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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로켓과 티포트 / 고민실

 

다시 봐도 경비원 할아버지가 만드는 로켓은 굉장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로켓 키트들은 전부 시시해 보였다.
전기주전자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성능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끓지 않았다.
그동안 경비원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전기주전자를 자랑했다.
“이게 독일제야, 독일제. 내가 젊을 때 독일에서 일했거든. 그때는 독일제 하면 알아줬어…”
전기주전자를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라고 불렀다.

“일, 이, 삼, 사….”

술래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숨을 곳을 찾았다. 놀이터에 숨으면 금방 들킬 것 같았다. 경비실로 가보아도 택배 상자가 몇 개 없어서 그 뒤에 숨기는 어려워 보였다. 자전거 보관함에 가보려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고개를 빼고 아래를 살폈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술래가 와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자 둥근 손잡이가 달린 문이 있어 열고 들어갔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줄줄이 늘어선 기둥 사이로 노란색과 파란색의 커다란 파이프가 길게 뻗어 있었다. 바닥에는 흙먼지가 가득했고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 멀리 꼬마전구처럼 작은 불빛이 보였다. 함부로 들어갔다가 혼날 것 같아 망설이다가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노란색 파이프를 따라 걸었다. 세 번째 기둥을 지나자 주위가 조금씩 밝아졌다. 문 한쪽이 떨어진 수납장 위에 작은 등이 빛나고 있었다. 수납장 옆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회색 셔츠에 남색 바지, 경비원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컵라면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와아!”

내가 탄성을 지른 건 라면이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 옆에 커다란 원통이 서 있었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얇아지는 모양이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은 두 팔로 껴안으면 간신히 손끝이 닿을 것 같았다. 제일 아래쪽에는 네 개의 얇은 판이 세로로 붙어 있었다.

“만지지 마라.”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손을 움츠렸다. 만지는 대신 손가락을 뻗어 원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로켓이죠?”

“그래.”

경비원 할아버지는 삼각김밥을 뜯어 국물만 남은 컵라면 용기에 넣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꾹꾹 누르더니 국물과 함께 밥을 떠먹었다. 나는 경비원 할아버지의 입이 멈추기를 기다려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거예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 거지.”

“진짜 할아버지가 만들었어요?”

“그래.”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서 경비원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전기주전자에 생수를 붓고 스위치를 올렸다. 전기주전자의 몸통은 은색이고 손잡이는 검은색이었다. 뚜껑이 뾰족해서 고깔모자 같았다.

“커피 줄까?”

“네.”

나는 아직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전기주전자에 생수를 더 부었다. 물이 끓을 동안 로켓을 구경했다. 완성되면 내 키보다 클 것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로켓 키트 중에 이 정도로 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구경하는데 전기주전자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뭉실뭉실한 수증기를 뿜어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경비원 할아버지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밀며 말했다.

“또 와서 구경해도 된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만지지는 말고.”

“절대 안 만질게요.”

나는 경비원 할아버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굳게 약속했다. 커피는 향기만큼 맛있지 않았다. 단맛 뒤에 쓴맛이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었다. 왜 아빠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반도 마시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지하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부셨다. 그때까지 나를 찾고 있던 술래와 헤어져 집에 돌아갔다. 부엌에서 저녁을 만들고 있던 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또 공 차다 왔니? 길에서는 위험하다니까.”

“공 안 찼어. 숨바꼭질했어.”

감자를 썰던 아빠가 힐끔 내 옷차림을 살폈다. 옷은 깨끗했다. 더러워지기라도 했으면 또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아빠는 말없이 당근을 꺼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로켓 키트 사주면 안 돼?”

“생일선물로 받았잖아.”

“그건 너무 작단 말이야. 더 큰 거 갖고 싶어.”

“더 크면 위험해서 안 돼.”

“아빠가 도와주면 되잖아.”

“내가 도와주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빠는 돌아보지도 않고 당근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부루퉁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누웠다. 내 방에는 우주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지구, 막대나선 모양의 우리 은하, 달에 갔다 돌아온 유명한 연예인, 새로 출시된 우주 여객선, 화성에 가는 우주선….

