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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지피티가 그러는데 / 이해준

 

"어? 새다!"

아정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복도 끝이다.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어디? 어딘데?'라며 소란을 피워대는 바람에 시원이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깜짝이야. 고개를 드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복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원이도 질세라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뛰어나갔다.

"진짜다!"

"어디? 아, 찾았다. 저기 있다!"

"와, 나도 볼래!"

복도 끝, 저 멀리 보이는 새는 유난히 귀여웠다. 파드득 파드득, 사람들이 다가와서 놀랐는지 이리저리 빠른 속도로 몸의 방향을 바꿔가며 유리창을 날개로 두드려대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까치는 아니고, 비둘기도 아니고, 참새만 하긴 한데 아무튼 참새 같지도 않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고개를 갸웃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한테 보낸다느니, 내일 친구한테 보여 주겠다느니 하는 말들을 두고 시원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바보들. 사진만 찍어 두면 끝인가? 뭔지 알아낼 줄도 모르면서.

"야. 저거 직박구리야."

"뭐야, 이시원? 너 저 새 알아?"

"아니. 방금 내가 찾아냈어."

시원이는 아이들에게 핸드폰 화면을 척 내밀었다. 대화로 이것저것 질문을 건낼 수 있는 AI, 톡 지피티였다. 방금 찍은 사진을 보내고 '새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 확실히 알아볼 수 없지만 직박구리로 보입니다.] 라고 답변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신기하다. 이런 것도 돼?"

"새 이름이 직박구리래. 웃기다. 킥킥."

시원이는 뿌듯해하며 아이들 손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아정이의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자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 건 물론이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아정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일지도 모른다. 같은 반이 된 뒤 한 달 내내 바라온 일이다.

시원이가 두근대는 가슴으로 서 있던 그때, 옆에서 4학년 2반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선생님이 고개를 쑥 내밀자, 아이들은 깜짝 놀라 '어, 선생님이다!'라고 외쳤다.

"너희들 집에 안 가고 뭐 하니?"

담임 선생님의 등장에 시원이의 어깨가 찔끔 움츠러들었다. 평소엔 유쾌한 선생님이지만, 화를 내는 목소리는 파도만큼 거세다는 걸 알아서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미 이쑤시개처럼 뾰족해서 아이들은 변명하듯 앞다투어 대답했다.

"저희 여기서 요리랑 컴퓨터 방과후 수업 기다려요."

"복도에 새 들어왔어요, 선생님!"

"이시원이 지피티로 찾아봤는데 저 새 직박구리래요!"

"새? 새가 들어왔다고?"

선생님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쉬잇, 하고 검지를 입술에 대며 자분자분 말을 건넸다.

"얘들아. 새가 흥분하면 나가는 길을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저리로 가 있어."

"저희 안 그래도 갈 거예요. 이제 방과후 수업 시작해요."

"그래. 알았으니까 가. 창문 좀 열어 주게."

에이,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데. 투덜대는 목소리에도 선생님은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조심스럽게 복도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새가 정말 나가는지 확인하느라 자꾸 고개를 돌렸다. 배부르고 졸릴 때처럼 발이 느리게 질질 끌렸지만, 뒤를 돌아 볼 때마다 선생님이 눈을 얇게 뜨고 지켜보고 있어서 돌아갈 수 없었다.

3층과 4층으로 나뉘는 계단참에 도착하자, 지민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수업하고 나올 때까지 못 나가면 어떡해?"

"에이, 그 전에는 나가겠지."

"그치? 근데 시원이 너 톡 지피티 진짜 잘 쓴다. 어떻게 바로 찾아내냐."

마지막 칭찬에 시원이의 가슴이 단박에 뿌듯해졌다. 한두번 써봐서는 시원이처럼 자연스럽게 톡 지피티를 쓸 수 없다. 흠흠,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원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야. 나 이제 4층으로 올라간다. 내가 다음에는 대화하는 거랑 퀴즈게임 하는 것도 보여줄게."

"우와! 우리 그럼 목요일엔 좀 빨리 만나자!"

"그래. 잘 가."

목요일에는 더 빨리 보자는 아정이의 말에,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매번 재미없게 느껴지던 컴퓨터 수업도 할만하게 느껴진 건 덤이다. 아니, 사실은 목요일을 상상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시원이는 콧노래와 함께 가방을 정리하다가 옆자리에서 의자를 집어넣던 지민이에게 말을 걸었다.

