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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택배 / 박시안

 

  계산대 앞에 놓아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택배기사의 전화라는 걸 연수는 발신번호를 확인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택배기사 밖에 없었다. 연수는 전화기로 손을 뻗으며 마트 출입구 쪽을 살폈다.

  열 체크를 마친 사람들이 소독제를 손에 바르거나 카트 손잡이를 닦으며 매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매장 안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불황이 이어졌지만 연수가 계산원으로 일하는 대형 마트는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면 오히려 마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매출이 올랐다. 그럴때면 소문처럼 떠돌던 감원 이야기도 잦아들었다. 할인특가 방송이 나오는 정육코너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아직 계산대를 향해 카트를 밀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연수는 의자에서 내려와 몸을 낮추고 전화기를 귀에 댔다.

“기사님, 영남빌라 1동 101혼데요. 택배가 안 와서요.”

“영남빌라? 아, 영남 1층 그거 배송했는데 도착 문자도 갔잖아요.”

“문자는 받았는데 물건은 안 왔다고 확인 부탁드렸는데요.”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벌써 삼 일짼데 아직도 확인이 안 되나요?”

“요즘 물건이 많아서요. 확인하겠습니다.”

  택배기사는 어제와 똑같은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엊그제도 들었던 목소리였다. 배송은 완료되었고, 도착 문자는 보냈고, 물량은 많고, 확인은 해 보겠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게 만든 매뉴얼을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읽는 것 같았다.

“아뇨 기사님, 택배 하나 확인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바쁜 사람 계속 전화하게 만드냐구요! 바쁜 사람을요!”

  연수의 입에서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영남빌라 내일 오후에 들어갑니다. 101호죠? 저녁때 쯤 들를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와 함께 대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도착 벨이 울리고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멀어지면서 전화가 끊어졌다. 연수와 택배기사는 삼 일째 이런 식의 통화를 반복했다. 연수가 출근하기 전 오전 시간에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하면 택배기사는 받지 않았고, 마트가 붐비기 시작하는 오후 5시쯤 확인해보겠다는 택배기사의 전화가 왔다. 그 시간이 아니면 택배기사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꼭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건가. 연수의 입에서도 택배기사 못지않게 거칠어진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마스크가 입술에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살짝 부르튼 입술이 쓰라렸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입술이 트고 입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면 코밑과 입술 주위도 가려웠다. 건조해진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수는 벌꿀이 함유된 립밤을 입술에 발랐다. 림밥을 바르는 연수에게 같이 일하는 김이 장미오일을 추천했다. 보습 효과가 뛰어나고 끈적이지 않아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에 발라도 좋고, 차로 마시면 잠도 잘 온다고 했다.

  김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며 장미오일 캡슐을 따뜻한 물에 타서 주었다. 장미향이 온 몸에 퍼지며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연수는 장미오일이 마음에 들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사용 후기를 읽고 가격비교를 한 연수는 해외직구를 대행하는 쇼핑몰에 장미오일을 주문했다. 배송기간이 열흘 이상 걸렸지만 국내에서 파는 가격보다 두 배는 저렴했다. 열흘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열흘을 기다리고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장미오일은 문 앞에 없었다. 장미오일을 주문한 쇼핑몰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어서 고객게시판에 문의를 남겼고 다음날 통관이 완료되었다는 서류를 문자로 받았다. 연수가 이미 쇼핑몰 사이트에서 확인한 서류였다. 통관을 마친 물건은 택배회사에 전달되어 있었다.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상담원 연결 없이 ARS 안내로 넘어갔고 배송 앱을 이용하라는 목소리만 되풀이되었다.

  장미오일은 배송되었다. 서류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수는 택배를 받지 못했다.