처음 로켓 제작 키트가 나왔을 때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누구나 쉽게 조립해서 하늘로 쏘아 올릴 수 있었다. 갈수록 로켓 크기가 커졌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로켓 키트 발사장도 생겼다.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건 고작 팔 길이만 했다. 지하실에 있는 로켓을 아빠에게 보여주면 뭐라고 할까.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다음 날 지하실에 내려가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다시 봐도 경비원 할아버지가 만드는 로켓은 굉장했다. 이것에 비하면 다른 로켓 키트들은 전부 시시해 보였다.

“코코아 줄까?”

“좋아요.”

커피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로켓을 구경했다. 전기주전자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성능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끓지 않았다. 그동안 경비원 할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전기주전자를 자랑했다.

“이게 독일제야, 독일제. 내가 젊을 때 독일에서 일했거든. 그때는 독일제 하면 알아줬어. 얼마나 튼튼한지 벌써 몇십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멀쩡한 거 봐라.”

전기주전자를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라고 불렀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면 티포트로 물을 끓여서 씻었거든. 꽝꽝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는 데에도 제법이었다니까. 지금도 매일 이걸로 커피를 타 마신단 말이지. 컵라면도 먹을 수 있고. 이만하면 아직 쓸 만하지.”

드디어 물이 끓었을 때는 티포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나는 코코아를 받아 들고 후후 숨을 불어 식혔다. 달콤한 맛이 익숙했다.

“로켓 다 만들면 쏘아 올릴 거죠? 저도 구경 가면 안 돼요?”

“글쎄다, 손주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거라.”

“한 달밖에 안 남았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그때까지 구경하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로켓 만드는 건 언제 와야 볼 수 있어요?”

“쉬는 시간에 만드니까 너는 보기 힘들걸.”

“쉬는 시간이 언젠데요.”

“새벽. 너 자는 시간.”

“왜 새벽에 만들어요?”

“낮에는 일해야 되니까 그렇지.”

경비원 할아버지가 순찰 나갈 시간이라며 일어났다. 나는 코코아를 얼른 마시고 따라 일어섰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손전등으로 발밑을 비추며 말했다.

“너무 자주 오지 마라. 들킨다.”

“내일 말고 모레 올게요.”

“공부해야지. 일주일에 한 번만 와. 수요일마다 어떠냐?”

“싫은데요.”

결국 일주일에 두 번 오기로 약속하고 다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문 앞에서 경비원 할아버지가 나를 먼저 내보냈다. 계단에 발을 올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손전등을 껐는지 지하실이 어두컴컴해졌다.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경비원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약속대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지하실을 찾아갔다.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려주기도 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칭찬해 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 가슴 높이까지 오던 로켓은 어느새 내 키를 넘어섰다.

지하실에 갈 때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나에게 코코아를 타주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가 식기를 기다리며 로켓을 구경하고 있으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물었다.

“로켓이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전 나중에 커서 로켓 만드는 사람이 될 거예요.”

“우리 때는 자동차가 최고였는데… 내가 자동차 만드는 일을 했었거든. 그동안 만든 부품이 백만 개는 될 거다. 그때는 지나가는 차마다 전부 내가 만든 부품이 들어가 있었다니까.”

경비원 할아버지는 자동차 이야기를 또 한참 했다. 가끔은 아이엠에프 같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정작 자기 차는 없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릴 때는 눈썹 끝이 처져서 우울해 보였다. 자동차 이야기가 끝나나 싶었더니 다시 티포트 이야기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루해졌다. 내가 발돋움해서 로켓 안쪽을 구경하는 데 열중하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말했다.

“로켓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했는데.”

커피는 써서 마시기 싫지만 향기를 맡는 건 좋았다. 커피 향이 나는 코코아나 코코아 맛이 나는 커피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며 코코아를 홀짝였다. 빈 종이컵을 내려놓은 경비원 할아버지가 손등으로 입을 닦고 물었다.

“뭐라 하시던?”

“네?”

“로켓 말이다. 네 할아버지가 뭐라 하셨는데?”

“쓸데없는 게 우라지게 비싸구나, 막 이랬어요.”

굵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하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죠.”

나는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그랬듯이 고개를 쳐들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주에 버스를 타고 갈 수는 없잖아요.”

