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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내규에 따라 / 곽재민

 

  올해 농번기부터는 주말 당직을 서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한다.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초과 방지라는 이유였고, 당직비 대신 평일에 하루 휴무를 받게 됐다. 총무과 박 대리 말로는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것이 실상이었다. 규정이 바뀐 뒤로 직원들은 더 이상 당직을 사고팔지 못한다. 주말 당직 거래는 회사의 개입 없이 직원들만의 규칙으로 형성되어 오랜 기간 유지되어왔다. 육아하기 바쁜 직원들은 주로 당직을 팔았으며, 홀몸인 나는 그들의 당직으로 용돈벌이를 했다. 파는 쪽에서 돈을 지불했던 이 시스템에는 당직비 8만원에 추가적인 값을 얹어주는 규칙이 존재했다. 공휴일이 낀 당직은 기본 당직비에 7만원을 얹어 팔기도 했다. 나는 최대 15만원까지 들어오는 당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작년엔 당직으로만 총 279만원을 벌어들였다. 자식이 있다고 해서 당직을 기피하지만은 않았다. 아들만 둘인 김 계장은 핸드폰을 만져도 구박할 사람이 없는 당직을 좋아했다.

이제 당직은 정해진 순번이 오면 싫은 티를 내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당직을 선다고 해서 평일에 주어진 휴무를 편하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휴무를 금요일에 쓰는 게 싸가지 없다는 말이 돈 건 규정이 시행된 지 2주 만의 일이었다. 농번기인데 농민들을 챙겨야지 혼자 쉬는 건 싹수가 없다는 말은 얼마 전인 4월 초에 나왔다. 차장님은 그런 불만들을 말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나는 그런 차장님의 성격을 고려하여 심리적으로 여유로워지는 금요일에 그를 찾아갔다. 평일에 예약된 진료를 보기 위해선 휴무를 신청해야 했다. 차장님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3월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준 뒤에야 화요일 휴무를 승인해줬다. 오늘 집을 나선 건 진료 예약시간에서 2시간30분 이른 7시였다. 경부고속도로가 출근길인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약간의 정체를 겪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시간이 점차 늦춰졌다.

서울병원장례식장 앞 주차장이 만석인 탓에 병원 주차장까지 붐볐다. 조문객을 태운 버스가 내 앞에서 주차관리원과 한참이나 씨름했고, 관리원은 짜증을 토해내듯 호루라기를 요란하게 불어댔다. 장례식장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버스에서 내린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장례식장까지의 인솔을 시작했다. 버스기사는 내가 주차를 마칠 때까지 관리원과 실랑이하더니 이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금방 나올 건데 왜 요금을 받니 마니 하며 싸운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돈을 덜 냈는지 관리원은 버스를 붙잡으려고 도롯가로 달려 나갔다. 버스가 이를 무시하자 그의 호루라기 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주차장에 있던 사람들은 주차관리원의 융통성을 논했지만, 나는 그가 잔돈을 미처 다 받아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큰 병원이다보니 주차장부터 센터까지의 안내 표시가 잘되어 있었다. 신체 부위별로 서관·동관·신관으로 나눠져 있고 7층부터는 입원병동이 있어 각 관의 왕래가 가능했다. 내가 가야 할 암센터는 서관이었다. 접수처에서 번호표를 뽑았을 땐 예약된 진료시간보다 40분 이른 8시50분이었다. 타지에서 올라온답시고 서둘렀는데 내 차례가 오기까진 벨이 27번이나 울려야 했다. 9시가 되자 3개의 창구에서 벨이 동시에 울렸고, 불안한 기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걸어 나갔다. 한명은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순서를 놓쳐 번호표를 다시 뽑아야 했다. 치열한 창구에 비해 내 대각선에 앉아 있는 60대 남짓의 부부는 꽤나 여유로웠다. 후두암에 걸려 목소리를 잃은 남편이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손가락으로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창구가 개방되고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그는 마이크로 보이는 보조장치를 목에 댔다. 기계음이 섞인 경상도 사투리는 대기실 인원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는 어젯밤 자신의 목에 난 구멍을 통해 벌레가 들어왔다고 하소연했다.

항암치료의 잔혹함을 상상하던 중 내 차례가 왔다. 창구에선 내가 초진에다 예약자이기 때문에 번호표를 뽑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곧이어 간호조무사로 보이는 여자가 담당의 진료실 앞으로 안내했다. 진료실 앞 팻말엔 내 담당의의 진료시간이 쓰여 있었다. 오전은 월·화·목, 오후는 월·화·수·목 진료를 보는 의사였다. 벽 한편엔 간호사들의 당직시간이 조그맣게 써져 있었고, 그들의 당직은 누구 하나 불평이 없을 법하게 짜였다. 적어도 내가 있을 동안 병원에선 당직을 서로 사고팔려는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으며, 팻말은 그런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표시로 보였다.

