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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음의 거리 / 임순옥

 

  진료실 천장에 박힌 등에서 미색 빛이 고르게 퍼졌다. 도연은 환자 얼굴에 초록색 천을 덮었다. 입이 닿을 부분을 둥글게 도려낸 천이다. 체어에 붙은 전등을 환자 얼굴 위에 오도록 각도를 맞췄다. 초록이 도려내진 곳에 환자의 입속이 붉게 드러났다. 제일 안쪽 아래 어금니 두 개에 금이 씌워져 있고 나머지 치아는 희다.

  치과 밖에서도 사람을 만날 때, 도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입이었고 정확히 입안에 박힌 치아였다. 이 사람은 아래턱이 튀어나온 부정교합이라 위아래 치아가 맞물리지 않는다. 쫄면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쫄면을 같이 먹으면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리고 열심히 씹어도 면이 안 끊어지는 난처한 일을 겪을 거다. 잇몸이 내려앉아 치아가 패인 그는 칫솔 사용에 문제가 있다. 왜 진료를 안 받고 내버려두는 걸까, 도연은 사람의 첫인상을 치아 관리 상태로 판별했다.

  치아를 청소하고 본뜨는 일이 도연에게 재미를 주는 건 아니었다. 월급쟁이들이 그렇듯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들고 나는 숫자들의 균형을 깨뜨릴 수가 없어서 버티다 보니 어느새 17년차 치위생사가 돼 있었다. 어떤 날은 눈을 감아도 잇몸에 박힌 치아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어둠 속에서 벌어진 윗턱 아래턱이 다가와 도연의 손목을 덥석 깨물었다. 억,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손목을 당기니 패인 잇자국이 선연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손목을 꾹꾹 누르던 일이 있었다.

  ‘우리들 치과’는 지난 2월 코로나로 인해 한 달 동안 문을 닫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6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감염으로 인한 자연면역자가 늘어나자 확진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델타, 델타 플러스, 오미크론, 스텔스 오미크론 등으로 생존환경에 유리한 형태로 변이했다. 도연은 미생물인 바이러스와 의식을 가진 인간이 살고자 하는 욕망 앞에서 똑같이 자극받고 변이하고 방법을 모색한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는 코로나 감염 시 사망 위험이 높았다. 우월한 척해도 생명 있는 것들은 거기서 거기구나, 도연은 나대는 인간이 하찮아지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는 정부지침이 나오자 식당과 술집에 사람들이 붐볐고 치과에도 환자가 늘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간 치통을 참아왔는지 대기실이 북적였다.

  페이스 쉴드와 KF 94 마스크를 착용한 원장이 환자 옆으로 다가앉았다. 무방비 상태의 환자가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다. 도연과 민희는 분홍 유니폼에 분홍 마스크를 착용했다. 민희가 아침에 건넨 마스크 덕분에 깔맞춤이 됐다. 원장이 환자의 잇몸 깊이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배 위에 포개져 있던 환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취가 되면 신경치료도 많이 아프지는 않을 겁니다.”

  환자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 나왔다. 도연은 무신경하게 환자의 치아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59세 여성, 오른쪽 두 번째 어금니 크라운 치료를 해야 한다. 차트에는 신경치료 후 기둥을 박고 레진으로 덮어씌운다고 표시돼 있다. 의사가 버를 치아에 대고 스위치를 밟았다. 치아 갈리는 소리가 나고 쇠 냄새가 번졌다.

“어유, 잘 참으시네요. 곧 끝날 거예요.”

  원장은 진료할 때 목소리가 다정하다. 입을 벌린 채 몸을 내놓은 이에게 연민이 생기나 보다. 원장은 말 한마디 붙이고 나서 뾰족한 버로 환자의 어금니를 집요하게 긁어냈다. 입안에 핏물과 치아 찌꺼기가 생기자 민희가 석션기를 갖다 댔다. 후륵 소리와 함께 입속 분비물이 호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민희는 일을 시작한지 채 육 개월이 안 된 신입이지만 손이 재빨랐다. 자잘한 실수에도 사과와 수습이 빨라서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오늘은 마스크 위 라일락 펄 아이섀도가 도드라져 보였다.

