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못해요 리스트 / 이지현

 

"상희는 다 잘하잖아."

상희 주변으로 친구들이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허리를 숙여 책상 끄트머리에 기대곤 모두 상희의 활동지를 바라봤다.

"잘하는 게 많아서 어떤 직업이든 다 잘해 낼 거야."

친구들이 쉬지 않고 입을 재잘거렸다. 그 속에서 상희는 아무 말 않고 연필만 쥐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하나를 못 고르겠어?"

머뭇거리는 상희를 본 미환이 물었다. 상희 활동지의 장래 희망 칸은 텅 비어 있었다. 상희는 애꿎은 연필만 뗐다 붙였다 반복했다. 그러자 미환은 본인 책상 서랍에서 공책 하나를 꺼내더니 표지를 열고는 첫 장에 <잘해요 리스트>를 적었다.

"너가 잘하는 걸 하나씩 적어 보자! 그럼 고르기가 더 쉽지 않을까?"

상희가 무엇을 잘하냐면…. 신난 친구들이 미환 주변을 둘러쌌다. 그림 그리기, 밥 많이 먹기, 피아노 치기, 리코더 불기, 이야기 들어주기, 노래 부르기, 골 넣기, 바르게 글씨 쓰기. 끝이 없는 계주를 뛰듯 친구들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희는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기는커녕 여전히 활동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턱을 손으로 받치고 심각한 결정이라도 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치, 뭐가 그리 어렵다고? 아무렇게나 하나 적어내면 되지."

나는 그런 상희가 배부른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잘하는 것도 하나 있을까 말까인데. 잘하는 것도 많으면서! 왁자지껄한 사이 상희의 특기를 적은 <잘해요 리스트>는 어느새 한 장이 꽉 채워지는 중이었다. 나는 내 활동지를 바라봤다. 텅 빈 장래 희망 칸이 유난히 하얘 보였다. '나는 잘하는 게 뭐지…. 내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열심히 친구들 말의 속도를 따라가며 움직이던 미환이 손을 멈췄다. 여기 있어, 미환은 <잘해요 리스트>를 상희에게 건넸다. 상희가 <잘해요 리스트>의 표지를 넘겼다. 미환의 땀에 젖은 종이는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고마워."

상희는 도로 표지를 닫아 옆에 내려놓았다.

"내가 읽어 줄까?"

미환이 묻자 상희는 고개를 저었다. 미환은 물음표가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열심히 적었는데 읽어봐, 주변 친구들도 상희의 반응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읽어볼게."

상희는 다시 턱을 괴곤 활동지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친구들의 특기 주고받기 경기는 드디어 끝이 난 듯했지만 그 누구도 행복해하지 않았다.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읽기 귀찮다, 이거지?' 잘난 체하는 상희가 잘하는 게 많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기 오 분 전, 빈칸을 채워 넣고 우주비행사, 유튜버, 축구 선수, 소설가, 과학자가 된 친구들이 본인의 장래 희망을 자랑했다. 제 스타일대로 다양하게 입은 친구들의 옷이 꼭 유니폼처럼 보였다. 나는 비싼 카메라로 내 일상을 재밌게 찍어서 유튜브에 올릴 거야, 라며 미환이 자랑하자 맞아, 너는 말을 되게 잘하니까 100만 구독자는 금방일걸, 하며 친구들이 되받아쳤다. 그렇게 한 친구가 나는, 하며 소망을 말하면 다른 친구들은 맞아, 너는 잘하니까 하며 맞장구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여전히 지웠던 연필 자국만 가득한 칸을 바라봤다.

"뭐야, 상희 너 아직도 못 적었어?"

상희는 서둘러 활동지를 두 손으로 가렸다.

"학교 마칠 때 활동지 내야 하잖아. 그냥 <잘해요 리스트>에 있는 거 보고 아무거나 적어."

친구들이 다시 상희 주변에 동그랗게 모였다.

"싫어."

상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못 정하겠지?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상희의 대답을 듣지 못한 미환이 옆에 놓인 <잘해요 리스트>를 집어 들었다.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그만하라니까!"

