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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빅뱅 / 김영욱

 

오일장 구석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쌀 한 톨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고

뻥을 친다

화로에 불을 붙이고

페달을 밟으면

오래된 무쇠 로켓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발사 10초 전,

귀를 막고

두근두근

숫자를 세는 대우주시대

뻥이요,

블랙홀이 활짝 열려

쌀별들이 쏟아져

골목길도 넉넉해지는데

자꾸만 작아지는

내 마음

오늘은

내 꿈도 뻥 튀겨 주세요

말하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고

잠이 하얗게 쏟아지는

밤은 또 오고


 

  <당선소감>

 

   “안녕”, 내 작은 사람이 첫 인사를 건네요

 당선 소식을 받고 새 이가 날 때처럼 간질간질했습니다. 오래전부터 동시에 관심을 갖고 혼자서 요리조리 습작해보았지만, 과연 제 자신이 '아이의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꺄우뚱했습니다. 또한 '좋은 동시'란 어떤 것인지, 정말이지 수 백 번을, 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앓던 이를 뽑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눈을 마주 바라보려면 무릎을 굽혀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야만 아이의 시선이 가닿는 세상 곳곳을 같은 눈 높이에서 나란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제 안의 작은 사람을 불러내야 했습니다, '내가 과거의 네가 되고, 네가 미래의 내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볼 줄 아는,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니 진정한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 마음이 많이 아프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원망할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른다운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는 일의 어려움을 보고 겪고 느끼면서, 제 안의 작은 사람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웅크리고 있던 그 아이도 어느덧 제게 말을 걸어주고, 심지어 제 손을 꼭 잡고서 잘 살아가고 있다며 다독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아이 덕분에 세상 밖으로 한 발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해주니 좀 더 멀리 나가볼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다보니, 제 또래의 '작은 사람'들뿐 아니라, '다 큰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소중한 메시지란 걸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받아 적고 다듬으니, '동시'였습니다.

 잇몸을 뚫고 나온 새 이, 이것은 뽑지 말고 죽을 때까지 아껴 쓸 영구치입니다. 아니, 아니죠. 이것은 제 오랜 짝사랑이었으니 '사랑니'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고, 앞으로도 환하고 씩씩하게 자라나겠습니다.


● 1967년 서울 태생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 인하대학교 한국학과 한국문화콘텐츠 박사 수료
● 아동청소년 번역가로 활동 중



 

  <심사평>

 

  무한한 상상력과 빛나는 동심의 무늬

 책상 위에 놓인 900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신인들의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설렘과 근래 고양되고 있는 동시 장르의 관심 때문이다.

 수년 전만 해도 작품의 경향이 서정, 서경 또는 어린 날의 회억 등이 주류였으나, 올해는 달랐다. 예를 들면 생생한 삶의 현장과 문명적인 소재, 꿈과 상상의 소재 등이었다. 발상과 표현 역시 참신하고 이미지의 발현도 세련됐다.

 그러나 일부 작품은 사물의 유사성과 근접성을 활용하여 재치 있게 형상화했으나 재미에 그쳐 완성도는 떨어졌다. 사회적 관심에 대한 동심의 접목도 메시지 전달에 머물렀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강정희의 '내 말', 신영순의 '소리의 껍질', 김영욱의 '빅뱅'이다. 세 작품은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먼저 강정희의 '내 말'은 발상이 새롭고 입말체를 활용한 사실감이 맛깔스러웠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점층 되는 말의 변화에만 머물고 있어 아쉬웠다.

 신영순의 '소리의 껍질'은 사물을 조응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소리의 껍질'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형상화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례를 통합된 이미지로 창출하는 데는 미흡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영욱의 '빅뱅'은 흔히 다룬 소재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법이 아닌 우주적인 시각으로 다르게 접근했다.

 동심은 상상력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우선 '빅뱅'은 규모가 광대하고 꿈과 잘 맞아떨어진다. 동심의 공간도 동네에서 우주로 확대되었으며, 튀밥 역시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별이 된다. 익숙한 골목의 뻥튀기에서 발산되는 무한한 상상력과 동심의 무늬가 단연 돋보였다. 그리고 다소 투박한 시어는 약간의 흠이면서도 응모자의 진정성을 갖게 해 주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하청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