  계산대 위에 물건들이 쌓이자 컨베이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부팩의 바코드를 찍으면서 연수는 계속 택배를 생각했다. 장미오일은 국내에 들어왔다. 통관 절차를 마쳤으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물건은 택배회사에 전달되었고 택배회사는 택배기사에게 배송을 맡겼다.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전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최종 책임은 택배기사에게 있었다. 전달받은 물건을 잘못 배송한 택배기사의 잘못이었다. 101호의 끝자리만 보고 201호나 301호 문 앞에 놓거나 다른 동에 갖다놓았을지도 몰랐다. 택배기사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삼 일째 질질 끌고 있었다. 연수는 내일 저녁에 온다는 택배기사에게 책임을 따져 묻고 택배를 못 찾으면 보상을 요구하리라 다짐했다.

  마감을 끝내고 계산대 주변을 소독하면서도 연수는 계속 택배를 생각했다.

  10시가 넘어서야 마트를 나온 연수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가로등도 없는 농로를 차로 달렸다. 농로를 돌아 빌라 뒤쪽 공터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트럭 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공터를 빌라 주차장이라고 불렀지만 주차선도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공동현관 앞에 장애인 주차구역을 빼면 빌라에는 제대로 된 주차장도 없었다.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공터마저 꽉 차서 빌라와 경계선인 농로에 차를 세웠다. 그러면 가로등도 없는 흙길을 걸어서 들어와야 했다. 빌라 주변은 어두웠지만 오늘따라 더 캄캄했다.

  감염병 유행이 시작될 때 연수는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빌라로 이사를 했다. 전세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을 원했지만 그동안 두 배나 오른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시세에 맞춘 거라는 집주인의 말에 연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새로 개정된 부동산법도 소용없었다. 남편이 실직하는 바람에 은행 대출도 여의치 않았다. 대출 없이 기존의 보증금으로 계약한 곳이 이 빌라였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자리 잡은 빌라는 지은 지 오래 돼 보였다. 내부도 못지않게 낡아있었지만 싱크대 상하부장에 시트지를 붙이고, 화장실 변기에 덮개를 씌우고, 안방과 거실 벽에 도배를 하면 크게 나쁘지 않았다. 연수는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에 눈을 돌렸다. 키작은 소나무들이 늘어선 언덕이 보였다.

  1층에서 내다보니 단독주택의 정원 같은 느낌도 들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상쾌했고 어디선가 새소리도 들렸다. 연수는 창밖 풍경이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창문 앞에 식탁을 놓고 홈카페를 만들면 좋겠다는 연수의 말에 내내 굳어있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홈카페를 꾸몄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남편과 마주 앉아 풍경을 바라볼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제대로 닫히지 않는 공동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갔다. 연수가 현관에 들어서자 천장의 센서 등이 깜빡거릴 뿐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복도를 걸어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우편함 밑에서 튀어 나왔다. 연수는 뒤로 물러나며 낮은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에도 고양이는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열려있는 현관문을 빠져 나갔다. 고양이와 마주치면 놀라는 쪽은 언제나 연수였다.

  어떤 날은 서너 마리가 모여 웅크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자신을 향해 있는 노란색 눈동자들과 마주치면 뒷머리가 쭈뼛 섰다. 크게 발소리를 내도 고양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고양이들은 가만히 바라볼 뿐 이빨을 드러내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연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빌라에 살면서 가장 적응 안 되는 것이 고양이들이었다.

  바라볼 뿐 이빨을 드러내거나 달려들지 않는 고양이.

  현관 번호 키를 누르면서 연수는 센서등 수리에 대해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층인데 굳이 전등이 필요하냐고 말하면 고양이의 노란색 눈동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배고파 죽겠는데 얼른 밥 먹자.”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이 리모컨을 들고 일어났다. TV에서는 몇 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펜데믹 시대 재테크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펜데믹은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유튜브의 구독자 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돈 버는 사람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연수가 남편이 구독하는 유튜브들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실업급여는 이제 끝이 보이는데 펜데믹은 끝이 안 보인다고 유튜브를 보는 남편이 중얼거렸다. 한숨을 내쉬는 남편의 한쪽머리가 귀 위에 눌려 있었다. 면도를 하지 않은 턱도 거뭇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남편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밖에도 안나갔다. 자전거라도 타라고 했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며칠을 씻지도 않은 채 리모컨을 들고 안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실업급여 지급만기는 한 달 정도 남았고 남편은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남편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자 연수는 화가 치밀었다. 수세미로 문질러도 밥공기에 말라붙은 밥풀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남편의 잘못이었다. 수세미를 싱크대에 내던지자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 밥상을 차렸다.

