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피자피자 / 이유나

 

그 많은 상처를 누가 다 먹어 치웠나

나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생각을
손가락 끝에 올려 돌리다가
찢어지거나 터지면 다시 뭉개기를 반복하지

찢어지고 터져야 꽃이 핀다던
당신의 속내를 끝내 모르고

잘 부푼 생각을 펼친다, 얇고 넓게
펼쳐놓은 생각을 정해진 틀의 크기로 자르면
동그랗게 잘린 생각을 기다리는 건 찌르기
바닥을 친 생각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내듯
찌르는 순간엔 감정이 섞이면 안 돼

감정 없이 피를 연기하는 토마토소스
온몸에 펴 발라 진동하는 음모엔
동원되는 공범들이 있지
새우가 세우는 계략을 배후로
페퍼로니 올리브 포테이토 치즈는 듬뿍
조커를 능가하는 치즈에 애정을 담아
달궈진 불가마 속으로 밀어 넣지

뜨거운 건 순간이야, 상처는 쭈욱 늘어나겠지

터진 수포처럼 활화산이 된 상처 위에
파슬리는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병을 줄 때는 약도 준다는 신에게
새벽의 싱싱한 루꼴라를 올릴까 해
방금 딴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초록 들판 위에 꽃처럼 피우면
이때다 싶을 때 마침내 쏟아내는

세상의 모든 상처는 향기롭지
피처럼 달큰하게
꽃을 피우지, 가지가지 상처마다
새들은 몰려와 노래하지

피자피자, 봄봄봄


 

  <당선소감>

 

   나의 시로 한 사람이라도 미소 짓게 만드는 작은 울림 됐으면

제주 출신…시와 공상 좋아한 문학소녀

시를 쓸수록 점점 더 좋은사람 되고 싶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딱! 제주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태 제주를 붙잡고 사는 이유나입니다. 제주는 제가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곳이고 제주의 자연은 제게 부모이면서 스승이면서 가장 가까운 벗입니다. 오늘도 그 품에서 비비고 뒹굴면서 글을 씁니다. 언젠가는 닮겠지요, 닮아 가겠지요, 믿으면서. 제 꿈은 오로지 제주를 꼭 닮은 사람, 드디어 발치에 닿은 것 같아 의지가 징을 칩니다.

-신춘문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믿을 수 없이 기쁩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응모했는데 끝에 닿아보니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됩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라는 어른들의 말이 귀에 딱지처럼 앉기도 했지만, 좋은 시인이 될 거라고 응원해 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게 덕분입니다.

겨울나무가 내미는 꽃눈처럼 기회의 손을 내밀어 주신 경남도민신문과 존경하는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를 숙입니다. 무모한 여정을 믿어 주고 기도로 함께해 준 가족들과 따뜻한 이웃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성실하게 쓰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신춘문예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습니다. 남모르게 웬만한 신문사에 다 응모를 해봤고 그 많은 고배(苦杯)에 진저리가 날 때도 됐는데 한 번만 한 번만 더,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름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경남도민신문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신춘문예에서 응모자가 많았음에도 당선작을 내지 않았다는 기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춘의 문턱이라면 어디든 높겠지만 특히 더 높아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경남은 제가 제주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제 마지막 도전을 불사르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진 덕분에 제2의 고향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선작인 본인의 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랍니다
▲‘피자피자’는 상처 입고 만신창이가 된 감정을 누가 사라지게 했는지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마치 철저히 계획된 시나리오 속에 혼자 던져진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음모라도 있는 것 같고 타인의 위로가 조커의 미소처럼 슬프게 와닿기도 합니다. 작품 안에서는 피자에 비유해 다소 웃프게 표현이 되어 있지만, 화자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비극에서 탈출시킵니다. 나무의 피부를 뚫어야 새순이 돋는 것처럼 시는 아픈 현실을 피자 한 판의 축제로 바꾸고 있습니다. 마치 복수초가 자신을 짓누르는 눈의 무게를 제힘으로 녹이면서 봄을 밀어 올리듯 치즈가 녹고 있습니다. 이 시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대면하면서 스스로 승화시켜 가는 감정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이 시는 먼저 자신을 위한 응원입니다. 다음은 누구라도 삶이 힘들 때,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저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살면서 이별, 상처, 슬픔, 좌절 같은 것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피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 같은 거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생긴 일이니 마음으로 해결 못 할 일도 아닙니다.