습관처럼 뱉어대던 각혈이 의심스러워진 것은 작년 초부터였다. 짠 음식을 먹을 때면 목구멍이 갈라져 피가 잘 났기에 제대로 된 원인은 못 찾고 애꿎은 양념만 줄여나갔다. 그 결과 식탁엔 살짝 데친 풀떼기들이 주를 이뤘다. 한달 전엔 선지해장국에나 있을 법한 검붉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병과의 공생 사실을 알게 된 건 농촌서 비교적 여유로운 3월 중순, 회사가 근무시간에 보내줬던 건강검진 때였다. 검붉은 덩어리에 관하여 이야기하자 의사는 추가적인 컴퓨터단층촬영(CT)을 권했고, 늦기 전에 시간 내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해줬다.

진료 대기자 명단이 띄워진 화면 속 작게 위치하던 내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커졌다. 이*민. 가운데를 가려준 덕에 부끄러움을 달랬으나, 행동이 굼떴는지 간호사가 내 이름 석 자를 크게 외쳤다. 의사는 대학병원에서 팩스로 보내준 건강검진 결과를 창에 띄워놓고 나를 맞이했다. 그는 흡연 여부를 비롯하여 병을 유발시킬 만한 각종 의심사항을 체크한 뒤, 대뜸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물었다.

“농민들을 상대로 하는 회사에 농약판매 담당으로 있어요.”

“그게 전이되는 속도를 높였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혹시 시골에서 자라셨나?”

“고등학생 때까지 시골에 있었죠. 부모님은 농사꾼이셨고요.”

그가 보여준 논문은 농약과 암의 관련성을 다뤘다. 통계자료는 농업인 부모가 농약에 노출될 경우 자식의 암 발생 확률이 49%가 상승된다는 걸 짚어줬다. 부모님은 풀을 잘 죽이던 ‘그라목손’이 없어진 걸 한동안 아쉬워했었다. 사업장을 찾는 농부들 중 몇몇은 여전히 ‘그라목손’을 찾는다. 이 약은 독성이 강한 만큼 각종 잡초를 잘 죽였다. 그만큼 인간에게도 독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라목손’이 유통금지품목에 오르자 농민들의 자살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는 뉴스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폐암 2기입니다. 종양의 크기로 보아 절제를 통해 치료가 가능한 상태예요. 다만 전이가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르니 한달간은 통원하며 폐절제술을 준비해야 돼요. 그 후엔 수술을 위해 내원을 마쳐야 하고.”

“입원해야 될 정도로 회복이 오래 걸리나요?”

“절제 후 회복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웬만한 회사면 규정상 그때까지 병가 처리가 가능할 겁니다.”

종양의 지름은 6㎝였고, 전이가 이뤄지지 않도록 수술이 필요했다. 의사는 수술 2주 전까지 담배를 줄여달라고 요구했으며 과로하지 않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내가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단 걸 눈치챘는지 폐암과 절제수술에 대한 정보 및 주의사항이 담긴 책자를 건네주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폐암은 4기가 돼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면 회복은커녕 집이며 직장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죠.”

의사는 4일에 한번씩 통원할 것을 권장했지만, 한달 동안은 일주일에 한번씩 통원을 하고 병가 절차가 마무리되면 내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수납처에서 지속적인 출입을 위한 정기차량 등록을 마친 후, 바로 옆의 제조실에서 흉통을 줄이기 위한 약을 처방받았다. 약은 날짜별로 양이 달랐으며 빨간색 캡슐약은 매일 아침마다 먹어야 했다. 정기차량 등록은 환자가 되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약을 복용한 뒤 피곤함과 어지러움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심해진다고 해서 과용하면 안됩니다.”

병원 대기실 한편에서 ‘아침’이라 적힌 봉투 속 약을 머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통원을 하려면 주말 당직을 매주 서야 했다. 그래야 휴무 때 눈치 보지 않고 병원에 올 수 있을 테니까. 알약을 삼키며 병원을 다니기 위해 무보수의 당직을 매주 서는 것이 맞을지 고민했다.

병원 측에서 흡연장을 의도적으로 멀리 지었는지 암센터에서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장례식장 앞에 마련된 흡연장은 향이 여러개 꽂힌 향로와 사뭇 닮아 있었다. 사람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댈 뿐이었다. 한명은 운구를 앞두고 있는 듯 차키를 손에 쥐고 있었고, 그가 담배를 입에 댈 때마다 차키에 매달린 고리들이 부딪히며 구슬픈 리듬이 형성됐다. 담배를 피우며 알게 된 사실은 조문객용 주차장은 무료라는 것이다. 조문객을 태운 버스기사와 병원 주차관리원이 언성을 높인 이유였다.