“인테리어하는 김선배 있잖아. 충주에서 공사하는데 사람 없다고 일 좀 도와 달라네. 이번주 안으로 연락 주겠대.”

  남편이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을 조미김에 싸먹으며 말했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버는 사람들은 다 벌어. 그치?”

  남편은 꾸역꾸역 밥을 씹어 삼키는 연수의 눈치를 살폈다.

“알바비는 일 끝나는 대로 바로 입금해달라고 해. 그리고 내일 저녁에 택배기사 올 거야. 택배 못 받았다고 말만 해주면 돼.”

  연수는 남편에게 해외직구로 장미오일을 주문하고 통관을 마친 물건을 받지 못한 과정들을 설명했다. 보습효과가 뛰어나고 차로 마실 수도 있으며 해외직구라 국내 가격보다 훨씬 싸다는 말도 강조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우리는 가진 돈도 없지만 가진 빚도 없다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연수는 그 말을 안주 삼아 남편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연수는 오랜 만에 창가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셨다. 해가 잘 드는 거실 창을 바라보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오늘 저녁이면 택배는 해결된다. 택배를 생각하지 않으니 신경이 곤두설 일도 없었다. 연수는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출근준비를 했다. 남편에게 택배기사와 이야기를 잘 나누라고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102호에 사는 아이가 공동현관문을 밀고 복도로 들어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매일 등교수업을 하는 걸 보니 초등 1학년이나 2학년생 같았다.

  아이는 연수를 보자 코끝에 걸친 마스크와이어를 누르며 피하듯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녕?”

  연수가 아는 척을 했지만 아이는 어깨만 살짝 들썩일 뿐 말이 없었다. 연수가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이는 늘 대답이 없었다. 마스크만 치켜 올렸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은근히 화가 났다.

“어른이 인사하면 너도 안녕하세요 해야지. 이웃끼리는 서로 인사하는 거야. 학교에서 안 배우니? 선생님이 안 가르쳐 주셨어?”

  연수는 인사의 중요성만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렇게 타이른다는 것이 어느새 아이를 나무라고 있었다.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연수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번호 키도 손바닥으로 가리고 눌렀다. 그러면서 계속 연수를 힐끗거렸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에게 자신은 그냥 옆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저 사람이 옆집에 사는 사람이 맞는지 헷갈릴 수 있었다.

  아이가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이사를 왔고 한 번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옆집뿐만이 아니라 빌라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스크를 벗으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빌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스치기라고 하면 큰일 난다는 듯 몸을 웅크린 채 지나갔다.