상희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반에는 정적이 흘렀다. 직업을 가졌던 친구들 모두 학생으로 돌아왔다.

"봐봐, 이상희가 잘하기는 무슨. 선택 하나도 잘 못하는데."

내 말을 들은 상희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벌써 빈칸을 채워 넣은 지 오래였다. 물론 '없음'이라고 적었지만. 상희를 에워싸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을 해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상희가 괘씸했다.

"너 부러워서 그러지!"

친구들이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봤다.

"아니거든!"

뜨끔했지만 더욱 당당하게 외쳤다.

"이상희 너도 없으면 없다고 자신 있게 적어!"

나는 활동지를 반 접어 서랍 깊숙이 넣었다. 상희는 활동지를 두고 반 밖으로 나갔다. 연신 점심시간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반 친구들은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지난주 다른 반과 약속한 '반 대항 축구 경기'를 하러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얼른 칫솔을 가져다 놓으러 반으로 들어갔다.

"너가 있어야 우리 반이 이긴단 말이야."

모두가 떠난 반에서 미환은 상희를 설득하고 있었다. 상희가 꼼짝도 하지 않자 꼭 나와야 해, 라는 애원을 남긴 채 미환은 반을 떠났다. 나는 모른 체 하며 사물함을 열었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교과서가 미끄러지며 세워놓은 양치 컵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소리를 들은 상희가 뒤돌아보더니 나인 걸 확인하고는 책상에 엎드렸다. '치, 삐지기는.' 양치 컵은 자유를 만끽하기라도 한 듯 멈추지 않고 우당탕 굴러갔다. 곧 밖에서 친구들의 웃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축구공을 차는 둔탁한 소리도 들렸다. 나도 바삐 교과서와 양치 컵을 사물함에 욱여넣었다.

반을 나서려고 하자, 고개를 푹 숙이곤 활동지를 적고 있는 상희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못 적었단 말이야? 이내 다른 반 친구들이 골, 이라고 외치는 함성과 응원가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창문으로 뛰어가 점수표를 확인했다. 4 대 1, 무려 3점이나 차이가 났다. 또 졌대요, 또 졌대요, 라며 놀려댈 다른 반 친구들의 모습이 눈앞에 거슬리게 그려졌다.

조금 전 미환의 말이 떠올랐다. 맞아, 축구를 잘하는 상희만 있다면 역전은 식은 죽 먹기인데!

나는 조심스레 상희에게로 다가갔다.

"상희야, 오래 걸려?"

상희는 활동지를 품 안으로 더 숨겼다.

"아까는 내가 미안했어."

나는 상희의 장래 희망 칸을 흘끔 쳐다봤다. 무언가를 적은 자국도, 지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고민인 거야?"

상희는 아무 말하지 않고 연필만 쥐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떻게 하면 저 빈칸이 빨리 채워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희가 내 사과를 받아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나는 손을 뻗어 서랍 속 활동지를 꺼내 상희 옆에 앉았다. 들춰진 나의 부끄러움이 축구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꼭꼭 숨은 부끄러움이 아닌 명예로운 부끄러움이니까!

"봐봐, 나도 없어."

나는 '없음'이라고 적힌 장래 희망 칸을 가리켰다. 상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 손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너처럼 잘하는 게 없거든. 어떤 걸 적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없다고 적었어. 너도 없으면 없다고 해."

나는 종이의 구겨진 자국들을 꾹꾹 눌려 반듯하게 펼쳤다. 상희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필을 쥐고 있었던 걸 보니 무언가를 적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너는 잘하는 게 많으니까 나보다는 쉽겠지."

나는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잘해요 리스트>를 펼쳤다.

"어디 보자, 너는 피아노를 잘 치니까 피아니스트 되면 되겠네."

"피아노 싫어."

"그럼 그림을 잘 그리니까 화가는 어때?"

상희는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든 거절하는 상희를 보니 점차 답답함이 차올랐다. 나는 크게 숨을 들었다 내쉬고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럼, 가수는?"

