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비 / 김밀아

<당선작>
나비 / 김밀아
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
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
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
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
어디선가 물방울도 듣고 있는
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
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
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히고
날개끼리 빠르게 부딪치면 앞으로 뒤로 숨막히게 반짝이고
앞으로 뒤로 떠 있는 동안 고요하게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
양 날개 위에 마주 보는 몸의 문양은
마른 공기 속에 펄럭이는 두 장의 꽃잎
후드득
떨어질 것 같다가
구불거리며 솟구치다가
따사롭게 앉아 있다가
날아갈까
날아갈까
날아가는 나비
<당선소감>
타국의 삶 한가운데에서 시 써보고파
웅크리고만 있던 말들, 나에게서 떠나갔으면
시인의 길 가라 격려해준 김기택 교수께 감사
타국의 삶 한가운데서 시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시가 아닌 다른 것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웅크리고만 있던 말들이 저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힘겨울 때마다 다독여주신 수지 선생님, 힘이 되어주는 친구 진옥, 영아, 영진, 정혜, 소연, 성미, 복선 언니 많이 생각납니다. 수다예찬 선생님들 한번 뵙고 싶습니다. 열정적인 수업으로 시에 푹 빠지게 하신 조동범 시인 교수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씀으로 용기를 주시는 경희사이버대학원의 홍용희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랫동안 무엇을 쓴다면 그것은 소설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짧은 텍스트의 형태로 무엇인가 쓰고 있었고 궁금한 점들이 생겨났습니다. 창작 수업을 몇 과목 수강하면서 묻고 싶은 것들을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질문이 유난히 많은 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 질문을 귀하게 여겨주신 분이 계십니다.
좋아하는 시의 길을 가보라고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글쓰기에 관한 한,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존경하는 김기택 시인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일 문학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제가 교수님 덕분에 한국 문학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건강을 돌봐주시고 두려운 마음까지도 주장해 주시길 기도하면서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봄에 직접 나비를 보았을 즈음,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수도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계절이 조금 늦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 -
<심사평>
마지막 연 ‘날아갈까…’ 새해 첫 지면 장식하는 여운
경인일보 2026년 신춘문예의 심사를 맡아 응모작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응모작의 대부분은 거대담론이나 시대적 소명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따라서 대 사회적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는가 하면 역사의식이라던가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춘문예를 의식해서 쓰여진 탓이겠지만 현란한 수사를 구사한 응모작이 많아 심사위원들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 적은 것도 지적하고 싶은 결함이다. 많은 응모작들이 소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부분 응모자들의 문학에 대한, 혹은 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보여졌다. 시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사물의 본질에 닿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점은 한국 시단의 발전을 위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응모자 중 단연 돋보이는 김정아의 작품에 주목했다. 응모작 네 편 중 ‘나비’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쉽게 합의했다. 특히 마지막 연의 ‘날아갈까 날아갈까 날아가는 나비’가 보여주는 상승 이미지가 경인일보 새해 첫 지면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진해서 한국 시단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해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명인 시인·김윤배 시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시는 한마디로 말하면, 나비가 꽃에 앉았다가 떠오르는 아주 짧은 순간을 따라가며 ‘망설임과 도약’의 감각을 몸의 움직임으로 새겨 넣는 시이다. 제목 「나비」는 단순히 한 생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흔들리며 머무는 마음과 떠오르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시는 “나비가 난다”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날기 직전과 나는 동안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존재의 불안을 보여 주고 끝내 상승의 여운으로 밀어 올리는 작품으로 읽힌다.
시의 첫 문장은 곧바로 ‘망설임’을 몸으로 붙잡는다. “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라고 시작함으로써, 나비의 상태를 감정으로 말하지 않고 ‘다리’의 동작으로 보여 준다. 이어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라는 구절은, 나비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감각으로 제시한다. 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은, 나비가 꽃에 완전히 이끌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떠나야 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때 망설임은 마음속의 고민이 아니라, 향기와 더듬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지연으로 형상화된다.
이 시는 ‘보이지 않는 시선’도 함께 끌어들여 긴장을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이라는 구절은, 관찰자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는 나비의 날개를 펴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몸을 낮추어 숨는 자세로도 읽힌다. 나비는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이 시 속의 나비는 먼저 ‘엎드려’ 있다. 이는 날아오름 이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낮아짐과 움츠림을 보여 준다.
