이 닫혀있다. 남자는 다시 컴퓨터를 한다.>

남자=그렇게 죽은 이들의 방에는 많은 이력서, 가벼운 통장, 많은 약, 벽을 가득 채운 할 수 있다는 메모, 그런 것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왜 혼자가 되었을까? 나는 스스로 혼자가 되기 위해 방문을 닫았지만, 끊임없이 이력서를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열심이었던 그들은 왜 혼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

<남자는 잠시 생각 후, 창문을 다시 보고, 달력을 보며 날짜를 따져본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인터넷을 검색 해 번호를 하나 찾는다. 핸드폰에 누른다. 남자는 몇 번을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센터=은평4동 주민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

센터=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여보세요

남자=…저…

센터=네, 말씀하세요.

남자=저…. 그….

센터=네.

남자=사람이 안 보여서요.

센터=네?

남자=그게…. 사람이 집에서 안 나오는 거 같아서요.

센터=집에서요? 며칠이나요?

남자=아…. 3주 넘었을 거 같아요.

센터=3주요? 근데 왜 이제 전화를 하셨어요?

남자=네?

센터=아니, 혹시 집 안에서 뭐 생활 반응 같은 것도 전혀 없나요? 불이 켜진다거나, 뭐 소리가 난다거다.

남자=전기 불도 안 켜는 거 같고, 창문도 안 열려요.

센터=그 집에는 가보셨어요?

남자=제가요?

센터=네

남자=아, 아니요.

센터=아…. 혹시 주소가 어떻게 되죠?

남자=네?!! 저희 집이요?!

센터=아니요, 그 분 집이요. 집에서 안 나오시는 거 같다는.…

남자=아….

센터=주소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한 번 방문을 해볼게요.

남자=그게….

센터=네.

남자=….

센터=근데 지금 전화 하시는 분은 누구시죠? 어떤 관계세요?

<남자,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린다.>

#9

<남자는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를 입고, 검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쓴다. 창 밖을 한 번 살펴보고, 결심했다는 듯 책상에 있는 택배상자를 든다. 방문을 열고 나간다. 남자는 골목으로 나왔다.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남자는 골목을 건너 여자의 집 앞에 선다. 창문을 올려 본다.>

남자=아-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골목에 퍼지는 것이 어색하다. 잠시 망설이지만 다시 소리를 내기로 결심한다. 작은 기침으로 목을 풀어본다. 그는 여자의 창문을 다시 한 번 올려보고 찾아봤던 수많은 기사들을 떠올린다. 시간이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두드린다. 고요한 골목에 노크소리가 퍼진다. 답이 없다. 몇 번을 더 해보지만 아무 답이 없다.>

남자=(작은 소리로 기어가듯 겨우 소리를 내지만 이는 점차 커진다) 저…저기…누구 안계세요?. 저… 저기…. 저기요! 여보세요? 누구… 누구 없어요? (노크를 한다) 거기 누구 없어요? 저기요!!!! 거기 누구 없냐고요!!!!

<어느새 그는 울먹이며 외치고 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린다. 초췌해진 얼굴에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여자다.>

여자=…있어요. 여기 있어요.

남자=!!!!

여자=뭐예요?

남자=네?!!!

여자=누구시냐고요.

남자=아…!!!! 택! 택배!! 택배예요.

여자=뭐 산 거 없는데.

남자=그래도 택배요, 택배!!

<남자는 급하게 여자에게 상자를 주고 달려간다.>

여자=저기요! 저기요!!

<남자의 모습이 이내 보이지 않는다.>

여자=뭐지?  

<상자에 붙은 쪽지를 본다.>

여자=아자,아자? (남자가 달려간 쪽을 향해) 저기요!!!

<남자가 달려간 쪽을 잠시 보고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 불을 켠다. 처음 남자의 방 만큼이나 더러워져있다. 컵라면, 휴지, 삼각김밥 포장지 등이 이불 주의에 널려있다. 이불이 깔린 옆에 책상 의자이 놓여있고 의자 위에 노끈이 보인다. 여자는 그런 자신의 방을 본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그리고 책상으로 가 상자에 붙은 쪽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본다. ‘풍경’이 하나 들어있다.>

여자=아자, 아자.