이번 질문에 상희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큼지막하게 적힌 <잘해요 리스트>를 응시했다. 열린 창문 틈으로 골! 환호성이 들려왔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는 책상 위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연필을 쥐어 <잘해요 리스트>에 적힌 특기 옆에 알맞은 직업을 적었다. 밥 많이 먹기 옆에는 먹방 유튜버, 이야기 잘 들어주기 옆에는 상담 선생님….

"사실 내가 이것들을 잘하는지 모르겠어."

상희가 울먹였다. 상희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활동지에 스며들었다.

"너가 얼마나 잘하는데! 친구들이 인정했잖아!"

상희의 눈물에 놀라 리코더 불기 옆에 엉뚱한 직업을 적고 말았다. 나는 지우개를 찾았다. 이내 공책을 뺏은 상희가 내용들을 모두 지우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지저분하게 지워진 종이가 더욱 쭈글쭈글해졌다. 내 활동지보다 더 엉망이었다. 상희는 더럽혀진 종이를 찢었다. <잘해요 리스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책도 새것 같아 보였다. 나는 도무지 상희가 이해되지 않았다. 잘하는 것도 많으면서, 주변에서 인정도 받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잘한다고 칭찬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

머지않아 상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칭찬 안 받으면 어때. 가끔은 못할 때도 있는 거지."

"그게 무서워."

상희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소매에 눈물 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그러다 상희 옷에 묻은 깍두기 국물과 간장 소스가 눈에 들어왔다. 밥풀도, 고춧가루도 붙어 있었다.

"너는 깔끔하지 못하네."

상희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너는 너무 울음에 약해."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어때, 기분 나빠?"

아니, 상희는 고개를 저었다.

"잘한다고 말하면 그래 나 잘한다! 하면 되고, 못한다고 말하면 그래 나 못한다! 하면 돼."

나는 공책의 새로운 면에 자랑스럽게 <못해요 리스트>를 크게 적었다.

"그리고 나는 못하는 게 더 좋은걸?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나는 못하는 것들을 고민했다. 청소하기, 옷 개기, 달리기…. 어쩜 이리 쉽게 떠오르는지, 잘하는 것도 이렇게 많았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하나둘씩 적어 내려갔다. 이를 가만히 보던 상희가 공책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도 적어 볼래."

온종일 연필만 잡고 망설이던 상희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요리도 못하고, 악보도 못 외우고, 옷도 멋있게 못 입고…."

한 페이지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어느새 상희는 즐거운 표정으로 <못해요 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이제는 내 차례야!"

우리를 둘러싼 친구들은 없었지만 그때만큼 시끌벅적했다. 언젠가부터 운동장의 친구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 날, 선생님은 10년 뒤 본인의 모습을 그리는 활동지를 나눠주었다. 그날도 상희 주변에는 변함없이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친구들이 상희의 그림을 보며 역시나 상희야, 잘 그렸다며 칭찬했다. 그 틈을 비집고 상희는 종이를 들어 내게 보여줬다. 그림 속 상희는 하얀 유니폼에 가지각색의 소스가 묻은 요리사였다. 나도 내 활동지를 들어 보여줬다. 그림 속 나는 1등 메달을 목에 건 육상 선수였다. 육상 선수가 된 나와 요리사가 된 상희, 그림 속 우리는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선소감>

 

   상상은 불가능에 가려진 가능성을 불씨로 피워준다

동화는 뭐랄까요,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갑고,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저는 엄마의 목소리를 놀이터 삼아 동화와 놀았습니다. 그러다 졸음이 몰려올 때면,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여기서 놀자"하며 머릿속으로 동화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어릴 적 참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가끔 동화는 묻는데요, 상상의 힘을 믿냐고. 언제나 저의 대답은 "당연하지"였습니다.