현재를 당당히 지켜보고 아픔을 도약의 발판으로 바꾸는 힘, 봄을 생각할 때 겨울이 원망스럽지 않은 것처럼, 이 시간이 우리를 꽃 피게 해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시련을 견디고 다시 피어나게 해주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를 처음 쓴 게 언제였나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 당선되어 시화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검은머리 앤’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공상하기를 즐겼습니다. 시 낭송도 좋아해서 특히나 친구들이 지루해하는 수업 시간에 폼 잡고 시를 읊으며 꾀를 부리던 추억도 있습니다. 시를 좋아했지만 사는 게 바빠서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십여 년 전쯤 우연히 문학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선생님과 문우들이 있었습니다. 멀리 돌아서 처음 그 자리에 다시 선 기분이었습니다.

-시를 쓸 때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찾고 시상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대부분 산책을 하면서 얻습니다. 제주의 자연은 고독해서 누구라도 나타나기만 하면 재잘재잘 이 얘기 저 얘기 마구마구 풀어 놓습니다. 잘 받아 적으면 그대로 괜찮은 시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꿈에서 받습니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꿈을 아주 적극적으로 꾸는 편입니다.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결정하는 내가 있지요. 현실에는 없는 초능력까지 겸비한, 나인 듯 나 아닌 듯 또 하나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문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럴 때, 얼른 일어나서 받아 적어야 하는데 잠을 이겨내는 의지가 아직 부족한 게 저의 가장 큰 취약점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요
▲좋은 시 나쁜 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도 음악도 취향이 있는 것처럼, 각자가 더 좋아하는 시풍(詩風)이 있는 거겠지요. 시를 쓰다 보니 그 또한 자주 변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는데 제가 새로운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어요. 요즘 좋아하는 시들은 신선한 발상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기발한 작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아마 또 변할 겁니다. 전 변화를 사랑하니까요.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이건 정말 진지한 질문이네요. 시인이란 이름 전체를 운운하지는 않겠습니다. 저의 경우라면 시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특히 대자연 속에서 시를 쓰고 있을 때, 나는 한없이 작고 부족한 존재라는 걸 자주 깨닫게 됩니다. 저절로 겸손해지는 겁니다. 세상이 경이로워지고요. 자연스럽게 감사하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또다시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이런 날들의 반복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시만큼 좋은 놀이도 없지요. 시는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일이고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나요
▲그동안 받은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이끌어 준 힘이 응원이었어요. 나의 시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울 만큼이면 좋겠지만 함께 등을 밀어주는 따스함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을 웃게 할 수는 없겠지만 역경 속의 한 사람이라도 미소 짓게 만드는 작은 울림이 되면 좋겠습니다. 진실로 누군가의 가슴에 활착(活着)해 활짝 피어날 응원이 되도록 온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심사평>

  

  피자를 통해 이별의 상처 섬세하게 그려내

 전국 각지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보내온 405명의 1628편의 시 작품 중에서 본심에 오른 50명의 작품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다. 시들이 대체적으로 길었고 관념화된 경향이 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작품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닐까, 여겨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소한 단어들과 익숙한 단어들을 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시들은 다채로운 발상의 전환 같기도 하지만 말장난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고 가슴으로 쓴 시가 아니라, 장난감 레고처럼 이리저리 조립시킨 것 같은 시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세심한 성찰과 감각적인 언어로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들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네 분의 작품들을 추려내 다시 정독을 하기 시작했다.

