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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 박숲 [줄거리]

 

  한 인간의 자살충동 배경을,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개인의 문제와 연관시킨다. 개인의 언어란, 모순된 세상에서 외치는 저항의 한 마디인 것이다.

  나는 평생 아버지의 억압과 폭력 속에 내 삶을 유린당한 채 살아왔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로봇처럼 지내던 나는 최근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회사를 뛰쳐나왔다. 이때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언어는 아버지의 것이다.

‘너는 살인자다’

  이 말은 ‘나는 살인자입니다’라는 말로 치환되어,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왔다.

  나는 과거 십 대 때 밴드동아리 멤버들과 전설의 기타인 루시퍼를 훔치다 살인을 저질렀다. 아버지의 영향력은 감쪽같이 사고의 뒷수습을 마무리할 정도로 강력했다. 나는 아버지의 강요로 도피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돌아왔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으로 세상과의 단절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맺음까지 가로막아 회사에서도 스스로 존재감을 거세하며 지냈다. 아버지의 시나리오에 휘둘려 나의 삶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나는 모텔에서 죽음을 결심했다.

  자살을 위해 죽는 방법을 물색하던 중, 모텔 밖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다. ‘기타’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을 쥐어뜯는 뭔가가 있었다. 나의 실패한 인생이 기타라는 단어에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타는 원래 나의 것이고 나를 대변하는 언어였지만 지금은 빼앗긴 단어일 뿐이다. 기타 한 대가 불러왔던 재앙을 떠올릴 틈도 없이 나는 잘못된 음을 잡아 주고 싶었다. 소리를 바로 잡아 주지 않으면 나의 생(生) 역시 끝내 바로 잡지 못하고 떠날 것 같아서였다. 나는 자살을 미룬 채 홀린 듯 기타 소리를 쫓아갔다. 레트로 물건을 파는 ‘레트로 가든’이라는 곳에서 나는 우연히 만난 기타를 통해 비로소 삶의 욕망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제부터 기타와 관련된 나만의 언어를 찾기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만이 ‘너는 살인자이다’라는 거대한 죄의식에 저항하고 나를 되찾는 길이 될 것 같았다.

  레트로 가든에서 마주친 기타는 고교 시절 훔쳤던 기타 루시퍼와 흡사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기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레트로 가든 주변을 맴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타 주인인 구보 아저씨와 티격태격 부딪치게 되었고, 우리는 어느새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나는 기타 루시퍼의 정체를 쫓으며 과거의 나와 맞닥뜨렸고, 나도 모르는 사이 현재의 결핍과 함께 새로운 삶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죽기 위해 찾아든 동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트로 가든을 기점으로 음악 서점 여자와 식당 주인 말리를 만났다. 그들 모두 한때 거짓 언어에 내몰려 주체적인 삶을 잃어버리고 방황했던 사람들이다. 여자의 적극적 도움으로 나는 새롭게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과거의 인명사고 이후 결코 음악을 하지 않겠다던 결심은 기타를 만나면서 깨졌다. 마치 먼 길을 돌아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주파수가 비슷한 우리는 밴드를 결성했다. 또한 구보 아저씨와 2인조 기부 공연도 시도했다. 그때 우리의 언어는 음악이라는 공통된 것으로 묶여 있었다. 음악을 통해 언어를 발산하고 언어를 되찾는 과정의 되풀이로 우리를 가로막았던 억압에 저항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음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고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특히 여자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꿈을 되찾도록 이끌어 주는 능력이 탁월했다. 여자의 권유로 세 사람은 음악 밴드를 결성하게 되고, 좌충우돌 음악적 삶을 찾아갔다. 여자의 추천으로 나는 동네 커뮤니티에서 기타 강의를 맡게 되었고, 말리의 식당에서 잡다한 일을 도우며 함께 지냈다. 우리는 소규모 공연을 위한 연습을 꾸준히 했다. 종종 버스킹 활동으로 대중 앞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며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기타 루시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구보 아저씨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굴었다. 알고 보니 구보 아저씨는 젊은 시절 유명 기타리스트였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랜 세월 음악 활동을 멈춘 채 노숙 생활을 했지만, 여자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사는 중이었다.

