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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부부 리모델링 / 허은주

 

노후된 풍경들이 해 넘어 기울 동안

금이 간 석양 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틈새로 메우지 못한 말들이 흩어진다



햇살이 조심스레 당신을 훑을수록

침묵의 그림자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굳어져 긁어낸 자리 마디마디 아리다



나란히 걷던 줄눈 지평선은 어긋나도

드릴로 뚫린 산은 부드럽게 스러지며

우리가 지어질 자리 꽃대가 솟고 있다


 

  <당선소감>

 

   독자와 소통하고 아픔 어루만질 것

감기에 걸릴 때면 슬픈 바이러스에 중독이 된 것처럼 글을 쓰곤 했습니다. 아프다는 생색을 온 열감으로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어릴 적 엄마의 손길이 이마에 닿으면 차갑고 싱그러운 위안처럼 제가 가진 세계가 보호받는 느낌이었어요. 저에게 글은 투정이고 용기 있는 고백이며 상처를 멋지게 다듬는 의사이자 엄마의 손길, 그 따뜻함인 것 같습니다.

회색빛 하늘이 무거운 날 버스 안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필 이때? 탄식으로 내쉬는 기쁨을 틀어막기 바쁜 중에도 “저 신춘문예 됐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죠. 주책없이 눈물은 왜 나는지 뿌옇게 보이는 풍경들까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더욱이 올해는 기대를 안 했던지라 이 놀라움조차 비현실 같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사실 시조를 쓰면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제가 생각한 시조의 방향이 맞는 건지 늘 불안해하며 글을 써온 저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황금빛 이정표 하나를 굳세게 박아 준 결실이었습니다. 앞으론 글자 하나하나에 깊이와 무게를 책임지는 길을 걸으며 독자와 소통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조시인이 되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소명 또한 시조와 함께 서로를 밝히는 친구처럼 성장하려 합니다.

저에게 첫 시조의 길을 열어주신 김성숙 선생님과 시조의 아름다움을 큰 그림으로 보여주신 신웅순 교수님, 젊은 감각의 현대 시조를 심어주신 고완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금강 시조 문우들과 조용히 조력자가 되어준 남편 상호, 사랑하는 소하, 준의, 기도하고 계실 엄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남신문에 감사드리며 문을 열어주신 미지의 세계로 두려움 없이 발을 떼려 합니다.

● 1968년생
대전 거주 
한국화 화가


 

  <심사평>

  

  시조가 가진 시간·공간성 돋보여

문학 활동의 출발점이자 작가로서 인정받는 한 해 첫 등용문이 신춘문예다. 참신한 작가를 만날 기대감으로 심사에 임했다. 지켜보는 응모자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강한 설렘도 있었다.

시조는 밀려오는 신문학의 거센 기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언어와 전통을 지키려는 문학적인 실천이 있었다. 시조는 단순한 3장 형식이 아니라 모국어의 질서와 음악성을 존중하는 자존의 우리 문학이다. 더불어 시조는 더하거나 모자람 없는 함축과 긴장감을 지닌 가락을 생명으로 한다.

예년에 비해 응모가 많았던 총 344편의 시조를 숙독하였다. 올해 시조 부문 응모작은 대체로 정형률에 대한 이해가 깊은 노련한 작품과 행간의 불균형, 음수율이 느슨하고 의욕만 앞서는 설익은 작품으로 나눠졌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 중에서 ‘채비’와 ‘부부 리모델링’으로 압축되었다. 두 작품을 놓고 숙의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부부 리모델링’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신인의 패기로 소재와 주제를 부리는 능력을 먼저 살폈다.

그런 측면에서 당선작 ‘부부 리모델링’은 종장이 돋보이는 반전이 있거나 긴장감은 다소 아쉬웠지만, 시조가 가진 시간성과 공간성을 잘 보여주었다. 노후화 현상으로 증축하거나 개축하는 것이 건축물에만 해당되겠는가. 줄눈처럼 간격과 높이를 고려하며 줄 맞춰 살던 부부도 낡은 벽지나 오래된 창문처럼 헐거워지면 그 틈새를 바르거나 채워가야 한다. 하수구처럼 막혔다고 소통하지 않는 침묵의 자리에 햇살이 비추고 소통하니 꽃대가 솟는다. 감정이 과장되지 않게 여운을 남겨둔 채 형식미와 균형미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동봉한 작품 ‘기억의 빨랫줄’과 ‘캣 타워’에서도 오랜 습작의 튼튼함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조를 오래 쓸 것 같은 믿음이 간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하며 치열하게 정진하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연동, 옥영숙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전체 해석

「부부 리모델링」은 ‘낡아감’이 필연인 시간 속에서 부부 관계를 건축·수선의 언어로 다시 세우는 시조이다. 노후화된 풍경, 금이 간 석양, 틈새로 새는 말들 같은 이미지가 관계의 균열을 드러내고, 햇살과 줄눈과 드릴과 꽃대 같은 이미지가 그 균열을 보수·정렬·재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정의 폭발보다 “조심스레 훑는 햇살”처럼 절제된 움직임으로 회복을 말하는 시조이다.


