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내 박자는 조금 느려 / 황채영

<당선작>
내 박자는 조금 느려 / 황채영
교실에 들어서기 전 이어폰을 빼는 것이 아쉬웠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나올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라임 노트를 꺼냈다. 아직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시려면 이십 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라임 노트란 내가 찾아낸 라임들을 정리해 놓은 노트로 내 보물 1호라고 할 수 있다. 일찍 등교해 아이들과 선생님 몰래 라임을 찾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랩을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은 말의 속도가 느리고 더듬으며 말하는 나를 말더듬이, 어버버라고 놀려대지만 사실 나는 랩을 할 때 단 한 번도 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축구를 하기 위해 일찍 등교한 아이들이 교실에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당황해서 라임 노트를 덮었다. 승민이가 놀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승민이와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다. 내가 작년 장래 희망 발표 시간에 래퍼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이후 승민이는 틈만 나면 나를 놀려댔다. 어쩌면 놀리는 게 당연했다. 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말더듬이니까. 나는 그때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래퍼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승민이가 실로폰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준비물이 있었다니! 아차 싶어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가방을 확인했다. 승민이는 그걸 속냐면서 라임 노트를 가져갔다. 승민이는 내가 노트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책상 위에 올라갔다.
수학 수박 구박
영어 연어 버너
가수 박수 자주
바보 나도 아보카도
승민이가 얄미운 목소리로 라임 노트를 읽어댔다. 아이들은 승민이와 함께 나를 비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맞섰을 텐데. 나는 책상에 엎어져 속상해할 뿐이었다. 승민이는 내가 반응하지 않자 시시하다는 듯 노트를 내 책상에 던져 놓았다. 힙합은 저항을 위해 발전했고,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장르라는 걸 힙합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어째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라임 노트를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1교시 사회 시간에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수업을 했다. 발표라니 역시나 자신 없었다. 발표만 하면 목소리가 개미만큼 작아지고 손이 달달 떨렸다. 다른 아이들은 척척 발표를 마쳤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내 차례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긴장이 됐다. 말을 더듬으면 어쩌지. 나는 차가워진 손을 꽉 쥐고 교실 앞으로 나갔다.
“제, 제가 발표…할 부, 부, 부분은 미구, 국…”
“쟤 말하는 것 좀 봐. 진짜 웃기다니까!”
누군가 발표에 끼어들어 말했다. 역시나 승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승민이를 향해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이 뜨거웠다. 모든 아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은 소란스러웠다. 선생님께서는 주목하라며 손뼉을 치셨다.
“다음 주가 운동회인 거 알지? 4학년은 이인삼각 경기할 거야. 짝은 번호순으로 두 명씩 할 거고. 2교시 체육 시간에는 나가서 체육대회 연습할게.”
아이들은 자신의 짝을 찾아 하나둘 모였다. 승민이가 화난 표정으로 걸어와 내 옆에 섰다. 김승민, 김준우. 6번, 7번. 우리는 같은 조였다. 승민이의 입이 삐죽 나와 있다. 역시 말을 더듬는 나와는 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승민이가 운동장 바닥을 계속해서 차는 바람에 흙먼지가 일었다.
“선생님. 저 그냥 다른 애랑 하면 안 돼요?”
승민이가 손을 들고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셨다.
“달리기 가장 빠른 하준이랑 같은 조 되지. 왜 김준우 같은 애랑 된 거야. 김준우는 말도 느리게 하는데.”
승민이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마음속에서 나와 승민이는 어두운 공연장에 서 있었다. 나는 멋있게 모자를 쓰고 마이크를 잡았다. 비트가 둥둥거리며 흘러나왔다. 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YO 승민 너는 진짜 나빠
너 때문에 아파
너가 하는 말 다 가짜
어차피 내년이면 빠빠이
길 가다 똥이나 밟아
결국엔 내가 승리 봐봐
속이 시원해졌다. 마음속에서 진행한 랩 배틀에서 나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승민이가 내 랩을 듣고 감탄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관객들도 다 같이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날 놀려대는 승민이와 이인삼각이라니 걱정이 되었다. 승민이는 우리 반에서 달리기가 두 번째로 빨랐다. 축구도 잘했다. 제일 빠른 공격수로 골을 두 개는 기본으로 넣기 때문이다. 내가 방해될 게 뻔했다. 다리를 묶은 아이들이 한 조씩 출발하였다. 금세 승민이와 내 차례가 왔다.