  연수는 빌라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빌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아파트의 영향이 컸다. 아파트에 이사 가자마자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가 먼저 연수를 찾아왔다. 자기 아이가 다섯 살인데 혼을 내도 자꾸 뛴다고 양해를 구한다며 와인 한 병을 주고 갔다. 연수는 기분이 좋았다. 결혼하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연수도 롤 케이크를 들고 옆집과 아랫집을 찾아가 인사했다. 서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말을 건네며 웃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말들이 연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빌라로 이사 오고나서 옆집인 102호부터 찾아갔다. 롤 케이크를 손에 들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했지만 102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요즘 시국도 그렇고 아이도 아직 어리다며 문 앞에 두고 가시면 좋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연수는 자신이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역수칙도 지키지 않는 예의도, 개념도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며칠 뒤에 102호에서 나오는 여자와 아이를 만났지만 여자는 롤 케이크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트에 출근한 연수는 전 타임 직원과 교대하고 소독약을 묻힌 걸레로 계산대 주변을 닦았다. 어제도 닦았고, 오늘도 닦고 있고, 내일도 닦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 나아지지 않을까 연수는 닦고 또 닦아도 시커멓게 묻어나는 사라지지 않는 먼지에 대해 생각했다. 걸레를 빨고 돈통에 현금을 계산하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사무실로 오라는 과장의 호출이었다. 호출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수는 정직원이 일하는 사무실에 문을 두드렸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매장 안을 촬영하는 CCTV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과장이 연수를 보자 회전의자를 돌렸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이 연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고 느껴졌을 때 과장이 이리 오라는 듯 검지를 까닥거렸다.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연수가 책상 앞에 서자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었다. CC-TV로 매장 안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카트를 밀고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계산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화면에 보였다. 과장이 키보드를 누르자 옆 라인의 계산원을 지나친 카메라 앵글이 연수에게 고정되었다. 계산대 앞에 앉아서 무릎을 접었다폈다 하는 모습, 팔뚝이나 종아리를 주무르는 모습, 다른 계산원과 마주보며 웃는 모습,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림밤을 바르는 모습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손님이 없을 때 계산원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었다. 계산대 주변에는 카트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연수는 과장이 왜 이러는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말을 하려는데 몸을 낮추고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는 자신의 뒷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택배기사와 통화했던 삼일 동안 녹화된 영상인 것 같았다. 과장이 쥐고 있는 볼펜 끝이 화면 속 연수의 엉덩이 라인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엉덩이를 지나고 등을 따라 움직이던 볼펜 끝이 귀에 대고 있는 핸드폰을 툭툭 쳤다.

  근무 중에는 통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과장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수 있었다. 말하기조차 입 아프고 귀찮다고 한다면 연수도 백 번 양보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볼펜은 무엇일까? 왜 엉덩이 부분에서 느리게 움직였을까? 과장은 왜 그랬을까? 무슨 의도가 있을까? 생각할수록 연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과장은 화면 속의 핸드폰을 한 번 더 툭툭 쳤고 나가보라는 듯 회전의자를 돌려 앉았다. 사무실을 나오는 연수의 머릿속에 엉덩이를 따라 움직이던 볼펜만 떠올랐다. 볼펜 끝을 생각 할수록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런데 계속 더러워야 할 볼펜 끝을 택배기사의 목소리가 뭉개고 들어왔다. 매장에서 통화하는 모습만 찍히지 않았다면 호출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 한쪽 끝으로 과장을 밀어냈고 너무도 쉽게 모든 게 택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배송실수를 한 택배기사의 잘못이었다.

“택배가 오늘 저녁에 온다는 거였어? 내일인 줄 알았지. 그리고 벨소리 못 들었는데 선배랑 통화하고 있을 땐가? 십 분도 통화 안 했는데 그 때 왔다갔나 보네. 그래도 벨소리가 안 들릴 수 있나? 손바닥만 한 집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택배기사를 만났냐고 묻는 연수에게 남편은 횡설수설했다. 남편은 택배기사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부탁하고 나갔는데 도대체….”

  하는 일도 없으면서 집구석에서 뭐 하냐고 그런 부탁 하나 못 들어 주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택배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엉덩이를 툭툭 치던 과장의 볼펜 끝이 떠올랐다. 아무런 의도도 없다 그냥 볼펜일 뿐이다 생각하다가도 빤히 쳐다보던 과장을 눈빛을 떠올리면 뒷머리가 쭈뼛 섰다. 원인제공자는 택배기사였다. 요즘 택배물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었다. 연수도 택배기사들의 수고를 모르지 않았다.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것도 인정했다. 그래서 반품택배가 생기면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챙겨 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했다. 택배가 잘못 배송되는 경우는 많았다. 택배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도 택배를 잘못 받았다며 옆 라인에 사는 사람이 직접 갖다 주기도 했다. 그 기간이 이삼 일을 넘기지 않았다. 연수도 택배는 물론 잘못 배달된 치킨이나 족발을 아래 위층에 갖다 주기도 했다. 택배가 잘못 배송되었다면 빌라 사람들은 왜 삼 일이 지나도록 돌려주지 않는 걸까, 빌라에는 CC-TV도 없는데 어떻게 확인할까, 자신처럼 입술이 부르트고 손발이 건조한 사람이 장미오일을 받았다면 혹시라도 그냥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장미오일 한두 방울을 떨어뜨린 차를 마시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미 오일 택배는 이 빌라 어딘가에 있었다.