경비원 할아버지가 뭔가를 꾹 참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경비원 할아버지 역시 입을 실룩거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부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래된 티포트가 얼마나 물을 잘 끓이는지 자랑하고 또 자랑했는데…
어쩌면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는지도 몰랐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로켓 머리에 얹었다.
크기가 딱 맞았다.
“로켓 완성하면 네가 가져라.”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로켓은 빠르게 완성되어 갔다. 이제 머리 부분만 남았는데, 경비원 할아버지는 딱 맞는 고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아빠 몰래 부엌을 뒤져봤지만 적당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한동안 지하실에 가도 경비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로켓을 만드는 대신 뭔가 다른 일로 바쁜 것 같았다. 그래도 작은 등을 끄지 않고 항상 켜 놓았다. 희미한 빛을 받으며 서 있는 로켓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을 떠올리고 나는 하얀 입김만 뿜어냈다.

학원에 다녀오자 집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아는 분도 있었고, 처음 보는 분도 있었다.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는데 ‘경비원’이라는 말이 들려와 발을 멈추고 말았다.

“최저임금이 오르잖아요.”

“그렇다고 경비원을 해고해요? 10년 넘게 일하신 분도 계신데.”

“그래서 더 문제죠. 너무 나이가 드니까 경비실에서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면 경비원은 필요 없지 않아요?”

잘 모르는 말이 있어서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해고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해고되면 로켓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친구를 만난다고 하고 바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깡깡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낮에는 일해야 되니까 로켓을 만들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의아해하면서도 드디어 로켓 만드는 걸 구경할 수 있나 싶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부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래된 티포트가 얼마나 물을 잘 끓이는지 자랑하고 또 자랑했는데… 어쩌면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는지도 몰랐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티포트를 로켓 머리에 얹었다. 크기가 딱 맞았다.

“로켓 완성하면 네가 가져라.”

경비원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주 녀석은 필요 없다더라. 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구나.”

“바보 아냐? 이건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건데.”

입을 비죽거렸더니 경비원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한 손이 거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부드러웠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제가 가져도 돼요?”

“너도 많이 도와줬잖아.”

“진짜, 진짜죠?”

“그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와아!”

나는 환호를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경비원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문지르던 손으로 로켓 위에 올라간 티포트를 쓰다듬었다.

“평생 물만 끓였는데 한 번쯤 별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지.”

로켓 키트가 우주까지 날아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구름에만 닿아도 성능이 좋은 거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닫았다. 이렇게 큰 로켓이라면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벌써 그날이 기대돼 몸이 들썩거렸다.

며칠 뒤 지하실에 내려가자 경비원 할아버지는 없고 완성된 로켓만 서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팔을 위로 쭉 뻗어야 겨우 로켓 머리와 손가락 높이가 비슷해졌다. 나는 세 걸음 뒤로 물러나 보았다. 은색,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색종이를 찢어 붙인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가까이 갔다.

“내 거야.”

경비원 할아버지가 가지라고 말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도 어쩐지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처음으로 만진 로켓은 울퉁불퉁했다. 서로 다른 쇳덩어리를 이어 붙인 자국이 나뭇가지처럼 불거져 있었다. 얼마 만지지 않았는데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돌아섰다.

지하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자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닥에 깔리기 시작한 하얀 눈송이를 구경하다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게시판 안내문에서 ‘경비원’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자세히 읽었다.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으로 경비원을 감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무인경비가 뭐야?”

“사람이 필요 없는 경비라는 뜻이야. 기계가 대신 일하는 거지.”

“감원은 뭐야?”

“사람 수를 줄인다는 뜻이야.”

그제야 나는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졌던 해고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경비원 할아버지 쫓겨나는 거야?”

“쫓겨나는 거 아니야.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하기 힘들다고 그만두셨어.”

“그만뒀다고?”

꽥 소리 지르자 아빠가 눈을 크게 떴지만, 나보다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혼자 좋아했다고 생각하자 미안해졌다. 동시에 깨달았다.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은 더 이상 여기에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비밀을 입 밖으로 꺼낼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지하실에 로켓이 있어.”

“로켓이라니?”