“하나. 둘.”
승민이가 우렁차게 구호를 외쳤다. 구호에 맞게 오른발을 떼는 순간 나는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승민이와 함께 운동장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분명 나는 구호에 맞게 오른발을 들었는데. 곧이어 우리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승민이에게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승민이 때문에 운동회 우승 상품인 치킨과 피자가 물 건너갔다며 말이다. 몇 번을 연습해도 우리는 넘어졌다. 승민이는 구호대로 발을 드는 일이 없었다.
“너 바, 박치구나?”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박치야! 박치는 아니지!”
승민이의 말에 반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승민이는 박치가 맞았다. 자신의 외치는 구호에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승민이가 유일했다. 승민이의 발은 엇박자로 움직였다. 나는 엇박자로 유명한 벌스를 떠올렸다. 그 벌스를 짠 래퍼는 정박자와 엇박자를 오가기로 유명했다. 승민이는 일주일 내내 체육 시간만 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주눅 든 승민이의 모습이 통쾌하기도 했지만, 이러다간 운동회 때도 나까지 함께 넘어질 게 뻔했다.
“너, 너, 학교 끝나고 나 좀 봐.”
승민이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내, 내가 너 도, 도와줄게.”
승민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민이는 하교 시간에 나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왔다. 나는 선생님께 허락받고 빌려온 이인삼각 고리를 승민이에게 건넸다. 승민이는 겁에 질려 보였다.
“이, 이건 나, 나중에 할 거야.”
그 말에 승민이는 안심한 듯 보였다. 나는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곤 랩을 하듯 구호를 뱉기 시작했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투 더 포
승민이는 내가 말을 더듬지 않아 놀란 듯 보였다.
“두, 둘의 차, 차이를 알겠어? 앞엔 정박이고 뒤, 뒤는 엇박이야.”
승민이는 모르겠다는 듯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승민이에게 손뼉을 따라 치라고 말했다. 승민이가 점점 정박자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신호였다. 손뼉을 친 이후에는 발을 굴러보기로 했다. 쿵 쿵 쿵 쿵. 원 투 쓰리 포. 승민이는 몇 번 틀렸지만, 열심히 발을 굴렀다. 아직 이인삼각 연습도 안 했는데 힘들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승민이는 이어폰을 건네받고 오른 귀에 꽂았다. 엇박자를 잘 타기로 유명한 래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솔직히 엇박자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 내가 엇박자로 행동한다는 것도 몰랐어.”
“나, 나도 처, 처음엔 그랬어.”
“근데 너 아까 말 안 더듬던데. 왜 또 더듬냐.”
“래, 랩할 때는 안 절어. 나, 나도 알아. 이상한 거.”
“근데 왜 랩을 안 해? 난 네가 랩하는 거 처음 봐.”
“그, 그야 잘, 잘 못하잖아.”
“박자 타는 것만 봐도 잘하던데. 자신감 좀 가져. 나 같은 박치도 있는데 뭐.”
승민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연습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맨날 말 더듬는다고 놀려서 미안해. 나도 애들이 박치라고 놀리니까 부끄럽고 속상하더라.”
승민이가 수줍게 말했다. 나는 당찬 승민이만 봐왔는데,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승민이도 있구나. 기분이 완전히 풀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용서를 구하는 승민이를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우리는 집까지 남은 길을 이인삼각 고리를 찬 채 걸었다. 승민이는 나도 구호를 외칠 수 있도록 일반적인 구호인 ‘하나, 둘’이 아니라 ‘원 투 쓰리 포’를 랩처럼 뱉어댔다. 왠지 운동회 당일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장에 모든 학년이 모이는 날. 드디어 운동회 날이었다. 우리 4학년 2반처럼 짝수 반은 하얀 옷, 홀수 반은 검은 옷을 입었다. 이인삼각 경기가 첫 순서였다. 아이들은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다들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물론 박자가 맞지 않아 느려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앞 차례 친구들이 떠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까지 떨렸다. 내 옆에서 승민이는 누구보다 가장 떨고 있다. 우리는 다리에 고리를 찬 채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 투 쓰리 포”
독특한 우리의 구호에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연습 내내 넘어지던 승민이가 넘어지지 않자 아이들은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이어진 발걸음에서 승민이가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며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장 빨리 들어왔다고 했다. 분명 아주 긴 시간 동안 걸어온 것 같은데. 승민이는 고리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치며 좋아했다.