평일 점심이기에 경부고속도로가 전혀 막히지 않았다. 40분을 내리 달려 IC를 빠져나온 뒤 1번 국도를 타고 20분 정도 마저 가다보면 도롯가에 비료와 파레트가 가득인 사업장이 자리하고 있다. 집 대신 회사로 돌아온 건 병가신청서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곧바로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병가신청서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어 보였다. 농번기라 점심임에도 비료를 실으러 온 트럭들이 많았다. 나를 손님으로 착각한 선배들이 수저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반찬을 집어 먹었다.

“잘됐다, 성민아. 우리 밥 먹을 때까지만 창구 좀 봐줘, 금방 먹을 거야.”

농자재 진열대 앞에서 한 노인이 서성였다. 허리와 귀가 불편한 김씨 할아버지는 내가 살던 화정리에서 포도와 연꽃을 키웠으며, 친구들과 연못에 들어가 놀 때면 멀리 있는 자신의 집에서 불호령을 내리던 사람이었다. 그와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목에 힘을 줘야 한다는 건 어린 시절과 변함이 없었다. 아까 먹었던 약 덕분인지 평소 목에서 느껴지던 이물감이 덜했다.

“포도약 줘. 그리고… 또 까먹었네. 맨날 여기 도착만 하면 잊어먹어.”

“포도약은 몇 차분 드려요?”

“아이, 한차면 되지. 허리 아파 가지고 농사도 많이 못 지어.”

“다른 건 생각나셨어요? 살충제, 살균제, 비료. 뭔지 기억 안 나세요?”

“몰러, 나중에 다시 와야지 뭐. 인자 집사람도 없어서 집에 있어봐야 심심헌디.”

“그러셔, 다 해서 5만200원이요.”

“아이고, 뭐가 이리 비싼겨? 병은 보이지도 않는구만.”

“병이 보이고 약을 주면 늦은 거예요. 잿빛곰팡이약이 살충제보다 조금 더 비싼데, 원래 살충제보다 살균제가 더 비싸요. 예방 차원으로 주시는 게 좋아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농약 가격이 찍힌 포스기만 쳐다보았다. 꽃잎이 떨어질 때면 열매가 맺힘과 동시에 나무에 있던 벌레들이 각종 병을 옮기게 된다.

“결제는 외상으로 하실 거예요?”

“아이, 외상이지 그러엄. 농사꾼이 4월에 돈이 어딨나, 다 끝나야 만지지. 것도 요새 과일값이 죄다 떨어져서 자식들이 주는 용돈만치도 못혀.”

약을 챙겨주고 돌아왔을 땐 선배들이 식사를 마친 뒤 책상을 정리하던 와중이었다. 과장님은 음식을 치우다 슬그머니 빠져나와 정수기 앞에서 물을 한잔 들이켰다.

“저, 과장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내가 화상병 신고가 들어와서 화정리 이장댁 가야 되는데, 가는 길에 얘기하자. 괜찮지? 차 시동 걸고 있을 테니까 화상병 방제 현황 서류 좀 챙겨주고.”

휴무에 일을 나가는 것은 껄끄럽지만 단 둘이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터라 마다하지 않았다. 농가 전체의 문제를 야기하는 화상병에 관해선 병해충 담당인 내가 가는 게 업무상으로도 편했다.

지난 금요일까지만 해도 잘 나오던 프린터의 글씨가 갑자기 밀려서 나왔고, 잘못됨을 인지한 프린터가 연속해서 다섯장을 토해냈다. 프린터가 글씨를 찍어낼 때마다 탄내가 조금씩 올라왔다.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그나마 알아보기 좋은 한장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덕산역 사거리에 도착할 즈음, 화요일에 휴무를 써야 했던 이유부터 오늘까지의 일을 과장님께 고백했다.

“통원 때문에 주말 당직을 매주 서겠다고?”

“한달간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오월 중순에는 병가신청서를 내려고요.”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만, 이 일 끝나고 부장님한테 화상병 상황 보고할 때 잘 말해볼게. 부모님 많이 놀랐겠다. 안 그래도 아버님 편찮으신데.”

부모님에겐 상황이 정리된 후에 말씀드릴 생각이다. 4월이면 배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던 화정리에는 어느새 공장 서너개가 들어왔다. 그중 한곳인 건호식품 공장에선 연기를 맹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언덕배기에 살던 박씨의 자두밭은 반도체배터리 공장에 물건을 대주는 하청업체의 창고가 된 지 오래다.