  잠을 설친 연수는 직접 택배를 확인 하기로 했다. 같은 동 1호 라인부터 시작했다. 5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대부분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대답을 안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301호의 초인종을 누르자 인기척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101혼데요. 혹시 저의 집으로 온 택밴데 잘못 받은 거 없으신가 해서요?”

“네? 택배 잘못 받은 거 없는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갖고 있으면 돌려주세요. 주인 찾아주셔야죠. 그래야 이웃이죠. 그런 말들이 연수의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연수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장미오일 한 상자 못 받았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잠을 설친 탓이었다. 출근 전까지 잠을 더 자야 할 것 같았다.

“자기네 택배를 우리가 가졌다는 거야뭐야? 이상한 여자야 진짜. 아침부터 재수 없게.”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데 집안에서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또렷하게 들려서 자신의 얼굴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택배를 확인하는 방법과 절차가 다를 뿐이지 나는 이상한 여자가아니었다. 연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택배를 못 받았다면 이웃끼리 서로 물어 볼 수 있다. 결코 재수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위층 사람들 모두 출근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런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집에 있으면서도 일부러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 정말 다 이상해. 택배 잘못 받았는지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어디서 이상한 여자 취급이야. 아침부터 사람 기분 나쁘게.”

  연수는 가방에 세면도구를 넣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선배에게 내려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언제는 택배기사 잘못이라며? 이제는 위층이야?”

“일차적으로 택배기사 책임이지만 잘못 받은 사람도 자기네 꺼 아니면 주인찾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구?”

“잘못 받았으면 갖다 쥤겠지. 당신도 입장 바꿔 생각해봐. 그런 말 들으면 똑같이 기분 나빠할 걸. 장미 그게 뭐라고 며칠 째 잠도 못 자고 이 난리냐?”

“장미 그게 뭐라고 이 난리냐구? 지금 내 입술 안 보여? 다 터져서 쓰라려 죽겠어! 말도 못 하고 밥도 못 먹겠다구!”

“알았다 알았어. 내가 하나 사 줄게. 그까지 것 얼마나 한다고. 우리 없이 살아도 사람들 의심하면서 그렇게 살지 말자. 다 우리처럼 사는 사람들이야.”

  연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 이사 오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기운도 안 좋은 것 같고 사람들 눈빛도 불안해 보인다고 먼저 말했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얼굴한 번 본 적 없는 여자 편을 들고 하나마나한 시답잖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빨이나 닦아! 입에서 똥냄새 나니까!”

  남편은 연수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가방에 나머지 짐을 챙겨 갔다 온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연수도 남편이 나갈 때까지 식탁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연수는 쇼핑몰 사이트에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쇼핑몰에서 전화가 왔고 상담원은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쇼핑몰이 되겠다고 말했다.

  보상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연수는 다시는 그 쇼핑몰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했지만 접수 건수가 많아 처리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왔다. 택배회사에 다시 전화했다. 시정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지역 담당자 책임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쇼핑몰이든 택배회사든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았다.

  충주에 도착해 있을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해 달라는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연수는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산대 컨베이어에 콩나물, 라면, 참치 통조림이 뒤섞여 자신을 향해 달려들 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 사이에 누런색의 택배상자가 보였다. 주변의 물건들이 한두 개로 겹쳐보였고 계산기 키보드의 숫자도 희미하게 보였다. 적립금과 쿠폰을 사용하는 결제를 간신히 끝냈다. 다음 고객이 올려놓은 물건의 바코드를 찍는데 좀 전에 계산을 마친 고객이 영수증을 들고 왔다. 커피믹스 한 통을 샀는데 두 개로 계산되었다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자신의 돈을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따져 묻는 여자에게 연수는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물건이 쌓인 컨베이어는 계속 움직이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고객의 사탕 한 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결제를 취소하고 다시 계산해드리겠다고 머리까지 숙였는데 여자는 고객센터에 가서 보상을 요구했다. 보상은 상품권 지급이었다. 월급에서 제했다. 손가락 하나 잘못 움직여서 오천 원이 날아갔다. 모두 자신의 실수였다. 연수는 자신의 실수에 책임을 진 것이다.

