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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산타와 망태 / 임종철

 

혹시 너희들 그거 알아?
산타와 망태할아버지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다들 믿지 못하는 표정인데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봐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온 세상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잖아
그 많은 선물을 어떻게 다 만들겠어
처음엔 혼자 만들려고 했는데
도저히 날짜를 맞출 수 없어서

망태할아버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거야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데려가 일을 시키면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거든

크리스마스 하루만 빨간 옷을 입고
나머지 364일은 망태를 지고
일을 시킬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거야
평소에 굴뚝으로 드나드니까
몰래 데려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증거가 있냐고?
당연히 있지

우리를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할 때
둘 중 한 명을 꼭 부르잖아
선물을 안 준다거나 잡아간다고 겁을 잔뜩 주지

어른들의 입에서
태어난 둘은
틀림없이 같은 사람일 거야


 

  <당선소감>

 

   "동시,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 대해서 쓰는 것"

 운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로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은 늘 혼자 쓰는 일이지만 글감을 얻는 일은 예상치 못한 일에서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친구들과의 대화, 모르는 사람들의 한 마디, 누군가의 사는 이야기 등등 우연한 일들이 겹쳐서 저의 경험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모티브가 되었던 지점을 얘기해 주면 자신이 그런 말을 했었는지 되묻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적이고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때만 존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영원히 놓칠 수 있는 것들을 붙잡는 일입니다.

 무심코 어렸을 때 썼던 시들이 동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라는 말 자체에 아이를 뜻하는 ‘동(童)’자가 들어가서 그렇지 한참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동시를 쓰면서 느낀 점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 대해서 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린이가 읽어도 어른이 읽어도 양쪽 모두 다르겠지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것이 동시를 쓰는 매력일 수도 있고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어린이들을 위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동시, 동화, 그림책이 많습니다. 저에게는 하나하나 선생님이 되어 주었던 책들입니다. 이제 그 많은 책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길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도록 저의 글을 알아봐주신 이정록, 김개미 시인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동시를 쓴다고 하니 요 근래 조카들이 하나둘씩 태어나고 있는 것이 눈앞에 더 다가옵니다. 성준, 승현, 승우, 승재, 재하, 진우, 별이, 로한, 리호, 보아, 하윤이 뿐만 아니라 이미 커서 자라고 있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저의 동시가 부모님의 말 다음으로 익힐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1994년 화성 출생
●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익숙한 소재를 동시 속에 끌어들여 새롭게 해석한 재미

 259명이 1,300여 편을 응모해 주셨다. 자연이나 동물보다는 일상에서 가져온 소재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이 많았다.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을 것 같던 말놀이가 현저히 감소한 점과 환경과 기후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반적으로 시의 형태를 갖춘 작품은 많았으나 '동시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많았다. 어린이는 천진무구하지만 감정과 감성, 지혜와 사고를 고루 갖춘 탄성력 높은 존재다. 변화무쌍하며 때로 어른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사물의 이치와 본질을 꿰뚫는다. 이런 아이를 담아내지 못하고 그저 맑고 순진한 아이만을 담아낸 작품을 보면 안타깝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의 내면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분명 고요한 것과 정제된 것은 다르다.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만두' '밤송이' '그리고 상자' '산타와 망태'였다. '만두'는 삶의 현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좋았다. 그러나 시의 본령인 함축적 언어 운용에 있어서 한계를 보였으며 사고의 평이함과 내용의 빈약함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밤송이'는 치밀한 구조와 설계로 독자를 가시에서부터 시작해 껍질을 까고 밤송이 안으로 들어서도록 안내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감동으로 확장되지 못한 점과 응모한 다른 작품들과의 편차, 익숙한 화법, 예견된 상상력 등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상자'는 상상으로 특별한 공간을 설계하고 그곳에 생명들을 불러들여 빛으로 채우는 매우 동적인 작품이다. 생경하고 기이한 공간감이 매혹적이지만 다소 난해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산타와 망태'는 익숙한 소재를 동시 속에 끌어들여 흡입력을 높이고 새로운 관점과 해석으로 재미를 주었다. 수수께끼 같은 질문과 대답을 쌓아가면서 산타의 자루를 망태할아버지의 망태로 치환하고 망태할아버지의 망태를 산타의 자루로 치환했다. 독자를 끝까지 긴장시키며 마침내 두 할아버지의 정체를 통쾌하게 까발렸다. 억압과 금지에 시달리는 현실이 망태의 낮이라면, 꿈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환상은 산타의 밤이다. 망태의 낮과 산타의 밤은 한 번도 끊긴 적 없이 흘러온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선이다. 벌과 선물의 출처가 같을 수밖에 없다. 인간과 시간이 절묘하게 결합된 "할아버지"라는 대상을 통해 질서, 권력, 제도, 시스템의 양면성을 비범하게 드러내보였다.

 함께 응모한 '더블 클릭' '종례시간'에서도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아이들의 애환과 발랄함을 잘 담아냈다. '산타와 망태'를 당선작으로 올릴 수 있어 즐겁다. 동시는 읽기는 쉬워도 감동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쓰기는 쉽지 않다.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려면 마음을 다해 써야 하고 감동에 다가서려면 영혼을 꺼내 써야 한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용감하고 줄기차게 전진하며 '동시마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시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개미, 이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