 ‘구름 창구’는 어려운 삶을 참신한 감각과 경쾌한 문체로 풀어낸 점은 좋았으나 대출이자, 할부금, 가불 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내용으로, 읽으면서 결론을 쉽게 예측할 수 있어서 신선함이 부족했고, ‘철학적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는 재미있는 발상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부족하고 평이하게 흘러가 버렸다. ‘천상열차종합병원지도’는 대한민국 천문학 최고의 자랑거리 문화재,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종합병원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특이한 상상력으로 활달하게 시를 이끌어 가면서도 자신만의 호흡을 유지한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 시적 사유가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미약했다.

 ‘피자피자’는 먹는 피자와 봉오리가 커지면서 꽃잎이 벌어지는 ‘피자’의 동음이의어 묘미를 살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냉정하게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를 결합할 때, 맛있는 세상이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 흥, 까짓것 먹어 치워버리는 거야, 먹고 소화 시켜버리는 거야, 시크하게 쿨하게, 그리고 다시 꽃 피워 보는거야, 요즘 세대다운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이분들이 함께 투고한 작품들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피자피자’를 보낸 분의 또 다른 작품들이,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두 일정한 수준이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더 이상 주저 없이 ‘피자피자’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자는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자신만의 시 세계로 우뚝 서기를 바라며,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심사위원 : 본심-신미균(글), 박우담·예심-채수옥, 구수영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시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별이나 삶의 아픔 같은 ‘상처’를 피자 한 판을 만드는 과정에 빗대어, 결국 ‘봄(회복)’으로 바꾸는 이야기이다. 제목의 “피자피자”는 우리가 아는 음식 피자이면서, 동시에 “피다(꽃이 피다)”의 의미가 겹쳐지는 말이다. 따라서 마지막의 “피자피자, 봄봄봄”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상처가 꽃으로 바뀌는 순간을 주문처럼 불러오는 문장으로 읽힌다.

 시의 시작은 거칠고 단단하게 밀고 들어간다. 화자는 “그 많은 상처를 누가 다 먹어 치웠나”라고 묻는다. 여기서 ‘먹어 치우다’는 단순히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삼켜 버리는 방식, 즉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삼키고 견디는 마음의 태도를 가리킨다. 화자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생각”을 손가락 끝에 올려 돌린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며 반복되는 상태를 보여 준다. 이어서 “찢어지거나 터지면 다시 뭉개기”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생각을 반죽처럼 치대고 다시 뭉개고 또 펴는 과정은 상처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자, 상처를 다루는 법을 몸으로 익혀 가는 과정이 된다.

 이 지점에서 시는 핵심 문장을 던진다. “찢어지고 터져야 꽃이 핀다던 / 당신의 속내를 끝내 모르고”라는 구절이다. 누군가는 아픔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말하지만, 상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화자는 그 ‘당신’의 속내를 끝내 모르겠다고 한다. 이는 상처를 미화하는 위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처의 현실을 먼저 인정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후부터는 피자 만들기의 동작들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그 동작들이 모두 마음의 움직임과 연결된다. 화자는 “잘 부푼 생각을 얇고 넓게 펼친다”고 말한다. 이는 마음을 최대한 펼쳐 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정해진 틀의 크기로 자르면” 생각은 동그랗게 잘린다. 이 장면은 감정이 본래 넓고 복잡함에도, 현실에서는 그것을 일정한 모양으로 정리하고 수습하기를 요구받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그만 울어라”, “이제 잊어라”, “시간이 해결한다” 같은 말들이 정해진 틀처럼 작동하고, 화자는 그 틀에 맞추어 생각을 자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어지는 대목은 시의 중요한 중심축을 이룬다. “동그랗게 잘린 생각을 기다리는 건 찌르기… 찌르는 순간엔 감정이 섞이면 안 돼”라는 구절이다. 이는 피자 도우에 포크로 구멍을 내는 장면이지만, 시에서는 냉정하게 묘사된다. 감정이 섞이면 안 된다는 말은, 상처가 클수록 사람은 오히려 감정을 꺼내지 못한 채 무감각한 행동으로만 버티는 순간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울면 무너질 것 같아 감정을 끊고 해야 할 일만 해내는 상태이다. 이때 피자 만들기는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상처를 견디는 생존 기술이 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토마토소스는 “감정 없이 피를 연기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소스는 피처럼 보이지만 실제 피는 아니다. 즉 화자는 피를 흘리는 척, 상처를 드러내는 척을 할 뿐, 그 상처를 진짜 감정으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온몸에 펴 발라 진동하는 음모”, “공범들” 같은 표현이 더해지며 세계는 더 음산해진다. 내가 겪는 고통이 단지 우연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계획처럼 느껴지는 심리 상태가 형상화된다. 상처가 깊을수록 세상이 그렇게 보일 수 있고, 위로조차 “조커를 능가하는 치즈”처럼 과장되고 낯설게 다가올 수 있음을 시는 보여 준다.

