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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코뿔소 / 임정인

 

  환이 코뿔소로 변한 뒤 곧 사라졌다는 해음의 주장은 누구에게도 수용되지 않았다. 사진과 영상도 없이 사람이 코뿔소로 변했다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 21세기에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해음은 절망했고, 또 분노했으나,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저 잊은 척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 애인을 이 코뿔소 증상으로 잃은 사람들은 조금씩 나타났고, 그제서야 해음은 그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자신들이 미치지 않았음을 매일같이 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 행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은 코뿔소들이 도처를 활보했기 때문이었다. 보건 당국은 이제 일련의 현상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병리학적으로 이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을 데려와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착수되었지만 진전은 미미했다.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의 유전 정보가 일반적인 코뿔소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그것은 코뿔소를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에서 코뿔소로 변이한 이들을 따로 모아서 관리해주는 전문가들과 코뿔소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집을 수리해주는 전문가도 생겨났다. 그밖에도 많은 직업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었다.

  사람이 코뿔소로 변하기 전에 겪는 증상들에 대한 정보가 일부 밝혀졌다. 코뿔소로 변하는 사람들은 수 일 전부터 심한 기침을 했다.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들도 있었고, 발열이 동반되기도 했으나 어떤 메커니즘으로 상관관계가 성립되는지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었다.

  해음은 휴직계를 낸 정비 공장에 다시 출근했다. 국가 주도의 청년 취업 지원 제도를 통해 입사했기 때문에 해음은 여태 잘리지 않았다. 회사의 입장에서 해음은 코뿔소니 뭐니 미친 소리를 해대며 주말마다 거리 집회에 나서다 휴직계를 낸 골칫거리였으나 이제는 해음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으므로 회사 사람들은 짐짓 미안해하며 어설프게 그를 위로했다.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공군에 전투기 부품을 받아와서 정비하는 회사는 최근 국방 개혁 사업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해야했고, 그런 상황에서 해음의 이탈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해음의 바람대로,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유례없는 상황에 전 세계가 코뿔소 증상에 주목하게 되었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친구가 코뿔소로 변했다든가,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코뿔소로 변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든가 하는 소식들이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퇴근한 해음은 아파트 상가에 딸려있는 치킨집으로 향했다. 시온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작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올해부터 민원실에서 일하고 있는 시온은 코뿔소 증상으로 삶이 고달파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국내기관의 많은 부서들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로 돌입했고, 시온이 속한 민원실은 갑자기 호흡곤란이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500ml 생맥주를 단숨에 반이나 비워낸 시온이 말했다.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쉬고 최대한 안전한 공간에서 대기하는 게 상식 아니야? 며칠만 지켜보면 답이 나오는 걸 왜 밖에서 기침을 해대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냐고. 그러다 갑자기 코뿔소로 돌변해서 물건 다 부수고 다니면 누가 보상해? 코뿔소가 된 사람이 아이고, 제가 전봇대를 부숴먹었네요. 제 월급에서 까십쇼. 라고 하냐고. 시온아. 코뿔소가 아니고 사람이잖아. 사람이면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는 건데 기침 좀 한다고 죄인 취급하면 어떡해? 아니, 누가 죄인이래? 그냥 집에서 며칠 쉬면 되는 걸 가지고 자꾸 나가려고 하니까 그렇지. 사람이 나가서 일도 하고 바람도 쐬야지, 기침한다고 집에 가둬놓으면 그게 죄인 취급이지 뭐냐? 지금 12월이야. 건조하고 추운 이 날씨에 기침 한 번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어딨어?

  시온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코뿔소 증상이 심각하다고 해도 제도적인 대응책이 제시되었고, 잘 따르기만 한다면 증상이 해결되고 난 후에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온은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코뿔소 증상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해음의 생각은 달랐다. 해음은 코뿔소 증상의 초기 발견자로, 집단 지성이 얼마나 무능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한지 잘 알고 있었다. 국가가 회사에 지원하는 청년 고용 지원금이 없었다면 해음은 건강상의 이유로 해고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즘 졸음운전 사고가 늘었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침약을 달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시온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해음은 말을 이었다. 기침약 먹으면 많이 졸리잖아. 그런데 일은 해야겠고, 기침약을 먹어도 기침이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니까 감기 걸린 사람들이 기침약을 두 배, 세 배씩 먹는 거지. 기침을 숨겨야 하니까. 게다가 히터까지 틀면 충분히 그럴만해. 기침만 해도 코뿔소 취급을 하잖아. 그러니까, 그냥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라니까 왜 그렇게 무리를 해서…. 넌 모른다, 시온아. 졸업하고 공부만 했는데 어떻게 알겠냐? 세상 사람들이 다 공무원이면 얼마나 좋겠어.

