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줄거리>

  미인(美人) / 이동영

  구한말. 배오개시장(현 동대문시장) 포목점의 둘째딸로 태어난 혜훈은 고사리손이 여물기 시작한 후부터, 언니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연지 그리기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다. ‘화장’이라는 말도 모른 채 그저 곰보로 얽은 언니의 얼굴이 화사해지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러던 언니가 얼굴이 흉하다는 이유 때문에 혼례식장에서 버림받는 것을 보게 되면서, 혜훈은 언니의 얼굴을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당찬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혜훈의 일생을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비밀을 찾는 여정으로 바뀌게 한다.

  혜훈은 경성에서 가장 고운 여인들이 모여 있다는 명월관에서 기생들의 뽀얀 얼굴의 비밀이 ‘분(粉)’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스스로 ‘백분’을 만든다. 혜훈은 재래식 분의 단점인 밀착력을 보완하기 위해 납연, 즉 납가루를 첨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든 분을 ‘백화분’이라 이름 짓고 아버지의 포목점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백화분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혜훈의 가족들은 본격적인 상품 등록과 더불어 공장까지 지어 대규모 생산을 하면서 큰 부를 얻지만, ‘납중독’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터지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납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혜훈은 ‘숯’의 존재와 효능을 알게 된다. ‘가꾸고 꾸미는’ 화장이 아닌 ‘치료’로서의 화장의 의미를 깨달은 혜훈은, 천연 재료를 이용한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 후에도 다양한 유기농 원료를 통한 신제품 개발, 아름다운 패키지 고안, 전문 화장사들의 방문판매 등 새로운 화장품의 세계를 개척한 혜훈은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큰 성과를 이뤘지만 그만큼 많은 오해와 불화를 겪어야 했던 혜훈. 일제 식민지부터 해방, 6·25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랑에 휘말리는 동안 친일파라는 오해도, 미친년이라는 손가락질도, 화류계 인사라는 조롱도 받지만…. ‘미(美)’에 대한 혜훈의 열정과 집념은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진정한 미(美)’가 그 무엇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탁하고 못난 세상에 눈부시게 증명해 보인다.


 

  <당선소감>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채운 작품, 세상에 알릴 기회 잡아"

  나는 느린 시간의 동네에 산다.

  몇 해 전, 몸에 익은 오랜 밥벌이를 정리한 후부터 부쩍 느려진 시간은, 북적이는 은행 앞 사거리를 지나 버스 정류장 앞에서 드문드문한 숨을 몰아쉬다가 아파트와 오피스텔로 가득 채워진 내 방 창문 밖에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낸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되돌려지는 일도 잦아졌는데, 그것 역시 내 마음을 비추는 우리 동네만의 일이었다. 시간이 느려질수록 마음은 빼곡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인 글쓰기에 기대어 우리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글에 대해 서로 묻고 대답하며 함께 소망했고 그 순간만큼은 비로소 일상이 꿈을 지나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은 그렇게 만들어온 나의 세계가 처음으로 받은 영예로운 평가이고 새로운 무대를 향하는 이름표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비밀을 말하듯이 나 혼자만의 기대와 상상으로 채운 작품을 기쁜 마음으로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한국경제신문에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언제나 단단한 응원과 지지로 나를 지켜준 가족들과 오랜 친구들에게도 지면을 빌려 마음 깊은 사랑을 전한다.

● 1970년 부산 출생
● 부산대 법학과 졸업
● 제일기획 입사
● TV-CM 프로듀서


 

  <심사평>

 

  이야기가 가진 진정성과 힘…극 전개의 전형성 타파해 재미

  하나의 작품은 작가가 공을 들여 쌓아 올린 하나의 세계다. 심사하면서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작품은 깊이 있는 주제 의식과 그 주제를 싣고 나갈 힘 있고 진솔한 문장력을 갖춘 작품이다.

  당선작 ‘미인’은 캐릭터가 확고해 이야기가 진정성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극 전개의 전형성을 타파하고 이를 안정감으로 승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이야기 자체의 재미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지은이 김지은’은 죽음으로 향해가는 시간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엮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이한 대사 등 단점을 보완해 더 특별한 작품으로 완성하길 기대해본다. ‘문제적 연애사(社)’는 대사와 문장이 경쾌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설정의 공허함을 딛고 보다 생생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이외에도 시의성 있는 소재를 사실감 있게 묘사해낸 ‘섬망’은 마지막까지 고민한 작품이었다.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주제 의식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작가 생전 고작 3715부만 팔리며 외면당했던 <모비 딕> 같은 명작이 낙선작 중에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모든 응모자에게 깊은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수상자에게는 뜨거운 축하를 전한다.
  

심사위원 : 박승우, 박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