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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고양이 기분 / 임미다

 

우리집 고양이 이름을 ‘기분’으로 지어줬어.
길에서 절뚝이던 아이가 다 나아 쌩쌩해졌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았거든.

-기분이 뭐 해?
: 자고 있어.
-기분이 잘 먹어?
: 한 그릇 다 먹었어.

우리 식구는 전보다 전화를 자주 해.
멀리 사시는 할머니도
낮에는 바빠서 통화 못 하던 아빠까지도
몇 번씩 전화를 한다니까.

-기분이 뭐 해?
: 배 내놓고 누워있어.
-똥은 잘 치웠어?
: 당연하지.
-기분이 어때?
: 신났나 봐, 막 뛰어다녀.
-아니, 네 기분은 어떠냐구!
: 응? 으응?

누군가 내 기분을 물어주다니!
말랑하고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내 기분은 마치
고양이 같아.


 

  <당선소감>

 

   좋은 언어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전달하고 싶어요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심장이 뜨겁게 뛰면서도 놀란 덕분인지 등에는 차가운 물줄기가 흐르는 듯했다. 수업 직전이었고 커피가 담긴 잔의 온기가 유난히 고마웠다. 아이들이 얘기하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 덕분이구나,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내일의 모습을 짐작할 수 없는 구름 같고, 나는 순간순간의 구름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인 듯하다. 이 마음이 시를 쓰게 했다.

  미루어 짐작하지 않고 하나하나 묻는 아이들의 태도를 좋아한다. 쏟아지는 물음을 통해, 짐작에서 착각, 거기에서 또 오해로 연결되어 마음 끓이는 나를 수정하곤 한다. 아이들을 통해 깨달으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너 그렇구나’ 하며 단정 짓기보다 ‘넌 어떠니’를 물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다친 고양이를 걱정하는 아이들 마음, 길고양이를 식구로 들인 지인 이야기, 아들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자는 우리 집 회색 고양이의 따스함이 모두 어우러져 ‘고양이 기분’을 빚었다.

  시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축하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세상의 슬픔과 부조리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나면, 뒤돌아서 나의 언어와 비언어 모두를 반성할 때가 많다. 이 반성을 멈추지 않고 좋은 언어로 세상과 만나겠다. 꾸준히 즐겁게 쓰는 것만이 격려와 주어진 행운에 보답할 길이다. 소식을 전하지 못할 사람이 더 많겠지만 시간을 두고 무르익은 시로 인사하고 싶다. 하늘을 열어 보여주는 산책길과, 도서관의 충만한 고요와 우직한 불빛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1976년 서울 출생
●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심사평>

 

  구어체·대화체의 만남, 기존 동시의 틀에서 벗어나 눈길

  응모작의 수가 많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수준도 향상되어 반가웠다.

  전반적으로 자연과 사물을 통해 동심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았다. 종전 동시에서 흔히 다룬 소재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표현하려는 작품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면이었다. 그러나 너무 성인 의식에 치우쳐 아이들의 동심을 놓친 작품도 있어 아쉬웠다.

  ‘집에서 노는 사람’은 엄마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표현하였으나 너무 엄마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흠이었다. ‘너구리 삼형제’는 야생동물은 자연이 치유해 준다는 발상이 좋았으나 너무 작위적인 면이 보여 아쉬웠다. ‘꿈을 튀기는 시간’은 동시다운 발상의 깔끔한 작품이었으나 뻥튀기라는 소재가 낡아서 새롭지 않았다. ‘푸른 심장’은 세련된 시적 문체와 산뜻한 묘사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발상이 이전 동시에서 흔히 보아온 것이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당선작 ‘고양이 기분’은 아이가 버림받은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되고 가족에게서도 관심을 받게 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성인 중심이 아니라 아이 시각에서 아이의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동시답게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것도 미덕이었다. 아이의 기분을 고양이에게 비유한 상큼한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기존 동시의 틀에서 벗어나 구어체와 대화체의 새로운 기법과 형식에도 호감이 갔다. 당선을 축하하며 꾸준한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