  보건 당국은 코뿔소 증상이 전염성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증상자들이 호흡곤란이나 기침 등을 동반하는 것을 보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일각에서는 아직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기만 할 것이라는 반박이 등장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기침 환자들만 줄일 수 있어도 시민들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곳곳에서는 다양한 여론들이 만들어졌다. 최초 발원지를 찾아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신이 내린 형벌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따위의 주장들이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가 하면, 코뿔소가 사실 인간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동물이며 이 증상은 인류에게 닥친 진화의 기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원래 코뿔소와 인간에게서 변이한 코뿔소가 유전학적으로 완전히 같다는 지적에 금방 시들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어떤 코뿔소는 뿔이 두 개였고 어떤 코뿔소는 뿔이 하나였는데, 코뿔소로 변한 후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소방대원이 출동할 때까지 가만히 있는 코뿔소도 있었다. 사람들은 뿔이 적고 온순한 코뿔소로 변한 사람을 두고 원래 본성이 선해서 그렇다느니 떠들어댔고 난동을 부리는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그가 입힌 상해와 기물 파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까봐 그의 가족임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고 방송국들은 기회를 틈타 어딘지도 모를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있다는 전문가들을 데려와 특집을 편성하기도 했다.

  해음은 성해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거리 연애였기 때문에 코뿔소 증상 이후로는 잘 만나지 못했다. 비행기나 기차 같은, 밀폐된 곳에서 오래 이동해야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하는 일이 됐기 때문이다. 해음은 광주로 향하는 표를 끊고 열차에 올라탔다. 8호차 5A석이었다. 예약은 필요 없었다.

  기차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차 벽 곳곳에는 비상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마취총이 비치되어 있었다. 훈련된 철도 승무원들이 코뿔소가 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8호차 안에서 코뿔소 증상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며, 해음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눈을 감았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코뿔소 증상으로 늘 긴장 상태였기 때문에 해음은 오늘만큼은 푹 쉴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일련의 긴장 상태는 해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침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은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다. 옆 좌석을 살피지 않아도 아이와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을 금방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눈감지 않고 피곤한 눈으로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났을 때였다. 해음은 캑캑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대각선 앞에 타고 있는 사람이 마스크 쓴 입을 손으로 가리고 신음을 내며 주변을 흘겨보고 있었다. 해음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7호차 쪽을 살펴보니 이미 코뿔소 증상자와 승무원들이 한바탕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음은 재빨리 9호차 쪽으로 뛰어가, 열차와 열차 사이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바깥에서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해음은 이어폰의 볼륨을 더욱 키우고 눈을 감을 뿐이었다.

  이윽고 짐승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알루미늄으로 된 좌석이 부서지는 소리가 몇 번 이어진 끝에 잠잠해졌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해음은 10호차로 건너가 입석에 가방을 부리고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성해는 인권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성해를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대학 때부터 함께 활동하던 곳에 성해는 정직원으로 들어갔고, 해음은 서울에 직장을 구하며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성해는 많이 지쳐보였다. 코뿔소 증상 이후 인권 단체들은 크게 두 개의 입장으로 분화되었다. 코뿔소가 된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그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 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쪽이 있었고, 이미 코뿔소가 된 사람들을 차치하고 남은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쪽이 있었다. 성해의 단체는 전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몇 안 되는 단체였기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다. 일부 극성 단체들의 협박 메시지를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역인 건 이미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변한 사람들을 인간으로 보고 돕는 일에 점점 회의감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해와 같은 노선의 단체들이 와해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해음과 성해는 역 근처의 숙박 시설에 체크인 했다. 코뿔소 증상에는 익숙해졌지만 둘만의 시간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지 않고 편하게 있고 싶었다. 높아진 방값을 체감하며 짐을 풀었다. 오면서 별 일 없었어?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성해는 그렇게 물었다. 해음도 짐짓 모른 체하고 답했다. 별 일 없었지. 운이 좋았나봐. 너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아니야, 뭐. 안부 인사가 오갔다. 나 얼마 전에 시온이 만났다? 그래? 잘 지낸대? 그런 거 같더라. 사람들이 집에만 있어야 한대. 그러다보면 곧 좋아질 거라고. 성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성해는 시온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시온의 말대로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들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면 성해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성해는 인권 단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있었다. 영리 조직이든 비영리 조직이든 단체가 유지되려면 노동과 보수가 있어야 하고, 열정과 믿음만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느끼는 불안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해는 또한 최초로 코뿔소 증상을 경험한 해음의 애인으로서, 그가 사회로부터 겪은 수모를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마냥 사회가 좋아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도 성해는 이해하고 있었다.