  도연은 작업대로 와서 구멍 뚫린 치아를 메울 가루를 개었다. 치료 첫 날이니까 신경이 살아있어서 환자는 통증을 느낄 것이다. 도연은 이것을 임상치위생학 책 속 문자로 이해했다. 환자가 통증 때문에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비명을 질러도 실제로 얼마나 아픈지 알 수는 없었다. 도연은 자신이 신경치료를 받았을 때 기분 나쁘게 아팠다는 기억만 있었다. 도연은 오랜 기간 환자의 통증을 상상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상상한다는 건 자신이 아프지 않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환자의 아픔을 상상하는 일은 도연의 의지나 기분에 따라 매번 달라졌다. 다만 기복 없는 표준치의 친절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입 헹구세요.”

  원장과 민희가 3번 체어 환자에게 갔다. 도연은 개어놓은 임시치아 반죽을 들고 1번 환자 옆에 섰다. 도연이 다가서자 환자가 입을 크게 벌렸다. 도연은 구멍 뚫린 어금니에 치아반죽을 밀어 넣었다. 어금니가 맞부딪치게 꾸욱 물라고 했다. 일 분 동안 물고 있으면 어금니에 씌워놓은 액상이 딱딱한 플라스틱이 된다. 환자가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며 주먹을 쥐었다.

“아프세요?”

  환자는 반응이 없다. 버틸 만하다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중장년 환자들은 입을 넉넉히 벌린 채로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른다. 입 안을 긁고 쑤시고 기둥을 박는 자극에도 대체로 조용하다. 수동적으로 누워있을 뿐이다. 환자의 주먹 쥔 손 뼈마디가 도드라져 보였다. 자극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환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치과 침대에 누워 있어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버를 치아에 갖다 대기만 해도 비명을 질러대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처음엔 어린 환자가 귀찮았지만 언젠가부터 진료실에 어린 환자가 들어서면 생기가 돌았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원장의 눈빛에도 웃음기가 묻어났다. 손 움직임도 가벼워졌다. 도연은 아이들을 대할 때는 빨간 입속의 감각이 자신에게 전해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입을 벌렸다가 다물어 보세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환자는 시키는 대로 따랐다. 새로 메워놓은 치아를 느껴보려고 혀로 만지고 아랫니윗니를 부딪쳐 보았다.

“수고하셨어요. 오늘 진료는 마쳤습니다.”

  마네킹 같던 환자가 일어나 종이잔에 든 물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더니 뱉어냈다.

“아직 우릿하게 아프네.”

  환자의 파란 블라우스 등판에 주름이 졌다. 59세 여성치고는 젊어보였다. 모니터에 떠 있는 환자의 이름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환자는 신발을 신고 핸드백을 챙겼다. 붉은 입과 치아로만 보이던 환자가 목소리와 색깔, 이름을 챙겨 진료실을 나갔다. 이 여성 환자는 치아 상태가 잘 관리된 편이었다. 스케일링을 규칙적으로 받고, 몇 년 뒤 임플란트 두어 개를 해 넣으면 죽을 때까지 못 씹어 먹을 일은 없어 보였다.

  도연은 남인순의 틀니가 떠올랐다. 분홍빛 잇몸에 박힌 치아가 눈앞에 있는 듯 손끝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주름진 살갗이 문득 그리웠다.