“경비원 할아버지랑 같이 만들었어.”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잔소리하던 아빠는 지하실에서 로켓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는 반대로 입을 벌렸다. 정확히는 로켓이 아니라 그 옆자리를 보고 있었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 마시고, 컵라면을 먹던 공간을 응시하며 한동안 미간을 찡그린 채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빠는 뭔가를 한참 상의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로켓 키트 발사장을 예약해 줄지도 몰랐다. 그날 밤 가슴이 설레어 뒤척거리다가 늦게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로켓 키트 발사장에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셨다. 주위에 수많은 로켓이 있었지만, 내 로켓만큼 커다란 건 없었다. 다들 내 로켓을 보고 감탄하며 지나가 어깨가 으쓱해졌다.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로켓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못해 땅에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제법 높이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해가 졌다. 내 차례에는 주위가 어두워져서 도로 지하실에 내려와 있는 것만 같았다.

발사대에 로켓을 세우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경비원 할아버지도 있었다. 내가 소리쳐 부르자 경비원 할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쳐다보자 발사 버튼에 얹은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십, 구, 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같이 숫자를 셌다. 경비원 할아버지도 함께였다.

“사! 삼! 이! 일!”

다 같이 “발사!”를 외치는 순간 나는 버튼을 눌렀다. 불이 붙고, 모래가 움푹 파이고, 로켓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환성이 일었다. 별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하늘을 향해 로켓이 날아갔다. 우주까지 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로켓은 떨어지지 않았다. 희고 몽실몽실한 구름에 닿을 때까지 계속 올라갔다.

어느새 나는 로켓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높이높이 올라가서 우주에 도착할 거고, 구덩이가 숭숭 파인 달도 볼 거고, 뜨겁지만 멋지게 타오르는 태양도 보게 될 거야. 우주에서 보는 별은 얼마나 예쁠까. 언젠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도 가야지.

물이 끓을 때와 비슷한 냄새의 구름을 지나자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졌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 무리를 보는데 경비원 할아버지가 티포트를 부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코코아 맛이 나는 커피 향이 솔솔 풍겨왔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숨이 막혔다. 로켓이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로켓과 힘이 다해 떨어지는 로켓들로 발밑이 가득했다. 그리고 밤하늘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 무서워졌고, 조금 쓸쓸해졌다. 어쩌면 나는 로켓이 아니라 티포트가 된 걸지도 몰랐다. 나중에 다시 경비원 할아버지를 만나면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를 한참 들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소감>

 

   걸어도 되나 했던 길 출발… ‘다채로운 존재’ 위해 쓸 것

잘 잊어버리고 자주 헷갈리는 편이지만, 제가 처음 쓴 글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학교 숙제로 쓴 동화 패러디였습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청혼을 거절하고 재봉사가 되어 꿈을 이뤘다는 사실을 요정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녀가 역시 꿈을 좇는 이야기였죠. 선생님이 반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을 때 이름을 모르는 감정들이 몸 안을 간질였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재미있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자유로이 글을 쓰고 내보일 수 있게 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만한 재능도 열정도 부족하다고 믿었죠. 거센 풍랑과도 같았던 시기를 거치며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손에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책을 쥐고 있었죠. 구원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위안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덕분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그만두려던 씀을 계속하자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걸어도 되나 싶었던 길이 이제 걸을 수 있는, 걸어야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동화란 무엇일까. 발견했다 싶으면 다시 멀어지는 썰물 같은 질문을 껴안고 계속 끙끙대겠죠. 만약 허락된다면 어리다는 말로 가둘 수 없는 다채로운 존재에게 내보일 글을 쓰고 싶습니다. 파도가 훑고 가는 해안가에서 우연히 주운 조개껍데기에 찰나 머무른 빛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긴 시간을 통과해 인연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이름을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분께 도움받아 왔습니다. 당선을 가장 먼저 축하해 주신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님, 최나미 동화작가님, 감사합니다. 바닥을 더듬듯이 써오며 간간이 그려왔던 선배처럼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죠. 그 다정함을 품에 안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친애하는 자수정 문우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ㅁㅅㅁ와 미와 윤과 정, 사랑하는 가족…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고 만 요정 같았던 분들에게도 이 기회를 빌려 감사 인사와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모쪼록 다양한 모양의 행복이 두루 피어나기를.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동화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심사평>

  

  할아버지 로켓 위로 솟은 아이의 마음… 동화의 심장을 겨냥했다

올해 신춘문예는 지난해보다 투고 작품이 늘었고 SF 동화의 비율이 줄어든 반면 어린이의 생활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았다. 그중 다수가 가족이나 또래의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이를 제3의 시선이 아닌 1인칭으로 서술했다. 서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간절해진 현실 속에서 생사조차 묻기 어려운 작은 생명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일까. 경쟁은 과시하면서 생명은 업신여기는 사회, 밀려드는 기후 위기에 대한 어두운 전망, 이에 따른 생존 불안, 또는 생태 불안이 동화에서 감지된다.