아버지는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 시골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중심지에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는 성공로와 일성대로를 건너 시내로 이사를 갔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시골집까지 처분한 부모님은 밭에 농막을 지어놓고 주말마다 화정리로 건너가며 배밭을 관리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는 고정적인 수입을 위해 시내 외곽에 텃밭 가꾸는 사람들을 위한 농약방을 차렸다. 이는 자연스럽게 배밭의 관리 소홀로 이어졌는데, 문제는 시골 사람들이 이걸 아니꼽게 봤다. 도시로 이사를 갔으면 읍과 리에서 주는 혜택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시골 사람들과의 왕래가 줄어들자 동네에선 땅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방치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기어코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이 와서 부모님의 밭을 확인했다. 결국 부모님은 경고를 받은 채 화정리 밭에 발목이 묶여버렸다.

마을 전체에 병이 퍼졌다. 농부들은 밤중에 뛰쳐나와
허겁지겁 제사상을 차렸으나 그 위엔 온통 배뿐이었다.

어느새 난 부모님의 밭 한가운데에 서서
불길에 휩싸인 채 하염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농약방을 정리하곤 매일 30분 거리를 왕래하며 밭을 관리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는 5년 전, 화접을 하던 도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어머니 혼자서 1년을 버텨보았지만 넓은 배밭을 혼자 관리하기엔 힘이 부쳤다. 결국 부모님의 배밭은 4년 전, 연고도 없는 용인 사람에게 팔렸다. 다리가 마비되었던 아버지는 재활을 통해 보행기를 짚고 걸을 정도로 회복되었지만 가끔 발작을 일으킨다. 부모님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고, 내겐 상황이 정리되면 말을 전하는 습관이 생겼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이장은 용인 사람에게서 받은 대접을 동네방네 자랑하곤 했다. 이장이 농지를 관리해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용인 사람 쪽에서 지불하는 모양이었다. 이장은 관리 대신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잘 둘러대는 쪽을 택했으며, 그 뒤론 경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가끔 농약을 배달하러 가는 길에 보면 잡초들은 무성하고, 나무는 관리를 하지 않아 배 꽃잎에 맥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소문은커녕 밭을 들쑤시려는 사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가 덕산에 직장을 잡자 어머니는 그놈의 시골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한탄했다.

불에 타지 않아도 검게 되는 건 폐뿐만이 아니다. 화상병에 걸린 나무를 보면 악귀의 존재를 믿었던 조상들이 이해가 된다. 병에 걸리면 나뭇잎이 점차 마르고 검게 변해간다. 오죽하면 화정리에서는 아직도 농사철에 굿을 할까. 이장댁 배나무들이 화상병에 걸린 것은 올해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이장은 마을회관 앞에서 막걸리를 들고 우리를 기다렸다.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시골은 소문이 돌면 술자리가 열린다.

“얘들 내 배나무밭 보러 온 겨. 화상병이면 죄다 베어야 하지?”

“규정상 어쩔 수 없죠.”

“고작 몇 그루 가지고 과수원 전체를… 참나.”

화상병은 사과·배와 같은 과수에 발병되는 병이며 암과 마찬가지로 치료제가 없어 걸린다면 해당 농가에 비상이 걸린다. 비·벌·인간 등 다양한 감염경로가 존재하는 탓에 방역이 쉽지 않다. 예방법엔 정부에서 공급하는 방제 스프레이 정도가 있는데 이것마저도 테스트 단계다. 나라에서 준 방제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은 채 화상병에 걸리면 농작물보험을 들어도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는 화상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뿌릴 것을 권고했으나 이장은 스프레이를 수령하지도, 뿌리지도 않았다. 방제 스프레이를 각 농가에 전달했을 때 문의전화가 빗발쳤는데, 이장이 화상병 스프레이를 뿌리면 과일의 당도가 떨어진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탓이었다.

화상병은 확산이 순식간이라 마을 전체에 퍼지지 않으려면 5%만 감염되어도 해당 밭의 나무를 다 베어내야 한다. 베어진 나무들은 불태운 뒤, 땅 밑에 묻어 병의 확산을 막는다. 화상병에 한번 걸린 땅은 재발 가능성이 있기에 배와 사과는 못 심게 된다. 배만 30년 키우던 월정리 김씨의 밭은 고추밭으로 바뀌었다.