"김지민. 우리 직박구리 나갔나 확인하고 갈래?"

"복도에 다시 가자고?"

담임 선생님의 따끔한 눈초리가 떠오르는지 지민이의 눈이 흔들렸다. 사실 혼자 가기 무서웠던 주제에, 시원이는 흔들림 없이 큰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어차피 아래층이잖아.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면 되지."

"난 안 갈래. 학원 차 타러 가야 돼. 그리고 그 새 직박구리 아닐지도 몰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선생님이 아까 창문 열면서 작게 말씀하셨잖아. 직박구리 아닐텐데, 라고."

무슨 소리지? 직박구리가 아니라니! 손을 흔들며 떠나는 지민이의 뒤통수에 대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발부터 잽싸게 움직였다. 아직 새가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가서 확인해 보면 된다.

뛰어 내려가는데도 계단은 유난히 길었다. 겨우 4학년 2반 앞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시원이는 앞으로 휙 쏠려있던 허리를 빳빳하게 폈다. 선생님이 창문을 닫다 말고 '누가 복도에서!'라는 눈빛으로 시원이를 살벌하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시원이는 헐떡대는 숨을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새가 나갔어요?"

"그래, 시원아. 근데 선생님이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을텐데."

"죄송합니다. 직박구리가 아직 있는지 궁금해서……"

냉큼 고개를 숙이자 선생님의 날카롭던 눈에서 힘이 풀렸다. 선생님은 손을 탁탁 털면서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직박구리? 아까 톡 지피티가 직박구리라고 그랬어?"

"네. 여기요."

시원이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대화 기록을 보여 드렸다. 선생님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글자들을 읽는 동안, 시원이는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꼼지락댔다.

"멀리서 찍은 사진이라 틀렸나 보다. 아까 그 새는 박새야."

쿵. 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에 이마 위로 식은땀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톡 지피티는 잘 안 틀리는데. 어른들이 모르는 것도 다 알려주는데. 게다가 나는 톡 지피티를 엄청 잘 쓰는데, 애들도…… 아정이도 감탄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결국 시원이는 벌컥 큰소리로 답했다.

"선생님. 근데요. 그, 톡 지피티는 엄청 똑똑한데요!"

"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잖니."

"이상하다. 박새 아닐 것 같은데. 톡 지피티는 사람보다 정확한데, 이상하다……"

시원이 얼굴은 어느새 핫팩처럼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혹시 선생님이 잘못 안건 아닐까. 아무튼 톡 지피티보다는 선생님이 틀릴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톡 지피티는 AI이고 선생님은 사람이니까…… 자꾸 미적대며 말끝을 흐리자 선생님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쉬어 있고 표정도 그대로인데, 어쩐지 다시 교실로 돌리는 발소리가 무겁게 들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일 보자 시원아."

"네. 안녕히 계세요."

어딘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에, 시원이는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톡 지피티한테 대화를 걸었다.

있잖아. 아까 보낸 사진을 보고 너는 직박구리라고 했잖아. 근데 선생님은 그 새가 박새래. 뭐가 맞는 거야? 네가 선생님보다 똑똑하지 않아? 톡 지피티는 고민하는지 잠자코 있다가 와르륵 답변을 내놨다.

[똑똑하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학교에서 쌓은 감정 교류와 지도 경험이 있고, 저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의 정확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똑똑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직박구리는 박새보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새의 크기가 작았다면 박새일 가능성이 높아요. 눈으로 봤을 때 크기가 작고 머리에 검은색이 있었나요?]

그랬던가? 크기는 사과만 하고 머리 부분이 좀 까만 건 기억난다. 그대로 적어 보내자 지피티는 다시 한번 답변을 내놓았다.

[선생님의 승리네요. 정수리에 검정색으로 덮인 무늬가 있고 크기가 작다고 하니, 그 새는 박새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진을 보여드릴까요?]

뭐라고? 놀랄 틈도 없이, 톡 지피티는 약 올리듯 박새와 직박구리의 사진을 띄워주기까지 했다. 다시 보니 사진 속 새는 헷갈릴 수 없을 정도로 박새였다.

'말도 안돼!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얘기하기 전에 한 번만 확인해 볼걸. 이것도 제대로 못 맞히고, 확 다른 AI로 바꿔버릴까보다!'