  남인순은 도연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 이른 나이에 틀니를 했다. 도연은 취직한 이듬해에 근무하는 치과에 남인순을 데리고 가서 틀니를 교체해 줬다. 그즈음 남인순은 유니폼을 입은 도연의 모습을 전화기 앨범에 저장해두고 여기저기 딸 자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 도연은 그녀의 치아를 위해 자신이 살핀 게 무엇이었나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남인순은 세상을 뜨기 전 몇 달 동안 틀니가 들그럭거려 음식을 잘 못 먹었다. 폐가 안 좋았고 입맛이 없어져서 체중이 갑자기 줄었다. 살이 빠지고 잇몸이 오그라들자 틀니가 헐거워졌다. 입원한 그녀가 반찬을 미루는 걸 보고 치과에 가기를 권했지만 남인순은 거부했다. 무언가를 씹어 먹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 안 맞는 틀니 때문에 잇몸에 상처가 났고, 점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도연은 남인순이 좋아했던 고구마튀김과 광어회를 들이밀었다가 눈총을 받았다. 남인순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남인순은 병실에 있는 동안에 틀니 세척을 꼼꼼히 했다. 틀니 상자를 함부로 두지 않았고 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깨어났을 때, 병실 이동이 있을 때, 틀니 상자부터 챙겼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틀니는 쓸모를 다해 소지품 가방 속에 넣어졌다. 도연은 남인순이 가는 길에 틀니 상자를 곁에 넣어 함께 보냈다. 재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도연은 그 뒤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남인순의 틀니에 붙들려 있었다. 꽉 물어보라고 그녀가 환자에게 수도 없이 했던 말처럼 그녀는 틀니에 물려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붙들려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올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동안 도연은 다시 그 익숙한 시간을 밟고 있었다.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 이종근이 코로나로 확진됐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민희가 배달 앱으로 떡볶이를 주문해 점심으로 먹자고 했다. 도연은 김밥을 사오겠다며 점심시간이 되자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매운 떡볶이에 김밥을 같이 먹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도연은 잠시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도연이 2층 치과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오니 터널 끝의 세상처럼 밝은 거리가 밀려왔다. 오월의 햇살은 분수대 물줄기처럼 쏟아져 내렸고, 길가에 선 벚나무는 초록을 흩뿌렸다. 누군가는 이 환한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풍경을 쪼개 버렸다. 치과 천장에 켜진 실내등은 늘 일정한 조도로 차가운 빛을 냈다. 남인순이 있던 병실의 불빛도 마찬가지였다. 새벽과 한낮과 한밤중이 구별되지 않는 빛. 그 빛을 이종근도 받고 있지 않을까. 눈을 감았을 때나 떴을 때, 통증이 몸을 씹어 삼킬 것처럼 달려들 때조차 해사한 빛이 얼굴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마른 체형에 원피스형 유니폼을 입고 커트 머리를 한 도연은 마흔 중반의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햇빛 아래에서 도연의 분홍 유니폼은 목덜미와 앞섶이 까맸다. 마스크를 쓴 얼마의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나이보다 깊은 주름이 일었음을 느꼈다. 나이는 같은 간격으로 쌓이지만 어떤 감정들은 한 시기에 몰려온다는 걸 알았다. 바이러스처럼 죽음이 왔고, 슬픔과 무력감이 마음에 실체를 남겼다.

  김밥집은 치과 건물 맞은 편 1층이다. 김밥집 옆에는 네일 아트 숍이 있는데 밝은 거리와 대조적으로 어두웠다. 유리문 너머 탁자와 의자가 흐릿한 윤곽으로 보였다. 탁자 앞에 앉은 단발머리 젊은 여자가 누군가의 손톱을 정성스럽게 매만지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창 안쪽에 임대문의라고 커다랗게 적힌 천이 붙어 있다. 네일 아트 숍 옆에는 안경점, 그 옆에 여성옷 가게, 중국집 영빈관, 편의점, 치킨 맥주집이 이어진다. 치킨 맥주집도 실내가 컴컴하다. 나이든 아줌마가 닭을 튀기고 저녁에는 아들이 와서 맥주를 나르던 가게였다. 전염병 확산으로 가겟세를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컴컴한 가게 안에는 날마다 애를 쓰던 누군가의 막막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담 김밥’은 용하게 버텨냈다. 도연이 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에 남편이라는 글자가 떴다.

“지금 병원에?”

  도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황보고 연락 해.”

  이종근이 위독하다는 전화였다. 석주는 월차를 내고 지금 병원으로 출발한다고 했다. 일주일 전 오전에도 연락을 받고 시어머니와 형님, 도연과 석주가 중환자실에 모였었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종근의 혈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연이 치과 상황을 보고 병원으로 가겠다는 말에 석주는 그러라고 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도연은 오른 손으로 왼 손목을 꾹꾹 누르며 마스크 속에서 더운 숨을 내쉬었다.

“누가 또 병원에 있어?”

  투명 마스크를 쓴 ‘소담 김밥’ 아줌마가 물었다. 도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시아버님이 중환자실에 있어요.”

  재작년 남인순이 병원에 있을 때 소담 아줌마는 소식을 우연찮게 들었다며 넉넉한 사이즈의 김치통 하나를 내밀었다. 집에서 먹으려고 쑤었는데 병원에 있는 분이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들고 왔다고 했다. 팥죽이었다. 뭉글하고 구수하다며 남인순은 그 팥죽을 달게 먹었다.