이장댁 배밭에 화상병이 의심된다며 신고한 사람은 이장이 아니었다. 이장은 담배연기를 머금은 채 과장님의 차에 올라탔고, 본인 배밭까지의 안내를 자처했다. 나는 기록해야 될 것들을 되새기며 뒷좌석에 앉았다. 농지 주소, 재배작물, 면적, 피해작물 사진. 핸드폰에 저장 가능한 용량이 부족했다. 조만간 사려 했던 양복과 구두 사진을 지웠다.

덕산 전체에 공장이 대거 들어서면서 나이가 든 농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땅을 정리해갔지만 이장은 자신의 배밭을 팔지 않았다. 그는 도로 개발만 되면 도롯가에 있는 배밭이 효자노릇을 할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 이장의 밭은 예년과 다를 것 없이 꽃이 올라오고 있는 4월의 배나무밭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밭의 전경 사진을 한장 찍은 뒤, 화상병에 걸린 나무들을 찾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장님이 20m 남짓한 거리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멀리서 볼 땐 푸릇했지만 내려와서 보니 검게 물든 잎이 쉽게 눈에 띄었다. 과장님은 밭에 화상병 선고를 내렸다. CT 사진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암세포를 찾던 내게 의사가 “이게 암세포예요”라며 폐암을 선고한 것처럼.

화상병 방제 현황 수정을 위해 서류를 꺼냈다. 읍과 관련된 서류를 볼 때면 작은 읍에 이렇게 많은 리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송천리, 불암리, 일신 1리, 2리… 40명의 이장들 이름 외우는 데에만 3년이 걸렸고, 난 여전히 계장이다. 화정리에 엑스 표시가 찍혔다. 과장님은 배밭을 돌아다니며 병에 걸린 나무 4그루를 더 찾아냈다. 50평 남짓 돌았음에도 5그루가 발견되었으니, 2000평 가까이 되는 이장의 배밭엔 이미 화상병이 완전히 퍼졌을 것이다. 이장은 담배 한대만 태우자며 과장님을 멈춰 세웠다.

“보상금은 얼마 주는 거냐?”

“방제 스프레이를 수령하지 않으셔서… 보상금은 안타깝게도 0이죠. 정부 방침이라 저희도 어쩌지 못해요.”

이장은 내 손에 있던 화상병 방제 현황 서류를 채갔다. 그는 배농사를 계속 짓고 싶은 눈치였다. 배는 추석설날 선물세트의 필수품이라 태풍을 맞지 않고 큼지막하게 키워내기만 한다면 여타 작물과 비교도 안될 만큼 큰돈이 들어온다.

“기껏해야 5그루 아녀, 저것들은 내가 베서 태울 테니까 넘어가자.”

“이미 퍼졌을 수도 있고요, 잠복균이 있을지도 몰라요. 괜히 마을 사람들 도와주시다가 병을 옮기실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이장 자리도 위험해질 거 아닙니까. 마을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요.”

농민들을 상대로 하는 회사의 특성상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당연했다. 고객들이 대거 탈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 입장에선 농민들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됐다. 그러니 지금 이장에게 웃으며 응대하는 건 단순히 내가 서비스업에 종사해서가 아닌, 그가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장에게 공손히 손을 내밀어 서류를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담뱃불로 서류에 구멍을 냈다. 조그맣게 뚫린 구멍을 통해 불이 번졌고 순식간에 서류를 태워버렸다.

“보여주기도 필요혀. 너네도 알고 있지? 시골 노인네들 소문 빠르단 거. 나중에 너희들 미복식당으로 와. 술 한잔 허자고. 사람들한테 별일 아니라는 문서만 보여주면 돼. 이 양반들, 대자보는 안 믿어도 공문서는 믿으니께.”

화상병에 걸린 나무 앞에서 타들어가는 종이의 모습은 악귀가 불태운 부적과 닮아 있었다. 화상병은 극히 드문 확률로 사람에 의해 전염될 수 있다. 이장댁 배나무가 화상병에 걸린 게 맞는다 하면 배가 주 작물인 화정리 입장에선 농사 도와주라고 뽑아놓은 이장의 존재가 불편해진다. 그에게 있어 배를 계속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장이란 직책 역시 유지해야 했다. 나는 그의 압박에 못 이겨 방금 찍은 사진들을 지웠다. 저장 가능한 용량에 여유가 생겨 경고문이 사라졌다. 이장은 대표님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과장님에게 비밀 유지를 약속받았다. 그는 병에 걸린 나무를 베고 가겠다며 우릴 먼저 돌려보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과장님은 시동을 끄고 나서야 침묵을 깼다.

“내가 말은 잘 해보겠다만 병원 때문에 계속 당직을 서야 한다고 보고하면 권고사직 통보받을 것 같다. 돈 아끼겠다고 당직까지 무보수로 바꾼 회사인데 병가 신청은 받아줄까 싶어.”