꽃과 바람이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나비의 움직임이 곧장 ‘불안정한 균형’으로 바뀐다. “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 / 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라고 말함으로써, 나비는 스스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계속 흔들리는 존재로 제시된다. 바람이 날개를 붙잡는다는 표현은, 자유롭게 날아야 할 날개가 오히려 잡히고 구속되는 느낌을 만든다. 꽃대가 휘청거리는 장면 또한, 머무는 자리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나비의 망설임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흔들리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시가 중반으로 들어서면 ‘몸의 모양’이 곧 ‘언어의 모양’처럼 세밀하게 관찰된다. “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 / 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는 구절은, 나비의 몸을 사람의 몸처럼 읽게 하면서, 어떤 말을 하려다 접고 다시 펼치는 듯한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입’과 ‘어깨’는 실제 나비의 기관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내면을 투사하는 매개가 된다. 작은 존재의 미세한 동작이 사람의 감정과 연결되며, 시는 생물 묘사에서 존재의 감각으로 넘어간다.
이 작품의 언어는 나비의 몸을 ‘무늬’와 ‘비늘’로 확장하며, 순간을 깊게 새긴다. “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히고”라는 구절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순간조차 가벼운 상승이 아니라 ‘박히는’ 감각으로 표현한다. 공중에서 무늬가 박힌다는 말은, 허공에서도 흔적이 남는다는 뜻이며, 짧은 비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경험의 각인임을 보여 준다. “날개끼리 빠르게 부딪치면 앞으로 뒤로 숨막히게 반짝이고”라는 대목은 나비의 날갯짓을 눈부심과 숨막힘으로 바꾸어, 아름다움과 긴장이 동시에 존재함을 드러낸다. 이어 “고요하게 부서지는 살갗의 비늘”은 가장 섬세한 표현으로, 나비의 아름다움이 단단함이 아니라 부서질 듯한 연약함 위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또한 “양 날개 위에 마주 보는 몸의 문양은 / 마른 공기 속에 펄럭이는 두 장의 꽃잎”이라는 구절은 나비를 다시 꽃으로 되돌린다. 나비가 꽃에 앉았다가 날아가지만, 시는 나비 자체를 ‘두 장의 꽃잎’으로 보게 하며, 나비와 꽃의 경계를 흐린다. 이때 나비는 꽃에 반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꽃처럼 보이는 존재가 된다. 아름다움의 대상과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가 서로 겹쳐지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후반부의 리듬은 짧아지며, 시는 도약 직전의 박동으로 가속한다. “후드득”이라는 의성어는 날갯짓의 소리이자, 마음이 한 번 크게 꺾이는 순간의 소리처럼 들린다. 이어 “떨어질 것 같다가 / 구불거리며 솟구치다가 / 따사롭게 앉아 있다가”는 하강과 상승, 머묾이 빠르게 교차하는 흐름을 만든다. 나비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날 것 같다가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이 계속 반복되며, 그 반복이 곧 삶의 리듬으로 확장된다. 안정은 한 번에 오지 않고, 떨어짐과 솟구침 사이에서 흔들리며 형성된다는 사실이 이 짧은 연속 동작에 담긴다.
마지막 연의 “날아갈까 / 날아갈까 / 날아가는 나비”는 시 전체의 정서를 결정한다. 두 번의 질문은 망설임을 남기고, 마지막의 단정은 도약을 확정한다. 즉 이 결말은 ‘불안을 없애서 날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불안을 품은 채로 결국 날아가는 구조이다. 그래서 이 시가 주는 상승감은 가볍고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망설임과 흔들림을 통과한 뒤에야 얻어지는 진짜 움직임으로 읽힌다. 심사평이 마지막 연의 여운을 강조한 이유도, 질문에서 단정으로 넘어가는 이 작은 전환이 독자에게 오래 남는 상승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나비」는 꽃에 이끌린 작은 생명이 바람과 흔들림 속에서 엎드리고, 떨고, 반짝이고, 부서질 듯한 순간을 지나 마침내 날아오르는 과정을 촘촘한 감각의 언어로 포착한 작품이다. 이 시는 나비를 통해 ‘망설임을 가진 존재가 어떻게 움직임을 얻는가’를 보여 주며, 끝내 “날아갈까”라는 두려움을 그대로 안은 채 “날아가는” 현실의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결국 나비는 자연의 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흔들리는 삶이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방식의 은유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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