  도연은 민희나 원장에게 해 본 적 없는 이야기를 소담 아줌마에게 털어놓았다. 묻는 말에 피하지 않고 답했다. 이종근의 나이가 여든 하나라는 것과 코로나 양성 진단을 받았고 복막이 터져 수술했고, 대장을 잘라내고 인공항문을 달았다는 것과 수술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달았는데 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도연은 그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두 번 들여다보았다.

“자식들 고생 덜하게 아버님이 그만 내려놓으셔도 좋으련만.”

  그녀는 포장한 김밥을 내밀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 초조했어요. 어차피 닥쳐야 할 일인데 연락이 오니 차라리 안도가 돼요.”

  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친정 엄마랑 가서 연명치료 안 한다고 싸인 했어.”

  무 자르듯 단호한 말에 도연의 눈이 커졌다. 프릴 달린 앞치마를 한 귀밑 머리카락이 희게 센 소담 아줌마는 본인 일도, 남의 일도 쉽게 말했다. 여러 번 고민을 해서 단순하게 정리가 된 것인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는 다른 손님의 김밥을 챙기고 있었다.

  이종근의 담당 의사는 수술과 치료를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도연은 남인순을 보내며 ‘죽음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는 책 속 글귀를 생각했다. 병원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환자의 고통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이종근을 중환자실에 맡겨 두고 있었다. 온갖 의료기들이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는 곳이었다.

  이종근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십 일을 경과했을 때 의사가 보호자를 불렀었다. 기도에 삽입한 관으로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데, 이대로 두면 위험하니 목 기관을 절개하여 폐에 산소를 바로 공급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석주는 가족과 의논하겠다고 하고 도연에게 의견을 물었다. 도연은 그때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당신 식구들이 정하면 따를게, 나보다 많이 생각하겠지. 도연은 수술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먼저 말하지 않았다. 기관절개수술을 하지 않는 쪽으로 식구들 입장이 모아지자 의사는 다시 보호자를 불렀다.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지 않겠냐며 환자 앞에서 석주와 도연을 나무랐다. 수술 안 하려면 중환자실에서 나가야 하고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기도에 관을 삽입한 채로 받아주는 데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의사는 병원 매뉴얼대로 말하고 치료를 요구했다. 수술이후 호흡은 가능하겠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년의 삶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석주는 시에 있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리스트를 뽑아서 전화를 했다. 의사 소견서를 보고 그곳에서 받기 어렵다고 했다. 석주가 욕을 해댔다. 하루 이틀, 날이 지나고 있었다. 그새 벚꽃이 피었다 졌고, 이팝 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가루만 흩뿌리고 다 졌다. 이종근이 이팝 꽃을 보며 쌀밥 꽃이라 하던 게 떠올랐다. 중환자실에서 본 이종근은 뼈에 살이라곤 없고 가죽만 씌워진 모습이었다. 벌어진 입속에 산소 공급 호스가 박혀 있고 코에 줄을 달아 유동식을 흡입하고 있었다. 호스나 줄을 뽑을까 봐 손을 장갑에 씌워 묶어 놓았다.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온전한 모습이었는데, 썰어놓은 키위 한 조각을 먹으며 시다고 인상을 쓰다가 웃음을 보였었는데. 도연은 어딘가 비참했다.

  도연은 이종근에 대한 마음이 남인순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 마음과 다르다고 느꼈다. 슬프지만 물결이 일지 않는, 깊은 수압에 눌린 것 같은 통증이었다. 날마다 불어나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 면회와 간병도 없이 일상을 끌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 이종근이 겪고 있을 고통에 대한 상상들이 뒤섞인 무게였다. 그러나 그 중 어떤 것도 도연의 감정에 격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종근에게 가는 마음이 멀리 있음이 선명했다. 남인순 때와 비교하면 무감할 정도여서 미안했다. 도연은 중요한 결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려고 했다.

  민희가 쿨피스를 한 컵 가득 부었다. 둥근 통에 든 떡볶이와 김밥, 자두맛 쿨피스가 치과 안쪽 테이블에 차려졌다.

“언니, 사진 한 번 부탁해요.”