  그런데 택배기사는 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걸까. 택배회사에서는 직원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걸까. 나는 이삼천 원 때문에 고개도 숙이는데, 허리도 굽히는데, 끝까지 책임지는데 그런 나는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계산대 밑에 놓아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택배기사의 전화였다. 연수는 휴대폰을 들고 마트출입구 쪽으로 빠져나갔다.

“어제 일부러 찾아갔는데 안 계시더라구요.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택배기사는 어제 영남빌라에 택배배송이 있다고 말했다. 연수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배송 때문에 저녁에 온다더니 이제는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을 바꿨다. 남편은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집안에서 옆집 벨소리도 다 들리는데 택배기사가 벨을 눌렀다면 안 들릴 수가 없었다. 택배기사는 어제 집에 오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기사님, 택배회사는 기사님에게 물건을 넘겼어요. 서류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구요. 하지만 저는 그 물건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면 기사님이 실수하신 거잖아요. 일단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택배가 좀 많아야죠. TV도 안 보세요? 택배하다가 사람도 죽잖아요.”

  좀 많아야죠, 좀 많아야, 좀 많아 택배기사가 하는 말이 욕처럼 들렸다.

“그리고 제가 택배 십 년짼데 단 한 번도 실수 한 적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뇨? 그게 말이 되나요? 그러면 그건 사람이 아니죠.”

“일단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구요. 지금 바쁘니까.”

  전화는 일방적으로 툭,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었다. 일부러 자신의 전화를 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는 자신 때문에 힘들다는 듯 내쉬는 숨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만날 이유가 없었다. 고객이 택배를 받지 못했다면 택배기사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상품 금액만 보상해주면 끝날 일이었다. 택배기사도 그 사실을 알 텐데 똑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보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계산기 키보드를 쳐다보느라 눈이 빠질 듯 아팠다. 다시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오천 원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주말 저녁이라 매장 안에 사람들이 많았다.

  한창 붐비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또다시 과장의 호출이 왔다. 연수는 매장에서 택배기사와 통화하지 않았다. CC-TV에 찍힐 영상도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과장은 저번과 똑같이 회전의자를 돌려 앉았고 연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번처럼 그 시간이 길다고 느껴졌을 때 과장은 연수가 일하는 5번 계산대 앞으로 고객의 민원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고객에게 사과하는 직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연수가 계산을 잘못해서 상품권을 받아간 여자였다. 연수는 그 여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허리까지 굽혔다.

“이연수씨는 사람이 말하면 못 알아 들어요? 사람이라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무 중에 통화나 하니까 이런 민원이 들어오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 계산대 밑에 핸드폰 올려놓지 마세요. 꺼내지도 말라구요. 요즘 가뜩이나 매출도 없는데.” 과장은 연수를 책상 앞에 세워 놓고 말 안 듣는 학생 다루듯 이야기했다. 나도 사람이 말을 하면 알아 듣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매장 안에서는 택배기사와 통화하지 않았다. 실수를 인정했고 고객에게도 정중히 사과했다. 그 사실은 오천 원 상품권이 말해준다. 그리고 매출이 없는 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계산원일 뿐이다. 연수는 과장에게 하나하나 반박할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볼펜은 왜….”

  연수가 숨을 내쉬고 말을 하려는 순간 책상 위에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과장은 회전의자를 돌려 앉았다. 나가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계산대 밑에 놓아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아닌 택배기사의 전화였다.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연수는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 계산대 앞에 서서 몸을 낮추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택배예요. 엘리베이터 안이라 전화가끊겼어요. 영남빌라 오전배송이니까 내일 열한 시쯤 갈게요. 집에 있는 거죠?”

  영남빌라는 오후배송만 한다고 말한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다. 택배 기사는 또 다시 말을 바꾸었다. 계속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이제까지 통화했던 모든 말들이 거짓일지 몰랐다.