권고사직을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연차를 쓰는 방법도 있지만 상부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괜히 더 눈길을 끌게 될 것이 분명했다. 과장님이 화상병 방제 현황 서류를 다시 프린트하려 했으나 프린터가 여전히 말썽이었다. 그는 내게 프린터 무상 A/S 기간을 알아보라고 한 뒤 총무과로 향했다. 이곳저곳을 만져봤지만 연거푸 밀린 글씨만 뱉어낼 뿐이다.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니 무상 A/S 기간은 2년 전에 끝났고,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A/S 기사가 내일 점심 즈음 갈 예정이며 현금으로 내면 수리비가 10% 할인이라고 덧붙였다.

과장님은 10분 만에 돌아와서 부장님이 나를 찾는다고 일러줬다. 권고사직을 당한다면 차를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과장님의 얼굴은 5년 전 내게 아버지가 화정리 밭에서 쓰러졌단 소식을 전해주던 얼굴과 닮아 있었다.

부장실에 가게 된 건 입사할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장님은 내 근무일지를 쳐다보며 나를 맞이했다.

“병원 가려고 매주 당직을 서면 너는 근무시간이 초과되고 우리는 꼼짝없이 징계를 받아. 내규가 그래. 회사가 굴러가는 구조도 알 텐데, 생각이 너무 짧은 거 아닌가?”

“….”

“정 과장 말로는 폐암 2기라고 하더라. 회사 분위기상 통원하는 것보단 입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서는 이번달까지 통원해도 큰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4월을 보냈다고 치자. 넌 결국 수술을 할 거야. 계속 굴러가야 할 회사 입장에선 일을 못하게 될 사람한테 월급의 60%를 기약 없이 주긴 힘들어.”

“….”

“두가지가 있어.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면 치료가 끝난 후에 경력직 우대로 재취업이 가능하게 해줄게. 만약 네가 병가를 통해 돈을 받겠다면 주겠지만, 회복하고 나서 네 자리가 그대로 있을지는 보장 못해.”

만약 절제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하고 내 입장에서도 하던 일이 편하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선 내 책상을 지켜야 했다. 권고사직은 자발적 퇴사임에도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부장님은 막내에게 인수인계를 부탁했고, 나는 재취업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뒤에 부장실을 빠져나왔다.

사직서 양식 게시물의 조회수는 578회고 병가신청서의 조회수는 125회다. 사직서는 병가신청서보다 많은 조건과 사유를 요구하지 않았고, 금방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사직서를 프린트하기 위해 총무과로 가서 프린터를 빌려야 했다. 부장실 근처에 있는 총무과 사람들이 금세 소식을 듣고 나를 측은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인수인계라고 해봐야 거창한 게 없었다. 이미 양식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입하는 방법만 알려주면 될 일이다. 그렇다보니 막내는 농약을 어떻게 처방해야 할지에 관해서 주로 질문했다. 진딧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병명을 단번에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똑같은 증상이라도 다른 병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위주로 알려줬다. 병이 보인 뒤에 약을 주면 의미가 없으며 예방이 중요하다고. 막내는 화상병인 걸 못 알아차리고 때를 놓쳤다가 읍 전체에 퍼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되면 얼떨결에 병해충 담당이 된 자신에게 불이익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평소라면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다그칠 일이었다. 나는 화정리 이장댁의 상황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걱정할 것 없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휴무날 회사에서의 모든 부탁을 처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마쳤을 때는 오후 7시였다.

출근시간이 길어지는 게 싫어 작년부터 일신 1리에 있는 보증금 500, 월세 30의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일신 1리에 오피스텔이 생기게 된 건 부동산 업자들이 이 동네가 개발될 거라며 노인들을 설득한 덕이었다. 인근의 송천리 노인들은 다음엔 자신들의 차례라며 개발이 진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죽하면 월랑리에 있는 점집은 자신의 땅이 개발될지 물으러 오는 손님들로 매주 문전성시라고 한다. 사기로 점쳐졌던 오피스텔사업은 주변에 공장이 많아진 덕에 남는 장사가 됐다. 하필 연초에 계약갱신을 하는 바람에 계약해지를 위해선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월세와 부동산비를 내야 했다. 몇몇 공장이 문을 닫은 탓에 남아 있는 방이 많아 최소 2달은 꼼짝없이 돈을 날리게 생겼다.

