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고양이의 부활 / 포공영
<당선작>
고양이의 부활 / 포공영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다 그대로 길이 되어버린 고양이를 보고요,
피자집 아저씨는 굶어 죽은 거라며 슬쩍 고개를 돌리고요. 편의점 아주머니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죽은 거라며 질끈 눈을 감아요. 능소화 활짝 핀 빨간 벽돌집 할머니는 쥐약을 먹은 거라며 혀를 끌끌 차고요. 고양이 사료와 물을 챙겨주던 캣맘은 몹쓸 사람들의 짓이라며 울먹 거리지만요.
우리 동네 골목대장 까망이는 죽지 않았어요. 내가 오늘 스케치북에 그린 고양이 마을로 이사 왔거든요.
고양이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요. 따뜻한 고양이 분유와 고양이 전용 참치 통조림을 배불리 먹은 후에요. 개박하 향기 물씬한 방석 위에 뒹굴뒹굴 뒹굴다 조금 전 잠들었어요.
한잠 자고 일어나면 인간 세상에서 경험했던 나쁜 기억들은 싹 잊히고요.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 까망이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고양이 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장난감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사색하고 싶으면 사색하고 놀고 싶으면 놀면 돼요. 삼백육십오 일 창가에 오도카니 앉아 접시꽃 핀 정원만 내다보아도 좋아요. 내일은 무얼 먹고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엉덩이에 뿔난 사람들을 피하려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 함부로 뛰어들지 않아도 돼요.
아무렴, 이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냥 좋은 고양이 마을이니까요.
<당선소감>
동심 가진 어른이 많이 읽기를
1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썼습니다.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동시를 배울 데가 없다는 현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제 삶과 글이 하나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동시가 ‘어린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지닌 적이 있던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읽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몇 해 전 얼굴도 모르는 습작생의 열정만 보고 과월호 잡지를 모아 보내주셨던 권오삼 시인님과 별도의 시간을 내어 제 질문들에 성의껏 답변을 해주셨던 한겨레 교육센터 김제곤 평론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스쳐가는 인연에 불과하더라도 제가 이 길을 좀 더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또 깊은 수렁에 빠져 있던 제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들과 강원일보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제 목숨을 살려주신 대박 스승과 이 세상에 태어나 서른 해를 살다 가신 어머니께 이 기쁨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경남 김해 生
● 춘천 거주
● 독서지도사
<심사평>
어둠을 빛으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 현실에 질문 던져
전국에서 보내온 1,700여 편의 작품을 정성껏 읽었다. 언어와 세계의 새로움을 탐구하고 현실의 어린이를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응모자들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졌다. 최종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총 네 편이었다.
‘왕방울 알사탕 당나귀’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연결한 이야기 구조가 서정적 감응을 주었으나 메시지가 약한 것이 아쉬웠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지루한 날’은 과감하고 거친 상상이 해방감을 주었으나 도입부가 부자연스러웠다. ‘털실 이야기’는 털실이 이어주는 세대 간의 이야기가 다정했으나 입말이 다소 거칠어 감상을 방해했다.
‘고양이의 부활’은 길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아이가 상상 속으로 고양이를 불러들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상상 세계로의 탈주가 아니라 어둠을 빛으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부활시킨다. 작품의 완성도와 현실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이화주, 정유경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분석]
1. 시의 구조와 형식
- 산문시 형태로 현실과 이상을 대비하는 이원적 구조
- '~하고요'의 반복을 통한 리듬감 형성
- 일상적 언어로 비극적 현실을 표현하는 아이러니
2. 공간의 이중성과 상징
- 현실 공간: 길거리, 가게들로 대표되는 차가운 도시
- 이상 공간: 스케치북 속 고양이 마을이라는 유토피아
- '길'에서 '마을'로의 전이는 죽음을 통한 구원을 암시
3. 등장인물의 태도와 의미
- 무관심(피자집 아저씨)
- 외면(편의점 아주머니)
- 비난(할머니)
- 연민(캣맘)
- 구원자(화자)로 이어지는 다층적 시선 구조
4. 부활의 의미와 예술의 역할
- 물리적 죽음을 넘어선 영적 부활의 의미
- 스케치북이라는 예술을 통한 구원 가능성 제시
- 상상력을 통한 현실 초월과 치유
5. 현대사회적 함의
-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비판
- 도시의 냉혹함과 공동체 의식 상실 지적
- 약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고발
6. 종합적 의미
- 죽음을 통한 부활이라는 역설적 구원 제시
- 예술의 치유적 기능과 상상력의 힘 강조
-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현실 비판의 조화
이 시는 길고양이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예술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특히 스케치북이라는 예술적 매개체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평화로운 이상향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며, 이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적극적인 치유와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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