  둘은 배달음식을 비대면으로 전달 받아 먹고, 이어플러그를 끼고 깊은 잠을 잤다. 코뿔소 증상 이후로 불티나게 팔리는 3M사의 이어플러그는 성해와 해음의 밤을 짐승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업무 지시를 받은 해음은 윤활유 통을 들고 제2작업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정비를 마친 물품들 중에 출고가 늦어지고 있는 것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정비를 끝낸 후에 녹이 슬면 곤란했기 때문에 해음은 2000 파운드로 단단하게 토크가 걸려 있는 거대한 베어링 접합부 사이사이에 윤활유를 골고루 도포했다.

  해음, 부장님이 잠깐 보자고 한다. 오전에 업무 지시를 내린 반장이었다. 그는 기침을 하고 있었다. 짧게 대답한 해음은 작업실 창문을 모두 열고 반장이 나가고 한참 후에 사무실로 나섰다. 감기에 걸린 것이겠지만 옮으면 그것대로 곤란했다. 사장이 지금 시기에 감기를 특히 조심해야한다며, 회사에 있는 항공 부품들의 높은 가치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부장은 해음의 복직계를 수리한 후 잔여 연차 일수와 상여금에 대한 부분을 회의했다며 결정된 사항을 알려주었다. 휴직 날짜 중 일부를 이월 연차에서 소진시켜주겠다고 했고, 근로 장려 차원에서 상여금도 다른 직원들과 차이 없이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호흡곤란과 발열, 기침과 코뿔소 증상의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일단 증상이 시작되면 몸에 있는 에너지가 모두 코뿔소로 변이하는 데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감기 등의 호흡기 질환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러다 코뿔소가 되기 얼마 전에는 기도를 포함해 장기들의 모양이 변하면서 발열, 호흡 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코뿔소 증상이 어떤 원인으로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바 없지만, 적어도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아님은 확실해졌다.

  그러나 기침을 극도로 꺼리게 된 사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기침하는 사람이 반드시 코뿔소가 되는 건 아니지만, 코뿔소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믿지 못했다.

  퇴근하고 방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해음의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부장이 코뿔소로 변했으며, 고가의 항공 부품들이 많이 파손되어 회사의 입장이 곤란해졌다고 했다. 한 달간 회사가 휴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반장은 작은 목소리로 사장이 기업 회생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여금이니 연차니 하는 것들은 해음에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새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해야겠다고 해음은 생각했다.

  코뿔소 증상 이후 산업은 차차 마비되고 있었다. 특히 생산 분야의 타격이 컸다. 비싼 설비들을 코뿔소들이 헤집고 다니면서 가동을 멈추는 공장이 늘었다. 고가의 제품을 취급하는 해음의 회사 같은 곳들은 국가 차원에서 회생을 돕기도 했다. 실업자들이 늘고 국가의 비상 지원금이 풀리면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반 년 전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해음은 그러한 변화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고, 몇 주간의 휴직으로 수입이 없었던 그에게 반장이 전한 소식은 타격이 컸다.