제목의 의미

‘리모델링’은 완전히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를 인정한 채 손보고 덧대는 일이다. 제목은 부부가 겪는 권태·침묵·상처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고, 균열의 자리를 찾아내 메우고 정렬하며 다시 살게 하는 태도를 선언하는 장치이다.


초장 분석: 노후와 균열, “말”의 틈새

노후된 풍경들이 해 넘어 기울 동안
금이 간 석양 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틈새로 메우지 못한 말들이 흩어진다

초장은 시간의 기울어짐으로 관계의 낡아짐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해 넘어 기울 동안”은 하루의 저녁이면서 동시에 부부의 삶이 중년·노년으로 접어드는 긴 시간의 경사를 담아낸 표현이다. “금이 간 석양 끝”은 아름다움(석양)조차 균열을 품게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균열의 핵심은 “메우지 못한 말”이다. 말은 관계의 접착제인데, 그 말이 틈새에 남아 흩어진다는 것은 소통의 실패가 단절로 번지는 장면이다. 이때 흩어지는 것은 말이면서 동시에 마음과 체온이기도 하다.


중장 분석: 햇살과 침묵의 그림자, 긁어낸 자리의 통증

햇살이 조심스레 당신을 훑을수록
침묵의 그림자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굳어져 긁어낸 자리 마디마디 아리다

중장은 회복의 방식이 “큰 고백”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주목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당신을 훑을수록”은 눈길과 관심이 상대를 더듬듯 지나가는 행위이다. 여기서 햇살은 따뜻한 시선, 혹은 다시 말을 건네려는 미세한 의지의 은유이다. 그 햇살이 들어오자 “침묵의 그림자”가 구석으로 밀려난다. 침묵이 사라진다기보다 ‘구석으로’ 밀려난다는 점이 현실적이다. 침묵은 완전 소멸이 아니라 영역의 축소로 다뤄진다.

마지막 행의 “굳어져 긁어낸 자리”는 리모델링의 물성에 정확히 닿아 있다. 오래된 벽지를 떼어내고 굳은 자재를 긁어낼 때 표면이 상하듯, 오래된 오해와 말못함을 걷어낼수록 관계의 피부는 “아리다.” “마디마디”는 관절의 통증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이음새, 즉 시간이 쌓인 결절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복이란 덜 아픈 길이 아니라, 아림을 감수하고도 손을 대는 일임을 말하는 대목이다.


종장 분석: 줄눈의 어긋남, 산의 스러짐, 꽃대의 솟음

나란히 걷던 줄눈 지평선은 어긋나도
드릴로 뚫린 산은 부드럽게 스러지며
우리가 지어질 자리 꽃대가 솟고 있다

종장은 관계의 핵심 이미지를 “줄눈”으로 잡는다. 줄눈은 타일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 정렬을 보증하는 선이다. “나란히 걷던 줄눈 지평선”은 부부가 같은 방향을 보며 삶의 바닥을 정돈해 온 시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줄눈이 “어긋나도”라고 말하면서, 함께 살아도 어긋남은 생긴다는 사실을 담담히 인정한다. 이 인정이 이 작품의 윤리이다.

“드릴로 뚫린 산”은 갈등의 단단함, 혹은 서로에게 남긴 상처의 거대함을 뜻하는 이미지이다. 흥미로운 점은 산이 ‘무너진다’가 아니라 “부드럽게 스러진다”는 표현이다. 상처를 파괴로 해결하지 않고, 시간과 손길로 경도를 낮추어 흩어지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행 “우리가 지어질 자리 꽃대가 솟고 있다”는 반전이자 결론이다. 리모델링의 목표는 결국 “집”이 아니라 “우리”이다. ‘우리가 지어진다’는 말은 관계가 이미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손보며 계속 세워지는 진행형의 공동체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솟는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꽃대”이다. 건축의 언어로 시작해 생명의 언어로 끝맺는 구성은, 수선의 끝이 단지 기능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생장임을 보여준다.


이 시조의 미학적 특징

  • 이 작품은 노후·균열·침묵 같은 정서를 과장하지 않고, “줄눈·드릴·긁어낸 자리” 같은 구체적 물성으로 옮겨 놓는 시조이다.
  • 시간성은 “해 넘어 기울 동안”에서, 공간성은 “구석·지평선·산·자리”에서 선명해지는 작품이다. 관계의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로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종장의 희망은 낭만이 아니라 공사 현장의 결과처럼 제시된다. 꽃대는 갑자기 피지 않고, 뚫고 긁고 밀어낸 뒤에야 솟는다는 점에서 이 희망은 설득력을 얻는다.

한 문장으로 정리

이 시조는 부부의 노후화와 침묵을 ‘균열 난 석양’과 ‘어긋난 줄눈’으로 드러내고, 조심스러운 햇살 같은 관심과 고통스러운 보수를 통해 마침내 “우리”가 다시 지어지는 자리에서 꽃대가 솟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