시원이는 달달 끓는 냄비처럼 부글대며 걸었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이젠 톡 지피티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내일은 다들 새 같은 건 홀랑 다 까먹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중얼대며 집으로 향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자기 전에 한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칠판 앞, 첫째 줄에 앉은 아정이가 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진짜야. 저기 창문 주변에 막 날아다니면서 탁탁 부딪혔어."

"오늘도 와 주면 안 되나? 이왕이면 우리 교실로!"

"어차피 가까이에선 못 볼걸. 어제도 선생님이 새 놀란다고 멀리서 보라 하셨는데."

"그래도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것보단 가깝잖아. 히히. 아무튼 톡 지피티는 나도 다음에 써 봐야지."

시원이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선생님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응, 안녕'하고 답하자 어제 오후의 일이 생각났다.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을 벅벅 긁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고 말해볼까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정이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분명히 대화가 들릴 거다. 아정이는 착하니까 놀리거나 하진 않겠지만…… 목요일에 톡 지피티로 놀 기회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불편한 마음에 발가락이 자꾸 구운 오징어처럼 곱아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평소에는 말도 걸지 않던 아정이가 갑자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시원. 너 그래서 어제 다시 갔어?"

"어?"

"지민이가 그러는데 다시 가서 봤다며. 새 이름 뭐라 그랬지? 이름이 길어서 기억이 안 나. 딱따구리 같은 건데."

아정이 맞은편에 앉은 지민이까지 빤히 바라보자, 가슴이 동생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꼭 조여들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돼지? 박새? 직박구리? 교탁 코 옆에 있으니 선생님한테도 들릴 텐데. 시원이는 톡 지피티가 그러는 것처럼 잠시 우물대다가 우르르 말을 쏟아냈다.

"어제 복도에 다시 갔는데 새 없어서 그냥 왔어. 이름은 기억 안 나."

"그래? 금방 날아갔나 보네. 대화 기록에 무슨 새인지 써 있지 않아?"

"어. 그런가?"

"뭐야, 너 톡 지피티 잘 쓰잖아. 한번 봐 봐."

"그게…… 핸드폰이 어딨더라."

어쩌지. 지금 톡 지피티 대화창엔 사실 사진 속 새가 박새라는 것까지 다 적혀 있다. 그렇게 아는 척을 했는데, 아직 선생님께 박새가 맞다고 말도 못 했는데. 바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두고 괜히 가방 속을 뒤적거리려는데, 뒤에서 선생님의 칼칼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직박구리."

"네?"

"시원이가 어제 직박구리라고 알려 줬다며."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자리에 앉아 뽀득뽀득 안경알을 닦는 선생님이 보였다.

"시원이가 톡 지피티를 그때그때 잘 쓰더라. 너무 많이 쓰면 안 좋지만, 필요할 때 잘 쓰니까 좋던데. 아정이도 한 번 같이 해 봐."

"네!"

"핸드폰은 넣고, 이제 슬슬 아침 독서 시작하자."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들도 창가에 달린 시계를 쳐다보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지금 시간은 8시 49분, 8시 50분부터는 아침 독서 시간이다. 시원이는 후다닥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다 말고 선생님을 빼꼼 바라보았다. 교탁 앞에 서서 책장을 넘기던 선생님은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위로 휙 올렸다.

시원이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책장에 고개를 파묻자 정수리부터 등까지 전부 햇볕에 잘 익은 돌처럼 뜨끈하게 느껴졌다. 딩동댕동,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시원이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시원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입가에는 풀잎만큼 얇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당선소감>

 

   "어린이들의 천진함을 빌려 성실히 쓰겠습니다"

미적미적, 꿈틀꿈틀. 어릴 적을 떠올리면 도대체 어머니가 절 어찌 키우셨나 궁금합니다. 출발선 앞에 서기 전부터 긴장되고 걱정하느라 준비하는 시간이 긴 아이였거든요. 신발끈이 헐 때까지 고쳐 묶고서야 길을 나섰고, 연필이 눈에 띄게 짧아질 때까지 돌돌 깎아야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달리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어린이는 커서도 걱정하느라 세월을 다 보냅니다.