  해음은 거실로 나가 창문 앞에 섰다. 비탈길에 올라선 해음의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바깥 풍경, 그러니까 거대한 코뿔소 공원처럼 변해버린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흡기를 전담하는 병원들 앞에는 기침약을 처방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간혹 코뿔소를 포획하려는 사람들이 코뿔소에게 장비를 겨누는 한편으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도시의 한쪽 구석 큰 규모의 부지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거의 완공된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도 뭘 짓긴 하는구나.

  암막 커튼을 쳤다. 휴직계를 낸 후로 공백이 생긴 수입을 메우기 위해 쉬지 않고 잔업에 임했던 해음은 서랍에서 이어플러그를 꺼내, 방으로 들어가 긴 잠을 잤다. 꿈에는 주변인들 중 가장 먼저 코뿔소가 된, 홀연히 사라져버린 환이 등장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어플러그를 꼽고 있던 탓에 오래도록 벨소리가 흘러나왔지만 해음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휴대폰 너머에서 성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해음의 회사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그의 동료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했다. 왜 바로 말 안 했어. 뭐 좋은 소식이라고 쪼르르 가서 말하냐…. 너 복직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다른 회사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성해의 말이 맞았다. 해음은 국가 지원 저금리 대출과 비상 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에 파트타임 직원이라도 뽑는지 물어볼게. 일하면서 다른 회사 알아봐. 아마 자리가 있을 거야. 여긴 늘 사람이 모자라거든.
 
  휴직을 하고 집회에 나간 이후, 해음은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뉴스와 신문을 애써 피하던 그에게 성해는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을 관광 상품화하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동물원을 세우고 거기에 코뿔소가 된 이들을 격리한 후 테마파크처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코뿔소들이 많아지자 더욱 본격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들을 모두 수용할 공간이 부족했기에 내려진 특단의 조치였다. 인권 단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비인격적인 대우라고 항의했으나 정부는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이상 증세와 그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필요했고, 해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산업 마비가 가져온 유례없는 손해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코뿔소로 변한 이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것을 약속하고 원래 코뿔소였던 종들과 절대 섞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한 번 같은 무리로 섞여버리면 영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둘 사이에는 이렇다 할 생물학적 특이점이 없었기에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편으로 지긋지긋한 이 사태를 일상으로부터 최대한 분리시키고 싶어 했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방침은 많은 논란 속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해음은 일어나서 커튼을 열고 창가에 섰다. 이제는 그 커다란 부지에 들어선 건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길게 늘어진 건물들은 매표소였고 뒤쪽으로 커다란 우리들이 들어갈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문에 걸려 있는 장식은 코뿔소 문양일 것이다. 성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다음 주에 시간 돼?

  해음은 성해와 함께 택시에 탔다. 코뿔소 테마파크 설립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린다고 했다. 당연히 성해가 일하는 단체에서도 참여했고, 성해는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해 해음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했다. 단체에는 아직 해음이 알고 있던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해음은 성해가 서울까지 온다고 했기에 집회에 참여하자는 성해의 제안에 응했지만, 사실 별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을 제시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들의 일터에 대신 나가서 일해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는 계속해서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해음은 무기력해져 있었다. 휴직계를 내고 거리로 나선 몇 주간의 기간 동안 배운 게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되기 전까지는 쉽게 다른 이들의 입장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해음이 잃어버린 친구 환은 중학교 시절부터 그가 사라지기 전까지 해음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성인이 되고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만남은 뜸해졌지만 늘 메시지를 주고받았었고,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연탄구이에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환은 해음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코뿔소가 되어 사라졌고, 그 후로 해음은 매일같이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성해는 그런 해음을 이해해주었다. 환이 사라졌을 때부터 해음을 믿었고 그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곁을 지켰다. 해음이 성해를 따라 이런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런 성해에 대한 고마운 마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 가족은 짐승이 아니다, 비인도적 관광 상품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는 집회는 거리에서 거리로 이어졌다. 주말 오후부터 시작된 집회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해음과 성해는 택시에 올랐다. 강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택시 뒷좌석에는 기사가 갑자기 코뿔소로 변했을 때의 대처법과 안내 사항이 인쇄된 종이가 붙어있었다. 해음은 수도 없이 본 안내서를 재차 읽었다.