본심에서는 ‘돌을 훔친 아이’ ‘삼각형의 고백’ ‘로켓과 티포트’ 세 편을 다루었다. ‘돌을 훔친 아이’는 기르던 금붕어의 죽음과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한 그리움을 연결하면서 스스로 슬픔을 다스리고자 애쓰는 어린이의 시간을 다루었다. 주인공 산이의 고통이 과거의 사건에서 온 것이라면 산이와 대립하는 정태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산이가 애타게 찾는 돌을 두고 “별것도 아니야”라고 내뱉는 정태의 말이 울림을 준다. 그러나 정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도둑질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사가 미약해서 독자가 알아서 짐작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 어린이 인물이 비극을 홀로 감당하는 전개와 단순한 결말도 아쉬웠다.

‘삼각형의 고백’은 사랑의 감정을 세련된 은유와 함께 그려낸 잘 읽히는 SF다. 중국 상공에 갑자기 나타난 삼각형 모양의 미확인 비행물체를 세 어린이의 관계에 빗대면서 사랑의 설렘을 발굴해냈다. 이는 현오와 서연이와 준영, 각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흥미로운 문학적 장치다. 이 장치에 의해 스쳐 지나가는 성장의 중요한 순간이 흥미롭게 포착된다.

하지만 임시휴교령이 내려질 만큼 불안한 상황임에도 그 두려움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고, 엄중한 상황이 사랑 이야기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됐다는 느낌을 준다. 준영이의 마음이 커지는 과정과 그 마음을 현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다소 도식적으로 그려졌다. 인물 이름이 잘못 적힌 실수가 몇 번 나오는데 사소한 것 같지만 작가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아쉽다.

‘로켓과 티포트’는 로켓을 좋아하는 한 어린이와 경비원 할아버지 사이의 우정과 연대를 다뤘다. ‘티포트’라는 외래어로 불리는 전기 주전자는 독일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했던 할아버지의 젊은 날이 투영된 아주 튼튼한 물건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손주에게 로켓을 만들어주겠다는 사랑의 일념 정도이다. 주인공 어린이는 호기심에서 출발해 점차 그 사랑을 이해하며 할아버지의 믿음직한 동료가 된다. 회고담에 그칠 수도 있는 소재를 어린이의 시각에서 잘 풀어낸 작품으로 할아버지가 로켓의 머리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서 티포트의 뚜껑을 부수는 시점이 인상적이다. 이 로켓이 더 이상 손주의 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무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해고가 예정된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평생 물만 끓였는데 한 번쯤 별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지”라고 티포트를 내리치는 장면은 먹먹한 감동을 자아낸다. 어린이 인물과 어른 인물이 맺는 관계의 바탕에 탄탄한 존중이 깔려 있다. 후반부에 엄마와 아빠의 연대가 암시되는데 이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나 스스로 로켓이 되는 꿈을 꾸면서도 할아버지와 나눈 성장에 대한 약속은 결심의 영역으로 남겨둔 점 등 이야기의 여백도 좋았다.

논의 끝에 ‘로켓과 티포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솟아오르는 로켓과 힘을 다해 떨어지는 로켓들을 발밑에 두고 하늘로 나는 어린이의 마음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동화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정진하시기를 응원한다.

이번 2025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해주신 모든 분들도 더욱 건필하셔서 좋은 작품을 쓰시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최나미 동화작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로켓과 티포트〉**는 “아이의 꿈(로켓)”과 “노동자의 삶(티포트)”을 한 물건에 겹쳐 놓고, 해고·감원 같은 사회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끝까지 붙잡아 감동을 만들어내는 동화예요. 핵심은 ‘큰 로켓’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위해 로켓을 만들었는가입니다.