글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동화를 읽을 아이들은 줄어들고 AI는 글쓰기를 대체한다고, 글과 책과 문장은 이제 가라앉는 배라고. 우울한 소문을 어깨에 이고 쓰는 동안 자주 질문했습니다. 질문 덕에 글이 나왔고 나름의 응답을 받은 것 같아 더없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던 순간 얼마나 가슴이 세차게 뛰던지요. 포유류의 심장은 일생동안 뛸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던데, 오늘 팔짝팔짝 미리 다 뛰어버려서 내일쯤 눈을 못 뜨는 게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정말이지 한결같이 걱정도 팔자입니다. 이제는 정말 불안한 마음을 떨치고 이만 좀 뛰어보라는 신호탄으로 알아듣고, 가능한 멀리 나아가 보겠습니다. 어린이들의 천진함을 빌려, 불확실에 압도되지 않도록 성실히 쓰겠습니다. 출발선 앞의 고민이란 원래 달리기 시작하면 훌훌 휘발되는 것이니까요.

시동을 걸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한국일보에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주말마다 글 쓰러 간다며 코빼기도 안 비춘 딸을 이해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어작교 정해왕 선생님과 소중한 글벗들, 늘 곁이 되어준 친구들, 영감의 원천인 학교 도서관 속 어린이들, 망설이는 손을 잡아 이끌어준 현소에게도 정말 고맙습니다. 오래 쓰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배 안에 고인 물을 조금씩 떠내야 하는 고단한 여행길이 되더라도, 오랫동안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996년 충남 천안시 출생      공주대 사범대학 문헌정보교육과 졸업


 

  <심사평>

  

  "어린이 고민 과정 따라가는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

생성형 AI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 예술 창작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인공지능이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창작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창작의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고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230편의 투고작들을 살피며 이 작품들이 완성되어 우리 앞에 당도하기까지 창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오래 고민하고 마침내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갔을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하필 동화였을까, 동화를 쓰기 위해 어린이와 어린이의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궁리해보았을까, 아마 거기에 인간 창작자의 마음과 힘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문장과 서사의 짜임새는 고르게 상향평준화되었으나 인상적인 소재와 캐릭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의인화 동화는 동화에 대한 통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화 장르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다. 유치한 발상과 교훈주의는 동화 쓰기의 가장 큰 산일 것이다. 노인과 질병, 죽음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SF는 짧은 분량 안에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관을 품고 있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빈 상자 속에는', '소풍 가는 길', '비 온 뒤 맑음', '누나, 연애하지 마!', '지피티가 그러는데' 다섯 편이었다. 방임 상태에 놓인 아이가 택배 상자 속에서 길을 잃는 '빈 상자 속에는', 장례식장에서 두 가족이 따뜻하게 연결되는 '소풍 가는 길', 신비로운 전학생 친구 이야기를 다룬 '비 온 뒤 맑음'은 모두 완성도가 높고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고심한 작품은 '누나, 연애하지 마!'와 '지피티가 그러는데'였다. '누나, 연애하지 마!'는 누나와 남자친구의 연애를 방해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귀여운 남동생의 이야기라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다. 누나의 교실을 들락날락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생생하고 어린이의 명랑한 생활이 잘 그려져 있다. 교훈을 주려는 욕심 없이 상황에 집중한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지피티가 그러는데'는 방과 후 학교 복도로 들어온 새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AI와 교사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을 때 아이들이 느낄 법한 혼란과 당혹스러움을 그리고 있다. 짧은 분량 안에서 간결하게 문제를 잘 다루고 있으며 방과 후 학교 풍경과 아이들의 떠들썩함이 활기 있게 그려졌다는 것도 장점이다. 두 작품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어 고민이 깊었지만 오래지 않아 '지피티가 그러는데'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시의성이 분명하며 정해진 답을 내놓기보다 주인공이 당면한 고민의 과정을 따라가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더 많은 '과정'을 다루어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민령, 오세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줄 핵심

AI의 ‘정답’으로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사람 사이에서 ‘틀릴 자유’를 허락받는 경험이 부딪히면서, 주인공이 “정답”보다 “관계와 과정”을 배우는 이야기.


2) 제목이 먼저 말해주는 것: “지피티가 그러는데”

이 말투는 책임을 밖으로 미룬다.

  • “내가 그렇게 생각해”가 아니라 “걔(지피티)가 그랬어
    판단의 주체가 ‘나’에서 ‘도구’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 동화의 갈등은 단순히 “새 이름 맞히기”가 아니라,
**내 말의 책임을 누구에게 둘 것인가(나/AI/어른)**의 문제로 확장된다.