데친 풀 위주로 간단하게 저녁을 차려 먹은 뒤, 초록색 캡슐 약을 삼켰다. 그러곤 책상 앞에 앉아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넣어두었던 가상화폐를 정리했다. 가상화폐에 넣어놨던 당직비 279만원은 128만원이 되어 있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하여 즐겨찾기 된 사이트들을 갈아치웠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암환자 카페였다. 카페지기는 조만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환자 정기모임이 있을 예정이며 참가비는 만원이라고 공지했다.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눕자 가슴의 통증이 줄어들며 잠이 몰려왔다.

마을 전체에 병이 퍼졌다. 농부들은 밤중에 뛰쳐나와 허겁지겁 제사상을 차렸으나 그 위엔 온통 배뿐이었다. 피워놨던 향에 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타들어갔고 이내 제사상에 있는 배에 옮겨붙었다. 과즙이 흘러 불이 꺼졌으나 멍든 것처럼 배가 군데군데 까매졌다. 날아가버린 조그만 종이가 밭으로 불을 옮겼을 땐 내 주변에서 절을 올리던 농부들이 사라진 후였다. 어느새 난 부모님의 밭 한가운데에 서서 불길에 휩싸인 채 하염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내 앞의 조그만 상에는 과도와 멍든 배 하나뿐이었다. 난 본능적으로 멍든 부분을 도려냈다. 배 안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자다가 깼을 땐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아팠고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이 들었다. 취침 전에 먹어야 할 약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어지러움이 심해 움직이지 못했다. 멍든 부분을 잘라내는 건 어머니의 습관이었다. 좋은 배를 팔아야 했던 우리 집에선 멍든 배를 주로 식탁에 올렸다. 썩어가는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공복에 약은 좋지 않다 해서 오랜 기간 방치해뒀던 배즙과 함께 아침 약을 삼켰다. 정작 몸이 건강할 때 챙겨 먹지 않았던 건강식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병이 보이고 약을 주면 늦은 거라니까. 고집부리는 농사꾼들에게 줄곧 해오던 말이다.

마을 전체가 불타는 잔상은 머릿속에 꽤 오래 맴돌았고, 그건 멍든 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대충 차려입고 집을 나섰을 땐 12시 언저리였다. 본가로 가기 전에 회사로 향한 건 마지막 직업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사업장 입구 앞에 섰지만 바리케이드가 올라가지 않았다. 하루 사이 내 차는 회원 등록된 차량 목록에서 제외됐다. 이는 내 소속이 병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상기시켰다. 티켓 발권 버튼을 누르면서 업무책상의 내 이름이 병실 수납장 한편으로 옮겨지는 걸 상상했다.

개화기다보니 손님의 대부분은 인공수정에 필요한 꽃가루를 사러 온다. 화상병을 비롯한 각종 병을 막겠다며 약을 뿌려대다보니 배밭에 오는 벌들이 죽거나 모습을 감춘 탓이다. 그나마 사과에는 벌들이 달라붙어 자연수정이 가능한 상태지만 배는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서 화접을 통한 인공수정이 필수요소가 되었다. 점심시간인 사업장은 어제와 상황이 다를 게 없었다. 선배들은 밥을 먹고, 농사꾼들은 기다린다. 난 선배가 부탁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배 갈변약 좀 줘라.”

“지금 갈변약이요? 뭣 때문에 약을 주시려고.”

“일주일 새에 잎이 갈색으로 변했어. 전체가 그러는 건 아니고 몇몇 나무에서 보이는겨.”

“4월에 갈변이 나올 리가 없을 텐데. 혹시 화상병 아녜요?”

“아이, 농사를 몇 년을 지었는데 내가 갈변하나 못 알아보겄어? 내 밭엔 없어, 검은 잎 같은 거.”

화상병에 걸린 나무의 잎이 바로 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엔 잎이 말라가며 갈색이 되고 한동안 그 색이 유지되다가 검게 변한다.

“근디 이장댁 거기 화상병 아닌 거 맞어? 자기 말로는 끝까지 갈변이라 하는디, 잎 검은 거 내가 본 거 같거든.”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상당히 급한 일이 있는 제스처를 취했다. 서둘러 외상 영수증을 끊어준 다음 화장실에 가서 배즙을 토해냈다. 딸려 나온 가래에는 피가 잔뜩 섞여 있었고 검붉은 뭉텅이도 보였다. 검게 변해간 것들이 머릿속에 나열된다. 잎, 폐, 배.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60대 남성은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목에 뚫린 구멍에 벌레가 들어오는 걸 걱정했다. 벌레는 화상병을 옮기고, 우리는 농약을 쓰고, 난 농사꾼의 자식. 구역질이 멎었다. 화상병 방제고 권고사직이고 규정대로 진행된 건 하나도 없다.