“영남빌라는 오전배송만 한다구요? 그럼 이제껏 오후배송만 했다는 건 뭔데요?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말 바꿔요? 이랬다저랬다 사람 가지고 노니까 재밌어요? 재밌냐구?”

  택배기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숨소리 사이사이 억지로 참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주고받는 말소리도 어렴풋하게 들렸다. 어떻게 들으면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택배기사는 처음부터 집안에 있었다. 연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알았습니다. 오늘 끝나는 대로 가겠습니다.”

  존댓말을 하고 있지만 어금니를 깨물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쌍년.”

  전화를 끊으려는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금니를 깨문 그 사이로 한숨처럼 내뱉는 소리였다. 아주 작아서 놓칠뻔 했지만 연수는 똑똑히 들었다. 분명히 쌍년이었다.

“저기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곧 간다고 했잖습니까! 곧 간다구요!”

  택배기사는 목소리가 커졌을 뿐 백 번도 더한 말을 또 그대로 반복했다.

“아니, 니가 지금 쌍년이라고 했잖아! 이 씨발놈아!”

  연수는 자기도 모르게 악을 썼다. 순간 매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정지된 CCTV 화면 같았다. 계산대에 물건을 내려 놓던 사람이 연수를 힐끔거렸다. 카트를 앞에 놓고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바라보았다. 몇몇 사람들은 귀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연수는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끄면서 의자 밑으로 내려앉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택배기사의 고함 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매장 안의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라인에서 일하는 김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연수는 계산대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김에게 조퇴 처리를 부탁하고 연수는 마트를 나왔다. 택배기사는 자신을 모욕했다. 이 정도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었다. 통신사에 연락해서 택배기사와 나눈 통화기록을 모두 요구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수사는 언제쯤 시작될까. 마무리는 언제쯤 가능할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경찰서는 통신사에, 통신사는 쇼핑몰에, 쇼핑몰은 택배회사에, 택배회사는 택배기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결국 연수는 다시 택배기사를 상대해야 했다. 서로 욕설을 내뱉는 통화를 반복하고, CC-TV에 찍혀 과장에게 불려가고, 그러는 중간 중간 계산 실수가 이어진다. 고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머리를 숙이는 쪽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일 출근하면 당장 과장의 호출이 있을 것이다. 매장안에서 욕까지 했으니 자신은 이제 정말 사람도 아니었다. 출근하는 대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장에게 볼펜 끝에 대해 따져 묻고 징계를 받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월급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그만 두면 한 달 아니 몇 달 뒤에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월급은 받고 그만 두고 싶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마트에서 일하면서 이제 껏 단 한 번도 월급을 밀린 적이 없었다. 계약직 계산원이 잘리지 않고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건 요즘 같은 시국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트의 근무 환경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구내식당도 있었고 휴게실 소파에서 잠깐씩 눈을 붙일 수도 있었다. 과장만 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도 무난했다. 연수는 마트를 그만 두고 싶지 않았다. 연수는 해안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어스름이 내리는 바닷가는 캄캄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디쯤에 시선을 고정했다. 장미오일을 주문하고, 택배를 받지 못하고, 택배기사와 싸웠던 시간들이 하나둘 지나갔다. 택배 하나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다. 한없이 곤두섰던 마음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바쁘게 일하는 택배기사에게 계속 전화를 했고 같이 욕도 했다. 자신도 택배기사의 명예를 훼손한것이다. 서로 주고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자신이 전화하지 않으면 택배기사가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잘못 배송한 택배도 지금 빌라 어딘가에 있었다. 택배기사가 101호에 배송하지 않았을 뿐 빌라 어딘가에 갖다 놓은 건 분명했다. 빌라에 사는 누군가가 잘못 배송된 장미오일을 가지고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연수는 이웃에게 장미오일을 건네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나눈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부하고 후원하는 세상이었다. 연수는 그 이웃이 입술이 자주 부르트고 건조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습효과가 뛰어난 장미오일 따위 안 바르고 안 마시면 그만이었다. 꿀이 함유된 림밤도 아직 남아 있었다. 연수는 택배를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제 택배 하나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내일부터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맞았다. 배가 고파진 연수는 오일 파스타를 먹고 후식으로 핸드드립커피를 주문했다. 혼자 먹은 저녁이 얼추 쌀 10kg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그동안 택배 때문에 애 쓴 걸 생각하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마친 남편은 집에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가진 돈도 없지만 가진 빚도 없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할 터였다.