상상은 불가능에 가려진 가능성을 불씨로 피워줍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제게 동화는 장작이 되어주더군요. 여전히 동화는 묻습니다. 아직도 상상의 힘을 믿냐고. 변함없이 저의 대답은 "당연하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터널은 거대한 두더지가 파놓은 거야"라는 아빠의 상상을 한결같이 믿나 봅니다.

저는 동화가 좋습니다. 동화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동화를 통해 아이들과 상상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동화를 쓰는 동기는 제가 상상을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화를 품에 안을 때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 당신들은 언제나 제게 동화였습니다. 나의 동심들 언니야, 진석아, 세월이 지나도 늘 내게 장난꾸러기가 되어줘. 존경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 길에 뿌려준 꽃들을 정성껏 모아 당신들께 꽃다발로 건넵니다. 내 가족, 당신들의 미소는 제게 힘이 됩니다.

동화를 사랑하게 해주신 박주혜 교수님, 그 사랑은 맞사랑이라고 속삭여 주신 김현숙 교수님, 문학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김수진 교수님과 단국대학교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동화의 가능성을 발견해 주신 무등일보에게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화를 사랑했던 스터디 벗들, 나의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 내 동화에 등장하는 나의 모든 친구야, 애정한다.

큐피드가 쏜 황금 화살이 제 폐를 관통한 듯합니다. 그 덕에 저는 사랑을 숨 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보송한 동화를 쓰겠습니다. 그렇게 나아가겠습니다.

 -


 

  <심사평>

  

  현대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덕목 탐구···구성력 차별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문학계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응모작 증가로 나타났다고 한다. 올해는 동화 부문에 총 148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소재의 다양성이 돋보인 점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출품작들의 전반적인 경향을 살펴보면 몇 가지 아쉬움도 드러났다. 특히, 현시대 어린이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 많지 않았다. 동화의 주 독자가 어린이임을 고려할 때, 어린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나 정서적 갈등을 다루는 서사가 더 필요해 보였다. 일부 작품은 작가의 관념적 세계에 치우쳐 진부한 전개로 이어졌으며, 제목의 참신성이 부족한 작품도 많았다.

동화는 어린이의 성장을 돕고, 어린이들이 미지의 세계를 인식하는 창의 역할을 한다. 어린이는 동화를 읽으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꿈과 희망을 키워나간다. 따라서 동화의 서사는 어린이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 것을 지향한다.

최종심에 오른 <모티와 나> 는 소재의 참신성이 돋보였으나, 결말 부분에서 구성이 흔들린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아이들의 도시, 씨밀레>는 독창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전개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결말에서 인물 행동에 대한 플롯 설정이 약해 아쉬웠다. <못해요 리스트>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음이 강점으로 꼽혔다. 어린이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서사 구조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현대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덕목을 탐구하게 하는 구성력으로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었기에 여러 장점을 종합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모든 응모자는 저마다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응모자들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당선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의 완성이 아닌 출발점임을 기억하고, 더욱 매진해 주기를 당선자께 당부한다.

심사위원 : 배다인 동화작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동화는 “장래희망을 적는 활동지”라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출발해,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어린이 마음을 어떻게 조용히 조이는지, 그리고 그걸 ‘못해도 괜찮다’는 발견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예요. 제목 **〈못해요 리스트〉**는 그래서 결핍의 고백이 아니라 자유의 선언이 됩니다.


1) 한 문장 해석

“잘한다”는 칭찬에 갇힌 아이(상희)가 ‘못해도 괜찮다’를 배우며, 자기 마음으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이야기.


2) 인물과 갈등의 핵심

상희: ‘잘해요’에 갇힌 아이

  • 친구들은 상희를 “다 잘하는 애”로 규정해요.
  • 그런데 상희가 장래희망 칸을 못 채우는 이유는 “선택 장애”가 아니라, 기대에 대한 공포예요.
  • “잘한다고 칭찬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
  • 즉 상희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평가의 시선입니다. 잘하는 아이일수록 더 취약해지는 지점이죠.