창구로 돌아왔을 땐 A/S 기사가 고장 난 프린터의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가끔 걸리는 종이를 억지로 꺼내면서 뜯겨 나간 찌꺼기들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프린트를 할 때면 스멀스멀 올라오던 탄내의 원인이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정년퇴직 송별회와 권고사직의 다른 점은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공구세트 진열대에서 토치를 가져와 결제한 후, 간단한 목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영수증이 있어 주차비는 무료였다.

내가 향한 곳은 화정리 이장댁의 밭이었다. 밭 구석에 쌓여 있는 하우스 폐자재를 걷어내자 화상병에 걸려 베어진 5그루의 나무가 보였다. 벌레들이 더 이상 빨아 먹을 것 없는 나무에서 빠져나오던 와중이었다. 이장은 배나무를 아직 태우지 못하고 숨겼다. 밭을 태울 때가 한참 지나고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떼어낸다 해도 재발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게 불치병이다. 더 이상 회사 소속이 아닌 나로선 소문내지 않을 필요가 없었다.

병에 걸린 나무를 불태우려는 건 직업적 소명이다. 토치를 켜고 검게 변한 잎에 불을 붙였다. 불은 금세 나뭇가지로 옮겨붙었다. 곧이어 나무에 불이 번져 연기가 크게 피어올랐다. 그저 규정대로 진행되었어야 할 일을 바로잡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골은 소문이 돌면 술자리가 열린다. 화정리에선 조만간 잔치가 열리지 않을까. 


 

  <당선소감>

 

   시골과 이름 모를 별 사이, 수백광년 메우는 작가 되고파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겐 많았습니다. 농촌에서 일하며, 최대한 농민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게 영감이 되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시골에 소문이 돌았으니, 조만간 잔치를 열어야겠습니다.

우주 어딘가엔 불량행성이 있습니다. 항성을 공전하던 행성이었지만, 항성이 폭발하며 궤도에서 튕겨 나가 공허한 우주를 홀로 둥둥 떠다니는 행성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이들은 빛을 받지도, 빛을 뿜어내지도 않기에 관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제 삶은 궤도가 안정적인 행성과 가깝습니다. 주변인들을 공전하며 빛을 받고 그들과 함께 밀고 당기며 에너지를 주고받습니다. 과거 불안감을 느낄 때의 제 모습이 불량행성과 가까웠다면 이젠 궤도에 진입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라는 사람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공전하겠습니다.

서로의 문장을 믿으며 당신의 상상이, 당신의 문장이 가는 길을 언제나 함께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던 날 선뜻 호의를 베풀어주셨던 페이퍼맨 이종성 선생님,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저와 함께 소설을 써온 대성 준섭 병헌 주성 예솔 민지 형초 민, 계속 함께 쓰고 싶습니다. 가능성을 일깨워주신 김설원 선생님과 해이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족들, 무엇보다도 저를 믿어주신 부모님 정말 존경합니다.

온기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골과 이름 모를 별 사이, 수백광년을 메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1998년 충남 천안 출생
● 68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가작 수상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심사평>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의 주제로 모아가는 솜씨 놀라워

  늪을 건너 마침내 본심 테이블에 도착한 작품은 총 18편, 그중에서 15편은 아까 그 늪에 다시 모셔다드리고 마지막 3편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먼저 ‘너구리 죽이기’는 높은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물을 훔치려는 너구리와 작물을 지키려는 농부의 대결은 두 캐릭터의 대결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대결이기도 하다. 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넘보고 빼앗고 도발하는 이 유서 깊은 싸움을 작가는 긴장감 넘치게 구현해냈다.

 다음으로 ‘7년’은 케이팝(K-pop)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현대적 주제와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모정이라는 전통적 주제를 흥미롭게 엮어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너무 일찍 꺾인 아이돌, 코로나19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처럼 자칫 침울해지거나 비장해질 수 있는 상처 조각들을 세련된 단문으로 날렵하게… 에이, 그냥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재미는 소설 최고의 미덕 중 하나여서, 이 작품이 당선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올해엔 ‘내규에 따라’가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번지는 병(폐암과 과수 화상병, 그리고 토착 비리)을 가져다가 세태 비판적으로 엮어낸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우아한 흐름,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의 주제로 모아가는 솜씨, 결말의 단정한 인상, 그리고 툭툭 건너뛰는 문장들이 가히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역시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그 많은 미덕의 총합보다 재미가 있었다. 당선자께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독자를 통곡하게 만들든 웃겨 까무러치게 만들든 그 재미의 영토를 지금보다 멀리, 아주 멀리까지 넓혀나가시길 빈다.

심사위원 : 이순원, 박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