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바닥 신호등 / 이영미

<당선작>
바닥 신호등 / 이영미
고개 숙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어요
섬이 된 스몸비족 헤엄쳐 나오는 길
바닥에 푸른빛 등대무자맥질 도와요
불통과 무관심에 푹 빠진 회색 도시
저 아래 해저에는 삼각파도 들끓는지
몸에 밴 심해의 습성
느닷없이 나타나요
꽉 들어찬 별들로 하늘은 이미 만원
차도와 인도 사이 공제선에 빛을 심어
지상에 더 머물라고수호신을 내보냈죠
멀리서도 알아보고 바퀴마저 숨 고르는
목숨줄 길잡이로 끌어주고 싶었어요
뭍으로 진입한 섬들
그제서야 안심하는,
<당선소감>
메모해두던 습관, 한수가 되고 작품이 되다
금방 다가올 것 같아도 어느새 달아나고 잠시 얼굴 내밀어 소곤대다 밀어내는, 제게 시조란 물음표 같은 밀당의 연구대상이었습니다. 단아하고 멋스러운 그 성품 안에는 놀랍게도 당차면서도 범접하지 못할 위엄까지 갖추고 있어 여러 해 동안 저는 주위만 도는 히키코모리가 되곤 했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측은했는지 황송하게도 그 높은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 시조를 향한 저의 종천지모는 계속 이어져도 될 것 같습니다.
잠들기 전 한 구절 떠오르면 기록하고 걷다가도 문득 돌부리에서 캐낸 사유들이 부서질까 멈춰 서서 메모해 두던 습관이 한 수가 되고 작품으로 완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초심을 발판 삼아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글쓰기에 정진하겠습니다. 글의 맛을 버무릴 줄 아는 감각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더불어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의 의미 따라 빛과 지표가 되는 시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제게 이토록 영광스러운 길로 이끌어주신 경상일보 신춘문예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시조를 맑은 눈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엎드려 절 올립니다. 나태하지 않도록 더 달금질해 나가겠습니다. 힘 실어준 가족들과 특히 방방곡곡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애쓴 남편의 간절한 서원도 여기에 추가합니다.
● 충남 연기 출생
● 2022년 지용신인문학상
● 2024년 백수문학신인상
<심사평>
손바닥만한 시조 한편에 내장된 거대한 풍경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열 분의 서른여섯 편이었다. 어렵게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인 만큼 대부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군계일학의 돌올한 수작은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살구꽃은 피었건만’, ‘AI시대-포노사피엔스의 여름’, ‘바닥 신호등’ 등 3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은 소재에 대한 꼼꼼한 성찰과 남다른 비유, 입체적 구성이 돋보이는 가작이다. 스몸비족을 느닷없이 ‘섬’에다 비유하는 순간, ‘헤엄’, ‘푸른 빛 등대’, ‘무자맥질’, ‘해저’, ‘삼각파도’, ‘심해’ 등 바다 관련 시어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면서, 바닥 신호등이 설치된 대도시의 횡단보도 일대가 난데없이 온통 바다 이미지로 출렁거린다. 손바닥만 한 시조 한 편 속에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별’과 ‘하늘’과 ‘뭍’까지 포괄하는 거대 풍경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에도 방점을 찍었다.
당선을 뜨겁게 축하드리며, 앞으로 우리 시조단에 지각변동을 크게 일으킬 주역으로 당당하게 성장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아쉽게도 좋은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가락과 현실 인식과 표현의 삼박자를 제대로 갖춘 빼어난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주셨으면 한다.
심사위원 : 이종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전체 인상
「바닥 신호등」은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스몸비족’이 늘어난 도시에서, 횡단보도 바닥에 설치된 신호등을 ‘등대’이자 ‘수호신’으로 격상시키는 시조이다. 현실 소재(바닥 신호등)를 바다의 이미지(섬·헤엄·해저·삼각파도·심해·등대)로 과감히 변주해, 작은 장치 하나가 도시의 생명줄이 되는 순간을 웅장한 풍경으로 확장한다.
제목 해석: ‘바닥’에 놓인 신호가 ‘존엄’을 세운다
“고개 숙인 자존심”이란 표현에서 이미 핵심이 드러난다. 스몸비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그런데 시는 그 숙임을 조롱하지 않고, 오히려 “세워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바닥 신호등은 말 그대로 바닥에 있지만, 그 바닥에서 올라오는 빛이 사람의 자세(고개)와 마음(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장치가 된다. 낮은 곳의 빛이 높은 가치를 세우는 역전이 제목에 깔려 있다.