화자(‘나’): 열등감으로 시작해, 해결의 열쇠를 쥐는 아이

  • 화자는 상희를 부러워하다가 “없음”을 적어버린 자기 처지 때문에 질투로 공격해요.
  • 하지만 축구 경기(우리 반이 지는 상황) 때문에 상희를 설득하려다, 오히려 진짜 해결을 찾아내죠.
  • 이 동화가 좋은 점은, 어른이 해결해 주지 않고 아이(화자)가 아이(상희)를 살린다는 구조예요.

미환과 친구들: ‘선의’가 압박이 되는 집단

  • 미환의 <잘해요 리스트>는 친절이에요.
  • 그런데 그 친절이 상희에게는 “넌 잘해야 해”라는 규정과 감시로 변합니다.
  • 이 작품은 ‘친구들의 칭찬’도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아주 어린이 눈높이로 보여줘요.

3) 가장 중요한 장치: 리스트의 전복

이야기의 엔진은 리스트가 뒤집히는 순간입니다.

  • <잘해요 리스트> : 타인이 정해준 나(칭찬/평가/기대)
  • <못해요 리스트> : 내가 스스로 인정한 나(부끄러움/가능성/자유)

상희가 <잘해요 리스트>를 “찢어버리는” 행동은 과격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대의 족쇄를 끊는 의식이에요. 종이가 찢기는 소리가 곧 마음의 결박이 풀리는 소리처럼 들리죠.


4) “못한다 = 가능성이 있다”라는 메시지의 설득력

화자가 말하는 핵심 문장:

  •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잖아!”

이게 단순한 긍정 구호로 안 끝나는 이유는, 화자가 자기 ‘없음’을 먼저 내놓기 때문이에요.

  • “봐봐, 나도 없어.”(‘없음’ 공개)
    →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 태도가 상희의 방어를 무너뜨립니다.
    즉, 상희를 설득한 건 논리보다 동료의 취약함 공유예요.

5) 상징과 디테일이 만드는 현실감

활동지의 ‘빈칸’

  • 텅 빈 칸은 미래의 공백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 속 비교와 평가의 공백입니다.
  • 화자는 ‘없음’을 적지만, 그 ‘없음’도 사실은 자기비하의 방식이죠. (그걸 나중에 ‘명예로운 부끄러움’으로 바꾸는 게 성장)

상희 옷의 깍두기 국물/간장/밥풀

  • 완벽해 보이던 상희가 사실은 깔끔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증거입니다.
  • 화자가 “너는 깔끔하지 못하네 / 울음에 약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약간 거칠지만, 상희에게는 ‘완벽한 상희’라는 가면을 벗겨주는 말이 돼요.
  • “기분 나빠?”에 “아니”라고 고개 젓는 상희는, 처음으로 **‘잘해야 하는 상희’가 아닌 ‘그냥 상희’**로 숨을 쉽니다.

축구 경기(반 대항)

  • 이야기를 움직이는 실용적 압박(“상희가 있어야 이긴다”)이지만,
  • 결과적으로 상희에게는 “너는 이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추가 부담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운동장 소리가 “언젠가부터 들리지 않는다”는 문장은, 상희와 화자가 승패보다 자기 마음에 집중하는 전환점이에요.

6) 결말 해석: “요리사 상희”와 “육상 선수 나”

다음 날, 새로운 활동지에서 두 아이의 선택이 바뀌어요.

  • 상희: 소스 묻은 유니폼의 요리사
    • ‘깔끔함’ 강박을 내려놓고, 흘리고 묻히며 하는 일을 선택했다는 점이 상징적이에요.
  • 나: 1등 메달의 육상 선수
    • ‘없음’에 머물지 않고, “못하는 것”을 적으며 가능성 쪽으로 이동한 결과처럼 읽힙니다.

둘이 “환하게 웃는다”는 건, 성공해서가 아니라 평가의 공포가 줄었기 때문이에요.


7) 이 동화의 주제

  • 칭찬은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를 ‘잘하는 사람’에 가둔다.
  • “못해요”를 말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자기 속도로 성장할 권리를 얻는다.
  •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어른의 훈계가 아니라, 친구 사이의 솔직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