3) 갈등의 축 3개: AI vs 교사 vs 또래(그리고 ‘아정이’)

(1) AI: 빠르고 그럴듯한 권위

지피티의 첫 답은 “확실하지 않다”는 단서를 달지만, 아이들은 그 단서를 ‘정답’으로 받아들인다.
→ 요즘 정보환경의 핵심: “확률적 말”이 ‘권위의 문장’처럼 소비되는 현상

(2) 교사: 경험 기반의 현실 권위

선생님은 한눈에 “박새”라고 말한다.
이때 주인공은 ‘지식의 경쟁’으로 받아들인다.
→ “사람보다 정확한 AI”라는 믿음이 자존심과 결합한다.

(3) 또래: 평가의 시선, 특히 ‘아정이’

주인공이 AI를 쓰는 이유는 지적 호기심도 있지만 더 크게는
**인정(멋져 보이기) + 관계(아정이와 가까워지기)**다.
그래서 틀림은 지식 오류가 아니라 사회적 수치심으로 커진다.


4) 시원이라는 인물의 핵심 심리: “똑똑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순간

시원이는 AI를 “잘 쓰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얻는다. 그 정체성은 즉시 보상받는다(아이들 감탄, 아정이 눈빛).
그런데 선생님의 “박새” 한마디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뀐다.

  • 틀림 = 실수
    이 정도면 괜찮다.
  • 틀림 = 내가 쌓아 올린 이미지 붕괴
    이게 되면 무섭다.

그래서 시원이는 사실 확인보다 체면(이미지) 방어를 선택하고, 결국 거짓말(“기억 안 나”)까지 간다.
이 동화는 아이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도덕”으로 단정하지 않고, 부끄러움의 압력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5) ‘새 이름’은 사실 무엇의 상징인가

새는 “정보 퀴즈”처럼 보이지만, 기능은 더 크다.

  • 새(복도에 갇힘) = 길을 못 찾는 존재
  • 시원(정답과 체면 사이에 갇힘) = 마음의 출구를 못 찾는 존재

둘 다 “흥분하면 길을 못 찾는다”는 선생님의 말과 연결된다.
즉, 이 동화는 은근히 말한다:
흥분(체면·자존심·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더 출구를 잃는다.


6) 가장 중요한 장면: 선생님의 ‘구하기’

다음날,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직박구리”라고 말해 준다.
선생님은 이미 “박새”를 알고 있는데도, 공개적으로는 시원이를 살려 준다.

이 행동이 작품의 윤리 핵심이다.

  • 선생님은 “정답”을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 동시에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교훈을 설교하지 않고,
아이의 체면을 지켜 준 다음에, 스스로 돌아볼 시간을 남겨 준다.
마지막의 ‘얇은 미소’는 “네가 지금 어떤 싸움을 했는지 안다”는 신호다.


7) AI(지피티)의 묘사가 흥미로운 이유: ‘악역’이 아니다

지피티는 자신이 절대적 우위라고 우기지 않는다.
오히려 “똑똑함은 여러 의미”라고 말하며, 교사의 경험을 인정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스스로 “선생님의 승리”**라고 정리한다.

이 설정 덕분에 동화가 단순한 “AI 위험해!”로 흐르지 않는다.
대신 질문이 선명해진다:

  • AI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틀렸을 때 내가 무엇을 하느냐”**다.
  • 도구의 오류가 아니라
    **사용자의 태도(확인, 책임,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8) 문장/장면 장치 포인트 6개

  1. 방과 후 복도의 소란: 아이들의 ‘군중 심리’와 과열을 빠르게 세팅
  2. 사진이 멀리서 찍힘: AI의 오류 가능성을 합리화(단서가 이미 있음)
  3. “너무 많이 쓰면 안 좋지만”: 도구 윤리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교사의 균형감)
  4. 시간 표기(8:49): 일상 리듬 속에서 불안이 ‘지금 여기’로 고정됨
  5. 몸의 은유(발가락, 정수리 뜨거움 등): 수치심을 ‘감정’이 아니라 ‘신체’로 체감하게 함
  6. 사과/고백을 말로 강요하지 않음: 대신 ‘고개 숙임’과 ‘미소’로 마무리 → 동화다운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