  멤버들의 설득으로 구보 아저씨를 밴드에 합류시켜 드디어 4인조 밴드가 결성됐다. 나는 아예 레트로 가든으로 거처를 옮겨 구보 아저씨와 본격적으로 기부 공연을 이어갔다. 구보 아저씨와 지내며 아버지에게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애정과 깊은 신뢰를 느꼈다. 마치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을 구보 아저씨를 통해 충족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루시퍼 기타는 여전히 음악인들에게 신비의 기타로 존재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신비의 무엇인가를 품고 사는 존재인 걸까. 아직도 신비의 기타를 쫓는 사람들이 있다니. 고교 시절 밴드 리더였던 용주 역시 여전히 기타 루시퍼를 찾아 헤맸고, 용주는 루시퍼를 훔치기 위해 구보 아저씨 집에 침입했다. 그 과정에서 아저씨는 머리를 다쳐 입원하게 되었다. 기부 공연이 모두 중단되었고, 나와 구보 아저씨의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접어들며 혼란을 겪었다.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저씨의 사고는 내게 깊은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침입자인 용주는 아저씨가 평생 찾고 싶어 했던 동료의 조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구보 아저씨는 오히려 용주를 만난 것에 감사했다. 끝까지 지니고 살았던 기타 덕분이라고 했다. 기타를 진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어서 마음의 무게를 덜었다고 했다. 그런 뒤 아저씨는 우리가 말한 신비의 기타 루시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보 아저씨의 음악에 대한 오랜 염원을 풀어주기 위해 여자는 대형 오디션 프로 참가 신청을 했다. 오디션 예선부터 공중파 방송을 타게 되자, 우리 밴드는 유명세를 치렀고 결승 진출까지 진입했다. 결승을 앞두고 지병이 있던 구보 아저씨는 과로가 겹쳐 쓰러졌다. 짧은 투병을 끝으로 아저씨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관계를 형성했던 구보 아저씨. 나는 결국 정신적 지주를 잃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나의 진짜 언어를 잃고 살아왔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의 언어는 바로 내가 꿈꿔왔던 음악이라는 것을, 노래를 통해 나의 진정한 언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퍼 기타의 정체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과거 동아리 멤버들에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멤버였던 정대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나는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진 아버지의 삶에 더욱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언어는 거짓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찾아간 아버지는 여전히 부조리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왕국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했다. 내가 맡았던 하청업체 사장의 자살 건에 관련된 파일을 빼앗으려 혈안이 되었다. 파일을 경찰에 넘기겠다는 내게 분노하며 또다시 골프채로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에서 골프채를 빼앗아 회장실의 집기류를 향해 휘둘렀다. 오랫동안 곪았던 상처가 불시에 터트려지듯.

  과거 루시퍼 기타는 내게 청소년기를 빼앗았고 내 인생을 비극으로 내몰았다면, 현재의 루시퍼 기타는 오히려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세상 끝에서 만난 노래는 이제 나를 표현할 완전한 언어가 되었다. 가슴에만 존재했던 아버지를 죽이고, 나를 우뚝 세울 수 있는 단단한 언어를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화려하든 소소하든 각자에게는 소중한 순간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의 끈이 될 것이다. 구보 아저씨의 빈자리에 용주가 합류하여 새롭게 결성된 밴드 ‘비따비’. 삶이 매 순간 오디션을 통과하는 도전의 연속이라면, 그들은 또 어떤 오디션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완성해 나갈 수 있을까.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아웃사이더들이 진정한 언어를 모색하고 되찾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당선소감>

 

   유쾌함과 감동선사…편안히 다가가는 작가 꿈꿔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품들이 당선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었다. 한파가 이어진 어느 날, 마찬가지로 체념의 아침을 걷고 있었다. 녹지 않는 눈은 군데군데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앞서가던 아이가 더러워진 눈더미를 발로 찼다. 이유 없이 아렸다. 잔치가 끝난 뒤의 쓸쓸함. 그 순간 스팸으로 의심되는 전화를 받았다. 나도 모르게 딱딱한 목소리를 냈다. ‘현대경제신문’ ‘대상’이라는 단어가 차가운 공기를 뚫고 나뭇가지 사이로 빠르게 통과했다. 그토록 맑고 투명한 아침햇살이라니! 수면제를 계속 복용해서라도 이 꿈 안에 머물고 싶었다.