  민희가 뒤로 묶은 머리 리본을 잡아당기자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넘쳤다. 이가 드러나게 활짝 웃었다. 생기가 넘쳤다. 민희는 도연이 찍은 사진을 재빠르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젓가락을 빼서 건네자 민희는 떡볶이 하나를 집어 먹고 혀에 불이 인다는 듯 손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카톡, 소리가 나면 전화기를 집어 얼른 문자를 넣고 방그레 웃음을 흘렸다. 도연도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전화기를 들었다. 부재중 전화라도 떴나 확인을 하고 문자와 카톡을 일일이 보았다. 도연은 특별 할인 문자를 보다가 전화기를 뒤집어 내려놓았다. 제가 지금 무슨 연락을 기다리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 오늘이라면, 오늘일 수도 있는데 이러고 있어도 될까, 지금 김밥이나 물고 있는 게 할 일인가.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원장에게 말해야 하는데, 오후 예약 손님이 많은데 당일 반차가 될까. 도연은 돋아 오르는 생각들에 물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자꾸 카톡해서 미안해요.”

  그리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민희가 말했다.

“애인? 그렇게 좋아?”

“네.”

  즉각적으로 환한 답이 돌아왔다. 요즘 애들은 감정이 분명하구나, 도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스를 들이켰다.

“현승이랑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거든요. 이름이 현승이에요. 이름도 괜찮죠? 현승이가 없어도 현승이가 느껴져요. 현승이가 좋아하겠지? 현승이에게 말해줘야지. 현승이는 떡볶이 국물에 오뎅 튀김을 찍먹하고 싶겠지?”

  민희가 안 물었으면 서운할 것 같은 표정으로 종알종알 말을 이었다. 도연은 떡볶이 통 옆에 어긋나게 놓인 나무젓가락의 키를 맞췄다.

“사실은 현승이가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이제는 내가 더 좋아서 안달이에요. 현승이가 나를 좋아할 때는 가짜 같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니까 진짜 같아요. 뭐해? 물으면 진짜 궁금해하는구나 싶어서 다 얘기하고 싶고, 만나기로 하면 어두운 골목에 그곳만 불이 켜진 것 같아요.”

  민희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사랑하는 자의 것이었구나, 도연은 자신도 오로지 사랑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기억 속을 더듬어 보았다.

  남인순이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을 때 처음엔 어떤 상황인지 실감을 못했다. 그때는 코로나 확산 초기였지만 방역 수칙이 엄격했고 면회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 도연은 월차를 내고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했다. 출근 시간 전에 병실 앞 의자에 앉아서 이번만 살아 나오라고 기도했고 퇴근 후에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것마저 통제당해서 쫓겨나는 날도 있었다.

“당신 마음 이해하지만 면회 될 때 가라. 대책 없이 가다가 코로나 걸리면 어쩌려고?”

  집에 들어서는 도연을 향해 석주가 말했었다. 코로나 걸리면, 이라는 말이 도연에겐 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의사 붙들고 면회 시켜 달라고 따지지도 빌지도 못하고 와서 울화통이 쌓여있던 참이었다. 설거지통에는 석주가 혼자 챙겨 먹은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이해한다는 사람이 이래?”

  도연은 그 때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싶었다. 머리와 마음을 비워야 남인순에게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 반찬이라든가, 아이 중간고사라든가, 석주가 퇴근했을까 같은 태연한 생각들이 솟아오를 때마다 부끄러웠다. 와중에 정신을 흩트리지 않고 치과 업무를 보았고 환자들을 향해 웃기도 했었다. 도연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날마다 싸워도 남인순이 있는 곳에 가닿을 수 없어 슬펐다.

  남인순을 면회했을 때 도연은 아프냐고 물었다. 남인순은 고개를 흔들었다. 더 잘해야 했는데 미안하다 했을 때도 남인순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연은 남인순의 마지막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떤 통증이었는지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 얼굴이 편안해 보였어. 좋은 데 가셨을 거야.”

  석주가 말했었다. 알 수 없고 가닿지 못하는 곳에 대한 상상은 이기적이었다. 도연은 자신도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남인순을 마지막 면회했을 때 말을 못하지만 눈빛으로 괜찮다 괜찮다 했다고, 눈빛이 한없이 따뜻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남인순이 찬 불빛 아래 혼자 앓다가 혼자 떠났다는 걸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석주는 그때 ‘이해하지만’ 이라고 했지만, 도연의 마음 한 귀퉁이와 그의 마음이 겹쳐진 어떤 부분을 이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이해라는 게 마음의 한 조각이라는 걸 알았다면 도연의 실망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장장에서 석주는 도연의 손을 잡아끌어 식당 의자에 앉히고 억지로 밥을 뜨게 했다. 도연은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있었다. 장례절차에 따라 화장을 했다. 이처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인가, 도연은 다만 목이 메어 밥알을 넘길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오니 석주는 소고기 국밥을 국물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엄마 틀니는 어디에 있지?”