승민이와 나의 활약으로 우리 반은 이인삼각 경기에서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반 아이들은 치킨과 피자가 코앞이라며 좋아했다. 다음 경기는 계주 시합이었다. 우리 반을 대표하는 계주는 하준이였다. 하준이는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하준이는 계속해서 1등으로 달렸다. 우리 반 아이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이 놀랐다. 하준이가 넘어졌다. 하얀 옷을 입은 모든 학생이 아쉬워했다. 야유를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준은 무릎을 절뚝이며 겨우 일어나 배턴을 건넸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양호실에 갔다가 자리에 돌아온 하준이에게 아쉽다고 말했다. 짓궂은 아이들은 하준이한테 너 때문에 지겠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하준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놀리는데 선수인 승민이가 조용했다. 선생님께서는 하준이를 다독여 주셨다. 운동회 내내 하준이는 풀이 죽어 있었다. 운동회의 끝이 보일수록 우리 반의 분위기는 안 좋아졌다. 백팀의 패배가 거의 확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동회의 마무리가 좋게 끝났으면 했다. 그때 머리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응원을 잘한 학급 한 반도 경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운동회의 시작부터 6학년 누나들이 최신 가요의 안무를 추며 응원해서 모두가 포기했던 상이었지만 말이다.
“우, 우리 으, 응원상이라도. 노, 노리자.”
“됐어. 나 때문에 이미 끝났어.”
하준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가망 없는 상을 어떻게 받냐며 고개를 저었다. 받을 수 있으면 네가 응원해 보라며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괜히 의견을 낸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그때 승민이가 발을 굴러 비트를 만들었다. 승민이가 박치여서 그런지 비트의 박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승민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아이들이 리듬에 맞춰 손뼉을 쳐주었다. 아직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랩 해본 적 없는데, 심장이 떨렸다.
넘어질 수 있지
승민이도 그랬었지
죄책감 들지 않기
백팀이 져도 우리는 이기지
해피지 너도 우리는 이 반이지
I say 할 수 You say 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가서 놀랐다. 더 놀란 건 아이들 같아 보였다. 내가 말을 더듬지 않는 모습을 처음 봤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 모두 내가 건네는 마이크에 맞춰 대답했다. 운동장에 ‘할 수 있다’는 말이 가득 울려 퍼졌다. 랩이 끝나자 아이들은 손뼉 치며 함성을 질렀다. 옆에 서 있던 승민이와 하준이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들 앞에서 랩을 했다는 사실에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른 학급들은 계주에서 넘어진 반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나 하는지 궁금해했다.
“부, 부끄럽다. 래, 랩은 잘 못하는데.”
내 말에 아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본 사람 중에 내가 랩을 가장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진짜? 아직 멀었는데….”
“어? 너 방금 안 더듬었어!”
승민이가 놀랐다는 듯 말했다. 나도 화들짝 놀랐다. 말 더듬는 걸 고치려고 엄마랑 상담도 다녀보고, 치료도 받아봤는데. 칭찬 한 번에 나아지다니! 물론 잠깐 나아진 걸 수도 있지만 기분이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좋아진 분위기 속에 각자 잘하는 노래나, 춤을 선보이며 남은 운동회를 즐겼다. 드디어 결과 발표 시간이다. 검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발표 전인데도 환호를 질렀다.
“흑팀 백팀 대결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응원상은 말이지요. 4학년 2반!”
교장 선생님 말씀에 우리 반 아이들은 떠나가라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일정한 손뼉 소리 속에 튀는 소리가 있었다. 하준이는 손뼉마저 빠르게 쳤다. 승민이는 엇박자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넘어지고, 엇박자를 타고, 말을 더듬어도 우리는 이겨냈다. 나는 승민이의 박자에 맞춰 카운트해 주었다.