  둘은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함께 강변을 걷기로 했다. 어둑한 강변길에는 종종 자전거 몇 대가 지나다녔을 뿐, 인적이 별로 없었다. 코뿔소 증상 이후, 늦은 시간에 나서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야행성인 코뿔소가 활발해지는 때라 누군가 갑자기 코뿔소로 돌변하여 공격한다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면 코뿔소가 나타날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기에, 장소만 잘 고른다면 안전하게 거닐 수 있는 곳도 분명 있었다. 해음의 집 근처 산책로가 그랬다. 가로등이 적은 그곳은 다른 곳들에 비해 유독 밤에 사람이 적었다.

  오늘 어땠어. 성해가 해음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해음은 대답하지 않았다. 같이 가줘서 고마워. 사실 너도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한테도 많이 어렵지만 그래도 일단은 사람이니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사람…이지. 해음이 작게 말했다. 해음은 오래 전부터 그런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집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서로 들이박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들은 언제든 코뿔소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전부 코뿔소가 될 텐데. 하지만 뒷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왜 코뿔소마다 뿔의 개수가 다를까? 해음이 말했다. 그러게. 듣기로는 뿔이 두 개나 있는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은 원래 폭력적인 경향이 있었대. 너도 그 말을 믿어? 그렇잖아, 왜. 아무래도 뿔이 없는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너는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코뿔소가 되기 전에는 문제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감정 기복이 조금 있는 사람이었겠지. 나는 코뿔소들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

  성해와 해음은 해음의 작고 낡은 아파트로 들어왔다. 커튼이 활짝 열린 창 아래로 불 꺼진 시가지가 내려다보였다. 어두운 세상은 무탈했다.

  씻고 잠옷 차림으로 나왔을 때, 해음은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다. 시온이 코뿔소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성해가 사색이 된 해음을 다그쳤다. 해음은 성해에게 시온이 코뿔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성해는 시온과의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으나 그가 해음의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곳곳에서 코뿔소 테마파크가 완공되고 있었고, 시온은 그곳으로 가는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성해는 다가오는 월요일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급히 연차를 내어 해음과 함께 시온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해음은 그가 테마파크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고 싶었다.

  환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해음은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더 이상 코뿔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벌어진 그간의 일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해음은 유독 자신에게만 세상이 빠르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왜 한국에서만 코뿔소 증상이 나타났고, 왜 하필 자신의 주변에서 먼저 나타난 것이며, 코뿔소 테마파크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시설엔 왜 시온이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었을까.

  성해는 해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해음과 같은 사례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들은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계속 살아갈 뿐이었다. 그것이 자신들도 언젠가 코뿔소로 변할 것이라는 체념에 의한 것인지 커다란 슬픔 속에서 그들이 택한 살아가는 방식인지 성해는 알 수 없었다.

  해음과 성해의 눈앞에 시온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는 코뿔소가 있었다. 그는 각기 다른 명찰을 달고 있는 코뿔소들과 25톤 트럭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와 체취가 사방에 퍼졌다. 트럭 주변에는 기자들과 시위대,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한 경찰들이 운집해 있었다. 사람들은 지난 주말에 해음과 성해가 들었던 구호들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구호 사이로 들려오는, 그들의 가족의 이름에 코뿔소로 변해버린 이들은 일말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이름을 잊어버린 코뿔소들은 묵묵히 트럭에 오를 뿐이었다. 해음은 시온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성해를 기차역까지 배웅하고 집에 돌아온 해음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해음은 이제 커튼을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하면 코뿔소로 변해버린 시온을 봐야만 할 것이다. 코뿔소가 아닌 다른 동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동물이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해음은 마지막으로 본 시온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잠든 해음은 긴 꿈을 꿨다. 또 환이 등장하는 꿈이었다. 꿈에서 그는 여전히 코뿔소였고, 해음은 그가 곧 사라질까봐 안절부절 했다. 환을 씻기고, 그의 배설물을 치우고, 두 개의 뿔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환은 작은 해음의 집에 잘 적응했고 어떤 물건도 부수지 않았다. 둘은 해음의 이사를 환이 도와주었을 때처럼, 함께 자고 먹고 생활했다. 해음은 꿈속에서 행복했으나 어쩐지 이것이 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최대한 오래 꿈속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해음은 꿈을 꾸면서도 했다.

