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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줄거리>

  세노테 다이빙 / 노은지

  카리브해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나온 현조. 그녀는 연인과 가족으로 가득한 리조트에 홀로 들어오자마자 남편의 행방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현조는 대답한다. 그녀의 연인은 결혼을 1주일 앞두고 죽었다고.

  마야 유적지인 치첸이트사 투어에서, 와인을 마시러 간 야외 풀 바에서, 현조는 어째서 혼자 신혼여행을 왔는지 묻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친다. 그때마다 현조는 굳이 그녀의 연인, 도훈이 죽은 경위를 알려준다. 현조의 이야기에서 도훈은 살해당하기도 하고, 싸움에 휘말려 사고사하기도 하며, 단순한 교통사고로 죽기도 한다. 연인을 여러 방식으로 죽이면서, 현조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카리브의 해변을 귀신처럼 배회한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던 도훈은 그녀의 이상형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배려와 이해를 통해 현조는 그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도훈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가 위험에 처한 자신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본 현조는 그를 자신만의 유일한 보석 같은 존재이자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훈은 그녀에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노라고. 현조에게 주던 마음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준 그런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고. 현조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다른 마음이 생겨난 거라고.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고, 두 사람 모두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도훈의 고백을 듣고도 그를 놓을 수 없었던 현조. 그녀는 도훈의 다른 연인을 용인하는, 자신을 갉아먹는 선택을 하고. 날마다 커지는 불안과 고통을 견디지 못한 현조는 급기야 도훈의 또 다른 연인을 염탐하기 시작하는데.


 

  <당선소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라는 격려였다"

  ‘세노테 다이빙’에 등장하는 전설 속 주인공 이그나시오는 반복해서 우물을 판다. 그는 왜 우물을 파느냐는 질문에 “물소리가 들려서”라고 답한다.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나 역시 같은 대답이다.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은 세상을 살아내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생각을 이야기로 쓰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쓰는 것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하고 싶은 길이 없었기에 매 순간 모든 용기를 끌어내 글을 써왔다. 내게 이번 수상은 앞으로도 계속 쓰라는 격려였다. 나약해서 수없이 부서진다고 해도 다시 일어나고, 더 나은 쪽으로 계속 발을 딛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소설을 쓰기를. 그렇게 쓸 용기를 잃지 않기를 다짐했다. 다음 소설을 기약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독자 없는 글을 쓰다 좌절했을 때 ‘그냥 써!’라고 외쳐주신 윤성희 선생님,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기를 알려 주신 김경욱 선생님, 글쓰기와 언어가 품은 미려함을 가르쳐주신 윤경희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또한 함께 계속 글을 쓰자고 다짐한 친구들과 해박한 와인 지식을 빌려주신 박연정 대표님, 내 글쓰기의 시발점이 돼준 엄마와 동생 신웅, 이 소설을 쓰는 데 가장 큰 힘이 돼준 상휘, 그리고 나의 버팀목 기남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1986년 경기도 출생
●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졸업


 

  <심사평>

 

  혼자 신혼여행 떠난 주인공…우리 시대의 사랑에 대해 묻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그중 ‘흔들리는 그림자’와 ‘어항 안의 바깥’은 공상과학(SF) 계열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종말 이후의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내장한 이 소설들은 충실한 자료 조사와 독특한 설정 자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도착한 결론이 다분히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사와 몇몇 에피소드의 허술함이 전체적인 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보태고 싶다. ‘이터널썸머’와 ‘방문 교사’, 이 두 편은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각각 ‘클럽에서 유령을 본다’는 설정과 ‘제자에게 베푼 선의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줄기 삼고 있는데,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묘한 정서와 긴장감이 있는 소설들이다. 올해의 당선작은 ‘세노테 다이빙’이다. 카리브해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나온 현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장소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주제가 되는(폐허와 탄생), 서사적 완결성을 지닌 작품이다.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과 함께 안정된 문장과 플롯이 일품인 작품이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은희경, 이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