 그럼에도 이 시가 멈추지 않는 지점이 작품의 힘이 된다. 화자는 피자를 “달궈진 불가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는 상처를 피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중심으로 들어가 끝까지 가보려는 결심으로 읽힌다. 그러나 곧바로 “뜨거운 건 순간이야, 상처는 쭈욱 늘어나겠지”라고 말한다. 충격은 짧지만 상처는 길게 간다는 사실을 화자가 알고 있음을 보여 주는 문장이다. 이 한 문장이 작품을 현실적으로 만든다. 괜찮아진다고 쉽게 말하지 않고, 아픈 것은 아프며 오래 갈 것은 오래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이 등장한다. “터진 수포처럼 활화산이 된 상처 위에 / 파슬리는 독이 될까 약이 될까”라는 구절이다. 파슬리는 장식 같은 허브이지만, 상처 위에 올려지는 순간 ‘독인지 약인지’ 고민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위로와 닮아 있다. 누군가의 말이나 작은 관심은 어떤 날에는 약이지만, 어떤 날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화자는 쉽게 올리지 못하고 묻는 것이다.

 이어지는 “병을 줄 때는 약도 준다는 신에게”라는 문장은 시가 비로소 회복 쪽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을 보여 준다. 상처가 주어졌다면 약도 함께 주어진다는 믿음이 등장한다. 그 약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새벽의 싱싱한 루꼴라”, “방금 딴 방울토마토” 같은 구체적인 생명감으로 나타난다. 새벽은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고, 루꼴라와 초록 잎은 생기와 회복의 색이다.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초록 들판 위에 꽃처럼 피우면”이라는 구절에서는, 피자 위의 토핑이 들판이 되고 꽃이 된다. 상처의 무대가 주방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으로 확장되며, 상처를 견디는 문제가 삶 전체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에 화자는 “세상의 모든 상처는 향기롭지 / 피처럼 달큰하게 / 꽃을 피우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처가 처음부터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서 상처는 활화산이고 수포이며, 피를 연기해야 할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끝에 와서 상처는 향기와 꽃이 된다. 이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상처를 정면으로 굽고, 올리고, 자르고, 결국 다시 피워낸 결과로 제시된다. 그래서 “피자피자, 봄봄봄”은 가벼운 반복이 아니라, 상처가 결국 봄으로 바뀌는 것을 선언하는 주문처럼 울린다.

 정리하면, 이 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읽힌다. 상처는 순간의 뜨거움으로 끝나지 않고 길게 늘어나지만,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고 손으로 다루는 사람은, 결국 그 아픔을 향기와 꽃으로 바꾸어 다시 봄을 불러올 수 있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요리’하여 삶으로 되돌리는 시선이 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