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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폴리스라인 / 정병삼

 

황사 덮인 아파트 뜰어 몸을 던진 사내가
작업화를 신은 채 화단에 쓰러져 있다
선명한 폴리스라인
퇴근길을 적신다

가난한 별들이 칸칸마다 길을 잃는다
적막한 현관문은 사막의 입구였을까
매일 밤 모래언덕을
서성거린 발자국

먼지만 남기고 떠나는 사이렌 소리
붉은 스프레이가 죽음을 증언할 때
모두들 문을 닫고서
또 다시 뜰을 밟고


 

  <당선소감>

 

   다듬고 또 다듬으며…시조 텃밭 부지런히 일구겠다

  염화칼슘을 배부하다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을 안길이 결빙돼 민원이 쇄도하고 또 눈이 온다는 예보로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들은 당선 소식에 얼었던 고갯길이 녹는 듯 기쁘기만 했습니다.

  눈 덮인 들녘에 비둘기가 날아듭니다. 어릴 적 비둘기를 쫓아 밭고랑을 뛰어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딱히 사냥할 것도 아닌데 눈길에 미끄러지며 쫓아가곤 했습니다. 아마도 비둘기는 잡아야 하는 그 무엇 이상이었습니다. 놀다 지치면 비둘기 대신 연을 날렸습니다. 연과 팽팽한 싸움이, 지금 생각하니 시였습니다.

  학교 졸업 후 시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일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하던 때에 한적한 산골마을에서 시조를 가르치시는 조경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음보와 구에 맞춰 시를 전개해나가는 정형시가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지만 습작을 거듭하며 압축과 절제미에 매료돼갔습니다.

  한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시어를 다듬고 또 다듬으라는 채찍질 속에서 느리게나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시조의 기초부터 가르쳐주신 조경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올 한해 수확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한톨의 쌀이 나오기까지 김을 매고 거름을 제때 주었는지 벼 이삭의 목마름을 모른 채 지나가지 않았는지 반추해볼 때 많은 부분 부족함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시를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과 <농민신문> 관계자 여러분, 힘들 때마다 일으켜준 시란 동인에게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주말엔 집 앞 들녘을 걸어볼까 합니다. 추위와 바람을 뚫고 홀로 걸어가는 들녘과 동행하려고 합니다. 한편의 시를 수확하기 위해 제때 씨 뿌리고 기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 1968년 전남 나주 출생
● 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 2022년 8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 시조동인 시란 회원 
● 평택시청 근무


 

  <심사평>

 

  실존적 증상들 서로 어울려 부박한 현존 전경화

  투고한 작품들이 가진 역량은 예년과 다름없이 묵직했다. 이들의 열기로 겨울 추위를 다 녹일 듯했다. 응모작의 수준이 고르게 향상됐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고무됐다. 그만큼 새로운 상상력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시조의 정형률 내에서 자연스럽고 활달하게 시상을 전개한 응모자는 2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5인의 대표작은 ‘호수’ ‘기억의 노선’ ‘레드카펫’ ‘상추 & 상처’ ‘폴리스라인’ 등이다. 이와 함께 동봉한 작품들에서도 충실한 습작기의 흔적이 확인돼야 한다.

  ‘호수’는 “당신”에게 가닿으려는 “내 마음” 속의 풍경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기억의 노선’은 시상이 안정감이 있고 의미 결속도 단단하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소재의 참신성 면에서 밀렸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레드카펫’ ‘상추 & 상처’ ‘폴리스라인’ 등이다. ‘레드카펫’은 참신성 면에서 동봉한 ‘그룹 채팅방, 그 놈’과 함께 선자의 눈길을 붙들었고 ‘상추 & 상처’는 동봉한 ‘숲의 유언’과 함께 오래 머물렀던 작품이다. 그러나 다른 작품이 함량 미달이거나 시어 선택에서 믿음감을 떨어뜨렸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폴리스라인’은 “작업화” “길” “문” “사막” 등에서 호명하는 실존적 증상들이 서로 어울려, 부박한 현존의 한 상태를 전경화한다. 생의 비극적 현장을 목격하고 정감적 현실로 내면화시킨 뒤에 되돌려진 일상을 조망한다. 현장성이 강한 작품으로 삶의 총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당선자의 성과에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에게는 가능성이라는 믿음과 용기를 드린다.

심사위원 : 정수자, 염창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