  연수는 빌라 공터에 차를 세우고 삐걱거리는 공동현관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천장에 센서 등은 여전히 깜박거릴 뿐 켜지지 않았다. 번호 키를 누르려는데 현관 앞에 누런 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라비 앙 로즈‘에서 보낸 장미오일이었다. 택배 상자 옆에 작은 종이가방이 함께 놓여 있었다. 연수는 가방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택배를 받고 바로 출장 가는 바람에 전화도 못했다고 너무 너무 죄송하다는 말이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연수는 메모지 끝에 요즘은 면역력이 최고라며 먹고 힘내시라는 스마일 표시를 보았다. 가방 안에는 홍삼원액 세 팩이 들어 있었다. 택배상자와 홍삼원액이 든 종이가방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했다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던 택배가 왜 지금 자신 앞에 나타나는 걸까? 이웃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연수는 택배상자를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101호?”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와 대차바퀴 구르는 소리, 엘리베이터 도착 벨이 울리면서 멀어지던 목소리였다. 연수는 택배상자를 든 채 뒤돌아섰다. 센서 등이 깜박거리는 복도에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 서 있었다. 마스크까지 썼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었지만 누군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연수는 짧은 복도와 계단을 사이에 두고 택배기사와 마주 보고 섰다. 두 사람은 꼼짝하지 않았다. 먼지 묻은 점퍼를 입은 택배기사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코팅이 벗겨진 목장갑을 끼고 있는 두 손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대차에 택배를 싣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상자를 문 앞에 놓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기계처럼 움직였을 그의 하루가 어둠 속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연수는 택배기사를 만나면 책임을 따져 물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그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과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연수는 그의 눈을 바라보려고 한 발짝 다가섰다. 지금 이 곳에 우리가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서로 이를 갈고 욕을 해가며 얼굴을 맞댈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택배기사 역시 한 발짝 다가섰다.

“101호?”

  다시 한 번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고 내뱉는 소리였다. 자세히 들으면 욕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목소리에는 고단함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 어떤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택배기사는 연수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택배상자에 고정되었다. 택배상자를 쳐다보던 눈동자가 다시 연수에게 향했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노란색으로 빛났다. 연수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택배기사는 그런 눈으로 빤히 쳐다볼 뿐 이빨을 드러내거나 달려들지 않을 것이다. 택배기사와 나, 우리는 이제껏 그래왔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뒤로 물러서는 연수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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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전개가 촘촘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남유리의 「하울링」과 박시안의 「택배」를 두고 고민했다. 두 작품 모두 ‘어두운 그늘 속에 있는 소시민의 삶’을 세세하고 촘촘한 묘사로 보여준다.

  「하울링」은 주인공의 삶이 과거로 부터 이행된다는 전개가 진부했다. 콜센터 상담원의 삶과 층간 소음, 엄마의 암진단과 화해의 과정이 참신하거나 독창적이지 못했다.

  「택배」는 코로나19라는 재앙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소시민의 삶이 얼마나 쉽게 피폐화되는가를 ‘택배’배송만큼이나 빠른 전개로 보여준다. 주제로 가는 전개가 촘촘하고 상황 묘사와 심리가 핍진하여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평소 바르던 립밤에서 조금 욕심을 내어 장미오일을 주문했을 뿐인데 일이 꼬인다. 계산원이나 택배 기사같은 직업군들은 ‘얼굴을 맞대고 만날 이유가 없’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상품 금액만 보상해주면 끝날 일’인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 곁으로 찾아온 코로나19가 위드 코로나로 존재하듯.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과 ‘불광불급’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선배 작가로서 부탁한다. 운이 닿지 않은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 장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