  도연이 갑자기 틀니를 찾았다. 사무실에 가서 알아보니 화장 후 잔여물은 폐기처리 된다고 직원이 말했다. 도연이 직원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찾아 달라고 손을 비볐다. 석주가 도연을 부축했다.

“화장이 뭐야? 죽은 지 삼일밖에 안 됐는데. 우리 엄마 어디 있어? 엄마 틀니는….”

  직원들이 난감한 표정을 했다. 석주가 일으키려 했지만 도연은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인순에게 닿을 수 있는 마지막 하나를 놓아버린 양 헛손질을 했다.

“그렇게 공유해도 네가 모르는 마음이 있을 거야.”

  도연이 툭 던지듯 내뱉었다. 민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애에게 내가 모르는 마음이 있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라일락 펄 샤도우가 찡그려졌다.

  도연이 젓가락 한 짝을 들어 남은 젓가락 위에 올렸다.

“나도 남편이랑 이렇게 포개진 순간이 있었어.”

“우리는 아직 거기까진 안 갔어요.”

  민희가 눈웃음을 쳤다.

“사실 그 애의 손이 닿기만 해도 지릿 전기가 와요. 그 애와 물리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끝까지 가 보고 싶어요. 그 느낌이 궁금해요.”

  민희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보였다. 어쩌면 도연의 얼굴에 열이 올랐는지도 몰랐다.

  도연이 포개진 젓가락의 위에 놓인 짝을 집게손가락으로 툭 쳤다. 젓가락 한 짝이 탁자 위로 떨어졌다.

  미끄러지는 것, 섹스야말로 순간이고 있지 않은 것에 매달리는 거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도연은 말을 삼켰다. 젊은 민희와 자신 사이에 말로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도연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어긋난 젓가락을 보며 도연은 문득 자신이 잃어버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민희는 아무렇지 않게 제 젓가락을 두드려 키를 맞추더니 원기둥 모양의 떡을 집어 고추장 국물을 잔뜩 묻혔다. 빨간 떡을 들어 입 속에 넣으려는 찰라, 떡이 통 속으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고추장 국물이 튀었다. 도연이 고개를 숙여 보니 가슴 언저리에 빨간 물이 튀었다. 정면에 보이는 민희 옷도 다르지 않았다. 얼룩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미안해요.”

  민희가 뛰어가 물휴지를 들고 와 도연의 상의를 두드려 닦았다.

“어쩌죠? 옷은 제가 세탁해 올게요. 천방지축이라고 웃을 것 같아요. 흐흐, 그 애 말이에요. 이 순간에도 왜 현승이가 떠오를까요?”

  도연의 얼굴에도 느닷없이 웃음이 피어올랐다.

“기승전 현승이야. 이 옷 빨 때 됐어. 괜찮아.”

  두 시를 넘어섰을 때 아동 돌봄센터 선생님이 남자 아이 둘을 데려왔다. 작은 아이는 얼굴이 까무잡잡한데 머리카락이 비 맞은 것처럼 이마에 달라붙었다. 땀 때문이지 싶었다. 오자마자 화장실로, 정수기 앞으로, 책장 앞으로 분주하게 뛰어 다녔다. 선생님이 불러도 헤헤 웃으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큰 아이는 소파에 앉아 책꽂이에 꽂힌 책을 빼서 보았다. 작은 아이는 선생님이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큰 아이가 오라고 하니 보리차 티백을 넣은 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마시다가 선생님이랑 형아 물도 받아오겠다며 정수기 앞으로 다시 갔다.

  지역아동 돌봄 센터에서는 입소한 아이들에게 구강 검사를 의무적으로 하게 했다. 큰 아이는 4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1학년이라고 했다. 큰 아이는 썩은 어금니 한 개를 신경치료하고 치아 홈메우기를 하고 작은 아이는 흔들리는 이를 빼고 치아 홈메우기를 해야 했다.

  큰 아이가 먼저 치료를 받기위해 체어에 누웠다. 작은 아이는 옆 체어에 앉아 모니터에 찍힌 치아 사진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았다.

“안 아파요. 내려갈래요.”

