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민들레 꽃씨와 아이 / 조수옥

 

멜빵바지 입은 한 아이가 길섶에 쪼그리고 앉아 민들레 꽃씨를 붑니다. 입술을 쭈욱 내밀며 후~ 후~ 하고 불자, 요런 간지러운 봄바람은 처음인 걸 하며 민들레가 하늘에 꽃씨를 퍼뜨립니다. 꽃받침을 베고 잠든 잠꾸러기 꽃씨 하나 머뭇댑니다. 아이가 연거푸 후훗! 하고 불어대자 그제야 기지개를 켜며 쫓기듯 날아갑니다.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까까머리가 된 민들레가 내년 봄에 다시 보자며 꽃대궁을 흔들어댑니다.

 

 

  <당선소감>

 

   초심·뒷심 그리고 열심 ‘3심’으로 오늘까지 왔다

 나는 매년 12월 초쯤이면 우체국에 들르곤 했다. 신춘문예를 발송하고 문을 나서면 설렘보다는 왠지 허탈했고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올해는 당선될 수 있을까, 낙선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함께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불쏘시개를 지피며 위안을 갖기도 했다. 내게 신춘은 매년 그랬다.

 교직을 끝으로 백수가 된 나는 할 일이 없어 노트북을 들고 동네 도서관에서 4년을 방황하였다. 지정석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보았지만 맨날 답보 상태였다. 동시 쓰기를 포기하려고 몇 번인가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글을 쓰려면 3심이 필요하다는 말. 초심, 뒷심, 열심. 그러나 싸다니기를 좋아하는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수년 전 지방 신문사 신춘문예 시로 당선된 적이 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시집을 출간했다. 아마도 이런 잠재의식이 동시를 붙잡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매년 통과의례처럼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이왕지사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각오로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막상 당선되고 보니 이제 갈 길이 멀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쓰고 싶다.

 올봄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휴게소에서 다섯 살쯤 된 아이가 풀밭에 앉아 민들레 꽃씨를 하늘을 향해 후후 불고 있었다. 날아가는 꽃씨를 보며 신기해하던 아이의 모습이 이번 당선작의 모티브가 됐다. 지금쯤 그 꽃씨들은 어디선가 봄을 향해 기지개 켤 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동안 동시를 쓰면서 마음에 빚을 진 분들이 많다. 특히 동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회초리를 놓지 않았던 권오삼 선생님과 늘 곁에서 성원해 주었던 김현숙 이대일 조삼현 정형일 시인, 또한 온라인 카페인 동시마을 동시편의점, 시와 공감 회원들의 격려가 있었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열심히 시의 밭을 일궈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1954년 진도 출생
● 협성대 교육대학원 졸업
●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심사평>

 

  예쁜 그림엽서 같은 작품… 童心이 참 곱고 아름답다

 전반적으로 응모작이 늘어나고 소재가 다양해졌다. 동심을 세련된 기법으로 쓴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많았다. 다양한 동심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쓰려는 노력들이 엿보여서 반가웠다. 하지만 너무 길고 장황한 산문화의 작품과 어른들이 읽는 시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작품도 눈에 띄어 아쉬웠다. 동시는 동심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명쾌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무지개 맛집’은 무지개 색깔과 음식 맛을 연결한 상큼하고 맛깔스러운 동시였다. 그러나 무지개라는 소재가 낡아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비눗방울 놀이’는 학원 공부 대신에 마음껏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비눗방울 놀이에 빗대어 쓴 잘 다듬어진 동시였다. 하지만 기존 동시에서 많이 다룬 낯익은 주제와 설정이라서 새롭지 않았다. ‘파자마 파티’는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표현하여 눈길을 끌었다. 현실성 있는 소재와 신세대다운 감각에 호감이 갔으나 너무 산문적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느림보 담쟁이’는 느리지만 꿈을 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담쟁이에 비유하여 쓴 작품이었다. 동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으나 함께 보내온 작품들의 기복이 심해 역량이 미덥지 않았다.

 ‘민들레 꽃씨와 아이’는 예쁜 그림엽서 같은 작품이었다. 민들레 꽃씨를 불어 날리는 동심의 마음이 참 곱고 아름답다. 예쁜 동심을 세련된 기법으로 깔끔하고 단정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였다. 동심이 깃든 정감 어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작품이었다. 흔한 소재를 산뜻한 감각과 청신한 비유로써 아름다운 동심의 공간으로 빚어내는 기량에 신뢰가 갔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