원 투 쓰리 투 더 포
우리는 모두 다른 박자를 즐기고 있었다. <끝>
<당선소감>
힙합과 도서관의 책들이 내 동화 세계를 만들었다
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학원으로 흩어졌다. 나는 익숙하게 학교 도서관에 가서 매일 두 권의 동화를 읽었다. 사서 선생님과 나, 둘뿐이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책을 읽을 때면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적은 낮아졌고, 뒤처질까 두려웠다. 나는 방학 중 도서관 이용 우수 어린이로 선정되어 달랑 필기구 세트 하나를 받았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십 년가량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선물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도서관 책장들이 꼭 벽 같다고 느꼈다. 책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 지금 생각하니 그 벽이 나를 지켜준 것 같다. 나도 그 벽에 가담해 아이들을 지켜주는 동화를 쓰고 싶다.
나는 준우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즐겁게 동화를 썼다. 자라면서 들었고, 아직도 듣고 있는 래퍼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동화를 완성할 수 없었을 테다. 나는 세계에 이런 방식으로 도움받고 있다. 나도 앞으로 세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도서관에 꽂혀 있던 모든 동화들에게 고맙다. 나의 글을 지지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동화 쓰기에 용기를 주신 양연주 선생님을 비롯한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오래 쓰고 오래 보고 싶은 문우 민서, 예인, 혜빈에게 고맙다. 키워주신 부모님과 세 자매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언니와 동생에게 사랑을 전한다. 가장 소중한 친구인 태빈에게 다른 이의 어둠을 닦아주는 다정을 배울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진짜 조선일보가 맞냐고 되물었다.
살면서 거짓이었으면 하는 일이 많았다. 진짜여서 좋은 일이 생겼다.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지나간 일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었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들여다보아야 했다. 어린 내가 자꾸만 데려가라고 소리치고 있다. 나는 구덩이에 손을 뻗는다.
●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유쾌한 서사, 적절한 '랩'…응모작 중에 단연 돋보여
총 응모작은 383편이었다. 과거에 비해 등단 기회가 많아졌는데도 신춘문예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었다. 학교, 친구, 가족, 동물, AI, 우주, 죽음 등이 소재였고, 밀도 있게 잘 쓰인 작품도 있었지만 정작 어린이에게 가닿는 글은 많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특히 주목한 점은 판타지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미숙함이었다. 세계의 규칙이 충분히 설계되지 않은 채 전개되는 사건들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설정이 앞서가는 경향은 판타지만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이는 동화를 상대적으로 수월한 장르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한계가 아닐까 한다.
당선작을 가리기 위해 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다음 세 편이다. ‘나는 4번 계란입니다’는 동물권, 기후 위기, 과도한 산업화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를 흔치 않은 소재로 형상화했다. 리드미컬하고 정확한 문장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야기의 옷을 입고 정리, 설명된 것 같았다. ‘리어카 황’은 동화의 단골 소재인 형제간의 갈등과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이야기라고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이 참신한 것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인식 수준에서 서술되고, 아이들의 정서에 가닿도록 쓰였다는 점이다.
‘내 박자는 조금 느려’도, 말을 더듬는 아이가 친구들의 놀림을 극복한다는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랩’ 덕분에 색깔이 생겼다. 적절하게 등장하는 랩은 리듬과 가사 모두 충분히 흥미롭고 이야기의 진행을 돕는다. 무엇보다도 활발하고 유쾌한 서사가, 전반적으로 가르침으로 가득한 응모작들 가운데에서 단연 돋보였다.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위원 : 송재천, 최윤정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제목이 먼저 말하는 핵심
**「내 박자는 조금 느려」**에서 중요한 건 느리다가 아니라 조금이에요.
- ‘느림’을 결함으로 낙인찍는 게 아니라, 차이의 정도로 바꿔 말합니다.
- 그리고 “박자”는 두 층위로 쓰여요.
- 말의 박자(더듬는 말, 끊기는 호흡)
- 몸의 박자(달리기·손뼉·발 구르기, 이인삼각의 합)
즉, 이 동화는 “말”과 “몸”을 따로 두지 않고, 리듬을 통해 말의 길을 다시 열어주는 구조입니다.
2) 인물 구도: 약점이 다른 두 아이가 서로의 거울이 된다
준우(‘느린 말’의 아이)
- 아이들에게는 “말더듬이, 어버버”로 소비되지만, 준우 자신에게는 랩을 하는 순간만큼은 ‘단 한 번도 절지 않는’ 존재예요.
- 그래서 라임 노트는 단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은신처입니다. (보물 1호, 몰래 하는 즐거움)
승민(‘엇박’의 아이)
- 초반엔 가해자(놀리는 아이)인데, 이인삼각 훈련에서 드러나는 약점이 **‘박치’**예요.