  큰 아이의 흰 얼굴이 더 흰 빛이 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녀석 겁쟁이구나, 안 아프게 해줄게, 원장이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도연을 불렀다. 도연은 굳어진 아이를 달래어 겨우 팔을 붙잡고 눕혔다. 아이가 입을 벌리자 기계소리와 함께 원장이 치아에 버를 갖다 댔다.

“아!”

  아이가 기겁을 했다.

“아프다잖아요.”

  작은 아이가 어느새 큰 아이 옆으로 다가섰다. 작은 아이가 도연에게 달려들더니 아이를 붙잡고 있는 팔목을 깨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도연이 팔을 들어보니 잇자국이 선명했다. 도연의 입에서 아 소리가 뒤늦게 터져 나왔다. 두 아이도 당황한 표정으로 도연을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원장이 조금 쉬었다가 진료하자고 했다. 민희가 도연을 데리고 와서 약을 발라주었다. 요즘 애들 못 말린다며 인상을 썼다.

  도연이 화장실에서 나오니 두 아이가 다가왔다. 작은 아이가 삐죽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미안해요. 아팠어요?”

  도연이 빨갛게 부어오른 팔을 아이 눈앞에 내밀었다. 네가 한 짓을 보라는 마음이었는데 어린애처럼 도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형아 아프다는데, 아줌마가 붙잡았잖아요.”

  작은 아이가 말하더니 마스크를 내리고 도연의 팔에 입을 갖다 댔다. 도연이 엉겁결에 팔을 빼려는데 아이가 입김을 불었다. 호오 소리를 냈다. 볼에 힘을 주고 입술이 튀어나오도록 불었다. 부어오른 데가 이상하게 시원했다.

“하지 마. 코로나인데.”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막아섰다.

“이미 걸려서 방어막이 생겼는걸.”

  작은 아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도연이 아이의 마스크를 올려주고 이름을 물었다.

“어니부기 몬스터, 꼬부기에서 진화했어요. 어금니가 공격무기, 물의 파동은 방어 무기로 쓸 수 있어요.”

  작은 아이 입에서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큰 아이가 검지 손가락을 뱅뱅 돌리며 원을 그렸다.

“괴물이에요. 에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동생 있어서 좋겠다.”

“사고쟁이에요. 말도 안 듣고.”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혀를 쑥 내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니부기? 너는 형을 구해서 진화하는 거야?”

  눈망울이 까만 아이에게 물었다.

“어니부기는 이제 사람 안 물어요. 물의 파동으로 시원하게 해줄게요.”

  작은 아이가 마스크를 한 채로 입김을 내뿜었다. 돌봄 센터 선생님이 죄송하다며 인사하고 아이를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들 진료가 끝나자 도연은 원장에게 갔다. 지금 가봐야겠다고 상황을 설명하려고 입을 뗐다.

“됐어요. 저번 주에도 놀라서 갔잖아요.”

  도연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가 보세요. 남은 환자는 알아서 할 테니.”

  원장은 별스럽지 않게 말하고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언니, 기운 내요.”

  민희가 두 팔을 들어 흔들었다. 도연이 계단을 밟고 내려가니 많이 연해진 빛이 아직 그곳에 있었다. 한낮의 벚나무보다 그늘이 넓어졌다. 한 순간도 같은 모양인 적이 없었다.

“지금 출발해.”

  운전석에 앉아서 석주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인공호흡기를 뗐어. 불안정했는데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일 마치고 와도 될 거 같아.”

  생각 밖으로 밝은 목소리였다.
 
“반차 쓰고 이미 나왔어. 일찍 연락주지.”

  안도가 되고나니 어긋나는 어떤 것에 예민해졌다. 상태가 어떤지, 병원으로 바로 갈까 말까, 전화 신호가 올 때마다 심장이 뛰었는데, 괜찮다는 거다. 도연의 예상대로 석주는 연락할 경황이 없었고, 조금 전에 이종근의 상태가 나아졌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도연은 이상하게 맥이 풀렸다. 분 단위로 공유하던 민희가 떠올라서 일까, 도연은 석주의 무신경함이 느껴졌다. 서로의 신경이 닿지 못하는 그만큼의 거리가 도연의 마음을 찔러댔다. 모르는 마음에 대해 안달하지 말라고 내려놓은 것처럼 말하더니, 정작 발끈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다. 민희에게는 그 너머로 가고 싶어서 벽을 밀어붙이는, 거리를 뛰어넘으려는 천진함이 있었다.