  언니는 젊은 아버지 얘기를 들려줬다. 윤동주와 김소월 등의 시집을 매일 필사하여 언니들에게 자랑했다던 아버지. 젊은 아버지 역시 나처럼 오랜 소망을 견뎠던 걸까. 나도 모르게 젊은 아버지에게 뛰어가 오랜 소망을 이뤘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싶었다. 소설에서 이중적 아버지를 등장시킨 것처럼 내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 앞에 서면 언제나 작게 오그라들었던 나를 작품 안에서 일으켜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탓에 ‘NO’를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작품 안에서라도 진정한 주체를 찾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오래오래 골이 깊었던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관한 소설일 수도 있겠다.

  늦게 뜬 별이 가장 빛난다는 말이 있다. 비록 늦었지만 나만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리라. 나의 별에 빛이 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스승님들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꾸준한 관심으로 작품을 돌봐주신 남상순 작가님, 당신이 아니었으면 투명하게 빛나는 아침햇살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작가로서의 윤리를 강조하시던 박상우 선생님, 장편의 진수를 알려주신 강태식 작가, 소설의 첫 스승님이신 윤후명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 전한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붙잡고 괴롭혔던 나의 언니, 나보다 내 작품을 더 걱정했던 두 딸과 가족들, ‘너무나도 사랑해!’ 그리고 문학인으로서 방향을 아낌없이 조언해주던 이서안 작가님, 서현이 작가님, 마윤제 작가님께 특별히 감사 인사 전한다. 또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문학에 길을 묻다’ 카페의 다정한 문우님들을 비롯, 지면 관계상 호명할 수 없는 여러 문우들께 진심 담아 감사를 전한다. 제가 한 발짝 먼저 가 있을게요. 조만간 어깨동무하고 같이 걸어요!

  마지막으로 내 작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주신 현대경제신문에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 오랜 소망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심사평>

 

  완벽한 구성과 깔끔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

  장편소설이 소설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는 출판문화 매체가 적어서 소설 문학의 균형 있는 발전에 아쉬움을 주고 있던 터에 현대경제신문에서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장편소설을 공모한 건 한국 소설문학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5편이었다. 신춘문예 특성상 작품의 소재와 구성의 신선함은 물론이고 서사 전개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장편소설을 써서 응모하는 분들의 노고가 만만찮음에도 본심에 오른 작품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숙독을 거듭한 결과 「소녀의 칸」과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두 편을 우선 최종 심사 작품으로 선택하고 다시 숙독하며 꼼꼼히 살핀 결과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두 작품 모두 탄탄한 구성과 문장력으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하였으나 장편소설로서 가독성을 높이는 복합적인 구성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촘촘히 엮어 서사를 무리 없이 전개한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는 전설적인 명품 기타 ‘루시퍼’를 매개로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젊은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들만의 삶의 길을 만들어가는 소재가 신선하다. 밴드 그룹 ‘비따비(Vis ta Vie)’를 결성하며 작품을 종결하는 결말 또한 새롭다. ‘비따비’는 우리말로도 뭔가 색다른 의미를 생성하고 있지만, 프랑스어로는 “네 인생을 살아라”는 뜻이다.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틀을 벗어나 자신들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조금은 불안하고 불완전하나 이 또한 ‘젊음’이라는 위치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살인과 폭력이라는 부조리한 현상을 서사구조로 이어가지만, 완벽한 문장과 아름다운 문체로 이 음울한 기운을 흡수하는 솜씨 또한 매우 돋보였다.

  훌륭한 소설가로 발전하길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드리고 응모한 모든 분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