  아침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해음은 습관적으로 창가로 가 커튼을 젖히려다 그만뒀다. 대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음은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코뿔소 증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증상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많은 연구와 정책들이 세계 각지에서 발표되었고, 일부는 한국을 향한 인종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코뿔소 증상의 발원지였고 좋든 실든 한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자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외신들과 연구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증상을 앓는다는 전례 없는 사정으로 새로운 공동체로 변모하고 있었다. 코뿔소를 심볼로 하는 각종 사이비 종교들도 등장했고 지구의 종말이 도래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도 늘었다.

  해음은 곧장 성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계속 갔으나 대여섯 번의 시도에도 성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해음은 급하게 짐을 챙겼다. 성해가 무사한지 확인해봐야만 했다. 막 집을 나서려던 때, 성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사태 때문에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져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해음은 전화를 끊었다.

  성해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해음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시온과 환을 잃은 해음에게는 성해밖에 남지 않았다. 해음은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해음은 성해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캐리어에 담고서는 문 밖을 나섰다.

  열차에 올라탄 해음은 객석 위에 설치된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모든 방송에서 인류가 맞은 대위기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 방송은 원래도 많이 나왔으나, 이제는 외국인 앵커들이 방송을 진행한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한국에 있는 코뿔소 테마파크도 소개되고 있었다. 코뿔소 증상이 한국 밖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설치하지 않았을 흉물이었다. 그런 테마파크 따위는 이제 세계 어디에든 만들 수 있었으므로 정부는 각지에 설치된 우스꽝스러운 테마파크를 신속하게 철거하기로 했다. 국내의 비상 상황을 그릇된 방식으로 풀어나가려고 했다는 지적들이 쏟아진 영향이었다. 해음은 더 이상 열차에서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다. 그는 이어플러그를 꽂고 눈을 감았다.

  성해의 집에 다다르자 퇴근하고 막 도착한 성해가 해음을 맞아주었다. 성해는 홀가분해보였다. 기분 좋은 일 있었나보네. 해음이 말했다. 아니, 기분 좋은 일은 아니고. 나 내일부터 일 안 나가. 왜? 해체됐거든. 세계인이 코뿔소가 되어 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다 돌보겠어. 이제 우리는 우리를 돌보자. 너도 일 구하지 말고 당분간 여기서 지내며 좀 쉬는 게 어때?

  해음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한동안은, 성해가 코뿔소들에게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코뿔소 증상은 많이 진행되어서, 인간이기만 하면 일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날 밤, 둘은 서로에게 이어플러그를 끼워주고 함께 잠들었다. 해음은 다시 긴 꿈을 꾸었다.

  아침이었다. 해음의 옆에는 코뿔소가 된 성해가 몸을 웅크려말고 자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로 이불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성해를 해음은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해음은 거실로 나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도처에 코뿔소가 있었다. 코뿔소뿐이었다. 해음은 손을 뻗어 여전한 사람의 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돋아난 뿔을 매만졌다.


 

  <당선소감>

 

   "사라지지 않는 글을 끝까지 쓰고 싶다"

  소설은 세상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또 무조건 재미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가, 근래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건져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비춰지지 않는 세계를 조망함과 동시에 터져나갈 수밖에 없는 응집된 자아들의 방출이며, 씀으로써 세계를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작가와 세계를 함께 돌보는 일이다.

