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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크리스마스 동화 / 정정안

 

불빛이 하나씩 늘어가

친구들이 모이는 깊은 밤

유령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꼬마유령의 이야기를 아니?

덮어쓴 하얀 천이 바닥에 끌리는

발소리 없이

굴뚝에 오르고

트리 주변을 걸어 다니지

누구도 얼굴을 본 적 없어

두 발을 본 적도 없단다

하얀 천 때문에

"꼬마유령은 언제 어른이 되나요?"

글쎄, 그건 아무도 몰라

꼬마유령은 아직도 꼬마유령이거든

그날 밤

졸린 눈을 비비던 아이는

몰래 대문을 열고 나와

털신을 내놓았습니다.


 

  <당선소감>

 

   따뜻함 나누고 싶어 썼다, 아무도 안춥길…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떨린다는 말만 떠오르네요. 당선 소식을 듣고,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모니터 앞에 앉으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멋있는 말을 쓰고 싶어서겠죠. 아마도 그건 포기해야겠습니다.

  유독 시와 동시를 많이 읽은 해였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선해서 읽었는데, 점점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도 함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버리지 못한 우산, 먼지 쌓인 워커, 낡은 자전거, 폐지가 쌓인 리어카… 일상에 있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일상에 있는 모든 것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동시를 짓는 동안 저는 아주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 동화」는 그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서 쓰게 된 동시입니다. 진심을 더 꺼내놓자면, 아무도 안 추우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아무리 유령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에게 문학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김원우 선생님, 장옥관 선생님, 손정수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고민과 애정을 담아 동시를 써나가겠습니다. 산미없음 친구들을 포함하여 저의 글을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셨던 모든 분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제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가족, 움츠리고 있던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영각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1985년 대구 출생
● 비즈니스 라이터


 

  <심사평>

 

  동화같은 풍성함 속 풍부한 상상력 펼쳐

  심사하는 동안 즐거웠다. 동시의 형식과 소재가 새롭고 시적 표현이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응모된 작품 전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기성의 동시 형식과 시적 표현을 추수하는 작품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여전히 시적 대상을 가족이나 어린이(아들‧딸, 그리고 손자‧손녀 등), 과거 어린이의 놀이 등으로 한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이 더 많았다.

  심사 기준을 논의하면서 소재와 발상의 신선함도 중요하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어린이의 풍부한 상상력을 잘 살려낸 작품을 맨 앞에 두기로 하였다. 안정적인 기교로 익숙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작품보다 현재의 진부한 동시를 넘어서는 발상과 표현을 살피기로 했다.

  마지막 후보작으로 올라 온 작품은 '크리스마스 동화', '토끼 꺼내기', '사과나무 뿌리' 이렇게 3편이었다. 여러 번 읽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정정안의 '크리스마스 동화'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종교적 의미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선물을 기다리는 즐거운 시간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어 동화 같은 풍성함이 있다. 환상의 세계를 거쳐서 현실의 모든 사실을 이해하는 어린이의 인식 태도에 알맞게 상상이 펼쳐진 작품이다.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남고, 형식적으로 짧은 시가 아닌데도 여백이 느껴진다. 그만큼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말이다. 독자에 따라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해석하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함께 보내 온 '우주 비행사'도 낯선 발상이면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초승달'을 '할머니의 뭉툭한 손'에 비유한 것이 그렇고, 할머니-엄마-화자로 이어지는 사랑과 기쁨을 달나라 여행으로 나타낸 시의 분위기가 재미있으면서 여운이 남는다. 이런 점 등이 심사 기준에도 적합했고, 동시 창작의 역량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앞으로 동시문단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우뚝 서는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김종헌, 김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