- 승민이의 약점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다 같이 웃고 달리는 자리에서 돌연 “너 때문에 우승 못 한다”는 식으로 집단의 책임을 한 몸에 떠안는 구조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동화는 “약점이 있는 아이”를 한 명만 두지 않아요. 약점의 위치가 이동합니다.
→ 준우 → 승민 → 하준(계주에서 넘어짐)
이 이동이 작품의 윤리적 핵심이에요. “놀림”이 누구에게든 향할 수 있다는 것.
3) 핵심 장치 1: 라임 노트는 ‘숨겨진 무기’이자 ‘빼앗길 수 있는 자아’
승민이가 노트를 빼앗아 “수학 수박 구박…”을 조롱하는 장면은 단순 괴롭힘이 아니라,
- 준우가 가장 사랑하는 것(랩)을
- ‘말 더듬는 애가 감히?’라는 시선으로
- 대중 앞에서 망신 주는 의식으로 바꿔버리는 폭력이죠.
그래서 준우는 “힙합은 저항인데 왜 나는 못 맞서지?”라고 자책해요.
이 자책이 중요한 이유는, 동화가 “용기내라”를 말하기 전에 **용기가 안 나는 이유(수치심)**를 먼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4) 핵심 장치 2: 이인삼각 = 관계의 은유(‘혼자 잘함’이 통하지 않는 경기)
이인삼각은 우연히 선택된 게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대표하는 은유예요.
- 혼자 빠른 승민도
- 혼자 리듬을 아는 준우도
둘이 “같이” 못 맞추면 무조건 넘어집니다.
그리고 넘어질 때 아이들의 반응은 너무 현실적이죠.
“너 때문에 치킨 피자 날아갔다”
→ 공동체의 욕망(상품)이 생기면, 누군가를 쉽게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5) 전환점: ‘가해자 승민’이 ‘부끄러움을 아는 승민’으로 바뀌는 순간
승민이의 변화는 “선생님이 혼내서”가 아니라, 자기가 똑같이 당해보며 일어납니다.
- 승민은 박치라고 놀림받고 “부끄럽고 속상”해져요.
- 그 경험이 준우에게 “미안해”를 말하게 만들죠.
여기서 동화가 좋은 점은, 사과가 ‘착한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준우가 방법을 준다(손뼉→발 구르기→원 투 쓰리 포)
승민이도 노력을 한다(몇 번 틀리지만 계속)
사과가 행동과 연습으로 바뀌는 순간, 관계도 진짜로 바뀝니다.
6) 리듬이 해내는 일: 말의 문을 ‘정답’이 아니라 ‘박자’로 연다
준우가 승민에게 가르치는 방식은 “발음 교정”이 아니라,
- 손뼉(규칙) → 발 구르기(몸) → 카운트(언어)
이 순서예요.
즉, 말이 막히는 아이에게 “천천히 말해”가 아니라, 말이 흘러갈 레일(리듬)을 먼저 깔아주는 방식이죠.
그래서 준우는 랩할 때 더듬지 않습니다(작품 내부 논리로는).
여기서 랩은 재능 자랑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 됩니다.
7) 클라이맥스: 운동회 응원 랩이 ‘개인의 복수’에서 ‘공동의 회복’으로 바뀐다
초반 준우의 랩은 상상 속 배틀(승민 욕하기)로 나와요.
“YO 승민 너는 진짜 나빠…”
이건 분노의 출구지만, 실제 변화를 만들진 못하죠.
후반 응원 랩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넘어질 수 있지 / … 죄책감 들지 않기 … / I say 할 수 You say 있다”
이 랩은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고, 넘어져 울고 있는 하준까지 포함해서 모두를 다시 세우는 리듬이 돼요.
여기서 준우는 ‘말 더듬는 아이’가 아니라, 반 전체의 박자를 잡는 아이가 됩니다.
8) 엔딩 문장: “엇박도, 느림도, 다 같이 즐기는 박자”
마지막의 “승민이는 엇박자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가 작품의 결론이에요.
- 정박만 정상이라는 규칙을 내려놓고
- 느림/엇박/빠름이 섞여도 함께 성립하는 리듬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제목의 ‘조금 느려’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맞출 수 있는 차이로 재정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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