초장: 스몸비족을 ‘섬’으로 보는 비유의 힘
고개 숙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어요
섬이 된 스몸비족 헤엄쳐 나오는 길
바닥에 푸른빛 등대무자맥질 도와요
- “섬이 된 스몸비족”은 탁월한 핵심 비유이다. 스몸비는 주변과 단절된 채 화면 속에 갇혀 걷는다. 그 단절을 ‘섬’으로 명명하는 순간, 도시의 횡단보도는 바다로 바뀐다.
- “헤엄쳐 나오는 길”은 현실의 ‘횡단’이 아니라 고립에서 빠져나오는 생존 행위가 된다.
- “푸른빛 등대”는 바닥 신호등의 기능을 정확히 살리면서도, 인간을 안전으로 인도하는 구원 장치로 의미를 키운다.
- “무자맥질 도와요”는 어설프게 허우적대는 몸짓까지 포착해, 스몸비를 비난하기보다 위험한 시대의 보편적 몸으로 다룬다.
중장: 회색 도시 아래에 끓는 ‘심해의 습성’
불통과 무관심에 푹 빠진 회색 도시
저 아래 해저에는 삼각파도 들끓는지
몸에 밴 심해의 습성
느닷없이 나타나요
- “불통과 무관심”은 도시의 정서적 기후이다. 회색 도시는 차가운 무표정의 공동체를 뜻한다.
- 그런데 시는 표면(도시) 아래를 “해저”로 설정한다. 겉은 멀쩡하지만 아래에서 “삼각파도”가 들끓는다는 말은, 신호를 어기고 튀어나오는 차량, 급정거, 사고의 위협 같은 도시의 잠재적 폭력을 바다의 난류로 바꾼 것이다.
- “심해의 습성”은 더 무섭다. 심해는 빛이 닿지 않는 곳이고, 습성은 몸에 밴 자동 반응이다. 즉 이 시는 도시가 이미 사람들에게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무감각(심해의 습성)**을 체화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사고는 “느닷없이” 나타난다.
종장: 별과 공제선, ‘수호신’의 파견
꽉 들어찬 별들로 하늘은 이미 만원
차도와 인도 사이 공제선에 빛을 심어
지상에 더 머물라고수호신을 내보냈죠
- “하늘은 이미 만원”은 기막힌 과장이다. 별이 빽빽한 하늘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위(하늘)의 신호는 포화 상태라는 느낌을 준다. 위에서 내려오는 구원(큰 이상,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아래(바닥)에 심는 작은 빛이 사람을 살린다는 역설이 강화된다.
- “공제선”은 경계의 자리이다. 차도와 인도 사이, 생과 사가 갈리는 선이다. 그 경계에 “빛을 심는다”는 표현은 기술(LED 장치)을 농사/생명의 이미지로 바꾼다.
- “지상에 더 머물라고”라는 문장은 바닥 신호등의 실용을 넘어, 생명에 대한 윤리적 당부가 된다. 수호신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장치, 그러나 그 장치는 진짜로 사람을 살리는 신이 된다.
종결부: 바퀴까지 숨 고르는 순간, 늦게 찾아오는 안심
멀리서도 알아보고 바퀴마저 숨 고르는
목숨줄 길잡이로 끌어주고 싶었어요
뭍으로 진입한 섬들
그제서야 안심하는,
- “바퀴마저 숨 고르는”은 도시의 기계가 생명을 위해 멈추는 장면이다. 보통 인간이 기계에 맞춰지는데, 여기서는 기계가 인간을 위해 호흡을 조절한다.
- “목숨줄 길잡이”는 신호등을 생명의 밧줄로 보는 인식이다.
- 마지막 “뭍으로 진입한 섬들”이 아름답다. 섬(고립된 개인)이 뭍(연결된 안전)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곧 단절에서 연결로의 귀환이다.
- “그제서야 안심하는,”의 쉼표는 완결을 늦춘다. 안전은 완료가 아니라 매번 ‘겨우’ 도착하는 상태임을, 그 미세한 불안을 쉼표로 남긴다.
이 시조의 성취
- 현실 인식: 스몸비, 불통, 무관심, 도시의 위험을 정면으로 본다.
- 비유의 일관성: 섬-헤엄-등대-해저-심해-뭍까지 바다 어휘가 끊기지 않고 연결된다.
- 확장된 풍경: 횡단보도 한 장면이 하늘(별)과 바다(해저)까지 뻗어 “손바닥만한 시조 속 거대한 풍경”을 만든다.
- 윤리의 온도: 비난 대신 “세워주고 싶었다/끌어주고 싶었다”는 보호의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
「바닥 신호등」은 고개 숙인 도시의 ‘섬’들이 위험한 ‘해저’를 건너 ‘뭍’으로 올라오도록, 바닥의 푸른빛을 등대·수호신으로 세워 생명을 지키는 길잡이로 재해석한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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