<고개를 돌려 의자와 그 위의 끈을 본다. 여자 주저앉는다.>

#10

남자=괜한 짓을 했다. 역시나 걱정한 대로였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그렇게 어설프게 뭔가를 주는 건 기분이 나쁘고 불쾌한 게 당연한 일이다. 왜 그랬지?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생각할수록 멍청한 짓이다. 사이트에 글을 올리니 집을 나간 시도는 좋았지만 모르는 여자에게 뭔가를 준 건 잘못한 일이라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나는 그냥 응원을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3일 째, 창문은 열리지도, 풍경은 걸리지도, 밖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우리처럼 방 안에 숨기로 결심을 한 걸까? 

<남자는 이불 위에 눕는다. 원래대로 깨끗이 정리된 여자의 방이 보인다. 나갈 준비를 하던 여자가 전화를 건다.>

여자=안녕하세요. 오늘 알바 면접 보기로 했던 사람인데요 아침에 전화 달라고 하셔서요. / 네. / 아, 거기 알아요. / 1시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어요. / 아닙니다. /네네~. / 그럼 이 따 뵐게요. 네.

<전화를 끊고 나간다. 골목에 나온 여자는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다 이내 길을 나선다. 남자는 그저 멍하니 누워있다. 이때, 소리가 들린다. ‘풍경’소리다. 소리를 들은 남자는 이불에서 나와 창문으로 간다. 구멍을 내다본다. 여자의 창문이 열려 있다. 나란히 걸린 두 개의 풍경에 종이가 매달려 있다. 남자, 그 종이를 본다. 그리고 남자는 옷을 갈아입는다.>

#11

<이전과 동일한 옷차림으로 남자가 나왔다. 쉽지 않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여자의 방 창문을 본다. 두 개의 풍경에 매달린 제법 큰 종이…. ‘고맙습니다’‘당신도, 아자 아자’ 남자, 그 종이를 한 없이 본다. 풍경 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12

<알람 소리. 여자가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모자를 쓰고 나갈 준비를 한다. 알람 소리. 남자가 일어난다. 방은 비교적 깨끗해졌고,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놨다. 여자는 골목으로 나온다. 습관처럼 골목을 둘러본다. 시간을 확인하고 길을 나선다. 방을 치우던 남자는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간다. 잠시 고민하지만 창문에 붙어있던 두꺼운 검은 종이를 떼어낸다. 창문을 열어볼까 하지만 거기까지는 무리다. 남자는 청소를 계속 한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좀 더 힘내라는 응원의 선물 참으로 기뻐

  기쁩니다. 참으로 기쁩니다. 이토록 순순하게 ‘기쁘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것이 생소할 정도로 말이죠.

  언제나 제 주변에서 작디 작은 힌트를 만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금 그 일들이 일어날까 항상 두렵지만, 또 그 꿈 같은 과정을 기도하며 주변을 둘러보곤 합니다. 아마도 그런 와중에 좀 더 힘내서, 좀 더 가보라는 응원으로 이런 선물이 주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부족하지만, 좋은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그것을 지켜봐주는 관객들이 있어 가득 찬 무대가 됩니다.

  이 이야기도 역시 그런 무대로 만들어질 것을 기다리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큰 응원의 손을 내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또 그 힘으로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쁜 나날일 겁니다.

● 인천 生 
● 연극 연출


 

  <심사평>

 

  

  공연예술로의 완성도 기대 갖기에 충분

  강원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아 예심을 통과한 20편의 작품을 심사했다. 개별 심의와 1차 토론을 거쳐 3편의 희곡을 최종 논의의 대상으로 했다. ‘마주 보는 집'과 ‘중간정원', ‘노래방에서'는 서사적 구조 속에서 사건을 평행적으로 삽입하면서도 공연성과 문학성 사이의 간극을 긍정적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마주 보는 집'의 경우 공연예술로서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무대의 특성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 작가는 기본 스토리에 상징성을 담아냄으로써 작품에 대한 의미를 제고시키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촘촘히 관찰해 나가는 필력과 공연성을 증명한 ‘마주 보는 집'을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 김혁수, 이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