“그리로 갈게.”

  핸들에 팔을 올렸다. 오른쪽 팔목 물린 데가 욱신거렸다. 물어버리지 못해서 물려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시로 다가오는 어떤 것들에 대해, 서로에게 온전히 다가가지 못한 순간들에 대해.

  도연은 언젠가 자신에게도 있었을 천진함을 데려오고 싶었다. 바이러스처럼 새로운 변이를 하고 싶었다. 질병과 죽음, 모르는 마음들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도연은 이종근에게 가닿기 위해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당선소감>

 

   사랑하는 사람에 가닿지 못하는 슬픔 기록했죠

  슬픔을 양말처럼 신고 다녔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스웨터를 입듯 슬픔을 걸치고 다녔다. 어떤 날은 슬픔이 같이 있어서 따뜻했다. 슬픔이 사라지면 엄마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 날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글로 적었다.

  동화로 담아내기 어려워 에세이로 썼고, 시로도 썼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소설 ‘마음의 거리’는 내 안에 고인 이야기가 나를 지나 흘러나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한 순간들에 대한 슬픔의 기록이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국제신문 신춘문예 담당 기자에게서 당선 전화를 받던 날, 동네 책방에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멀리 있던 가방에서 전화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면 진동 소리가 들릴 거리가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한 시간 전부터 기자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들어온 기록이 있었다.

  당선 소식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잠이 오질 않았다. 게다가 연극 공연하느라 긴장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온몸이 쑤시는 몸살이 시작됐다. 소설 쓰기라는 지난한 과정을 삶으로 껴안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그 의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직 한 걸음씩 내디딜 뿐이다. 소설 속으로, 나라는 경계를 넘어.

  부족한 작품에 격려를 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권기, 임인택, 양상근, 양성호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 1971년 경북 경주 출생. 
● 2016년 ‘어린이와 문학’ 동화로 등단. 
● 동화집 ‘강철변신’, ‘자꾸자꾸 책방’(공저), ‘꽃샘추위’ 출간. 
● 현재 부산에 살며 활동. 필명 한음.


 

  <심사평>

 

  진행과 회상 서사 조화로워…위로와 응원 메시지 감동

  173분이 177편을 보내주셨다. 올해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심사는 별도 예심위원 없이 4인 심사위원이 모두 함께 본심을 진행했다. 먼저 각 심사위원이 각각 응모작 약 40여 편씩을 미리 심사한 뒤, 그 가운데 꼽은 작품을 추려 이를 다시 돌려가며 읽고 평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련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상 현실에서 포착한 제재를 내밀히 탐구하는 소설들이 대세였다.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시대의 소설적 용해를 조감할 수 있었다. 최종 단계에서 8편을 돌려 읽었다. 두 작품에 논의를 집중했다.

  ‘벽해조어도‘는 늙은 어부의 가족사를 바다낚시 속에 버무렸다. 오락가락하는 아버지 ‘공장장’과 일찍 죽은 자식 ‘아범’의 애틋한 과거와 환상적인 현재를 세심하게 드러낸다. 필력이 바다를 보듯 옹골찼다. 대중에게 너무 익숙한 서사였고, 서사를 뛰어넘는 뭔가가 아쉬웠다.

  ‘마음의 거리’는 40대 중반 17년 차 치위생사이며 ‘사람의 첫인상을 치아 관리 상태로 판별’하는 여성 이야기다. 진행서사(치과의 점심 때 일상)와 회상서사(친어머니의 입원부터 죽음까지, 시아버지의 오랜 투병)를 조화롭게 오간다. 코로나19 시대 의료현장, 간병·돌봄 가족들의 모습, 다양한 ‘거리’를 풍부하면서도 핍진하게 그려낸다. 젊은 직장 동료에게 ‘생기가 사랑하는 자의 것’을 배우며, 사람들 사이의 ‘말로 넘을 수 없는 거리’를 좁혀가려는 중년 화자의 일상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며 응원일 테다.

  밑줄 그어 외우고 싶은 문장들도 곳곳에서 빛났다. 역시 기시감이 단점이었지만 여러 각도로 울림이 있는 ‘마음의 거리’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작품 많이 써주십사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 이상섭, 정영선, 전성태, 김종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