  우리는 지난 삼 년간 유례없는 시간을 보냈다. 전염병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나는 사람을 깨문 적이 없으나 지난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입가를 동여맸다. 무엇인가 하지 않던 일들을 해야만 했고 하던 일들을 하지 않게 됐다. 이건 내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문자 그대로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면서 우린 모두 무엇인가를 잃었다. 그리고 남겨진 상흔들은 삶은 흔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하고, 표정을 보여주고, 몸과 몸이 부딪는 당연한 일들이 터부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술자리에서 울분을 뱉는 것보다 나았다. ‘코뿔소’는 그렇게 바뀌어버린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썼다.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비현실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의 더 비현실적인 모습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우리는 코뿔소로 변한 사람들처럼 서로를 들이받고, 서로를 불신하며 잃어갔다. 나는 인류학자도 아니고 병리학자도 아니기에,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나 씀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투고를 하고 당선 전화를 받은 오늘까지도 이것으로 충분한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괜찮다. 계속 쓰면 된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기억하고, 또 기대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숱한 새벽을 보낼 거다. 게으르고 무심한 내가 나와 남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당선이 소설가에게 자격을 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계속 써도 된다는, 독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사라지지 않는 글을 끝까지 쓰고 싶다. 내 소설이 어루만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서 누군가의 삶을 비출 수 있다면, 나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도 나는 소설의 힘을 믿는다. 내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분들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뼈를 깎아 함께 해주신, 스승이자 존경하는 소설가 함정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내 습작들을 전부 읽어준 사랑하는 동생 정현과 축하해준 성규와 은주를 비롯한 가족, 애인과 친구들에게도 고맙다. 그들이 있었기에 여태까지 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내 오랜 친구에게 안부를 전한다. 그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 경남 김해 출신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재학
● 교육극단 어슬렁 작가
● 현재 부산 거주


 

  <심사평>

 

  "단연 돋보이는 수작…지난날 우리 사회 미혹 일깨워"

  예상보다 많은 응모작에 놀랐다. 그런데도 일정한 수준과 개성을 갖춘 작품이 많아 즐거웠다. 오랜 시간 공들여 썼겠다는 짐작만 맴돌 뿐 수련 과정이 더 요구되는 작품은 안타까웠다. 문장을 우선 순위로 보았고, 서사에 짜임새를 갖췄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살폈다. 매력적인 제목과 첫 문장, 서두 부분부터 눈길을 끈 작품은 끝까지 읽었다. 신춘문예 당선에 요행은 없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7편이었다. ‘저수지 안개의 끝’은 안정된 문장으로 이철규 변사 사건에서 한국전쟁과 5·18까지 소환시킴으로써 현대사의 비극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평이한 전개에 묻혀 새롭고 강렬한 주제를 보여주지 못했고, ‘사람을 찾습니다’는 구두만 남기고 실종된 아버지가 9개월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는데, 아버지를 추적하는 절박함이 밋밋하고 허전했다. ‘마음의 미로’는 한국어 교실에서의 인연을 카트만두행으로 이어감으로써 인물의 개성적인 면모를 띄웠으나 이혼 소송과 병치해 놓은 설정이 작위적으로 보였고 여행객의 시선을 통한 이국적 감흥에 매달린 나머지 에피소드식 견문의 나열에 머물렀다는 점이 지적됐고, ‘두부’는 편하게 읽히는 가운데 이야기꾼의 소질이 다분한 문장으로 끌렸지만, 허술한 짜임새로 서사의 역동성보다는 과도한 수다를 듣는 기분이었다.

  ‘물고기 서식지’는 물고기에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고 동반하는 공시생 이야기로, 우리 시대 취준생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지만 어항이 깨지고 물고기의 죽음을 맞게 되는 파국이 일련의 상징으로 연결되지 않아 반전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비바리움’은 철거될 아파트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삶과 레오파드라는 이름의 개구리가 의미하는 기묘한 아이러니가 교차했으나 아빠를 향한 지나친 적의와 원망이 인과적인 설득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코뿔소’는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적확한 언어 구사, 안정된 문장에다 단편 구성에 맞는 짜임도 적절했다.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가면서 벌어지는 미증유의 혼란을 통해 팬데믹으로 뒤덮인 우리 시대의 병리적 기현상을 담담히 들여다보고 성찰하게 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몇 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세밑을 보내면서, 비정상적 집단 증세를 상식인 양 용인하고 동조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지난날 우리 사회의 미혹을 일깨워줬다. 나치의 파시즘과 광기를 담은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보다 더 실감 나게 다가온 이유는 여전히 우리를 옥죄고 있는 감염병 공포 때문이다. 다만 한마디 아쉬움을 전하고 싶다. 마침내 모두 코뿔소로 변하고 말았다는 상투화된 결말보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온도를 높였더라면, 사유의 집요함과 전복의 내러티브가 더해져 코로나로 위축된 우리 현실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었을 텐데. 당선을 축하하며 신예 작가의 대성을 믿는다.

심사위원 : 정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