1) 이야기의 큰 축: 로켓은 ‘꿈’, 티포트는 ‘생’

  • 로켓: 높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 미래, 가능성(“우주에 버스를 타고 갈 수는 없잖아요”)
  • 티포트(전기주전자): 물을 끓이는 일상 노동, 생존의 도구, 지난 이주노동의 시간(“독일제”, “보일러 고장 나면…”)

둘이 따로 있지 않고 마지막에 티포트가 로켓 머리가 되면서 상징이 합쳐져요.
→ “살기 위해 끓인 물”이 “별을 보러 가는 추진”으로 바뀌는 전환.


2) 관계의 핵심: ‘비밀 공유’가 만든 연대

이 동화는 우정이 갑자기 생기지 않아요. 비밀을 함께 지키며 자라요.

  • 아이: 지하실을 “숨을 곳”으로 발견 → 우연한 만남
  • 할아버지: “말하지 않으면 구경해도 된다” + “만지지 마라”
    접근 허락경계 설정을 동시에 줍니다.
  • 아이는 새끼손가락 약속을 반복하며 ‘약속의 사람’이 되고,
    인터넷 검색으로 돕고, 정보를 가져오며 동료가 됩니다.

즉, 이 둘은 ‘귀여운 친해짐’이 아니라 존중 기반의 협업 관계로 설계돼요.


3) 갈등은 아이의 욕망이 아니라 ‘어른들의 시스템’

초반엔 “큰 로켓 갖고 싶다”가 욕망처럼 보이지만, 진짜 갈등은 점점 바뀝니다.

  • 아빠: “더 크면 위험”, “내가 도와주면 무슨 의미”
    → 아이는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한 ‘열망’을 지하실에서 충족.
  • 중후반: “무인경비”, “감원”, “해고” 대화가 거실에서 들림
    → 아이의 관심이 로켓에서 경비원 할아버지의 자리로 이동.

이 작품이 좋은 건, 사회 문제를 설명하지 않고 **아이의 감정(불안·미안함·뒤늦은 깨달음)**으로 번역해 보여준다는 점이에요.


4) 인상적인 장면: 티포트를 ‘부순다’는 선택

티포트는 할아버지의 자부심이에요. 계속 자랑하죠. 그런데 그걸 직접 부숩니다.

  • “평생 물만 끓였는데 한 번쯤 별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지.”

이 한 문장으로, 할아버지는 단지 ‘불쌍한 노인’이 아니라
자기 삶의 도구를 꿈의 부품으로 전환하는 능동적 인물이 돼요.

그리고 손주에게 줄 선물이 사라졌을 때(손주가 “필요 없다”),
그 로켓이 아이에게 가는 건 대체 선물이 아니라 관계의 재배치입니다.
(가족 밖 연대의 탄생)


5) “완성된 로켓만 남아 있다”가 주는 공허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 로켓을 만지는 장면이 슬퍼요.

  • “내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가슴이 답답”
  • 처음으로 만진 로켓은 “울퉁불퉁”, “차갑다”

여기서 로켓은 더 이상 꿈의 장난감이 아니라
**노동의 흔적(이어붙인 자국)**과 **부재(사라진 사람)**를 품은 물건이 됩니다.


6) 꿈 장면의 이중감정: 황홀함 → 쓸쓸함

마지막 꿈이 아름답기만 하면 동화가 가벼워질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끝을 틀어요.

  • 나는 “로켓이 되어” 우주로 올라가지만,
  • “솟아오르는 로켓과 힘이 다해 떨어지는 로켓들”이 발밑에 가득함을 봅니다.

이건 성공/꿈의 이면에 있는 낙오와 소모를 아이가 직감하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결론이 “난 로켓이 아니라 티포트가 된 걸지도”로 돌아오죠.

꿈을 꾸되, 누가 그 꿈을 떠받쳤는지 잊지 않는 마음이 남습니다.


7) 제목의 힘: ‘로켓’과 ‘티포트’는 서로를 구원한다

  • 로켓만 있으면: 아이의 성장담으로 끝날 수 있고
  • 티포트만 있으면: 노년/해고 서사로 무거워질 수 있어요

그런데 둘이 만나서,

  • 아이는 할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고
  • 할아버지는 “별을 구경”하는 상상으로 자기 삶을 확장합니다.

제목 자체가 “연대의 공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